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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물길, 천음야화'

2003년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무대. 소리스펙타클이라는 조금은 낯선 형식을 덧댄 ‘백제물길 천음야화’란 서사음악이 올려졌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아름답고 빼어난 조각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판소리와 한국전통음악을 바탕으로 10여개 국가의 소리와 춤, 풍물이 어우러져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대. 새로운 음악적 시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으나 ‘음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새로운 실험’인 것은 분명했다.

 

작품의 의미는 또 있었다. 한국 고대 백제인들이 개척한 해상물길, 황해에서 동남아에 이르는 문명교류사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고 긴 여정을 담고 있는 음악의 서사성이다.

 

1993년 12월. 충남 부여의 고분군 발굴작업 현장 서쪽 골짜기 구덩이에서 향로가 발굴됐다. 진흙 속에서 억겁의 세월을 안고 묻혀있던 이 신비로운 유물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래의 모양을 온전히 갖고 있었다. 흐트러짐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선과 우아하고 세련된 정교한 조각의 아름다움으로 고대 동아시아 향로 중에서도 최고의 조형미를 평가받게 된 향로는 길고 긴 세월을 건너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

 

이 작품의 대본을 쓰고 작곡한 이종구교수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금동대향로 윗부분에 새겨진 다섯 명 악사를 주목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발견된 이후 15일 만에 국보 지정을 받을 정도로 가치를 평가받은 금동대향로 위의 악사와 악기에 대한 고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악기의 비밀을 추적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문물교류의 육로와 바닷길에 숨 쉬고 있는 문화교류사로부터 다섯 명 악사와 악기의 비밀을 읽어낸 작곡가는 ‘백제금동대향로’에 담긴 소리의 역사와 비밀을 우리 앞에 펼쳐 놓았다. 다섯 명 악사의 악기를 고증으로 복원해 연주하게 하면서 잊혀진 악기와 오늘의 악기가 만나 이루어내는 음악 ‘천음야화’는 그렇게 탄생됐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전북과 충남의 백제역사유적지구 확장이 논의되고 있다. 서울시가 송파구 일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등 한성백제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방법으로 기존 등재 구역의 추가 확장을 인정하고 있으니 가치만 인정된다면 얼마든지 가능성 있는 일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있다. 백제유적의 의미를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확장시키는 작업에는 여전히 소홀한 환경이어서다. ‘천음야화’처럼 역사를 주목하는 예술작품의 단명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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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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