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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석 이철승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을 두고 ‘거목(巨木)’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통령 당선과 함께 쓰임새를 다했기 때문이다. 이들 두 전직 대통령과 70년대 야당을 이끌었던 소석(素石)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에게는 평생 ‘정치적 거목’이라는 별칭이 따랐다. 30년 전 현실 정치에서 떠났지만 한국현대정치에 남긴 긴 소석의 그림자는 그만큼 짙고 길었다.

 

평생의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타계한 소석을 보내는 전북인들의 감회는 남다를 것 같다. 가장 애석하게 생각하는 게 두 전직 대통령과 어깨를 걸고 굴곡의 한국 현대정치사를 해쳐온 소석이 중도에 현실정치에서 물러난 점일 게다. 당시의 시대상황과 민심을 잘 읽지 못한 소석의 책임이 클 테지만, 그리 쉽게 큰 정치인을 끌어내린 데 대해 도민으로서 자괴감을 말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소석은 88년도 민주화바람과 함께 DJ가 이끈 평민당의 황색바람 앞에 맥없이 무너졌으며, 그 후 현실 정치에서 완전히 떠났다. 7선 관록과 제1야당 당수를 지낸 정치인이 고향에서 10% 득표도 얻지 못한 상심이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소석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여러 가치 판단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소석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밖으로 드러내서 표의 심판을 받았다. 그를 따라다녔던 가장 아픈 대목으로, ‘사꾸라’라는 비판을 받았던 ‘중도통합론’역시 YS와 신민당 당권 경쟁을 벌일 때 그의 정치적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는 당시 경선에서 이 캐치프레이즈로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YS를 누르고 당권을 잡았다. 그가 제창했던 ‘중도통합론’은 YS나 DJ에 의해 제대로 활용됐다. 오히려 선명한 야당을 내걸었던 YS와 DJ는 공히 보수당과의 결합 및 연대를 통해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적을 이뤘다. 30년 전 소석이 내세웠던 중도통합론은 요즘 여러 주요 정당들의 방향이기도 하다. ‘사꾸라’가 한국 정당의 중심 가치로 자리 잡은 정치의 아이러니다.

 

소석의 현실 정치에서의 퇴장과 함께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호남의 정치가 광주·전남의 정치로 굳어졌다는 사실이다.“내가 욕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전라북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 전라북도는 뭐하는지, 낮잠자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어. 과거의 전라도 지도자들은 왜정 때부터 이 나라를 만든 사람들이여. 선배들 뜻 생각해서 정신차려야 혀.” 생전에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소석의 안타까움에 이제 후배 전북 정치인들이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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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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