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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곤일척

중국 하남성에는 전국시대에 건설된 홍구(鴻溝)라는 운하 흔적이 남아 있다. 기원전 300년 후반에 건설된 이 운하는 위나라가 도읍을 대량으로 이전한 후 만들었는데 황하와 회하를 연결한다. 공교롭게도 이 운하를 건설했던 위나라는 홍구의 물을 이용해 수공을 펼친 진나라에 멸망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홍구가 유명한 역사적 현장이 된 것은 항진(抗秦) 세력을 규합해 진나라를 멸망시킨 초패왕 항우와 훗날 항우에 맞선 유방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대치했던 장소라는 사실, 4년간 싸우다 지친 양측이 홍구의 서쪽(한나라)과 동쪽(초나라)을 양분하기로 약속하고 BC203년 휴전한 일(홍구위계), 이후 유방이 휴전 약속을 깨고 홍구를 건너 항우를 공격해 천하를 차지하게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중국 사회에서 홍구에는 각별한 의미가 부여돼 있다. 유럽에서 쓰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식으로 ‘강을 건넌 졸때기’란 속담이 있다. 장기판에서 졸은 앞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는데, 장기판의 졸처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쓰는 말이다.

 

시인은 이런 역사적 현장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던 가 보다. 중국 당송팔대가로 유명한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가 어느날 ‘홍구를 지나다가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시 한 수를 읊었으니, 시제가 ‘과홍구(過鴻溝)’다.

 

용과 범이 지치고 강이 둘로 나뉘니(龍疲虎困割川原)/ 억만창생의 목숨이 보전되었구나(億萬蒼生性命存)/ 누가 왕에게 권해 말머리 돌려(誰勸君王回馬首)/ 일척에 건곤을 걸게 했는가(眞成一擲賭乾坤).

 

한유가 과홍구에서 언급한 용과 범은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다. 유방이 휴전약속을 깨고 말머리를 돌려 마지막 단판 승부에 나섰지만, 이 때문에 억만창생의 목숨은 바람 앞에 등불이 됐다.

 

남북이 38선을 경계삼아 대치하듯 2000년 전 항우와 유방은 홍구를 경계선 삼아 대치했다. 평화 협정을 맺었지만 유방이 약속을 깨고 항우의 허를 찌르는 기습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일전일퇴하던 승부가 갈렸다. 앞에서 웃을 때 조차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 한반도 상황이다. 요즘처럼 노골적인 도발과 위협 앞에서야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부터 제20대 총선 선거운동이 개시됐다. 후보들의 건곤일척이고, 유권자들의 건곤일척이다. 다만, 홍구위계를 깬 유방이 되는 후보는 선거 후 심판 받음을 알아야 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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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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