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7 21:31 (Sat)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미투, 성폭력 뿐이랴

미투, 나도 당했다. 여자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누이로서 그 얼마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백인가.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망가진 영혼은 그늘 속에서 떨었고, 일상 삶마저 힘들게 했다. 약자였다. 갑이 아닌 을이었다. 갑자기, 혹은 끈질기게 추근댔다. 처음에는 따뜻한 선배, 선생의 손길인 줄 알았다. 다정하고 호의적인 그가 느닷없이 괴물, 늑대의 발톱을 드러냈다. 꼼짝없이 당했다.

다행히 세상에는 용기 있는 사람이 많았다. 미국 등 외국에서 몰아친 미투 운동에 국내 피해자들이 앞다퉈 미투를 외치고 있다. 그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치욕과 아픔을 짓누르고 대중 앞에 선 그들은 아귀의 탈을 뒤집어 쓴 성폭력범들을 당당히 고발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섰다.

최근 미투운동에서 드러난 피해사례들을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최영미 시인이 괴물이라고 폭로한 고은 시인은 원로 대접을 받는 문인이다. 연출가 이윤택은 연극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크게 성공한 ‘선생님’이다. 당연히 그들처럼 성공한 인생을 추구하는 후배들이 따르고 싶고 또 본받고 싶었을 것이다. 가까이 하고 싶었을 것이다. 괴물들은 그런 점을 악용했다. 미국 체조 대표팀과 대학 체조팀 주치의로 일하면서 265명의 선수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한 혐의가 드러나 징역 140~360년 형을 선고받은 래리 나사르는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친절하고 가까운 ‘의사 선생님’이었다. 일반적인 성폭력범도 주변 인물이 많다. 아동 성폭력범 또한 낯선 사람보다는 ‘주변 인물’이 70~80%를 차지한다는 보고가 있다. 괴물은 멀리 있지도 않았고, 낯선 이방인도 아니었다. 나의 친구였다. 나를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는 ‘친절한 지인’이었지만, 실은 야누스 얼굴을 한 괴물이었다.

미투, 억울한 피해 사건은 과연 은밀한 성폭력 뿐일까. 이번 미투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2차, 3차 가해와 보복 등이 두려워서 피해 사실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된 상태의 그들이 느끼는 주변의 냉소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피해는 성폭력 뿐 아니라 상거래관계, 직장 내 상하관계 등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만연하는 게 현실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을’은 ‘교묘한 폭력’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 그게 상대적 ‘을’인 인간의 비애다. 인간이 인도적 세상을 추구한다면, 이제 ‘나는 고백한다’에 대한 미투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too #미투 #성폭력
김재호 jhkim@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