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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굴레

제2차 세계대전때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작전이 있었으니 바로 1940년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다.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안에서 영국군 22만6000명, 프랑스·벨기에 연합군 11만2000명이 몰살위기 직전 상황에서 극적으로 영국으로 탈출, 결국 연합군이 반격하는 기반이 됐다. 6.25 전쟁때도 덩케르크 철수작전과 비슷한게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젊은층에게도 널리 각인된 ‘흥남부두 철수작전’이 바로 그거다. 1950년 12월, 10만명을 구해낸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연출됐다. 흥남부두에서 출발해 거제도에 도착한 배의 이름은 바로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 먼 훗날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가 이 배에 탑승해 피난했다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당시 김백일 1군단장 등은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피난민까지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철수작전기념비에는 10만명의 인명을 구한 6명의 영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는 김백일 장군이 한국전쟁 때 흥남 철수 과정에서 미군을 설득, 많은 피란민을 배에 태워 생명을 구한 공적을 기려 동상을 세울 것을 요청했고, 거제시가 지난 2011년 동상을 설치했다.

그런데 이후 김백일 장군은 친일행적에 휩싸였다. 급기야 지난 1일 거제 지역 3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친일김백일동상철거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가 김백일 장군 동상 바로 옆에 ‘김백일 친일행적 단죄비’를 세웠다. 김백일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했는데 간도특설대는 일제의 괴뢰만주국에 소속된 900여명 규모의 특수부대로 항일운동을 하는 독립군 토벌을 했다고 한다. 즉 친일 인사를 그냥 놔둘 수 없다는게 이번에 단죄비를 세운 이유다. 한쪽에선 숱한 피난민을 살리는데 기여했다고 공적비를 세우고, 또 다른편에선 친일행적을 문제삼아 단죄비를 세우는 현실은 우리 아픈 현대사가 아직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어제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낯선 이름 하나가 주요 검색어에 올랐다. 바로 완주 삼례 출신 ‘양칠성’이다. 인도네시아에 처음으로 한국인 이름이 붙은 도로가 생기는데 ‘양칠성 도로’라고 한다. 양칠성은 네덜란드-영국연합군과 맞서 싸운 지역 주민들의 독립투쟁을 도운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차대전 말기 그는 징용에 끌려가 현지에서 일본군 군무원으로서 연합군 포로 감시원을 지냈고 죽을때는 천황 만세를 외친 ‘골수 친일’이라는 연구 결과들도 있기에 양칠성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오늘도 역사에 대한 심판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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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bkweeg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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