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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한반도’와 ‘아리랑’

바이올린은 우리에게도 피아노 못지않게 친숙한 서양악기지만 본격적인 악기로서의 태생 연원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1550년 경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바이올린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악기가 만들어졌으니 그 역사는 길게 잡아도 500년이 안 된다.

어쨌든 바이올린은 클래식 음악 뿐 아니라 팝 재즈 민속 집시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주되는 완벽한 악기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에 이르러 현악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이올린을 처음 만들어낸 것은 이탈리아의 ‘아마티(Amati)’ 가문이다. 아마티와 함께 세계 3대 명품 바이올린으로 이름을 올린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도 아마티 가문에서 일을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바이올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저력이다. 그래서 더 주목을 모으는 일이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뛰어난 소리의 악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현악기장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부안에도 그 고행의 길을 기꺼이 선택한 악기장이 있다. 현악기를 만드는 박경호씨다. 이탈리아의 악기제작학교 굽비오에서 공부한 그는 한국에서 서양악기를 만드는 특별한 존재다. 1990년대 말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02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바이올린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지만 ‘올드’나 ‘모던’ 악기를 선호하는 한국의 연주자들에게 그의 악기는 외면 받았다. 악기를 만드는 일 보다 수리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된 환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2012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새로운 모형과 새로운 소리를 지닌 바이올린이 두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에서 태어났다.

눈길을 끄는 악기가 있다. ‘한반도’와 ‘아리랑’이란 이름을 얻은 바이올린이다. 그중에서도 ‘아리랑’ 1·2호는 모양도 특별한데, 하나는 북쪽지형을 하나는 남쪽 지형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이 악기를 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좌우 밸런스를 깨고 각각 고음과 저음을 갖게 했다. 두 개 바이올린의 음의 조화가 융화의 소리로 이어지는 무대를 상상했다.

그의 스승은 그에게 항상 ‘네 것을 만들라’고 가르쳤다. 한국에 돌아와 변형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도 ‘창의력을 살리라’고 했던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이 악기는 2015년 오스트리아에서 유럽연주자들에 의해 처음 연주됐다. 기왕 생명을 얻었으니 반갑지만 아직도 제 무대(?)를 갖지 못한 현실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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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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