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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참시(剖棺斬屍)

부관참시는 죽은 뒤 큰 죄가 드러났을 때 처하는 극형을 말한다. 무덤에서 관을 꺼내어 부수고 시신을 참수하는 것으로 대개의 경우 세상사가 바뀌었을때 가해지는 정치적 보복인 경우가 많다. 동양에서만 있던 형벌이라고 아는 이가 많지만 실은 서양에서도 광범위하게 부관참시가 행해졌다. 대표적인 이가 바로 올리버 크롬웰이다.

영국 청교도 혁명을 성공리에 완수한 크롬웰은 찰스 1세의 목을 치고 호국경이 됐으나 불과 12년 뒤‘왕을 죽인 반역자’란 죄목이 붙어 결국 부관참시 된다. 찰스 1세 처형 기념식날 무덤에서 꺼내진 크롬웰의 시신은 교수대에 매달린 후 토막나는 운명을 맞게된다. 조선시대에는 각종 사화때 정적을 쓸어버리는 부관참시가 성행하게 된다. 대표적인게 김종직과 한명회다. 살아생전 권세를 틀어쥐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한명회는 훗날 뒤바뀐 세상에서 무덤과 시신이 훼손되는 지경에 이른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 역시 부관참시를 두려워했나 보다. 그가 죽은 뒤 전국에 열두개의 크나큰 무덤이 만들어졌다. 매국노의 무덤이 파헤쳐져 부관참시될 것을 두려워 한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사후 불과 50년만에 전국에 산재한 그 열두개의 무덤이 모조리 처참하게 파헤쳐졌다. 매국노 후손이라 지탄받던 그의 증손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모두 파헤쳐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시대상황에 맞지않게 부관참시를 거론하는 이들이 있다.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법정에 섰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사자인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다. 전씨는 그동안 치매와 독감을 이유로 법정 출석을 거부했는데 이 과정에서 전씨의 변호인 측은 “망가진 전씨를 법정에 세워 수모를 주는 것은 김종직의 부관참시나 같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아직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도 안된 마당에 당시 신군부 최고 실력자였던 이가 오늘날 억울하게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수백, 수천명이 죽고 다쳤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감안하면 사자명예훼손은 지극히 사소한 곁가지일 뿐이나 이것을 통해서라도 명예를 되찾고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려는 사람들의 사투가 눈물겨울 뿐이다. 죽은 이는 있으나 학살을 명령한 자는 아직 완전히 단죄되기는 커녕 드러나지도 않았다. 한때 대통령을 지냈으나 전씨의 말년은 더욱 험로가 예상된다.

이 대목에서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연극 ‘오이디푸스’에서 광야로 사라지는 오이디푸스를 보며 코러스장이 전하는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오이디푸스를 보라, 저 뒷모습을 본 자라면 명심하라, 누구든 삶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사람으로 태어난 자신을 행복하다고 믿지 말라, 그 인생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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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bkweeg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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