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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강당 훈장님

김은정 선임기자

김제 성덕면 대석마을의 학성강당을 처음 찾았던 것은 오래전이다. 학성강당 훈장 화석(和石) 김수연 선생(1926~2019)과의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평생 상투를 틀고 지내며 학문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유학정신을 철저하게 실천했던 선생의 길을 들여다보는 일은 특별했다. 2005년의 일이니 햇수로 15년이나 지났지만 그때의 감회가 새롭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기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화석은 기호학파의 맥을 잇는 서암 김희진 문하에서 공부했다.

스물아홉 살 때 문을 연 강당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것이 운영방식이었으니 누구에게나 열려있었지만 정작 선생을 인터뷰로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러 번 인터뷰를 물리쳤던 선생으로부터 얻은 시간은 짧았으나 주옥같은 가르침은 시간의 양이 무렴할(?) 정도로 차고 넘쳤다.

그중에서도 선생이 내내 강조했던 것이 있다. ‘본분’과 ‘지행’이다.

‘본분’은 사람이 걸어갈 길을 이르는 것. 선생은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제 갈 길이 있다. 그런데 유독 사람들만 그 길을 잘 모른다. 그 길이 바로 제 안에 있는데 그것을 보려 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행’은 뜻을 세웠으면 실행해야한다는 것. 아무리 학문을 깊게 했다고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헛된 일, 조선이 망한 것도 수많은 선비들이 학식을 실천하지 않은 채 시문이나 지으면서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선생은 안타까워했다. 덧붙인 말씀이 있다. “요즈음이라 해서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것이나, 물질만을 내세우는 가치관도 마뜩치 않다. 지금 행하는 학문 방법을 바꾸어야 해결될 일이다. 지금 같이는 인간의 본성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의 본분, 도리를 찾게 해주는 것을 학문의 첫째로 꼽았던 선생은 환갑 이후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지만 젊은 시절에는 농사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진정한 선비는 놀고먹지 않는다’는 이른바 주경야독을 철저히 실천했던 것이다.

수업 방식도 독특했다. 언제나 1대 1, 스승과 제자가 마주 앉아 이루어지는 독대 형식에 수업시간의 끝은 정해지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 공부하는 내용에 따라 수업 시간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가장 평등한 방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화석 선생이 지난 10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학성강당 훈장님이 주신 ‘본분’과 ‘지행’을 다시 생각한다. 혼탁한 시대, 더 절실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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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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