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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눈으로도 들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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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홍 엽 수필가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시는 어느 신부님의 강론에서 흥미 있는 얘기를 들었다. “강론을 할 때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나서 더 열성적이고 풍성한 내용을 전하려고 노력하지만 벽에다 대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얘기하고 그만 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녀원의 수도자들은 귀로만 듣지 않고 눈으로 듣는 반면 신부님들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얘기였다. 수녀님들의 경우 얘기는 귀로 듣지만 눈을 맞추며 어서 다음 얘기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아 즐겁다는 것이다.

 눈을 마주치지 않은 신부님들은 몸은 안에 있지만 마음은 밖에 있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그렇지만 설마 동풍취마이東風吹馬耳(말의 귀에 동풍이 분다는 뜻으로 아무런 감각이나 반응이 없음)나 마이동풍 馬耳東風 우이독경 牛耳讀經 같은 뜻은 아니리라 믿었다.

 ‘귀 소문 말고 눈 소문내라’ ‘귀 장사 하지 말고 눈 장사 하라’ 는 우리 속담의 뜻은 귀로 듣는 사실과 눈으로 보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 하라는 타이름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 생활 가운데 이러한 타이름을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각종 불상사는 헤아리기조차 부끄럽다. 

 요즘 귀로만 듣는 ‘카더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격의 손상을 입고 피해를 당하고 있는가.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귀가 싫어한다.’ 호가창창불락 (好歌唱唱不樂)인 것처럼 국정을 논의해야 될 선량들마저 허구한 날 ‘카더라’에 매달려 세월을 좀먹고 있다.

 ‘아니면 말고’가 독버섯처럼 존재하고 있는 사회가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 코로나 19로 집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인 TV조차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힘없는 국민은 무엇을 낙으로 삼고 살아야 할까 답답하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天地不仁)는 말을 새겨 볼 때가 아닐까 싶다. 천지는 천지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가 천지의 이치를 깨닫고 순종할 때 까지는 인자하지 않다는 뜻이며 거기까지 가기 위하여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들으라고 신부님은 권고는 절절히 공감을 주었다.

 오감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 텐데 어찌 보면 가장 줏대가 없는 청각에만 의지하여 사물을 판단하려는 우리들의 의지를 지적해 준 듯하다. 밖에 있는 국외자가 아니라 항상 안에 있는 주관자의 의식을 버리지 않을 때 하늘은 비로소 우리에게 인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도 그런 뜻에서 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믿음의 사회,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 그리하여 드디어는 일등국가로 가는 길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는 다른 애들처럼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의사 표현을 못 하니 난폭한 활동을 하기 일쑤였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고,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하나하나 경험하고 반복 또 반복하며 알아갔다. 

 모든 것을 만져보고,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익혀 단어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헬렌 켈러가 처음 ‘water(물)’이라는 단어를 배우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안홍엽 수필가는 전주 MBC 편성국장을 역임했고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협, 전북문협회원으로 전북문화상, 방송작품상을 5회 수상했고 산문집 <사랑이 꽃비 되어>, <별과 사랑과 그리움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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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홍 엽 수필가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시는 어느 신부님의 강론에서 흥미 있는 얘기를 들었다. “강론을 할 때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나서 더 열성적이고 풍성한 내용을 전하려고 노력하지만 벽에다 대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얘기하고 그만 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녀원의 수도자들은 귀로만 듣지 않고 눈으로 듣는 반면 신부님들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얘기였다. 수녀님들의 경우 얘기는 귀로 듣지만 눈을 맞추며 어서 다음 얘기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아 즐겁다는 것이다.

 눈을 마주치지 않은 신부님들은 몸은 안에 있지만 마음은 밖에 있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그렇지만 설마 동풍취마이東風吹馬耳(말의 귀에 동풍이 분다는 뜻으로 아무런 감각이나 반응이 없음)나 마이동풍 馬耳東風 우이독경 牛耳讀經 같은 뜻은 아니리라 믿었다.

 ‘귀 소문 말고 눈 소문내라’ ‘귀 장사 하지 말고 눈 장사 하라’ 는 우리 속담의 뜻은 귀로 듣는 사실과 눈으로 보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 하라는 타이름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 생활 가운데 이러한 타이름을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각종 불상사는 헤아리기조차 부끄럽다. 

 요즘 귀로만 듣는 ‘카더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격의 손상을 입고 피해를 당하고 있는가.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귀가 싫어한다.’ 호가창창불락 (好歌唱唱不樂)인 것처럼 국정을 논의해야 될 선량들마저 허구한 날 ‘카더라’에 매달려 세월을 좀먹고 있다.

 ‘아니면 말고’가 독버섯처럼 존재하고 있는 사회가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 코로나 19로 집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인 TV조차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힘없는 국민은 무엇을 낙으로 삼고 살아야 할까 답답하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天地不仁)는 말을 새겨 볼 때가 아닐까 싶다. 천지는 천지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가 천지의 이치를 깨닫고 순종할 때 까지는 인자하지 않다는 뜻이며 거기까지 가기 위하여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들으라고 신부님은 권고는 절절히 공감을 주었다.

 오감을 다 동원해도 모자랄 텐데 어찌 보면 가장 줏대가 없는 청각에만 의지하여 사물을 판단하려는 우리들의 의지를 지적해 준 듯하다. 밖에 있는 국외자가 아니라 항상 안에 있는 주관자의 의식을 버리지 않을 때 하늘은 비로소 우리에게 인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도 그런 뜻에서 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믿음의 사회,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 그리하여 드디어는 일등국가로 가는 길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는 다른 애들처럼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의사 표현을 못 하니 난폭한 활동을 하기 일쑤였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고,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하나하나 경험하고 반복 또 반복하며 알아갔다. 

 모든 것을 만져보고,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익혀 단어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헬렌 켈러가 처음 ‘water(물)’이라는 단어를 배우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안홍엽 수필가는 전주 MBC 편성국장을 역임했고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협, 전북문협회원으로 전북문화상, 방송작품상을 5회 수상했고 산문집 <사랑이 꽃비 되어>, <별과 사랑과 그리움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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