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의 고향 가는 길은 전쟁보다 더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자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는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 작전으로 그리스 연합군에게 승리를 안겼다. 하지만 그의 귀향길은 순탄치 않았다.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한 탓에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그는 귀향길에 무려 10년이나 바다에서 표류하며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그의 강한 의지는 신(神)도 막지 못했다.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는 숱한 고난을 헤치고 10년의 전쟁, 10년의 표류를 거쳐 마침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지은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내용이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 후 처음 맞은 올 설 명절 역과 터미널에는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로 북적였다. 또 명절 연휴 막바지에는 가족과 함께 명절을 쇠고 다시 삶터로 향하는 귀경 행렬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이다. 오디세우스가 전쟁보다 험난했던 고향으로 가는 가시밭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고향에서 자신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린 아내와 아들 등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어지는 우리의 명절 귀향 행렬도 물론 그곳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가 있어서다. 지금보다 교통 여건이 열악했던 시기, 명절 고향 가는 길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귀성전쟁’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찾아가던 그 고향 땅이 텅 비어가고 있다. 고령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고 형제와 친구들은 정든 땅을 등지고 있다. 부모형제·친구들이 두 팔 벌려 반겨주던 그리운 그 땅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내가 떠난 것처럼’ 남아 있던 사람들도 떠나면서 우리네 농어촌은 떠나는 땅, 소멸위기 지역으로 전락했다.
몇 년 후면 명절 귀성 행렬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농촌공동체가 속속 붕괴되고, 산업화시대가 만들어 놓은 ‘시골 부모·도시 자녀’ 구도도 빠르게 깨지고 있다. 또 비혼주의자와 1인가구가 늘면서 가족의 형태와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평소 마음속에 묻어두다 일년에 한두 번 찾아갔던 고향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머지 않아 추억 가득한 그리운 내 고향이 인적 없는 유령마을로 변할지도 모른다. 실제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이면 농어촌 마을 입구에 귀향객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나붙었고, 동창회와 마을 체육대회 등 귀향객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지만 모두 옛일이 됐다. 고향에 남아 귀향객들을 반기고 이벤트를 열어줄 사람이 이제는 없다. 고향에 가는 대신 올부터 본격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기부금으로 고향마을의 생존을 기원해야 할 판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대로라면 명절 귀향 행렬이 사라질 날도 머지 않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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