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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허물고 닿은 ‘무목표의 자유’…벽경 송계일의 위대한 귀환

60년 화업 끝에 던진 역설적 화두 ‘목표가 없는 것이 나의 목표’
전북 미술의 기틀 세운 ‘설계자’…6월 7일까지 청목미술관서 전시
송 화백 “매일 그리는 문인화로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 제시할 것”

12일 청목미술관에서 만난 송계일 화백이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 사진=박은 기자

“목표가 없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평생을 정교한 계획과 질서 속에서 붓을 잡아온 화백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역설적이다. 1940년 김제에서 태어난 한국 수묵채색화의 거장 벽경(壁景) 송계일 화백이 10년 만에 고향에서 초대전을 선보인다. 다음달 7일까지 청목미술관에서 열리는 ‘벽경 송계일 초대전’은 60여년간 ‘전통의 현대화’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던 화백의 조형실험이 도달한 현재를 가늠하는 자리다.

12일 청목미술관에서 만난 송 화백은 “지금까지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앞으로는 무계획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며 “우연적인 작업을 통해 필연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시간을 할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내달리다 보니, 때로는 스스로의 표현이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이번 초대전에서 선보이는 신작 33점은 먹의 번짐과 스며듦, 색채의 확장과 조화를 통해 자연이 지닌 생명의 에너지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우주의 기본 질서인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세계를 먹과 채색의 물성으로 풀어냈다.

벽경 송계일 작품 ‘꽃밭에서(파랑노랑빨강)' / 사진=청목미술관 제공
12일 청목미술관에서 만난 송계일 화백이 자신의 작품 ‘꽃밭에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박은 기자

특히 바탕에 먹을 짙게 깔고 그 위에 색을 올리는 화백만의 독창적인 기법은 한국화에 유례없는 묵직한 무게감과 깊은 심연을 부여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주제를 사유하고 실체를 확인하는 데만 수개월, 실제 완성까지 근 1년을 쏟아붓는 그의 작업 방식은 고행에 가까운 수행이다. 이번 신작들 역시 그러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송 화백은 화가로서의 명성을 넘어 전북 미술의 기틀을 세운 ‘설계자’이기도 했다. 전남대 교수 시절, 예술대학이 없던 전북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직접 교육부를 설득하며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승인을 이끌어냈고 전북도립미술관 건립에도 헌신적인 힘을 보탰다. “몸은 광주에 있어도 마음은 늘 전주에 있었다”는 그의 고백은 고향을 향한 지독하고도 순수한 애정의 기록이다.

그는 평생을 지탱해온 철저한 계획성으로부터의 작별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연 속에서 필연을 발견하는 문인화적 세계, 즉 어떤 목적도 두지 않는 ‘무(無)목표의 자유’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다. “큰 길에는 문이 없다(大道無門)”는 사상을 가슴에 품고 평생 화단의 경계에서 ‘문제적 작가’로 살아온 화백은 원로의 자리에 안주하기보다 미답의 영역을 탐구하는 모험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앞으로 매일 문인화를 한 점씩 그리려 한다”라며 “화가가 그림을 안 그릴 수는 없으니 습관처럼 문인화를 그려서 새로운 장르와 세계를 후배들에게 제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수묵의 깊은 울림과 채색의 생명력이 조화를 이룬 이번 전시는 어쩌면 화백이 평생 쌓아온 성취를 내려놓고 마주한 가장 자유롭고 진솔한 고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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