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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기후 위기의 시대, 예술의 존재방식

허정선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장

기후 위기는 흔히 환경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오늘의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날씨나 탄소 배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과 에너지, 자원과 식량, 국경과 이주가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현실이다. 지금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생물의 멸종을 가속화하는 ‘인류세’ 시대, 즉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고 증폭되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미술계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 대표적 사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가자 전쟁 이후의 갈등 속에서 일부 국제 미술계 인사들은 특정 국가관의 운영과 심사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고, 사퇴와 항의가 이어졌다. 작품의 미적 차원을 넘어 예술의 정치적 책임이 논쟁의 중심에 놓인 것이다. 이는 단지 국제정세의 반영만은 아니다. 기후 위기처럼 자원과 영토, 에너지 패권, 이동과 생존의 문제와 깊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아이스 워치(Ice Watch)》는 북극의 빙하를 도시로 옮겨와 기후 위기를 몸으로 체감하게 했다. 관람자는 손끝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을 통해 위기를 데이터가 아닌 감각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빙하 운송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로 비판받기도 했다. 기후 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또 다른 탄소를 배출하는 역설. 이는 한 작품의 모순을 넘어 인류세 시대 예술이 직면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소개된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업에 주목해보자. 세갈은 설치물이나 영상, 오브제도 없이 사람의 몸과 목소리, 움직임만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소비 가능한 물질 대신 관계와 시간의 경험만이 남는다. 그의 작업은 예술이 반드시 더 많은 생산과 이동을 통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되묻는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미술은 무엇을 더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생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기후 위기는 또한 이주의 문제로 연결된다. 가뭄과 해수면 상승, 전쟁과 식량 위기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삶의 터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기후 난민’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다. 기후 난민 역시 정치와 생태, 생존의 조건이 교차한 결과이다. 결국 기후 위기는 인간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까지 뒤흔드는 문제다.

전북의 현실도 이 거대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달라진 계절의 리듬, 불안정한 강우, 농업 환경의 변화는 이미 지역의 삶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익숙한 일상의 배경 정도로 받아들이곤 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무엇을 더 생산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 만들고 어떻게 그리고 다르게 존재할 것인가에 있을지 모른다. 더 큰 설치와 더 많은 이동, 더 많은 소비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관계와 책임을 감각하게 하는 일 말이다. 전북도립미술관을 중심으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과 전북 도내 공립미술관들이 많은 것을 양산하는 전시 관행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덜 만들어내면서도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댄 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반성과 실천만으로 예술이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생물이 왜 멸종의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인지, 어떤 삶들이 이미 위기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지를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것이 인류세 시대 예술의 윤리이며, 오늘의 미술이 다시 질문해야 할 미술의 존재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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