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5-19 20:21 (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통합과 분권의 '지방자치' 시대] ⑪ 마산·창원·진해 3개 지자체가 합쳐진 통합 창원시 사례

창원과 마산 진해의 행정구역통합으로 탄생한 통합 창원시는 행정구역 개편이 가져온 명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다. 지난 2010년 7월1일 창원은 대한민국 자율통합 1호라는 기록을 남기며 통합창원시로 새 출범했다. 소위 가야문화권으로 불리는 세 도시는 600년 동일생활권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음에도 지역동반발전의 목표아래 통합에 성공했다. 3개 시 통합으로 창원시는 인구 약 110만 명, 면적 747㎢, 예산규모 2조3000억 원, 지역내총생산(GRDP) 33조원이라는 메가시티로 올라서며 광역시 못지않은 도시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세 지역 간 갈등으로 일부 시민과 정치권은 다시 분할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권이 걸린 사업마다 주민갈등도 극심하다. 마산과 진해는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진해구 등 구(區)의 명칭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통합 9년째를 맞은 통합 창원시는 전주완주 통합논의에 많은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광역시와 맞먹는 인구 100만 이상 메가시티 통합 창원 탄생 배경 통합 창원시의 탄생배경은 충북과 같다. 당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지난 2008년 후반부터 창원ㆍ마산ㆍ진해 3개시의 통합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마산의 경우 인근 함안군을 흡수 통합하고자 했지만, 공업도시인 창원과의 통합이 지역 발전에 더 도움이 됐다고 판단했다. 세 지자체의 통합과정은 전주완주는 물론 청주청원의 통합 논의 과정보다 훨씬 격렬했다. 지역별 이해득실에 따라 통합에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이 난무했고, 두 개의 지자체가 아닌 세 개의 지자체 정치권이 뒤섞여 혼란이 가중됐다. 여기에 함안군까지 통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돼 해당 지방자치단체장과 주민들 간에 갈등은 더욱 극렬해졌다. 행정안전부가 소위 마창진 통합 안을 채택해 3개 시 의회를 상대로 찬반의견 제출을 요청했고, 해당 의회들은 의원투표를 통해 통합 안을 의결하면서 통합이 확정됐다. 청주시가 자율통합 1호라고 주장하는 배경도 창원 통합 배경에는 주민자율보다 정부의 개입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통합 창원시는 인구 105만 명에 서울(605㎢)보다 넓은 737㎢의 면적, 연간 예산 2조2000억 원에 이르는 등 전국 최대의 기초자치단체로 부상했다. 다만 통합 이후 인구가 4만 명 가까이 줄어들며 통합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지역내총생산(GRDP)은 22조 가량으로 종전 기초지자체 광역자치단체인 광주(20조2000억 원)와 대전(20조8000억 원)보다도 많다. 웬만한 광역시의 2배 이상이다. △아쉬운 상생방안 마련지역갈등 씨앗으로 수원 등 수도권 대도시와 맞먹는 규모를 자랑하는 통합 창원시는 지역정치권과 주민사이에 앙금이 남아있다. 특히 이 지역감정은 통합 시청사 소재지를 정할 때 폭발했으며, NC다이노스의 홈구장이 옛 마산지역으로 지정될 때도 더했다. 소지역주의는 소위 지역 토호 나 주민뿐만 아니라, 공무원, 의회 의원, 각종 시민단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통합과정에서 주민투표가 없었고 상생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흡수 통합된 지역의 박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지자체로서 명맥을 다한 마산과 진해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주민화합을 위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 인구나 경제력, 복지수준 등 전반적인 세가 뒤처지는 옛 마산ㆍ진해지역 주민들은 통합시의 명칭과 임시청사도 창원이 가져가면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재분리 주장이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당초 기대보다 지역발전이 획기적으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도시의 규모만 가지고는 지역발전을 견인할 것이란 단순한 장밋빛 전망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창원시의 인구는 오히려 통합 전보다 줄어들었다. 창원시 인구는 2011년 말 110만7336명을 정점으로 매년 감소했고, 올해 105만 명 선이 깨졌다. 이는 통합 이후 집값은 상승하고 기존 산업구조가 재편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구 유출이 지속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메가시티 탄생의 의미 경남은 부산울산 외에도 창원이라는 중심권역 도시를 만들며 정치적 세와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들 지역 내에서는 통합 이후 소지역주의 등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중앙 차원에서는 서로 뭉치며 이익을 쟁취하고 있다. NC다이노스 야구장 유치도 통합이 큰 역할을 했다. 청주 또한 충청권 중심도시로서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청주에 지역구를 둔 의원만 4명이다. 인구도 점차 늘며 충북인구가 전북을 앞지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반면 전북과 전주의 힘은 예전 같지 않다. 경제와 산업 또한 거점도시로서의 전주의 기능 또한 미약하다는 평가다. 창원은 인구 100만 이상과 비수도권 지역이라는 근거로 가장 유력한 특례시 후보로 분류된다. 거점도시의 위기는 곧 전북정치의 위기와 맞닿아있다. 거점도시인 전주의 인구수와 지역세가 약해지다 보니 당장 지역구 국회의원 수 감소로 지역의 입장을 중앙무대에서 대변해 줄 절대적 인원도 모자란다. 이번 탄소법 사태도 전북정치권의 세가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떨어져 있음을 반증했다. 전북지역 농촌에서 성장한 청년들은 서울이나 수도권, 광주, 대전 등 광역시 이상의 큰 지자체로 연간 1만 명 정도가 유출되고 있다. 제3금융중심지의 키를 쥐고 있는 정무위원회에도 전북 연고 국회의원이 단 1명도 없어 부산정치권의 논리에 밀리고 있다. 청주와 창원의 사례에 비춰볼 때 세가 약한 지역에서는 통합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 기획
  • 김윤정
  • 2019.11.25 17:35

윤태진 국가식품클러스터지원센터 이사장 "입주기업 본격 가동…세계적인 식품전문산업단지 만들겠다"

정부는 아시아 식품산업의 허브로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전진기지로 삼고 있다. 이 곳에는 국비와 지방비 투입을 통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6대 기업지원시설도 들어서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맛을 세계화하기 위한 소스산업의 집중 육성할 기반도 구축했다. 날로 변해가는 국가식품클러스터를 활성화시키는 예산은 내년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 성과를 내기까지는 국회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국가식품클러스터지원센터 윤태진 이사장이 있었다. 윤 이사장을 만나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부임한지 2년째 되어갑니다. 우선 소회가 궁금합니다. 처음 취임했을 당시를 되돌아 보면 지금의 국가식품클러스터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많이 달라진 세가지를 든다면 먼저 2017년 12월 산업단지가 조성 완료된 이후 입주기업들의 가동이 본격화 됐고, 제품이 생산되어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수출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올해 현재 81개사가 유치돼 풀무원식품(김치), 순수본(이유식), 프롬바이오(건강기능식품) 등 32개 기업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고, 12개 기업이 착공 중에 있습니다. 또한, 기존 국비 50%지방비 50%의 보조 체계가 국비 90%지방비 10%로 대대적인 예산구조 혁신을 통해 성장 발판이 마련됐고, 4건의 신규사업(국비 682억원) 확보 및 신규인력 45%(27명) 증원도 나름의 성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쉬운 부분들이 있고 보완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는 만큼 적극적인 보완을 통해 세계적인 식품전문산업단지로 거듭날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간 어떤 사업들을 집중 추진해 오셨는지요. 국가식품클러스터 투자유치 여건 개선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취임 당시 59개에 그쳤던 기업유치가 현재 81개로 급증했고, 식품벤처 41곳과 연구소 4곳도 별도 유치 됐습니다. 또한, 기업유치 활성화를 위해 5년간 무이자 분할납부 및 선납 시 6.2% 할인제 시행을 이끌어 냈고, 국가혁신융복합단지 지정을 통한 지방투자보조금 확대 지원(14%24%), 농림축산식품 연구개발사업 신청 시 가점 상향 부여(1점2점), 지자체 폐수처리비용 지원 예정, 근로자 기숙사 임차비 지원, 기관 장비활용율 제고 및 자립화 기반 마련, 안전성 평가 전문사업 및 외부 공모사업 수주 등을 통한 단계적 자립화 추진 등을 적극 추진했고,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 6대 기업지원시설에 대한 기업들의 인기가 무척 높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타 산업단지와는 다르게 국가식품클러스터는 기업지원시설 통해 기업운영에 필요한 비즈니스와 기술지원을 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각종 법률, 인허가, 수출, 판촉, 자금조달, 인력수급, 원료공급, 마케팅, 물류 등의 비즈니스 지원에서 부터 단기애로기술해결, 공동연구개발, 교육, 컨설팅, 검사분석, 장비공동활용 등의 기술지원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 외에 산학연 네트워크, 해외연구소 등과의 협업을 통해 기업지원 플랫폼을 구축,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6대 기업지원시설에 대한 역할을 대략 소개하자면 식품기능성 평가지원센터는 연구시설로서 식품소재의 성분분석, 기능성평가 제공 및 식품개발에 대한 컨설팅 지원 등을 맡고 있으며, 식품품질안전센터 역시 연구시설로서 식품기업의 품질안전과 관련된검사, 자문 등을 지원하고 식품패키징센터는 식품의 기능과 디자인을 고려한 식품포장의 설계, 제조, 검사 등을 지원합니다.또한,파일럿플랜트는 식품기업이 새로운 공정의 도입 및 신제품 출시 전 소규모 시제품 생산시설이고,식품벤처센터는 식품 벤쳐스타트업 기업을 위한 생산시설로서 다양한 식품안전시설을 갖춘 생산공간 및 부대시설이기도 합니다. -6대 기업지원시설에 대한 기업들의 이용도 또한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원센터는 식품기업이 현장에서 애로가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금년도 현재까지 총 9753건의 기술지원과 1,067건의 비즈니스 지원을 실시했습니다. 특히 시험분석 8,903건, 시제품 생산 574건, 애로기술지원 276건 등에 이르는 기술지원은 기업들에게 유독 많은 인기를 받고 있는데 일본 수출에 필요한 포장용기를 개발하여 물류비 절감효과를 얻어 산업통상자원부로 부터 정부포상을 받은바 있습니다. 아울러 바지락을 소재로 창업한 기업에 대한 포장재 개선을 통해 매출을 3억에서 6억원으로 끌어 올렸고, 반면 클레임은 약 45% 감소 시킨 사례도 기업들의 이용율을 크게 끌어올린 하나의 요인으로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비즈니스 지원은 일자리창출 296건, 수출판로 545건, 비즈니스상담 226건 등으로 푸드마켓을 오픈하여 국가식품클러스터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판로지원 실시, 농협몰 오픈, TV홈쇼핑 입점,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진출 지원 등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소스산업을 세계화하기 위한 전진기지도 구축했다고 들었습니다.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소스는 식품산업의 반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국내 소스시장은 약 5조원 규모로 가정 편의식이 점점 확대되면서 소스시장 역시 더욱 커질것으로 전망합니다. 소스산업화센터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생산도 대신하며 소스 개발과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달 1일에 개소한 소스산업화센터는 국가식품클러스터의 6대 기업지원시설과의 연계를 통해 시너지 창출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 국가식품클러스터 활성화에 따른 아쉬움은 없는지요. 수도권과 멀어 물류비 증가 등의 맹점으로 투자유치를 위한 차별화된 입주(투자) 인센티브가 부족합니다. 조세특례제한법의 조속한 개정이 필요하며, 만일 개정이 된다면 입주기업들은 법인세 3년간 100%면제, 이후 2년간 50% 면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 기업 임직원들의 정주여건(교통, 식당, 편의점 등 편의시설) 개선과 제조업 외 유통판매업이 가능하도록 규제개선도 필요합니다. 지자체 및 관계당국과의 지속적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갈 계획입니다. -향후 계획과 도민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국가식품클러스터는 당초 사업 계획보다 3년여 지연되었습니다. 지난 2017년 12월30일 준공해 2년여 기간 동안 약 50% 정도의 분양에 그치고 있는데 앞으로는 크게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스마트 농생명 벨트의 한 축으로써 국가식품클러스터 활성화를 통해 지역 농산물의 소비촉진과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 노력 할 계획입니다. 식품산업 혁신성장의 메카로 조성될 수 있도록 관련 구성원들과 함께 혼신을 다 할 것이며, 멋진 명품산업단지가 될 수 있도록 도민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격려를 당부합니다. --------------------------------------------------------------------------------------------------------------------- △윤태진 이사장은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우리나라 식품산업 혁신성장의 메카로 만들겠습니다. 국가식품클러스터지원센터 윤태진 이사장(56)이 지난 2018년 1월 취임사를 통해 밝힌 포부다. 국내 식품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단순 가공 위주의 구조에서 연구개발(R&D)을 통한 고부가가치 구조로 탈바꿈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제3대 윤 이사장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광주제일고를 졸업했고, 단국대에서 지역개발학을 전공 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보험) 영업부와 삼성물산 유통사업부, 한국건설관리공사 기획관리부 등에서 근무하며 다년간 경영 및 인사관리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또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전문위원를 거쳐 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문위원 및 정책실장 업무 수행을 통해 식품산업, 쌀 관련 정책, 자유무역협정(FTA) 개방, 직불제 등 수많은 현안 및 쟁점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대선 등 공약 발굴 및 대책(국정과제 등)을 짰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참여해 푸드플랜, 식품산업의 공약 발굴 및 농식품산업 방향 설정 등 실무를 총괄하면서 국내 농식품 산업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제시해 온 농업분야 전문가다. 따라서 윤 이사장은 취임 당시에 그동안의 농식품, 행정, 경영 및 인사관리 등 풍부한 경험을 인정받아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국가식품클러스터 이사장직의 임기는 만 3년이며, 임기만료 후 직무수행실적 등에 따라 1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하다.

  • 기획
  • 엄철호
  • 2019.11.24 19:00

[뚜벅뚜벅 전북여행] 김제 금평저수지 둘레길 : “가을을 藝기하다…전북에서 걷고, 먹고, 즐기고”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가을이 왔습니다. 전라북도에는 절정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멋진 여행지가 너무나도 많지요~ 여기, 건강을 생각하시는 분께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지로 추천하는 김제시 금산면 여행코스! 걷고, 먹고, 즐기다 보면 스산하고 쓸쓸했던 가을이 몸과 마음의 재충전을 통해 감성이 충만한 가을로 다가올 거예요~ 지금부터 출발! 광활한 지평선의 고장 김제시의 금산면 금산리와 청도리에 걸쳐 있는 금평저수지는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알려졌습니다.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이, 가을이면 아름다운 코스모스와 단풍나무가 관광객과 시민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곳이기도 하지요. 김제시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수변 문화체험 숲 사업을 시작으로 산책로를 조성하기 시작해 지난 4월 모든 구간을 잇는 산책로 금평곁길을 조성했습니다. 김제와 전주에서도 가깝게 찾을 수 있고 한 바퀴 도는데 3.5km, 1시간 정도 걸려서 싸드락싸드락 부담 없이 걷기에 좋고 어린아이들과 함께라서 1시간 걷기 부담스럽다 하시면 걷다가 정자에서 쉬면서 맛있는 간식을 먹고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 역시 좋습니다. 4살, 5살인 연년생 저희 아이들은 몇 번 정자에서 쉬었더니 알아서 정자에 앉아서 엄마~ 간식 주세요~ 합니다. 둘이서 다정하게 손잡고 거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언제 저리 컸나 싶기도 하고 밤에 꿀잠 잘 생각에 흐뭇해집니다. 아이 있으신 분들, 계절별로 무조건 가세요. 두 번 가세요. 자연이 만들어준 포토존은 그 어떤 거로도 설명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풍요로운 땅 김제에는 맛있는 먹을거리도 많습니다. 금평저수지를 걷고 나면 너무나도 배가 고프지요. 담백하게 즐기는 송어회, 그리고 민물 매운탕의 참맛, 김제 조양월을 소개합니다. 음식을 기다리다 보면 금평저수지가 한눈에 바라보여요. 조망도 좋은 곳, 기다리는 재미가 있습니다. 송어회는 39년 만에 처음 먹는데 ~ 와! 그 맛이...진정 담백하고 고소하면서 쫄깃해서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네요~ 연어와 비슷한 색감이지만 덜 비리고 간마늘, 참기름, 쌈장이나 초장에 찍어 먹으면... 정말 엄지 척입니다! 물이 차면 찰수록 맛과 육질이 좋아진다는 송어회, 김제에서 한번 만나보셔요! 쌀 하면 김제, 고소하고 찰진 밥과 탕까지 맛보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답니다. 한참 금평저수지를 걷다 보니 가을과 어울리는 음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음악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니, 한옥 카페 수월담이 나옵니다. 알고 보니 혜자 쌍화탕으로 유명한 이곳, 김제의 넉넉한 인심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더운 땀을 식힐 수 있는 정자가, 겨울에는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느낄 수 있는 정취 있는 곳이었어요! 김제 금산면 금성리에 있는 평지마을은 수류산골의 중심에 있는 곳입니다. 모악산을 배경으로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를 느낄 수 있는 마을로 지난 7월 제6회 전라북도 생생마을 만들기 콘테스트 경관환경분야에서 희망 마을상을 수상한 바 있지요. 김제시 귀농귀촌협의회 회장이자 평지마을의 이장인 고민우(49)씨가 2016년도부터 고향인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마을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효성에 근무하면서 다져진 기획력은 마을의 어르신들을 만나 빛을 발했고 그가 지역공동체의 화합과 활기찬 마을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마을에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지난 8월에는 무더위를 뚫고 김제여고와 전라고 미술부, 덕암고, 김제중, 길보른종합사회복지관 여울기자단, 일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이른바 25명의 벽화 특공대가 구성, 벽화를 그리고 주민들과 정다운 마을밥상을 나눴습니다. "고생하신 당신들은 천사입니다."라는 마을 어느 한 어르신의 문자를 받고 울컥한 하루였다는 벽화 특공대, 평지마을은 그렇게 하루하루 따뜻함을 노래하며 변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평지마을 근처에는 수류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889년 장약슬 신부가 전라북도 완주군에 설립했던 배재본당을 모태로 한 유서 깊은 성당으로 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로도 유명하지요. 성당에 들러 한 바퀴 돌면서 마음을 경건하게 해 봅니다. 모악산 아래에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증산교 등 4개 종교의 성지가 있습니다. 불교를 대표하는 금산사, 개신교의 금산교회, 천주교의 수류성당, 증산교의 동곡약방이 바로 그것이지요. 금산사에서부터 수류성당까지는 김제순례길로 14.5km, 도보로 약 4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깊어가는 가을, 다양한 종교만큼이나 다채로운 풍광을 맛보시려면 김제여행을 추천합니다. / 글사진 = 남혜선(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 기획
  • 기고
  • 2019.11.22 15:40

[뚜벅뚜벅 전북여행] 전주 가을 산책 코스 '전주천'

청명한 날씨에 단풍이 물드는 계절. 아름답지만 그 계절을 한껏 즐기기엔 짧기도 한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면, 전주천을 거닐어 보는 건 어떨까요? 전주는 4계절 어느 때에 와도 여행하기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도 가을은 전주 한옥마을의 정취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곳은 억새와 함께 걸으며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한옥마을 근처 산책코스 전주천입니다. <전주천> 전주천은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도심에서 발생하는 각종 생활하수가 모두 흘러들어 가 악취와 오물이 가득한 곳이었는데요. 1998년 전주시는 전주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200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상류에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쉬리가 살고 있을 정도의 상류 1급수의 생태 하천으로 변하였습니다. 성공적인 전주천의 생태하천 복원 사업은 모범적인 도시 하천의 생태복원 사례로 꼽힐 정도입니다. <전주천 주차장> 전주천은 총 길이 41.5km이며 발원지는 전북 완주군 슬치재, 박이뫼산 입니다. 완주에서 전주까지 꽤 긴 구간을 흐르고 있는데요. 그중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또 여행을 위해 자주 찾는 한옥마을 근처의 전주천 산책 코스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주천은 한옥마을과 풍남문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을 위한 주차 시설을 겸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곳을 둘러보기 더 좋은 이유기도 합니다. 찾아오시는 길은 내비게이션이나 지도에 <전주천 서로 노상 공영주차장>을 입력하면 됩니다. 전주천 노상 공영주차장의 운영시간은 09:00 ~ 18:00 까지 운영되며, 가격은 30분 1,000원/ 1시간 2,000원/ 2시간 4,000원/ 4시간 8,000원입니다. 전주천은 가족 혹은 연인과 도보로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으며, 자전거를 타기도 좋습니다. 특히 제가 추천하는 코스는 전주천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전주천을 따라 한옥마을로 올라가는 코스나 한옥마을을 들러 전동성당, 경기전을 구경하고 한옥마을을 한 바퀴 둘러 본 후 돌아오는 길에 전주천으로 내려와 공영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코스입니다. 물론,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여행을 하는 분들에게도 위와 같은 코스를 추천하는데요. 그 이유는 역시 한옥마을을 한바퀴 둘러보고 또, 군것질하고 난 후 전주천을 산책하고 남부시장으로 올라와 허기진 배를 달래며 식사를 하는 코스로 제격이기 때문이죠. 전주천을 걷다 보면 돌다리가 나옵니다. 이런 돌다리를 보면 한 번씩 건너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돌다리를 잠깐 건너다보면 또 다른 사진 포인트와 마주치게 되는데요. 이런 사진 명소를 보고 그냥 지나갈 순 없죠. 전주천을 걷다 보면 전주의 새로운 랜드마크 청연루를 볼 수 있습니다. 남천교 위에 세워진 청연루가 보이면 전주천에서 올라오셔도 됩니다. 물론, 계속해서 걸어가셔도 좋습니다. 잠시 전주천에서 청연루로 올라오셔서 전주천의 풍경을 만끽하며 걸어온 산책길을 회상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길 바랍니다. 청연루에서 한옥마을 방향으로 걸어가 한옥마을을 돌아보셔도 좋습니다. 다시 오셨던 길을 돌아가셔도 좋죠. 전주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맛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전동성당 그리고 경기전의 역사, 한옥마을의 정취와 문화 그리고 남부시장과 한옥마을의 맛집들뿐만 아니라 전주천의 억새 길을 거닐며 즐기는 자연 풍경까지. 이 모든 것을 즐기러 이번 가을, 전주로 여행 가는 것은 어떨까요? /글사진 = 윤병훈(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 기획
  • 기고
  • 2019.11.22 14:43

[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전주의 유림(儒林), 격변의 시대에 인륜의 기치를 들다

올가을에도 전주향교의 은행나무는 참으로 고운 빛을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전주향교에는 모두 다섯 그루의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는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월당(月塘) 최담(崔湛) 선생께서 심었다는 수령이 430년 된 은행나무도 있다. 은행나무가 향교와 밀접하게 된 것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과 강학하신 공자의 행적 때문이다. 향교가 전통시대 지방의 공립중등교육기관이자 공자를 위시한 유가의 성현들을 제향(祭享)하는 곳이고 보면 은행나무야말로 향교와 딱 어울리는 나무일 것이다. 오늘은 파란 가을하늘에 샛노란 가지를 펴고 수백 년을 우뚝 서온 전주향교의 은행나무를 떠올리며 전주의 유림들이 격변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향교를 중심으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를 살피려고 한다. △위성계(衛聖契)를 조직하여 향교를 재정비하다 먼저 볼 자료는 『전주 위성계안(全州衛聖契案)』이다. 위성계(衛聖契)는 성인, 곧 공자의 도를 지키는 계모임을 뜻한다. 표지를 넘기면 선성공자(先聖孔子)라는 글귀와 함께 공자의 초상화가 맨 처음 보인다. 다음 장에는 유림서사(儒林誓辭;유림의 맹세)가 있는데 첫째, 인륜을 밝히고 의리를 바루어 인간의 도리를 보존할 것이며 둘째, 성인을 지키고 현인을 보호하여 향교를 유지할 것이며 셋째,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사문(斯文; 유학)을 진흥하자는 세 가지 맹세를 실어두었다. 다음으로는 위성안현모란분의(衛聖安賢冒亂奮義)라는 여덟 글자가 책 좌우면에 한 자씩 큰 글씨로 적혀있다. 성인과 현인의 도를 수호하여 난세에도 의로움을 떨친다는 뜻인데 이 글씨는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였던 덕천(悳泉) 성기운(成璣運)의 것이다. 기운생동하는 필체에 유학을 수호하고 성인의 도를 구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진다. 다음에는 면와(?窩) 이도형(李道衡)이 쓴 두 편의 서문이 실려있다. 첫 번째 서문은 1952년에 쓴 것인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향교가 피폐해져 봄가을 석전대제(釋奠大祭)조차 제대로 거행할 수 없게 되자 고재(顧齋) 이병은(李炳殷)이 아들 이도형에게 계를 조직하여 석전대제를 치를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하라 명하였고, 부친의 명을 따라 이도형은 100여 명의 유림들을 모아 계를 조직하게 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고재 이병은은 간재의 제자로서 금재(欽齋) 최병심(崔秉心),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과 더불어 삼재(三齋)로 병칭되던 큰 학자였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버려진 성현의 위패 25위를 수습하여 보전한 공을 쌓기도 한 분이다. 이병은은 계 조직에 일정한 기금을 마련하고 재산을 불려서 늘어난 재산의 3분의 2로는 봄가을 석전대제를 준비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다시 재산을 불려 전쟁통에 없어진 위패를 다시 만들어 봉안할 비용으로 쓰도록 하였다. 두 번째 서문은 1954년에 쓴 것으로 1952년 계안을 만들 때 전쟁중이라 참여하지 못한 인원을 더 참여하게 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서문 뒤에는 여덟 조항의 조약문이 붙어있는데 계의 의의, 계원의 요건, 기금의 관리와 활용, 임원의 역할 등이 서술되어 있다. 서문 뒤에는 향교에 모셔진 성현을 간략하게 소개한 성현사략(聖賢事略)이 있고, 다음에는 제사 관련 각종 제문, 계성사(啓聖祠)에 배향된 인물 소개, 계성사홀기(啓聖祠笏記)가 실려있으며 그 다음에는 6개 면(面)의 통문(通文)이 부록되어 있다. 그리고 <계사사월향교중수희사금록(癸巳四月鄕校重修喜賜金錄)>에는 1953년 향교 중수에 필요한 기금을 낸 계원의 이름과 금액이 정리되어 있다. 그 다음부터 책의 마지막까지는 <전주위성계원좌목(全州衛聖契員座目)>이 실려있다. 계원의 성명 아래에 작은 주를 달아 자(字), 본관(本貫), 가계(家系), 거주지, 사우관계 등을 정리하였는데 그 인원이 도합 656명에 달하니 계의 규모는 물론 전주지역 유림들의 활동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위성계의 유림들은 향교를 구심점으로 점점 쇠미해가는 유학을 호위하고 선비의 기상을 떨치고자 하였다. △훌륭한 행실을 포상하여 널리 알리다 향교의 기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풍속에 대한 교화이다. 전주시에서 수집한 통문(通文) 한 점과 최기영(崔基瑛), 최우현(崔宇鉉) 부자에 대한 포상 문건은 유림의 이 같은 사회적 역할을 잘 보여준다. 통문은 서원이나 향교 등에서 공동의 관심사를 연명하여 통지하던 문서로 유림들의 통문은 유통(儒通)이라고도 불렀다. 유통 가운데는 서원이나 향교의 건립과 보수, 효자열녀충신에 대한 표창 건의, 문집의 발간, 향약계의 조직 등에 대한 내용이 많다. 오늘 살펴볼 통문 또한 임피박씨(臨陂朴氏)의 열행(烈行)에 관한 내용이다. 통문이 담겼던 봉투 앞면에는 전주향교가 발신자로 각 군의 향교와 서원이 수신자로 명기되어 있고, 뒷면에는 통문의 발신일이 1926년 정월 어느 날로 적혀있다. 임피박씨는 병인양요 때 의병을 일으켰던 권일헌(權一憲)의 처이다. 박씨 부인은 남편이 병들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였고 남편의 장례시에는 유감이 없도록 예를 다하였으며 장례를 치른 뒤에는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쌀 한 톨 먹지 못한 채 10여 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박씨부인의 행실에 대해 통문은 이와 같은 열녀의 절개는 고금에도 드문 일이니 그 보고 들은 바에 대해 침묵할 수 없어서 이렇게 통문으로 알리니 원컨대 여러 선비들이 부인의 열행을 한목소리로 널리 알려서 후세의 부인된 사람들로 하여금 공경하고 본받도록 할 수 있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라며 풍속 교화의 본보기로 삼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통문 아래에는 직원(直員) 정성모(鄭性謨)와 장의(掌議) 황의찬(黃義贊) 외 18인의 이름을 연명하였다. 최기영, 최우현 부자에 관한 포상 문건은 호남도지간소(湖南道誌刊所) 유림(儒林) 황의찬(黃義贊) 외 42군(郡)의 명의로 작성하여 대성교숭포부(大成敎崇褒部)로 보낸 것이다. 대성(大成)은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곧 공자를 가리키는 말로써 대성교는 1923년 조형하(趙衡夏)를 중심으로 유교의 개혁을 모색하여 창립한 유림 단체이다. 문건은 책자의 형태로 묶여 있고, 책자 가운데 부분에 대성교회지인(大成敎會之印)으로 보이는 인장이 찍혀있다. 최기영, 최우현 부자는 본관이 전주이고 고려말 충절을 지킨 만육당(晩六堂) 최양(崔瀁)의 후손이다. 최기영은 호가 은암(隱菴)이고 최우현은 호가 학인(鶴人)이다. 문건의 대략적인 내용은 최기영 부자는 오륜을 독실하게 실천하고 학행은 물론 문장도 빼어나 향선생(鄕先生)이라 불릴 만큼 귀감이 되므로 이들을 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건의 말미에는 대성교숭포부 교장(敎長) 참판(參判) 김재순(金在珣)과 부교장 서긍순(徐肯淳) 외 12인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전통시대의 윤리를 다시 음미하다 오늘 소개한 세 자료는 전주의 유림들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같은 격변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유림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일제는 향교의 자율성, 독자성을 제한함으로써 유림들의 사회적 역할을 약화시켰다. 밀려드는 서양의 문물제도 앞에서 전통시대의 교육과 가치체계는 구식(舊式)으로 평가절하되어 속절없이 뒷전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위성계안(衛聖契案) 서문에서 빈 산의 불가(佛家)도 조석으로 예불을 올리고 서양에서 온 예수교도 한 달에 네 번 예배를 올리는데, 이른바 갓을 높이 쓰고 띠를 드리운 채로 벌레처럼 칩거하고 거북처럼 숨어들어 향교 안에 그림자 하나 없으니 성인을 호위하고 현인을 높이는 마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탄식한 것은 유림 스스로의 각별한 자성을 촉구하는 일갈이었다. 전주의 유림들은 시대의 변화에 맞서 그렇게 자신의 존재 의의를 끊임없이 환기하였고 풍속 교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의의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향교와 유림이 보여준 교화 활동은 한편으론 다시 음미되어야 할 것도 있다. 가령, 남편을 따라 죽은 것을 열행(烈行)으로 기리는 것은 존엄한 생명의 가치로 볼 때, 또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강요된 열행을 두고 볼 때 일방적으로 미화할 수 없는 점이 있다. 필자는 전통시대의 가치체계가 무조건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닌 것처럼, 또한 맹목적으로 묵수(墨守)해야 할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여러 윤리적 덕목 안에 내재한 본질적인 가치를 탐색하고 발굴함으로써 오늘날에 더욱 유의미한 가치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전통과 현대가 생생(生生)하는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형술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전주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기획
  • 기고
  • 2019.11.21 16:57

[트램,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상) 트램의 역사와 현재

전주시가 세계적 문화관광도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주한옥마을 일원에 국내 최초 관광 트램을 도입한다고 지난 18일 밝힌 가운데, 트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력이 아닌 다른 힘으로 끄는 대중교통수단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차가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말로 노면전차, 서양에서 말하는 트램이 가장 그 역사가 길다. 트램의 초기 동력원은 말이 전차를 끄는 형태에서 오늘날 전기에 이르기까지 1800년대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세계 각국 도심에서 친근한 대중교통의 역할을 해왔다. 오래된 만큼 트램은 어떤 교통수단 보다 인간, 사람과 가장 친화적이다. 아직도 세계 50~60여 개 나라에서는 트램을 운행하고 있고 과거 트램을 미래형태로 발전시키고 있기까지 하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개화기 초 트램이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1899년 서울 서대문과 청량리 간 전기 트램이 도입됐을때 만해도 고종과 사람들은 쇠당나귀라 부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 후로부터 120년. 경기를 비롯해, 부산과 대전에서는 대중교통형태가 강한 도심형 트램이 도입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전국에서 최초로 전주에서는 한옥마을에 관광형 트램이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도시의 도로사정은 한정돼 있고, 차량은 매년 늘어난다. 교통전문가들이 꼽는 친환경 대중교통 수단인 트램이 전주를 넘어 우리나라 도심에서 달리는 풍경은 어떨까. 3차례에 걸쳐 트램에 대해 연재한다. △초창기 트램과 현재의 가치 초창기 트램은 거리, 도로위에 트램의 길인 선로를 까는 형태로 1800년대 중반 세계 곳곳 주요 도시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이후 도시가 팽창하고 인구가 늘면서 보다 효율적인 운송수단이 필요했는데, 트램이 그것이었다. 선로를 깔아 말이 보다 쉽게 많은 사람이 탄 한량정도의 트램을 끄는 형태였다. 호주에도 1861년 마력트램이 도입됐지만 얼마 안가 사라졌다. 이후 증기기관이 도입된 트램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1800년대 말 트램 위에 전선을 연결해 전력으로 트램을 움직이는 형태로 변했다. 100년도 안돼 트램의 동력은 말에서 증기기관, 전력으로 바뀌었는데, 전력은 오늘날 트램의 주 동력원이다. 최근에는 트램 위 전선을 없애고 정거장에서 전력을 충전한 뒤 다음정거장까지 달리는 배터리를 단 최신형 트램도 운행중이다. 호주 멜버른 사례를 보면, 1880년대 호주 멜버른은 빅토리아지방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골드러시가 시작됐고 가장 부자 도시가 됐다. 인구도 늘어나면서 트램이 도심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멜버른은 200km가 넘는 대중교통형 트램 노선을 운영하면서 트램의 도시가 됐다. 독일과 체코, 슬로바키아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트램을 운행 중이긴 하지만 도심 곳곳을 운행하는, 세계에서 트램노선이 가장 길고 대중교통화가 잘된 도시로 호주 멜버른이 꼽힌다. 뿐만 아니라 호주 시드니 등 다른 도시에도 트램이 도시 곳곳을 달리고 있다. 멜버른의 트램 이용객은 2015년기준 연간 2억명에 달한다. 1940년대 최정점을 찍었다가 자동차가 개발되면서 이용객이 감소했고 다시 증가하는 추세이다. 환경문제와 대중교통 활성화가 각 도시들의 주요 정책으로 자리잡으면서 트램이 그렇게 일상화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트램은 기존도로를 확장하지 않고 적은 공간(2개 레일)만 차지하면서, 효과적인 대중교통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기계과목 관련 교사였다가 퇴직후 트램 박물관 관리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멀(Mal) 씨는 트램이 사라지지 않고 존속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오래된 트램과 트램 시스템들은 호주 뿐만 아닌 해당 지역에 유산(heritage)적인 측면이 있고 그를 지키고 발전시키면서 오늘날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무리 유산적인 측면이 있더라하더라도 불편하거나 효용가치가 없으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트램이 도입되면서 사실상 대중교통화가 돼 있고, 무엇보다 교통체증이 심각한 지역에 차도 다니지 못하는 지역에 트램이 도입되면서 침체됐던 지역 상권이 살아났다고 강조했다.

  • 기획
  • 백세종
  • 2019.11.19 17:39

[통합과 분권의 '지방자치' 시대] ⑩ 청주시 통합 비하인드 스토리 - 통합 청주시 실무자에게 듣는 청주·청원 통합 과정

청주청원은 전주완주와 역사적으로 한 지역이었다는 점과 비슷한 인구규모, 광역시를 배출하지 못한 광역거점도시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통합논의도 같은 시기에 촉발됐으며 추진과정도 동일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청주청원은 4수 끝에 통합을 이뤄낸 반면 전주와 완주는 여전히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남아있다. 행정구역통합이 무조건적으로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청주의 사례에 비춰볼 때 실보단 득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자율적으로 이뤄낸 청주청원 통합 또한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실제 통합추진에 참여했던 공직자들의 풀어낸 뒷이야기를 통해 전주완주 통합논의를 반추해본다. 인터뷰에는 청원군 측 입장에서 통합 실무자를 맡았던 차영호 청주시 도시재생기획단장과 현재 청주청원 상생업무를 총괄하는 임헌석 상생협력담당관이 참여했다. -전북과 비슷하게 추진됐던 청주청원 통합이 어느덧 만 5년차를 넘겼습니다. 이번에 통합 청주시를 찾은 것은 실제 통합논의에 참여했던 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자하기 위함입니다. 행정통합 실무자로서 많은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차영호 단장=제 입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통합논의를 관에서 주민주도로 전환했던 것인데요. 당시 전주완주도 마찬가지였지만, 청주와 청원통합에 있어서 청원군민의 반대는 물론 군의회의 반대로 논의조차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청원군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조차 내심 통합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통합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고요. 그러다 당시 군수님이 네 번째 통합추진담당자로 저를 지목하신 거예요. 막상 일을 맡고나니 정말 막막했습니다. 청주와의 통합에 앞서 군민 간 입장차로 지역사회가 정서가 아주 혼란스러웠죠. 설득작업에도 나서봤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통합찬성입장이든 반대 입장이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구를 조직하고 각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군민들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6개월간은 대화는커녕 싸우기에 바빴죠. 서로가 서로를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대상으로 보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반대 입장 주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이 자리는 통합의 도구가 아닌 진짜 청원발전을 위한 대화의 장이라고요. 반대를 하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한다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이성적인 대화가 오갔고, 통합을 하되 청원군의 피해는 없는 방향이라는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청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상생협의안도 옛 청원군민들의 집단지성의 결과물입니다. -청주청원 통합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타 지역에서는 그 과정에 대해 잘 모릅니다. 간략하게 과정을 설명해주신다면. 차영호=주민의 힘으로 이뤄낸 청주청원 통합은 정말 처음엔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많았어요. 두 지자체의 통합은 1994년과 2005년, 그리고 2010년 3차례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3차에서도 역시 군의회가 만장일치로 반대했죠. 그러다가 2012년 4번째 주민투표에서 극적인 통합이 이뤄져 18년 만인 2014년 7월 1일 통합청주시가 출범하게 됐습니다. -통합을 추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과 통합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차영호=신뢰를 쌓는 일이었지요. 앞서 충북도조차 통합을 좋아하지 않었어요 과거 2차례(1차2차)의 통합논의에서 충북도의 재정 및 경제가 통합시로 집중되어 기타 시군의 발전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죠. 청원군 역시 청원시 승격을 바라보다 찬성쪽으로 생각을 돌렸어요, 그러나 여전히 청원군의회와 일부 시민단체는 반대 의견을 견지했죠. 그 이유로는 관할구역(면적 970㎢) 관리의 어려움, 행정서비스의 비효율성(도시행정으로의 치우침) 초래, 청원지역으로의 혐오시설 증가, 농촌지역에 대한 지원 혜택이 없어질 가능성, 각종 세부담 증가 우려 등 다양했습니다. 또한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과 오송신도시 개발 등에 따라 잠재적으로 청원군만의 자치능력이 충분하다고 자신했어요. 그러나 통합으로 불러올 수 있는 지역발전 효과가 더 클 것임이 자명한 상황에서 더는 지체할 수 없는 것이 행정구역을 합치는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청원군민들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안전장치마련에 들어갔습니다. 혐오시설을 절대 청원지역에 하지 않겠다. 농민 혜택은 청원군 시절보다 더 돌아가도록 하겠다. 도시행정이 아닌 종합행정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상생방안에 담았고 특별법과 조례에 반영토록 했습니다. 청원군민의 피해가 없을 것이란 구체적인 약속이 제시된 것이죠. 여기에 충청지역의 특징인 보수 진보 지지율이 비슷하다보니 통합을 공약으로 내건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본래 지역민들 정치지향점도 다양하다보니 통합 후 이견을 모으는 데도 용이했다고 봅니다. 또한 당시 청원 군수님의 결단과 군의회의 의석감소를 방지한 것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입니까. 임헌석=일단은 청원배려정책의 완성과 특례시 추진이 이어져야한다고 봅니다. 상생협약은 이제 대부분 추진이 완료됐습니다. 특히 농민들의 보조금 지원도 청원군 시절에 못지않게 보장해준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통합 청주시의 규모 확대에 따른 충북권내 불균형 발전 우려를 종식시킬 대안을 제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거점도시의 발전이 충북 전체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셈이지요. 차영호=실제로 통합 이후 청원지역 발전은 물론 충북은 앞서 충청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전충남에 비해 적었지만, 이제는 통합 청주시를 필두로 인근 도시와의 연계 및 효율적인 기능 배분 등이 가능해졌습니다. 대전광역시, 세종시와 대등한 입장에서 상생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제조업과 지식서비스업의 동반 성장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고착해야합니다. 그리고 청주는 통합을 기반으로 광역시를 배출하지 못한 거점도시로서 특례시로 지정된다면 성장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 봅니다. -통합을 먼저 이룬 입장에서 행정구역통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임헌석차영호=행정구역통합이 무조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고는 자신하지 못하지만, 확실한 것은 점점 효율적인 지방자치가 절실해지고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생활권역임에도 행정구역의 차이로 발전이 더디다면 거점도시로서의 기능도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주와 완주도 원래 한 지역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인구 규모와 경제규모도 청주청원과 비슷하기 때문에 앞으로 충분히 행정구역통합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기획
  • 김윤정
  • 2019.11.18 17:54

취임 2주년 맞은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전북혁신도시에 금융생태계 조성, 국가균형발전 선도"

국민연금공단을 이끌고 있는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55)이 취임 2주년을 맞았다. 국민연금기금 700조 원을 달성한 국민연금공단의 현 주소와 향후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취임한지 2년이 됐습니다. 우선 소회가 궁금합니다. "지난 2017년 11월 7일 취임했는 데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취임 당시 공단은 삼성합병 파동으로 전 이사장과 기금본부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10개월의 공백 끝에 임명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 공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직원의 사기는 바닥을 기는 상황이었습니다. 국민의 신뢰 회복과 직원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취임하면서 취임사를 통해 국민이 주인인 연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국민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습니다. -2년간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가장 큰 실적은 무엇이었나요. 또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떠한 활동을 펼쳤나요. "그동안 연금제도 개편 과정에서 연금개혁 역사상 국민들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해 반영했으며, 기금운용 실적 또한 과거에 비해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전국 16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대국민 토론회를 개최했으며 인터넷과 전화 여론조사, 인터넷 설문조사 등을 통해 연금 제도 개선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해 지급보장 명문화 등 국민의견을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에 반영했습니다. 기금운용에서는 올해 공단의 전주 이전 2년 만에 기금 100조 원이 늘어난 700조 원을 돌파했으며, 지난해 7월 스튜어드쉽 코드를 도입한 후 올해 처음으로 적용해 주주권을 강화하고, 투자내역과 투자 실적을 모두 공개하고, 녹취록 수준의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 해 기금운용에 투명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이사장께서 전주가 고향이십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전주로 이전한 공단이 지역과 상생 발전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간 어떤 활동을 진행했나요. "공단은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역과 협력적 파트너십 구축에 대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9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대회에서 최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5년 전주 이전 이후 총 187명을 채용, 지역인재 채용 목표를 30%까지 상향하고 있으며, 지난 2017년 12억 6000만 원이던 지역 업체 구매금액을 123억 원까지 높이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SSBT와 BNY멜론 등 세계적인 금융사를 전주에 유치하면서 제3금융중심지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요. "안정적 운영을 위한 금융생태계 조성을 위해 세계 1~2위 수탁은행인 BNY멜론(뉴욕멜론 은행)과 SSBT(스테이트 스트리트 은행)가 전주에 사무소를 개소했으며, SK증권 등 국내 증권사 등도 지점 설치를 진행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이전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금융사 이전 계획에 대한 발표가 예정돼 있으며 연기금 전문인력 양성에도 착수했습니다. 금융위원회의 금융중심지로 전주가 추가 지정되기 위해선 연기금 중심의 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등 요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이사장님께서 생각하는 제3금융도시에 대한 앞으로의 발전상은 어떻게 되나요. "2012년도 기금본부 전북이전 공약을 제시했을 때 지역 간 경쟁모델이 아닌 서울과 부산, 전주를 잇는 금융 트라이앵글로서 각기 차별화되고 상생발전이 가능한 모델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서울은 종합금융 국제도시의 비전을, 부산은 해양파생상품, 전북은 자산운용‧농생명 금융도시 모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5가지 방향이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추진돼야 하는데, 제3금융중심지로 지정받아 금융도시 육성을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기반을 마련하고, 자본과 금융기관 유치로 사람이 모이는 도시 조성, 호텔과 컨벤션 등 금융 인프라 확대, 미래 금융을 이끌어갈 전문인력 양성기관 설립과 교통, 교육 등 정주여건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법이 통과되면서 연기금 전문인력 양성 근거법안이 마련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연기금전문대학원 설립이 무산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연기금 전문인력 양성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연기금 전문대학은 계획대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공단은 연기금 운용인력 양성의 시급성을 고려해 단계별, 전략적으로 인력 양성을 추진할 계획이며, 그 최종 목표점은 연기금전문대학원 설립입니다. 단기적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인력 양성 프로그램 정착과 안정화에 집중해 인력양성의 교육 노하우 등을 축적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 전문 교육기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양성과정 설계 등 세부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이 안정적으로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여건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현재 양성 프로그램 마련을 위한 컨설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는 2020년도 관련 예산도 15억 원이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는 등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기금운용 관련 자회사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국민연금은 장기 수익률 제고를 위해 해외투자와 대체투자 확대라는 투자 다변화를 지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은 오는 2024년 말 50% 수준까지 확대하고, 대체투자는 15% 내외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대체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투자경쟁력 확보가 중요합니다. 기금운용의 전문성과 효율 제고라는 측면에서 자회사 활용을 통한 투자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북미 출장당시 방문한 캐나다 연기금기관들은 자산의 대부분을 직접 운용하고 있으며, 대체투자 부문에 자회사를 두고 활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자회사를 통한 직접운용을 통해 규모의 경제효과와 수수료 등 비용절감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자회사 설립과 운영에 대해 현재까지 확정된 것은 없지만, 해외 연기금의 사례를 국민연금에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장 제도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의존해서 노후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수준이 높아져야 하며 재정 안정성도 더 높이는 국민연금의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신뢰 속에 보다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1000조 시대에 걸맞은 운용 철학과 시스템을 구축해 나아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북혁신도시에 국민연금 중심의 금융생태계 조성을 통해 경쟁력 높여 국가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기관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국민연금에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준다면 더 높은 실적과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 기획
  • 박태랑
  • 2019.11.17 18:49

[뚜벅뚜벅 전북여행] 진안 천황사의 늦가을 정취 :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구봉산 자락에 있는 고찰 천황사”

북한의 개마고원과 쌍벽을 이루는 고원이 전라북도에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눈치 빠른 분은 짐작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진안고원입니다. 진안고원은 평균 해발 400~500m인 고원지대의 전형적인 특징이 살아 있어 천혜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예로부터 얻어 왔습니다. 진안고원의 산 중에는 1,000m 넘는 산이 5개나 있습니다. 성수산 1,059m, 덕태산 1,113m, 선각산 1,142m, 운장산 1,126m, 구봉산 1,002m가 5개의 산입니다. 특히 100m 구름다리가 놓여있는 구봉산은 많은 등산객의 사랑을 받는 곳이죠. 아홉 개의 봉우리가 뚜렷하여 이름 붙여진 구봉산입니다.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구봉산은 일광선조라는 천하명당이 있다고 전해지며 875년에 창건된 고찰 천황사가 있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아담한 고찰 천황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신라 헌강왕 때인 875년에 무염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창건 당시에는 숭암사라고 했으며 고려 문종 1065년에 의천이 중창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학조. 애운 등이 중수했다고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각성이 700여 명의 승병을 이끌고 이 절에 와서 해산하였습니다. 천황사는 원래 주천면 운봉리에 있었으나 숙종 때 중건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천황사로 들어서는 초입의 전나무들은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는지 아직은 초록의 잎을 지닌 채 맞아줍니다. 개울 너머 연화교를 지나면 남암으로 향하는 길 입구가 보입니다. 남암(南庵) 앞에 있는 전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95호 진안 천황사 전나무라고 불리는 수령이 400년 정도로 오래된 나무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전나무 중 규격이 가장 크고 나무의 모양과 수세가 매우 좋은 편이라 학술 가치도 높다고 합니다. 천황사로 바로 가기로 하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천황사 입구에 있는 보호수도 전나무입니다. 수령이 800년 된 보호수로 태풍 루사 때 피해를 보아 윗부분이 부러져 몽당연필 같아 보입니다. 밑단 둘레도 굉장히 넓어 보였는데 안타까웠습니다. 사찰로 들어가기도 전에 노란 은행 열매와 은행잎이 가을로 마중 나와 있습니다. 올라가는 돌계단에도 가을이 뒹굴고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대웅전으로 가는 발걸음 하나마다 가을이 느껴집니다. 담장 옆의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사찰을 찾은 방문객에게 계절의 선물을 만끽하게 해줍니다. 화장하지 않은 여인네처럼 검소한 대웅전이 차라리 운치 있어 보입니다. 사찰의 주불전인 대웅전은 조선 후기 건축물입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에 다포로 장식했습니다. 120m가 넘으니 큰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불상 위에 닫집을 달고 우물천장으로 마감을 했습니다. 나한상과 동자상이 벽화로 조성된 개성 있는 건축물입니다. 단청의 빛이 바래 자연목 그대로의 색조가 더없이 정답게 느껴집니다. 공포나 가구 장식이 조선 후기의 건물로 짐작게 합니다. 여느 사찰처럼 화려한 색상의 무늬를 넣지 않았습니다. 정사각형의 문살에 한지를 바른 모습이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줍니다. 밖으로 나와 외형을 보더라도 복잡하지 않은 점이 좋았습니다. 대웅전 옆의 명부전은 중앙에 지장보살을 두고 좌우 도명존자, 무독귀왕, 각 지옥을 관장하는 대왕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76년에 보수한 명부전입니다. 입구에 서 있는 지장보살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의 모습이 위압적입니다. 왠지 한 대 쥐어박을 것 같은 착각에 얼른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요사채의 장독대가 양지바른 곳에 가을 햇살을 머금고 있습니다. 나란히 줄 맞춰 놓여있는 장독 뚜껑이 이채롭습니다. 1972년에 요사채는 보수되었다고 해요. 대웅전과 명부전을 비교해 보니 오히려 명부전이 훨씬 화려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정겹게 느껴지는 천황사 대웅전입니다. 설선당, 정묵당의 건물이 더 있는데 규모는 작은 편입니다. 용담댐 건립 이전에는 신도 수가 무척 많았으나 지금은 사찰을 일부러 찾아오는 방문객이나 불심이 깊은 신도들만이 꾸준히 찾아오곤 한답니다. 천황사가 번성했을 때는 9개의 암자가 소속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남암(南庵) 한 곳뿐이랍니다. 의자처럼 놓여 있는 여섯 개의 바위가 운치가 있습니다. 떨어지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 먹으면 더욱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단정하고 소박한 천황사에서는 가을을 만끽해 볼 수 있는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미처 보지 못한 부도가 있었습니다. 절 입구 보호수인 전나무 밑에 있었는데요. 명봉 대선사 탑이라고 합니다. 평생<금강경>을 강의하던 명봉의 부도라고 해요. 산길로 향하는 오솔길은 복두봉과 구봉산 등산로였습니다. 가을을 느껴보는 방법에는 가을 산 등반도 한 방법이라는데 아쉽지만, 이번에는 사찰에서 느껴보는 가을 정취로 만족해야 할 듯합니다. 점점 깊어 가는 가을의 아쉬움을 진안 천황사에서 마음껏 느껴본 진안에서의 가을 여행이었습니다. /글사진=이난희(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진안 천황사> 주소: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수암길 54 천황사 전화번호: 063)432-6161

  • 기획
  • 기고
  • 2019.11.15 16:41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66. 인심난 김제의 장화리 쌀뒤주

단풍이 한창이다. 내장산을 비롯한 단풍명소들이 북적인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구경도 배부른 다음이라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유독 밥 먹는 것에 대한 속담이 많다. 한술 밥에 배부르랴. 익은 밥 먹고 선소리 한다. 찬밥 더운밥 다 먹어봤다.란 말이 있다. 이렇듯 밥과 음식이 함께 다룬 주제로는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과 어우러진 나눔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나눔에 대한 오래전 기록으로는 충렬왕 때 쌀 100석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이야기가 『고려사』에 남아있으며,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문헌에는 공납하는 쌀에 대한 내용과 가난한 백성을 구휼하고 공신들에게 쌀을 상으로 내린 기록들이 많이 있다. 나눔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로는 배고픈 이웃이 가져갈 수 있도록 곡식을 담은 뒤주를 따로 밖에 내어놓은 경주의 최부자와 구례 운조루의 사례가 있는데, 대표 곡창지대인 김제에도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에 걸맞은 훈훈한 유산이 있다. 1976년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된 김제 장화리 쌀뒤주이다. 1864년(고종 1년)에 정준섭이 만들어 사용한 쌀뒤주인데 작은 정자만한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 높이 1.8m 너비 2.1m 정방형 목재에 두께 3.3cm의 널빤지를 짜 맞춘 벽체가 초가지붕을 얹은 채 주춧돌 위에 놓여 있다. 그 모양뿐 아니라 커다란 뒤주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겨있다. 뒤주가 자리 잡은 집은 돼지명당으로 알려진 곳으로 선조 때부터 많은 토지를 소유하여 만석꾼으로 불리며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정준섭의 집이다. 인심 좋기로 소문난 집은 지나가는 과객에게도 늘 풍족하게 식사를 대접해 항상 손님으로 북적였다. 쌀 70가마가 들어가는 초대형 쌀뒤주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끼니를 챙겨주다 보니 그 큰 뒤주에 있는 쌀도 한 달 식량으로 모자를 정도였다고 한다. 집안의 후손으로 고택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집에 살고 있는 정주철(1946년생)는 이 뒤주는 집식구를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잘 나누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들었어요. 집을 찾는 손님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 고장에 흉년이 들었을 때 뒤주를 열어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쓰였다지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임금이 상으로 지금으로 치면 구례군수인 구례현감이라는 벼슬을 내렸다네요. 그 덕분에 사람들이 이 집을 정준섭의 정 구례현감을 지냈다하여 구례를 따 정구례집이라는 애칭으로 부르지요라 한다. 그 이야기는 고종 26년(1889년) 7월 26일자 『고종실록』에 흉년을 당한 때에 재물을 내어 백성을 구한 전 감찰 정준섭에게 표창하도록 한다는 기사의 제목으로 나온다. 김제에 사는 정준섭이 큰 흉년을 전후하여 1만 3,000냥의 재물을 내어 죽어가던 백성들이 모두 그 덕에 살아났다. 재산을 아끼지 않고 구제한 액수가 매우 많은데, 매우 가상한 일이니 수령의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서 조정에서 표창하자는 의정부의 청을 임금이 윤허하였다.는 내용이다. 이후 넉 달 뒤인 11월 27일자 『고종실록』에 정준섭을 구례현감으로 제수했다는 기록으로 그 사연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제는 후손의 이름을 따 정종수 고택으로 불리는 집에서 두 내외가 살며 선조들의 정신을 잇고 있다. 원래에는 사랑채와 곳간 옆에 뒤주가 있었지만 1976년에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뒤주를 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안채 쪽으로 옮겼다. 초가의 이엉을 얹는 관리가 힘들어 지붕을 잠시 기와로 한 적도 있지만, 자리를 다시 잡은 뒤로 매년 봄마다 시에서 초가 이엉을 교체해주고 보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쌀을 채우다 세간살이도 종종 넣었던 뒤주는 3년 전부터 뒤주 안을 비운 채 관리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바뀌고 있지만, 쌀을 귀히 여긴 선조들의 정신과 유산은 지역 곳곳에 오롯이 남아있다. 소설가 윤흥길은 고향 쌀은 고향 바로 그 자체야, 우리네 한국인의 심성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쌀에 대한 관념은 거의 종교에 가까울 정도로 신성한 것이야. 왜냐하면 땅과 쌀과 사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순환관계를 이루고 있는 동일체이기 때문이지. 어제의 땅은 오늘의 쌀이 되고, 오늘의 쌀은 오늘의 사람하고 한 몸을 이루고, 오늘의 사람은 다시 내일의 땅이 되는 법이야. 땅이 곧 쌀이고 쌀이 곧 사람이고 사람은 곧 땅인 그 이치를 최서방 같은 젊은이들이 알 턱이 없지라는 말을 중편소설 『쌀』에 남겼다. 소설 속 장인이 사위에게 해준 이 말은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 되어온 우리 선조들에게 종교처럼 자리 잡은 생각이었다. 점차 쌀농사에 대한 비중이 줄고, 쌀의 소비가 예전만 못하다 보니 그 이치를 알 턱이 없는 세상이 되긴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식사를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하여 밥을 먹는다라는 말로 부르고, 밥 먹었냐는 인사를 나누고 밥이 곧 보약이며 밥심이 최고란 말을 한다. 그 힘의 원천이 되는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지대가 만경강과 동진강을 따라 펼쳐져 있으며 수많은 수탈의 흔적까지도 지역의 자산으로 남아있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은 그가 남긴 『성호사설』에 책을 좋아해 날마다 끙끙대며 읽느라고 쌀 한 톨 내 힘으로 장만하지 못하는 자신을 천지간에 좀벌레 한 마리라 표현했다. 쌀에 담긴 농부의 노고와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겸손함의 표현이겠지만, 햅쌀밥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며 한켠으로 밥값을 잘 하고 있나란 생각을 해본다. 가을빛이 사라지기 전에 김제평야만큼 넉넉했던 인심이 깃든 정종수 고택을 찾아 그 따스함을 배우며 겨울 채비를 하는 것도 좋겠다.

  • 기획
  • 기고
  • 2019.11.14 17:08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