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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를 빛낸 작가들의 노고를 담아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최명표 문학박사가 신아지역문학 연구총서 <무주문학론>(신아출판사)를 발간한 것. 책은 지난 2021년 출간된 <정읍시인론>에 이어 소지역의 문학 현상을 조감한 2번째 연구서다. 최 박사는 “책을 통해서 그들의 노고가 군민을 비롯한 독자들에게 정당하게 평가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하게 됐다”면서 “이번 책에서 취급한 작가들은 자기 자리에서 무주를 빛내기 위해 힘쓴 이들로 선정했다”고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실제 책은 ‘제1부 소원문학회’, ‘제2부 김환태론’, ‘제3부 시인론’, ‘제4부 시집평’, ‘제5부 아동문학가론’ 등 총 5부로 구성됐다. 먼저 1부에서는 1962년 12월 무주에 처음으로 생긴 ‘소원문학동인회’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내용을 보면 서재균·이찬진·정치중·조기호·한창근 작가 등 5명으로 출범한 소원문학동인회에 대한 설명과 함께 ‘소원(素園)’, ‘귀찮은 말씀’ 등 일종의 선언문으로 채워졌다. 2부에서는 무주를 대표하는 비평가 ‘김환태론’을 조명했다. 그간 발표했던 김환태 비평가의 낭만주의적 성격과 동심의 심미화 과정, 영향 관계 그리고 ‘순수’론을 담아낸 것. 특히 김환태 비평가의 비평이 함의한 의의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최 박사의 심정을 담아내 무주군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이어 3부에서는 정훈 시인을 비롯해 박희연, 이봉명, 전선자, 이선옥 시인의 작품을 통해 무주시인론을 다룬다. 4부는 무주 출신 시인들의 시집평이 실려있다. 차주일, 이이진, 장만호, 이병수, 석경자, 이현정, 이기종, 주평무, 이일우 작가의 작품이 다뤄졌다. 끝으로 5부에는 서재균론과 김종필 작가의 동화집평이 묶인 아동문학론이 담겼다. 최 박사는 “무주와의 인연은 2019년 제30회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 이후 눌인문학회장을 맡으며 깊어졌다”며 “무주문학론을 준비하며 무주인들은 저마다 넉넉한 덕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척척(戚戚)하게 지내는 등 덕유산을 닮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문학론을 통해 무주 출신 작가들의 흔적과 그들의 혼화한 작품을 읽는 재미를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명표 박사는 문학박사를 비롯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전북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수료했으며, 전북아동문학상, 방전환문학상, 아름다운문학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전북지역시문학연구>, <한국근대고년문예운동사>, <전북시인론> 등이 있다.
김재환 수필가의 네 번째 수필집 <이빨에 땀이 나도록>(수필과비평사)이 출간됐다.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이 더 예리하고 날카롭게 지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이번 수필집에는 서정적인 이야기보다 서사적 사회 비판 글이 도드라진다. 특히 정의롭지 못한 정치인과 법조인, 국회의원, 재벌들의 행태에 분노하고 정치 후진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정치판을 꼬집는다. 40여 편이 수록된 수필집은 '내안의 갈등', '공허한 메아리', '세상 밖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하여', '스포츠와 함께' 등 총 5부로 구성됐다. 저자는 “정치와 사회를 바르게 보다 보니 격한 정치 사회 평론글이 됐다”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작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진안 출신인 김재환 수필가는 공군사관학교에서 수학했고 농협에서 33년간 봉직, 정년 퇴임했다. 10대부터 글을 쓰고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는 <금물결 은물결>, <그곳엔물레방아집은없었네>와 세계기행 에세이집 <역마살> 등을 집필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는 작촌예술문학상, 행촌수필문학상, 진안예술상 대상, 진안군민의장 문화체육장 등이 있으며 한국문협 진안지부 회장, 수필과 비평작가회의 전북지부 회장 등을 역임했다.
요즘처럼 한 끼 식사가 무서운 적이 있었을까.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밖에서 외식을 할 때마다 부쩍 오른 가격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웬만한 식사가 거의 만 원에 육박하거나 훌쩍 넘는다. 이런 상황이니 동화에 나오는 아동행복나눔카드로 아이들이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들었다. 어른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한 끼를 넘겨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돌아서면 배고픈 나이의 아이들에게 어김없이 돌아오는 식사시간은 무섭다. 그래도 아동급식카드가 없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으나 당사자의 입장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턱없이 부족한 식비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편의점밖에 없으니 말이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의 몫이고 당연한 의무지만 그 삶의 무게가 조금 덜어진다고 해도 좋지 않겠는가. 매번 밖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같은 음식 먹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식당이나 편의점 밥이라고 어디 다르겠는가. 주인공 서진이가 편의점에서 만난 남자아이나 소리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공원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그 마음은 또 어떠한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밥을 먹어야 하는가에 이르면 마음은 더 착잡해진다. 그런 점에서 아동급식카드로 편의점 음식을 사 먹어야 하는 두 아이와 들고양이의 접점은 자연스럽다. 그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이미 세상의 냉혹함을 알아버렸다. 배려가 없는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처지는 삭막하기 그지없다. 세상의 쓴맛을 알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이미 맛본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이 지금보다 좀 더 사랑받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 그들이 아직도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들을 응원하고 지켜주고자 하는 이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란다. 그들의 꿈이 꿈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로 변하고, 그들이 만나고 싶은 미래가 더 멋진 모습으로 후다닥 다가오기를 바란다. 아쉽게도 <오늘부터 배프! 베프!>에는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진이와 엄마의 지나가는 이야기 틈에 희미하게 한 줄로만 등장할 뿐이다. 발을 동동거리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도 안타깝지만 설령 그게 아빠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저출산을 탓하기에 앞서 오늘 이 시간에도 애를 태우며 아이를 키우고 있을 수많은 한부모 가정,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시스템과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그리워진다. 우리 시대는 예전처럼 이웃이 부모의 빈자리를 메워주거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일주일, 길게는 한 달 후에나 발견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절박할 때는 작은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주는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진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그 고비만 넘기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늘 누군가가 이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힘든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될 거라고, 이 또한 금방 지나갈 거라고, 장창영 작가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와 문학이론서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을 펴냈다.
“지팡이가 가리키는 쪽으로/ 여름이 자라고 있다/ 명아주잎이 물컹하고 비릿하게// 매미는 새보다 일찍 일어난다/ 가로등이 햇빛처럼 비추는 나무 아래서/ 좋아하는 것들 틈에서// 여름이 자라고 있다/ 초록의 질투는 뿔처럼/ 여린 죽순에 받힌 송아지가 여름을 마주 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네가 쥐고 있다”(시 ‘청려장’ 중에서) 감성을 노래하는 하기정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나의 아름다운 캐릭터>(상상인)를 새로 펴냈다. 첫 시집 <밤의 귀 낮의 입술>에서 마치 잘 꿰어진 언어의 염주를 만들어낸 시인은 두 번쨰 시집 <고양이와 걷자>에선 낯설음과 낯익음이 뒤섞인 특유의 시 세계를 나타내 깊고도 매혹적이면서 농익은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한 세 번째 시집 <나의 아름다운 캐릭터>는 제4회 선경문학상 수상 시집이기도 하다. 삶의 체험에서 시를 통해 서정적인 울림을 자아내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다. 시집의 해설을 쓴 박동억 평론가는 “수사적인 형식과 존재론적인 자세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지점에서 시인의 아름다운 형상 또한 길어 올려진다”고 평했다. 시인은 “시를 쓰면서 한 권의 시집이 될 사람이고 싶다”며 “잘 쓴 시보다는 좋은 시를 쓰고 싶고 시를 쓰면서 더욱 새로워지겠다”고 밝혔다.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로 등단한 시인은 5·18문학상, 불꽃문학상, 시인뉴스 포엠 시인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불평등을 수거해 드립니다>(논형출판사)는 일상에서의 성차별 사례를 담은 동화집이다. “공부를 더해도 모자랄 판에 계집애가 무슨 축구야”라든지 “남자가 전업주부로 일하면서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은데요?”처럼 불평등한 상황을 동화로 풀어낸다. 아동문학가 김순정, 김완수, 정광덕, 정유진, 윤형주 작가가 함께 펴낸 동화집에는 ‘남자라서 억울해’, ‘내 이름은 깜상’, ‘아빠는 주부 백단 가수왕’, ‘용감한 오!기사’, ‘수영선수 에리얼’ 등 모두 5편이 실렸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한다고 구분해 강요하는 성 역할보다는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존재로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평등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불평등을 수거해 드립니다>를 펴낸 김순정, 김완수, 정광덕, 정유진, 윤형주 작가는 ‘평꿈동(평등을 꿈꾸는 동화)’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예술인 성평등 인식 개선사업 ‘예술 in 성평등 탐구생활’ 공모에 선정돼 동화집을 출간했다.
향촌문학회는 회원들의 작품 발표 기회를 확대하고자 34번째 문학지 <향촌의 사계>(향촌문학회)를 새로 펴냈다. 이번호에는 김계식, 서상옥 작가 등 30명의 향촌사랑 전국 문인 초대 작품과 하송, 황길신 작가 등 32명의 향촌사랑 전국 문인 효(孝) 산문 초대 작품이 특집으로 실렸다. 지난 1988년에 창립한 향촌문학회는 올해로 창간 36주년을 기념해 <향촌의 사계> 제34호를 펴내게 됐다. 정성수 회장은 “해마다 향촌문학대상 시상과 전국 여성 문학대전 공모, 전북지역 내 초등학생 동시 공모전 등 다양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추진해오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해마다 여름세미나를 개최해 특강을 마련하는 등 회원들의 문학적인 역량을 쌓을 뿐 아니라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촌문학회는 내년에 동시집을 발간해 문화 혜택이 적은 도서벽지학교와 소규모 농어촌 어린이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작년 한 해 동안 문화예술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 내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진행한 ‘우리놀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최근 마무리했다고 3일 밝혔다. 실제 프로그램은 지난 2022년 11월부터 총 45회 운영됐으며 △화가투 △고누 △쌍륙 △칠교, 실외놀이인 △제기차기 △사방치기 △투호놀이 △딱지치기 △달팽이놀이 등 다양한 실내외 문화체험 활동이 지원됐다.
미술가: 황유진 명 제: 쌓고 가는 것들. 지금 이대로여도 된다는 것 재 료: 세라믹 규 격: 30x40x55cm 제작년도: 2018 작품설명: 무거운 걸음으로 묵묵하게 걷는 동물을 포착한 형상이다. 현대사회의 불확실성 속에서 중심을 상실하고 흔들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일 거다. 새가 하늘에 그 발자국을 새기지 못하지만 쉼 없이 창공을 가른다. 영겁의 시간 속에서 쌓이고 이내 사라지는 실존과 부조리를 담고 있다. 미술가 약력: 황유진은 시가라키·전주·군산·완주에서 12회 개인전, 전라청년미술상, 전북도립미술관 청년작가, 김해클레이아트 영아티스트, 교동미술관 젊은 미술가에 선정됐다. /문리 (미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추워진 날씨 탓에 호환마마 보다 무서운 감기 걱정에 야외 활동이 부쩍 꺼려지는 계절이다. 이번 겨울방학을 맞이해 가족 단위로 아이들과 지역에 위치한 실내 시설의 전시 공간에서 문화 나들이에 나서 보는 건 어떨까. 여가 생활과 체험 활동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볼 수 있다. 국립무형유산원 기획전시실에서는 다양한 무형유산을 보다 알기 쉽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교과서 속 무형유산 여행’이란 주제로 지난 6일부터 진행 중인 전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형유산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교과서에 수록된 무형유산을 소재로 영상 콘텐츠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는 관람객이 직접 수업을 듣다 잠에 빠진 주인공이 돼 교과서 속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교과서 속 세상은 음악, 체육, 미술 등 3개 교과서로 구성됐다. 음악 교과서에서 만난 아리랑을 통해 눈과 귀로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를 만날 수 있다. 체육 교과서에서 만난 탈춤을 통해서는 익살과 재치를 경험할 수 있다. 관람객이 꾸민 탈을 벽면에 3D로 구현해 영상으로 탈춤의 춤사위를 따라해보는 체험도 즐길 수 있다. 미술 교과서에서 만난 전통공예기술을 통해서는 화각 사주함, 나전 구절판 등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들이 제작한 공예품을 직접 감상해보고 해당 재료로 체험하는 활동도 마련된다. 전시는 오는 5월 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체험뿐 아니라 무인 단말기인 키오스크를 통해 음악 등 교과서 별로 각각의 무형유산을 접할 수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오는 2월 29일까지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프로그램인 ‘임금님 납시오!’, ‘평생도 속 물건 찾기’, ‘선비잇템’을 무료로 진행한다. 왕의 상징인 용 문양의 에코 백을 칠하는 ‘임금님 납시오!’는 18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어린이박물관 2층 교육실에서 진행된다. ‘평생도 속 물건 찾기’는 24일부터 2월 29일까지 매주 수요일 3회(오전 10시 30분,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에 걸쳐 교육실에서 운영한다. 조선시대 선비의 소망을 그린 그림인 평생도 속에 등장하는 물건을 만져보고 미니 병풍을 만들어보는 시간이다. 조선 선비의 아이템인 갓과 부채에 대해 알아보고 종이 갓을 만들어보는 ‘선비잇템’은 24일부터 2월 29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어린이박물관 왼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열린공간 온에서 이뤄진다. 참가신청은 교육일 2주일 전부터 국립전주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사전 예약할 수 있다.
김갑련 작가 개인전이 2일부터 7일까지 교동미술관 2관에서 진행된다. 작가는 어느 날 제주를 여행하다 ‘바다에서 선박을 안전하게 안내하는 것이 등대라면 육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란 생각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이번 전시에서는 제주 민속촌을 비롯해 주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물건들, 편의점에서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카메라가 어색하지 않도록 관찰자가 돼 엿보는 듯 한 느낌으로 담은 작품들이 전시장에서 관객들을 맞는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편의점, 우리나라식의 편의점, 한옥 기와를 올린 편의점, 제주 전통 가옥 편의점 등 기록하고 기억할 가치가 있는 편의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며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은 이미지에 노출된 누군가의 삶이 소비의 수단이자 구경거리가 되는 것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며 “프레임에 담긴 그들이 웃음거리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타인으로 보고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미술연구회 단체 라이프잡스가 오는 8일까지 전주 경기전 부속 채에서 ‘우리네! 경기전 이야기’를 개최한다. ‘4차 한국고분벽화 미술의 재발견’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람회는 한국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고분벽화 미술에 대한 연구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참여작가로는 김종대·김선강·김광희·장인찬·최락환·홍성녀 작가 등이며, 이들은 서예, 한국채색화, 수묵화 등 총 25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최락환 라이프 잡스 미술 대표는 “이번 전람회는 전주 한지와 석회, 돌가루, 기타 재료를 벽화 미술의 표현재료로 사용하는 등 한국 벽화 미술의 새로운 해석을 표출한 작품들의 공개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이번 전람회에 콘셉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를 거듭하면서 연구가 장래 후진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이고, ‘한국벽화 미술의 기획’ 콘텐츠 희소가치로 인한 많은 관광객 유치 성과를 확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실제 전주를 배경으로 한 유적지의 이야기를 화두로 예술적 가치와 특화된 지역문화를 담은 이번 전람회에서 석판소재로 이뤄진 작품은 탈, 부착이 가능하게 제작됐으며 디지털 등 다양한 창작표현의 기회를 찾고 있다. 또 한옥과 현대 건축물과의 조화를 선보이며 새로운 건축자재로써 기능적 가치를 조명하고 있다. 이번 추진 사업으로 ‘세계벽화미술제(비엔날레)’를 발족해 한국벽화 미술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계기를 꾀하고 있다. 최 대표는 “앞으로도 석판 소재 및 탄소섬유와의 접목 등 첨단 재료를 이용한 실험적 예술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며 "전주를 거점으로 전북의 경제·문화·예술의 중심이 되고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헌하겠다”고 밝혔다.
김환생 시인이 최근 제3회 한용운문학상에서 중견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수상작은 ‘화석(化石)’, ‘뒤뜰’, ‘아아! 만경강(萬頃江)’ 등 3편이다. 시상식은 지난 16일 서울 중랑문화원 소공연장에서 제3회 한용운전국시낭송대회 시상식, 제3회 한용운공동시선집 출간식과 함께 열렸다. 김 시인은 “부족한 시를 대상으로 선정해준 심사위원들과 동료 문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며 “앞으로 더욱 정성을 다해 심령을 울릴 수 있고 풀 한 포기의 생명도 놓치지 않는 시를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월간순수문학 시 부문으로 등단한 그는 시집 <만경강>, <노송> 등을 냈고 전주기전여고 교장, 석정문학관 사무국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조선시대 왕과 문무백관이 입었던 전통 복식을 현장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마련된다. 한국전통문화전당(원장 김도영)은 최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신애자 침선장의 기획전을 마련했다. ‘왕과 문무백관의 만남’이란 주제로 7일까지 한국전통문화전당 2층 한복놀이터에서 진행한다.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는 왕의 옷인 이성계의 청룡포, 곤룡포와 문무백관들의 의복 등 역사적 인물들이 입었던 복식을 고증한 다채로운 전통 한복을 선보이고 있다. 신애자 침선장은 1983년 고(故) 박순례 선생의 공방에서 침선을 시작해 스승으로부터 조복, 제복 일습 궁중복식과 사대부 복식 등을 전수 받았다. 지난 39년 동안 여러 대학교와 흥완군 집안 등에 소장된 전통 복식을 접해오며 전통 복식 재현에 힘써왔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전북무형문화재 침선장으로 선정됐다. 김 원장은 “올해 전북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신애자 침선장의 특별전을 전당에서 진행하게 돼 영광”이라며 “침선장의 섬세한 손길로 재현된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진청년작가회는 2월 14일까지 우진문화공간에서 ‘2024-선물’이란 주제로 전시를 연다. 이일순, 이올, 장영애 작가 등 20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새해를 맞아 선물 같은 한해가 되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 2024년 1월 1주 차 상영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이달 첫 번째 주에 상영될 신작은 <신세계로부터>와 <클레오의 세계> 등 총 2편이다. 먼저 <신세계로부터>는 최청민 감독의 3번째 장편영화로, 탈북 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명선이 화신교 교주 신택과 함께 아들을 부활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믿음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이어 <클레오의 세계>는 제76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개막작으로 여섯 살 클레오가 유모 글로리아와 함께 보내는 여름을 통해 알게 된 여러 모양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각본·연출의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은 2014년 칸영화제에서 <파티 걸>로 황금카메라상과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앙상블상을 받은 바 있다. 영화는 오는 4일 개봉·상영될 예정이다. 이밖에 추가 개봉될 작품 등 자세한 내용은 전주영화제작소 홈페이지 및 전화(063-231-3377)로 문의할 수 있다.
국립민속국악원은 오는 12일부터 17일 오후 6시까지 ‘제6회 판놀음 별별창극’과 함께할 전통 예술단체를 모집한다. 이번 공모에서는 창극·소리극·음악극·창작극·무용극·연희극·어린이극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작품을 선정할 예정이다. 공연 시간은 60~90분 내외로 지정돼 있다.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과 예음헌에서 공연을 올릴 최종 선정 작품은 4개 내외이며, 공연 일정은 5월 25일, 5월 29일, 6월 1일, 6월 8일이다. 심사는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다. 결과발표는 다음 달 1일 국립민속국악원 누리집 및 개별 통보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국립민속국악원 누리집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문의 사항은 전화(063-620-2323)로 안내받을 수 있다.
202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 확정됐다. 시 부문에 최형만 씨의 ‘알비노’, 단편소설 부문 신가람 씨의 ‘미지의 여행’, 수필 부문 김서연 씨의 ‘움쑥’, 동화 부문 정종균 씨의 ‘우주보안관이 된 우리 엄마’가 선정됐다. 202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부문 344명·1308편, 단편소설 부문 149명·161편, 수필 부문 183명·412편, 동화 부문 103명·112편 등 총 779명·1993편이 응모됐다. 전북일보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4개 부문의 당선작을 선정했다.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및 당선작 △시=최형만(55·경남 창원시 진해구) ‘알비노’ △단편소설=신가람(34·전북 전주시) ‘미지의 여행’ △수필=김서연(62·전북 김제시) ‘움쑥’ △동화=정종균(32·광주광역시) ‘우주 보안관이 된 우리 엄마’ 본심 심사위원 △시=김용택(시인), 문신(시인, 우석대 교수) △단편소설=송하춘(소설가, 전 고려대 교수), 김병용(소설가, 백제예대 교수) △수필=백가흠(수필가, 계명대 교수) △동화=김자연(아동문학가, 전북작가회의 회장)
동의 없이 찾아오는 황량한 새벽에 잠에서 깨면 먼저 어디에 누워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시선들로 창밖의 희미한 불빛들과 귀신의 형상처럼 걸려있는 신문배달 유니폼을 찾아내면 절반은 온 것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막으려 해도 비집고 새어나오는 입김이 결마다 갈라진 입술을 거쳐 코끝까지 서리를 맺히게 하니 아마 꿈속에서 이렇게 시린 계절은 없으리라. 어쩌면 그 새벽에 눈을 뜨게 되는 건 서서히 몸이 굳으며 동사가 되기 직전 발악하는 한 생명의 마지막 배웅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데도 절벽에서 뛰어내릴 만큼의 결단이 필요하다. 침낭 덕분에 몸 곳곳에 어설픈 온기를 품고 있는데 여기서 나가는 순간부터는 온몸이 떨리는 추위에 마치 내 안에 꿈틀거리는 모든 신경세포들이 내게 역정을 내는 느낌이다. 그 때문인지 살 끝 곳곳이 더 찌릿찌릿하면서 따가워진다. 새벽 2시 15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팔을 올리며 귀에서 귀마개를 빼면 창 밖에서 철로를 지나다니는 기차들의 소리가 벌써부터 야단법석이다. 그나마 지하철은 유난떨지 않고 얌전하게 지나가는 편이지만 가장 고약한 녀석은 주기적으로 석탄을 나르는 열차다. 지나갈 때마다 박자가 맞지 않는 온갖 신호음으로 생색을 내며 열차의 길이는 또 얼마나 긴지 30초 남짓의 시간동안 도시 전체를 흔드는 소음이 이어진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익숙해지긴 할까. 2평 남짓의 기숙사에 처음 발을 디딜 때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 다음으로 나를 반겨주던 게 8줄의 철로들이었다. 오랫동안 잠겨있던 듯 먼지 가득한 창틀의 창문을 열자마자 철로들이 격하게 환영하는 것처럼 뿌연 먼지바람이 내 안면을 가득 매웠다. 그러고는 쓸데없이 우수에 젖어 감성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로에는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비단구렁이처럼 철로를 따라 꿈틀거리는 열차들이 생생한 도시의 삶을 비춘다면 또 한편엔 나오기 힘든 쇠창살 같은 철로들 위로 확 뛰어내려 죽어버리기 딱 알맞은 배경이었으니까. 저 철로들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동적인 삶, 정적인 죽음. 철로들은 찰나에 생긴 고요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머릿속에서 서성거리는 생각들과 어색한 인사를 하고 있으면 문이 부서질 듯 세 번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굵직한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오키테!” 며칠 전에 어학원에서 배운 단어다. 오키루. 일어나다. 명령어에는 루를 지우고 테를 붙이니 일어나라는 말일 것이다. 방에서는 귀찮은 듯 “하이!(네)”라고 대답하고는 그제서야 애벌레처럼 침낭 밖으로 몸을 뺀 뒤 부랴부랴 배달유니폼과 헬맷을 집어 들고 한기로 가득 채워진 방안을 벗어난다. 신발을 꺾어 신은 채로 쥐구멍 같은 계단 통로를 내려와 중앙거실로 나오면 이미 오타군이 따듯한 우롱차를 마시고 있다. 만화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19살 학생인데 저 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는 것만으로도 철이 일찍 든 편이다. 일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을까. 다른 직원들과 조금씩 안면도 트고 일본어로 간단한 안부 인사정도의 소통이 가능하기 시작한 때에 오타군은 거실 한 쪽에 있는 내게 본인이 만든 파스타를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아무 야채가 들어가 있지 않고 소금과 오일만 들어가 있는 파스타였는데 이미 오타군이 자주 저렇게 해 먹는 걸 곁눈질로 봐서 알고 있었다. 나는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표현을 전했고 오타군은 별 거 아니라며 나이와 어울린 쑥스러움을 눈가의 주름에 내비치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겉보기에는 파스타면만 삶은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포크로 면을 살짝 비벼주니 그 안에 있던 올리브오일이 흘러나오며 슬며시 오일파스타의 윤기를 뽐냈다. 먹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긴 했지만 오타군의 오랜 연습의 결과인지 간도 잘 배어있고 보기보단 훨씬 괜찮은 음식이었다. 그동안 배운 단어들과 문장들을 겨우 조합해서 어설픈 발음으로 오타군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정말 맛있네요. 근데 오타군은 왜 매일 이것만 먹습니까?” 문장으로 된 일본어가 내 입에서 나온 게 처음이었는지 오타군은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내 말을 곧장 이해하고선 나조차도 알아듣기 쉬운 단어를 선택해 대답했다. 어쩌면 나를 위한 배려였을까. “야스이까라.(싸니까). 저거 하나에 90엔이에요.” 그는 손짓으로 주방 선반에 있는 파스타면 봉지를 가리키며 쌀보다 싼 음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의도치 않게 선명한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몸을 녹이며 차를 마시고 있는 오타군과 잘 잤냐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으면 뒤이어 다나카, 요시다, 그리고 창 위엔이라는 22살 중국인 유학생까지 줄줄이 이어 나온다. 전부 잠이 덜 깬 채로 까치집 머리를 하고선 기계처럼 인사를 주고받는다. 다들 무언가를 원망하는 표정들이지만 원망해야하는 대상이 이 암흑같이 깜깜한 새벽의 현실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라는 걸 깨닫고선 찬물 세수로 잡생각들까지 겨우 씻어낸다. 출근카드를 넣을 때면 이제 잠은 다 깬 상태다. 신문사에 무료로 배급되는 짠맛 섞인 물 한 통을 챙기고선 오토바이 안장에 넣고 서로 약속된 것처럼 각자의 위치로 오토바이를 옮겨놓는다. 그러면 저 멀리 도로 한복판에 대형트럭이 멈춰 서는 게 보이고 그때부터 우리 지사에 할당되는 신문 2800부를 전부 나르기 시작한다. 한 뭉치마다 100부씩 묶여있으니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두, 세 번씩 나르면 금방 끝나는 일이다. 조간신문의 경우 330부, 석간신문의 경우 180부를 배달해야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새벽에는 4시간 안에 300곳을, 오후에는 2시간 안에 150곳이 넘는 장소들을 들락날락해야하니 일이 끝나고 나면 잠에서 깼을 때 설한의 고통이 그리워질 만큼 온 몸이 땀에 젖어있다. 새벽 배달 업무는 5시간 안에만 마무리하면 되지만 서둘러 오전 6시 30분까지 맞춰 끝내면 숙소 근처의 철교에서 다채로운 경치가 어우러진 주황빛 일출을 간신히 볼 수 있다. 온통 검은색뿐인 내 하루 중 일상에서 유일하게 색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색을 느낄 수 있는 시선들을 눈에 자주 담으면 내 안에 있는 시커먼 먼지같은 것들이 벗겨질 수 있다는 마지막 발악인 것일까. 세상의 색깔이 어두워 보이는 것도 이젠 나만의 불치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거울 속에 보이는 한 인간의 얼굴부터 사계절 내내 우기를 알리듯 폭우에 지친 우중충한 장마의 모습을 띄고 있고 표정이라고는 무표정 말고는 미세한 다른 어떤 표정도 가늠할 수 없다. 손가락으로 입가 양 쪽을 찢어 억지로 미소라는 것을 만들어보아도 그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에 오히려 더 거부감이 생기게 되고 안색마저 죽어가고 있는 짐승들의 표본이다. 미소를 지어 본 적이 언제였을까. 그때였을까 생각해내면 너무 멀리 돌아가 버리고 아니면 그때인가 싶으면 그때는 행복해서 지은 미소가 아니었다. 한 때는 눈부신 일상을 그리기도 했고 마주하기도 했다. 햇빛이 온 몸에 닿으면 서서히 스며들어 피부결의 일부가 된 듯 서로 한 몸을 이루며 어쩌면 그 온기들로 인간의 혈색과 세상의 색들이 갖춰지는 것일까. 어느새 조금씩 피어오르는 해가 억지로 기지개를 키고 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어차피 사랑이란 건 사랑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어리석음으로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사랑에는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두 사람의 미래가 있을 수 있었다. 풋내기 때의 연애에서는 하룻밤 사랑만으로도 사랑이 되기도 하지만 30대 때의 사랑은 물질주의에 틀어박혀 버리고 서로의 보폭만 눈치보며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내가 변한 것일까. 그 사람을 원망할 자격도 없다. 원망이 늘어나면 오히려 더 비참해지는 신세한탄으로 이어지며 그 때의 순간들을 안주삼아 술을 찾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마시는 술은 술맛이야 좋겠지만 예상치 못한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전화를 하거나 눈물을 보이는 하찮고 창피한 순간들. 적적한 고요를 즐기며 잠에 드려 할 때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정직원인 요시다였다. 요시다가 내 방에 온 건 처음이었다. “점장이 찾아요.” 일본인들은 왜 저렇게 다 친절할까. 저 간단한 말을 하면서도 내게 보이는 찰나의 웃음들과 정성껏 안내하려는 손의 움직임들.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인식을 좋게 심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오며 정신을 차린다. 1층에 있는 사무실로 내려가자 혼자 업무를 보고 있는 점장이 나를 보자마자 사무실 한 쪽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배달오류라면 쪽지를 붙여놓았을 것이고 배달지가 새로 생겼다면 그것도 쪽지를 붙여놓았을 것이다. 사무실의 한 구석에서 점장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영락없이 교무실에 끌려온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만약에 큰 잘못이라도 저질러 쫓겨나게라도 된다면 당장 내일부터 거리에 나앉게 된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은 괜찮죠?” 점장은 아직 내가 일본어가 짧은 것을 알고 쉬운 단어만 골라 물었다. 아마 일 적응에 대한 안부인사 정도가 될 것이다. “네. 좋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이 정도는 쉽게 견딜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듬거리며 단어를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당신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태도와 눈빛을 보여주니 점장도 옅은 웃음기를 보이며 긴장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별 건 아니에요. 김 상. 혹시 수금 업무도 해보는 건 어때요?” 수금에 관해서는 직원들과 넌지시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오타군이 점장의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외출을 하길래 어디가냐고 물었더니 수금을 간다고 했었다. 떠나버리는 오타군 뒤로 얌전히 있던 다나카가 수금을 하면 수금한 금액 10%의 인센티브가 있다며 한 달에 50곳 정도만 수금해도 보너스로 쏠쏠하다는 얘기가 불현 듯 떠올랐다. “어려운 건 없어요. 그냥 지로용지 가지고 가서 수금하러 왔다고 하고 돈만 받아오면 돼요. 영수증도 그 자리에서 손으로 써서 주면 되고.” 어차피 오후 배달이 끝나면 할 일도 없었다. 읽을 책도 바닥난 상태였고 일본어 공부만 하기에는 따분함이 몰려오던 시기일 뿐더러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한 상태였다. 돈이 급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을 지워주기 위한 활동으로 적합할 것 같았다. “네. 좋습니다. 점장님. 혹시 하다가 힘들면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든지요.” 일을 막 시작할 무렵, 점장은 신문배달 업무와 숙소생활에 관해 유의사항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씩 일러주곤 했다. 출근시간 새벽 2시 20분은 반드시 지킬 것, 비가 올 때는 무조건 우비를 입을 것, 월급은 매월 24일에 지급, 숙소에 외부인 출입은 금지, 저녁 8시 이후에는 숙소에서 소란피우지 말 것, 공용주방 설거지는 곧바로 할 것 등 다양한 규칙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일반적인 상식과 매너 비슷한 것들이었다. “아. 그리고 배달하는 집에 신문이 3개정도 쌓였으면 사무실에 보고해야 해요.” 배달지의 오류거나 집주인이 여행을 갔을 수도 있으니 그 단순한 뜻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점장은 내가 그 말의 숨은 뜻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요즘 혼자사시는 분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신문사가 일본 경찰청과 자살방지 협약을 맺었다고 했다. 대강의 내용들은 배달원들이 수금이나 배달 때문에 날마다 가정집에 들락날락하며 자살에 대한 징조나 이미 자살한 사람에 대한 초기 발견에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경찰은 배달원들에게 일종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점장의 얘기를 듣고 나니 괜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눈앞에 시체를 마주하는 것이 태연하게 지나갈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 점장과 얘기를 마치고선 그 다음날부터 곧바로 수금 업무에 투입됐다. 말이라도 걸거나 모르는 업무에 대해 요청하면 어떡해야하는지 걱정의 마음도 앞섰지만 점장 말대로 수금만 금방 끝내버리는 단순한 일이었다. 방문 전 매니저가 먼저 전화를 걸어 수금하러 방문해도 되겠냐는 허락을 받아놓고 가기 때문에 허탕을 치는 일도 없었다. 자동이체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면 되지 않냐고 단순한 궁금증을 물어보자 그렇게 되면 서서히 밥줄이 끊기게 되니 알아서 하라는 매니저의 핀잔을 듣고 말았다. 이노우에를 처음 만난 것도 수금 업무 때문이었다. 어두운 새벽에는 신문을 넣을 우편함 찾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집집마다의 분간은 하지 않는데 알고 보니 이노우에의 집은 내가 조간신문을 직접 배달하고 있는 집이었다. 족히 50년은 되었을까. 대문 앞에는 이미 사람의 손길을 떠난 지 오래된 자전거가 문지기처럼 문을 지키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이노우에(井上) 한자가 써있는 철제 재질의 우편함이 성인 가슴팍 높이에 걸려있었다. 사람 양팔 길이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도심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담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는 손님들을 언제라도 환영하겠다는 듯 활짝 열린 거실 사이로 이노우에가 슬리퍼를 신으며 부랴부랴 사람을 맞이한다. 정원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국들은 이미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꽃이 핀 형체는 어렴풋이 드러난 걸 보니 아마 잎 정리에 손을 뗀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한국인?” 70대 노인이라기엔 잔잔한 호수같은 평온함이 첫인상에 가득했다. 수많은 순간들을 거쳐 이제는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놀랍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듯한 그 평온함. 아마 이노우에는 누군가 그의 목에 칼을 대도 살려달라 목 놓아 애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한국인들은 특징이 있지. 웃음기가 없는 얼굴과 단정한 머리.”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만큼 피곤해도 세면대에서 머리는 꼭 감는, 이유 없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 되레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한국인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남에 대한 시선이 강박처럼 자리 잡고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얼굴에 띄는 미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곳인 걸까. 생각해보니 우울한 말이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문장 곳곳마다 못 알아듣는 말들이 늘어날 테니 서둘러 수금하러 왔다며 둘러댔다. 하지만 이노우에는 대뜸 내게 따듯한 차를 한잔 하고 가라며 권했다. 어색한 상황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에 처음 한 번은 사양했지만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이노우에를 보며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실례하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신을 벗으며 밖에서 처음 보았던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연한 살색의 다다미가 간격을 맞춰 다소곳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노우에는 중앙에 있는 좌식형 테이블에 앉아있으라는 듯 그의 허리처럼 꾸부정한 손짓을 건넸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코타츠 안에 다리를 넣으니 온 몸이 녹아버릴 듯한 따듯함에 긴장이 풀려버렸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집의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 사이에 가장 오래 머문 시선은 아마 거실 구석에 깔끔히 자리잡고 있는 제사상이 될 것이다. 때깔 좋은 원목 수납장 사이에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인의 사진이 중앙에 놓여있었고 그 아래 바닥에는 몇 개의 향과 바로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과일, 정갈한 식사까지 정성스레 준비돼있었다. 도둑질을 하듯 조심스럽게 살피던 내 눈길들을 이노우에도 금방 눈치챘다. “내 아내야. 두 달 전에 죽었지. 그래서 매일 오마이리 하는 중이야.” “오마이리요?” 오마이리를 이해하지 못하자 이노우에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하며 몸으로 단어의 뜻을 알려주었다. 매일 아내를 기리며 기도를 하는 모양이었다. 음식도 매일 준비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니 같이 먹으면 심심하지 않다며 쑥스러운 듯 의미 담긴 웃음을 지어보이며 끓인 차를 내어왔다. 잔에 차를 따라주는데 이노우에의 손이 덜덜 떨려 하마터면 내게 쏟아버릴 것 같은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별 문제없이 잔이 채워졌다. 걸러지는 찻잎 사이로 쏟아지는 선명한 초록빛 물줄기가 파도를 일렁이며 잔이 채워졌고 일본의 다도문화를 몰라 그래도 예의를 차리겠다는 모습을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니 이노우에는 손사레치면서 편하게 앉으라며 내 자세를 다시 바로 잡았다. “옛날에 선물 받은 녹차야. 뜨거우니 천천히 마셔봐.” 두 손을 모아 잔을 들어 먼저 향을 맡아보니 녹차의 쓴 향보다는 산 속 곳곳에 담겨있는 피톤치드처럼 상쾌한 내음이 코 속으로 들어와 정신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입술 끝에 녹차를 적셔 온도를 확인하고 조금씩 들이키자 코로 맡았던 향이 다시 퍼지며 부드러운 녹차의 맛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뜨거운 물에 티백을 담가 마시던 싸구려 녹차와는 아예 다른 차의 종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차는 잘 모르지만 이게 좋은 차인 건 알겠습니다.” 이노우에는 그의 나이와 어울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선 나도 모르게 그가 아내를 위해 차린 상에 시선이 멈추었다. 노인의 얼굴과 주름에서는 생기 넘치는 감정을 읽기 어렵지만 그가 겪고 있는 상실감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의 아내가 죽었다고 했을 때부터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공허한 무언가가 공간에 있는 모든 공기의 무게를 더 탁하게 만드는 듯 했다. 언젠가의 이별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는지 일생동안 함께한 사람을 한순간에 잃은 것에 비해서는 초연해보이기도 했지만 멋쩍게 건네는 미소 사이로 그 쓸쓸하고 외로움이 사무치는 감정들마저 숨기지는 못했다. 짐작해보려도 했지만 이건 찰나적으로도 짐작이 가능한 게 아니었다. 수십 년이 넘는 세월이 힘껏 담겨있는 서로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소중한 감정들을 이제 사회에서 발버둥치는 풋내기가 느끼기엔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랬기에 내 안에서 어떤 위로의 표현을 써야할지 헷갈리고 말았다. 마당에 있는 수국을 보며 쓸쓸하진 않냐고, 집 곳곳에 깃들어있는 아내의 흔적들 때문에 외롭진 않냐고, 이제 아내를 보지 못하는 것이 눈물을 참아야 할 만큼 힘들진 않냐고 선뜻 오지랖을 건넬 말들도 생각했지만 괜한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다른 수금 업무가 있다고 뻔한 거짓말을 둘러대며 천천히 나갈 채비를 하니 이노우에는 시간을 많이 뺏어 미안하다며 가는 발걸음을 하는 내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기운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때문인지 다음에는 더 오래 있어도 괜찮냐는 말을 건네자 이노우에는 선뜻 그러라며 언제든 차를 끓여놓고 기다리겠다는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와 헤어지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참 오랜만이구만. 누군가와의 대화.” 기숙사에 들어서자마자 항상 그랬듯 답답한 헬맷을 벗어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구겨져있는 침낭에 쓰러질 듯 뻗어버렸다. 그리고 잠자코 천장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서 가져온 생각들은 이노우에와의 대화와 그가 느끼고 있는, 아니 느끼고 있을 거라 추측하는 감정들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했다. 도달하는 결론은 결국 한 가지뿐이었다. 그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울까. 고타츠의 온기가 몸에 남아있었는지 누워있던 기숙사의 바닥은 그날따라 유독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이노우에를 처음 만나고 그 이듬달부터 수금을 위해 다시 그를 찾아갔을 때부터 아마 우리는 친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던 것 같다. 나는 한인시장에만 있는 태양초 고추장과 신라면을 사들고 첫날 마신 차에 대한 답례를 했고 이노우에는 내 선물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가식적인 연기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기분이 좋은 건 내 쪽이었다. 두 번째 방문부터는 처음 그와 나 사이에 있던 어색한 교류마저 떨쳐버릴 수 있었다. 어쩌면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외국인 울렁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와의 대화에서 어려운 말이 오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노우에 집에 있는 고타츠가 내 모든 살결들을 부드럽게 보듬어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그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명분이 충분했다. “자네는 내가 따분하지 않나보군. 다른 젊은 사람들은 나를 전염병 걸린 사람처럼 취급하고 도망가던데. 아니면 그 고타츠 때문인 건가?” 이노우에는 한국 노인들한테는 경험해보지 못한 센스있는 농담을 잘했다. 그만의 특별한 능력인건지 일본 노인들의 유머감각이 뛰어난 건지 헷갈렸지만 누군가의 농담에 아주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보았다. “고타츠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고작 두 번째뿐이지만 오래된 습관이 몸에 밴 것처럼 한쪽 구석에 있는 그의 아내 제사상을 살펴보니 지난번과는 다르게 상차림이 조촐해졌다. 오래돼 보이는 사진들과 편지들, 그녀의 장식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상의 대부분 자리를 차지했고 외로운 향초만 홀로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내가 아내하고 50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모르더라고. 그래도 매일 일어나자마자 기도는 해.” 상차림을 보고 있던 내게 이노우에는 거실너머 주방에서 과일을 깎으며 혼자 떠들어댔다. 어쩌면 아내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내게 대신 하소연하는 듯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와 있는 시간에서 그의 아내 얘기만 나오면 이노우에는 급격하게 우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는 내가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짓고 농담을 건네고 활기찬 대화를 이어갔지만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그러고선 정적을 깰 무언가가 생각이 났는지 이노우에는 안방에 들어가 기초한국어 책을 가져와 고타츠 위에 펼쳤다. “치매에 바둑이랑 언어 배우는 게 좋다는 데 바둑에는 영 흥미가 없어가지고 말이야. 그래도 언어는 외우기만 하면 될 거 아닌가?” 오랜만에 활자로 된 한국어를 책에서 보니 괜스레 반갑기도 했다. 책 사이에 껴있는 노트에는 안녕이라는 글자만 몇장씩 적혀 있고 그 다음에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반갑습니다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삐뚤삐뚤 쓰여 있긴 했지만 똑같은 그림을 베껴서 그리려는 것처럼 펜을 정성껏 다루는 이노우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엄청 열심히 하셨네요. 글씨도 잘 쓰셨어요.” 이노우에는 오른손 중지 한쪽에 생긴 굳은살을 보여주며 어린 아이처럼 자랑했다. 그러고선 책의 접힌 부분을 펼치며 이상한 부분이 있다며 내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아이시떼루는 보통 한국말로 뭐라고 하나?” “‘사랑해’라고 합니다.” “근데 그거는 명령어 아닌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가 이노우에가 말을 천천히 해준 덕에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이노우에가 받아들인 뜻은 결국 간단했다. 어떤 행동을 하라고 하는 ‘해’라는 말의 명령어를 글자로만 외우고 있었기에 그 말이 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 옆에 있냐는 말이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한국말로는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야 되지 않겠나? 영어도 I LOVE YOU는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일본어도 아이시떼루도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사랑하고 있어’라는 말이 사랑과 더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한국어로 ‘해’라는 말에는 ‘하고 있다’는 말의 줄임말 격으로도 사용된다는 말을 설명하자 이노우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 하나 때문에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여 지는군. 마치 부모가 어린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말이야.” 어쩌면 이노우에의 말대로 은혜와의 관계는 무언가의 힘에 이끌리는 강요의 관계처럼 돼있었을까. 그간 잠잠히 스쳐지나간 마음 속 메아리들이 귓가에 하나둘 울리기 시작했다. 사랑은 행복이라 배웠으니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사랑과 결혼의 비극을 선명히 보았기에 그 결말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특별해서 반드시 행복할 거라는. 하나같이 정확한 이유 없이 우리의 사랑은 꼭 그럴거라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말들. 그렇게 현실에서 혼자 비틀거리니 은혜는 주저없이 떠났을 것이다. 도망친 것은 은혜였을까. 나였을까. 이노우에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의 집에 네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세 번째 방문에는 그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니 3시간씩이나 흘러 뻔뻔하게 저녁식사까지 신세를 지고 말았다. 그래서 수금을 위한 네 번째 방문 때는 간단히 김밥과 제육볶음을 준비해 지난 저녁신세를 갚을 심산이었다. “곧 여행을 떠날 생각이야. 아주 오랫동안. 더 이상 여기에 있기 좀 힘들거든.” 돌이켜보면 이별은 항상 갑작스러웠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와의 만남이 이제 없을 거라는 확신을 했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가 먹어보고 싶다는 잡채를 좀 만들어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내 미간에 어렴풋이 묻어났다. 여기에 있기 힘들다는 말은 이미 거실 한쪽에 자리잡고 있던 그의 아내 사진들이 사라진 흔적들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고 집안 곳곳도 짐정리를 마친 상태였다. “여행지는 정하셨어요?” “아직은. 한국을 가볼까? 내가 한국어를 좀 하잖아.” 유일한 일본인 친구와 그간에 생긴 정 때문인지 이별 소식을 듣고 나서는 그의 농담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주 한 때, 감성적인 인간이라면 많은 감정들을 진심으로 흐느끼니 삶에 더 활력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기도 했지만 이때만큼은 살아 숨 쉬는 수많은 감정 속에 어두운 감정만 잘 느끼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삶이 더 불행할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결국 인간의 삶속에 행복과 불행은 같이 머무는 것이다. “네. 가셔서 한국인 애인이라도 만들어 보세요.” 이노우에는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크게 웃음소리를 내며 내게 한 방 먹었다는 듯 엄지를 내밀었다. “좋은 생각이야. 죽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나름 정성스레 싸온 음식들을 그와 같이 먹으며 고타츠의 온기가 잘 느껴지지 않을 무렵부터는 서서히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내 신문사의 주소로 종종 편지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일본인이라도 된 듯 당신이 편지를 보내주면 정말로 반갑고 기쁠 것이라며 과장된 연기를 하고 말았다. 아마 그 어색한 연기는 이노우에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되돌아가는 발걸음 속에도 마당 한 쪽에 이미 시들대로 시들어버린 수국만 덩그러니 눈에 들어왔다. 그 후로 일주일 쯤 지났을까. 이노우에의 집 우편함에 신문이 하나 둘 쌓이자 그가 말한 여행이 시작됐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신문함에 신문이 세 개가 쌓이는 날이 되고선 문득 그가 죽어버린 건 아닌지 직업병이 섞인 걱정이 되기도 했다.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나란히 겹쳐있는 신문 3개의 모습은 나같은 사람들에겐 이미 상징적인 장면이 되어버렸으니까. 이노우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안타까운 죽음이라 할 수 있을까. 이생에 남은 미련이 없으니 이만하면 됐다는 삶과의 안녕은 깔끔한 작별인사가 아닌가. 이노우에라면 죽음이 있기에 고귀한 삶이 완성된다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과 여행, 어느 쪽을 더 응원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 되건 어차피 이별이었지만 어느 쪽이든 가슴에 사무친 은밀한 응원이 될 것이다. 조간 배달이 끝나고선 이노우에가 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말하러 사무실에 들어서니 매니저가 기다렸다는 듯이 택배가 왔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날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택배라니. 커다란 택배상자에 적혀있는 보낸 이를 살펴보니 이노우에였다. 곧장 그 무거운 택배상자를 낑낑거리며 숙소로 가져와 열어보니 손바닥만한 편지와 그의 집에 있던 고타츠가 담겨있었다. ‘미안하네. 김 군. 오늘은 고타츠를 미리 데워놓지 못했어.’ 마지막까지 이노우에다운 농담이 담긴 편지를 읽고선 편지를 덮으려 하자 편지지 끝자락에 한글로 쓰여져 있던 문구를 미처 보지 못할 뻔했다. 이제는 한결 깔끔해진 글씨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안녕’
빛을 본 적 없는 이들의 텅 빈 거리는, 마른 종이 같다 해질녘 길에서 엎드린 사람은 하얀 얼굴로 꿈을 꾼다지 바람이 숨죽여 우는 것처럼 엎질러진 노을의 흔한 표정도 없이 저녁도 하얗게 지는 거라지 빛의 소란을 평정하는 백색의 밤 통증으로 휘어진 길목마다 몽롱한 회색빛 언어가 따라왔다 불면은 몸의 바깥이어서 색을 찾아가는 혈류에 잠기면 먹구름도 무지개를 그릴 텐데, 뜨겁게 타오른 바람이 굴절되고 있다 한 떼의 컬러가 증발할 때마다 멘델이 나누는 우열의 방식은 멜라닌 색소로 흘러드는 새하얀 비명들 그늘로 가는 누군가를 보면 투명한 홍채로 걸어간 순례처럼 바짝 끌어당긴 어둠을 안고 있다 붉어지는 방향으로 몸을 트는 동안 진짜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 작은 온기에도 날마다 타고 있다 * 유색 동물에서 날 때부터 피부나 머리카락, 눈 따위의 멜라닌 색소가 없거나 모자라는 것
새 살처럼 연한 쑥을 쓰다듬는다. 여름이 되면 수수깡처럼 속이 비어버리는 터라 봄이 다 지나기 전에 살찐 쑥 우듬지를 뚝뚝 잘라 저장해 두었는데, 추석을 며칠 앞두고 산적을 할 요량으로 양하밭을 더듬다가 뜻밖에 우북한 쑥 무더기를 보았다. 사위어가는 불땀처럼 흔적을 지우고 재만 남았던 자리여서 더욱이 놀랐다.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 옷을 태웠다. 요양병원에서 하루 날을 잡고 나와 당신 살림을 미리 정리했던 터라 유품이랄 것도 없었다. 병원 생활에 꼭 필요할 물건만 챙겼으니 옷가지 몇과 전화기가 전부였다. 잘 마른 쑥을 불쏘시개 삼아 작은 보따리를 던졌다. 그 안에는 입어보지도 못한 외투도 있었다. 물색이 너무 곱다고 저어했지만 상점주인과 내가 우측 좌측 밀어붙여 장만한 옷이었다. 영 내키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바꾸자고 했을 터인데 날 따뜻해지면 나들이옷을 하겠다고 두었다. 기껏 딸 집에 한 번씩 다녀가는 어머니다. 시골살이하는 내 집 뜰에서 새싹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잡초 사이에서 올라오는 머위나물이며 쑥을 한주먹 뜯어 와서는 먹기도 아깝게 이쁘다며 웃었다. 꽃 밴 수선화를 보고도 그랬다. 어디에 있다가 작년 모습 그대로 얼굴을 내미는지 신기해했는데 환절기 때면 한 차례씩 앓았던 당신에겐 어린 싹들이 더없이 대견했을 것이다. 그마저 오래 보지 못했다. 다음 해에는 입원을 하고 말았다. 병실에 있는 동안 꽃철은 두 번이나 지나갔지만, 외투는 나들이 한 번 못 해보고 결국 불더미 속에서 사그라졌다. 전화기만 가져와 서랍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소리도 없는 껍데기지만 어머니의 전화기는 내게도 특별한 물건이다. 아파트에서 혼자 사셨는데 가까이 지내던 내가 수시로 전화를 하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때로 받지 않을 때가 있었다. 외출했을 것을 가정해 어림한 시간까지 기다리다 끝내 연락이 되지 않을 때는 쭈뼛쭈뼛 머리카락이 섰다. 번번이 전화선이 빠져 있거나 전화기가 잘못 놓여 있었다. 이렇게 한번씩 소동이 나는 것을 친가나 외가도 알게 돼 외갓집에 가시면 외삼촌이, 큰집에 가면 사촌 오빠가 어머니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줬다. 하지만 시장이나 병원같이 예고 없는 출타가 문제였다. 협박도 하고 사정도 해가며 어머니의 목에 걸리게 된 전화기였다. 병원에서도 침대 난간에 걸어두고 자식들의 전화를 받았는데 딸네 뜰을 생각하는지 쌉싸름한 머위나물이며 연한 파나물, 된장 풀어 끓인 쑥국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어머니 가시고 흑백사진처럼 어두운 나날이 갔다. 당신과 연락이 안 되면 사색이 되어 뛰어다니던 나를 아시면서. 잘 도착했노라고, 여긴 날마다 봄날이고, 지천에 나물과 꽃이 가득하다고 전화 한 번 주면 안 되는 것인지. 겨우 연락이 닿은 어머니를 붙들고 어린아이처럼 울던 나를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나뿐인 건지. 얼마나 먼 길이길래 아직도 도착을 못 한 걸까. 한살이 마친 꽃자리처럼 어머니 떠난 자리가 허전해질 때면 무시로 전화기를 뒤적였다. 전화기 속에서 친구들은 손주 자랑으로 앞다툰다. 나 역시 꼬물거리는 손짓, 발짓이 귀여워 내 손주도 아닌데 몇 번이고 사진과 동영상을 돌려본다. 이집 저집 카톡 사진들을 훑는데 이게 웬일인가. ‘엄니 핸드폰’이 카톡에 떴다. 어머니가 쓸 때는 기능이 단순한 폴더폰이어서 카톡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가슴이 뛰었다. 액정을 뒤로 밀었다. 분명 어머니 번호가 맞았고 반갑기보다 무서웠다. 시아버지 초상을 치른 후 ‘아버님’ 이란 번호로 전화가 와서 놀란 적이 있다. 남편 명의로 해 드렸던 전화기를 받아와 다시 사용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때 망자들의 세상도 어디에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 좋아졌으니 저세상에도 변화가 있어 전화기 하나씩은 손에 들려있을지도 모른다는 맹랑한 상상을 했었다. 조심스럽게 화면을 늘렸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앳된 여자의 진달래 빛 상의가 환했다. 손가락 사이로 눈, 코, 입이 선명해졌다. 피부가 희고 잇속 보이는 웃음이 언뜻 우리 자매들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전화번호를 반납했으니 새 주인을 만난 것이 당연했다. 번호 잃은 어머니의 전화기는 멍텅구리가 되어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엄니 핸드폰’ 속 그녀를 자주 훔쳐보았다. 대강의 일상을 읽으며 취향이나 성격까지 마음대로 가늠했다. 여행지에서의 거침없는 웃음이 화면 안에서 쏟아질 때는 나도 덩달아 입이 벙그러졌다. 요즘은 연애를 하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까무잡잡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해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 가시고 우리 형제는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잠잠한 형제들의 단체 톡 방에 그간 이야기들을 나열했다. 아버지처럼 안경을 꼈다는 얘기도 했지만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노을을 바라보듯 어머니를 보내고 제각기 가슴에 검게 타 들어간 구석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움딸>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시집간 딸이 죽고 사위가 새 장가를 가서 맞은 부인을 전처의 친정에서는 움딸이라고 부른단다. 불탄 쑥밭에서 새로 돋은 가을 쑥을 움쑥이라고 부르는 이치와 같았다. 딸을 잃은 친정어머니와 전처의 흔적을 보아야 하는 새 부인이 서로 편한 관계일 리 없다. 소설 속에서 새 부인은 절대 움이 틀 수 없는 불모지에 있다. 하지만 아이의 외할머니 마음에 딸 같은 정이 움트는 것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가슴에 오래 남았었다. 뜬금없이 동생한테 문자가 왔다. “어머니 번호 쓰는 사람 행복한가 봐, 보기 좋네.” 풀숲을 헤매던 손이 움쑥을 쓰다듬으며 평온을 만났듯이 요즘도 한 번씩 전화기에 새 소식이 움트면 형제들과 대화를 엮는다. 서로의 불탄 마음 언덕을 어루만지며 보듬는다. 이렇게 어머니는 조금 더 우리를 돌보다 갈 모양이다. 열여덟 살에 시집을 왔다고 했다. 목화를 따다가 들녘 사람이 된 어머니는 솜털보다 순한 사람이었다. 쑥 향이 코 끝에 맴돌다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바람 닿는 그곳에도 쑥이 돋았는지 전화 걸고 싶다. 우리 형제들의 웃음이 만발한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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