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5-19 22:20 (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이성원 칼럼

[이성원의 ‘비낀 시선’] 도서관, 외형보다 기능이 중요하다

누가 봐도 근사한 도서관이 내가 사는 근처에 있다. 전주 아중호수도서관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감탄이 나오는,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이런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동안은 자부심을 느꼈다. 막상 찾아가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느 주말, 가볍게 책을 챙겨들고 도서관을 찾았다. 자부심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곳은 ‘도서관’이라기보다 ‘무료 카페’에 가까웠다. 공간 내 소음과 울림이 심했고, 책을 읽을 만한 공간도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달리 내부는 비좁다. 전체 좌석이 101석인데, 그 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일반 열람석은 12석에 불과하다. 공간분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절반에 가까운 50석은 호수 조망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고, 음악 감상 및 청음 좌석도 25석이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읽는 공간’은 가장 주변으로 밀려난 꼴이다. 열람실이 아닌 다른 공간들도 문제다. 좌석을 차지하기 위한 이른바 오픈런(개장 전 대기)이 적지 않고,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자기의 물건을 놔두고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일이 다반사다. 공공시설이 순환되는 이용 구조를 갖지 못한채, 소수의 일부 이용자들을 위한 고정 좌석처럼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도서관이 필요할까? 이 부근에는 이미 사설 카페가 적지 않다. 풍경을 즐기고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민간에서도 충분히 공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공공이 또 하나의 ‘카페형 공간’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공공의 역할이라면 민간이 대신하기 어려운 영역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도서관이 과거처럼 조용히 책만 읽는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늘날 도서관은 문화와 경험을 공유하는 열린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민들이 모여 소통하고 머물며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거실’ 역할은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카페’가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사람이 머물며 사유하고 스스로를 채워가는 공간이라는 본질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특히 아중지구는 거주 인구수는 많지만, 공공도서관 시설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도서관을 또하나 들이는 것이 공공예산의 적절한 사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주시가 ‘책의 도시’를 표방하며 특화 도서관을 확충해 온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산책로와 숲, 호수와 결합한 도서관은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시설 확충이라는 성과에 치우친 나머지, 정작 도서 구입과 프로그램 운영, 이용 환경 개선 같은 내실이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성동 기지제 주변에 새로운 도서관 건축이 한창이다. 아중호수도서관처럼 기지제를 내려다보는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이 사진찍기 좋은 곳에 그쳐서는 안된다. 공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치밀하게 시행했으면 좋겠다. 도서관은 건물의 외형이나 숫자로 평가되는 공간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에게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제는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도서관의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시민이 책을 읽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인지, 공공재로서 공정하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도서관의 생명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6월 3일 선거일이,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19 19:26

측근에 악마의 변호인이 꼭 필요한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고작 2주일이지만, 벌써부터 적지 않은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탕평의 원칙을 지키려는 조화로운 인사,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의지, 격식보다는 마음을 우선하는 태도, 국민에 다가서려는 모습 등 전임자와는 사뭇 다른 참신함이 느껴진다. 더욱이 우리지역과 관련해서는 송하진 지사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전북을 챙기겠다고 약속했다고 하니 슬그머니 기대를 가져보기도 한다.자유한국당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치권과 국민들의 전반적인 평가도 후한 것 같다. 자당 소속 정청래 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썼다는 문재인 정부 지금까지 100점이다. 짝짝짝이라는 말도 딱히 트집거리가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대통령이 잘해야 국민들이 편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그러나 민심은 무상(無常)하다. 지금의 찬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꿈같은 허니문도 영원하지는 않다. 지금부터 현실을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따지고 보면 지난 2주일은 대통령으로서도 숨 가쁜 시간이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취임했고, 줄줄이 인사를 챙겼고, 여러 행사와 장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차분하게 앉아서 선거 공약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따라서 진짜 국정을 챙기는 것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정책과 공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다보면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만족하는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이해가 상충되면 갈등과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냉정하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서 미리부터 잘 준비해야 문제를 줄이고 일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악마의 변호인이란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의 비판을 가함으로써 열띤 논의가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사람이다. 원래는 천주교의 본산인 바티칸에서 성인(sainthood)을 뽑는 시성(諡聖)의 과정에서 유래됐다. 시성의 신청인(Advocatus Dei)에 맞서 추천 후보의 불가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홀로 노라고 함으로써 토론을 활성화시키고 다른 대안을 모색할 여지를 마련하는 역할이다.만사가 막힘없이 순조롭게 풀린다고 생각할 때일수록 악마의 변호인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면 집단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반대나 토론이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결정이 너무 손쉽게 이뤄지기 때문에 그 결정이 안고 있는 단점을 사전에 살피기 어렵다. 따라서 집단지성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살리면서도 성급한 일반화라는 집단사고의 위험이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악마의 변호인이 있어야 한다.그럼 악마의 변호인은 누가 맡아야 하나? 한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는 반대하지 않으면서 맡은 역할 때문에 반대하는 체하거나 반대를 위해 반대를 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다고 한다. 내부에 있는 사람이 진정성을 가지고 반대를 할 때 그 효과가 가장 크다고 한다. 한 마디로 구색을 갖추기 위한 보여주기식 토론은 상대 정당의 생트집성 반대와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문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실패는 곧 국민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시각과 냉철한 비판능력을 가진 악마의 변호인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악마의 변호인들은 당의 내부에, 대통령의 측근에 있을 수록 좋다.

  • 오피니언
  • 이성원
  • 2017.05.24 23:02

짝퉁 뉴스는 그럴듯할수록 더 위험하다

짝퉁은 그럴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다. 진짜에 가까울수록 인기가 높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으면 최고의 자격을 부여받는다.짝퉁의 천국은 중국이다. 가짜 계란, 가짜 쇠고기 등 못 만드는 것이 없다. 심지어 시안에서는 가짜 병마용을 만들어놓고 관광객을 모집해 관람시킨 관광지가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형태가 있는 물건에만 짝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적생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에도 짝퉁이 넘친다.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전 세계적인 고민거리가 됐다.짝퉁 뉴스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정치사회적인 갈등을 대변한다. 기성 언론을 믿지 못하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SNS 등을 통해 정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객관성으로 포장된 기존 언론의 밋밋한 뉴스에 비해 훨씬 맛깔스러운 정보가 넘쳐난다. 대부분은 상대방을 물어뜯고 공격하는 것들이다.짝퉁 상품은 구분이 어렵지 않다. 허가받지 않고 생산된 것은 모두 짝퉁이다. 자연물을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짝퉁이다. 강력한 단속으로 근절할 수 있다. 짝퉁 뉴스는 간단치 않다. 촛불집회에 중국 유학생이 동원됐다거나 미국 동포가 JTBC를 대상으로 3000억 원 소송을 제기했다는 등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매우 정교하고 그럴 듯하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허접한 가짜뉴스는 가짜뉴스가 아니다. 아무리 요리조리 뜯어봐도 아리송한 것이 진짜 가짜뉴스다.우리는 이를 정크 뉴스라고 부른다. 사실을 외면한 거짓이 페이크 뉴스(fake news)라면, 사실을 왜곡한 것이 정크 뉴스(junk news)다. 사실의 조각을 가져다가 편의적으로 짜 맞추고 끼워 넣은 정크 뉴스는 매우 교묘하고 그럴 듯해서 참과 거짓으로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열량만 있고 영양가치가 없다는 점에서는 정크 푸드와 똑같다. 그럴듯한 겉모양(fact)만 있고 진실(truth)은 없기 때문이다.짝퉁 뉴스의 배후에는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정치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다. 일관성과 방향성을 잃은 정치판도 열기를 부추긴다. 럭비공처럼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치판 속에서는 아무리 파격적이고 믿기 힘든 뉴스라도 별다른 고민 없이 수용된다.세계 각국은 현재 짝퉁 뉴스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 10개국은 가짜 언론에 대응하는 국제센터 설립에 협력하기로 했고, 프랑스에서는 페이스북과 구글이 언론사들과 손잡고 차단대책을 세우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5월 장미대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포털사이트, 페이스북 등이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그러나 짝퉁 뉴스는 그 실체가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실체가 드러난 이후에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SNS 등을 타고 이미 넓게 퍼진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절박하게 돌아가는 대선판에서 짝퉁 뉴스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더욱이 가짜 뉴스(fake news)와 달리 정크 뉴스(junk news)는 진위의 경계가 모호해서 단속과 대응이 쉽지 않다. 언론의 자유 보장이라는 주장까지 결합되면 더더욱 어려워진다. 정크 푸드가 인간에 이롭지 않다고 해서 법으로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정크 뉴스가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정크 뉴스가 넘치는 세상이 국민 건강에 좋을리는 없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서 퍼뜨리는지 국민들이 따져보고 경계해야 한다. 겉 모양이 그럴듯하고 맛있게 보이는 것 일수록 화학조미료나 인공감미료가 첨가됐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 개개인이 정신차려야 짝퉁 뉴스가 사라지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

  • 오피니언
  • 이성원
  • 2017.03.29 23:02

국민이 떠받드는 대통령, 국민을 떠받드는 대통령

반기문 전 총장의 출마포기로 대선 시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 수치의 결과가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지도와 호감도 조사가 연일 이어지고, 후보자 진영 간의 공방도 심심치 않다. 눈치보고 견제하면서 서로 손을 잡기도 한다. 후보자들의 발걸음에서는 짧고 날카로운 겨울바람 소리가 들린다. 저마다 국민을 앞세우지만, 그 깊은 속을 알 길은 없다.언론에서는 대선 입지자들을 잠룡(潛龍)이라고 표현한다. 용(龍)은 왕위를 의미한다. 아직은 왕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왕위에 오를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전제군주 냄새가 심하게 난다.대통령이라는 이름도 그렇다. 대통령(大統領)을 글자 그대로 풀면 큰 통치를 하는 우두머리다. 국민을 위한 심부름꾼이라는 뜻으로 공무원을 공복(公僕)이라고 칭하는 것과 비교하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국민에 대한 희생과 봉사보다는 위력을 내세워 끌고 간다는 느낌이 강하다.영어로는 대통령을 President라고 한다. 앞에(pre-) 앉아 있는(sidere)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회를 보거나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골고루 듣고 설득하고 타협함으로써 대다수가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사람이다. 국민을 대표하지만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는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2조 2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7조 1항)는 헌법 조항에 비춰 봐도 대통령보다는 프레지던트가 더 알맞은 듯하다.대통령이라는 이름 탓일까? 대선을 바라보는 국민들 사이의 편 가르기가 거칠다.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설득수준을 넘어서 지지를 강요하기도 한다. 현 정권과 닮은 또 다른 정권이 들어서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경계심이 그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군주적 대통령제의 폐해, 그리고 타오르는 촛불과 그 촛불을 폄훼하고 짓밟는 행태를 똑똑히 목도했기 때문이리라.이런 상황에서 반기문 전 총장의 출마 포기는 의미가 자못 크다. 전통적인 여와 야의 대결구도에 대한 변화의 조짐이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에서는 황교안 총리니 뭐니 하면서 대안을 찾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듯하다. 보수의 필요성을 백번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국민들의 가슴에 안겨준 상처와 아픔에 비할 수 있겠는가?지금 상황이라면 보수진영에서는 후보자를 찾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집권당으로서의 국정실패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먼저다. 여권 후보가 9명이나 되니 어쩌니 하는 말들은 국민의 정서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인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환골탈태의 노력이 있어야 다시 미래를 기약할 수 있지 않겠는가.올 대선은 국민들의 잔치마당이 돼야 한다. 그 것이 매서운 추위 속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촛불을 들어 온 국민들에 대한 보답이다.타 후보에 대한 배척과 지지 후보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우상화와 다르지 않다. 국민을 떠받드는 봉사자가 아닌 국민이 떠받드는 군주를 뽑을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제는 누가 당선되느냐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어떤 나라와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가의 미래발전을 준비할 수 있을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 것이 국민이 왕이 되고 대통령이 국민의 종이 되는 길이다. 이 것이 또한 국민된 사람으로서의 책임이자 의무가 아닐까?

  • 오피니언
  • 이성원
  • 2017.02.08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