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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관광재단과 도의회 예산 충돌은 상호 신뢰 관계가 무너진 데서 비롯됐다. 어차피 견제 감시를 받아야 할 입장과 이를 추궁하는 구조의 역학 관계로 볼 때 그동안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문화관광재단 예산의 40%가 넘는 87억 원을 삭감한 것에 대한 정당성 여부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서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감정을 자극하며 합리적 판단이 아닌 개인의 사적 감정이 개입됐다는 것이 골자다. 두 기관 모두 이 같은 인식 위에서 상대방에게 공격적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본질 보다는 곁가지에만 치우쳤다는 지적이다. 물론 예산 삭감 문제가 예결위에서 최종 결말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누워 침 뱉기식' 의 공방전이 안타깝다. 그간 양측의 주장을 정리하면, 도의회가 올해초 직무 관련 형사처벌 대상자의 본부장 승진을 불합리한 인사로 문제 삼고 취소를 거듭 주장해 왔다는 것이다. 재단 측은 조직개편을 통해 '팀장 자율제' 를 도입해 팀장이 본부장으로, 또는 팀원으로 갈 수 있도록 조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팽팽한 기 싸움 끝에 도의회는 도덕적 해이를 드러낸 기관에 대해 그에 상응한 예산 삭감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재단 측은 그동안 못마땅하게 여기며 부정적 시선을 노골화한 상태에서 급기야는 보복성 예산 삭감으로 분풀이를 한 것이라고 맞섰다. 문제는 이 같이 날선 상황에서 더 불을 지른 것은 사적 감정의 개입설이다. 도의원과 인척 관계인 팀장이 팀원으로 옮긴 데 대해 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칼을 빼들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양쪽 분위기는 더욱 격앙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이 나서 집단 규탄셩명을 내고 해당 의원 사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예산 복원을 포석에 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확전 양상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감정만 부추기는 꼴이다. 오히려 사실 관계를 중심으로 재발 방지와 신뢰 회복에 당사자들이 적극 힘써야 할 때다. 이번 경우처럼 문제가 꼬이면 그것을 풀기 위한 과정이 쉽지 않고 에너지가 두 배 이상 소진된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함을 잃지 않고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정공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달리 우회적 방식을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고 악마화해서 반사 이익을 노리려는 꼼수는 되레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킨 보조금 수령의 악몽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함으로써 재단의 부정적 이미지만 소환한 꼴이 된다. 의회도 끊임없는 이해 충돌 논란 속에 갑질과 막말, 고압적 태도가 대의 기관의 위상을 깎아내린다는 지적에 직면해 있다. 그런 점에서 두 기관의 리스크 관리는 실패한 셈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한 해의 끝자락,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늘 정신없이 몰아치던 연말 일 더미에서 벗어나, 올해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 늘 바빴던 연말과 달라 조금 낯설기도 한 올해 연말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다 지난 몇 년간 마음의 여유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일들을 11월부터 하나둘씩 시작해보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영화 수록곡을 피아노로 연주해 보고 싶었던 마음을 들춰보았다. '언젠가'라는 말 뒤에 숨기 바빴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학원에 등록하고 나니 그 자체로 이미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았다. 왕초보 기초반부터니 원하는 곡을 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간 나를 위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많이 미루어왔다. 소속되어 일할 땐 근무시간과 환경이 여의치 않다고, 제대로 하지 못할 거면 하고 싶지 않다는 어설픈 완벽주의가 발목을 잡았다. 핑계는 쉽고 시작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내 상황에 변동이 생기면 지속이 어려울 텐데 하는 막연함도 컸다. 피아노 학원 등록은 그러한 핑계들로 벗어나 무언가를 시작하는 새 마음 그 자체였다.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고 나자 시작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혹시나 하는 생각 자체를 두려워 말자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기회가 된다면 해야지 하던 공부를 시작할 기회가 생겼다. 얼마 전의 나라면 고민하다 공부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었을 것이다. 첫발을 내딛자 다음은 확실히 수월했다. 그렇게 공부도, 시간 되면 다시 해야지 하던 봉사활동도 정식으로 시작하게 됐다. 물론 지금이 전과 비교해 시간 여유가 많아져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작년처럼 일하고 있었더라면 피아노가 아니라 피가 말리는 시간과 싸움 속에 살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내 계획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환상에 가까울 것이다. 올해 상황이 달라지며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반대로 재정적으로 불안정해졌다. 그로 인해 일 인분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괜스레 초라해지는 나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 포기되는 마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하자, 다음을 위해 준비하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용기가 채워진다. ‘언젠가’로 미루어두지 않는 것, 그 ‘언젠가’로부터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에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지 않다도 좋다. 책장에 쌓인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하거나 주변에 전할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으로 써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한 해를 잘 보내주고 새해를 시작하는 기쁜 마음으로 무엇이든 시작해보자. 이 지면을 끝으로 청춘예찬의 연재를 마무리하게 됐다. 나의 고민과 생각의 조각들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동시에 부끄럽기도 했다. 부족함이 많은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한다. 모두 평화롭고 충만한 연말이 되시길! 조아란 프리랜서
얼마 전 카페를 창업한 의뢰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의뢰인은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창업하기로 했습니다. 창업 초기에 임대료라도 줄여보기 위해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상가에 카페를 열었습니다. 당연히 부모님의 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해도 괜찮을거라 생각하고 사업자등록을 내기위해 저에게 왔는데 증여세의 문제가 있음을 일러두었습니다. 상증법에는 타인의 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하면서 이익을 얻게 되면 그 이익을 증여받은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타인은 가족도 포함되기에 의뢰인의 아버지 소유의 상가를 무상으로 사용하게 되면 증여세 과세대상이 됩니다. 부동산을 무상으로 사용하는 경우 1년 단위로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과세합니다. 이때 무상으로 부동산 사용을 개시한 날을 증여일로 보기 때문에 향후 5년간 발생할 증여이익을 합한 후에 현재가치로 환산해야 정확한 증여금액이 산출이 됩니다. 예를 들어 시가 30억원의 상가를 무상으로 사용할 경우 1년동안의 이익은 시가의 2%라고 상증법에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에 현재가치환산해서 계산하면 증여재산가액은 대략 2.2억원 정도가 되어 증여세신고를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가족의 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가가 30억원정도의 큰 규모의 부동산은 증여세가 나올수 있지만 소규모의 부동산을 무상 사용하면 증여세가 나오지 않습니다. 세법에서는 5년간의 증여이익이 1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증여세를 과세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만약 시가 10억원의 상가를 무상사용한다면 대락 7천5백만원정도가 증여이익이라 1억원 미만에 해당하여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만한 증여행위 중 하나를 소개해봤습니다. 무상으로 이익을 취했을 때에는 그로 인한 세금이 어떤게 있을지 미리 생각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옛날 성인(成人) 제도에서 남자는 16세에 이르면 호패를 찼다. 호패란 직사각형의 패(牌)로, 성명·나이·태어난 해의 간지(천간과 지지)를 새기고 관아의 직인을 찍어 일종의 신분증 같은 것이다, 외모로는 상투를 틀어 성인 인증을 받았다. 한편 성인은 이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그만한 자격을 인정받으면, 자격을 인정받은 만큼 책무도 완수해야 하고 가정이나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이것이 다 세상 이치다, 수신제가(修身齊家)는 원래 사전적 의미로는 몸과 마음을 닦은 연후에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수신제가는 원래 유교에서 강조하는 중요한 덕목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가정 내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오늘날에도 지도자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더 좁게 말하면, 모든 공직자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책무가 바로 수신제가로 귀결된다. 수신제가의 중요 핵심은 도덕적 수양이 도덕적 품성으로 정립되고, 이어서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되어, 가정 내 역할과 사회적 역할, 그리고 나아가 국가적 역할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는 수신제가 후 치국평천하 즉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 것이 정도(正道)임을 말한다.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의 책임과 의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유교적인 입장에서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만 현대에 와서도 그 옛날 못지않게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일부 정치지도자들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부적절한 언행을 다반사로 자행하다. ‘수신’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 가정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처지에서, 감히 치국을 논한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이는 순리에도 어긋나며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자격 없는 자들이 국정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아니한 지도자들로 인하여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되지 않고, 국민으로부터 인정도 받지 못하고 국정을 마비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현실로 이어질까, 국민의 한사람으로 심히 걱정스럽다. 하루빨리 본래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정신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방방곡곡이 수신제가한 지도자들로 가득 차기를 고대한다. 지도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진정으로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직시해 순리에 맞고 이치에 맞고 상식에 의한 정치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분골쇄신해야 한다. 국민의 답답한 가슴과 마음을 풀어주고 국민의 우려와 걱정을 하루빨리 해소해 주기를 바란다. 국가에는 미래에 희망을 안겨주고 국민에게는 걱정 없이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청하는 바이다. 조현건 전 전북지방병무청장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 영국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면 이 문구가 자주 떠오르곤 한다. 2024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나는 올해 어떻게 살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새해에 세운 목표를 되새기고 열심히 살아왔는지’, ‘주변의 가족, 친구, 이웃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따뜻한 일 년을 보냈는지’, ‘후회되는 일은 없는지’ 등등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올해 초에 받은 무릎 수술은 필자의 일 년 계획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해외 출장 일정을 소화하던 중 다소 무리하여 무릎의 상태가 나빠졌고, 걷기 힘든 상황이 되어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한 채 급하게 귀국하였다. 그 발단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네스코 지원사업 수행차 스리랑카에 방문했는데 교통사고로 무릎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완치하지 못한 무릎은 20년 간의 지속적인 충격으로 결국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수술을 받고 2주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느낀 점은 ’건강도 때가 있다.’라는 것이다. 아플 때 정신 차리고 문제가 된 무릎을 잘 보살피면서 서두르지 말고 살았어야 했는데, 내 몸은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나를 돌보기보다 급한 일에 쫓겨서 서두르다가 몸도 나빠지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은 병원 옆 제과점에서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병상에만 누워 있다가 목발을 짚고 옆 건물에 있는 제과점으로 가서 아내와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하지만 무릎이 많이 회복되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돌아가 급한 일에 쫓기며 소중한 일은 미루고 있는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간의 흐름은 사건의 축적으로 인식한다.’라는 어느 뇌과학자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따뜻한 시간만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텐데 그런 시간은 늘 급한 일에 밀려 소홀히 여기고 있다.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한정된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일, 급한 일, 꾸준히 해야 할 일’ 등 적어도 세 부류로 구분하여 급한 일 때문에 중요한 일이 미뤄지지 않도록 삶의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다. 매일 바쁘게 흘러가는 삶에서 잠시 멈춰서서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알아차리는 나만의 시간은 중요하다. 매일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삶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되새기게 된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 같은 소중한 사람들과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갖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인생의 목표를 ‘짧고 굵게 사는 것’이라며 매번 강조하던 필자의 친구가 있었다. 일 중심으로 살던 그 친구가 갑자기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 이후, 핼쑥해진 모습으로 나에게 자신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면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짧고 굵게 사는 것’보다 지혜로운 것을 깨달았다고 말해주었다.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겼지만, 무릎 때문에 크게 고생을 해보고 나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말이었다. 무릎 통증이 가끔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바쁜 일에 몰두하면서 건강관리를 경시했던 모습이 친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술 후 걷기 위해 애쓰던 시간을 기억하면서 내 몸의 소중함을 알고 친구의 말처럼 건강한 몸으로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나의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해왔지만, 이제는 고개를 들어 주변도 살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능기부, 사회봉사, 자원봉사 등 내가 속한 조직,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실천함으로써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야겠다. 연말연시에 우리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 자신을 내어주는 한 달이 되었으면 한다. 한 해가 끝나가고 새해를 기다리는 이 시점에서 잠시 멈추어서 지난 11개월의 삶을 되돌아보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고백하는 글을 묘비에 새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삶의 우선순위와 태도를 바꾸고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무슨 일이 됐든지 할거면 서둘러서 빨리 마무리 하고, 필요성이 없거나 현실적으로 추진이 불가능한 사업은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하나의 사례인데 군산시가 추진중인 항만역사관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는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다. 4년전 군산시는 장미동 내항 일원에 근대문화 중심도시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담아낼 '항만역사관' 건립 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12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22년까지 항만역사관을 완공할 예정이었다. 항만역사관에는 항만·역사체험관을 비롯해 교육·전시공간, 전망대 등을 갖춰 근대문화 중심도시의 대표성을 담아내는 랜드마크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일제강점기 쌀 수탈지역이었던 군산시의 역사적 아픔과 군산항의 다양한 변천과정 등을 담아내 항만교육장으로 활용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국비 확보에 실패한 후 뾰족한 대안도 찾지 못하면서 자칫 항만역사관 건립이 흐지부지되는 양상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조만간 결론을 내야한다. 여의치 않으면 질질 끌 필요도 없다. 군산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란 기대감만 잔뜩 키워놓고 실상을 보면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추진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초 시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가사업으로 항만역사관을 건립하려고 했으나 지난 2019년 기재부에서 매칭사업(해수부 50%·지자체 50%)을 권유하면서 이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군산시는 사업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열악한 재정여건을 감안하면 시 자체 예산으로 추진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기재부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일피일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젠 국비 50%지원을 받는 것도 어렵게 됐다. 정부 지침이 바뀌면서 국공립 박물관이나 역사관으로 조성되지 않는 이상, 사업 진행 시 정부 지원없이 지자체 부담으로만 항만역사관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항만역사관 건립에 필요한 예산 전체를 군산시가 떠안아야 하고 항만역사관의 관리나 운영 등에 소요되는 비용 역시 군산시가 부담해야 한다. 결국 국비지원이 없다면 군산시가 항만역사관을 건립하고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는 것은 버겁다는 얘기다. 사업을 계속할 건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 차분히 검토해서 결론을 내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나라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장류의 본고장’ 순창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순창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관광상품 고도화를 위해 추진하는 K-미식벨트 사업의 장류벨트로 지정된 곳으로, 고추장민속마을과 발효테마파크에서 해마다 장류축제를 열어 왔다. 지난 2004년에는 대한민국 제1호 지역특구인 장류산업특구로 지정돼 장류산업의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를 높였다. 또 세계발효소스박람회를 열어 전통 장류산업의 세계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순창군은 그동안 전통 장류에 대한 역사 연구와 제조법 전수교육을 시행하고 도시민 장독대 분양사업을 추진하는 등 전통 장류문화 보존·계승에 힘써왔다. 최근에는 ‘순창 장 담그는 날’ 행사를 열면서 지역민과 함께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기도 했다. 순창군은 명실공히 ‘발효식품의 메카’로 통한다. 1997년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을 조성하고, 2003년에는 ‘장류개발사업소’를 세우면서 장류산업을 지역 성장동력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이후 HACCP 메주공장, 전통절임류 세계화지원센터, 발효미생물관리센터, 장류연구소 등 생산·체험·연구시설을 속속 갖추고 전통 장류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또 고추장과 된장 등 장류를 생산·판매하는 고추장민속마을 인근에 복합놀이시설인 발효테마파크를 조성해 전통 장류문화를 관광산업으로도 연계하고 있다. 발효테마파크에는 지난 2021년 4월 ‘홍메관’ 개관을 시작으로 다양한 테마존이 형성돼 놀이, 전시, 체험, 교육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장류산업에 관광과 연구·개발사업까지 더해 6차산업지구로 부상하고 있는 순창이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보전, 계승하면서 이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야 하는 막중한 책무와 함께 장류산업 육성·세계화의 기회를 얻게 됐다. ‘대한민국 장류 1번지’ 순창군은 이제 장류문화·장류산업 세계화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국내외에서 우리 전통 장 문화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 시기, 전통 장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순창의 장류산업 활성화와 그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한다.
관례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특히, 법으로 제정돼 우리 사회에서 관례로 굳어졌다면 더욱 그렇다.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 일명 ‘대광법’은 1997년 제정됐다. 교통문제를 광역적인 차원에서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도시권 기준을 특별시와 광역시 유무로 정하면서 특정 지역을 소외시키는 지역차별법으로 전락했다. 필자가 그 당시 국회의원이었다면 필사적으로 반대했을 법이다. 그러나 이미 27년 전 대광법은 통과됐고, 오랜 세월 그 법에 근거해 국비 지원이 이뤄졌다. 전국적으로 약 177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동안 광역시가 없는 전북, 강원은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법은 효력의 범위에 따라 일반법과 특별법으로 구분된다. 일반법은 전 지역,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나 특별법은 특정한 지역이나 대상에게만 해당한다. 대광법은 특별법 형태를 띠고 있지만, 모순적으로 대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일반법 성격을 갖고 있다. 특정 지역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특정 지역만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대광법은 제정 당시부터 위헌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었다.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미 오랜 관례처럼 굳어진 현행법을 사수하려는 세력과 쉽지 않은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전북에 또 다른 ‘대광법’이 될 수도 있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바로 통합논의다. 대구‧경북에 이어 부산‧경남, 대전‧충남 등 광역권 통합이 전국적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월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는 2026년 7월 대구경북특별시 출범을 목표로, 행정 통합을 위한 공동 합의문에 서명했다. 11월에는 대전시장과 충남도지사가 통합 지자체 출범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부울경 특별연합 무산을 경험했던 부산시와 경남도도 최근 행정 통합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상황이 이러한데 마땅히 통합대상이 없는 전북은 조용하다. 침묵이 계속된다면 전북은 또 소외되고,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침묵은 더 이상 금이 아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한번 굳어진 체제를 뒤흔드는 것은 훨씬 어렵다. 전북도 일단 통합논의에 뛰어들어야 한다. 광역권 통합이 어렵다면 내부 통합을 통해 광역권 통합에 상응하는 정부 지원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새만금 메가시티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를 제안한다. 기존 새만금 권역인 군산, 김제, 부안에 익산까지 포함해 인구 100만 명의 메가시티를 조성하자는 구상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전북의 생존전략 ‘메가시티’>라는 제목의 의정단상에서도 전북 몫을 챙길 수 있는 돌파구로서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을 제안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북 1호 공약도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정부에게 요청함으로써 자칫 광역권 통합논의에서 소외될 수 있는 전북 몫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국정감사 과정에서 그동안 정치권이 전북 소외를 덮어두고 외면한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목소리를 높이니 어떤 변화가 있는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작정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전국이 통합논의로 분주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은 정부 지원을 끌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행정구역 정리가 쉽지 않아 지지부진했던 새만금 개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새만금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논의를 시작하자. 이춘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익산시갑
1987년 12월, 뱃속에 7개월 된 첫째를 품은 여성의 손을 잡은 나는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향하였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후보로 나선 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1988년 2월 4일, 첫째는 군부 출신 대통령이 취임한 나라에서 태고의 울음소리를 냈다. 그렇게 참된 민주주의와 진보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1992년 12월 18일, 다섯 살이 된 첫째와 두 살이 된 둘째는 부모 손에 끌려 다시 그이의 유세장에서 민주주의와 진보, 통일의 외침을 자장가 대신 들어야 했다. 1997년 12월 18일 밤, 드디어 두 아이와 그들의 부모는 온갖 거짓과 비난, 오해와 무지의 파도를 이기고 한 나라의 지도자로 우뚝 선 이의 승리를 함께하였다. 광복된 지 80년이 되어가는 이 나라에 대통령은 여러 명이 존재했지만, 위대한 정치인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은 어쩌면 단 한 사람뿐이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만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지역감정의 소산이야.”라거나, “너의 편견일 뿐이야.”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니 “빨갱이”니 하는 비난이 지나고 보니 모두 거짓이었던 것처럼, 역사는 그가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킬 것이다. 그가 지도자가 된 후, 우리 사회에서는 비로소 민주, 진보, 통일 세력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전에 대한민국에서 민주진보통일 세력은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다수를 차지하는 취약한 처지였다. 그 역시 보수의 심장 세력과 손을 잡아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우리 사회를 한 걸음 진보시켰다. 그는 대한민국 사회를 민주와 진보 세력이 다수를 차지하는 보다 앞선 사회로 개조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성과였으니, 나는 IMF 외환위기를 이른 시일 내에 극복시킨 그의 능력보다 이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무엇보다도 그이에게 위대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올곧은 자세 때문이다. 그이는 곡절이 지배해온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단 한 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설사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조차 그이는 옆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이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유 역시 바로 그러한 인간적 자세 때문일 것이다. 시류에 영합하고, 죽음 앞에 타협하며, 자리를 위해 철학을 굽히는 이들이 난무하는 인류 역사에서 그이와 같은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하기에 역사는 그러한 인물을 위인(偉人)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이가 태어나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 분명한(이는 그이가 자신의 고향 마을 이름을 따 후광(後廣)이라는 호를 만든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고향과 같은 뿌리를 가진 땅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은 고향을 떠나 있지만, 그 땅의 말투와 그 땅의 음식과 그 땅에서 함께 살아가던 이들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뒤를 이을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한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배지와 자리와 돈다발과 명성을 한없이 가벼이 여기는 반면, 민주주의와 약한 이웃과 정의로운 역사의 무게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쓰러질지언정 그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는 후배 지도자를 기다린다. 그 후배가 그이와 한강의 뒤를 이어 다시 한번 세계에 호남의 가치를 펼칠 것을 믿는다. 김흥식 도서출판 서해문집 대표
얼마 전 ‘전북특별자치도 통합 시‧군 상생발전에 관한 조례’ 제정을 위한 도민 설명회가 있었다. 설명회에선 조례 제정의 목적과 관련 법규 등이 안내되었고, 특히 완주군과 전주시의 통합을 전제로 한 재정분야 주요 쟁점과 통합 시‧군의 상생발전에 관한 조례 제정안의 주요 사항이 설명되었다. 준비된 자료집을 살피는 중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2024년 본예산 기준 일반회계 세출예산에서 교육분야 비중이 완주군은 1.2%(7,767억 중 94억)였고, 전주시는 0.3%(2조 3,337억 중 71억)였다. 두 지역을 합치면 약 0.5%에 불과한 예산이 교육분야에 쓰이고 있는 거다. 한마디로 참담한 수치다. 전주시 누리집 속 ‘교육도시 명성 회복 및 지역발전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다짐은 공허 그 자체이며, 지역의 교육공동체 구성원과 시민 모두를 기만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일반회계 기준으로 파주시는 2.5%, 화성시는 1.7%, 평택시와 아산시는 각각 1.3%와 0.7%의 예산을 교육분야에 편성하였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무얼까. 직전 연도보다 인구가 증가한 곳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주시 인구는 작년 8천여 명이 감소해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6번째로 감소폭이 컸다. 아산시의 경우 비율이 높진 않으나 직전년도 대비 16.83% 증가한 수치이며, 통합청주시도 일반회계 기준 1.4%가 넘는 예산을 교육분야에 배정하였다. 전주시보다 2.3배~8배의 예산이 교육에 쓰이는 이들 지역의 인구가 증가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파주시는 미래 교육도시 조성과 교육 발전 도모를 위한 ‘교육발전위원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위원회는 시의 교육 발전의 방향성과 교육경비 지원 사업을 논의하는 등 공교육 기반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 화성시는 ‘이음터’ 사업에만 109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였다. 이음터란 마을과 학교, 주민을 잇는 공간을 의미하며, 서로 배우고 함께 나누는 학습공동체, 마을의 누구나 선생님도, 학생도 될 수 있는 마을교육공동체를 지향한다. 완주군은 교육통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풀뿌리교육지원센터, 마을학교 등 다수의 마을교육공동체가 있으며, 학교-마을 교육과정 운영 등은 학교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선진 사례로 오래전부터 각광받아 왔다. 완주의 노하우와 전주의 인프라가 접목된다면 화성시보다 더 나은 마을교육 정책이 충분히 가능하다. 의왕시의 수학클리닉센터, 오산시의 메이커교육센터 등 수많은 우수사례도 결국 예산이 관건이다. 완주‧전주 간 통합을 전제로 한 논의가 본격화할 때 통합시는 반드시 미래교육도시라는 비전을 품어야 한다. ‘완주‧전주 상생발전방안’에서 교육 지원 예산을 현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는 부분은 아쉬움이 크다. 충분함을 넘어 과감한 교육예산 확보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2020년 ‘오산시 빅데이터 분석’에서 나타난 교육 및 돌봄시설 확충이 지역의 정주성 제고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 통합시의 미래 경쟁력은 각종 기득권 지켜주기에 있지 않다. 통합시의 명운과 명분은 미래 세대에 대한 과감한 투자 의지와 실천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거다. 유성동 좋은교육시민연대 대표
신가혜 개인전: 불량한 소란 2024. 12. 1 ~ 12 연석산우송미술관 송관 미술가: 신가혜 명 제: 허무하게 스며드는 빛 재 료: 캔버스 위에 유채 규 격: 140.3x109.0cm 제작년도: 2024 작품설명: 행운이나 불행, 사람에게 얘기치 못한 사건들을 분절했다. 당혹한 감정을 허무하고 유쾌하게 표현한 것. 예기치 못한 사건에 당면한 내적·외적 갈등을, 맥락을 생략해서 정황을 파악할 수 없게 배치했다. 찢진 만화의 한 페이지처럼 조각난 장면을 확장해서 제시한 듯하다. 미술가 약력: 신가혜는 서울·광명·완주에서 4회 개인전, 초단기 폭발 후 부랴부랴 함성발사, 을지산수, 그림스마스, 고독한 밤 찾아온 당신에게 전에 출품했다. 문리 (미술학 박사·미술평론가)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군부독재의 낡은 유산인 비상계엄이 12월 3일 밤 10시 25분에 선포되었고 150여 분 후인 4일 오전 1시께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안 가결로 물거품이 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되었다. 자칫 힘들여 쌓아온 민주주의가 무너질뻔한 일이 국회의 신속한 대처와 국민들의 호응으로 차단돼 다행이다. 느닷없는 계엄선포는 유신정권 이래 45년 만의 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대외 신인도도 끌어 내려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 전북자치도민들도 큰 충격을 받았고 각계각층에서 성명과 시위가 이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권위와 정당성을 상실했으므로 퇴진해야 마땅하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법절차를 지켜 탄핵을 진행하고 도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조건이나 절차 모두 위법하다. 친위 쿠데타적 내란죄가 명백하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선포 이유로 야당의 잇단 탄핵소추와 예산 삭감에 따른 국정차질, 그리고 북한의 위협으로 인한 반국가 세력 척결을 들었지만 이는 헌법 77조에 명시된 계엄선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 이유는 계속된 정치적 실패와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특검 등을 막기 위한 극단적 조치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이후 2년 7개월 동안 실정을 거듭했고 권력을 사유화했다. 그 결과 국가는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이를 보다 못한 1만 명이 넘는 대학교수와 종교계 인사들이 성명을 발표했고 최근에는 대학생들까지 가세했다. 촛불행진이 광화문 광장을 메웠고 전주에서도 충경로와 풍남문광장에서 시위가 잇달았다. 민주당 등 6개 야당은 4일 소속 의원 전원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제 윤 대통령은 탄핵열차에 올라타, 탄핵 아니면 하야를 결정해야 할 처지다. 하야하게 되면 곧 바로, 탄핵을 당하게 되면 헌재 결정을 거쳐 내년 3-4월께 차기 대선이 치러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게 그나마 국민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 것이다. 이번 사태는 윤 대통령의 독선이 초래한 국가적 불행이다. 정치권은 정당한 절차를 밟고 도민들도 여기에 슬기롭게 대처했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큰 사건사고 등을 날짜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3∙15 부정선거, 6∙3사태, 8∙18 도끼만행사건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깝게는 1979년 발생한 10∙26과 12∙12사태를 꼽을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인 박정희의 갑작스런 서거와 그를 추종했던 엘리트 정치장교들의 군사반란이 바로 뒤를 이었다. 그 이듬해인 1980년 잠깐 서울의 봄이 오는듯 했으나, 이는 권력의 속성을 모르는 순진한 착각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5∙17과 5∙18은 어쩌면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을뿐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12∙12사태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정치장교들은 어떻게든 권력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민초들은 더 이상 순치된 백성이 아니었다. 상식과 순리를 거슬렀을 경우 엄청난 저항과 유혈사태는 불을보듯 뻔했다. 박정희 정권이 몰락한 1979년 중동에서도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었다. 이란에 군림했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 팔라비 왕조가 그해 2월 11일 이슬람 혁명으로 붕괴된 것이다.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2500년 전통의 군주제는 폐지되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됐다. 이슬람 혁명은 인간다운 삶의 질 측면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실패한 혁명으로 볼 수도 있는데, 어쨋든 도도히 흐르는 민심과 맞서 군림했을때 그 끝은 파멸임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10∙26 하면 사람들은 흔히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서거(1979년)를 떠올리는데, 사실은 그로부터 꼭 70년전인 1909년 10월 26일 동북아 정세에 중대한 분수령이 됐던 일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 의거다. 공교롭게 10월 26일 같은 날이다. 지난 3일 저녁 사람들은 계엄령 선포 소식에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후진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전세계 10대 강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KBS 라디오에서는 정규방송 대신 행진곡과 함께 박종세 아나운서의 떨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 소위 혁명공약의 발표였다. 당연히 계엄령이 뒤따랐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또다시 계엄령이 선포되면 유혈사태는 불을보듯 뻔하고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지금까지 총 16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늘 유혈사태가 이어졌다. 루마니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에게 총칼을 겨누다가 끝내 처참한 말로를 겪게된 일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적 물줄기를 거스르면 그 끝은 결국 파멸 뿐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전북의 입법 현안인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대광법) 개정안 국회 상임위 심사가 또 미뤄졌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가 기재부와 협의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국토교통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당 법안 심사를 다시 17일로 연기한 것이다. 대광법 연내 처리를 결의한 전북 국회의원들도 국토교통부 제안을 받아들여 2주간 더 지켜보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대광법 개정안에 부정적 견해를 밝혀온 정부 입장에 여전히 변화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국회의 법안심사 일정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자칫하면 또 해를 넘기게 생겼다. 여기에 국토교통부가 대광법 개정안을 전북특별법(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및 글로벌 경제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특례 형태로 담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전북 정치권의 지적처럼 눈속임에 불과한 기만전술이다. 국토부의 제안대로 대광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 전북특별법에 특례형태로 포함되면 전북특별자치도 스스로 광역교통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말도 안되는 논리다. 그간 전북은 중앙정부의 광역교통망 구축계획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현행 대광법은 대도시권을 ‘특별시·광역시 및 그 도시와 같은 교통생활권에 있는 지역’으로 규정하고, 대도시권 광역교통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광역시가 없는 전북권역은 정부의 광역도로망과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서 번번이 누락됐다. 올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 일정은 17일 법안소위와 19일 전체회의만 남았다. 연내 본회의 통과를 위해서는 17일 국토교통위 법안소위에서 반드시 법안을 처리해야만 한다. 대광법 개정안은 전북의 해묵은 입법 현안이다.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기획재정부가 예산문제 등을 들어 반대하면서 21대 국회 종료로 폐기됐다. 이후 제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김윤덕 의원이 다시 대표발의했고, 전북 의원들도 법안처리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도 광역교통망 구축사업 지원 대상인 대도시권의 범위를 재설정해 전주권을 포함시켜야 한다. 전북 정치권이 ‘배수의 진’을 쳐야 할 때다. 정부·여당이 특정 지역을 차별하는 법률의 개정에 반대한다면 야당 단독처리까지 검토해야 한다.
‘조선 기록문화의 꽃’으로 꼽히는 <외규장각 의궤>가 고국 땅에 돌아온 것은 2011년이다.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에서 의궤를 약탈해간 것이 1866년 10월이니 꼭 145년 만의 귀환이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했던 박병선 박사가 의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1978년 10월. 그러나 프랑스와 우리나라 사이 반환 협상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1992년이었다. 의궤는 오랜 시간 진통을 겪고서야 돌아왔다. 그것도 온전한 귀환이 아니라 장기 임대 형식이었다.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 외규장각 의궤만을 위한 전용 공간 '외규장각 의궤실'이 문을 열었다. 초록색 비단으로 만든 의궤 표지 ‘책의(冊衣·책이 입는 옷)’를 디지털로 구현하고 어람용 의궤를 관람할 수 있는 상설전시실을 갖춘 ‘왕의 서고’다.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의 준비와 진행 과정, 의례의 절차, 소요된 경비, 참가 인원, 포상 내용 등 그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일종의 종합보고서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림을 함께 그려 넣어 이해를 도왔으니 후대에까지 제대로 전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의궤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대부터 순종이 작고한 1926년까지 꾸준히 제작됐다. '예치(禮治)와 문치(文治)'를 근간으로 했던 조선시대의 국가 통치 철학과 운영체계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기록이 의궤인 셈이다. 의궤는 기록물로서의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조선시대 주요 국가기록물은 같은 내용이 왕의 열람을 위한 어람용과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구분되어 제작됐다. 외규장각 의궤도 전체 297책 중 어람용 의궤는 290책이다. 비단 표지와 고운 종이, 숙련된 제본과 장식으로 제작된 어람용 의궤는 당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으로도 가치를 빛낸다. 1776년, 왕실도서관이자 학술과 정책 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했던 정조는 6년 뒤,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따로 설치했다.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자료 중에서도 왕실의 주요 물품과 도서를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번잡한 시절이다. ‘대통령 내외 공천 개입 의혹’이 몰고 온 파장이 심상치 않다. 점입가경,또 다른 의혹의 실체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선거 브로커에 휘둘려온 정치판의 현실은 참담하다. 이런 시절에 새롭게 만나게 된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 ‘예로써 국가를 다스리고, 질서를 지켜 조화로운 나라를 세우려던 조선의 통치이념’을 후대에 전하는 외규장각 의궤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가 새삼스럽다. 우리는 언제쯤 품격있는 정치를 볼 수 있을까. / 김은정 선임기자
평생을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 작가가 아닌 사람으로서 감히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만의 작품 정체성을 찾고자 답을 알 수 없는 혼자만의 끝없는 싸움을 해야만 한다. 길을 찾았다 해도 작업에 몰입하며 산다는 것이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작품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비용과 피할 수 없는 생계 걱정을 해야 하니 묵묵히 작업하는 작가들이 존경스럽다. 가끔 연예인 작가들이 뉴스에 등장하곤 한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개인전을 개최하거나 아트페어에 참가하면 쉽게 이슈가 된다. 비슷한 경력의 작가들보다 작품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도 쉽게 그리고 많이 판매가 된다. 작품성과 작품 가격이 주관적이라고는 하지만 웬만한 전시로 주목조차 받기 힘든 것이 당연한 미술 시장에서 갑자기 등장한 스타 작가들이 참으로 놀랍고 부럽다. 살아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던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든든한 후원자, 동생 테오 반 고흐가 있었다. 자신의 작품성을 끝까지 믿어 주고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었던 테오 덕분에 고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테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고흐의 멋진 작품들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에게 후원자의 존재는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후원자의 입장에서, 한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면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거나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회를 찾게 된다. 작가를 진심으로 존중하면서 작가의 인생과 작품을 이해하게 되고 때로는 작품도 구입한다. 좋은 후원자는 이처럼 작품을 보는 기준이 분명하다.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을 선택한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후원자의 존재만으로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다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가에게는 힘이 된다. 경제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큰 작가로서 성장해가는데 후원자는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전라북도 내에도 작가 지원과 관련된 여러 논의와 정책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 (전북도립미술관 청년작가 선정, 전주문화재단 전주신진 예술가 지원 등)과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여러 미술상 (교동미술상, 군산청년미술상, 우진청년미술상, 전북청년미술상 등)이 있다. 꾸준히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을 찾아 관심을 갖는 것은 고단한 순간에 잠시나마 숨 쉴 틈과 자신의 일에 의미를 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개인 후원자를 넘어 문화예술 분야에 후원하는 기업이 많아졌으면 한다. 전라북도는 지역 기업이 문화예술 후원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적극 홍보를 하고, 후원기업은 예술지원기금을 마련하여 <A기업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A기업 미술상> 등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기업에게는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업 이미지를 높여주며,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함께 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면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라 본다. 비로소 예향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도내 대학 미술 관련 학과가 점차 줄어든 것만 보아도 팍팍한 현실에 순수 미술을 고집하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작업하는 미련한(?) 작가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고 고귀하지 않을까. 작가 옆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내가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한 점씩 소장해보면 그 또한 소중한 일이 아닐까. 유가림 유휴열미술관 관장
“A씨는 고된 하루를 끝내고 드디어 월급을 손에 쥐었다. 마음이 설렜다. 오랜만에 아이들 옷도 사주고, 아내에게는 고생했다며 작은 선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길. A씨는 낯선 이와 어깨를 스친 뒤 주머니가 허전한 것을 깨달았다. 월급봉투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망연자실 한 채 한동안 서 있었다. 한 달간의 인생이, 가족들의 웃음이 모두 사라져 버린 듯했다.” 전북 지역에서 A씨처럼 월급을 절도(미국과 유럽에서는 임금체불을 ‘임금절도(Wage theft)’ 또는 ‘임금사기(Wage Fraud)’로 표현)당한, 아니 임금이 체불된 근로자가 2024년 10월 기준 6200여명, 체불금액은 410억 여 원에 이른다. 고용노동부 군산지청 관할인 군산, 부안, 고창지역만 해도 1600여명의 약 100억 원이 체불됐고, 전년에 비해 46% 이상 증가했다. 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사용자가 지급하는 금품’을 말한다. 근로자는 이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생활은 물론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한다. 따라서 임금을 체불하는 행위는 개인의 삶을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물건을 훔치는 절도는 범죄라고 생각하는 반면,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사업이 어려우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업주 또한 체불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임금체불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임금체불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의 엄정한 제재도 필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사회 구성원들의 ‘임금체불=중대범죄’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고용노동부 군산지청은 임금체불 예방과 청산은 물론, 임금체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왔다. 신고사건 처리 절차를 사법처리 중심으로 개선하고 사업장에 대한 사전 근로감독을 확대한 것 등이 그 예이다. 특히 올해 연말까지 ‘체불임금 집중청산 기간’을 운영하면서 기관장이 직접 현장에 나가 지도하고, 전담팀을 운영하여 체불근로자들이 신속히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있다. 또한 고액·집단체불 사업장은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고의 또는 악의적인 체불사업주는 강제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등 임금체불을 중대범죄로 상정하여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다. 반면, 임금을 체불하였으나 청산 의지가 있는 사업주에게는 융자를 지원하고, 임금체불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근로자에게는 생계비를 융자하여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활동도 병행 중이다. 지난 10월 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25년 10월 23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상습체불 사업주에 대한 신용제재, 정부지원사업 참여 제한, 공공입찰 불이익, 체불액의 3배에 달하는 손해배상 등 강력한 제재가 담겨있는 이 개정안의 시행은 임금체불 근절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식의 전환없이 단순히 제도개선이나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제재만으로는 임금체불이 근절되기 어렵다. 우리는 임금을 단순한 ‘돈’이 아닌 ‘근로자의 인생과 교환한 어떠한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체불하는 것은 심각한 인격권의 침해이자 중대범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는 A씨와 같이 월급을 소매치기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주의 임금체불에 대한 인식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며, 고용노동부 군산지청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전대환 고용노동부 군산지청장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르시던 개, 영심이 언니가 죽었다 영심이 언니가 없는 집은, 너무 허전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얼마나 속상하실까? 영심이 언니는 가끔 내 꿈에 나온다 할머니 할아버지 꿈에도 나올까? △ 서윤이는 언니처럼 대하며 즐겁게 놀아준 영심이가 없는 집에서 느끼는 쓸쓸한 마음을 ‘너무 허전하다’라는 시어로 잘 표현했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얼마나 속상하실까?’라며 어르신의 마음도 헤아리는 기특한 마음을 가졌어요. 영심이와 행복하게 지낸 순간이 떠오르도록 꿈속까지 영심이가 찾아온 따뜻한 그리움을 보면서 갑자기 예전에 애완견 ‘몽이’를 떠나보내고 슬픔을 느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함께 있을 때 소중함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고운 마음을 갖게 하는 동시예요./ 염숙희 아동문학가
가끔 전주시청 현관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을 보면 왠지 압도 당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카페와 어우러진 분위기, 아늑한 조명에서 편안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방 역할도 한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색깔있는 동네 책방으로 초대된 느낌의 이 공간은 경직된 공직 사회 이미지도 한결 부드럽게 해준다. 무엇보다 잊혀진 우리의 추억과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처럼 우리 동네에 맘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작고 소중한 책방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심지어 전주 덕진 연못 한 가운데는 물론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 공원 근처에 주로 자리잡고 있다. 고사 위기에 놓인 출판업과 달리 특유의 존재감을 뽐내는 책방들이 시민들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기기에 빼앗겼던 책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독서 환경이 개선되는 것에 비해 책을 읽는 사람은 거꾸로 줄어들면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 한때 전주 상권의 노른자위로 불린 동서관통로 사거리가 속칭 '민중서관 사거리' 로 유명세를 더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이 서점이 그곳에 터를 잡고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 로 인기를 끌면서 연인 약속 장소의 대명사가 됐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동안 책과 잡지를 들춰 보거나 추위와 무더위를 피해 서점에 들르곤 했다. 이렇게 애틋한 추억을 간직한 이 곳도 서점가 퇴조로 인해 자취를 감춘 지 꽤 오래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서점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자본이나 유통망에 얽매이지 않고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독립서점' 이 MZ세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고객이 추천하고 구하기 힘든 책과 이색 잡지, SF소설과 같은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며 북 콘서트, 전시회 같은 행사도 열린다. 좀처럼 찾지 않는 서점이 개성 만점의 서비스를 통해 1년새 70곳이 생겨 났다고 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만을 거부한 채 서점은 사람이 힐링하고 영감을 얻는 곳으로 진화 중이다. 곳곳의 동네 책방도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 디지털 속도가 너무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개되면서 생활 환경 또한 간편하고 편리한 것만 찾게 됐다. 과거 독서를 통해 세상의 안목을 키우고 지식을 습득한 것에 비하면 지금은 인터넷 의존도가 압도적이다. 이처럼 각박한 세태 속에서 자투리 시간이라도 활용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개권유익(開券有益)이라고 해서 책을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는 말이 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동네 책방이 늘어나는 데도 굳이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인터넷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성인 60%가 일 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디지털 시대 굳이 책을 통하지 않더라도 지식과 정보를 얻는 루트는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서점을 비롯해 도서관, 독서 서클 모임 등 고전 방식의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것들이 스마트폰 등장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디지털 혁명이 우리의 일상을 폭넓게 지배한다 해도 추억의 아날로그 감성만은 쉽게 만족시킬 순 없다. 빛바랜 책 갈피 속에서 발견한 단풍잎을 보며 켜켜이 쌓인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고, 아내에게 썼던 20대 연애 편지 묶음을 통해 새삼 느껴지는 뜨거운 감정도 인터넷에선 불가능하다. 세상이 편리한 디지털 세계로 빠져 들수록 문득 생각나는 건 힘들고 궁핍했던 시절의 간절함이다. 그 때는 책 속에 만물의 우주가 있었다.
전북특별자치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선언한 가운데 범도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올림픽 유치 기원 체육인 한마음대회'가 지난 2일 전북체육회관 야외광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미래형 올림픽을 치를 풍부한 문화자원, 첨단 미래 기술을 보유한 K-문화의 수도인 전북이 개최 도시로 선정되도록 전 도민이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특이한 것은 전북이 중심이 돼 충청권, 호남권, 대구·경북과 힘을 합쳐 비수도권에 유치하겠다는 거다. 많은 이들이 비웃고 있다. 서울과는 아예 비교조차 안된다는 거다. 어떤 이들은 새만금잼버리 대회 하나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곳에서 무슨 올림픽이냐고 비아냥 거린다. 이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비단 야구뿐 아니라 세상사 모든게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K-문화의 수도인 전북에서 180만 도민의 올림픽 유치 염원이 커지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자는 간절함이 점차 불타오르고 있다. 현실은 본격적인 시작도 하기 전부터 ‘2036 하계 올림픽 전북 유치’에 대한 냉기류가 흐른다. 외부가 아닌 전북내부의 기류가 그렇다. 마치 외부에서 볼때 전북에 갈등과 균열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일부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 광범위하게 만연한 열패감 극복이 전북 유치의 관건이다. 세상사 될 이유를 찾으면 10가지가 있고, 안될 구실을 찾으면 곧바로 10가지가 있다고 한다. 전북은 광주, 충남, 대전, 세종 등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경기장 부족 우려를 메우겠다는 거다. 이번의 화두는 지역균형발전에서 찾을 수 있다. 집중과 축적의 논리라면 언제나 한두번씩 올림픽을 치러본 곳에서 하는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의 제전이 아닌 특정 지역, 특정 집단의 축제에 불과하다. 월드컵을 열사의 나라 카타르에서 했던게 엊그제 일이다. 이젠 아프리카에서도 지구촌의 대제전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정 도시 한곳에 경기를 집중하지 않고 수백 km 떨어진 구장에서 경기를 치름으로써 명실공히 인류의 화합과 상생을 다짐하는 기회를 갖는게 시대적 조류다. 내년 2월이면 국내 유치 도시가 결정된다. 전북인들끼리 찬반 논란이나 벌이면서 손가락질 할 때가 아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다. 가난하게 행동하면 헐벗게 되고, 복 받게끔 행동하면 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올림픽 유치를 눈앞에 둔 전북인들이 한번쯤 미래를 깊이 고민해봐야 할 때다.
[경제칼럼]인구가 깡패다
[전북칼럼]피지컬AI와 에너지 대전환과 협업이 우리의 미래다
트롯 유감
서양미술, 인물 초상화의 역사
[문화마주보기]첫눈
생(生)은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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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형’이 이겼다
모순이 거듭 겹치는 아이러니 양산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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