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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바라보기] 전라삼현의 멋스러움

전라삼현은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전통예술이다. 삼현(三絃)이란 의미로 여러 맥락이 있지만 우선 악기 명칭의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등 세 가지 현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피리 둘과 대금, 해금, 장구, 북이 각각 하나로 구성되어 무용에 반주로 쓰이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의 음악적 갈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중 오늘 논하고자 하는 전라삼현은 후자인 삼현육각의 삼현이다. 전라삼현에는 우리 지역이 가진 특별한 음악과 그러한 음악을 기본으로 추어지는 전통 춤이 있다. 경상도에는 영남삼현이라 칭하는 음악이 있으며 전라남도에는 남도삼현이 있어서 각각의 음악적 색깔과 형식을 달리하고 느끼는 감성 또한 저마다 색다르다. 영남삼현은 주로 통영지방의 별신굿, 승전무에서 음악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영남 특유의 메나리조가 일품이다. 남도삼현은 진도 씻김굿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으로 육자배기조의 슬프고도 구성진 가락 속에 조상 넋을 풀어주는 음악이다. 이러한 각 지역의 삼현에 견주어 전라북도는 전라삼현이라는 독특한 민삼현(民三鉉)과 농삼현(弄三絃)이 존재하는데 그러한 음악 안에는 지역의 예술적 가치를 높인 가락과 시김새가 있다. 전라삼현육각는 전국 유일하게 농삼현과 민삼현, 두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농삼현은 관아의 행사나 무용 반주로 연주하기 위해 세련되게 정비한 삼현이며, 민삼현은 본래부터 민가에서 쓰던 가락으로 주로 계면조를 이루고 있는 음악을 말한다. 음악의 전문적인 내용보다 느끼는 감흥을 말하자면 일정한 규칙과 단아함의 멋스러움이 농삼현에는 있다. 다른 지역에서 느끼지 못했던 가락의 흐름과 생소함 그것은 바로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또한 굳굳하고 강직한 평우조가 많아 경기대풍류보다 풀어지는 가락은 덜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강직함이 있다는 의미다. 더욱 특별한 것은 마두군악(느린타령)이란 장단인데 3분박을 늘여 논 3.3.2.2.2장단으로 행악을 하기위해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전라북도의 삼현 장단이다. 민삼현은 민간제례에도 사용되었다. 민삼현을 주체로 해서 시김새를 붙여 놓은 것이 바로 농삼현인 것이다. 전라북도에는 전라삼현육각의 음악과 전라삼현승무라는 춤이 함께 전라북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전라삼현육각의 음악은 2011년에 보존회의 성과로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46호 지정되어 전태준 명인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전라삼현승무라는 명칭의 전통춤은 2013년 문정근 명무에 의해서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보전과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이러한 전라삼현의 특별한 전통음악과 춤은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우리 지역의 자랑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21 16:54

지금 우리에겐 ‘소외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가부장제의 원리와 체제 속에서 혹은 국가적 재난 속에서 송두리째 삶을 빼앗기고도 이미 잊어버렸거나 잊히고 있는, 잃어버렸거나 잃어가고 있는,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의 삶에 주목했습니다. 전북지역 여성문학연구자 집단 지식공동체 지지배배의 시선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배제되고 잊힌 존재들에게 향한다. 이 시선을 쫓다 보면 우린 어떤 가치와 양식들이 삶의 바깥으로 추방되고, 누락되고, 배치됐는지 확인하게 된다. 지식공동체 지지배배는 김은혜 문학만화연구자, 유인실 문학연구자, 이숙 문학연구자, 최은영 영상문학연구자, 최정 극작가 등 다섯 명의 신진 여성문학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연구집단이다. 이들은 전북대 대학원 국문과 동문으로 시, 소설, 희곡, 만화, 영화 등 각기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지역, 여성, 비정규직이라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연대를 모색했다. 이들 중 몇몇은 서너 살 어린아이들을 곁에 두고 학위논문을 쓰고, 몇은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야 자신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모두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오면서 틈틈이 자신의 연구 영역을 확장해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인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김은혜 문학연구자는 여성으로, 문학연구자로 살아온 우린 서로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며 우리가 직접 몸으로 부딪쳐 왔던 동시대적 삶과 문학을 연결해 폭넓게 공부하고 싶었다. 이를 대중과 함께 공유하며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며 모임을 조직한 동기를 밝혔다. 이들은 이러한 주제 의식을 갖고 작은도서관, 동네책방, 청년몰 등에서 광장의 한복판에서 여성서사 몰아쳐 읽기로 강연을 이어갔다. 연구자들은 그 과정에서 대중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격의 없이 소통할 때는 현장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감회를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공동 연구 작업의 첫 번째 산물로 기록비평집 <문학으로 잇다-공감을 넘어 통감으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시, 소설, 희곡, 영화, 만화 등 다양한 장르별 작품을 대상으로 2015년 이후 우리 사회에 제기된 여성 문제와 한국 역사에서 되풀이되고 미해결된 채 되돌아오는 재난과 참사의 고통을 집중 조명했다. 책에 실린 10편의 글은 그동안 지배 문법에 침윤된 문학대중 서사에서 왜곡되고 비민주적인 상상력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정동의 시선을 공통점으로 한다. 특히 연구자들의 연구, 비평글 이외에 지난해 가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지식공동체 지지배배의 연구자들과 대중 시민들이 만나 재난 이후의 문학이라는 의제를 함께 토론해 문제의식을 확장해 본 담론 현장의 기록도 함께 실었다. 향후에는 재난 이후의 문학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계획이다. 김 문학연구자는 과거 한국 사회가 통과해 온 재난 속에서 반복되고 재생산되는 재난의 고통에 주목하고자 한다며 참사 이후의 과정이 누구의 힘에 의해 전개됐는지, 누구의 눈으로 참사가 해석되고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누구에 의해 구성되는지 등 참사의 위치성과 접근의 층위를 통찰하는 작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1.21 16:44

국립무형유산원장 3개월 만에 ‘빈자리’

채수희 국립무형유산원장이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장기 교육에 들어가면서 원장 자리가 당분간 공석으로 남게 됐다. 문화재청에서는 청내 고위공무원 수가 적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지만, 지역에서는 기관장의 잦은 인사로 인한 혼선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와 관련 유산원 개관 이후 지역사회에서 줄곧 제기됐던 소통 부족의 한 원인으로 기관장의 짧은 임기가 지적되기도 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0월 문을 연 국립무형유산원은 개원 후 현재까지 모두 6명의 원장이 재임했다. 2014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김홍동 초대 원장(5개월), 2015년 3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최맹식 원장(10개월), 2016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조현중 원장(1년 8개월),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조현중 원장(1년 3개월), 2019년 1월부터 2020년 9월까지 김연수 원장(1년 9개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채수희 원장(3개월) 등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15일자로 부임한 채 원장이 올해 1월 20일자로 장기 교육을 떠나며 유산원장 자리는 3개월 만에 공석이 됐다. 이와 같은 인사에 대해 문화재청은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관의 조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부득이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국장급 고위공무원 장기 교육은 국장급 간부는 필수적으로 수료해야 하는 교육 과정이다. 현재 문화재청 3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본청 4명, 소속기관 5명 등 총 9명이다. 이 가운데 장기 교육 대상이 아닌 개방형 공모 직위는 3명, 부처 교류는 1명, 장기 교육 기 이수자는 3명, 하반기 공로연수 예정자는 1명이다. 즉 장기 교육 대상이 채 원장뿐이다. 후임 인선은 문화재청 보통승진심사위원회에서 후보자를 결정추천하면 인사혁신처 고위공무원 임용심사위원회에서 인사 심사 절차를 거친다. 이 절차는 약 2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전까지는 기획운영과장이 원장 직무대리를 맡는다. 지역 문화계 인사는 문화재청의 고위공무원 인사 자원이 없다고 하더라도, 부임 3개월 만에 이같이 갑작스럽게 인사를 내는 것은 긍정적으로 비치진 않는다며 잦은 인사는 업무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저해한다. 유산원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기관장의 최소 임기를 보장하는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장급 인사 재량의 폭이 작아 이와 같은 인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후임 인사에서는 이번과 같은 부분을 보완하겠다며 현재 후보자 인선 과정을 밟고 있다. 최대한 빨리 절차를 진행해 공백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1.19 17:34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 사람들의 유별난 옥(玉) 사랑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 마한 사람들은 구슬을 귀하게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거나 목이나 귀에 매달기도 하지만, 금과 은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라 기록하고 있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보면 마한유적 가운데 특히 분묘유적에서 다량의 옥이 부장되어 있기 때문에 문헌기록의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마한 사람들은 평소에 옥으로 장식된 화려한 옷과 옥으로 몸치장을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은 후에도 부장해 주었으니 마한 사람들의 옥에 대한 유별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마한 성립기로 추정되는 부여 합송리 유적에서 철기와 공반되어 대롱옥이 한반도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옥은 중국에서 철기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동시대의 완주 갈동과 신풍리에서 납바륨 유리인 관옥, 벽옥, 환옥이 출토 되었고, 최근에는 출토 예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마한 전기에 해당하는 주구묘 단계에서 백제 영역화 이후 축조된 후기의 대형 분구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다량의 옥이 부장되고 있어서 마한 전시기를 통해 전통적으로 옥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소개하면 3~4세기 무렵의 고창지역의 만동유적과 남산리 분구묘에서도 다량의 옥이 발견되었다. 5세기를 중심연대로 하는 완주 상운리 마한 분구묘에서는 전체 160기의 매장시설의 46%에 해당하는 74기의 매장시설에서 6000여 점의 옥이 출토되었다. 마한문화의 전통이 백제 영역화 이후까지 지속된 영산강유역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5세기 무렵의 대형 분구묘인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2700여 점, 정촌 고분에서 1117여 점의 옥이 부장되어 있어 상상을 초월하는 마한 사람들의 옥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옥을 만든 재료는 수정, 마노, 호박, 돌, 흙 등 광물질과 유리를 이용하고 있는데, 유리제품은 적색, 녹색, 황색. 주황색, 무색 등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다. 한편 그 형태에 따라 둥근 옥,대롱 옥, 굽은 옥, 대추모양 옥 등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옥을 제작하는 기술은 첫째, 틀에 찍어내는 방법, 둘째, 유리 용액에 봉을 사용하여 감아 말아 만드는 방법, 셋째, 유리를 불어서 유리관을 만든 후 잘라 만드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익산 송학동 마한 집자리 유적에서는 거푸집이 수습되어 실제 생활에서 옥을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거품집은 연질의 토제품이며 평면형태는 방형에 가깝고 상면은 볼록하고 뒷면은 약간 오목한 편이다. 상면에는 테두리를 제외하고 직경 0.3cm의 원공이 0.2cm의 간격으로 열을 지어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 중앙에는 0.1cm 미만의 구멍이 관통되어 있다. 그 내부에서는 옥 찌꺼기가 일부 남아 있어 옥을 녹여 찍어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19 17:26

전북문화관광재단, 2021년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공모

전북문화관광재단(이하 재단)이 2월 5일까지 2021년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구 문진금) 공모를 진행한다. 이번 공모는 △문화예술창작 육성심화창작집문예지 지원 △문화예술기반구축 지원 △청년예술창작 지원 3개 분야이다. 총사업비는 13억7900만 원이다. 문화예술창작 육성 분야는 정기연주회, 발표회, 개인전, 소규모 전시와 공연 등에 대해 예술인으로 활동 중인 개인 또는 단체가 지원할 수 있다. 문학을 제외한 시각예술 300만 원, 공연예술 400만 원, 다원예술 400만 원씩 정액 지원한다. 문화예술창작 심화 분야는 대규모 전시, 공연 등 문학을 제외한 시각공연다원 예술로 최소 400만 원에서 최대 10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올해부터 별도로 신청하는 문화예술창작 창작집 발간 분야는 시, 소설, 수필, 희곡 등 창작집 발간을, 문화예술창작 문예지 발간 분야는 협회지, 동인지, 문예지 발간을 지원한다. 또 문화예술기반구축 분야는 예술인 발굴육성사업과 다양한 연구 활동에 최소 400만 원에서 최대 1000만 원을 지원한다. 전체 예산의 10%를 의무 배정하는 청년예술창작 분야는 도내에 거주하는 40세 이하 청년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에 문학 200만 원, 시각예술 300만 원, 공연다원예술 400만 원을 지원한다. 심사 결과는 3월 중 재단 홈페이지와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1.18 18:26

전북일보, 15년 연속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대상 선정

전북일보가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대상 언론사에 15년 연속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지역신문발전위원회(위원장 류한호, 이하 지발위)는 2021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대상사로 전북일보 등 전국 77개 언론사를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에 선정된 언론사는 일간지 29개사와 지역주간지 48개사로, 일간지는 지난해보다 4개사, 주간지는 3개사가 늘었다. 전북 지역에서는 전북일보 및 전북도민일보전라일보 등 3개 일간지가 포함됐다.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 언론사는 국내외 기획취재와 장비, 지역민참여보도 등을 지원받게 된다. 전북일보는 이번 선정에 따라 타 신문사와 차별화된 기획취재, 문화시민기자 활용 지원, 지역공동체 캠페인 등 관련 사업을 통해 독자 서비스의 질을 높일 계획이다. 특히 지역신문 활용교육 지원 등 신문 경쟁력 강화와 독자 참여 사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지발위는 앞서 일정 조건을 충족한 지역 신문사들을 대상으로 편집 자율권과 경영 건전성윤리 자율강령 준수도인사관리 투명성교육훈련제도공정성 등에 대한 서류심사 및 실사를 통해 우선 지원 대상사를 선정했다. 다음은 지발위 2021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 △ 일간지 29개사 전북일보, 강원도민일보, 강원일보, 경기일보, 경남도민일보, 경남신문, 경남일보, 경북매일, 경북일보, 경상일보, 경인일보, 광남일보, 광주매일신문, 광주일보, 국제신문, 매일신문, 무등일보, 부산일보, 영남일보, 울산매일, 인천일보, 전남매일, 전남일보, 전라일보, 전북도민일보, 제민일보, 중도일보, 중부매일, 충청투데이 △ 주간지 48개사 강진우리신문, 거제신문, 경주신문, 고령신문, 고성신문, 고양신문, 고창신문, 광양만신문, 광양시민신문, 광양신문(광양뉴스), 김포신문, 남해시대, 뉴스사천, 뉴스서천, 담양곡성타임스, 담양군민신문, 담양뉴스, 담양자치신문, 당진시대, 당진신문, 무주신문(무주미디어협동조합), 보은사람들, 보은신문, 부안독립신문, 서귀포신문, 서산시대, 성주신문, 영광신문, 영암신문, 영암우리신문(영암언론협동조합), 영주시민신문(영주미디어), 영천시민신문, 옥천신문, 용인시민신문, 울산저널, 원주투데이, 주간설악신문, 주간태안신문, 주간함양, 청양신문, 춘천사람들, 평택시민신문(평택일보), 평택시사신문, 한산신문, 해남신문, 해남우리신문, 홍성신문, 홍주신문(홍주일보)

  • 문화일반
  • 백세종
  • 2021.01.18 18:17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모방에 대하여

장 제온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기원전 4세기 때의 화가 제욱시스가 포도송이를 들고 있는 소년을 그렸는데 새가 포도를 쪼려고 하였다. 그때 같이 있던 화가 아펠레스가 새들이 자네의 그림을 평가한다라고 하였다. 그 말의 뜻인즉, 제욱시스가 소년을 좀 더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면 소년이 무서워 새가 감히 포도를 탐내진 못하였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술에 대한 여러 가지를 깨닫게 한다. 제욱시스가 아펠레스의 말을 듣고 그림을 어떻게 고쳤을까? 소년을 고쳤을까 아니면 포도를 고쳤을까? 다시 말해서 소년을 고쳤다면 소년을 더욱 사실적으로 그렸을 것이고 즉 고도의 기술력을 동원하였을 터이고, 포도를 고쳤다면 포도를 근사한 것에게서 벗어나 더욱 본질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여기서 미술의 본질이라는 것은 인문학적 가치 탐구를 말하며 인간 내면의 생각, 정서, 느낌 등을 형태나 색채 등의 조형 요소를 통하여 시각적, 공간적, 조형적으로 표현해내고 그것을 이해하며 감상하는 활동 모두를 의미한다) 제욱시스가 소년을 수정하여 포도송이와 같이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에게는 어떻게 모방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고, 이와 반대로 포도송이를 다시 수정했다면 그에게는 무엇을 모방하는가가 문제로 대두되었다. 포도송이를 들고 있는 소년의 물질적이며 감각적 외양보다는 그 본성, 즉 참다운 존재를 발견하고 그것을 모방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 모방 개념의 핵심이며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치는 예술로의 길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사람들에게는 천성적으로 모방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모방한 것에게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저서 「형이상학」에서 그가 말하려는 모방의 개념이 있다. 모방이란 결코 대상의 흉내나 고지식한 사실성이 아니고 그것의 미적 재현이다. 참고로 그의 스승이었던 플라톤은 미의 본질을 사람의 감각 작용보다도 이성적 인식, 반성의 대상으로 삼았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18 16:56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대한민국 “완주군”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전라북도 완주군을 최대 국비 100억원을 지원하는 제2차 법정 문화도시 5곳 중 한 곳으로 선정했다.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지역 문화환경이며 예술로도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작은 완주군이 강원도 강릉시, 경상남도 김해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라북도의 문화 위상을 알렸다. 전라북도 완주의 문화도시 선정은 전국 82개 군 가운데 처음이자 호남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며 전국 지정된 유명 도시 5곳 중 하나로 선택되었으니 실로 감격스럽고 기대감과 함께 감사함의 마음이 크다. 완주의 인구는 9만 명이고 함께 선정된 강릉의 인구는 21만 명이다. 또한, 김해의 인구는 54만 명이나 된다. 그리 크지 않은 군에 이러한 쾌거를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열이 있었을까. 완주의 명칭은 전주의 옛 이름인 완산주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한다. 전주시에도 완산주란 이름을 따온 완산구가 있다. 전주시와 완주군은 원래 같은 지역이자 같은 행정구였다. 일제강점기 때 도농 분리정책으로 인해 도시지역인 전주부와 농촌 지역인 완주군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큰 지역에서 나누어진 행정구역을 안고 문화예술의 창의 발전에도 많은 어려움과 장애가 있었을 것이다. 완주 출신의 예술가들은 참으로 많았다. 현재 활동 중인 대중 예술가로는 배우 출신이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유인촌, 정글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진 코미디언 김병만 등이 있고 저명한 전통예술가로는 판소리 명창 권삼득, 거문고 명인 강동일, 완제 시조 명창 임산본, 판소리 고법 명고 주봉신 등 많은 명창명인이 계신다. 또한,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칭송받던 청암 이삼만, 전북 근현대미술사에 업적을 남긴 권영술 화백 등 미술사에 큰 획을 남기신 분들도 많다. 이러듯 국가적 큰 예산을 받게 되고 저명한 많은 예술가를 낳아 활동하며 그들의 예술혼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화의 환경과 이루고자 하는 공동체의 관심일 것이다. 특히 전통문화는 더욱더 그렇다. 전통문화는 삶의 바탕에서 나오는 근본이기에 의식주를 이루고 있는 공동체에서 만들어지며 계승되어 진다. 그러한 공통의 생활공간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보장받고 자유로운 문화적 상상력과 전승을 도울 수 있는 자생력은 꼭 필요한 것이다. 전라북도 완주군은 코로나19란 시대적 난관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그러한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를 인정하고 치하하며 법정 문화도시 5곳 중 전라북도 완주군을 선정하여 대한민국의 문화 중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기쁘고 전라북도 예술가로서 자랑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14 16:43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의 풍속

풍속의 사전적 의미는 옛날부터 그 사회에 행하여 온 사람의 생활 전방에 걸친 습관이라 정의 되어 있다. 우리는 한 사회 속에서 전해오는 습관이란 종족이나 국가라는 틀 속에서 공동체적인 행위를 통해 생성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그에 의해서 개인은 공동체에 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풍속은 한 사회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는 다양한 색깔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마한의 풍속에 대한 기록은 매우 소략하지만 중국측 사서인 「삼국지」나 「후한서」에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고학적인 자료를 통해서 마한 풍속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기도 하다. 먼저 일상생활에서 풍속을 살펴보면 기강이 흐려서 각 나라의 도읍에는 비록 우두머리(主帥)가 있지만 읍락에 뒤섞여 살기 때문에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예가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마한의 집자리 발굴조사를 통해서 보면 대규모의 취락에서 개별 집자리의 규모는 균등한 편이며, 특히 그 가운데에서 뚜렷하게 규모가 커서 지배자의 거처라 할 만한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출토유물을 보더라도 특정 집자리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권위의 상징인 위세품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 서열화의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인의 눈에 비친 기록처럼 마한사회가 예의가 없고 무질서한 사회라기보다는 마한 사회의 특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곧 농경을 생업으로 하는 혈연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지배와 피지배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협동이 필요한 평등한 공동체 사회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거처는 초가에 토실을 만들어 사는데, 그 모양은 마치 무덤과 같았으며 그 문은 윗부분에 있다. 온 집안 식구가 함께 살며 장유와 남녀의 구별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수의 구덩이 유구가 군집을 이루고 발견되고 있는데, 입구는 원형과 방형이 주를 이루고 그 폭은 1~2m이며, 깊이는 2~3m로서 다양하다. 특히 2001년 사적 제 433호로 지정된 공주 장선리 토실유적에서 39기가 발견되어 마한의 집자리 구조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출토되는 생활용 토기와 문헌기록을 토대로 마한인의 거처인 토실이라는 결론에 접근되고 있다. 전북지역에서는 익산 왕궁 사덕유적에서 마한에서 백제시대에 걸치는 집자리 105기와 토실유구 124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토실은 계절적인 필요에 의해서 사용되었던 주거시설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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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2 16:40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변화하는 예술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인 막스 쟈콥은 세상의 첫 번째 시인은 하늘은 푸르다라고 했고 그 후의 시인은 당신의 눈은 하늘처럼 푸르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 먼 훗날의 시인은 당신 눈에 하늘이 보인다고 말했을 것이고 오늘의 시인은 하늘과 같은 당신의 눈이라고 감탄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는 하늘=당신의 눈이라는 등식이 하늘은 푸르다는 기본 시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오늘을 알기 위해서는 어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되어 왔음을 상기시키는 의도이며, 예술적 표현은 오늘의 것만 보고 난해하다거나 이해를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술은 시대적 산물이고 현실의 거울이다. 밀레의 만종이 명화라고 해서 지금까지도 그 시각 그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수공적인 재생산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역사 속의 전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통만 고집하는 것보다 전통에 의거하여 또 다른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어려운 그림을 그리는 대명사로 흔히 피카소를 떠올린다. 그러나 피카소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절에 살았더라면 모나리자를 그렸을 것이고 반대로 다빈치가 20세기를 살았다면 게르니카의 학살과 같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도회의 네거리를 갓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분명히 우리의 것이었음에도 보기에 어색하여 뒤돌아보는 경우와 같다. 우리는 흔히 세대차이라는 말을 한다. 한 세대를 30년이라 한다면 그 짧은 세월에도 우리의 사고가 다름을 말하는 것인데 하물며 몇백년이 지나도 우리의 사고나 풍습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시대가 변하면 우리의 생각이나 풍습도 변한다. 그래서 예술에서는 발전이 아니라 변화라는 말을 사용해야 되는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눈으로 그림을 평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화가가 관객의 생소한 느낌을 책임지려고 해서도 안 될 말이다. 지나 온 세월을 인식하고 오늘을 봐야 비로소 하늘=당신의 눈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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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1 17:14

[전라감사 100인 열전] 부자간에 전라감사를 지낸 함부림과 함우치

함부림과 함우치는 부자지간으로 아버지 함부림은 정종 2년에, 아들 함우치는 세조 7년에 전라감사로 부임하였다. 함부림은 신흥세력으로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 3등에 책봉되었으며, 8도 감사를 두루 역임하고 형조판서에 올랐다. 형조의랑으로 삼척에 파견되어 왕씨일족을 제거하였고, 1차 왕자의 난 때 방석을 세자로 옹위했다는 혐의를 받고 파직되었다. 함우치는 성종 즉위후 좌리공신 4등에 책봉되었으며 형조판서에 올랐다. △ 개국공신에 책봉, 왕씨 일족 제거 함부림(咸傅霖)은 고려말 공민왕 9년(1360)에 태어나 조선초 태종 10년(1410)]에 졸하였다. 그의 본관은 강릉이며, 자(字)는 윤물(潤物),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정평(定平)이다. 그의 아버지는 검교중추원학사 승경(承慶)이다. 함부림의 동생 부열(傅說)은 조선건국에 반대하였으며 공양왕 묘소 아래에 묻혔다. 함부림 출생에 관해 개국 공신인 정도전, 조영규, 하륜 등과 함께 차씨 집안 서녀(庶女)의 자손들이고, 이런 출생을 감추기 위해 하륜 등이 차원부와 그 일족 70여명을 죽이고 해주 신광사에 보관되어 있는 차씨족보목판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것이 차씨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함부림은 고려말 우왕 11년(1385)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에 등용되었다. 고려말 무신들이 궁내의 세력을 믿고 문신들을 멸시하였는데, 함부림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무신들과 맞서다가 파직되었다. 공양왕 4년(1392) 태조를 추대하는 모의에 참여하여 예조의랑(議郞)에 발탁되고, 개성소윤으로서 개국 공신 3등에 책봉되었다. 태조 3년(1394) 4월 왕씨 일족을 제거하기 위해 관원들을 삼척, 강화, 거제도에 보낼 때 함부림은 형조의랑으로 삼척에 파견되어 이 일을 주도하였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삼척으로 배소를 옮겼다가 이 때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공양왕의 묘소는 고양에 있지만 삼척에도 있다. △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품 함부림은 정종 2년(1400) 1월 24일에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다음해 태종 1년 3월까지 재임하였다. 재임기간이 1년 2개월 정도 된다. 태종 1년 1월에 다시 안렴사제로 돌아가 조휴(趙休)가 전라도안렴사로 제수되었으나 부임은 3월에 하였다. 전라감사 재임 중에 그는 <석전의식(釋奠儀式)>간행을 추진하여 후임인 조휴와 전주판관 허조(許稠)에 의해 간행을 보게 되었다. 권근의 『양촌집』에 <석전의식>의 발문이 전한다. <용재총화>, <연려실기술> 등에 전라감사 때 기생과 얽혔던 일화가 전한다. 그가 젊었을 때에 화류계에서 방랑하였으나, 직무에 임해서는 신중하였고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전라감사로 선정을 베풀어 소문이 자자하였다. 전주기생을 사랑하여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호패를 주고 몰래 따라오라고 하였다. 기생이 전주부윤 이언에게 이를 고하고 하직인사를 올리니 이언이 함부림을 절조 있는 선비로 여겼는데 하품의 인물이라고 욕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함부림의 솔직함을 좋아하고 이언의 빡빡함을 비웃었다. <태종실록>에 실려 있는 그의 졸기에 전라감사로서 치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의 성품을 논하면서, 함부림은 강직하여 지키는 바가 있고, 조정에 서서 과감하게 말하고 업무 처리에 민첩하여, 이르는 곳마다 직책을 잘 수행하였다. 경기, 충청, 전라, 황해 도관찰출척사와 동북면 도순문찰리사를 역임하였는데, 청렴결백한 것으로 자임하여 감사의 위엄을 떨치고, 일찍이 굽히거나 흔들리지 않으니, 부내(部內)가 두려워하고 복종하였다.라고 하였다. 18세기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보면 8도의 감사를 모두 지낸 사람은 함부림과 반석평(潘碩枰) 두 사람뿐이라고 하였다. △ 방석을 세자로 옹립했다는 혐의로 파직 태종 2년(1402) 도관찰사제가 복구되면서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태종 3년(1403) 예문관 제학에 임명되고, 이어 참지의정부사에 제수되어 명성군(溟城君)에서 동원군(東原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함부림은 태종 5년(1405) 대사헌으로 있을 때, 앞서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과 더불어 왕자 방석을 옹립하였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태종 10년 형조판서에 임용되었으나 곧바로 파직되어, 그해 51세로 죽었다. 그는 태종 10년에 정몽주의 행장을 지었다. △ 쓸쓸했던 말년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함공이 만년에 병이 잦았다. 4남 1녀로 딸 하나가 있었는데 딸이 먼저 죽었다. 이때에 술과 여자를 멀리하여 첩도 두지 않았다. 아들들은 외방에 나가고 집안에 돌봐줄 사람이 없자 식사의 공궤를 거르는 일이 여러 번 있기에 이르렀다. 전에 친하였던 여의(女醫)가 이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니 공이 남루한 옷을 입고 초석(草席)에 길게 누워 있는데 다만 하인 한사람만이 곁에 모시고 있을 뿐이었다. 여의가 말하기를 어르신 같은 호걸이 어찌 이와 같이 곤궁하게 되었습니까하니 공이 한 마디 말도 없이 똑바로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용재총화>와 <연려실기술>에 전하는 일화이다. 그의 묘소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중학교 운동장 부근에 있다가 고덕지구 택지 조성사업으로 1982년 이천시 호법면 안평리 산 105번지로 옮겼다. 여기에는 그의 부조묘도 있다. 함부림은 김제시 진봉면 두곡서원에 정몽주, 강원기와 함께 배향되었는데, 1970년에 서원을 복설하면서 배향에서 빠졌다. △ 그의 아들 함우치 함우치(咸禹治, 1408~1479)의 자는 문명(文命), 호는 송담(松潭)이다. 문음으로 벼슬에 나와 고부군수, 나주목사, 동부승지, 함길도감사, 대사헌, 충청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세조 7년 7월 9일에 전라감사에 부임하였으며 이듬해 5월 15일 대사헌이 되어 상경하였다. 부자간에 전라감사를 지낸 사례 중의 하나이다. 전라감사 재임시 중국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전라도로 보내어 거주하게 하였는데, 이들 중국인들에게 생활의 방편을 마련해 주고, 혼인을 시켜 주는 등 잘 돌보아 주었다. 전라감사 역임후 대사헌, 경상감사, 형조참판을 지내고 성종 즉위후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좌리공신 4등에 책봉되어 참찬으로 전보되었다. 시호는 평양(平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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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11 16:45

전북예총 창립 60주년, 소재호 회장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 추진”

소재호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장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이하 전북예총)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가운데 소재호 회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예술인이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주체적인 능력 배양이 필요하다. 전북예총은 문화예술의 발현, 교육, 보존을 삼위일체로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소 회장은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 위기 속에서 전북지역 예술계도 전반적으로 침체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전북예총의 경우 전북민속예술축제, 전라예술제, 영호남 예술교류, 오지마을 문화투어 등 기존 사업들을 차질없이 추진한 데 만족하면서도 관객 호응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창립 60주년을 맞은 전북예총은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 숙원사업인 무주장수순창예총 설립을 매듭지을 계획이다. 현재 전북예총은 10개 협회(건축국악무용문인미술사진연극연예영화음악)와 11개 시군지부(전주군산익산정읍남원김제진안고창부안완주임실)로 구성돼 있다. 소 회장은 무주, 장수, 순창예총 설립과 관련해 해당지역 예술인 중 대표성을 띤 인물로 추천위원장을 위촉할 예정이다. 지지부진했던 지부 설립을 이번엔 마무리 짓겠다는 선언적 의미라고 설명하며 도내 어떤 지역민들도 문화예술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조직을 만들어 문화예술 참여 기회를 넓히고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예술의 의미 중 하나는 내면적 충일(充溢)로 예술이 없으면 삶이 단조로워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교사 출신 시인답게 소 회장은 배움의 자세도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 교류 확대, 회원 교육 강화이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몽골, 캄보디아, 중국 등 3개국과 예술 교류를 추진할 계획이다. 나아가 광주-미술처럼 예술 장르별 선진 시도와 교류하는 것도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라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나 강연 등 교육 기능도 강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특히 소 회장은 전북예총이 60주년을 맞은 만큼 지역 문화예술의 산증인인 원로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예우도 찬찬히 챙겨볼 생각이다. 국제 교류나 교육 등으로 젊은 엘리트를 육성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일명 명인장으로 예술 장르별 원로예술인들이 예우받는 문화적 풍토를 조성하고 싶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전북예총은 1962년 창립했다. 제12대 김해강(문학), 제3대 오명순(국악), 제4대 박동화(연극), 제5대 신근(문학), 제6대 신석정(문학), 제7대 박상남(문학), 제8대 최승범(문학), 제9대 천길량(음악), 제10대 장명수(건축), 제11대 한소희(미술), 제121314대 임종술(국악), 제15대 이봉섭(영화), 제16대 이기반(문학), 제17대 배기봉(국악), 제1819대 김남곤(문학), 제20대 황병근(국악), 제212223대 선기현(미술), 제24대 소재호(문학) 씨가 연합회장을 맡아 이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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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민주
  • 2021.01.10 17:44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도드리와 골동반(骨董飯)

전통음악에서 나오는 도드리란 되도는 것 즉 돌아든다는 말로 반복이 있는 음악을 말한다. 궁중음악 정악인 연례악이나 궁 밖의 민속악에서도 고루 찾아볼 수 있었던 장단인 도드리는 3소박의 보통 빠르기로 6박으로 되어있다. 보통 전통음악을 공부한 사람은 도드리를 칭할 때 미환입. 아명으론 수연장지곡이라 많이 부른다. 국악곡 중에는 도드리란 말이 곡명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즉 미환입의 밑도드리, 세환입의 웃도드리라는 곡의 명칭으로 정악 보허자(步虛子)를 변주시켜 연주하는 음악이 있으며 영산회상의 여러 곡 중 상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처럼 부분을 반복하여 연주하는 곡들도 있다. 그러한 곡은 연주된 악장을 마치고 다시금 되풀이하여 돌아간다는 의미로 반복을 상용했는데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지나온 선율을 잊지 말고 새로운 가락을 맞이하자는 뜻이 내포되어있지 않았을까? 자, 그러면 새해이니 우리의 전통음식을 한번 살펴보자. 신년의 새로움을 준비하고 지난해의 기억을 돌이키며 특별히 선조들이 즐겨 먹던 전통음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골동반(骨董飯)이다. 민간에서 비빔밥이라 알려진 궁중의 골동반은 섣달그믐날에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그러한 비빔밥을 묵은해의 마지막 식사로 하여 지난 나쁜 액을 없애고 새해 첫날의 첫 음식을 떡국으로 먹으며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었다. 묵은해의 마지막 날 먹었던 비빔밥은 밥에 갖은 나물과 쇠고기, 고명을 올려 약고추장에 비벼 먹는 섞어 비빈 밥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빔밥은 1800년대 말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부ㅤ븸밥으로 처음 표기되었는데 여기서 골동(汨董)이란 여러가지 것을 한곳에 섞는다는 의미로 재료만큼이나 이름도 다양했다. 이러한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특별한 새로운 맛과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고추장을 밥과 다양한 재료에 넣고 비벼 먹는 방식이 널리 알려져 오늘날의 비빔밥을 만들게 된다. 전주의 비빔밥은 17세기 무렵 전주의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 팔던 콩나물 비빔밥이 오늘날의 전주비빔밥으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30여 가지나 되는데 계절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들이 조금씩 다르다. 전주비빔밥의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콩나물로 예로부터 전주콩나물은 인근의 임실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콩을 전주의 맑은 물로 길러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한다. 2021년 1월. 새롭게 맞이한 신년. 도드리와 골동반처럼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며 지난 액을 잊고 새로움을 준비해 보자.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과 고뇌를 겪고 있지만 그러한 과거를 간직하되 새로운 날을 기대하며 섣달그믐날 골동반처럼 묵은 것은 지워버리자. 우리의 선조가 도드리란 의미를 안고 돌아봄과 맞이함으로 역사의 음악 속에 알렸듯이 우리도 그렇게 새로움을 준비하고 기대하며 노력하자. 옛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그러나 그 새로운 것 또한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를 잊지 말고 대비하고 또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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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7 17:49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의 상징 새모양 토기

고대 국가의 궁전이나 종교 건축에서 기둥이나 기와 등 각종 부재에 다양한 동물 모양으로 장식하여 권위나 신앙적 측면을 장엄하게 보이도록 한 예들을 살필 수 있다.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분묘나 생활유적에서 동물 모양의 유물들이 출토되는데 이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사상이나 신앙적인 면을 엿 볼수 있게 한다. 대표적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러진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인들의 세계관을,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오리모양 토기는 그들의 내세관을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마한의 분묘나 집자리에서도 새를 모티브로 만든 새모양 토기(鳥形土器)가 기원전후에서 5세기의 유적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이 토기는 분묘나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예에서 보면 형태상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아 일상용과 매장용으로 구분해서 특별히 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마한 전시기를 통해 새모양 토기가 상징적인 의례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서 마한을 상징하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새모양 토기의 형태를 보면 새의 부리에 해당하는 곳은 물을 따르는 주구(注口)로 새의 등위에는 물을 채우는 주입구(注入口)로서 작게 돌출되었다. 주구의 반대편에는 약간 치켜세워 올려 좌우 대칭처럼 보이나 실제적으로는 손잡이 기능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내부에는 빈 공간을 마련하여 물이나 술 같은 유체를 채울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른 시기의 것들은 새의 모양에 충실하고 있으나 점차 오늘날 주전자 형태로 변화되는 것을 살필 수 있다. 보물 1823호로 지정된 「농경문청동기」는 따비와 같은 농기구를 이용하여 땅을 일구는 청동기 시대의 농경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중요한 유물이다. 이 유물의 뒷면에는 좌우에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새기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새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로서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한 새는 씨앗을 가져다주는 곡령으로서 의미뿐만 아니라 농사의 풍요까지도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한의 솟대위에는 새 장식을 올려놓아 하늘과 인간세계를 매개하는 존재로 새를 인식하고 있었다. 마한 사람들은 한반도 서해안 일대에 자리잡고 농경을 생업경제 기반으로 생활을 영위해 오면서 수확의 풍요로움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하는 소박함을 새모양 토기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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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1.01.05 18:20

도내 최초 한옥도서관 ‘익산 금마도서관’ 13일부터 시범운영 돌입

도내 최초 한옥도서관인 익산 금마도서관이 건립 공사를 마무리하고 오는 13일부터 시범 운영에 본격 돌입한다. 금마도서관은 지역에서 6번째로 건립된 시립도서관으로 고도보존육성지구 한옥이주단지 내 위치하고 있다. 총사업비 19억원 투입을 통해 연면적 543㎡,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조성됐다. 지하 1층에 종합자료실, 다목적실, 연속간행물 코너 등이, 지상 1층에는 어린이 자료실, 대청마루, 야외마당 등이 들어섰으며 1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금마도서관만의 특색을 살린 열린 공간으로 대청마루와 야외마당 등 한옥이 가진 고즈넉하고 멋스러운 정취를 느낄수 있도록 조성됐으며, 별도 코너로 마한백제 특화자료를 구비한 종합자료실도 구비돼 있다. 아울러 시범운영 기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열람과 착석은 불가능하나 도서대출과 반납, 회원가입, 상호대차 서비스등은 이용이 가능하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그동안 북동부 지역에 도서관이 없어 인근 지역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던 만큼 이번 금마도서관 조성을 계기로 소외 지역의 지식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독서문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이밖에도 독서문화 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영등도서관 증축, 리모델링 공사와 유천도서관 건립 공사(동산동행정복지센터 부지 내)를 추진하고 있으며 각각 내년 2월과 11월 준공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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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철호
  • 2021.01.05 17:38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그림을 잘 그려야만 화가인가?

조르주 루오, '그리스도의 얼굴' 우선 잘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 그린다? 잘 만든다? 잘 꾸민다?에서 잘이라는 것은 기능인가 개념인가? 이런 것들을 수학 문제처럼 확실하게 갈라서 말할 순 없다. 그림을 딱 잘라 정의할 수 있을까? 미술은 인문학의 기초이며 자름 길이다. 그리고 인문학이란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그에 기초하여 인식의 전환과 새로운 실천적 행위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기에 다들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려는 것이리라. 그림이 무엇이더냐는 김홍도의 질문에 신윤복이 답한다. 그림은 그리움입니다. 그리워서 그리고, 그리고 나니 또다시 그리워지는 것입니다라 답하지만, 이것 또한 그의 의견일 뿐이다. 마음을 그린다는 말도, 마음에 그린다는 말도 모두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반공승공멸공의 시대에 북한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렸던 윤이상 재독 음악가의 회상에 의하면 북한 교향악단을 지휘하려는데 연주가들의 기계처럼 정확한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교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한다. 기원전 이집트 미술처럼 획일적인 양식만을 요구한다면, 감상자들에게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통제한다면 미술이 인본주의라거나 인문학의 지름길이라 말할 수는 없다. 추(醜)함이 미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도 벌써 오래되었지만 본래 아름다움이 미술의 본질이었다 하자. 아름다움은 아름이 앎이라 하여 한문 지(知)로 환원시켜 많이 알고 깨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아름을 한 아름, 두 아름으로 해석하여 아름을 내 것으로 풀이하여 아름을 내 것다움을 개성(個性)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화가가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 어떤 이론? 책은 왜 읽어?에서 잘은 기능이다. 즉 닮게 그리는 기능, 그 많은 기능 중에 오직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화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전에 없던 새로움을 창조하고 발전시키고 융성하게 만든 사람이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을 감각하고, 감동하고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새해부터 이승우 화백의 미술이야기가 연재됩니다. 이 화백은 중국 청도서울전주익산군산고흥에서 개인전 32회를 했고, 저서는 <미술을 찾아서>, <현대미술의 감상과 이해>, <아동미술>, <색채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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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4 18:16

제1회 전주 인디뮤직 어워드 올해의 음원, 음반상에 노야, 고니아

제1회 전주 인디뮤직 어워드 7개 분야 수상자가 결정됐다. 어워드 주최 측인 포풀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올해의 음원상에 노야의 넌 보란 듯이 예쁜 꽃 되니까를 선정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또 고니아의 A Tension은 올해의 음반상과 재즈트랙상으로 2관왕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올해의 힙합트랙상은 권도경과 콜유마인의 Higher Self, 올해의 포크&블루스 트랙은 마인드바디앤소울의 귀향, 올해의 락&메탈 트랙은 슬로우진의 아무르가 각각 선정됐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번 시상식은 비대면으로 개최됐다. 심사대상은 2018년 12월 1일부터 지난해 11월 30일까지 전주에서 발표된 대중음악 작품이며, 시상은 종합부문(음원상, 음반상), 장르부문(힙합, 재즈, 발라드/R&B, 포크/블루스, 락/메탈)으로 총 7개 부문으로 진행됐다. 이번 어워드 심사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인 박희아 기자, 한국대중음악상, 한국힙합어워즈 선정위원이자 EBS 스페이스 공감과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인 김학선 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동윤 평론가가 함께하며, 더불어 전주MBC 콘텐츠 제작부장이자 JUMF 책임PD인 이태동 PD, 안태상 밴드와 오감도의 리더 안태상 기타리스트,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홍보마케팅 김형주 과장이 참여했다. 포풀라 박석영 대표는 제1회 전주 인디뮤직어워드가 마무리됐다. 인디뮤직어워드 개최를 위해 힘써주신 모든 분들과 로컬뮤지션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인디뮤직어워드는 전국의 로컬뮤지션과 로컬음악이 조명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로컬 뮤지션들과 함께하며, 로컬음악의 가치와 위상을 높이는 어워드를 개최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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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규
  • 2020.12.31 11:59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연등회의 포용적 가치

지난달 16일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122호인 연등회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무형유산보호 정부 간 위원회 협의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부처님 태어나신 음력 사월초파일이 되면 전국 사찰과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등이 걸린다. 연등의 작은 소박함과 불빛의 수려함 그리고 등을 올리는 한분 한분의 사랑과 소망, 정성을 담은 기도가 연등과 함께 작은 불빛의 아름다움으로 올려진다.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러한 연등회는 천 년이 넘는 세월 속에 우리 민족과 함께했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큰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자, 그러면 우리의 소중하고 궁금한 연등회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연등회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서술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이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황룡사로 행차해 등불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삼국사기> 중 연등회의 유래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삼국시대 연등회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렸고 불교적인 행사라기보다는 고대로부터 전해온 기원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등회를 통해 국가의 덕목과 의례로 도를 다하려 노력하였으며 삭막한 사회의 정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연등회는 한때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245년 무인 집권기의 최고 권력가였던 최우는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이 주체가 되는 정월 연등회와는 별개로 사월초파일에 자신의 집에서 연등회를 열어 백성의 환심을 사기도 했으며 공민왕 때의 막강한 권력자 신돈은 자신의 집에서 연등회를 열어 백만을 헤아릴 만큼 많은 등을 걸고 왕을 맞이했다고 한다. 유교가 정치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사찰 정월 연등회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풍속으로 자리 잡은 사월초파일 연등회는 지속해서 민가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사월초파일 밤이 되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석류등, 수박등, 마늘등을 달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거북등과 학등을, 입신과 출세를 위해서 잉어등을 달아 소원과 희망을 담고 기원했다. 이제 국가 종교행사로 시작된 우리의 연등회는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전승하는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연등회는 혼돈의 시기에 단합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적과 인종, 종교, 장애를 넘어 포용성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펜데믹pandemic 시기에 진정 필요한 한국의 전통문화유산 이념이며 세계인이 함께 공유해야 할 극복과 포용적 회복의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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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3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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