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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감로암에 중광 스님이 계실 때에 가끔씩 양담배 한 보루씩 사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 내가 가면 스님은 좋아서 활짝 웃었다. 어느 날 아침 감로암을 찾았을 때에 스님은 기분이 좋아서 법문하기를, 진정한 깨달음은 스승 없이 깨닫는 거야. 그게 진짜지!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느낀 바가 있어서 그것을 글로 써달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망설이지 않고 무사독오(無師獨悟)라고 붓을 들어 써주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환생하셨다는 조선시대 진묵스님 일화를 보면 이런 게 있다. 상운암에 계실 때에 모시고 있던 스님들이 약 한달 예정으로 탁발을 나갈 때에 진묵 스님은 창가에 손을 걸치고 앉은 채 작별을 했고 곧 선정에 들었다. 한달 후 탁발을 마치고 돌아 온 스님들이 보니, 진묵 스님은 여전히 그 자세로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데, 그 사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창가에 걸친 손은 닫히고 열리는 문틀에 망가지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진묵 스님의 얼굴은 거미가 몇 겹으로 집을 지어 더럽혀져 있었다. 스님을 깨우자, 곧 눈을 뜨고, 너희들 벌써 왔느냐?고 했다는 장면이다. 선정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정신 차리고 선정에 들어야지 하면 그것은 선정이 아니다. 어느 순간 선정에 들어 삼매에 들 수 있어야 선정이다. 그것이 순일하고 전일한 경지이다. 그리고 정신의 가장 자연스럽고 깨어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동치기로는 천둥번개가 번쩍일 때처럼 강렬하다가도 고요할 때에는 잔잔한 연못에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순간보다 더 고요한 것이 그 세계이다. 마음의 세계가 미묘해서 그 극단적인 모순을 지니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순간순간 미묘한 작용을 스스로 하는 것이 또한 그렇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마주치는 마음의 문제는 진정한 깨달음을 추구할 때에도 똑같이 작용한다. 이러한 묘미를 터득하지 못하면 그 어떤 옷을 입었든 가짜이다. 공무원이든, 상인이건, 가정주부이건, 사기꾼이건, 스님 또는 목사이건 모두 가짜이다. 가짜가 되지 않으려면 깨달아야 한다. 공중에 걸쳐놓은 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떼는 곡예사처럼 모두를 걸고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누가 알겠는가?
△전주 마전출신의 신진사대부 이백유는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공민왕 1년(1352)에 태어나 정종 1년(1399) 48세로 졸하였다. 그는 본향도 전주이고 살기도 전주에 살았다. 전주이씨는 전주최씨, 전주유씨와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3대성씨이다. 전주이씨라고 하면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를 떠올리지만, 이백유 집안은 그의 증조부 이문정을 대표로 하는 가문으로 조선왕실과는 다른 가계이다. 이백유 집안은 전주 효자동 마전(馬田, 마랏)에서 대대로 세거하여 세칭 마랏(말안)이씨라고 한다. 마전이라는 지명은 지세가 달리는 말이 밭에 내리는 형국이라고 하여 붙여졌다. 이백유가 개국공신이 되어 전라감사로 오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삼밭[麻田]이 마소 매는 밭으로 바뀌어 마전(馬田)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의 문학로(文學路)라는 도로명은 그 집안에서 세운 정자 문학대에서 따온 것이다. 이백유의 초명은 재(才)ㆍ자유(子愉)이다. 그의 조부는 정당문학 이문정(李文挺)으로 고려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으며 마랏이씨의 중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아버지는 검교중추부사 이몽(李蒙)이고,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고려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직제학을 지낸 최용갑(崔用甲)의 딸이다. 부인은 해주 오씨 군수 오사운(吳士雲)의 딸과 파평 윤씨 진사 윤승열(尹承烈)의 딸이다. 마랏이씨의 유적으로 이문정이 낙향하여 건립하였다는 문학대가 있고, 이문정ㆍ이백유ㆍ이경동ㆍ이목 등을 모신 황강서원이 있다. 황강(黃崗)은 이문정의 호이다. 문학대와 황강서원은 도문화재로지정되어 있다. 이백유를 모신 부조묘 양후사(良厚祠)가 그 중심적 위치에 있다. 문학대는 완산동 곤지산 아래에 있다가 마전마을로 옮겼으며, 신도심이 개발되면서 황강서원 뒤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조선 개국공신 책봉과 전라감사 임용 이백유는 이색의 문인으로 공민왕 20년(1371) 문과에 급제하여 공양왕 2년 우상시(右常侍)를 지내고 예조판서에 올랐다. 1392년 7월 배극렴, 남은 등과 함께 태조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조선 건국후 개국공신 3등에 책봉되어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완산군)에 봉해졌다. 그가 전라감사로 부임한 것은 44살 때인 태조 4년(1395) 2월 26일이다. 『호남도선생안』에 을해년 2월 26일 하계(下界)로 기록되어 있다. 하계는 전라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전라감사 이임에 대해서는 같은 해 8월 30일 한성윤으로 상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6개월간 전라감사로 재임하다가 한성윤이 되어 한양으로 올라간 것이다 <태조실록>에 보면, 그가 전라감사 재임 때 황군서(황희의 부)가 도안문사로 제주에 다녀와 암말이 줄어드는 폐단을 아뢰어 마른 말고기 진상을 그만두게 한 일이 있다. 또 왜구에 항거한 완산의 절부 임씨 정문을 세운 일도 있었다. 상피제로 인해 출신지역의 지방관으로 임용될 수 없는데 이백유는 전라도출신으로 전라도관찰사에 임용되었다. 조선왕조 5백년간 전라도 출신 전라감사는 12명에 불과하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의 혼맥 이백유는 태조 7년 8월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일파로 지목되어 외방에 부처되었다가 풀려나 이듬해 정종 원년 고향인 전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의 짧은 생애였다. 후에 양후(良厚)라는 시호가 내렸다. 조선건국후 정국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백유 만이 아니라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들이 1차 왕자의난 때 대부분 축출되었다는 것이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을 꼽으라면 이백유, 심효생, 오몽을 등을 꼽을 수 있고, 장지화와 정용수도 전라도출신으로 추정된다. 심효생은 세자 방석의 장인으로 본향은 순천이지만 그 선대에 전주로 이주하였다. <씨족원류>를 통해 이들의 혼맥을 보면 전주최씨 최용갑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최용갑은 전주최씨 최아의 아들로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직제학에 올랐으며 그 부인은 우주황씨 황공로의 딸이다. 이백유의 외조부가 최용갑이며, 고모부는 전주유씨의 시조 유습의 아들 유극강이다. 심효생은 유습의 사위이며 최용갑의 처이질(아내 자매의 아들)이다. 오몽을은 최용갑의 조카사위이다.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된 우주황씨 황거중은 최용갑의 처조카이다. 이백유는 또 개국공신 조견과 동서지간으로 조견의 친형이 조선창업의 핵심인물 조준이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의 실각 이렇게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이 혼맥으로 연결되었고, 이들은 또 전주의 대표적 사족 이씨, 최씨, 유씨 등과 중첩되는 혼인관계를 맺고 있다. 우주황씨 세력도 주목된다. 이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이 1차 왕자의 난 때 대부분 축출되었다. 방석의 장인 심효생과 인친 장지화, 오몽을 등이 죽임을 당하였으며, 이백유는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죽었다. 정용수는 왕자의 난은 피했으나 태조의 측근으로 조사의난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이러한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의 실각은 전라도의 운명을 가름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조선건국에 전라도세력이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전주의 토착세력들이 혼맥으로 연계되어 조선창업에 적극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심효생의 사위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정도전세력이 실각하고 방석이 죽임을 당하면서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들은 대대적으로 숙청되었다. 전주와 전라도가 조선왕실의 고향이면서도 조선초 중앙정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이런 권력재편 과정에서 밀려난 데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가 성종대이후 사림들이 중용되면서 호남사림들이 중앙에 적극 진출하여 선조대 정국의 주도적 위치에 올랐던 것 같다.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 관장)
전주문화재단이 사무공간을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 보다 체계적인 조직관리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전주문화재단은 그동안 한벽문화관 교육체험 공간을 사용했던 사무공간을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한다고 14일 밝혔다. 동문시민놀이터에 입주해 있던 생활문화팀을 제외한 4개 팀이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한다. 이에 따라 분산되어 있던 업무와 사무공간이 일원화를 이루게 됐다. 그간 전주문화재단은 한벽문화관 5개팀, 팔복예술공장에 3개팀, 동문문화센터에 1개팀으로 사무공간이 3개 시설에 분리 운영되고 있었다. 백옥선 대표이사는 취임과 동시에 조직의 쇄신과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조직개편 단행과 사무공간의 일원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 재단이 이전하게 되는 팔복예술공장은 1단지(A동) 지상 3층, 2단지(B동) 지상 2층(연면적 6,001㎡, 대지면적 13,224㎡)으로 전시장 및 작가 스튜디오, 카페 및 그림책방, 예술놀이터 등의 문화시설 및 시민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전국 최초로 꿈꾸는 예술터 전국 1호 공간과 예술교육 체험공간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간 약 4만5000명이 이용하는 등 지역관광거점도시 전주의 자원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시민을 연결하는 예술의 거점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재단 사무실이 입주할 공간은 1단지 A동 2층(61평) 전시장 뒷편이다. 1층에는 창작지원팀과 예술놀이팀이 근무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과거 사업공간의 분리로 원활한 소통과 전달체계와 연대의식이 미흡했다면서 이번에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함에 따라 업무의 효율과 안정적 운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 구상화가이자 지역 화단의 거목 서양화가 박남재 화백이 지병으로 지난 1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9년 순창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중퇴하고, 한국 인상주의의 거두인 오지호 화백(1905~1982) 만나면서 다시 붓을 잡았다. 1960년 조선대 문리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 화백은 전주여고 교사를 거쳐 원광대 미술대 교수와 학장을 지냈다. 박 화백은 전북의 구상화단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원로 작가이다. 자연과 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예술정신으로 70년 가까운 화업을 일궈왔다. 전북 출신 화가로는 처음으로 국내 예술분야 중 가장 권위 있는 제58회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70년대의 설경, 雲을 비롯해 1980년대 이후 내장산 秘景, 지리산 하경, 성산일출봉, 제주 비자림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생명과 자유라는 가치를 보여줬다. 한결같이 자연 풍경과 정물을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강렬하고 자유로운 붓질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1958년 제7회 국전 입선(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각종 대회 수상을 했으며, 초대전과 개인전 등을 꾸준히 펼쳐왔다. 2011년 서울예술의전당에서 그의 60년 화업을 조명하는 초대전을 비롯해 한국의 자연전(국립현대미술관), 대한민국 원로작가전(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전시회에 초대 출품했다. 20여 년간 원광대 미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숱한 제자를 길러낸 그는 정년 퇴임 후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후배 작가들에게 귀중한 본보기가 됐다. 2016년 말에는 전주시 금암동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을 정리하고, 70여 년 만에 고향 순창으로 돌아가 섬진강미술관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등 평생 지역 구상화단을 지켜왔다. 박 화백은 대한민국 예술원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등 각종 미술 관련 활동을 해오며 지역과 한국 화단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명예인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비롯해 미술세계상 본상, 목정문화상, 오지호미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우회 최고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2층 VIP실에 마련됐다가 13일 오전 11시 발인이 이뤄졌다. 고인은 익산시 왕궁면 영모묘원에 묻혔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시완, 딸 박지연 1남 1녀가 있다.
박남재 화백 한국화단의 거장 서양화가 박남재 화백이 지병으로 1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9년 순창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중퇴하고, 한국 인상주의의 거두인 오지호 화백을 만나면서 다시 붓을 잡았다. 1960년 조선대 문리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 화백은 전주여고 교사를 거쳐 원광대 미술대 교수와 학장을 지냈다. 박 화백은 1970년대의 설경, 雲을 비롯해 1980년대 이후 내장산 秘景, 지리산 하경, 성산일출봉, 제주 비자림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생명과 자유라는 가치를 보여줬다. 1958년 제7회 국전 입선(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각종 대회 수상을 했으며, 초대전과 개인전 등을 꾸준히 펼쳐왔다. 2016년 전주시 금암동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을 정리하고, 70여 년 만에 고향 순창으로 돌아가 섬진강미술관에서 지내며 작업을 이어왔다. 박 화백은 대한민국 예술원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등 각종 미술 관련 활동을 해오며 지역과 한국 화단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명예인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비롯해 미술세계상 본상, 목정문화상, 오지호미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우회 최고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2층 VIP실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3일 오전 11시, 장지는 익산시 왕궁면 영모묘원. 유족으로는 아들 박시완, 딸 박지연 1남 1녀가 있다.
전북지역 미술관 창작공간(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참여한 작가들의 결과 발표 전시가 잇따라 열린다. 전주 교동미술관 창작공간 지원사업에 참여한 유시라 작가는 오는 20일까지 그것을 묶음으로 : Who, Where, Why?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한다.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묶음의 행위로 담아내었던 유 작가의 지난 제3회 개인전 그것을 묶음으로 : Birth-Death의 연장선에 있는 전시다. 닥 줄기를 사용한 매듭과 묶음 시리즈는 인생과 삶에 관한 철학적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는 탄생의 시작을 축복하며 기쁨을 채워가기도, 죽음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슬픔을 비워가기도 한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지금 어디쯤 와 있으며,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이 왜 오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유 작가는 현재 전북대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연석산미술관에서는 허은오 작가의 전시가 한창이다(오는 18일까지). 허 작가는 동양회화의 중요한 장르 중 하나인 화조화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섬세한 필치와 감각적인 색채 구사를 통해 표출되는 작가의 화면은 성실한 묘사로 보는 재미를 준다. 특히 그의 아크릴 작업은 수용성 안료 특유의 표현력을 십분 보여준다. 수묵을 차용한 새로운 작업은 수묵 특유의 함축과 절제의 화면에 여백이 두드러져 보는 맛과 풍부한 여운을 전해준다. 작가는 숲의 고요한 정취를 수묵으로 더욱 부각하고 평소 창공과 심해로 표현했던 무한한 자연 세계를 수묵과 여백을 통해 서정성을 강조하고자 했다며 생명의 순환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자연스럽게 녹여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작가는 숙명여대와 동 대학원 미술학 석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제45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수상작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장 전시가 아닌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대통령상 수상 작가 박봉현 씨의 은제 고부조 타출 봉황문 주전자를 비롯해 수상작 136점을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은 지난 7월부터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과 (사)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가 공동으로 전통공예 전 분야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온라인 전시는 오는 14일 무관객 개막식과 시상식을 시작으로 18일부터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누리집과 유튜브 채널 전승공예 TV에서 열린다. 이번 공예대전 대통령상은 박봉현 씨의 은제 고부조 타출 봉황문 주전자에 돌아갔다. 국무총리상에는 배광우 씨의 건칠상감 포류수금문 정병,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에는 김송희 씨의 팔상도, 문화재청장상에는 손완옥 씨의 남이흥 방령포, 국립무형유산원장상에는 류오형 씨의 길상도 8폭 자수 병풍,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상에는 노영재 씨의 청화백자 용문호,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이사장상에는 김강희 씨의 지승 자라병이 선정돼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밖에도 총 12개 종목별 작품의 향연이 펼쳐진다. △1분과(소목, 소반 분야) △2분과(죽, 목조각(각자떡살 등) 분야) △3분과(자수 분야) △4분과(매듭, 염색 분야) △5분과(도자, 옹기 분야) △6분과(지 분야) △7분과(금속 분야) △8분과(단청, 불화, 민화, 무속화 분야) △9분과(악기 분야) △10분과(옥, 초고, 관모 등 기타분야) △11분과(옻칠(나전채화건칠 등)분야) △12분과(직물, 침선 분야)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무형유산원 채수희 원장은 공예대전 온라인 전시는 묵묵히 전통의 길을 고수하고 있는 전통공예 작가들이 장인정신으로 일궈낸 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의 무용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무용인들이 우리춤작가전에 출연한다. 우진문화재단은 2021년 무용분야 초청공연사업인 우리춤작가전에 출연할 6명의 무용가를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공모는 신인춤판과 젊은 춤판 등 2개분야로 나눠서 진행됐다. 먼저 신인 춤판부분에는 윤시내(28), 정민지(29), 정종웅(26)이 뽑혔다. 윤시내 무용가는 아담과 이브라는 주제로 삶을 만끽하기 위해 창조된 낙원에서 사소한 유혹이 화근이 되어 인간을 신을 노하게 했고 낙원은 영원히 닫혀버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내용을 선보였다. 정민지 무용가는 항해라는 작품을 통해 인생이라는 바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희노애락을 선보였다. 정종웅 무용가는 Tandem oritur questo라는 작품으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을 읽고 영감을 받아 무용으로 승화시켰다. 우리는 각자 생각하는 방향성은 다르지만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젊은 춤판에는 김슬기(31), 설륜성(39), 윤지아(40) 무용가가 선정됐다. 김슬기 무용가는 당신의 순간들이란 무용을 통해 예상치 못한 순간의 변화 앞으로 마주할 인생의 순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설륜성 무용가는 귀를 기울이면이란 작품으로 ,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담았다. 윤지아 무용가는 마르지 않는 샘이란 작품으로 삶을 대한 우리 내면의 이야기를 무용으로 승화시켰다. 이들의 무용은 향후 있을 우리춤작가전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전북 관광콘텐츠 제작과 홍보를 위해 전북관광 유튜브 크리에이터 육성사업에 공모한 우수작을 선정, 비대면 시상식을 지난 9일 개최했다. 대상은 함박TV팀이 차지했고, 최우수상은 우주티비팀, 우수상은 코비가팀과 지평이미디어팀, 특별상 KOREA Travel Guide팀이 받았다. 심사는 영상 조회 수, 관광코스로써 실현 가능성, 전라북도 시군 지역 홍보 기여도 부분 등 전문가를 통해 선정했다.
요사이 뜨겁게 전통문화의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동영상으로 조선의 아이돌 이날치를 표방하며 부른 범 내려온다란 노래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상은 벌써 3억 뷰를 훨씬 넘어 세계인들이 함께 느끼고 즐기는 콘텐츠가 되었다. 전통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로서는 참으로 반갑고 멋진 일이다. 자, 그러면 이날치는 누구일까? 사람 이름인가? 우스갯말로 생선 이름인가? 사뭇 전통예술의 이해가 없으면 그냥 지나칠 명사이다. 이날치는 조선 후기 이름을 날리던 8명의 명창 중 한 분의 예명이다. 이날치(본명 경숙敬淑) 명창은 옛 전통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한 분야의 명인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젊어서 줄을 탔는데 줄타기를 할 때 날치처럼 잘 탄다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판소리 북을 치는 고수로 활동하다가 소리에 뜻을 두고 당대 서편제의 명창 박유전과 정창업의 제자로 들어가 계보를 잇게 된다. 이날치의 목소리는 성량이 커 그의 소리가 10리밖에서도 들렸으며 나오는 수리성(쉰 듯한 목소리)도 기교가 넘쳐 많은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고 전한다. 또한 박유전에게 배운 새타령을 부를 때면 새들이 소리를 듣고 날아와 앉을 정도였다 하니 그의 판소리는 과연 자연의 소리였나보다. 이날치 명창은 1870년대 고종 황제의 친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앞에서도 소리를 하게 된다. 당시 대원군의 친형 이최응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지인이 이날치가 명창으로 능히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는 말을 듣고 대장부가 어찌 광대의 재주에 울고 웃나라며 그를 불러 자신을 울리고 웃기면 천금을 주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했다 한다. 이날치는 주저 없이 자신의 장기인 심청가 중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리는 대목을 불렀고 이최응은 감동하여 눈물 흘리고 이날치 명창에게 큰돈을 하사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오늘날 이날치 명창의 소리 멋을 이날치라는 이름의 밴드가 맛깔스러운 얼터너티브 (Alternative 비슷한 것 같지만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소리로 탈바꿈시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앰비규어스라는 댄스컴퍼니와 협업하며 판소리의 발림을 외국인까지도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촌스럽지만 흥겨운 춤사위로 만들었다. 그들은 몇 년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무심코 지나칠 B급 감성을 시대의 주류인 A급 한류로 재탄생시키며 세계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 전통예술의 귀한 명창 이날치 이름을 높이면서 말이다. 현재, 이날치 명창의 정통 소리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이시며 필자에게 처음으로 국악을 알려주셨던 이날치의 손녀 이일주 명창이 전주에서 대를 잇고 있다.
웅치전적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위한 전북도 차원의 TF가 구성돼 본격활동에 들어간 가운데, 국가사적 신청을 위한 대상 구역 최종안이 나왔다. 전북도는 9일 오후 2시 전주비전대학교 비전관에서 전북도청 문화유산과 국철인 과장과 도 관계자, 하태규 전북대학교 교수, 완주군과 진안군 문화재 업무 담당자, 학계 관계자 등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웅치전적지 문화재보호구역 재설정 TF 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웅치지전적지 문화재구역 지정안 4개를 검토하고 해당 지역 주민 의견을 듣는 등 사적지정 연구용역 추진상황을 검토하는 한편, 신속한 국가지정 문화재(문화재 보호구역) 지정 노력을 위한 토론을 벌였다. 회의 결과 덕봉길 지구와 웅치길 지구를 포함한 연계 보호구역 지정 안(지적과 지형고려)이 최종 안으로 도출됐다. 이 안은 전체면적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닌, 주민재산권 문제 등 감안해 역사적 상징성, 진정성이 있는 주요 지점(포인트) 형태로 선 지정 신청을 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면적은 38만여㎡로, 기존 도 사적 면적 360만 여㎡보다 1/10가량 줄어든 면적이다. TF 총괄책임관은 윤여일 도 문화체육관광 국장이 맡으며, 학술조사팀과 행정지원팀, 현지 대응팀 3개팀으로 나뉜다. 학술조사팀은 심정민 전주비전대교수가, 행정지원팀은 전북도 학예연구관이, 현지대응팀은 완주군과 진안군의 학예연구사들이 맡았다. TF는 사적지정을 위한 도와 시군의 유기적인 업무추진과 기관과 학계, 언론 관련 전문가의 효율적 협력체계 마련을 위해 구성됐다. 향후 추진상황 등을 공유하고 논의한 뒤 최종안을 골자로한 주민 공청회를 내년 1월 중으로 연후 3월 예정된 문화재청 지정위원회에 최종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하태규 교수는 문화재 보호법에 정한, 지정위원회에서 지정할 수 밖에 없는 사적요건을 맞춰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도 국철인 과장은 되도록이면 완주와 진안군 의견을 수렴해 하나의 안을 만들고 문화재청 지정위원회에 신속히 상정해야한다. 지자체들 주민 설득과 합의가 신속히 이뤄져 국가 사적 지정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국 공립미술관들이 사상 처음으로 정부평가를 받는 가운데, 도내 공립미술관들에 대한 평가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문화계 등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공립미술관의 질을 높이고 그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올해부터 평가인증제도를 시행 중이다. 공립 박물관 평가는 2017년도부터 진행됐고, 미술관 평가는 올해가 처음이다. 문체부는 7월 평가기관 대상 사업 설명회를 시작으로 8월부터 11월까지 서면 평가와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최종결과는 오는 31일 나올 예정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우수한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인증서(인증기간 2년)가 발급된다. 인증 박물관과 미술관은 해당 사실과 내용을 표시할 수 있다. 평가대상은 전북의 공립미술관인 전북도립미술관, 익산예술의 전당 미술관, 무주 최북미술관 3곳이다. 주요평가기준은 △설립 목적의 달성도 △조직인력시설 및 재정 관리의 적정성 △자료의 수집 및 관리의 충실성 △전시 개최 및 교육프로그램 실시 실적 △공적 책임 등 5개 항목이다. 먼저 전북미술계의 중심축인 도립미술관은 최근 타 기관 공모사실로 물의를 빚었던 김은영 관장의 리더십과 교육 기획, 교육 운영 전문성, 취약계층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에 대한 평가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익산 예술의 전당 미술관은 전시공간으로서의 노력, 미술관만의 독창적인 역할이, 최북미술관은 앞으로의 운영계획 등이 평가 관심사다. 도립미술관 관계자는 지난달 문체부 현장심사에서 미술관의 역할과 적극적인 실험, 전시기회 등 전반적인 부분을 적극 어필했다면서 좋은 점수가 나올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익산예술의전당 관계자는 현장심사에서 공연과 미술을 함께 운영하다보니 미술관의 독창적인 운영방법과 비전을 많이 물어봤다면서 지표에 맞는 노력을 하겠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공개에서 공립미술관 외에도 전북에 자리를 잡고있는 무주 국립태권도박물관, 익산 전사박물관, 전주국립전주박물관 등 3곳 국립박물관에 대한 평가도 함께 공개된다.
최완규 원광대학교 교수,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 한국 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마한에 대해서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마한을 종족의 명칭이나 문화계통적인 의미로 보는 시각이며, 둘째는 지연적, 정치 사회적으로 통합된 정치체로 보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전자의 관점에서 마한을 바라본 대표적인 연구자는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인데, 그는 「전후삼한고」(1925)와 「조선상고사」(1931)에서 삼한을 전삼한과 후삼한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전후 삼한의 구분은 고조선 준왕의 남쪽으로 이주 시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전삼한은 단군조선이 신(眞)조선 불(番)조선 말(馬)조선으로 분화한 것이며, 말조선을 제외한 위치는 중국의 요서와 요동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말조선은 한반도의 기자조선으로 마한의 전신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마한을 비롯한 한(韓)은 북쪽의 고조선을 구성하고 있던 종족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며, 북에서 남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이병도는 준왕의 남천으로 비로소 남한지방에 한이라는 종족명이 등장하고 이것이 점차 확대되어 남한 전체를 한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어서 신채호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후자의 관점은 지연적인 또는 사회적인 단위의 정치체로 보는 시각으로 최근 연구자들의 통설이 되고 있는데, 그 주된 내용은 마한을 비롯한 삼한을 소국연맹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근거는 『삼국지』나 『후한서』에서 고조선 준왕의 남천지를 韓地로 특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남부에는 준왕의 남천 이전부터 한이 성립되어 있었고, 이것이 곧 마한이라는 것이다. 곧 북방에서 종족이 이동하여 한을 성립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선주 토착 집단들의 점진적인 발전의 결과로 韓이 대두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넓게 퍼져 있는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문화권이 형성되며, 한 소국들이 연맹체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 마한의 성립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구 국군광주통합병원 건물에서 열린 GB 커미션 전시에서 카테르 아티아의 설치 작품. 마네킹의 다리 모양도 결국 인간의 상처와 치유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AI 시대의 예술은 무엇이 될까? 인공지능이 사회를 통제하고, 생산과 분배를 정의하며, 인간보다 훨씬 냉철하게 효율적으로 세상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미래의 세계를 상상해 볼 때에 인간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고유의 인간 가치를 추구해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저버릴 수 없다. 지능 로봇이 뭐든 알아서 척척 진행시킬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해도 인간은 로봇과 달리 꿈을 꾸고,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며 사소한 권력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에게 예술적 표현 욕구는 발현되고 있었다. 구석기시대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은 인간이 여체를 빌려 종족 번식을 풍요하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비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실 그 당시에는 예술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한다는 고민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원하는 바를 형상화시켜서 주술적으로 비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의 원형을 보여준다. AI 시대에는 다시 인간의 강렬한 존재 의식이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동안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시 했던 이성적 통제와 기억 및 관리 시스템을 AI가 알아서 잘 하고 있다면, 인간은 AI가 하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영역에서 절실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기실 인간 고유의 본능과 욕구 그리고 도덕성 등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영역에 한정된 것일 수도 있다. 로봇에게는 그러한 문제들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혼란을 가져오는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로봇에 맞춰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로봇이 인간적 문제에 맞춰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AI가 끊임없이 발전하게 될 때에 언젠가 로봇이 인간을 철두철미 관리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아마도 AI 시대에는 예술가가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절절하게 표현하는 일이 잦게 될 것이다. 끝까지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처절한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인간답게 살고 그 고유의 가치를 추구해 갈 수 있을까? 자칫 인간은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져 외마디 소리조차 못한 채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출 수도 있다. 유토피아를 추구하다가 정반대의 블랙홀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전주시가 전주시의회의 위탁운영 연장 부결에 따라 전주역사박물관 및 어진박물관의 직영운영 준비에 돌입했다. 직영 전환이 되면서 박물관 소속 직원들의 고용승계 문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는 전주역사박물관과 어진박물관에 대한 직영운영을 위해 인수인계 절차에 돌입했다고 6일 밝혔다. 지난달 27일 시의회가 시가 제출한 박물관 위탁운영 연장건을 부결시킨 데 따른 것으로, 전주역사박물관과 어진박물관은 지난 10여 년 간 (사)전주문화연구회가 민간위탁받아 운영했다. 시는 박물관 직영운영에 따른 운영방식 및 예산, 고용승계 부분을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다방면으로 운영방식을 검토 중이라면서 고용승계에 대한 부분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직원들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무기간과 채용방식 등을 꼼꼼히 검토해 승계 범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자세한 것은 인사팀과 협의해 이뤄질 예정이라고 했다. 박물관 소속 직원들은 다른 문제보다 고용승계부분을 놓고 불안해 하고 있다. 현재까지 고용승계 기준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고, 승계 범위와 임금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물관 내 한 직원은 당초 계약시점보다 이른 이번 달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되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직원들이 대부분이라며 인수인계를 하더라도 승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직원은 시가 해고없는 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어 고용승계는 이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면서도 승계가 이뤄진다해도 단기 계약직인 6개월에서 1년 수준으로 결정된다면 사실상 당초 진행된 업무를 마치고 나가라는 뜻밖에 안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현재 명확한 결과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라며 다음 직장을 구하거나 박물관에 남을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빠르게 고용승계에 대한 범위가 결정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두 박물관에 소속 된 직원들은 관장을 제외한 총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부적으로는 학예사 5명, 사무직원 2명, 건물 및 시설관리자 5명으로 구성돼있다. 평균연령은 사무직 29.8세, 관리직 67.2세이며, 평균근무기간은 사무직 1년 6개월, 관리직 5년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그간 위탁시기에 맞춰 3년 계약을 통해 근무했고 관리직들은 시간파트타임 근로자 형태이다.
한옥마을의 길을 걷다 보면 학인당이라는 고택이 있다.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면 너무나도 평범한 골목 그리고 정문.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전통의 혼이 있다. 빛바랜 사진 속 백범 김구 그리고 해공 신익희. 더불어 소리판을 즐겼다던 대청마루 등 오랜 시간 전주에서 전통예술을 공부했고 또한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 다가오는 전라북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민족혼의 올곧음은 바로 그것이었다. 학인당은 전라북도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조선 성리학자 조광조의 제자 백인걸 11세손인 백낙중에 의해 1905년부터 2년 8개월 동안 지어진 아흔아홉 칸의 거대한 고택이다. 궁중 건축양식을 차용하여 압록강과 오대산에서 공수한 금강송으로 집을 지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어떤 사연으로 그러한 큰집을 어찌 지었나 하는 생각도 있겠지만 그 사연은 참으로 올곧다. 대한제국의 어려운 시기에 백낙준은 고종 즉위 이후 경복궁 중건사업에 집안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고 그러한 친분에 이러한 큰 저택을 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유로 지어진 민간 최고의 저택 학인당은 다시금 한민족의 단결과 복원을 위한 역사 현장으로 사용되었고 그 용기의 정신과 흔적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00년대 전주대사습놀이는 일본 내정간섭 속에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명맥이 끊어지게 된다. 이러한 소리판을 잃어가던 명창들에게 용기와 설 자리를 열어준 곳이 바로 학인당이다. 학인당의 주인 백낙중은 대청마루와 방을 모두 개방하여 공연장으로 변환시켜 민족예술의 혼을 지속시켰다. 또한, 해방 이후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요인들이 묵고 가는 영빈관 역할을 하게 되는데 백범이 초대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전주에 내려왔을 때 당시 백낙중 자신이 기거하던 안채를 기꺼이 내줬다고 한다. 백범이 머물다간 방 옆으로는 해공 신익희 선생이 머물다 간 방이 또한 자리하고 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조선지(朝鮮池)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모양은 한반도의 좌우가 뒤집힌 모양이다. 그 이유는 학인당이 지어질 무렵 조선은 이미 일본의 침탈을 받고 있었고 그러한 나라 잃은 슬픔에 연못을 뒤집힌 한반도의 모습으로 짓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금 세상이 뒤바뀌어 조선의 국권이 회복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1908년 지어질 당시 학인당은 2천여 평 부지에 지어진 아흔아홉 칸 저택이었지만 현재는 530평 7채만이 남아 전승되고 있다. 일화로 학인당의 단면을 또 논하자면 지난 1970년대 용인민속촌의 조성을 위해 이 집을 통째로 옮기기를 제시하며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거액을 내놓고 두 차례나 팔기를 권유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고택은 전라북도를 지키며 꿋꿋이 우리 가슴 속 깊이 예술혼을 지키고 있다. 우리의 민족혼처럼 올곧게 말이다.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
김경희 예술감독 겸 전주시향 상임지휘자(숙명여대 음대교수) 2년이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이렇다 할 연주를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여성 지휘자라는 편견이 저로 인해 조금이나마 사라졌으면 합니다.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1930년대 저명한 베를린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안토니오 브리코. 한국의 안토니오 브리코라고 불리는 전주시립교향악단 김경희(61)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숙명여대 음대교수)의 말이다. 현재는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여자가 지휘봉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아니꼽게 보기도 했다. 모 지역 객원 지휘자로 나갔을 때는 여성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게 직접 들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지난해 3월 공채를 거쳐 전주시향 상임 지휘자로 임명됐을때는 파격적이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이곳저곳에서 제기됐다. 45년이나 되는 시향 역사상 여성 상임 지휘자는 그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우였음을 직접 입증했다. 그가 전주시향을 맡는 동안 지역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고전 음악부터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드는 낭만음악과 기교와 음악의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 현대음악까지 잘 소화해 내는 시향으로 이끌었다. 그는 전주시민, 전북도민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요구와 갈망에 대해 여자인 제가 지휘하는 모습을 관중들이 생소해 하시기도 했지만 생동감 있고 관중과 청중과 교감하는 연주를 보고 처음에는 점잖게 박수만 치시던 분들이 기립박수와 브라보를 외치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고 했다. 김 지휘자가 처음 지휘봉을 잡았던 건 초등학생 때. 전교생이 모인 조회에서 4/4박자 애국가를 지휘하며 묘한 설렘을 느꼈다고 한다. 부산 동래여중 기악부 바이올린 주자 시절, 우연히 TV에서 본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그의 삶을 결정지었다고 한다. 김 지휘자는 올해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데, 코로나19로 많은 연주를 들려드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라면서 기회가 된다면 전주시민, 전북도민들에게 베토벤을 위주로 한 다채로운 연주를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지휘자는 숙명여대 작곡과를 졸업 후 독일 베를린국립예술대학(Hochschle der Kunste Berlin) 지휘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89년 대전시향 초청 오케스트라 지휘세계에 등단해 세인들의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첫 활동을 시작했고 1991년 서울시향 신진지휘자로 초청돼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에 입문했다. 이후 KBS교향악단과 서울시향 등 전국 지자체 시향과 우리나라 유수 오케스트라를 다수 지휘했고 서울챔버오케스트라, 채리티챔버오케스트라, 서울페스티벌앙상블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여성에게 문턱이 높았던 지휘계의 인식을 허물어 오며 여성가족부 주관 역량 있는 예술인으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정부로부터 도전한국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하 재단)이 문화마실 공모사업과 관련,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해당 팀장을 직위해제했다. 재단은 자체 규정 제24조(직위해제) 4항에 따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현저히 재단의 이익에 반한 행위를 한 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당시 사업팀장이던 A팀장의 직위를 해제했다고 2일 밝혔다. 이에 따라 A팀장은 재단 업무에서 배제됐다. 이해충돌 논란은 재단이 지난해 추진한 공모사업 선정자가 당시 해당 사업팀장이었던 A팀장의 배우자로 밝혀지면서 불거졌다. 이해충돌이란 공직자의 업무가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와 상충해 공정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를 뜻한다. 재단 규정에 따르면 임직원의 4촌 이내 친족이 직무 관련자인 경우 재단의 장에게 해당 사실을 서면으로 신고해야 하나, 팀장의 사적 이해관계 신고는 사업 선정 8개월 후에야 이뤄졌다. 당시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특혜 시비가 일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2월 열린 전북도의회 문화건설안전위원회 상반기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지적됐다. 하지만 전북도와 재단은 최근 문화마실과 관련한 사문서위조 등 민원이 제기된 뒤에야 조사에 착수해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 경찰은 문화마실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대리 서명 의혹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상태이다. 경찰은 사문서위조 혐의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적용 여부를 놓고 검토 중이다. 재단은 경찰 내사 및 수사결과 등에 따라 추후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와 수위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종합대상부 장원 서성자 씨 한국완제시조보존회가 개최한 제13회 한국국악대제전(시조창) 전국대회에서 서성자(58) 씨가 종합대상부 장원을 차지했다. 지난달 30일 전주 베스트웨스턴호텔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시조창의 멋을 널리 알리고, 신인 명창을 발굴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행사다. 을부, 갑부, 특부, 명인부, 국창부, 종합대상부, 노인대상부 등 7개 부분으로 진행해왔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국창부, 종합대상부 2개 부문으로 축소해 치러졌다. 그 결과 종합대상부 장원은 서성자(전북 전주), 최우수상은 오은경(충북), 우수상은 이상덕(전북 전주) 씨에게 돌아갔다. 국창부 장원은 김재부(충남 영동), 최우수상은 장필여(충북 제천), 우수상은 김종섭(충북 괴산) 씨가 차지했다. 종합대상부 장원자에게는 지도사범증 자격증을 수여하고, 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한국완제시조보존회 김영희 이사장은 전통소리의 고장 전주를 자랑하는 기회를 만들고, 시조창을 더욱 널리 알려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잠시 침체기를 겪었던 완주 모악산 인근 예술인 마을이 새로운 문화향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때 10명에 가까운 예술인들이 모여살던 이곳 인근이 개발되면서 거주하던 일부 예술인들이 떠났고, 침체위기를 겪었지만 유휴열 미술관과 분위기 좋은 커피숍 등 많은 예술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어서다. 1일 오전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으로 가기 전 한 샛길로 들어섰다. 바람에 몸을 맡긴 갈대밭이 좌우로 흔들거리며 반겼다. 갈대밭을 지나자 예술인마을 500m라는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북도립미술관 아래쪽에 자리잡은 이곳은 전북에서 이름있는 예술가들이 거주하고 있는 예술인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작은 마당을 갖춘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술작품이 전시돼 있는 커피숍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유휴열 화백이 34년 전 미국에서 대형 전시회를 가진 후 자리를 잡은 곳이다. 당시 시외권을 선호했던 유 화백이 기운이 좋고 풍경을 바라보며 그림의 영감을 얻기 위해 정착했다. 유 화백은 이 곳에서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쳐오다 최근 자신의 그림을 모아 논 수장고를 짓고, 올해 유휴열미술관(관장 유가림)을 개관했다. 미술관 내에는 차 한잔의 여유와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커피숍도 차렸다. 유 화백은 이곳에서 지낸지 무려 34년째다며 그때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후 많은 예술인들이 머물다 갔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 곳에 정착한 후 이철량 전 전북대교수, 지성호 오페라 작곡가가 잇따라 자리를 잡았다. 이후 박남준 시인도 이 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수년간 작품활동을 펼쳤다. 이밖에도 이형수 화백(한국화), 우관 김종범 서예가, 손윤숙 전 전북대 교수(발레전공), 한국 서예계의 파격 작가로 불리는 아하 김두경 서예가, 강정진 화백(서양화)가 이곳에 머물렀다. 이들이 모여서 살자 인근 주민들은 예술인 마을이라고 불렀다. 이후 입소문을 타고 이 곳에 많은이들이 이 곳을 찾았다. 하지만 박남준 시인과, 손윤숙 교수, 김두경 서예가, 강정진 화백 등 많은 예술인들이 이 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여건과 또 다른 작품활동을 위해 자리를 옮겨서다. 더불어 전주시와 가까운 거리요건으로 많은 땅 값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일반인들이 전원주택을 지어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다른 요인이었다. 현재는 5명 정도 밖에 예술인이 남아있지 않지만, 유휴열 미술관을 시작으로 2~3곳의 커피숍과 전시장이 생겨나면서 예술인들과 도민들에게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지성호 작곡가는 한적한 마을 분위기로 인해 곡 작업을 할 때 방해받지 않고 여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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