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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의 선택

델프트(Delft)는 네덜란드 서부 조이트홀란트주의 작지만 고풍스러운 도시다. 1075년에 건설돼 1246년 자치시 인가를 받았으니 근대 도시로서의 역사가 짧지 않지만, 지금도 인구는 10만 명이 채 안 된다. 델프트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영화로운 과거를 갖고 있다. 국제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휴고 그로티우스와 화가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의 고향이기도 한 델프트는 16~17세기 네덜란드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인접해있는 무역항의 도시 로테르담에 그 지위를 빼앗겼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보잘 것 없는 작은 도시로 전락하자 델프트 시는 주민들과 함께 도시 부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도시의 규모가 아닌 도시의 정체성. 교육과 문화관광을 주목해 왕립학원으로 공과대학교를 세우고 수력학 연구소를 건립했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 위해 도시를 재정비했다. 그 결과 델프트는 오늘날 공학도시이자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가 됐다.

 

델프트의 시가지는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들이 그렇듯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역시 구시가지의 경관이다. 운하가 흐르는 구시가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색다른 정취지만 그로티우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마르크트 광장이나 1618년에 지은 시청사와 중세의 탑, '히폴리투스부르트'라고 불리는 꽃가게와 박물관이 몰려있는 구교회 일대 등 과거의 역사 유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잘 정비되어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도시 경관만이 아니다. 이곳 시민들은 주로 버스와 트램을 이용하는데, 노선도 단 하나 뿐이다. 불편함이 예상되지만 이 역시 도시 미관과 대기환경을 고려한 선택이다.

 

도시 델프트란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이 또 있다. 주석을 입혀 윤을 낸 흰 바탕에 파란 글씨와 무늬를 새긴 도자기 '델프트 블루 (Delft Blue)'다. 델프트의 전통 특산품인 도자기는 공방 견학과 체험으로 이어지면서 델프트의 관광객 유치에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국가의 경제 중심지이자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몰락의 위기에 놓였던 델프트의 부흥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우리나라의 중소도시들에게도 모범이 될 만하다.

 

지난달, 전주완주 통합 추진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 여파가 아직 큰 만큼이나 완주 주민들의 선택이 전하는 메시지 또한 크다. 지역 발전 동력의 근원을 새삼 깨닫게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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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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