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14:20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윤도(輪圖)와 장인

윤도(輪圖)는 ‘가운데에 지남침을 장치하고 가장자리에 원을 그려 24방위로 나누어 놓아, 방위를 헤아리는 데 쓰는 기구’다. 일종의 나침반인 윤도는 지관들의 전유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주역을 바탕으로 풍수지리를 보는데는 윤도가 필수품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서 윤도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를 통해 일상용품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들은 거울을 단 ‘면경철’, 부채 끝에 매다는 ‘선추’, 십장생 등 조각품으로 모양을 낸 대형 윤도까지, 예술성을 살린 소장품으로도 윤도를 생활 속에 들여놓았다.

 

1950-60년대만 해도 윤도는 꽤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식 나침반이 나오면서 윤도 자리에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나침반이 들어서게 됐다. 일상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되는 지금은 나침반 또한 쓰임새로서의 역할이 적어졌으니 이제 윤도는 더욱이나 낯선 존재가 됐다.

 

우리 지역에는 윤도를 만드는 장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명, 중요무형문화재 제 110호인 윤도장 김종대씨가 그다. 여러해 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살고 있는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낙산마을은 윤도를 만드는 전통을 300년 넘게 지켜온 곳이다.

 

윤도는 대개 크기로 종류가 나누어진다. 윤도에 그어진 원이 만들어낸 한 칸을 ‘층’이라고 부르는데 1층부터 24층까지 그 쓰임이나 내용에 따라 종류가 구별된다. 윤도를 만드는데 에는 아무리 층(원의 수)이 적어도 4-5일, 24층짜리는 4개월이 족히 넘게 걸린다. 윤도는 대추나무로 만드는데, 그것도 200년 넘은 고목이어야 한다. 단단하고 갈라지지 않으며 각을 할 때 연하면서도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00년 넘은 고목이 곧바로 글자를 파낼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라진 채로 물속에 1-2년, 다시 은근한 곳에 말려서 3년 정도는 놓아둔 후에라야 비로소 칼을 댈 수 있게 된다. 윤도위에 글자를 새겨 넣는 각(刻)은 본을 뜨거나 연필로 글자를 쓴 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칼로 직접 파낸다. 깨알처럼 가는 글자를 수천자 새겨넣어야하니 아무리 숙련된 장인이라 해도 고행이 아닐 수 없지만 덕분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윤도는 이제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 장인은 쓰임새를 다한 윤도의 가치를 예술품으로라도 살려내기 위해 나섰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윤도뿐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전통공예가 처한 현실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