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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지로드]⑨세계 속 한지 이야기: 동양 종이, 서양 예술품 복원에⋯"한지 주목하는 나라 늘어날 것"

루브르박물관, 한지 사용 미술품·가구·서적 복원
한지 우수한 내구성·안정성 복원용 종이로 적합
흘림뜨기, 천연 재료, 수작업 등 전통 방식 영향
한지 품질 유지, 원활한 생산·공급에 신경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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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왼쪽 세번째)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왼쪽 네번째)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해 전주한지로 복원한 고가구 '막시밀리안 2세의 책상'을 관람했다./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한국의 전통종이인 한지를 주목한 곳은 이탈리아 바티칸박물관 이외에도 또 있었으니,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다. 그곳에서는 부서지고 빛바랜 고미술품, 고가구, 고서적 등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고 보관하는 데 한지를 쓰고 있다. 동양의 종이가 서양의 예술품 복원에 활용된 것으로, 복원용 종이로서 한지의 유럽 내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지는 2016년부터 루브르박물관에 수출되기 시작해 2017년 신성로마제국 시대 막시밀리안 2세가 쓰던 책상의 부서진 손잡이를 복원하는 데 사용됐다. 특히 합스부르크 왕조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책상을 복원하는 데 전주한지가 활용된 것이 알려지며 더 화제가 됐다. 이 밖에 한지는 로스차일드 컬렉션 판화 일부를 복원하는 데도 긴요하게 쓰였다. 프랑스 풍속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작품 14점과 샤를 르모니에의 작품 4점 등 총 18점도 한지를 이용해 복원했다.

종이는 문화재 복원 작업의 필수 재료로 그림, 가구, 조각 등에 있는 구멍이나 흠집을 메우고 보존하는 데 폭넓게 활용된다.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 등 전 세계 복원용 종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종이는 일본의 화지이다. 몇 년 사이 한국의 한지도 복원용 종이로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추세다.

현재 전 세계에서 복원용으로 사용되는 종이의 시장 규모는 약 4조∼4조 6000억 원대로 추산된다. 한지가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1%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지의 세계 시장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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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1월 전주를 찾은 루브르박물관 관계자들이 전라북도 한지발 무형문화재이자 국내 유일 한지발 제작자인 유배근 장인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전주시 제공

그나마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서 한지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우수한 품질 덕분이다.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한지의 강점은 '내구성'과 '안정성'이었다. 루브르박물관은 그림의 여백을 복원하거나 망가진 부분을 복원할 때 얇고 튼튼한 한지를 덧대 작업한다. 한지의 안정성이 높아 원본이 손상될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내구성, 안정성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전통한지의 제작 방식인 '외발뜨기(흘림뜨기)'이다. 전통한지는 닥나무를 쪄서 껍질을 벗기고, 이를 잿물로 삶아 으깬 반죽(닥 섬유)을 황촉규(닥풀) 물에 푼 다음 대나무발을 이용해 종이를 떠낸다. 이때 외발뜨기로 닥 섬유를 가로, 세로로 교차시킨다. 우물 정(井)자 방식으로 한지를 뜨기 때문에 섬유질이 촘촘해 질기고 단단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반면 쌍발뜨기(가둠뜨기)로 세로로 뜨는 화지는 한쪽 방향으로 잘 찢어지는 단점이 있다.

또 전통한지의 원료인 국내산 닥나무는 섬유의 길이가 길어 다른 나무보다 강도가 높다. 이러한 한지의 내구성과 안정성은 보존이 중요한 예술품 복원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실제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특정 방향으로만 물질을 하는 개량 방식인 가둠뜨기 한지에 비해 여러 방향으로 물질을 하는 전통적인 초지 방식인 흘림뜨기 한지가 방향별 강도 차이가 작은 것으로 나타나 전통한지가 강도와 치수 안정성에서 우수한 종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주원료가 수입산 닥인 한지보다 국내산 닥인 한지가 대체적으로 강도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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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 에우제니오 베가 부소장./ 사진=문민주 기자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기관인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RCPAL) 에우제니오 베가(eugenio veca) 부소장도 복원용 종이로써 한지의 우수성을 알아본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전통한지가 뛰어난 이유로 일일이 손으로 떠서 만드는 '수초지',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재료로 만드는 '중성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복원용 종이는 어떤 화학제품도 섞이지 않아야 한다"며 "연구소에서는 재질보다 산도(PH)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산도가 높으면 종이가 빨리 망가져 원본에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종이를 하얗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화학제품을 사용하면 산도가 높아진다"며 "천연재료를 활용해 수제로 만드는 한지는 화학 반응을 쉽게 일으키지 않는 산도 7.8 정도의 중성지로써 보존·복원용으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전통한지는 화학제품인 양잿물이 아닌, 콩대·볏집대·고춧대·메밀대·깻대 등으로 자연산 잿물을 만들어 사용한다.

그는 "첫 번째 테스트는 종이를 아주 뜨거운 온도로 부식시켜 종이의 색깔, 구김 정도를 본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면 복원가가 종이를 직접 사용하면서 접착성, 편의성 등을 검사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과학적 시험·평가를 통과하면 인증을 받게 된다.

연구소 내에는 종이박물관이 있는데 종이의 역사와 고문서의 복원 과정 등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에우제니오 베가 부소장은 "1966년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 강이 대홍수로 범람해 박물관과 성당 등에 전시·보관된 수천 점의 문화재가 소실되거나 손상됐다. 그 당시 수해를 입은 문화재 복원에 일본 화지가 쓰였다"며 "이러한 영향으로 이탈리아에서 문화재 보존·복원과 관련된 제도, 기술이 일찍부터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한지의 우수성이 알려지며 그 수요도 점차 늘고 있다"며 "한지가 이탈리아, 프랑스를 넘어 스페인, 영국, 독일 등의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에도 공급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지 대중화를 위한 제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공공이 아닌 민간 영역 복원가들은 한지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판로가 확대되려면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까지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한국이 유럽 보존·복원시장에 관심을 갖고 유통망 구축에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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