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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시인의 '풍경'] 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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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作

 

풍랑을 피해 정박한, 아무렇게나 벗어둔 현관의 식구들 신발을 가지런히 짝 맞춥니다. 휴일 오후, 좀 멀리 가볼까 생각다 바람 빠진 자전거를 그냥 두고 나갑니다. 삼십 분쯤 걸어 약속 없이 만난 친구가 헐렁해 보입니다. 기억나지 않을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집니다. 봉숭아꽃이 어느새 색이 다 빠졌네요. 늦게 물들이면 그 꽃달 첫눈 때까지 남아있으려나? 미루다 그만 잊어버린 거지요. 뒷주머니에 꽂은 하모니카, 어디쯤 앉아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노래할 참입니다. 아니 아직 별은 멀어 나지막이 휘파람이나 불며 돌아오는 길, 지팡이를 둘씩이나 짚은 노인이 여태 저기 서 있습니다. 빈 그물을 깁고 있는 거미를 한참 들여다봅니다. 귀뚜리 톱질 소리는 언제부터 아다지오였을까요? 제 날개가 무거웠던 걸까요? 깃털을 떨구고 간 비둘기는 지금 어느 하늘을 날아갈까요? 연례행사처럼 꺼낼 재킷 속 엘피에 먼지가 내려앉았겠지요. 패티 킴의 <구월의 노래>가 쓸쓸하겠지요. 눈 뜨고도 못 보았을 붉게 물들어 가는 벚나무를 생각합니다. 귀 열고도 못 들었을 잎새 지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총 맞은 것처럼 가슴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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