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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공감하지 않는 사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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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법의학자 이호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란 주제의 강연이었다. 사회적 참사, 고독사, 산업재해, 노인과 약자의 죽음과 같은 사회적 언어가 돌아왔다. 강연을 듣는 동안 10년 전에 가졌던 이 교수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법의학의 수준은 한 사회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말했던 그는 ‘죽은 자의 사인을 규명하는 일은 법의학의 출발점일 뿐이며, 법의학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역할은 그 죽음을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예방할 수 있었는지를 끝까지 묻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그가 던진 중요한 질문이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얻은 교훈을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이어 “한국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답도 돌아왔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변한 것은 없었다. 이 교수가 강연 내내 반복한 질문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였던 이유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죽음의 장면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그 죽음에 대한 반응 또한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점이다. “왜 그때 거기에 있었을까”, “조심했어야지”, “개인의 선택 아닌가” 라는 말들이 빠르게 뒤따른다. 애도는 짧고, 원인은 개인화되며, 구조에 대한 질문은 금세 사라진다. 공감은 불편함 앞에서 멈추고, 공명은 책임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현장에서 죽음을 확인하고 해석하고 기록하는 법의학자가 우리 사회를 향해 제기하는 것도 이 지점에 닿아 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의 몫으로 환원해버리는 태도. 슬픔에 공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바뀌는 것은 없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지난 29일은 무안 항공기 참사 1주기였다.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대형 참사들은 사회의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참사가 예견치 못했던 비극이 아니라, 누적되어 왔던 구조적 실패의 반복이라는 점이다. 돌아보면 위험은 늘 예고되어 있었고, 예방의 기회는 숱하게 안겨졌지만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으며,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 역시 우리들의 태도에서 비롯된 결과다. 

한 해를 보내는 끝에서 공감과 공명에 인색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기억하지 않기 위해 잊고, 책임지지 않기 위해 개인의 몫으로 돌려버리는 뿌리 깊은 관행이 더 무거워진다. 그런 태도가 반복되는 한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일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제 다시 새해를 맞는다. 한 사람의 죽음을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태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자세, 애도를 기억으로, 기억을 변화로 이어가려는 의지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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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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