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기념회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행사는 대부분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에 집중된다. 지난 주말에도 지역 곳곳에서 출판기념회가 이어졌다. 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출판기념회는 출마예정자들이 출마를 공표하는 일종의 출정식과도 같다. 선거판의 출판기념회는 이제 선거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처럼 읽힌다.
문득 궁금해진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언제부터 필수적인 의례가 되었을까. 사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오래된 관행처럼 보이지만 그리 오래된 문화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선거판의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 규제가 강화된 1990년대 후반 무렵 등장한 비교적 새로운 정치 풍경이다.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의 직접적인 규제 대상이 아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얻은 수익을 공개할 의무도, 모금 상한도 없다. 그렇다 보니 책값보다 훨씬 많은 축하금이 오가더라도 법적으로 제재하기 어렵다. 특히 2004년 정치자금법이 대폭 개정되면서 정치후원금 통로는 좁아지고 합법적 모금 방식이 제한되었으니 정치자금을 위한 합법적 수단으로서의 출판기념회는 꽤 쓸모있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출판기념회가 정치적 의례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선거판의 출판기념회는 후보를 알리고 조직을 점검하며 지지세를 과시하는 정치적 의식처럼 기능한다. 책은 읽히기보다 배포되고, 출판은 기념되기보다 동원을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조직을 결집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출판기념회가 책 내용보다 행사 규모와 참석자에 주목하며 정치적 세를 과시하는 이벤트의 장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0년대 이후 정치자금 규제는 더 강화되고 후원금은 투명해졌다. 그러나 출판기념회는 여전히 선거판의 공식 의례로 남아 있다. 제도가 바뀌었으나 정치적 방식과 관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판기념회가 선거 준비의 통과의례처럼 반복되는 풍경은 정치가 얼마나 관성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선거를 준비하는 방식이 곧 정치의 수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러한 관행은 더욱 뿌리 깊다.
책이 정치의 도구가 되고, 읽히는 것이 아니라 배포되며 기념의 의미를 담지 못한 채 소비되는 출판기념회의 풍경은 우리 정치문화의 한 단면이다. 책이 정치의 결과물이 아니라 정치의 출발 신호가 되는 문화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선거의 형식뿐 아니라 정치의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책이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소비되는 한, 정치문화의 성숙을 말하기는 어렵다. 정치의 성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일보다 오래된 의례를 내려놓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행사와 동원의 형식이 아니라 설득과 책임의 정치가 함께하는 출판기념회의 풍경을 만나고 싶다.
김은정 선임기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