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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슬로시티 전주의 선택

Second alt text전주가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은 2010년이다. 이후 두 차례 재인증을 거쳐 자격을 유지해 온 전주는 2016년, 첫 재인증 심사에서 그 영역이 한옥마을 중심에서 구도심 전역으로 확대됐다. 도시 전체가 슬로시티로 인정된 것은 국내에서도 드문 사례였다. 도시 전체의 삶의 방식으로 ‘느림’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자격은 여전히 유효한가.  전주는 올해 재인증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조차 그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격을 묻는 논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침묵은 단순한 행정의 공백이 아니라, 슬로시티에 대한 인식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슬로시티는 일회성 인증이 아니라, 지속적인 점검과 선택으로 유지되는 자격이다. 도시의 환경과 생활, 공동체의 시간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격은 흔들린다. ‘지정보다 유지가 어렵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그렇다면 지금의 전주는 어떤가.

한때 슬로시티의 중심이었던 한옥마을은 이제 다른 모습이 되었다. 골목은 걷기보다 밀려 이동하는 공간이 되었고, 오래 머물던 가게들은 사라지고 비슷한 간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전동차와 오락시설이 밀집한 거리에서 한옥마을의 정취는 찾기 어렵게 됐다. 전통은 유지되기보다 전시되고, 삶의 자리도 뒤로 밀려난 지 오래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지금 전주가 슬로시티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자격을 잃어가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자격을 묻는 관심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슬로시티는 단순히 느리게 사는 도시가 아니다. 속도 경쟁에 내몰린 도시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더 빠르게, 더 크게’라는 개발의 공식을 의심하고,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규모를 스스로 선택하자는 제안이다. 성장과 개발을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개발과 경쟁의 속도가 도시를 규정하는 시대일수록, 그 흐름을 그대로 따르는 도시는 결국 서로 닮게 된다. ‘더 빠르게, 더 크게’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도시의 고유한 시간과 생활은 밀려난다. 관광은 남고 삶은 사라지는 도시, 소비는 늘어나지만 기억은 쌓이지 않는 도시가 된다. 

선거가 끝나고 새 자치단체장이 들어서면 도시의 개발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그 속도 속에서 슬로시티 전주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슬로시티 재지정 여부를 따지는 일이 아니라 전주가 어떤 속도의 도시가 되려 하는가를 다시 묻는 일이다.

슬로시티는 결국, 도시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 선택의 시간이 지금, 전주 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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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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