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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업 산성공작소 이준규 대표

"골목골목 가파른 경사에 세워진 집, 대로에서 바라다 보이는 지붕과 담장을 모자이크해서 시각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작가들이 빈집을 개조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마을 자체가 경관이 되는 작업을 원했어요." 이준규(43) 산성공작소 대표가 산성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산성마을의 서른 한개 다리는 그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2005년의 일이다.이 대표가 '주민의 손으로 만드는 예술마을(Art Village)'을 목표로 공공미술 프로젝트팀을 꾸리고 다리 건너 명동정육점 자리에 산성공작소를 연 것은 지난해. 저소득층과 노인층 비율이 높은 산성마을에서 가장 고민한 것은 일자리였다. 그래서 찾아낸 아이템이 우산이다. 1960년대 마을엔 대나무와 한지를 이용해 지(紙)우산을 만들던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지우산 공장에서 일했던 분들이 공장장을 비롯해 세분이 지금도 마을에 살고 있어요. 한동안 몰려드는 주문량이 많아서 아침마다 사장이 직접 동네 주민들에게 일거리를 나눠주고 저녁에 리어카로 걷어갔다고 해요."자연스레 마을 협업 체계가 이뤄졌고 그 맥을 다시 이어내 마을 공동체도 활성화 하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지우산 공장뿐만 아니라 미투리, 발 등이 마을에서 만들어졌고 전주 한지공장이, 반석천이라고 불릴 정도로 너른 바위와 돌을 이용한 돌 공장이 있었다고 덧붙인다. 산성공작소 마을 사업의 또 다른 축은 산성천 다리의 조형물화, 산비탈의 빈집, 벽면을 시각적으로 재창조 하는 마을 에코디자인이다.마을 기업 사업은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이다. 도와 시가 지원한 8천만원 예산으로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공식적인 첫 행보는 7.29일 열린 마을기업 산성마을 설명회. 4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띤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지우산은 이르면 9월부터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올해 생산 목표는 1,000개다. 작품용, 전시용, 체험용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하고 판로는 우선 한옥마을의 아트마켓이나 공예품전시관을 이용할 예정이다.마을기업의 성패 여부는 어디까지나 주민들 몫이라는 이 대표. 주민 스스로 마을에 애정을 갖고 공동체를 가꿔갈 수 있을 때까지 힘을 보탤 셈이다. 완주 소양의 작업실도 옮겨올 생각이다. 산성천 다리를 소재로 한 공공미술 퍼포먼스도 준비 중이다.산성천 환경정비사업은 그에게도 걱정거리다. 시는 친환경 문화 하천을 만들겠다고는 하지만 부서별로 따로 추진하는 사업의 연계가 잘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산성천 다리를 일부라도 보존하고 활용하는 좋은 방안이 공론화되길 바란다며 말을 마쳤다./ 이정현 NGO전문기자(전북환경운동연합 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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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6 23:02

11. 전주 동서학동 산성천

전주교대를 지나 좁은목 약수터 못 미쳐 산성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전주시 동서학동 산성마을. 한옥마을과 인접해 있고 시내와도 가까우나 오랫동안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도심 속 산동네다.추억 속 누군가가 튀어나와 이름을 부를 것만 같은 정겨운 동네다. 이 마을엔 특별한 것이 있다. 도심구간 하천 중 유일하게 하늘을 보고 있는 산성천과 서른 한 개의 다리다.남고산과 학봉 일대에서 모인 물이 모여 전주천으로 흘러가는 2km 남짓한 산성천에 놓인 서른 한 개의 다리. 건너편 하천부지에 이어진 비좁은 산비탈에 집을 지은 사람들이 마을길에 이어 놓은 다리다.다리 건너 집마다의 삶이 달랐듯이 서른 한 개의 다리 또한 모양도 느낌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마을의 서정을 간직하고 있는 다리들이 사라질 처지다.▲ 산성천 환경정비사업, 기대감과 우려 교차전주시는 지난 6월, 산성천을 홍수에 안전하면서 문화생태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하천환경정비사업(2.3㎞)을 사업비 124억을 확보, 추진한다고 밝혔다.주택밀집지역에 위치한 산성천의 하상경사가 매우 심하고 하천 폭이 좁아 집중 호우 시 범람이 잦다는 것이다.따라서 하천부지와 산성천 건너 학봉 자락의 일부 주택을 매입해서 하천 폭을 최대 12m까지 넓히고 하천 생태계 복원을 위한 수량을 확보와 수변 식생을 조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이 사업은 한옥마을 녹색 둘레길과 연계 추진된다. 한옥마을-산성천-남고산성-원당천-전주천-한옥마을로 이어지는 10㎞ 둘레길 사업 구간 중 산성천 진입부 노후주택 벽면 및 담장 벽화를 그려 넣을 예정이다.한동안 산성천은 생활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버려진 하천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주차나 차량통행을 등 시민편의를 이유로 복개가 검토되기도 했다.주민들은 전체적으로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하천부지에 집이 있거나 값싸게 임대를 한 세대는 이사 걱정이 앞선다.▲ 기로에 선 서른 한 개의 다리그러면 산성천의 다리는 어떻게 되나? 이 동네에 살면서 서른 한 개의 다리에 담긴 삶과 서정을 글로 풀어 낸 최기우 작가, 하천을 낀 산동네 마을을 공공 미술과 접목한 도심 재생과 공동체 회복에 관심을 갖고 마을로 들어온 산성공작소, 전주천의 첫 도심 구간 유입 하천인 산성천의 생태와 도랑의 기능에 관심을 갖는 환경단체들은 이구동성 걱정이다.시 관계자는 하천 폭이 현 6m에서 12m로 늘어나기 때문에 하천부지 내 주택을 철거할 수밖에 없어서 기존 다리는 사라진다고 밝혔다.현재 계획하고 있는 6개의 다리는 개인이 놓은 아담한 다리와 달리 하천정비기본계획에 따라 홍수빈도 설계에 맞춰 건설되기 때문에 다리 높이와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근대화시기를 온 몸으로 이겨낸 지역주민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다리는 우리시대에서 사라져버리고 남은 유일한 문화일지 모른다." 최기우 작가의 말이다.서른 한 개의 다리에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하는 그는 시가 강조하는 한옥마을과의 관광 연계 측면에서도 다리를 없애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60년 가까이 살았는디 축대가 내려앉은 적은 있어도 크게 물난리를 겪은 적이 없당게." 라는 마을 주민의 말을 인용하며 물이 급하게 불긴해도 오랜 기간 큰 물난리를 겪은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추억으로만 남길 것인가, 재창조할 것인가산성마을사업에 자문을 해온 전북 마을만들기센터 박훈 국장은" 다리를 없애는 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주민들의 삶의 역사를 지우는 것" 이라며 " 한쪽에서는 전주천과 관련한 역사 문화 컨텐츠를 만들어가면서 한쪽에서는 그 역사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없애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산성천의 다리가 스토리텔링의 포인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다리와 관계된 주민들의 삶의 모습에 집중해야지 다리 자체를 보존하는 것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원한다면 가야지요. 하지만 작가들의 이기심일 수도 있고 감정적 접근일 수도 있으나 다리 자체가 마을을 특성화 시킬 수 있는 좋은 자산인데..." 산성공작소 박진희씨는 내내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상징성 있는 몇몇 다리라도 살리고 철거될 집 몇 채를 작가들에게 임대를 내주거나 공예품 판매소로 활용하면 산성천을 따라 문화 공간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불러올 수 있는 공간일 수 있으나 다른 이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현실일 수 있다. 좀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은 주민들의 권리다. 다만 산성천의 다리와 주민들의 삶의 흔적역시 우리시대의 문화 자산임에는 틀림없다. 산성천 다리의 운명은 이제 주민들과 행정에 맡겨졌다./ 이정현 NGO전문기자(전북환경운동연합 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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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6 23:02

11. 조선왕조실록의 요람 무주 '적상산사고'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에 대한 '억지주장'이 극에 달한 가운데 역사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조선왕조 500년, 그 흥망성쇠의 역사는 과거가 아닌 우리 삶 속에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역사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엔 조선의 27왕에 관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선사와 조선 왕들에 대한 지식이 왜곡되었거나 편협하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과 그 이후 강제된 서구문명으로 인해 우리역사가 폄하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1618년 '선조실록' 봉안을 시작으로 '조선왕조실록' 등의 국서(國書)를 약 300년간 보관했던 무주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타버리고 관찬자료들은 인민군에 반출, 현재는 김일성대학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새롭게 조성된 텅 빈 사고(史庫)를 돌아 나오는데 한 가닥의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조선왕조를 결코 찬양할 생각은 없지만 역동적이었을지도 모를 우리역사를 너무나 쉽게 놓아버렸다는 자괴감 때문이요, '삼국사기' 이전의 제대로 된 기록물이 없는 한반도의 역사적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졌기 때문은 아닐까.▲ 국서를 온전히 지킨 수문장바야흐로 우리는 역사 드라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안방극장은 '광개토태왕'과 '계백'에서 삼국시대가, '공주의 남자'와 '무사 백동수'에선 질펀한 조선의 역사가 펼쳐진다. 특히 '공주의 남자'에선 문종의 짧은 치세기간 동안 육진을 개척한 김종서와 왕위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과의 알력이 대중의 역사에 대한 욕구와 흥미를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수양대군 딸과 김종서 아들과의 사랑'이라는 허구다. 이처럼 사극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조합한 팩션(faction)을 통해서 대중의 역사 감정을 자극한다. 대중은 드라마 속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위축된 왕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생질을 살육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거라고 수양대군을 옹호하거나 '천박한 권력의지의 철면피'라고 분노한다. 엊그제 개봉한 '활'이라는 영화는 국치(國恥)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데, 영화에서 주인공은 활 하나로 수많은 청군의 정예부대를 궤멸시킨다. 심지어 우리 백성들을 도륙하고 욕보인 청나라 왕자를 불태워 죽임으로써 처절한 패전의 고통을 통쾌한 복수로 상쇄한다. 현재의 사극 열풍은 현실의 위기와 사회 병리현상을 반영한다. 한 국가와 민족이 위기상황에 직면하면 할수록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고조된다. 진실된 역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한다.무주 적상산(赤裳山)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가 있다. 사실 무주는 멀고도 험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전북의 최북단이고 가장 먼 동쪽이라는 지리적 사실과 나제통문(羅濟通門)이 상징하는 국경의 역사적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무주산천은 곧추선 암벽이 층층이 험하게 깎이어 마치 붉은 치마를 두른 것 같아 이름을 적상산이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선조실록' 116권에 '당초 향산(묘향산)에 장서토록 정하였으나 금번에 적상산성에 장서하였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정확히 신하 김설(金卨)이 1625년 4월 21일 116권의 실록을 포쇄하고 기록한 것을 적상산사고에 옮겨 보관한 것. 그 이전에 적상산성(赤裳山城)에 관한 기록을 보면 고려말 최영장군이 지금의 제주도인 탐라를 정벌한 후 서울로 돌아오다가 적상산의 산세에 감탄하여 산성을 쌓도록 했다. 산성의 담장이 일부 남아있는 위로 안국사(安國寺)가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적상산 안국사기'에 보면 1277년(충렬왕 3) 월인 스님이 안국사를 창건했다고 기록되었는데 아마도 적상산성의 수호사찰로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864년(고종)에 지은 '안국사중수기(安國寺重修記)' 현판에 "나라에서 선사 양각을 지어 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승병들로 하여금 수호하게 하였으므로 족히 믿고 근심할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절의 이름을 안국(安國)이라고 붙인 것과 이절에 소속된 작은 절을 호국(護國)이라고 붙인 것도 비록 작은 절이긴 하되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큰일을 하는 절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볼 때 사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적상산성의 안국사는 적상산사고와 그 안에 있는 국서(國書)들을 완전하게 지켜온 수문장 역할을 다한 셈이다.▲ 실록 고출하는 장소로 중요도 더해적상산사고는 실록과 선원보 등 전적들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사각(실록각)과 선원전을 건립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충주 성주 춘추관의 실록이 병화로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남게 되었는데 이 실록은 난 중에 정읍의 내장산으로 옮겼다가 다시 해주 강화 묘향산에 옮겨지면서 난을 피했다. 난이 끝나자 실록을 강화로 이송하였으나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묘향산으로 옮겼다가 1603년 5월경에 다시 강화도로 안치하였다. 1603년 전주사고본을 모본으로 3부를 인쇄하고 여기에 교정본과 원본을 합쳐 5부를 마련 인쇄본 1부는 춘추관인 내사고에, 2부 교정본 1부 원본 1부는 강화의 마니산사고를 비롯하여 봉화의 태백산, 영변의 묘향산, 평창의 오대산사고에 각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다. 그러다가 후금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1610년 실록을 남쪽의 안전지대로 옮기기로 하고 1612년 적상산성으로 장소를 정해 1613년 사각을 짓기 시작, 1614년 완성됨으로써 오대산 태백산정족산 적상산의 4대사고가 되었다. 특히 적상산사고는 서책의 보관상태가 좋아 실록을 고출하는 장소로서 임금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적상산사고에는 4대문이 있었으나 북문과 서문에 누각을 설치하고 주로 이곳으로 통행하였으며, 사고에는 사각 선원각과 삼문이 있었고 사고의 수호와 포쇄시 이용했던 군기고, 참봉청, 별장청, 객사가 있었으며 사고를 지키는 사찰로 호국사, 안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고는 주로 사찰의 승병들이 지켰다. 건립당시에는 50여 명이었고 '선조실록' 봉안시에는 92명이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태조 영정이 적상산사고에 봉안되기도 하였으나 난중에 승병이 흩어지고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그 위험이 더해지자 승려 각성에게 도총섭(都摠攝)의 칭호를 제수하고 적상산성에 거주케 하였으니 적상산사고에 대한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가 발견한 비장의 심처적상산 사고에 얽힌 이야기는 조선 후기부터 우리 근대사의 격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조일전쟁의 와중에 분산 봉인되어 있던 왕조실록은 사고본만을 남기고 모두 분실, 훼손되고 말았다. 전주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만이 전주 유생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던 것이다.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조선왕조는 왕가의 족보라 할 선원록(璿源錄) 또한 이곳에 옮겨 비장케 하였다. 적상산 사고는 이처럼 조선 왕조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발견한 비장의 심처였다. 그만치 이곳이 깊고 먼 곳이었다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관원들이 튼튼한 궤짝 속에 든 왕조실록을 짊어지고 걸었을 이 산길엔 텅 빈 사고만이 남아있다. 그나마 양수발전소 준공과 함께 원래 있던 자리에서, 역시 함께 옮겨 온 안국사 발치에 자리 잡고 있다. 요동치는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서책의 운명을 적상산사고가 증명한다고나 할까, 역사는 끝없이 변하고 소멸한다는 것을 웅변하듯 적상산 사고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저절로 쓸쓸함을 금할 수 없다./ 기명숙 문화전문시민기자(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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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5 23:02

지혜로운 식습관

약보(藥補)보다는 식보(食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균형있게 섭취하여 건강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여름철 무더위극성을 부리면서 더위로 체력이 떨어지면서 집중력도 저하되기 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보신탕이다 삼계탕이다 하는 여름철 보양식에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또한 수박. 포도, 바나나, 참외, 메론, 토마토등 형형색색의 과일체소가 넘쳐나는 때이기도 합니다. 좀더 건강하게 무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의 하나로 컬러푸드를 적극적으로 섭취해 보시길 권합니다.웰빙이 트렌드가 되면서 떠오른 식문화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컬러푸드섭취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는 'Five a Day'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육류 섭취가 많고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의 천국인 미국에서 하루에 다섯 가지 컬러의 채소, 과일, 곡류를 섭취하는 운동을 말합니다. 이 캠페인 덕분에 각종 성인병과 암 같은 치명적인 질병의 발병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는 결과가 입증되면서 생활 먹거리의 이슈가 되었습니다.컬러푸드는 브로콜리, 녹차등의 그린푸드을 시작으로 흑미검은콩검은깨 등의 블랙푸드, 레드와인토마토 붉은고추 등의 레드푸드 호박꿀 등의 엘로우푸드, 마늘무 등의 화이트푸드가 있습니다.토마토같은 레드푸드는 피로를 풀고, 신진대사를 돕는 비타민 C, 지방분해를 돕는 비타민 B, 항노화 성분인 리코펜, 고혈압을 예방하는 루틴 등이 들어있습니다.초록색의 그린푸드는 교감신경에 작용해 신장 간장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피로를 풀어주며 세포재생을 도와 노화를 예방에도움이 됩니다.보라색의 색소는 안토시아닌으로 지방질을 잘 흡수하고 혈관 속의 노폐물을 용해 배설시켜 피를 맑게 해주는 기능과 시력회복,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습니다. 노란색 식품의 대표성분인 베타카로틴은 암과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항산화제로 시각, 성장, 생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다양한 색깔의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은 건강에 큰도움이 되며 특히 식물성 색소성분인 '파이토 케미컬(phytochemical)'은 야채나 과일의 화려하고 짙은 색에 많이 들어있으며 체내 발암물질 생성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유해한 활성산소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면역기능, 노화방지, 스트레스 완화, 항암효소를 자극하는 황화물, 암세포 전이를 막아주는 항산화 물질인 카로티노이드와 플라보노이드, 암 확산을 차단하는 인돌, 발암물질이 생기는것을 막아주는 페놀, 발암물질의 행동을 억제시키는 타닌 성분 등이 도움을주어 신체가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우리 나라에선 한의학 고서에 음양오행을 이용한 다섯가지의 색깔과 맛,그리고 오장육부의 건강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기록되어있으며, 청적황백흑의 다섯가지 색깔이 신맛쓴맛단맛매운맛짠맛의 다섯 가지 맛과 간장심장비장폐장신장의 다섯가지 장부의 기능과 각각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눈도 즐겁고 영양도 챙기는 하루에 다섯가지 색깔의 야채와 과일을 섭취하자는 운동'Five a Day' 우리도 오늘부터 시작해봅시다./ 신형식(효사랑전주요양병원 한방3과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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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15 23:02

Q&A로 알아보는 소아암

Q.소아암의 빈도는 얼마나 되나요?A.소아기의 악성 종양은 성인에 비하여 발생 빈도가 낮으나, 소아 질병 사망의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발생 빈도는 소아 10만 명당 매년 약 14명이며, 연령층에 따라 발생하는 악성 종양의 빈도가 다릅니다. 5세 미만에게는 백혈병(36%), 뇌종양(13%), 림프종(10%), 신종양(콩팥종양)(10%), 신경모세포종(7%)의 순이며, 5~9세는 백혈병(31%), 뇌종양(25%), 림프종(16%), 신종양(콩팥종양)(5%), 신경모세포종(3%) 순으로 빈도에 차이가 있고 10세 이후에는 림프종이 백혈병보다 빈도가 더 높습니다.Q.백혈병의 증상들은 무엇인가요?A.백혈병의 증상은 감기나 다른 흔한 질환과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병이 상당히 진행할 때까지도 백혈병에 걸렸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열이 나면서 잘 떨어지지 않고 오래간다든가, 좀 피곤해 하고 잘 놀지 않는 경우도 백혈병인 경우가 있습니다.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증상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첫 번째 혈액을 구성하는 정상세포(적혈구백혈구혈소판)들이 부족해 생기는 증상은 빈혈, 무기력, 식욕 부진, 맥박이 빨라지는 증상과 호흡 곤란이 있습니다. 두 번째 백혈병을 일으키는 백혈구가 여러 기관을 침범해 생기는 증상은 미성숙 림프구인 백혈병 세포들이 비장간골수림프절뼈뇌 등을 침범해 생기는 증상입니다. 즉, 비장과 간이 커지고 목 주위나 겨드랑이 등의 림프절이 붓게 됩니다. 골수나 뼈를 침범하는 경우 통증이 심하고 뇌를 침범한 경우에는 두통 및 구토, 시력 장애, 뇌막염 증상과 신경 마비 증상 등도 동반됩니다.Q.소아암 환자에게 격리식이 필요한가요?A.항암제 치료로 인해 백혈구 수가 감소한 경우는 감염에 대해 주의를 해야 하며, 이 경우는 음식 내의 세균 등으로 인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익힌 음식만을 먹도록 하는데 이를 격리식이라 합니다.음식을 만들기 전이나 식사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하며 조리에 사용되는 기구, 식기, 수저 역시 반드시 소독을 해야 합니다. 또 모든 음식은 익혀 먹어야 하며 조리한 음식은 가능한 빨리 먹어야 합니다./ 한국건강관리협회 전북지부 소아과 유준홍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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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8.15 23:02

11. 소아암

소아에게 생기는 악성종양인 소아암. 소아에게는 성인에게서 볼 수 있는 위암폐암자궁암 등은 거의 볼 수 없지만, 급성백혈병악성림프종뇌종양고환태아성암신경아세포종간암골육종바이러스성 종양 등이 많다. 소아암 중에는 급성백혈병이 가장 많으며 전체의 35~40%를 차지하고 있다. 소아암은 1년에 1~2만 명 중 1명의 비율로 발생한다. 특히 45세 이하에서 발생빈도가 높다.전체 암 중에서 소아암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는 소아에서 사고사 다음으로 많은 사망원인이기 때문이다.소아암의 치료는 성인의 암과 마찬가지로 수술, 방사선 조사, 제암제(制癌劑)에 의한 화학요법 등을 병행한다. 일반적으로 소아의 암은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발견되면 가급적 빨리 수술해야 한다. 수술이 불가능한 것은 방사선 조사나 화학요법을 쓰며, 완전한 수술을 한 경우에도 이 요법을 겸하면 치유율이 높아진다.한국건강관리협회 전북지부 소아과 유준홍 전문의는 "소아암은 진행속도가 매우 빨라 조기진단이 쉽지 않고 소아들은 자신의 신체적 이상증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암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부모들이 여러 가지 소아암의 초기증상을 미리 알아두었다 잘 관찰하면 조기진단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소아암이란?소아암은 소아에게 걸리는 악성종양의 총칭으로 죽음에 이르는 위험과 투병생활을 보내게 되는 소아만성질환의 대표적이다. 어린환자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교육상, 가정적인 측면에서의 침습을 야기하는 위험성이 따르는 질환이다. 소아암으로 분류되는 질환은 백혈병(34%), 신경아세포종(20%), 악성림프종(7%), 뇌종양(6%), 망막아세포종(6%), 빌름스종양(4%), 간아종(2%), 성기종양(2%), 횡문근육종(2%), 골육종(2%) 등이다. 성인암이 상피성 종양을 주로 한 병리적 형태인 것에 비해 소아암은 거의 비상피성 종양의 육종으로 증식이 빠르고 수소(愁訴)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병화에 따라 초발연령의 차이가 있으며 확정 진단 이전에 전이만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소아암의 치료는 2~3년 정도 걸리며 50% 이상 완전히 회복된 기록이 있다.▲ 소아암의 원인소아 악성종양의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으나 대부분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함께 관련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에 비해 소아암의 경우는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는 조직(조혈, 신경, 결합조직)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환경적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 물리적 요인, 화학물질 및 미생물 감염이 있다. 원자 폭탄, 방사선에 노출, 방사선 치료, 자외선 조사, 화학물질, 식이에 포함된 발암 물질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 밖에 바이러스 감염 등도 암 발생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종양이 발생하는 이유로 암 유전자의 활성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사람의 몸에는 암 유전자가 있지만,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몸에 존재하는 원형 암 유전자가 돌연변이, 유전자 증폭, 염색체 이상 등의 이유로 활성화 돼 암으로 발전한다.▲ 소아암의 증상소아암은 종류나 부위에 따라 그 증상이 다양하다.가장 흔한 백혈병은 열이 나는 경우가 가장 많고 빈혈이나 출혈증상을 흔히 동반한다. 더러 열이 나서 감기로 알고 치료하다가 빈혈로 혈액검사를 해본 결과 이상이 있어 정밀진단을 의뢰하는 수도 있다.뇌종양 등 중추신경계 종양인 경우에는 두통을 호소하거나 물체가 두개로 보이는 복시현상, 경련, 보행이상 등이 나타난다.악성림프종은 목에서 임파선이 만져지거나 때로는 며칠 사이에 급작스레 숨 쉬는 것이 힘들어 응급실을 찾으며 장폐색으로 인한 심한 구토와 복통으로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복부에 암이 생기는 신경모세포종과 윌름스종양(콩팥에 생기는 암)은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않는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목욕을 시키다가 우연히 복부 내에 혹이 만져져 발견하는 수가 종종 있다.윌름스종양은 가끔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거나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복부 내에 혹이 만져질 경우 50% 이상이 암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빨리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뼈에 발생하는 종양의 경우, 발생부위의 팔 또는 다리에 혹과 함께 통증이 오는 수가 많아 골수염으로 잘못 인식되는 수도 있다.악성횡문근육종으로 대표되는 연부종양은 복부 내 또는 머리나 목에 혹이 생기거나 안구돌출, 코 막힘 등의 증상을 볼 수 있다.▲ 소아암의 진단대부분의 소아암은 조기진단이 매우 어렵지만 신경모세포종만은 선별검사로 조기진단이 가능하다. 신경모세포종은 태아기에 이미 발생해 있는 수가 많은데 출생 시 카테콜라민이란 물질이 신생아의 혈액이나 소변에서 검출되기 때문이다.신생아에 대한 신경모세포종의 스크린검사는 일본에서 제일 먼저 전국적으로 시행됐으며 일부 선진국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소아암의 치료소아암의 치료는 성인암과 마찬가지로 외과적 수술, 방사선치료, 항암화학요법 등이 사용된다.중추신경계 종양은 항암화학요법에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외과적 수술 및 방사선치료가 주가 된다.신경모세포종(복부 등의 교감신경에서 생기는 암)은 수술요법 및 항암화학요법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도 치료성적이 좋지 않은 암에 속한다. 척수로 침범해 신경마비가 오면 응급수술을 하거나 응급방사선치료를 한다.윌름스종양은 수술과 방사선치료, 항암화학요법이 동시에 사용되는데 가장 치료성적이 좋은 암이다. 암이 콩팥에만 국한돼 있을 때에는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골육종은 수술요법과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한다. 과거에는 완치를 위해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최근에는 가능한 한 다리를 보존하는 수술법이 개발돼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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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8.15 23:02

농협 창립 50주년 맞은 김종운 전북농협 본부장

이 땅의 농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농협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1961년 고고성을 울린 후 우리 농업현장의 질곡을 때로는 껴안으며 때로는 갈등하며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으로 농민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을 부흥시킨다'는 목표를 충실히 수행해 왔다.지난 50년동안 농업인과 고객에게 한결같은 동반자로서 애환을 함께 하고 지역경제와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농협의 역할과 비전에 대해 김종운 전북농협 본부장으로부터 들어본다.- 창립 50주년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농협이 걸어온 길을 요약 한다면.▲ 농협은 1961년 종합농협 창립이래 농촌고리채해소 및 농촌물가안정, 농촌사랑운동을 전개해 농촌활력화에 기여해 왔습니다.농협은 농업농촌 및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비수익적 공익적사업부문에도 자금을 투입하고 대부분의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비영리 공익 종합농협입니다.또한 임직원들은 농업농촌과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한 역사로 높은 긍지와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1961년 구 농협과 농업은행을 통합해 종합농협 발족했는데요. 신용부문과 경제부문의 기틀이 나란히 마련되는 시기였습니다.1970년대에는 상호금융제도 도입으로 농촌지역 고리채를 해소하고 연쇄점을 도입해 농촌물가 안정과 소비생활 합리화, 식량증산운동 추진으로 주곡의 자급을 달성하던 시기입니다. 또 대단위 합병운동이 전개되면서 규모화가 이루어졌지요.1980년대에는 민주화ㆍ자율화 및 농업기계화 기반을 구축했고, 중앙회와 지역농협으로 이원화된 현재의 구조가 짜여졌습니다. 시군 조합을 중앙회에 흡수시키고 전문농협을 중앙회의 회원으로 하는 2단계조직으로 개편이 실시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88년에는 조합장과 중앙회장을 조합원이 직접 뽑는 직선제가 이뤄졌습니다.1990년대에는 RPC 및 APC 등을 설치해 농산물 유통체계를 현대화했고, 외환위기를 외부의 지원없이 이겨내면서 토종자본의 진면목을 발휘했습니다.2000년대 들어 농협은 농촌사랑운동을 전개해 농촌활성화에 기여했고, DDA와 FTA등 농업개방화에 따른 농업 위기속에서 통합농협중앙회를 출범하고 농업인과 함께 위기를 무난히 극복하기도 했습니다.2010년이후에는 변화와 혁신을 통한 새농협 건설을 위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농협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조직개편에 나서고 있습니다.- 농협이 사업구조 개편(신경분리)이라는 개혁의 정점에 와 있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2011년 3월21일에 농협중앙회 사업구조개편 관련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번 사업구조개편의 가장 중점 부문은 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경제사업을 제대로 해서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것입니다. 재원운영 및 인력구조도 경제사업 중심으로 개편되고 실사를 통해 확정된 자본금의 30% 이상도 경제부문에 우선 배분됩니다.농협은 사업구조개편에 필요한 부족자본금을 정부에 요청해 놓은 상태이며 정부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이에따라 내년 3월2일 농업농촌농업인의 꿈과 희망을 담은 농협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개편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사업구조 개편후 향후 농협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지역 농축협은 현행의 사업체계를 유지하면서 지원이 확대되고, 지역농업개발과 문화복지농촌관광사업을 주도하는 지역종합센터로 발전합니다.현재의 중앙회와 자회사 체제를 신용사업부문과 경제사업 부문으로 분리해 경쟁력이 강화됩니다. 사업부문별로 책임경영이 강화돼 신속한 의사결정과 공격적인 마케팅과 투자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외부 자금조달이 용이해 신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할 것입니다.경제사업분야는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시장경쟁력을 강화해 농협이 산지 농축산물의 50% 이상을 책임지고 판매하는 농축산물 유통 체계가 구축됩니다.그동안 경제사업은 신용사업 수익을 재원으로 경제사업을 수행하고 적자를 보전하는 구조였습니다. 개편이 완료되면 부족자본금이 해소돼 경제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됩니다.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해 자립경영기반이 구축돼, 농업인의 소득향상과 소비자에게는 우리농산물을 안심하고 값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식탁에서는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협으로 거듭날 것입니다.신용사업부문에서는 본격적인 시장경쟁에 나서게 됩니다. 사업구조개편이 완료되면 금융지주회사 산하에 신설은행과 NH보험사 및 신용자회사를 편입해 종합금융그룹 체계가 구축됩니다. 명실상부한 토종은행으로서 협동조합의 수익센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전북농협의 규모는 얼마나 커졌는지요.▲ 전북농협은 중앙회산하 지역본부와 시군지부(13개).지점(21개).출장소(16개)가 있으며, 292개 지역농축협이 운영 중입니다.도내 343개 사무소에서 4463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고 조합원수는 23만6000여명입니다.2010년 총수신(평잔)은 13조1987억원, 총여신(평잔)은 7조2487억원이고요, 또 농축산물판매(잔액)는 1조8739억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북농협의 나아갈 방향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농산물 유통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농협은 사업구조개편이 완료되면 농산물유통과 식품사업 분야 등이 대폭 강화됩니다.산지유통조직을 재정비해 농민은 생산에만 전념하고 판매는 농협이 전담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겠습니다. 이를위해 APC등 산지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산지조직의 규모화를 위해 조합공동사업과 연합사업등 통합마케팅조직을 적극 육성토록 하겠습니다.RPC의 경영안정을 위한 수탁사업을 확대하고 경영컨설팅을 통한 경영개선에 중점을 두겠습니다.계약물량을 확대해 농산물 가격안정에 기여토록 하겠습니다.또 원예부문의 예담채와 한우브랜드 참예우, 친환경쌀 브랜드 자연섭리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농가소득에 기여하겠습니다.이와함께 서민금융과 선도 지역금융의 중심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가계금융 확대를 통해 서민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통한 건전성 강화에도 중점을 기울이겠습니다.전북농협은 지난해에 14조원의 수신성과를 거두었습니다.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공헌활동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농협은 작년도에 사회공헌에 765억원을 지원해 국내 주요은행중 가장 많은 비용을 쓴 은행입니다농협은 협동조합 특성상 주주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수익을 환원하도록 돼 있어 사회공헌비중이 높습니다.-끝으로 농협을 사랑하는 농업인들과 도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동안 농협은 지역경제의 중심이 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농업인과 도민을 위해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올해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작황부진과 구제역 발생으로 다른해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특히 구제역 발생 때에는 전임직원이 방역활동에 투입돼 전북도가 청정지역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일익을 했다는 자부심도 느낌니다.최근에 갑작스런 전산장애로 인해 도민과 고객에게 커다란 불편을 드렸지만 도민 여러분과 고객의 진심어린 이해와 격려로 극복했습니다.농촌과 지역경제 희망인 농협이 성공적으로 탈바꿈하려면 정부와 농민, 도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원과 성원이 필요합니다.농협의 창립 50주년을 축하해주시고 순수한 민족은행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 기획
  • 정대섭
  • 2011.08.11 23:02

"축제 후에도 이어나갔으면…"

진안시장 마이라디오를 준비하고 진행한 조헌철씨를 만나 마이라디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헌철씨는 2009년부터 마이라디오 기획과 진행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시장마이라디오는 어떻게 진행 하게 되었는가?▲ 진안에서는 전통시장 활성화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작년에 시작할 때에도 라디오 얘기는 나왔다. 하지만 그 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진행을 못했다. 그러다가 시장에서 활동 하시는 분들과의 친분이 있는 상황에서 올해 마을축제 공모사업으로 마이라디오와 진안시장에 같이 신청하자고 제안을 해서 이 일이 진행되었다. 라디오라는 아이템이 전통시장에 접목이 되었을 때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데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안시장 마이라디오'라는 타이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시장마이라디오에서 가장 역점에 두었던 점은 무엇인가?▲ 올해는 진안시장에서 진행하는 거라서 진안 상인분들의 동참에 역점을 두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어서 쉽지 않았던 일이었다. 다행히 문전성시 팀에서 여러모로 도와주어서 상인분들이 하는 프로그램들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이번 마이라디오 방송은 예년과 달리 인터넷으로만 진행되었다. 이점에 대해 반응은 어떠한가?▲ 올해는 FM으로 송출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다. 2년 동안 FM으로 송출을 하다가 올해는 예산 관계로 송출을 못했다. 진안시장에서 식사를 하시고 가시는 버스기사분 들께서 주파수를 물어보시는데 올해는 전파로 송출을 안 한다고 얘기를 할 때 면 죄송하기까지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상 마을축제가 끝나면 아쉬움이 남는 것이 다음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 역량인지 저의 역량인지 모르겠지만 역량부족으로 지속하지 못하는데 대한 아쉬움이 항상 남았다. 그래서 올해는 진안시장 문전성시팀과 같이 진행을 하게 되었고 마을축제가 끝나면 진안시장에서 5일장때 마다 한 시간이라도 지속적으로 진행해보자라는 얘기를 나누었다. 농촌의 5일장은 지역 곳곳에 계신 분들이 시장으로 나오시는 날이고, 사람이 제일 많은 모이는 날이고, 이야기들이 풍부해지는 날이다. 향후에 논의를 진전시켜 진안시장 5일장에서 방송을 진행해보려고 한다./ 최성은 NGO시민전문기자 (전주 시민미디어센터 사무국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1.08.09 23:02

10. 진안 마이라디오

진안군에서 열린 제 4회 마을축제(7월30일~8월3일)기간 동안 운영된 '진안마이라디오'가 그것이다. 진안마이라디오는 진안주민들의 소소하지만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통의 공간이 되었다.진안마이라디오는 마을축제기간에 한시적으로 운영된 지역 공동체라디오 방송이다. 2009년 진안 마을축제 기간에 첫 방송을 내보냈다. 이번이 세 번째 방송이다. 이미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진안은 고원지대인 지역 특성상 기성 라디오 방송이 잘 잡히지 않는 난청지역이어서 마이라디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올해도 마이라디오를 알아보고 주파수를 문의한 지역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올해는 FM 주파수가 아닌 인터넷라디오로 진행되었다.방송은 일주일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진안마을 축제 안내, 진안의 맛, 역사속의 진안, 진안우체국알기, 진안의 보물, 책 읽어주는 오빠, 라디오 스타, 며느리 수다, 서울내기 시골나들이 이야기 등 31개의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방송 기획과 제작, 진행에는 진안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다. 귀농인, 이주여성, 장애인, 청소년, 주부, 어르신 등 진안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이다.해를 거듭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새로움이 더해졌다. 올해는 지역주민의 소통에 지역 경제 활성화를 접목했다. 두 번의 마이라디오에 참여했던 주민들은 물론 진안시장 상인들이 함께했다. 스튜디오는 상설시장 기능과 오일장을 병행하는 재래시장의 열린공간에 설치됐다.방송에 참여한 시장상인들은 라디오 방송을 위해 주경야독을 하면 준비를 했다. 다들 라디오방송이 처음인지라 가게문을 닫은 저녁시간에 함께 모여 대본 쓰기부터 진행까지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에서 진행했다. 영시미는 3년 전부터 마이라디오에 대한 교육과 진행을 지원하고 있다.영시미 고영준 팀장은 "올해 마이라디오 방송은 지역주민의 참여, 소통과 함께 시장 활성화에도 중점을 두었다. 그 일환으로 상가 홍보방송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방송을 했다. 실제 홍보방송이 나간 후 가게의 위치를 물어 오기도 했다. 또 라디오 스튜디오가 시장 입구이자 중앙에 있어서 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상품이나 주차안내 등 시장의 안내센터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마이라디오는 시장에 활기를 더했다. 흥겨운 음악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절로 어깨춤을 추게 했다. 오며 가며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스튜디오는 누구나 쉽게 방송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방송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이 오고, 예정에 없던 인터뷰가 진행되기도 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지역민과 외지인을 불분하고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스튜디오에 찾아와 함께하고 소통했다. 편성에 없던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했다. 때론 누가 진행자고 누가 청취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시장 상인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진솔한 이야기도 함께 했다. 방송을 진행한 상인들은 젊은 시절 장사를 하면서 겪었던 힘든 일, 육남매의 맏며느리로 살아온 이야기 등 가슴 깊은 속에 담아 두었던 사연을 마이크를 통해 전했다. 진행자도 청취자도 같이 웃고, 울었다. 매일 보고 가깝게 지냈지만 쉽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라디오를 통해 나누고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마치 영화 라디오스타처럼 말이다.'며느리 이야기 보따리' 방송을 진행한 김옥순(수경이네)씨는 "방송이 처음이라 떨리고 자신이 없었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육남매의 맏며느리로 살아온 이야기를 방송으로 진행했다"며 "좋은 경험이 되었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계속 참여하고 싶다며" 진안에 이런 라디오 방송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진안시장 유종철 상인회장은 "이번 라디오 방송에 대해 시장상인들이 재밌게 생각하고 있고, 많은 협조를 해주었다. 시장을 찾아온 손님들 호응도 좋았다. 전파를 통해 들을 수 없어서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시장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축제 후 에도 장날이나 주말을 이용해서 시장을 홍보하고 시장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송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중이다"라고 말했다. 유 회장은 이번 라디오방송에서 평소에 본인이 읽었던 책들을 소개하는 '책읽어주는 오빠'라는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일주일간 진안시장을 흥겹게 만들었던 마이라디오 스튜디오의 불이 꺼졌다. 하지만 곧 다시 정다운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진안 소식과 진안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상시적인 공동체라디오방송이 세워지는데 기초가 될 것이다.◆ 공동체라디오란공동체라디오는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운영하는 작은 출력의 비영리 라디오 방송이다. 기성 라디오 방송에 비해 출력이 작아 시, 군, 구 단위 지역에 한정해서만 들을 수 있다.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역밀착형 매체로서 그 효용성이 인정받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에서는 수 백개의 공동체라디오 방송이 지역밀착형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국내에는 2005년 제도적으로 도입되어 현재 전국적으로 7개(관악, 마포, 분당, 공주, 영주, 광주, 대구성서)의 공동체라디오가 방송을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30여 곳에서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최근 일본의 사례처럼 공동체라디오가 지진이나 홍수 등 재난상황에서 주민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지역 재난방송으로 역할을 조명하는 토론회가 열리는 등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성은 NGO시민전문기자 (전주 시민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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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9 23:02

국악피아니스트 임동창은

임동창씨는 군산 출신이다. 중학교 2학년때 피아노를 시작해 고등학교까지 군산에서 다녔다. 끼니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집, 5남매의 장남이었던 그는 과외는 엄두도 못냈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보았던 스승(이길환) 덕분에 피아노를 공부할 수 있었다. 군대 가기 전 출가해 스님으로도 1년 남짓 살았던 그는 제대 후 다시 절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첫사랑을 만나 파계(?)하고 서울시립대 음악과에 들어가 피아노를 전공했다. 문화반란의 기수로 꼽혔던 그는 우아한 피아노 연주가 아니라, 우리 음악을 피아노로 접목시킨 새로운 작업과 즉흥연주, 파격적인 형식의 창작곡 등으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렸다. 음악적 천재성으로 늘 주목의 대상이 됐던 그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교류하면서 우리 음악의 뿌리를 전파했으며, 장사익을 공식적인 무대에 이끌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남원에서 함께 살고 있는 그의 제자 10명도 그 못지 않게 특별하다. 열여덟살부터 서른 다섯 살까지 연령층도 다양하지만 공부하는 영역도 제각각이다. 대부분이 그가 운영했던 서천 동강중학교 방과후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제자들이다. 잘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전공까지 바꾼 제자,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가 피아노는 작파하고 노래나 연기를 공부하는 제자, 좋은 농사꾼이 되고 싶은 동생과 음악을 좋아했지만 건축으로 진로를 바꾼 형제 제자도 있다. 이곳의 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신성희 'ta'대표(35) 역시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를 배우고 싶어 제자가 됐다.스승은 제자들을 구속하지 않는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일러준다. 제자가 선택한 분야에 재능이 없어 보이거나 마음이 떠난 듯 보이면 그 분야에서 '졸업'시키고, 하고 싶은 새로운 일을 찾으라고 한다. 그의 교육 방식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제자들은 한결같이 행복하다고 답한다. 이들 스승과 제자가 함께 갈 수 있는 힘은 신뢰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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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1.08.09 23:02

남원서 생활공동체 꾸린 임동창 국악피아니스트

이런 풍경을 상상했다. 한옥의 몇 개 방마다 피아노나 국악기가 놓여있고, 그 어느 방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또 그 어느 방에서는 스승의 무서운 호통소리가 새어나오는. 혹은 여러명이 함께 신명나게 국악기를 배우며 무더운 여름 더위와 대결하는 그런 치열한 현장을.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대책 세우지 말고 그냥 마음 가는대로 '하고 싶은 것'해보라고 가르치는 이상한 스승과 다니던 회사며 학교며 전공까지 작파하고'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 용감한 제자들은'그냥' 놀면서 쉬면서 사는 것 처럼 보였다. 하기야 반나절도 채 안되는 시간동안의 엿보기로 이 특별한 스승과 제자들의 궁극적 삶의 지향을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마는 그래도 짐작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꾸리는 생활공동체 안의 충만한 사랑과 행복, 그래서 즐겁게만 보이는 일상이었다.남원시 송동면 영동리 영촌마을. 피아니스트 임동창씨(56)가 그 제자들과 남원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2년 전 쯤이었다.궁금했다. 그가 누구인가. 90년대 중반, 피아노를 치며 꽹과리와 징을 동시에 연주하고, 무대 위를 펄쩍 펄쩍 뛰어다니며 신들린 듯한 열정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사람이 아니던가. 우리 음악의 모든 것을 섭렵하고 거의 모든 장르의 국악을 피아노로 풀어내는, 그래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없애고, 관습과 혁신의 만남을 새로운 형식으로 창조해낸 많은 작품들로 우리 음악계를 들썩이게 했던 그는 2000년대 초, 방송진행자로도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바로 그 때, 대중들로부터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언론에서는 칩거라고 했다. 가끔씩 춤이나 연극무대로 그의 작업이 드러날 때면 여지없이 매체들이 주목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들어앉아 작업한 시간은 10년. 의외로 길었다. 지난해 여름, 비로소 그가 세상에 나왔다. 〈허튼가락〉이라는 작품집이 그 앞에 놓여있었다. 그의 근황이 더 궁금해진 즈음, 이번에는 완주군의 할머니 다듬이연주단 프로젝트를 이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두시간을 넘긴 인터뷰 시간동안 그는 넘치지 않게, 진지하면서도 나분나분하게 우리 음악의 뿌리찾기에 바쳐온 시간들을, 그리고 새로운 인생이 된 '가르치는 삶'의 철학을 들려주었다. 그의 화두는 자유로움. 음악에서도 그랬지만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 둘 것. 어떤 틀로도 구속하지 말 것.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가'를 알게 하는 것. 그것이 그가 가르치는 모든 것이었다.-남원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남원에는 언제 들어오셨습니까."2008년 봄이니 3년이 넘었네요. 뭐가 그렇게 궁금했어요? 그냥 나 이렇게 살아요. 아이들하고 재미있게."(웃음)-생각했던 것과는 생활이 많이 다르군요. 짧은 생각으로 피아노나 국악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종의 영재학교가 아닐까 했거든요."저는 영재 교육 같은 것 안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천재예요. 그것을 못깨우거나 안깨우고 있을 뿐이지요."-함께 생활하고 있는 제자들은 몇명이나 되나요. 무엇을 공부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지금은 열명입니다. 전공은 모두 달라요. 들어올 때는 피아노를 더 잘 치려고 나한테 왔는데, 공부하다가 내가 길을 잘못 선택했구나 해서 때려치우고 노래로 바꾸기도 하고, 연극을 하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정작 피아노를 공부하는 아이는 한명도 없네요."-뜻밖입니다. 그것을 다 가르치십니까."다 가르치죠. 일일이 구구절절 옛날처럼 콩이야 팥이야 하는 가르침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아이들이 가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점을 보기 때문에 뭐든지 가르칠 수 있어요. 과정이 중요하니까요."(자수에 글쓰는 일, 농사에, 돈 버는 일까지 다 가르친다니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다시 에둘러 물었다.)-제자들은 선생님께 무엇을 배우러 왔을까요."그것은 애들한테 물어봐야죠. 그런데 애들이 무엇을 배우러 왔든 나는 사실 관심이 없어요. 어차피 그런 선택은 잘못된 것이 많으니까. 무엇을 가르치냐 그러면 답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잘 사는 것을 가르쳐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이 없으면 못삽니다. 그런데도 사람을 미워하고 함부로 대하죠. 세상을 살면서 가장 대하기 어렵고 힘든 것이 사람이지 않습니까. 사람을 좋아하면서 사람을 싫어한다는 이 문제, 이것이 핵심이에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이것을 위해 사랑으로, 다시 말하자면 본성으로 돌려놓는 겁니다."-2001년쯤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셨는데, 그때야말로 잘나가던 시절 아니었습니까."화두가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피아노를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가, 내 음악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고 사랑은 무엇일까. 피아노를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은 스무살에 해결되었는데, 나머지 세 개의 화두는 해결하지 못했지요. 그때가 내 나이 40대 중반인데,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나이가 더 들면 불행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들어앉아 안성 집과 금산에 있는 보광사, 속리산 상환암, 안동 예술촌을 다니면서 작업에 전념했어요."-열정적으로 연주활동을 하다가 작곡에만 몰두하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텐데요."그렇진 않았어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한 3년동안은 작곡에만 몰입했는데 2년만에 허튼가락을 만났어요. 2003년에 그 작업을 마무리했고, 그 다음부터 정악에 몰입했어요. 그리고 민속악을 했죠. 거창 합천 여주 제주도 이런 곳 다니면서 자료 조사도 하고 채보도 하고. 민요, 산조 장단, 진도 씻김굿이나 동해안 무속 장단까지. 다 해결했어요." (그가 '해결했다'는 것은 비로소 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런데 왜 이런 어려운 작업을 하십니까."내 뿌리니까요. 사실 우리 음악은 내가 전공한 피아노와 어울리지 않아요. 피아노는 뻣뻣한 악기인데 우리 음악은 낭창 낭창 하잖아요.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어요. 내가 공부한 것이 피아노니까. 그러니 우리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그것을 위해서 새로운 곡을 만드는 일을 안할 수가 없어요."-남원에 오시기 전에 그런 작업만 하셨습니까."서천에 있었어요. 자치단체 지원으로 1년 동안 애들 음악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었죠. 동강중학교라고. 일종의 방과후 학교였어요."-그래서 한때 '임동창이 중학교 음악선생님이 됐다'는 소문이 있었군요."배우는 학생들은 중학생 뿐 아니라 대학생,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까지 다양했어요. 내가 지금 행복한가. 내가 무엇을 해야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아이들이 다 찾아 왔어요."-그런 작업을 하시면서 지난해 새 작품집을 내셨군요. '임동창의 풍류, 허튼가락'이란 이름이 붙었던데요."어떻게 해야 오롯한 내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화두를 풀어낸 것이 허튼가락입니다. 영산회상, 경풍년/염양춘/수룡음, 수제천을 골라 피아노로 연주했어요. 그동안에는 전통음악을 그냥 그대로 제식으로 쳤어요. 내가 만든 음악이 많이 있었지만(우리 전통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라이브 공연에서는 할 수가 없지요. 대중들에게 어울리지 않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음악을 원치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음반으로 만들어내면 관심 있는 사람들은 들을 수 있잖아요. 특히 외국 사람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우리 전통음악을 좀 더 가깝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싶었구요."-'허튼가락'은 무엇입니까. 저는 산조가 떠오릅니다만."산조와 다르죠. 산조는 흩어진 가락이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가락을 다 모아서 연주를 한 것이 산조거든요. 허튼가락은 장르가 아니예요. 하나의 삶의 철학이랄까. 단순한 음악의 장르를 넘어서죠.-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습니다. 하루 일과가 어떻습니까. 몇시부터 시작하나요 하루를."지들 하고 싶은대로 합니다. 애들은 대개 7시 넘어서 일어날 거예요. 아침은 안 먹어요. 자유롭게 먹거나 말거나.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 두끼 먹죠. 식사 당번은 돌아가면서 하고. 누군가가 자기 공부에 몰입하느라 시간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죄다 빼줘요. 한번 미친듯이 해보라는 배려죠."-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갈 길을 찾아가게 하는 방식인가요. 자기 스스로 자기 공부를 하게 하는."그런 면이 있지만 애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철저하게 체크합니다. 그냥 놔두고 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림 그리는 아이라면 어떻게 무엇을 그릴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길을 잡지 못할 때는 제가 제시를 하죠. 이렇게 한번 해봐라하고."-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공간이니 일종의 학교랄 수 있는데 함께 생활도 하니 생활공동체인 셈인데요. 먹고 사는 비용은 어떻게 해결하십니까."애들이 생활비를 냅니다. 형편이 안되면 그냥도 살고. 모자라는 부분은 제가 충당하지요. 수업료는 없어요. 그것 아니어도 먹고 살수는 있을 만큼 제가 버니까요."-오래전부터 선생님께서는 우리 음악으로 피아노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비롯해 우리음악에 대한 대중화를 이끌어내셨는데, 요즈음 음악을 보면 어떻십니까."어떤 장르나 제도나 장단점이 있지요. 중요한 것은 음악을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시류에 편승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음악을 하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다만 내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 하지 않고 정말 음악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실력을 갖춘 음악가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우리 음악은 도제식 교육 중심인데, 이것은 어떻게 보십니까."장단점이 있어요. 장점은 바른 정신을 몸으로 붙이는 과정, 그래서 근본을 만든다는 것이고, 단점은 그런 과정에 매달려 너무 많은 세월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선생님이 가르치는 이 방식은 계속 유효한가요."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올해까지만 이렇게 한다고 일러두었어요. 내가 가르치는 것을 몸에 붙여서 제 것으로 만들고, 사상이나 철학을 세워 올해까지 자리 잡히지 않으면 교육방식을 바꿀 수 밖에 없다고."-앞으로 가고자 하시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20대부터 교육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생각했습니다. 스무살에 저 스스로 피아노 연주가 툭 터지면서 모든 사람이 천재인데 교육이 문제라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교육을 가장 큰 길로 세웠죠. 그것도 물론 인연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거예요."-이효재씨와는 부부연을 갖고도 오랫동안 떨어져 계시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내가 워낙 비가정적이고 비가족적이거든요. 우리가 젊은 나이에 만난 것이 아니잖아요. 그때 저는 사십대 중반이었는데 한 삼년 정말 알콩 달콩 기막히게 살았어요. 다들 모르시겠지만.(웃음) 효재는 꿈이 살림이었고, 내 뒷바라지 하면서 살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사람을 가만 보니까 그것이 아닌거예요. 공적인 사람이다 싶었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자고 했어요. 나한테 묶어두기에는 너무 할 일이 많은 사람이죠. 지금은 가끔식 다녀가는 것만으로도 서로 편하고 좋습니다." (한복디자이너인 부인 이효재씨와 그는 최근 국립공원 홍보대사로 위촉됐다)-완주에서 추진중인 할머니 다듬이연주단과 관련한 계획은 언제부터 실행하십니까."구체적인 것은 아직 문서로 주고 받지 않았지만 곧 시작할 겁니다. 자치단체장이 큰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일이니 잘 되겠지요. 두가지 제시했어요. 지금 할머니들의 연주는 그 취지를 살려 그대로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이 하나고, 또 하나는 다듬이를 중심으로 한 타악 앙상블이 주가 되는 세계 공연단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의 진정한 뿌리 깊은 전통의 멋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성공한 것은 사물놀이 밖에 없거든요. 그런점에서 저는 우리것의 진정성을 온고이지신으로 발현시킬 이 작업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열정과 의지가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인만큼 조심스럽고 설레고 떨리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 함께 가야 성공할 수 있는데, 그것이 과제입니다. 사실 모든 일은 사람에 달려 있잖아요.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겁니다. 좋은 사람을 선택해서 좋은 교육을 하는. 그것은 결국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풍류학교인데, 풍류는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고 신명나게 사는 것이거든요."그는 풍류를 우리 삶의 중심에 들여놓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풍류를 우리 몸과 마음에 붙이는 일이 쉬울까. 그는 몸짓 마음짓 흥짓을 통한 교육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흥짓은 몸짓과 마음짓이 합해진 것인데, 이것은 또한 사람의 삶을 아름답고 신명나게 하는 예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던 그의 에너지가 이제 무엇으로 발휘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계적인 타악연주단과 가장 한국적인 풍류학교. 이 귀한 선물을 우리 지역에서 만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 기획
  • 김은정
  • 2011.08.09 23:02

10. 섬 아닌 섬 '죽도'…정여립의 익지 않은 꿈

물이 베고 잠든 베갯머리에는무너진 돌탑과 뿌리만 남은 당산나무와새끼를 친 암소의 울음소리와깜빡깜빡 잠을 놓치는 가로등과물머리집 할머니의 불꺼진 방이 있다물이 새근새근 잠든 베갯머리에는강물이 꾸는 꿈을 궁리하다 잠을 놓친 사내가강으로 나가고 없는 빈집도 한 땀,(박성우 詩 「물의 베개」 中)여름 강이 배를 드러내놓은 채 누워 있다. 며칠 동안 내린 폭우를 잔뜩 머금고 훌러덩 제 살을, 제 속을 고스란히 펼쳐놓고 있다. 물이 차오른 강은 모든 것을 안고 흐른다. 거대한 기암괴석도 모래밭도 짙푸른 녹음도 제 품에 안은 채 흐른다. 여름 강은 엄마의 가슴이다. 탱탱하게 오른 풍만함이 산천에 젖을 물린 채 제 몸을 풀고 있다.진안 죽도(竹島)는 육지 속의 섬이다. 강물이 사방을 에워싸고 흘러 하늘에서 보면 예쁘게 빚어 놓은 '송편'이다. 동북쪽은 덕유산에서 흘러온 구량천이 휘돌고, 서남쪽은 금강 상류 물길이 감싸 안는다. 죽도엔 한자 그대로 산죽이 지천이다. 겨울이면 흰 눈 사이로 댓잎이 청량하고 여름이면 곧게 뻗은 줄기로 햇살이 퉁긴다. 구량천이 죽도를 지나면서 금강 상류에 몸을 섞는다. 말 그대로 '두 물머리'이다.죽도 앞은 진안읍과 동향면, 장수군과 천천면의 경계를 이루며 솟은 천반산(天盤山646.7m)이다. 천반산은 죽도를 향해 다리를 뻗고 편하게 쉬는 소의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용이 머리를 내밀며 엎드린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복숭아를 받는 소반'같다고 해서 '천반낙도(天盤落桃)의 땅'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천반산의 이름에는 3가지 유래가 있다. 먼저 주능선 일원이 소반과 같이 납작하다 하여 천반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고, 두 번째는 땅에는 천반, 지반, 인반 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 산에 천반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다 해서 지어졌다는 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산 남쪽 마을 앞 강가에는 장독바위가 있어, 이 바위가 하늘의 소반에서 떨어진 복숭아라 하여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을 천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기축옥사(己丑獄事)와 정여립의 모반"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고, 올바름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지아비는 떠나도 괜찮다."천반산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정여립(1546~1589)이 있다. '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다'는 왕권체제하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던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반체제적인 인물 정여립.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처럼 위험한 사상으로 장전돼 '대동세상'을 꿈꾸던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론 개혁과 실용을 앞세운 조선왕조 최초의 공화주의자이다. 그의 말은 선비사회인 조선에게는 벼락 치는 소리였고 천둥소리였다.그는 서인(西人)의 수장이었던 율곡 이이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거칠 게 없었으며 선조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율곡도 그를 '당대 천재'라고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율곡이 죽자 그는 동인(東人)으로 정치노선을 바꾼다. 돌연한 변신에 서인들의 격분을 샀음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서인들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고 그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대동계(大同契)를 만들었다.그는 '같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꿨고 '백성이 잘 사는 나라,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원했다. 양반, 상놈, 농민, 노비 할 것 없이 누구든 뜻을 같이하면 계원이 될 수 있었다. 대동계원들은 천반산에 모여 무술단련과 함께 세상이야기도 나눴다. 전라도뿐만 아니라 저 멀리 황해도에서도 참가자들이 몰려들었다. 또한 대동계를 이끌고 남해안을 침범한 왜선 18척을 물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사대부가의 낙향한 벼슬아치 출신이 천민들과 어울린 것도,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적인 모임을 만든 것도, 왕위 세습을 거부하거나 충군의 이념을 부인하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서슴지 않은 것도 반대세력에겐 좋은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역모를 고발하는 황해도 관찰사의 비밀장계가 조정에 당도됐고, 곧 토벌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됐다.첩보는 구체적이었다. 하지만 정여립과 한 길을 걸었던 동인 계열과 선조는 정여립이 모반할 까닭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가 스스로 한양에 올라와 무고를 주장하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이어 금부도사 유담으로부터 정여립이 도주했다는 급보가 당도한다. 변고는 거듭됐고, 얼마 후 정여립은 진안 죽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선조가 직접 나선 정옥남에 대한 친국(임금이 직접 죄인을 문초함)을 시작으로 기축옥사(己丑獄事)가 시작됐다. 옥남은 정여립의 아들이다.이듬해 7월까지 무려 1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조 4대 사화의 희생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모반에 대한 치죄는 매우 엄했다. 삼족을 멸하고, 정여립과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정여립의 시신은 능지처참된 후 조선팔도로 흩어지고 그와 서신 한 번, 대화 한 번 한 이력이 있는 사람도 죽었다. 정여립의 근거지 전주는 동래 정씨가 아예 살 수 없게 됐고, 그의 고향 금구는 현으로 강등됐다. 그리고 호남은 반역향으로 지목돼 이후 인재등용에서 배제됐다.▲ 음모 그리고 익지 않은 꿈'사건을 만든 사람은 송익필이고, 각본에 따라 연출한 사람은 정철이다. 정여립 모반사건은 서인들이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조작한 당쟁의 산물일 뿐, 역사 속에서 역모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동사만록' 中)정여립은 대역죄로 죽었다. 또한 그가 쫓기다 죽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뚜렷한 물증도 없고 단 한 번도 저항한 흔적도 없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을 고작 몇 년 앞에 두었고 동인들이 주도적 집권세력을 형성하고 있을 때였다. 힘을 잃고 정권을 찾을 기회를 엿보던 서인들에게는 율곡이 죽자 동인으로 옮겨간 정여립을 역모의 주역이자 도화선으로 삼아 동인정권을 끌어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단재 신채호 선생은 기축옥사를 '조선 500년 제일사건'이라며 한탄을 했다. "이것이 전민족의 항성(恒性)을 묻고 변성(變性)만 키우는 짓이다. 정여립의 이름은 300년 뒤에나, 500년 뒤에나 그 이름이 알려질 뿐이다."또한, '조선을 뒤흔든 최대역모사건'을 쓴 신정일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6세기 말 개혁적 선비의 떼죽음은 결국 임진왜란 때 인재부족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조선왕조 몰락의 결정타가 됐다. 선비들은 더 이상 바른 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조선사회를 썩게 만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정여립의 꽃은 지고 말았다. 천변산 자락으로 떨어진 꽃은 구량천을 돌아 금강 상류로 흐른다. 물을 잔뜩 머금은 강변이 푸르다. 산죽의 잎새에 퉁긴 여름 햇볕이 도포자락처럼 휘날린다. 말을 타고 천반산을 누비는 정여립의 모습이 강물 위에 비쳤다 사라지는 환영을 본다./ 김성철 문화전문시민기자(우석대 한국어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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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8.08 23:02

[새만금] 새만금경자구역, 국제 비즈니스 도시 변모

새만금ㆍ군산경제자유구역이 다양한 기반시설과 정주 여건이 갖춰지면서 국제 비즈니스 도시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새만금경제청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인 군산시 오식도동에서 ㈜BGH가 300억 원을 들여 지상 13층(196실) 규모의 관광호텔을 신축 중에 있다. 또 인근 새만금군산산업전시관 부지에는 컨벤션홀과 전시장 등을 갖춘 종합비즈니스센터가 오는 2013년 완공된다.여기에 비응도동에서 민자 유치를 통해 10층 규모(450실)의 호텔형·일반형 콘도와 아쿠아리움, 테마상가 등을 갖춘 종합휴양지 개발이 오는 2014년부터 시작된다.뿐만 아니다. 임대ㆍ일반 아파트 3개 단지(2500여 세대)가 사업 승인을 받아 추진됨으로써 경제자유구역의 정주여건을 해결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건축 심의가 진행 중인 오식도동 임해업무단지에도 총 300억원을 들여 객실 585실 등을 갖춘 오피스텔과 근린생활시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오는 11월 착공될 예정이다.새만금경제청 관계자는 "경제자유구역 내 비즈니스를 위한 기반시설 및 정주 여건 조성사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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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대식
  • 2011.08.08 23:02

"공동체 소통위한 연결 지역사회문제도 참여"

"다함께 잘사는 지역공동체가 원주경제공동체의 목표입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나 이탈리아의 트렌토가 되고 싶은거죠."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김선기 사무국장은 "원주의 협동조합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공동체가 참여해 경제활동을 하는 마을기업(공동체회사)과 같지만 사회적 운동성향도 지녔다"고 소개했다. 거대자본의 횡포, 빈부격차, 농업의 몰락 등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했던 원주지역 협동조합 탄생 배경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네트워크는 원주지역 학교급식조례나 친환경농업지원조례 제정을 주도하는 등 지역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 2008년에는 농업관련 단체들이 참여해 친환경급식지원센터도 설립했다.김 국장은 "지역에 공동체의 지속발전을 목표로하는 경제공동체가 늘어나면 어떠한 외부의 압력에서도 지역이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공동체의 자립성을 갖추는 것이 바로 원주지역 경제공동체들이 꿈꾸는 미래다.그는 "네트워크는 지역내 공동체들의 소통을 위한 연결망이지 지원조직이나 상급단체는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따라서 자금이나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수익을 더 남기는 것 보다 공동체의 자립과 지속을 더 중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기획
  • 은수정
  • 2011.08.08 23:02

3. 국내 성공사례 - 3)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강원도 원주에는 자립경제를 지향하는 공동체조직이 있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대표 최정환 원주한살림대표)'. 농업교육소비자사회서비스문화환경 관련 지역 공동체조직과 사회적기업이 참여하고 있다.이 네트워크가 내걸고 있는 기치는 '가난하고 무지한 이들이 일구는 착한경제'. 조직간 협력을 통해 공동체단체들의 성장과 지역 경제가 발전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 단체가 생각하는 '발전'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활동을 기반으로 건강한 공동체 자립기반을 쌓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풀뿌리 경제공동체조직들이 자발적으로 구축한 상호지원망이다.▲ 22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참여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지난 2003년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로 출발했다. 1960년대부터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된 원주에는 다른 지역보다 협동조합이 발달했다. 협동조합은 지역자립의 경제기반을 만들고 주민자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공동체 경제활동)와 맥락을 같이한다.원주의 협동조합운동은 신용협동조합운동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농업 소비자 교육 문화 사회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 발전했다. 도-농직거래를 위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현 한살림)도 원주에서 처음 선보였고, 생산자 중심의 생명농업협동조합도 원주가 시초다.이러한 원주지역 협동조합 17개가 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결성했고, 협의회에 5곳의 사회적기업이 참여하면서 2009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탄생했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회적기업들은 협동조합이 만들었거나 지원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네트워크에는 친환경농업(생산과 가공) 유통 소비 신용 교육 사회서비스 환경생태 문화 등 7개 분야의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원주한살림가톨릭농민회남한강 삼도생협원주생명농업살림농산친환경급식지원센터(합)햇살나눔신화마을행복한시루봉신화마을원주생협원주노인생협원주의료생협상지대생협원주밝음신협갈거리사랑촌소꿉마당참꽃어린이학교성공회나눔의집원주지역자활센터원주YMCA아가야(유)다자원(주)노나메기문화생협(영)신화마을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 회원수는 3만5000여명. 원주시 인구의 10%다.▲ 공동체 자립운동 주도지난 1965년 결성된 원주한살림은 지역 농민들의 자립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도-농직거래를 처음 시도했다. 직거래운동은 지역에 친환경농업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지역 농민들의 소득기반을 확충하는 성과도 거뒀다. 특히 원주한살림은 (주)살림농산이라는 자회사도 만들었다. 살림농산은 참들기름을 생산하고 있다.소비자들이 중심이 돼 조직한 원주생협은 계약재배를 위한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원주의료생협은 지역 보건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해 조직됐다. 조합원들의 출자로 병원이 설립됐으며, 회원들은 이곳에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 소꿉마당은 공동보육과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공동체조직이다.이렇듯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단체들은 다양한 사회분야에서 지역민들의 자립경제기반을 만들면서 공동체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바로 네트워크는 이들 개별 단체들이 하는 활동이 시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공동체 협력시스템 구축네트워크는 지난 3월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사회적경제 블록화사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블록화는 참여단체들이 상호간에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지역공동체안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우선 참여조직들이 단체 또는 사업별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생산-가공-유통-소비조직이 유기적인 협력망을 구성해 공동생산 가공 유통 소비를 하는 것이다. 관련 회원들도 협력망이 구축된 단체를 이용한다. 이는 곧 네트워크안에서 지역경제 순환망이 조직되는 것. 로컬푸드운동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각각의 단체들은 매출증대와 고용 창출 등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참여 단체들의 구체적인 '상호부조 흐름도'는 9월쯤 완성될 예정이다.참여 조직들은 조합원이나 회원 확대, 매출증대, 금융지원, 상호출자, 인적물적 후원, 사회서비스제공, 교육이나 강사 공동활용, 협동기금 조성 등을 먼저 하기로 했다.특히 협동기금은 조직별로 수익의 일정액을 적립해 모으는데, 이 기금으로는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분야의 공동체조직을 꾸릴 계획이다.네트워크는 참여 조직들간 가치를 공유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가치 공유는 지역 경제자립을 위한 공동체운동의 지속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 기획
  • 은수정
  • 2011.08.0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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