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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전북, 작촌문학상·고천예술상 시상식 성료

국제PEN한국본부 전북지역위원회(회장 장교철)는 지난 9일 전주연가 무궁화홀에서 ‘제18회 작촌문학상 및 제5회 고천예술상 시상식’을 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행사에는 김철교 국제PEN 한국본부 부이사장,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최무연 전북예총 회장, 백봉기 전북문인협회 회장 등 주요 내빈과 회원, 수상자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 작촌문학상은 구연배 시인이 영예를 안았으며, 고천예술상은 김명자·이점이 시인이 각각 수상했다. 전주 이강주 조정형 대표가 매년 후원하는 작촌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만원이, 고천예술상 수상자에게는 각 100만원의 상금과 부상이 수여됐다. 소재호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을 통해 구연배 시인의 작품을 “인생사와 시적 경지의 눈부신 교집합”이라 평했다. 김명자 시인에 대해서는 “사랑을 품는 시적 판타지의 결기”를, 이점이 시인에 대해서는 “뛰어난 시적 기교와 회화적 요소를 특성화한 삶의 구조”를 높이 평가했다.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은 축사에서 “‘전북PEN’은 국제적 문학단체인 만큼 폭넓은 문학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영역을 확장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장교철 회장은 인사말에서 “전북 PEN의 특질을 살려 회원들에게 신선한 창작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시상식에 앞서 열린 제23차 정기총회와 ‘전북펜문학’ 제24호 출판기념회에서는 김여울 시인과의 대담을 기획특집으로 다룬 연간집이 공개되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는 수상작 낭송과 축하공연, 기념촬영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박은 기자

  • 문학·출판
  • 박은
  • 2026.01.15 14:3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이희단 ‘청나일 쪽으로’

2023년 가을에 출간된 이희단의 첫 소설집 『청나일 쪽으로』는 2025년 10월 17일부터 11월 11일까지 그림 전시로 확장되어 독자를 다시 만났다. 전시는 작가가 공동 대표로 있는 인천 남동구의 ‘인문예술공간 점’에서 열렸다. 노란버스로 알려진 ‘길 위의 화가’ 한생곤이 소설 속 이미지를 회화로 옮겼다. 이런 작업은 텍스트 예술이 소비되는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단축하고 회화의 감각을 빌어 텍스트를 재생산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듯, 문학이 텍스트를 벗어나 문화적인 실험을 이어가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일인 듯하다. 텍스트로 읽은 저자의 여러 작품 중 「페트라의 돌」은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서사가 압권이었다. 작품을 처음 접했을 당시, 나는 기출문제를 풀 듯 신춘 문예나 문예지의 당선작과 기성 작가들의 단편을 분석하며 읽던 시절이었다. 낯선 타국 생활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한 작품 중에서 유독 「페트라의 돌」이 기억에 남는 것은 서사 공간을 완전히 고대도시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작가는 3D프린터를 이용한 돌 제작으로 능청스럽게, 문명 이전이나 이후나 인간의 감정을 돌에 새기기는 매한가지라 말했다. 작가는 인류의 손때가 묻은 돌을, 부조리의 감내를 요구하는 시지프스의 바위에 비견될 만한 고원한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그 작업의 시작에 소년이 있었다. 정확히는, 고대 유적지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소년이 돌기둥을 쳐서 떨어트린 돌멩이에 있었다. 인류가 경험한 오랜 기억과 감정이 바스라져 모래가 될지도 모를 원 달러짜리 돌에 축적되었다. 그 돌에서 오늘날 화자의 구원 서사가 움텄고 독자는 한없는 위안을 받았다. 표제작 「청나일 쪽으로」는 상실의 시간을 푸른빛 원두라는 이미지로 응축했다. 소설 속 나는 암과 싸우는 그녀를 뒤로하고 남편과 함께 청나일로 향한다. 그녀는 친정엄마가 사는 빌라 아래층 여자로 J라는 딸과 산다. 나는 친정아빠가 죽은 뒤 홀로 남은 엄마를 돌봐준 그녀와 가깝게 지내고 J는 나를 이모라 부르며 의지한다. 청나일에서 푸른 커피콩을 보고 싶은 것은 마음뿐 용기가 나지 않는 나에게 힘을 준 것도 그녀다. 최종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그녀의 죽음을 듣게 된 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녀의 영혼과 함께 청나일에서 만나는 정서적 경험을 한다. 그녀의 죽음이 원초적 생명력으로 대변되는 나의 욕망이 슬픔 안에 교차되면서 나는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푸른빛 원두를 본다. 이국적인 풍경 안에 감정의 신파를 감추고 담담히, 그녀에 대한 애도를 인류의 기원인 나일강에 담근다. 개인의 욕망이 타자의 실존 앞에 무너지는 가슴 아픈 경험은 때로 고귀하다. 이렇듯, 형언할 수 없는 체험을 낳기 때문이다. 개인적 슬픔을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시켜 애도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작가의 서술 방식이 품격 있게 진솔했다. 저자는 감정의 비약 없이 쓱싹쓱싹 읽기 쉬운 문체로 써 내려갔다. 서사의 추동으로 사건을 밀어붙이기보다, 기억이나 객관적 상관물이 빚어낸 이미지가 서사를 이끄는 방식으로 말이다. 더불어, 소설집 『청나일 쪽으로』의 회화적 확장은 현대소설이 이미지의 예술임을 재확인시켰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오랜 관조를 요구하며, 문학이 시각예술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오은숙 소설가 2020년 ‘납탄의 무게’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15 10:37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한국 문단의 새로운 주역 되길"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14일 전북일보사 7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올해 새롭게 출발하는 당선자들은 시 부문 ‘원탁’의 최은영, 소설부문 ‘캠핑’의 양준희, 동화부문 ‘롤러코스터가 멈춘 날’의 최재민씨. 당선자들에게는 상패와 상금이 주어졌다. 안도현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을 대표한 심사총평에서 “영상미디어가 활자와 문자를 앞질러 가는 시대에 신춘문예 응모 편수가 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추동한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라며 “한강 작가는 자기의 글을 쓸 때 누구보다 집중할 줄 아는 작가이다. 당선자 세 분께서도 한강 같은 훌륭한 작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선자들에 대한 격려도 이어졌다. 서창훈 전북일보 회장은 “올해는 수필 부문을 공모하지 않았는데 걱정과 달리 응모량이 많았다”라며 “당선자들의 특징을 보면 과거보다 연령대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오랜 세월 창작에 매진한 분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AI(인공지능)가 사람을 몰아내고 디지털 세상이 심화된다고 해도 아날로그의 가치는 이어질 것”이라며 창작활동을 통해 문학의 가치를 이어가는 문학인이 되길 당부했다. 백봉기 전북문인협회 회장도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문학의 여정이 힘들 때도 있겠지만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했던 때의 마음과 각오를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당선자들은 “노력하는 자세로 성실히 글을 쓰겠다”며 “문학정신을 일깨워 준 전북일보에 감사하다”고 답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를 맡은 안도현 시인과 김종필 아동문학가, 김남곤 소재호 서정환 류희옥 김철규 정군수 백봉기(전북문인협회장) 복효근 조미애 김사은 이형구 왕태삼 이병초 정동철(전북작가회의 회장) 씨 등 문인들과 신명호 가천문화재단 팀장, 수상자들의 가족·친지 등 50여명이 자리해 당선자들을 축하했다. 김유석 박태건 최기우 안성덕 김근혜 이경옥 장은영 정숙인 이진숙 김서현 씨 등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문인들도 함께했다.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응모작은 모두 1948편(시 1640편, 소설 146편, 동화 162편)이 접수됐다. 지난해에 비해 529편이 증가했으며 올해는 동화 부문의 응모가 활발했다. 박은 기자

  • 문학·출판
  • 박은
  • 2026.01.14 18:39

“고쳐 쓴 시간의 결실”⋯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첫 걸음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의 주인공들과 등단의 첫 순간을 응원하는 중견·원로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4일 전북일보 7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은 새로운 후배 문인들의 등단을 축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지역의 중견·원로 시인들과 당선 작가, 당선자들의 가족·친지, 전북일보 임원 등 50여 명의 내외빈이 참석해 최은영(시)·양준희(소설)·최재민(동화) 작가의 첫 출발을 응원했다. 시상식에서 각 부문 당선자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쓰는 시간’과 ‘당선의 순간’을 되짚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원고를 고쳐 쓰던 고독의 시간부터 뜻밖의 당선 통보 전화까지, 수상 소감에는 문학을 향한 각자의 태도와 삶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시 부문 당선자 최은영 씨는 첫눈이 내리던 날을 떠올리며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그는 “신춘문예 투고를 위해 우체국을 다녀오는 길, 아이들이 눈을 보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원고가 든 가방을 가슴에 안았다”며 “첫눈과 함께 보낸 시들이 첫눈처럼 환대받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당선 연락을 받기 전까지 결과를 체념한 채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는 최 씨는 “한 편의 시를 수십 번 고쳐 쓰며 마음에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기쁨이 조금씩 실감났다”고 전했다.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양준희 씨는 소설 쓰기를 ‘고독한 암중모색의 과정’에 비유하며, 이번 당선을 “캄캄한 밤길에서 등불 하나가 켜진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설을 쓰며 더 나은 독자이자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노력해왔다”며 “과분한 격려를 발판 삼아 매일 성실하게 써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가족과 친구들, 특히 첫 독자가 되어준 딸과 이날 함께한 부모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동화 부문 당선자 최재민 씨는 오랜 영상 기획·제작 경력을 소개하며 비교적 늦게 동화를 쓰기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그는 “동화를 쓰기 시작한 뒤 아이들의 움직임과 말소리가 이전과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며 “아이들의 마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글을 계속 써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발걸음 같은 시작이 이번 당선으로 이어졌다며 심사위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현아 기자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1.14 18:38

설화로 건너는 분단의 강⋯김란희 작가 ‘까치와 까마귀’ 펴내

전래 설화 ‘견우와 직녀’를 새롭게 변주한 김란희 작가의 신작 <까치와 까마귀>(비공)는 하늘나라의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만나지 못하는 존재들의 간절한 마음이 어떻게 다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섬세한 은유로 풀어낸다. 이야기 속에서 까치와 까마귀는 비가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두려움과 고통을 감수하며 자신의 몸으로 다리를 놓는다. 누군가 대신해 주지 않는 일을, 작고 약한 존재들이 스스로 해내는 장면은 아이들에게는 용기와 협력의 의미를, 어른들에게는 화해와 연대의 가치를 전한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라도 할 수 있다’는 태도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책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서로를 향한 작은 손짓과 날갯짓이 결국 거대한 비극을 멈춘다는 서사는 평화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하늘의 비극은 땅 위의 약한 존재들이 보여준 연대로 변화한다. 작품은 정확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장, 민중적 감각이 살아 있는 의성어·의태어를 통해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까마귀의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사색의 언어는 이야기 전체에 깊이를 더한다. 각각은 단절된 시간 속에 흩어진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 ‘영원’의 일부라는 사유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김 작가는 작가의 글을 통해 작품의 출발점을 분명히 알린다. 그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가족 상봉 장면에서 느낀 깊은 인상이 단 하룻밤의 만남 뒤 흘려야 했던 눈물은 견우와 직녀 설화와 겹쳐졌다”며 “해마다 내리는 비를 만나지 못한 이들의 눈물로 상상했고, 그 눈물을 멈추게 하는 존재로 까치와 까마귀를 불러냈다”고 밝혔다. 이어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기적을 만드는 것은 신도, 영웅도 아닌 작고 약한 새들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선택이 하늘의 강을 건너게 한다”며 “이를 통일의 이야기이자 평화를 향한 발걸음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전주 출신인 작가는 1991년 8.15범민족대회 청년통일문학상공모전에서 동화<까치와 까마귀>로 통일상을 수상했고, 2005년 창비어린이 9호에 <외삼촌과 누렁이>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동화집 <금딱지와 다닥이>가 있다. 현재 그는 전주에서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현아 기자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1.14 18:38

이진숙 수필가가 일상의 언어로 전하는 다정한 위로

이진숙 수필가가 첫 수필집 <나는 오늘도 괜찮다>(수필과 비평사) 펴내며, 독자들에게 일상의 언어로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오랜 시간 삶의 현장에서 써 내려간 글들을 엮은 이번 산문집은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책에는 가족과 함께한 희로애락의 기억을 비롯해, 일상을 함께 걷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위로와 연대의 감정이 담겨 있다. 또 자연 속에서 꽃밭을 가꾸며 느낀 감사, 농장에서 곡식을 기르며 비로소 깨닫게 된 삶의 태도와 인내의 의미가 작가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풀어져 있다. 소소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순간들을 포착한 글들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공감과 깊은 여운을 전한다. 이 작가는 이번 수필집이 작가 본인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책 속에 담긴 작품들은 어머니가 생전에 꼭 출간되기를 바랐던 원고였으나, 어머니가 지난해 3월 별세하면서 그 뜻을 미처 전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며 “결국 이번 수필집은 떠나간 어머니를 향해 부르는 늦은 목소리이자, 삶과 기억을 건네는 조용한 헌사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글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무겁게 하고, 스스로 ‘오늘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수필가는 201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전직 교사 출신인 그는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을 14년간 진행했다. 저서로는 오디오북 <우리, 이제 다시; 피어날 시간> 등이 있다. 전현아 기자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1.14 18:38

오창렬 신간 시집 ‘그러니까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출간

감각적인 이미지와 낯선 화법으로 독창적인 시 세계를 쌓고 있는 오창렬 시인이 신간 시집 <그러니까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일까요>(시인동네)를 펴냈다. 존재와 존재, 현상과 실재가 만나는 다양한 양상과 의미를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완성한 시집으로 시인은 나 자신에게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나의 본성을 이야기한다. “저녁이 소를 몰러 갔을 때/ 골짜기에는 침묵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말뚝에 묶인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풀을 뜯는 동안 초록의 피도 낭자했을 것이나/ 소란까지 모조리 뜯어먹고 침묵은/ 소처럼 몸집이 컸다//(…중략…)// 숲이 거대한 짐승으로 변하기 직전에야/ 저녁은 겨우 고삐를 수습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침묵 한 마리가 마당에 들어서자/ 집도 우두커니 서서 밤새도록 생각이 깊어졌다”(‘침묵을 몰고오다’ 부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의 시들은 다소 난해하지만 색다른 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은 현상과 실재 사이의 간극을 꿰뚫는 눈으로 평면화된 존재들의 뒷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렇게 완성된 66편의 시에는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다. 고민 끝에 시인은 ‘나는 나 자신에게는 영원히 이방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신 시인은 해설에서 “오창렬 시인의 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응시하고 그 물음에 스스로 응답하려는 침묵의 고행처럼 읽힌다”라며 “시인에게 시쓰기는 부재하는 자기 서술어 찾기의 방편처럼 시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영원한 이방인으로서의 나를 찾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남원 출생인 오창렬 시인은 1999년 <시안>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서로 따뜻하다> <꽃은 자길 봐주는 사람의 눈 속에서만 핀다> 등을 펴냈다. 2008년 짚신문학상, 2018년 불꽃문학상, 2023년 석정촛불시문학상을 받았다. 박은 기자

  • 문학·출판
  • 박은
  • 2026.01.07 18:5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지연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언어 수로를 따라가면 지연 시인이 통과했던 시공간이자 시의 원천인 ‘소룡골’이 나타난다. 흘려보내며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빛을 마신 나비”거나 부석작에서 콩대를 태우며 “몇백 년 전 혈육이 식은 심장을 타닥거리며 나에게 무슨 말을 데우고 있”는 것으로 현존한다. 정합적이지 않은 불가역의 세계라고 의심하지만 시인의 감각이 예민하고 구체적이어서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 경이와 떨림이 강력하다고 해서 현재를 부정하거나 멈출 필요가 없다. 다만 급박하게 살아가는 나를 돌려세워 시인이 정성을 다해 모셔 온 ‘사라진 것’들을 반추하면 되는 것이다. 익히 그들은 벼랑 끝이든 환대와 도약이든 우리 삶 속에 잠복해 있다 살아있는 존재들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과 죽음으로 존재하는 것은 수평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러한 관습적 사고를 깨뜨리는 지연 시인의 사유(思惟)라고 해도 좋겠고 유한 존재의 열패감을 상쇄, 무한으로 확장하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그것을 가능케 한 지연 시인은 하늘과 땅을 잇는 무(巫) 일종의 샤먼이다. 전라(남)북도 방언과 토속적 시어들을 매개로 시인과 맺어진 인물들 ‘삶의 무늬와 서사’가 입증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결코 실패 하지 않고 전진하는 시(詩), 아름답고 따뜻한 곳에 대한 회억(回憶)을 시 독서법과 이질적일듯한 ‘연역적 사고’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모든 날씨들아 쉬었다 가렴』 전반은 단순 과거지향이나 추억의 함몰이 아니다. 시인의 고향이자 ‘설화적 무대’인 임실군 청웅면 소룡골 농촌공동체가 빚은 ‘풍습과 생활 감각’은 압권이다. 그곳에서 대지와 인간, 산 자와 죽은 자는 평면의 범주를 벗어나 신화적 환상과 은유를 방편으로 멸실을 거쳐 순환하고 재탄생한다. 시간의 이격에서 오는 상실을 극복하고 지연 시인 아이덴티티에 도달하는 과정은 눈부시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풍경’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원초적 풍경이 탈각되고 육화된 현재에 이르러서 그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아련함을 품고 있다면 이 시집으로 달래볼 일이다. 필자 또한 지연 시인 덕분에 잊고 있었던 ‘소박하고 가난했던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삶과 죽음이 이항 대립이 아닌 것처럼 혈육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미움과 원망, 사랑과 그리움이 범벅이 돼 핏속을 떠돌고 있음이 느껴졌다. 웅숭깊은 미덕과 사랑은 복원되었으며 AI 세상을 능가하는 삶의 방식을 일깨운 소룡골, 그곳이 골육상잔의 무대였거나 약육강식 사슬에서 어쩌지 못할지라도 기꺼이 바쳐지고 동화되고 연대하는 방식의 아름다움이라니! 극에 달한 그리움을 내면화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감각으로 발산하는 시적 형상화의 유려함은 덤. 긴장과 밀도 높은 경쟁 속, 고립된 존재로서의 외로움에 휩싸여 살고 있다면 서로 연결되고 섞인, 기꺼이 나를 바칠 수 있는 ‘소룡골’로 가 보시라. 소룡골을 찾는 방법을 모르거나 그 기억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면 “돌에 스미는 빗물”을 아주 천천히 바라보면 된다. 사무치게 그리운 존재들이 배격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육친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지연 시인이 죽은 자와 기대고 얽혔기에 죽음은 단절이나 멸망이 아니라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움직이게 하는 존재들”임을 강조했던 것처럼.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07 18:56

교회사 순례의 안내서⋯이춘식 목사, ‘성경과 교회사 강요‘ 발간

진안 배넘실교회 이춘식 목사가 최근 <성경과 교회사 강요>(킹덤북스)를 펴냈다. 이 책은 성경과 교회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통해 한국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을 짚고, 오늘의 시대적 사명으로 ‘한반도 통일’의 신앙적 당위성을 제시한다. 저자 이 목사는 진안 ‘배넘실교회’를 섬기며 지역에서는 ‘촌장 목사’, ‘배추 목사’로 불린다. 옛 홍수 시대 배가 산을 넘어왔다는 데서 이름 붙여진 배넘실 마을에서 그는 농촌을 살리고 도시민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꾸며 선진 농업을 도입해 왔다. 33세 때 1901년 마로덕 선교사가 세운 배넘실교회에 부임한 이후, 용담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놓였던 수몰민들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다. 이 목사는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주민들을 위해 ‘가나안 나눔터’를 설립하고, 영세 수몰민과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강연과 운동을 펼쳐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이끌었다. 이후에는 스스로 ‘배넘실 마을위원장’이 돼 농업 지식을 전파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전통 테마 마을, 향토 산업 마을, 행복 나눔터 등을 조성하며 마을 재생에 힘썼다. 독일·프랑스·일본 등 농업 선진국 연수를 통해 체득한 경험은 배넘실 마을을 ‘대한민국 100대 살기 좋은 농촌 마을’로 이끄는 밑거름이 됐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국무총리상, 농림부 장관상, 진안군민상을 수상했다. 저자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된 책에서는 한국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통일’로 분명히 한다. 목사는 통일은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로 이뤄져야 하며, 회개의 기도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준비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정복과 지배가 아닌 섬김과 희생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이 통일의 해법이라는 주장이다. 이 목사의 통일에 대한 고민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2016년 배넘실 마을 앞 황무지를 개간해 통일의 씨앗을 심고, 해바라기와 유채꽃 축제를 열어 통일을 향한 기도를 공동체의 일상 속에 풀어냈다. 이후 ‘통일을 사모하는 모임’ 등을 통해 성경적 통일 방안을 함께 공부하며 준비의 중요성을 나눠왔다. 추천사도 이어진다. 박성규 총신대 총장은 “성경과 교회사의 핵심을 정리해 통일 이후 북한 교회에도 유익을 줄 책”이라 평가했고, 한윤봉 한국창조과학회 전 회장은 “혼돈과 분열의 시대를 성경적 관점에서 분별하게 하는 안내서”라고 전했다. 전현아 기자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1.07 18:56

치의학박사 김동섭 철학서 ‘노자와 니체의 대화’ 출간

2500년 전 동양사상가 노자와 19세기 서양철학가 니체가 탐구한 인간의 삶과 문명은 어떠한 모습일까. 김동섭 치의학 박사가 펴낸 <도덕경을 둘러싼 두 철학자의 81가지 담론 노자와 니체의 대화>(청동출판사)는 이러한 질문에 해답을 제시한다. <노자와 니체의 대화>는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원전 순서대로 따라가며 각 장의 함의를 니체의 잠언으로 해설한 비교철학서이다. 도덕경을 뼈대로 삼고 각 장에 담긴 형이상학적 화두를 니체의 핵심 사상과 매칭한다. 특히 저자가 묻고 두 철학자가 답하는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 철학적 사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은 한문원전에 대한 깊이 있는 문해력과 서양 실존 철학의 통찰을 결합하여 철학이 박제된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의 언어임을 확인시켜준다. 은둔의 철학자로 오해받던 노자와 허무주의자로 치부되던 니체를 저자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해방하는 강력한 생명철학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평생 가슴에 품어온 두 철학자 노자와 니체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며 “이 책은 대화라는 형식을 빌린, 나 자신과의 고요한 독백”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신의 삶에 잠시 그늘이 되어주고 길이 없을 때 길의 기척이 되길 바란다. 도는 당신 삶 속 어딘가에서 이미 조용히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저자 김동섭은 전북대학교 치의학과를 졸업한 후 40년 가까이 치과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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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
  • 2026.01.07 18:56

왜 전주를 걸어야 하는가? 길 위에서 찾은 ‘맑은 즐거움’

걷기는 왜 좋을까?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은 걷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말이다. 이는 좋은 약과 음식보다도 걷는 것이 더 좋다는 뜻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걷는 것은 청복(淸福), 즉 맑은 즐거움”이라고 극찬했다. “세상은 걸어 볼 만하다”는 전제 아래 2005년 발족한 사단법인 ‘우리땅걷기’에서 길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담은 인문서 <발로 걷는 전주 천년고도 옛길 12코스-전주를 걸으면 온전한 도시가 보인다>(상상출판)를 출간했다.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계승하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단체는 이번 책에서 전주 도심 속 숲길인 건지산길부터 전주 평화동 학산과 옛길 보광재, 치명자 성지와 동고산성을 따라가는 기린봉길 등 12코스를 소개한다. 특히 전주 천년고도 옛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조선왕조 오백 년이 이어진 길이다. 단체는 12코스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흥미롭게 엮어내 누구나 쉽게 걷고 이해할 수 있는 길로 재탄생시킨다. 우리땅걷기 신정일 이사장은 프롤로그에서 “전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에게 전주의 길을 안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라며 “전주 천년고도 옛길을 시나브로 걸어가리라”라고 밝혔다. 우리땅 걷기에서 펴낸 인문서 <전주를 걸으면 온전한 도시가 보인다>에는 민승기․김경선․김현조․전성수․유재훈․한석희․박수자․유철상․박성기․맹한승․신정일․김종우․신지원 등 13명이 참여했다. 박은 기자

  • 문학·출판
  • 박은
  • 2026.01.07 17:37

전북문인협회, 제37회 전북문학상 수상자 4인 선정

전북문인협회는 ‘제37회 전북문학상’ 수상자로 윤철·이용미 수필가, 송하진·이승훈 시인 등 4인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전북문학상은 도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 중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면서 향토문학 발전에 공이 큰 문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 문학상은 운영규정에 따라 협회 회장단과 시·군지부장, 분과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문단 활동 공적과 기여도, 작품성 등을 기준으로 심사됐다. 심사위원은 전북문협의 회장을 역임한 소재호·김영 시인과 안도 아동문학가가 맡았다. 수상자 윤철(74) 수필가는 전북문인협회 부회장으로 2013년에 등단해, <칸트에게 보내는 편지> 등 3권의 수필집을 발간했다. 전북수필문학상과 새전북신문문학상 등을 받았다. 송하진(73) 시인은 2006년에 등단해 <모란 속을 걷다> 등 5권의 시집과 서집을 상재하고, 성균관문학상과 한국문학예술상 시 부문 본상을 받았다. 이용미(72) 수필가는 2002년 등단해 <붕실이와 장다리> 등 5권의 수필집을 발간하고, 행촌수필문학상과 전북수필문학상, 올해의 수필인상 등을 수상했다. 이승훈(65) 시인은 2012년 등단해 마한문학상과 대한문학작가상을 받고, 시집 <그대 있는 곳까지> 등 3권과 2권의 평론집을 발간했다. 시인은 현재 익산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37회 전북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3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전현아 기자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1.05 17:34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길

본심에 오른 13편을 꼼꼼히 읽었다. 먼저 소재의 다양성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AI를 다룬 글이 많아 우리가 AI 시대를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종심에 오른 모든 응모작이 우열을 쉽게 가리지 못할 만큼 우수했다. 작가는 참신한 소재를 찾았더라도 모름지기 하고 싶은 말을 설득력 있게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을 지녀야 한다. 그 기준으로 ‘거짓말 영수증’ 과 ‘롤러코스트가 멈춘 날’이 마지막까지 내 손에 남았다. ‘거짓말 영수증’ 은 재기발랄하며 통통 튀는 글이다. AI시대에 등장한 피노키오를 떠오르게 한다. 거짓말이 불러오는 더 큰 거짓말. 그리고 홍수처럼 쌓이는 주인공의 중압감을 잘 표현했다. 빠른 전개로 긴장감을 높였지만 중간중간 다듬어지지 않는 문장이 있어 아쉬웠다. 적합한 어휘를 사용하는 힘을 기르길 바란다. ‘롤러코스트가 멈춘 날’은 재혼 가정의 화학적 결합의 어려움을 5학년 소녀의 눈높이에서 잘 그려냈다. 소재는 좀 진부할 수 있으나 시기와 질투라는 사람의 본성을 잘 짚어냈다.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고 문장이 탄탄하여 오랜 습작 기간을 믿게 했다. 잔 글이 유행하는 시대인데 뚝심 있게 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길 기대하며 당선작으로 올린다. 좋은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는다. 어린 독자는 더 그렇다.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모든 예비동화작가들의 문운을 빈다. 심사위원 김종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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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5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의 희망을 찾아

당선 소감은 꼭 처음 하는 고백 같습니다. 어떻게 써도 어설플 것 같고, 어떻게 써도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애써 치우며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책상에 앉습니다. 몇 달간 쉬지 않고 일한 노트북이 보입니다. 참 많이 썼습니다. 색색의 필기구는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생각이 막힐 때는 흰 종이에 아무 단어나 쓰곤 했습니다. 제목도, 장르도 다양한 책이 쌓여있습니다. 틈틈이 읽었습니다, 충전식 블루투스 스피커도 여러 개 있습니다. 상상이 멈출 때는 크게 음악을 들었습니다. 미리 올려두었던 새해의 탁상달력도 보입니다. 이제껏 제대로 펼쳐보지 않았던 열두 개의 장을 천천히 살펴봅니다. 눈이 곱게 내려앉은 나무, 엇갈려 선 펭귄, 아빠를 보고 웃는 아이. 활짝 핀 흰 꽃, 매달린 채 흔들리는 조등, 해 질 무렵의 차밭, 흰 파도가 밀려오는 청록색 바다, 붉게 물든 노을 아래 붙어 있는 두 사람, 달 속에 든 드라마 속 오래된 연인, 정갈하게 붙들린 채 곶감이 되어가고 있는 단감, 바람을 맞고 있는 오름길의 억새, 깊은 호수에 잠긴 듯 비치는 설산, 그렇게 계절을 담아낸 열두 개의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특별함과 평범함, 따뜻함과 슬픔, 반가움과 두려움,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그 안에 다 모여 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쓰게 될 동화에도 그렇게 많은 마음이 들어설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모여져 드러나는 것은 이왕이면 비겁함보다는 용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아픔보다는 희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차는 식지 않았습니다. 찻잔 모퉁이에 닿은 손가락에 온기가 느껴집니다. 따뜻한 힘을 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내. 딸. 형제, 친구, 선배, 후배, 사랑합니다. 그리고 좋아합니다 ,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곁을 지켜주고 계신 부모님, 그립습니다. 뽑아주신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감을 쓰고 있는 오늘의 시간이 좋습니다. 좋은 일이니까요. 내일은 좀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습니다. 제게도, 여러분께도. △최재민 씨는 1970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TV 다큐멘터리와 교양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으며 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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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4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동화] 롤러코스터가 멈춘 날 -최재민

롤러코스터가 느릿하게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드디어 복수의 시작. 무서운 속도로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지혜는 예상대로 비명을 질러댔다. 깔끔했던 녀석의 얼굴이 콧물과 눈물로 엉망이 되어갔다. 손거울이라도 하나 가져다주고 싶었다.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밉기만 한 지혜와 단짝처럼 붙어 앉아 롤러코스터를 탄 나다. 남들은 같은 집에서 사는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른다. 만난 지 고작 팔 개월 된 동생인 지혜가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니다. “조아야. 동생이 생기니까 좋지?” 엄마는 동생을 새로 산 학용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느닷없이 생긴 열한 살 짜리 동생이 금방 좋아질 리 없다. 싫었던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별다른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쿨한 편이다. 남편이 필요하다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했고, 그렇게 엄마의 고향 친구였던 아저씨를 새아빠로 인정하려고 했다. 당연히 아저씨의 딸인 지혜도 편견 없이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미움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혜야. 이번 과학 경시대회에서 일 등 한 거야?”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긴, 다 실력이지. 대단하다. 조아는 공부랑은 아예 담을 쌓고 사는데.”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지혜는 정말 운이 좋을 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혜는 과학학원을 다녔다고 했다. 과학 경시대회를 앞두고는 특별반 과정까지 들었다. 이게 다 돈 많은 아저씨 밑에서 자랄 수 있었던 지혜의 운이다. 지혜에 비하면 나는 운이 없는 아이다. 학교 방과후 수업 말고는 따로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다. 마트 판매원으로 일하던 엄마는‘생활비가 모자란다’는 주문을 외워 내가 해달라고 하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시켜 왔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공부랑 내가 쌓은 담은 나 혼자 쌓은 게 아니라, 엄마랑 같이 쌓은 것이다. 물론 아저씨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뭐든지 이야기만 하라고 했다. 램프의 요정 지니보다 더 친절한 말투였다. 그러나 나는 현실감각마저 탁월한 5학년이다. 갑자기 학원에 다닌다고 꼴찌 수준인 내 성적이 오를 리 없다. 학원에 다니고도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내게는 분명 아저씨의 무시라는 혹이 붙을 게 뻔했다. 엄마한테 당하는 무시를 아저씨한테까지 당할 순 없었다. 아저씨 집으로 들어와 산 지 육 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지혜의 생일을 맞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혜는 엄마를 새엄마라고 불렀고, 나는 아저씨를 그냥 아저씨라고 불렀다. 엄마는 아저씨를 새아빠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나는 딱 이 정도 경계가 적당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일날. 지혜가 그 선을 넘었다. “새엄마, 그냥‘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엄마는 안 된다고 말해야 했었다. 무려 십이 년을 함께 살아온 친딸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엄마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엄마는 기대했던 표정 대신 ‘장한 어머니상’이라도 받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영악한 지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엄마 품을 파고들었다. 지혜는 영악한 여우 같았고, 엄마는 자기 욕심에만 겨운 곰같았다. 화가 나서 엄마가 잘라둔 케이크를 놔두고 굳이 반쪽이 그대로 남아있는 케이크에 포크를 찔러넣어 푹 퍼냈다. 그 바람에 견고하게 서 있던 케이크가 내 맘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우악스럽게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단맛만이 나를 구제하리라. “우리 조아도‘아빠’라고 한번 불러볼래?” “…….” 갑자기 툭 치고 들어온 아저씨의 말에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 나다. 이럴 때는 대꾸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답이다. 나는 케이크만 계속 먹었다. “안 뺏어 먹을 테니 천천히 먹으렴. 그러다 탈 날라.” 나는 아저씨의 말에도 멈추지 않았다. 지혜의 생일 케이크라도 다 먹어버려야 눈앞에서 엄마를 빼앗긴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 저주의 주문이었다. 다음날 나는 설사에 시달리다 병원까지 다녀와야 했다. 전날 케이크를 많이 먹었다는 엄마의 말에 의사 선생님은 당분과 지방 섭취가 과해 소화기관에 부담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순 엉터리 선생님이다. 내 속을 뒤집어놓은 건 케이크가 아니라 친딸의 분노 지수를 높인 엄마의 무신경함이었으니까. 그날부터 나는 내가 언젠가는 이 집을 떠날 손님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 아빠를 잃고, 이제는 하나뿐인 엄마마저 빼앗긴 열두 살의 아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더는 마음을 표 내지 않기로 했다. 불쌍한 아이보다는 인생을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가 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감정 따위는 얼마든지 숨길 수 있을 것 같은 조숙한 아이도 가끔은 그냥 아이가 되는 순간이 온다. “엄마, 강아지 키워도 돼요?” 지혜가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속으로 “야호”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3학년 때였나,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우리 집 형편과 실제 돌봄의 어려움을 들어 강아지를 키우자는 말이 내 입에서 쏙 들어가게 했다. 그때만큼 엄마가 미웠던 적도 없다. 그러나 다 맞는 말이라서 도무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제 지혜도 엄마가 언제나 말랑말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배움의 끝은 물론 상처로 남으리라.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생각해 보자니! 강아지 키우기에 결사반대의 입장을 보이던 엄마 입에서 나온 말 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혜가 친딸이 아니라서 물렁하게 대하는 걸까. 그렇다면 엄마의 진심을 위해 내가 나서야 할 시간이다. 불리한 타이밍에서는 적절한 선수교체가 답이 되기도 하니까. “이지혜.” 나는 성까지 붙여 선전포고하듯 불렀다. 지혜는 의심 없는 말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언니, 언니도 강아지 키우고 싶지?”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이래서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강아지는 안돼. 사료에 병원비에 미용비까지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게다가 매일 냄새나는 똥하고 오줌을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산책은 또 누가 시킬 건데. 그러니까 포기해. 엄마도 같은 생각이지?” 엄마가 날 말리며 늘어놓았던 말들을 이렇게 잘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난 잔머리가 아닌 머리가 좋은 아이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세 개의‘안 돼’공을 강아지 양육 금지라는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히 꽂아 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엄마가 공평한 심판을 자처하며 내릴 마지막‘아웃’선언이다. 결국 지혜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꿈을 버리는 동시에 함께 사는 엄마가 누구의 진짜 엄마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엄마라고 부른다고 다 진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근데, 강아지 키우면 지혜가 똥하고 오줌 치울 자신 있어?” “네.” “산책도 시킬 수 있고?” “네.” 예상치 못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다급해졌다. “엄마, 사료에 병원비에 미용비는 어떻게 감당하고?” “상황이 달라졌잖아. 이제 아빠도 계시고.” “그런 게 어딨어. 내가 키우고 싶다고 할 때는 절대 안 된다며.”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지혜랑 같이 키우면 좋잖아.” “왜 말이 달라지는데? 왜 지혜만 특별대우 하냐고?”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맑은 날인데 뛰어가는 내 눈에 담기는 풍경은 꼭 수영장 물속에서 보는 것처럼 흐렸다. 숨이 차서 더는 못 뛰겠다 싶을 때쯤 놀이터가 나왔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냥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마음 여기저기가 찌릿하면서 아팠다. 그사이 크고 작은 고양이 몇 마리가 다녀가더니 어느새 밤이 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긴 그림자 하나가 내 몸 위로 쓱 내렸다. “여기 있었어?”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망설이다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아저씨는 입고 있던 외투를 말없이 입혀주었다. 아저씨는 앞에서, 나는 뒤에서 걸었다. 아저씨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아저씨는 조아랑 많이 친해지고 싶어.” 밤중의 설교는 듣기 싫다. 그러려면 아저씨 입을 막을만한 뾰족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저씬 지혜를 더 사랑하죠? 아저씨 진짜 딸은 지혜니까.” “…….”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저씨가 걸음을 멈추더니 그대로 돌아섰다. “진짜 딸, 가짜 딸이 어딨어? 엄마랑 나한테는 우리 딸들만 있어. 그게 진짜야.” “우리 딸들요?” “그래 조아하고 지혜, 우리 딸들!” 방심한 사이‘우리’라는 말이 내 심장을 야릇하게 간지럽혔다.‘넘어가면 안 돼’하며 마음을 다지는 순간 내 등짝에 갑자기‘빡’하는 소리가 났다. 이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의 전매특허‘등짝 스매싱’이다.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부러 화내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울었는지 엄마의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따지지 못한 채 엄마를 안고 말았다. 만나자마자 엄마가 밉다고 말하려 했는데, 왜 맘대로 되는 게 없는 걸까. 나의 가출 아닌 가출 사건이 있고 나서 며칠 후 우리 가족은 모두 놀이공원을 찾았다. 가족애를 다져야 한다는 아저씨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오자마자 함께 피자를 먹은 후 엄마와 아저씨는 둘만의 데이트를 갖겠다며 우리끼리 원하는 놀이기구를 타다가 다섯 시에 회전목마 앞으로 오라고 했다. 이런 게 혹 고양이한테 쥐를 맡기는 꼴이 아닐까? 표 내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지혜가 미웠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계획이 필요하다. 아니, 이런 건 계략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무서워서 롤러코스터를 한 번도 못 타봤다는 지혜를 살살 꼬드겼다.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지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의 명물‘스카이데빌’은 무려 70미터 높이에서 수직으로 하강하는 롤러코스터였다. 계획은 그대로 적중했다. 겁에 질린 지혜를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거짓말처럼 롤러코스터가 고장을 일으키며 갑자기 멈춰 섰다. 이대로 열차가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높이였다. 함께 매달린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마음을 나쁘게 써서 하늘이 내게 벌을 주는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언니, 미안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지혜가 말했다. 그제야 지혜가 내 옆에 있다는 게 생각났다. “네가 뭐가 미안해?” “나, 언니 일기장 봤어. 그래서 지금 벌받나 봐.” “일기장?” 나는 일기장 표지에‘이 일기를 보는 사람은 하늘이 꼭 벌을 줍니다. 그러니 절대 촉수 금지.’라는 경고문을 써두었다. “언니 마음을 알면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그래서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한 거야. 사실 난 강아지 무서워.” 이상하긴 했었다. 엄마가 몇 번이나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했는데, 지혜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계속 미루고 있었다. “왜 내 맘에 들고 싶은 건데?” “언니가 내 언니니까.” 아저씨와 지혜가 부녀라서 그런가. 말로 사람 울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언니, 정말 미안해. 내가 일기만 안 봤어도.” “안 미안해도 돼. 내 일기장 봐도 벌 안 받아.” “진짜?” “엄마도 맨날 내 일기장 몰래 보거든. 근데 아무 일 없더라.” 지혜의 얼굴이 좀 편해졌다. 이상한 일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는데, 지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별로 무섭지 않다. “우리 여기서 무사히 나가면 강아지 보러 갈래.” “응. 언니가 옆에 있으면 안 무서울 것 같아.” 지혜가 나를 보고 웃는다. 밉게만 보이던 그 얼굴이 귀엽게 보인다. 그때 사람들이 밝아진 목소리로 웅성거린다. 롤러코스터 레일을 따라 형광색 점퍼를 입은 안전요원 아저씨들이 올라오고 있다. 나는 손을 뻗어 지혜의 손을 잡았다. 지혜가 웃는다. 이쁘다,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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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4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대상의 핵심을 짚어내는 맑은 눈, 시를 읽는 재미를 주는 작품 만나

숙고의 시간이 길었다. 예심을 거친 16명의 시작품은 몇몇을 제외하고 저마다의 개성과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자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며 논의의 대상을 좁혀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포쇄」와 「박쥐의 문장」, 「기대면 추락 위험」과 「도꼬마리와 꽃뱀과 제비」, 그리고 「원탁」이다. 「포쇄」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시각이 좋았다. 다소 낡아 보이는 지점들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밀고가는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 오래된 그릇을 꺼내 햇볕에 말리는 그림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선명성도 강렬했다. 그러함에도 ‘고서’, ‘서가’, ‘고문서’가 반복되듯 나오면서 시의 확장성을 놓치고 있었다. 「박쥐의 문장」은 남다른 감각과 발랄한 상상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독특한 문장으로 새로운 시 세계를 열어가려는 열정을 느끼기에도 충분했지만, 군데군데의 시행이 산만하게 다가왔다. 「기대면 추락 위험」은 현실의 모순이나 뒤틀림을 시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높이 봤다. 구체성이 결여되는 지점을 두고두고 고민해 보길 바란다. 「도꼬마리와 꽃뱀과 제비」는 자연의 생명성을 단정한 언어와 서정으로 되살리려 많은 공력을 들이고 있었지만, 아직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원탁」은 소통 불능의 시들이 넘쳐나는 작금에 긍정적이고 따뜻한 어떤 세계를 펼쳐 보이는 점을 높이 샀다. 시가 독자에게 작은 위로와 토닥거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시는 보여준다. 시적 대상을 심각한 눈으로 보지 않고 대상의 핵심을 맑은 눈으로 짚어내는 솜씨도 돋보인다. 곁길로 새지 않고 집약적으로 시를 밀고 가는 힘 또한 만만치 않아, 모처럼 시를 읽는 재미를 만나는 기쁨이 컸다는 것을 밝힌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안도현·박성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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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3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첫눈과 함께 도착한 당선의 소식

우체국 가는 길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가방을 멘 아이들이 눈이다 소리치며 신나게 뛰어가는데 커지는 눈발에 에코백 안에 든 봉투가 젖을까 가슴에 안았습니다. 접수를 마치고 나오니 눈발은 더 커져 검정 외투에 하얗게 쌓였습니다. 첫눈과 함께 보냈으니 내 글들이 첫눈처럼 환영 받길 바라며 소진된 에너지 탓에 집에 오자 곧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폭설이었네요. 카페에서 당선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 편의 시를 사십 번 오십 번 고쳤을 때 마음에 들었다는 메리 올리버의 ‘시 쓰기 안내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벅차고 기뻤습니다. 카페 바깥 통로에 서서 너무 기쁘다고 기쁘다고 수없이 말했습니다. 시가 될까 두근두근 거리는 저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셨던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나중도 언제까지나 감사드립니다. 신랄하게 또는 날카롭고 신중하게 합평을 나누던 문우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많이 보고 싶고 감사합니다. 혼자는 올 수 없었던 시의 길이었습니다. 열심히 쓰고 고치며 시를 쓰겠습니다. 항상 응원해준 가족에게 큰 기쁨을 나눕니다. 부족한 저의 시를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 안도현 시인님 박성우 시인님께 고개 숙여 무한 감사드립니다. 전북일보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 최은영 씨는 부산 출생으로 경성대학교를 졸업했으며, 2021년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금상과 2023년 고산문학대전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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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3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삶의 발견, 내면의 서술

202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작년보다 조금 늘어난 146편이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8편이었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의 경향을 간략히 짚어보자면 간병, 글쓰기에 대한 고민, 이웃과의 갈등 등 거대 서사를 지양하고 작고 개인사에 집중된 소재가 주를 이루었다. 지난해 우리는 절망과 희망이 혼재된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을 겪은 터, 사회적으로 극복해야 할 거대서사가 존재할 때 소설은 작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알레고리를 지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최종 논의된 작품은 「구름 솜사탕」, 「비바 라 비다」, 「둥지부동산」, 「대리석 화분」, 「캠핑」이었다. 각 작품은 치매 노인, 이웃과의 갈등, 이국을 배경으로 상처를 안고 삶을 이어가는 경계인을 다루고 있으며 안정된 문장과 작자의 개성이 돋보였다. 작자들의 좋은 필력과 입담이 인상적이었으나 대부분 완성된 결말을 통해 주제의식의 발현에 이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선택받지 못한 작품에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202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은 「캠핑」이다. 당선작을 가리는 데에 이견 없이 비교적 쉽게 결정되었다. 「캠핑」은 본심에 올라온 18편의 작품 중 작자의 세련된 글솜씨가 가장 돋보였으며 다른 작품을 읽어나갈수록 그 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한 부부의 일상, 익숙해진 현재와 과거 기억과의 충돌로 빚어진 삶의 발견에 대한 내면의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캠핑이란 소재와 제목은 적절해 보였다. 개성 넘치며 안정된 문장, 인물의 심리를 상징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이루어낸 인물의 성격 형상화는 작가가 이미 숙련된 글쓰기의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세련된 플롯, 결말을 통해 발현되는 주제의식은 삶에 대한 깊은 여운과 질문을 남겼다. 작가의 글솜씨가 신인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감탄을 주었다. 작가가 오랜 시간 창작에 매진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축하를 보내며 열심히 써서 좋은 작가로 남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신경숙 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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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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