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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후백제 성터 추정지' 역사적 실체 드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주성황사중건기(全州城隍祠重建記) 등의 문헌자료와 일제강점기 지적도, 항공사진 등으로만 확인됐던 후백제 성터 추정지의 일부가 드러나 역사적 실체로서 복원될 가능성이 생겼다.국립전주박물관은 11일 전주시 교동 오목대서 후백제 도성벽 추정지 문화재 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오목대 동쪽지점과 남서쪽 지점의 성벽 추정지와 이 두 곳에서 출토된 유물이 공개됐다.공개된 성벽 추정지의 암반층과 퇴적단면에는 흙과 기와 돌 등이 마구잡이로 섞여있었다. 이에 대해 전주박물관 최흥선 학예연구관은 후삼국 시대에 전쟁이 잦았기 때문에 흙과 기와를 섞어 쉽게 성을 만들어야 했던 것 같다 며 철원에 있는 궁예의 도성도 이와 유사한 구조다고 말했다. 최 연구관은 이어 전근대시대 성곽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구조다고 덧붙였다. 실제 전근대시대에 성을 쌓는 방식인 판축법(토성을 쌓을 때 흙을 한 겹씩 다져 쌓는 방식)과 물림쌓기(고구려성의 기단 축조방식) 등과는 다른 구조였다.전주박물관에 따르면 성벽의 규모는 추정 너비 8m고 높이는 3~5m 내외다. 현재, 토성벽의 2분의 1은 1985년께 기린로 신축과정에서 유실됐기 때문에, 실제는 이보다 높았을 것이라는 게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유물은 연와문 수막새와 어골문(魚骨文) 기와 등 수 십여 점이 공개됐다. 경주박물관의 김유식 학예연구실장은 출토유물이 신라하대(9세기)부터 고려 전기(10세기)의 양식과 유사하다 며 후삼국 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이와 함께 후백제 산성으로 추정되는 순천 해룡산성과 전주시 동고산성 등에서 나온 유물과도 유사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특히 순천의 해룡산성은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가 주둔하던 성이다. 그는 승주(昇州-순천)출신의 지방 세력으로 견훤과 함께 고려의 왕건에게 귀부했다.그러나 공개발표 이후 간담회에서는 후백제 도성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차용걸 충북대학교 교수(역사교육과)는 입지조건은 상당히 특이하지만 오목대 남서쪽 부근은 잔존하는 성벽이 단절됐고, 높이도 낮기 때문에 성으로 규정짓기 어렵다 며 게다가 토석혼축(土石混築-돌과 흙을 섞는 방식)방식으로 담장을 두르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차 교수는 이어 전주부사에 나온 후백제의 잔존성벽과도 비교분석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발굴 조사단 측은 이 지역이 소실되기 전인 19481954년 항공사진을 보면 남서쪽으로 뻗는 성벽의 라인이 연결되는 것으로 판독된다며 구릉지 정상과 가깝기 때문에 성벽이 높지 않아도 방어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서 반론을 제기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15.06.12 23:02

전주 오목대서 '후백제 성벽' 확인

전주시 교동 오목대에서 후백제의 요새로 추정되는 일부 성벽(城壁)의 실체가 드러났다.그동안 일제강점기 지적도, 항공사진 등으로만 확인된 후백제 성벽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향후 후백제 도성과 군사주둔지대의 실증적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국립전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후백제 역사 복원을 위한 기반 연구를 진행하는 가운데 전주 오목대에서 당시 성벽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국립전주박물관에 따르면 조사된 성벽은 신라하대(9세기)부터 고려전기(10세기)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근거로 돌과 흙을 섞어 만든 토석혼축(土石混築)형태의 성벽구조를 들었는데, 구조가 간단하기 때문에 전쟁이 빈발했던 상황에 적합하다는 것이다.그동안 태조 이성계의 황산전투 승전 연회지 등 조선 왕조와 관련해서만 주목받았던 오목대에서 이번 후백제 성벽이 확인됨에 따라 천년 전주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주고, 오목대 전 지역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 보다 구체적인 후백제의 실상이 밝혀질 것으로 박물관은 기대했다.국립전주박물관은 11일 오전 10시에 오목대에서 학자와 언론인을 대상으로 발굴현장을 공개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15.06.11 23:02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세계유산 등재 '시동'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2일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등재 추진위원회 1차 회의를 갖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기록유산 등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추진위는 동학농민혁명 연구자,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관계자, 유네스코 및 문화재 관계자 유관기관 관계자 등 총 19명으로 구성됐으며, 3개 분과위(학술연구분과, 대외협력분과, 행정지원분과)와 실무추진단을 두었다.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동학농민혁명의 세계사적 위상을 강화하고, 혁명 정신의 세계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재단이 중심이 돼 관련 기록물들을 정리해왔다.재단은 추진위 출범을 계기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등재 추진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오는 10일 서울 한글박물관에서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기록유산 등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할 예정이다.이어 심포지엄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8월까지 최종등재 대상을 확정한 후 8월말 문화재청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해 잠정목록에 선정될 경우 2017년까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로드맵을 짰다.현재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사발통문동학사김낙철역사 등 농민군 참여자기록 13건 등 총 3942건이 정리돼 있다.△위원명단=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신영우(충북대 교수)배항섭(성균관대 교수)왕현종(연세대 교수)김양식(충북발전연구원 수석연구위원)조재곤(서강대 연구원)정근식(서울대 교수)임형진(경희대 교수)윤석산(한양대 명예교수)이종민(전북대 인문대 학장)이경호(IHB 주관방송경영국장)허권(아태무형유산센터 사무총장)이해준(공주대 교수)홍성덕(전주대 교수)박위진(문광부 정책관)이지성(전북도 문화관광국장)이성재(정읍시 농생명전략단장)김인환(천도교 종무원장)윤석모(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무처장)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5.06.03 23:02

"익산 미륵사지 서탑 부분복원, 세계유산 등재 조건"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코앞에 두고 그에 포함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을 부분 복원이 아니라 완전하게 복원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되지만, 부분 복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내세운 세계유산 등재 조건으로 드러났다.따라서 현재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부분 복원 대신 익산 현지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완전 복원은 전연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29일 문화재청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등지에 따르면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미륵사지가 포함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위원회에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것(inscribe)을 권고하면서, 미륵사지 석탑 복원안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6층까지의 불완전한 부분 복원안을 충분하다고 판정했다.세계유산 등재 여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코모스는 등재 권고를 판정하기 전 미륵사지 석탑 복원의 방향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28일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현장공개설명회를 통해 6층까지의 부분 복원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복원안이라고 설명했지만 현지 여론은 완전복원을 요구했다.문화재청은 불완전하게 남은 미륵사지 서탑을 2층까지는 완전 복원하고 36층은 부분 복원할 방침이다.이 탑은 백제 당시에는 9층이었다고 추정되지만, 이 역시 추정일 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그럼에도 그 반대편 동탑은 터만 남은 상태에서 발굴을 완료하고 현재는 9층으로 복원한 석탑을 세워놓았지만, 흉물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뉴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5.06.01 23:02

1963~1998년 노란 교복의 추억

병아리를 연상케하는 노랑 교복·모자·가방을 입은 초등학생. 한옥과 서양식·이슬람식 건축양식이 섞인 학교 건물도 노랑이었다. 군산제일초등학교는 시민에게 색으로 기억된다. 현재는 폐교돼 흔적만 남았다.동문을 중심으로 편찬위원회가 구성돼 학교의 역사를 정리하고 추억하는 <영원한 개나리 동산 군산제일초등학교사(史)>가 출간됐다. ‘서른 번 졸업식 치른 군산제일초등학교의 서른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지난 1963년 개교부터 1998년 폐교할 때까지 건립 과정, 운동회, 소풍, 상징물, 특기활동, 폐교 과정 등을 30개로 나눠 옛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제일초교가 속한 동산학원은 개교 당시 동중·고를 운영했다. 설립자인 정찬홍 교장은 초등학교까지 연계한 교육을 펼치겠다는 구상으로 교실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초등학교 인가를 신청했다. 결국 1963년 학생 모집의 법정기일이 임박한 2월21일에 12개 학급의 설치 인가를 받아 문을 열었다. 30년간의 앨범과도 같은 이 책은 학생 문예지인 <메아리>도 실었다. 또한 학생의 어머니가 한복을 차려 입고 자녀와 함께 소풍을 온 흑백사진도 담았다.하지만 이후 동산학원이 전임과 현 이사장의 갈등으로 분규에 휩싸이면서 제일초교는 폐교의 수순을 밟았다. 한편 제일초교는 30회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남학생 1744명, 여학생 1316명 등 모두 306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 문화재·학술
  • 이세명
  • 2015.05.29 23:02

전북민속예술제 대상 김제지평선농악단·청소년농악단

전북민속예술축제에 대상에 김제지평선농악단과 김제청소년농악단이 뽑혔다.전북도가 주최하고 (사)한국예총전북연합회(이하 전북예총)가 주관하는 2015 전북민속예술축제가 지난 16일 고창 모양성 잔디광장에서 열렸다. 민속예술축제는 사라져가는 전통민속예술작품을 발굴·재현해 이를 보존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실시하는 대회다.올해는 모두 8개 팀이 경연을 펼친 결과 김제지평선농악단과 김제청소년농악단의 농악판굿이 대상을 받았다. 일반부 금상은 고창해풍농악, 은상은 임실두레놀이, 동상은 벽골우도농악, 장려상은 진안금척무와 창포마을 다듬이공연단이 수상했다. 청소년부는 김제덕암고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한 김제청소년농악단에 이어 첫 출전한 진안 한국한방고등학교농악단이 우수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은 2개팀은 오는 10월 경기 평택에서 열리는 제56회 한국민속예술축제와 제22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 전북 대표로 각각 출전한다. 그동안 도내 대표로 고창오거리당산제와 위도띠뱃놀이, 남원삼동굿놀이, 완주봉서사영산작법, 순창금과농요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북예총 선기현 회장은 “도내에는 소중히 보존하고 반드시 계승·발전해야 할 민속이 많지만 아쉽게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거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게 현실이다”며 “지역에서 앞장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이세명
  • 2015.05.18 23:02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력

익산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등이 포함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유력해졌다.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최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에 대한 평가 결과 보고서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등재 권고로 평가해 유네스코(UNESCO)에 제출했다.문화재청은 지난해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미륵사지, 공주 공산성, 공주 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정림사지 등 9곳이다.백제역사유적지구는 다음 달 28일부터 7월 8일까지 독일 본에서 열리는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21개 세계유산위원국의 합의를 거쳐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최종 등재되면 한국은 모두 12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평가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유산 등재 기준 10가지 가운데 △특정 기간과 문화권 내 건축이나 기술 발전, 도시 계획 등에 있어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 △문화적 전통 또는 문명에 관한 독보적이거나 특출한 증거 등 두 가지 요건을 충족했다.이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고대 왕국 사이의 상호 교류를 통해 백제가 이룩한 건축 기술 발전과 불교 확산을 보여 준다. 수도 입지 선정, 불교 사찰, 성곽건축물의 하부구조, 고분석탑 등을 통해 백제의 역사와 내세관, 건축 기술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유산으로 평가받는다.또 효과적인 법적 보호 체계와 보존 정책을 비롯해 현장에서의 체계적인 관리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요인이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15.05.07 23:02

'동학농민군 사발통문·흥선대원군효유문·양호전기' 전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신청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김대곤)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발통문과 흥선대원군효유문, 양호전기 등 3건을 전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관련 자료를 23일 정읍시에 제출했다고 밝혔다.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가 사적지로 지정된 사례는 있으나 관련 기록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는 없어 이 기록물들이 첫 문화재로 지정될지 주목된다. 재단은 이들 기록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등재 추진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문화재 지정 신청의 대상이 된 사발통문(沙鉢通文)은 동학농민군이 남긴 유일한 자료로서 상징적 의의와 함께, 사료적 가치에서도 평가를 받고 있다. 1968년 발견 당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이듬해 사발통문이 발견된 신중리 주산마을 앞에 동학혁명모의탑이 세워지기도 했다. 사발통문은 그동안 개인이 소장해오다 올 2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탁됐다.흥선대원군효유문(興宣大院君曉諭文)은 흥선대원군이 동학농민군에게 해산할 것을 종용하는 문서로, 동학농민혁명과 흥선대원군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1차적 자료로 인용되는 주요 문서다. 대원군의 효유문은 정치적 포장이며, 실제는 전봉준 등 농민군지도부에게 밀사를 보내고 밀지를 내려 봉기를 유도했다는 설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다.<양호전기(兩湖電記)>는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에 대한 조선정부 토벌군의 책임자인 양호초토사 홍계훈이 1894년 4월 3일부터 1894년 5월28일까지 국왕인 고종을 비롯하여 조선 정부의 각 기관과 주고받은 전보를 날짜 순서로 수록해 놓은 기록으로,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과 완산칠봉에 주둔한 진압군의 공방전과 전주화약(全州和約)이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필사본 형태로 현재 2부가 존재하며, 나머지 1부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전북도유형문화재로 신청된 것은 기념관에서 지난해 홍계훈의 후손으로부터 입수한 것이다.이 기록물의 문화재 지정은 정읍시를 거쳐 전북도에 제출되면 전북도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5.04.24 23:02

"국내 청자 역사 다시 쓰는 계기 될 것"

초기 청자(靑瓷) 요지(窯址)이면서 후백제의 가마터로 추청되는 진안 도통리 유적에 대한 조사가 재개됐다. 국내 청자사를 새로이 정립하는 유물 발굴이 전망되면서 문화재 지정도 요구되고 있다.국립전주박물관과 군산대 박물관은 1일 오전 11시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서 초기 청자 요지 문화제 시굴조사를 위한 개토제(開土祭)를 지냈다. 매장 문화제를 조사하기 전 토지신에게 비는 개토제를 시작으로 2차 조사가 이뤄진다.이번 조사는 유적의 정확한 범위를 파악해 문화재 지정 및 본격적인 발굴조사의 기초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1차 조사지 인근 1800㎡의 면적에 걸쳐 실시한다.도통리 청자 요지는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차 조사를 통해 초기 청자의 유입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이곳은 지난 1960년대 지표조사를 실시하면서 존재가 알려졌고 지난해 군산대 박물관은 중평마을의 모정이 들어서 있는 서쪽구역에서 유물을 발굴했다.당시 가마를 만들었던 돌인 벽돌편과 투박하고 문양이 없는 초기 청자의 전형적인 찻그릇인 완(碗)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선해무리굽, 중국식해무리굽, 한국식 해무리굽 초기청자편 등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요도구도 출토됐다. 불에 그을린 벽돌편은 전축요의 존재 가능성을 나타낸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한반도 남부 내륙지방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10세기 초기 청자의 중국식 벽돌 가마와 유물을 통해 진안 지역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인근으로 발전확산했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진안지역이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초 사이에 청자 문화를 도입했고 이는 부안지역의 한국식 진흙 가마로 이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특히 후백제와의 관련성이 제기돼 그 의미를 더했다. 전주 동고산성에서 나온 초기 청자의 경우 중국제 청자로 학계에 보고됐지만 그 생산지가 진안 도통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후백제가 중국 청자의 본향으로 알려진 오월과 45년간 외교를 펼쳐 그 결실로 청자 기술이 후백제로 전래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군산대박물관 책임조사원 곽장근 교수는 918년 견훤은 오월이 말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배로 말을 보내기도 했고 927년 오월 왕 전유는 감사의 뜻을 담아 반상서를 대표로 하는 사절단을 전주에 파견할 정도로 왕성한 교류가 있었다며 후백제를 통한 청자의 전래설을 제기했다.이같은 내용은 국립전주박물관이 지난해 4월 1차 조사 성과를 알리기 위한 진안 도통리 청자전을 개최해 조망했다.하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도통리 청자 요지는 아직까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국가 지원이 없어 체계적인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초기 청자요지로 밝혀진 용인 서리(사적 제329호)와 시흥 방산동(사적 제413호) 유적은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진안 도통리는 방치돼 지속적으로 훼손되는 실정이다. 더욱이 벽돌 가마터는 현재 마을회관이 들어선 상태다.곽장근 교수는 지난 2013년 1차 조사 때 유물을 대거 발견한 만큼 이번 조사도 높은 가치의 유물이 기대되며, 앞으로 사적지 지정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청자에 관한 역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학술
  • 이세명
  • 2015.04.02 23:02

김제 벽골제 진흙주머니 '초낭' 발견 의미

김제 벽골제에서 진흙 주머니(초낭)가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면서 김제 벽골제가 대규모 노동력이 동원된 국내 최대의 인공 저수지라는 상징성과 우수한 토목 기술을 인정받게 됐다.전북문화재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4차례에 걸쳐 김제 벽골제에 대한 발굴 조사를 벌였다. 연구원은 발굴 조사를 통해 제방 중간에 있는 수문 중심거, 제방의 축조 방식 등을 파악하는 성과를 거뒀다.최근에 시행한 발굴 조사는 지난 1925년 일제에 의한 농수로 개설 과정에서 물길을 돌리기 위해 훼손된 제방의 상부 지점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애초 직선 형태였던 제방이 이후 곡선 형태로 변경됐기 때문에 하부 구조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제 용골마을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제방의 동쪽 부분에서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보축 제방(補築 堤防)을 확인했다. 특히 이 보축 제방 하단에서는 제방의 축조 방식을 알 수 있는 초낭이 발견됐다.제방의 보강을 위해 진흙을 담아 쌓은 이 초낭은 나뭇가지나 잎사귀 등을 깔고 흙을 쌓는 부엽 공법(敷葉工法)의 일종이다. 보축 제방 하단에는 초낭이 남서북동 방향으로 열을 맞춰 배치돼 있어 연약한 지반을 견고하게 다지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초낭에서는 흙과 함께 볍씨, 복숭아씨 등이 출토됐고, 그 하층에서는 담수 지표종인 한해살이 물풀 마름이 발견돼 벽골제가 과거 담수지였다는 점을 추정해 볼 수 있다.실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초낭은 7세기를 전후한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에 전주 등 7개 주(州)에서 동원된 사람들을 이용해 제방을 증수축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도 일치하는 결과다.당시 통일신라는 9주 5소경(九州五小京) 체제로 이 가운데 전주 등 7개 주에서 벽골제 제방 증수축을 위해 대규모 인력을 동원했다는 것. 상당한 노동력이 투입돼 건설된 국내 최대 규모의 저수지라는 상징성이 다시 확인되는 대목이다.또 초낭은 원제방이 아닌 보축 제방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토목 기술의 발전 양상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벽골제 원제방이 건축될 당시에는 초낭이라는 시설물이 없었기 때문에, 습지 지역을 평평하게 만든 뒤 초본류 등을 깔고 흙을 쌓는 부엽 공법이 활용됐다. 이후 초낭을 사용한 토목 기술이 발달했고 이는 일본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제방의 동쪽에 해당하는 곳에는 활등처럼 굽은 모양(호상)으로 보축 제방을 축조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보축 제방의 규모는 길이 75m, 너비 34m, 높이 160cm다. 단면 토층은 140~300㎝ 간격으로 성분이 다른 토양이 之자 모양으로 맞물려 쌓인 양상을 띠고 있다.또 제방의 가장 아랫부분인 기저부를 조사한 결과, 제방은 직선으로 연결되고 일부 경사면에서 목주열(나무기둥열)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제방 기저부의 너비는 30m 내외로 축조 방식은 기본적으로 최하단에 부엽층을 두고, 점토질과 사질토로 번갈아 쌓고 있다. 사이사이에서 토낭과 부엽 흔적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러한 축조 수법은 일본 사야마 저수지 제방 등의 원류이기도 해 우수한 토목 기술이 입증된 셈이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15.02.13 23:02

동학 원평집강소 복원, 올 가닥 잡는다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큰 유산의 하나가 집강소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최고지도자 전봉준과 전라감사 김학진이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 설치를 합의했다. 전라도 전역에 설치된 집강소는 조선정부가 공식적으로 농민군에게 통치권을 인정한 것으로, 한국사 더 나아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민과 관이 함께 폐정개혁을 추진한 집강소는 농민자치 더 나아가 농민통치를 실현한 우리나라 자생 민주주의의 효시로서 동학농민혁명의 가장 큰 성과물로 평가받고 있다.당시 설치된 집강소 중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김제 원평집강소 건물이다(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소재). 그러나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돼 폐가로 방치되면서 붕괴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본보와 민간단체 등이 나서 보존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2014년 3월19일, 6월23일자 보도).이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김제시가 문화재청에 문화재 긴급매입 신청을 했고, 문화재청은 지난해 10월 원평집강소의 긴급매입 및 복원을 결정했다.이를 바탕으로 원평집강소 복원 작업이 올 구체화 된다. 문화재청이 총 6억4500만원을 투입, 올 연말까지 집강소 복원 및 주변 정비에 나선다. 민간대행사업자로 선정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13일 원평집강소 현장에서 자문위원회를 열어 복원 방향과 향후 활용 방안 등을 구체화 할 계획이다.동학농민혁명 보다 12년 앞서 1882년 건립된 원평집강소 건물(상량문에 光緖 捌年 壬午三月二十 기입)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백정 동록개가 김덕명 대접주에게 헌납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혁명 이후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30년대 원불교 불법연구회에서 활용했으며, 1950년대 이후 개인 소유 건물로 남아 있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5.02.13 23:02

김제 벽골제서 '진흙 주머니' 국내 첫 발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저수지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에서 제방의 지반을 받치는 진흙 주머니(초낭)가 최초로 발견됐다.전북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4차례에 걸쳐 김제 벽골제에 대한 발굴 조사를 벌인 결과,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 제방의 동쪽 부분에서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쌓은 보축 제방(補築 堤防)을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특히 이 보축 제방 하단에서는 제방의 축조 방식을 파악할 수 있는 초낭(草囊) 100여 개가 발견돼 주목을 받았다. 풀로 엮은 주머니에 진흙을 담은 초낭은 습지 지역에 세워진 제방이 유실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초낭은 벽골제 공법의 영향을 받은 7~8세기 일본 카메이 유적 등에서 확인된 바 있으나 국내에서 온전한 형태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남서북동 방향으로 열을 맞춰 배치된 초낭은 연약한 지반을 견고하게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초낭에서는 흙과 함께 볍씨, 복숭아씨, 마름 등이 출토됐는데,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7세기를 전후한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에 전주 등 7개 주(州) 사람들을 이용해 제방을 증수축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도 일치하는 결과여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한편 연구원은 이번 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3일 오후 10시 30분 현장에서 설명회를 연다. 같은 날 오후 1시부터는 김제시청 대강당에서 동아시아 고대 농경 수리와 김제 벽골제의 위상을 주제로 벽골제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 학술회의를 진행한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15.02.13 23:02

동학농민혁명 최고 기록물 '사발통문' 기탁

동학농민혁명에서 최고의 가치가 있는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는 사발통문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탁돼 원본 사발통문을 상시 관람할 수 있게 됐다.사발통문에 이름을 올린 참여자(송국섭)의 후손으로, 통문을 소장해온 송택렬 씨가 귀중한 자료의 안정적 보존과 혁명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을 대표하는 기관인 기념재단에 기탁하기로 했다고 10일 재단이 밝혔다.사발통문은 1893년 11월 전봉준 등 22명이 고부군 서부면 죽산리(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사발통문을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문에는 고부성을 부수고 조병갑을 죽일 것,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군수에게 아부하여 백성에게 탐학한 벼슬아치를 징치할 것, 전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올라갈 것등 4개항의 결의문도 함께 담겨 혁명 전야의 긴박한 상활을 보여주고 있다.1968년 발견 당시 사발통문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이듬해 사발통문이 발견된 신중리 주산마을 앞에 동학혁명모의탑이 세워지기도 했다. 사발통문은 그간 독립기념관에 10년간 기탁되어 전시되다가 소장자에게 반환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쳤다.기탁자인 송택렬씨는 사발통문이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가장 가치 있는 유물이므로 동학농민혁명을 대표하는 기관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탁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기탁되는 유물 중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송두호 교장임명장 등 4점이 포함됐다.사발통문의 진본 가능성에 대해 학계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지만, 지질 감정을 통해 갑오년이나 바로 직후 문건이라는 감정 결과가 나와 동학농민혁명 주도세력이 남긴 유일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문화재청이 문화재 지정을 보류한 사발통문에 대해 전북도 문화재로 지정받는 절차를 진행하고, 향후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김원용
  • 2015.02.11 23:02

후백제 역사·문화 실체적 규명 나선다

후백제 관련 연구자들이 후백제 역사와 문화에 관한 실체적인 규명 작업을 벌이기 위해 후백제 연구회를 조직했다.후백제 연구회는 지난 6일 오후 4시 국립전주박물관 세미나실에서 김승수 전주시장과 유병하 국립전주박물관장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열었다.후백제 연구회 제1대 회장에는 유병하 국립전주박물관이 추대됐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부회장, 김종운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위원은 감사에 각각 선임돼 앞으로 2년간 후백제 연구회를 함께 이끌어 간다.후백제 연구회는 근현대 후백제사 연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인식 제고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조직이다. 유병하 국립전주박물관장을 비롯해 곽장근 군산대 교수, 송화섭 전주대 교수, 유철 전주문화유산연구원장, 전상학 전주문화유산연구원, 노기환 미륵사지유물전시관 학예사 등 4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이들은 후백제 관련 논문 발표와 후백제 최신 조사 성과 공유 등 연 4차례 학술발표회를 열고,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후백제 유적 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 전북사학회 등 학술연구재단 등재지와 연계한 후백제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발표회등재지 논문조사 성과 자료 등을 엮은 논문 학술지 후백제 연구도 발간할 방침이다. 후백제 연구회의 사이버 공간을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15.02.09 23:02

평양 대성동 고구려시대 고분 남북한 공동발굴

평양 대성동 고구려시대 고분에 대한 남북한 공동발굴조사가 추진된다.문화재청은 22일 발표한 ‘2015년 주요업무계획’을 통해 올해도 북한 문화유산 남북 공동조사를 지속 전개할 예정이라면서 그 일환으로 “(개성) 만월대는 제7차 공동조사가 진행되며, 평양 대성동 고구려고분은 처음으로 공동발굴을 추진한다”고 밝혔다.정부 차원에서 북한지역 문화유산을 공동발굴한 곳은 만월대뿐이다. 개성을 제외한 지역에서 공동 발굴 혹은 문화재 복원 사업이 민간 차원에서 더러 있기는 했다.아울러 문화재청은 씨름과 금강산·설악산 유산 공동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하는 등 남북한 문화재 교류·협력을 통한 신뢰 프로세스를 지속 구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문화재청은 올해 정책목표를 △문화유산 보존·전승 체계 고도화 △문화재 분야 규제 합리화와 참여 활성화 △문화유산 향유와 미래가치 창출 △문화유산 교류와 환수·활용 내실화의 네 가지로 삼겠다고 밝혔다.문화재 수리체계 개선 차원에서 정기조사 법정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며, 재난 대비를 위해 방재설비를 등록문화재로 확대할 방침이다.분산된 문화재 정보의 통합관리를 위해서는 문화재 지정에서부터 수리, 점검, 조사, 발굴, 수리 참여자, 도면 등 개별 문화재 생애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또한 매장문화재에 대한 명확한 정보 제공을 위한 정밀 지표조사를 실시하고 대규모 발굴조사에는 공동조사를 유도해 조사기간 단축을 추진키로 했다.문화재 주변 지역 주민불편 해소 차원에서는 기존 문화재별 현상변경 허용기준을 올해부터 오는 2017년까지 3개년에 걸쳐 재조정할 예정이다.광복 70주년을 맞아 정신문화유산 ‘민족 얼’ 찾기와 항일독립운동 관련 등록문화재 특별전 개최 등의 사업을 벌인다.문화재 활용 확대를 위해 궁중문화축전을 개최하고 경복궁 소주방과 연계한 궁중음식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궁궐 속 인문학’ 주간도 신설하기로 했다.조선왕릉 비공개 지역인 영원(英園)과 회인원(懷仁園)은 5월에 개방한다. 남양주시 금곡동 영원은 영친왕(英王)과 이방자(李方子) 무덤이며, 회인원은 대한제국 황세손 이구가 묻힌 곳이다. 뉴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15.01.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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