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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1) 맑아서 불온했던, 날망의 소나무 시인 이광웅

이광웅 시인. 이광웅 시인은 1940년 익산에서 가난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얼굴이 유독 희고 목이 길었던 시인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명문고인 남성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사유가 깊고 감수성이 뛰어나서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소설과 시, 수필 등을 써서 많은 상을 받기도 하면서 문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외국의 고전을 원서로 죽죽 읽을 만큼 외국어 실력도 뛰어났다. 시인은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외국어대학교 불문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마쳤을 때 건강이 나빠지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져서 중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학을 그만두고 방황하면서도 그는 틈틈이 시를 썼다. 그때 그의 독자는 시인의 누이동생들이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방황의 시간이었지만, 시인은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신석정 선생을 만나서 문학적 깊이를 채워나갔다. 석정 선생의 권유로 전북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또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잡지사 교정 일도 하고 시도 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항식 교수는 시인의 재능을 살리고자 원광대학교에 문예장학생제도를 마련하였고, 그를 첫 대상자로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 1959년 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이래 12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1967년 유치환과 1974년 신석정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대학 졸업 후 원광여고를 거쳐 1976년부터는 군산제일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했다. 시인은 당시 문단에 풍미하던 모더니즘에 심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현실을 올바로 보고자 하였다. 그런 어느 날 시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1982년 겨울 늦은 저녁, 군산경찰서로 다급한 전화가 한 통화가 왔다. 버스 승객 중에 누군가 불온 유인물을 놓고 내렸다는 것이다. 버스 안내원은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나라 같은 구절을 보고 신고한 것, 군산경찰서에서 내사한 결과, 술에 취한 이광웅의 제자가 선생님에게서 빌려온 오장환의 시집 『병든 서울』의 필사본을 깜박 두고 내렸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군산제일고 교사 5명이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온 것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사회의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오송회 사건>을 본보기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경찰이 공소장에 제시한 불법 서적은 오장환의『병든 서울』, 이영희의『전환시대의 논리』 등이었고, 북한의 교육제도와 순수한 우리말 보존을 평가한 것은 고무찬양죄가 되었다. 단지, 월북작가의 시집을 돌려 봤다는 이유로 이광웅, 박정석, 전성원, 이옥렬, 황윤태, 강상기, 채규구, 엄택수와 조성용 등 군산제일고 교사 9명이 구속되면서 시인은 조작된 공안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사 다섯 명이 소나무 아래에서 모였다 하여 그 유명한 오송회 사건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다섯 명의 남성고(南星高) 출신 선생님이라 하여 오성회(五星會)로 몰아가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한 분이 다른 학교 출신이어서 성(星)자를 못 쓰고, 대신 소나무 송(松)자로 썼다는 웃지 못할 비사도 전하고 있다. 시인은 용공 사회주의 건설을 기도한 주동자로 조작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고 복역하다가 1987년 6.29선언 이후 4년 8개월 만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감옥에 있을 당시 시인은 필기도구조차 빼앗긴 상태여서 단 한 줄의 글도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주워 온 못을 날카롭게 갈아서 우유 곽에다 시를 쓰고, 책 표지를 뜯어 그 위에 붙여 놓은 방법으로 그 시편들의 생명을 지켰다. 그렇게 해서 빛을 본 것이 두 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에 실려 있는 <바깥의 노래>, <바람의 손길>, <햇빛 한참> 등이다. 시인은 당시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의 무력함을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바람이 부네 마파람 바깥 세계로부터의 무슨 전령이나 되듯이 개구리 울음소리 아득히 이 바람결에 실려 오네. <중략> 여수도 무기수도 수갑 찬 사형수도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왜 어떻게 감옥 안에 흐르며 머무는지 손에 잡힐 듯이 말할 수 있을 거네 바람이 부네 세계에서 가장 넓고 부드러운 바람 감옥의 바람 -이광웅의 시 「바람의 손길」의 일부 시인은 1988년 8월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되었지만, 다시 해직교사가 되었다. 그 이유는 참교육을 부르짖었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시인은 두 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옥중생활의 고단함과 통일과 민주에의 열망, 출소 후의 낙수 같은 시, 교사로서의 애환, 그리고 초기 시편들이 수록되었고, 또한 문익환 목사의 서문과 김용택 시인의 발문도 실려 있다. 문익환 목사는 당신의 자상한 마음으로 골라낸 몇 마디 안 되는 말에서 울려오는 가락만으로 우리는 당신의 믿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바람이 얼마나 아픈 것인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군요라고 했다. 극도의 절제된 언어로 무지막지한 고문과 억울한 철창생활을 담담하게 그려놓은 것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면서 이 시집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생명은 거룩하여라. 그래서 우리는 모든 생명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일밖에. 철창을 통해서 흘러든 햇빛얼어 곱은 두 손에 받아 든 햇빛 김용택 시인도 그의 시편을 꼼꼼하게 독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늘 깨어 있는 모습으로 이 땅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화, 그리고 조국 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시를 쓸 것이라고 다짐했던 시인을 서해 바다와 그리고 군옥벌이 한눈에 내려다보는 월명공원 날망에 선 한 그루 소나무로 비유하기도 했다. 시인은 우리에게 세 권의 시집을 남겼다. 첫 시집은 1985년에 펴낸 시집은 『대밭』(풀빛, 1985)이다. 이 시집은 시인이 감옥살이할 때 누이동생이 펴냈다고 하는데, 맨 뒷장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다. 이 시집은 한 결결한 정신의 감동적인 변모의 기록이며, 동시에 내면 서정의 모더니즘에서 민중해방의 리얼리즘으로 나아가는 우리 민족 문학의 한 극적인 승리의 기록이다. 당시 시인과 함께 해직교사였던 도종환 시인(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현 국회의원)은 시인 이광웅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그대는 이 땅의 맑은 풀잎이었다가 허리에 도끼날이 박힌 상처받은 소나무이었다가 그대는 별자리에서 쫓겨난 착한 별이었다가 견결한 향기로 시드는 가을 들판 마른 쑥잎으로 앉아 있다가 그대는 진흙도 물벌레도 다 와서 살게 하는 고운 호수였다가 천둥번개도 눈보라도 다 품어주는 저녁 하늘이었다가 그대는 지금 갈기갈기 소나기로 내려앉은 슬픔 쏟아지며 쏟아지며 온 세상을 다 적시는 눈물의 빗줄기. -도종환의 시 <이광웅 시인> 전문- 시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도종환, 안도현 등의 후배 시인들과 좋은 시인 선생님이 되기를 꿈 꾸었고, 한때는 교육문예창작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전교조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여 또 해직의 아픔을 당해야 했다. 그 후 전주 한샘학원에서 강사를 하기도 했지만, 1992년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가서 창작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그 무렵 시인은 암이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나 육신은 암에 의해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세 번째 시집 『수선화』(두리, 1992)를 출간했다.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은 12월 22일, 시인은 52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6년 뒤, 1998년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 금강하구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다 시비를 세웠다. 언제나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는 이 시비에는 시인의 대표시 「목숨을 걸고」가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이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이광웅 시집 『목숨을 걸고』(창작과비평사, 1989)-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 문학·출판
  • 기고
  • 2020.09.09 16:34

코로나19 확산, 전북지역 공연·수익 ‘반토막’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전북지역 문화예술 공연 건수와 수익이 실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하반기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도내 문화예술계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도민들의 대면 문화향유 기회도 늘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이에 온라인 공연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문화관광부 산하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 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전북지역의 올들어 지난 8월 31일까지 도내 문화예술 공연개막 건수는 45건이었다. 유형별로는 연극 29.4%, 뮤지컬 27.5%, 클래식 25.5%, 복합과 국악공연 각 7.8%였다. 이 같은 공연 횟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111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도내 유형별 공연 건수는 뮤지컬이 31.6%, 클래식 29.1%, 연극 18.8%, 복합공연 18.8%, 국악 7.7% 등의 순이었다. 공연 횟수뿐만아니라 수익도 급감했다. 도내 올해 45건의 공연 수익은 3억8900여 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익 8억5600여 만 원의 절반도 안 된다. 도내 문화예술계는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될 경우 공연 감소와 수익 악화가 더욱 심화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도내 극단 관계자는 소규모 공연예술 단체의 경우 최근 문화예술계가 대안으로 삼고 있는 온라인 공연만 하더라도 인프라를 갖추지 못해 꽉 막힌 상황이다며, 장르별 특성 등을 감안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 속 문화예술 단체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고 계속 소통하고 있다며 재단 자체적으로 온라인 공연 지원 등 여러 지원을 마련하고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고 말했다.

  • 전시·공연
  • 백세종
  • 2020.09.08 17:49

전주문화재야행, 코로나19로 온라인 전면 전환

올해 전주문화재야행이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전환된다. 전주시는 문화재를 보고 체험하는 2020 전주문화재야행을 유튜브와 아프리카TV 등 온라인콘텐츠와 손잡고 오는 12일부터 내달 8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시는 특히 전주문화재야행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태조할아버지와 야행이 캐릭터를 새롭게 제작해 선뵌다. 캐릭터는 굿즈(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 출시와 프로그램 운영에 활동할 예정이다. 유튜브 속으로, 전주야행TV를 슬로건으로 한 이번 야행은 12일 열리는 전주야행TV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야경(빛의 술사들) △야로(문화재 술사들) △야사(이야기 술사들) △야화(그림 술사들) △야설(공연 술사들) △야식(음식 술사들) △야숙(여행 술사들) △야시(흥정술사들) 등 8야(夜)를 주제로 14개 프로그램, 약 90개의 영상콘텐츠가 제공된다. 또 문화유산 VR 온라인투어를 통해 경기전, 전라감영, 풍남문, 조경묘, 남고산성, 향교, 오목대, 완판본문화관, 소리문화관, 부채문화관 등 10곳의 문화재를 가상현실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사극연기 따라하기 △방구석 한식대첩 △바람을 가르는 제기차기 △상상 속 어진 그리고 △문화재 3?4행시 짓기 △카카오톡 문화재 OX퀴즈 △거리의 화공 △마인크래프트 전주건설 공모전 등 이벤트도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시는 킴스트레블, 디노따TV, 미스리TV, 탑미남 고봉, 임실들깨아줌마, 셀프미 등 인기있는 유튜버 6명을 지난주 초청, 왕과의 산책과 경기전 사람들, 경기전 좀비실록 등 다양한 영상콘텐츠 녹화를 진행한 상태다. 시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대표 온라인 콘텐츠를 QR코드화해 공공장소와 시내버스, 전주한옥마을 일원에서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제공할 방침이다. 최락기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전주를 대표하는 야간 문화행사인 야행이 코로나19로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했다면서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전주문화재야행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최정규
  • 2020.09.08 17:49

[제14회 바다문학상 당선작 본상] 오빠의 바다 - 박미림

박미림 집 나간 오빠가 돌아왔다. 거지 행색을 하고. 달포만이었다. 초상집처럼 울고불고 전국을 찾아 나서곤 하던 가족들은 일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의 몰골에 할 말을 잃었다. 가난하지만 아들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키우셨던 부모님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독 수재(秀才)였던 아들이었다. 내게도 오빠의 초라한 귀가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하늘같이 우러러 보이던, 우리 집의 우상이었던. 모범생 오빠, 그의 가출은 연유가 있었다. 난, 한 참 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부터 그는 모든 걸 포기한 인생 같았다. 짜증을 내고, 무단결석을 하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판을 벌이고, 온종일 기타를 두드리며 고성방가를 불렀다. 그러다가 급기야 호된 꾸지람을 받은 날, 기다렸다는 듯, 집을 나가버렸던 거였다. 난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변해버린 오빠가 섭섭하고 미웠었다. 70년대는 연좌제가 무시무시하던 시절이었다. 우리에겐 얼굴도 모르는 큰아버지가 계셨다. 보도연맹 서기로 일했다는. 6.25가 발발하기 직전, 그가 영문도 모른 채 불려 나가 한밤중에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소문은, 늘 우리 일가친척을 주눅 들게 했다. 그 끔찍한 사연은 쉬쉬해야만 했던 우리 집의 불행한 가족사였다. 함부로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갔다. 그로 인해 판검사를 꿈꾸던 삼촌도, 공무원을 원했던 사촌들도 모두 꿈을 접어야 했음을 오빠는 뼈아프게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연좌제가 걸려있는 가족들에게 똑똑하다는 건, 어쩌면 형벌이었을 거다. 공부한 들 뭘 해,난 희망이 없어,죽고 싶어.오빠가 집을 나가고 난 뒤 이곳저곳 낙서장에는 자신과 시절을 비관하는 글들로 빼곡했었다. 그러니 집을 나간 오빠가 달포 넘어서까지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가족들은 모두 불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제발 살아있기나 해라.그래, 희망이 없는 젊음이란, 이해하고도 남지. 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온 가족이 단서를 찾느라 책을 뒤지고 친구들을 수소문하고 속을 태우다 그만 지쳐갈 즈음이었다. 그날도 가족들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중이었을 거다. 오빠가 돌아왔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마루 끝에 선 저 사람, 옥수수수염 같은 머리카락, 엉클어진 수염, 퀭한 눈, 낯설었다. 저 이가 정녕 내가 아는 우리 오빠란 말인가? 하지만 어색하다거나 반가운 인사를 나눌 새도 없었다. 그는 쓰러져 시체처럼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 그는 푸르르 깨어났다. 바다 냄새가 났다. 그가 말문을 열었을 때. 죽음 근처에서 헤매던 냄새라곤 믿어지지 않았다. 바다를 한껏 껴안고 돌아온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는 죽기 위해 생의 끝인 양 바다를 향해 달렸다고 한다. 충청북도 보은 땅, 자신을 태어나게도 했거니와 자신의 삶을 저당잡은 고향을, 가족을, 등지고만 싶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완전한 반대 방향인 바다로 바다로 향해 끝없이 달렸다고 했다. 충청도에서 부산으로, 다시 목포로, 죽고자 찾아 나선 바다였다. 그가 죽기 위해 바다 앞에 설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파도 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안돼, 아들아! 그건 안돼. 바다는 죽고자한 마음들을 흔들어 일으켜 주었을 것이다. 아픔을 토닥토닥 안아주고, 흔들리며 살아온 제 생을 일러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문득 파도의 하얀 포말처럼 다가온 사람. 하얀 제복의 대학생이었다. 해양대학. 눈이 부셨다고 했던가? 가슴이 뛰었다고 했던가? 희망처럼 무엇이 번쩍 솟아올랐다고도 했다. 그래 바다와 함께 살자. 파도 너머엔 빛이 있을 것이다! 돌아가자. 다시 돌아가 시작할 것이다. 얼마나 흔들리고 흔들렸던 것일까? 깨어난 그에게 단단한 각오가 보였다. 오빠는 머리를 깎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도 않았던 그였다. 그가 불과 1년 남짓, 급기야 검정고시를 거쳐 목표한 대학을 입학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순탄치는 않았지만, 무사히 외항선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엄마는 늘 부뚜막에 바다를 모셔 놓고 사셨다. 그것은 어머니의 조왕신이자 포세이돈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추운 겨울 부뚜막에 떠 놓았던 조왕보시기 정화수가 얼었다고 야야, 오빠에게 좋은 일이 있을랑갑다. 이것 좀 봐라. 돛을 단 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정화수 보시기의 물은 배처럼 얼어있다. 가운데가 볼록 치솟아 정말 바다 위에 돛배 같았다. 나는 웃지 않았다. 굳이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과학 사전을 찾아보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의 상상이 옳다고 무조건 믿고 싶었다. 사방 바다를 만날 수도 없는 충청도 산골에서 우리 엄마는 부뚜막에 날마다 바다를 모셔 놓았던 거다. 세상의 수많은 생명을 품을 줄 아는 바다, 흔들릴수록 더 아름답게 반짝이는 바다, 엄마의 부뚜막이 그 바다가 아니라고 누가 우길 수 있겠는가? 오빠의 하얀 제복은 우리 가족은 물론 마을의 설렘이었다. 대학생도 귀한 오지 마을, 오빠가 오는 날이면 이웃 마을 언니들까지 괜히 우리 집 앞을 서성대곤 했다. 그런 오빠가 다녀갈 때마다 나는 말로만 듣던 먼 바다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갔다. 바닷가에도 바지락이며 조개 농사를 짓는 어촌이 있다는 것도, 태평양 한가운데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와 진짜 배를 넘기도 한다는 것도, 그 파도를 헤치며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멋진 바다 사나이들이 있다는 것도. 나에겐 모두 처음 듣는 특별한 세상 이야기였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렵던 시절 우리 가족을 일으켜 준 바다의 신은 누구였던가? 용왕인가? 엄마의 부뚜막 조왕신인가? 황금 갈기를 휘날리며 바다를 달린다는 포세이돈인가?그때 오빠가 잘못되었더라면?바다가 그를 안아주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또다시 풍비박산이 났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물려 흔들리고 떠밀려가던 우리 가족을 포근하게 껴안아 준 바다. 그러기에 나는 바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포기할 뻔했던 오빠의 젊음을 토닥여 주고 일평생 안아 준 바다. 망망대해 가도 가도 끝없던 바다 위에서 꿋꿋이 견디며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 온 오빠. 그의 고독한 삶을 존경하는 만큼 나는 바다를 흠모한다. 전화가 왔다. 바다와 평생을 산, 갓 퇴직한 오빠의 초대 전화다. 동생아, 우리 이사한 집에 놀러 올래? 거실에서 바다가 보여. 나는 눈물이 났다. 오빠는 언제까지나 바다와 함께 살고 싶은가보다. 보은(報恩)이리라. 절망이었을 때 그를 안아준 바다에 대한. 수화기 너머엔 바다가 있다. 작은 배 한 척 노을 속 바다 위에 평화롭게 떠 갈 것이다. 일출이 눈부시다면 일몰은 아름답다 했던가? 오빠의 해넘이 풍경도 그랬으면 좋겠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0.09.08 17:12

"수탈의 역사 만경·동진강을 ‘생태문화’ 발원지로"

전북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을 수탈의 강에서 생태 문화의 발원지로 아젠다를 확립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북연구원(원장 김선기)이 7일 이슈브리핑을 통해서다. 전북연구원은 만경강과 동진강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농업공업생활용수 등으로 이용하기 위한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강 문화와 관련해 성장 위주의 정책에서 친환경, 생태 부문으로 전환 중인 상황에서 역사와 문화를 덧입혀 새로운 생태문화의 아젠다를 확립하자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강은 인류에게 소중한 존재이자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강을 바라보는 관점은 치수(治水)와 이수(利水)로 대표되는 제어 공간과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는 친수(親水) 공간으로 양분돼 있다. 특히, 만경강과 동진강은 벽골제와 눌제로 대표되는 농경문화의 대표지로 생태자원과 역사문화 자원의 보고(寶庫)로 평가했다. 이 때문에 충분히 강 문화를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 연구원은 유럽의 경우 강문화를 통한 라인강 고성가도, 예술회랑, 비엔날레, 수변공원의 조성으로 도시민의 여가, 문화 공간으로 조성할 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 유치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만경강과 동진강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북연구원 김보국 박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생태의 보전과 함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만경강과 동진강을 강문화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생태복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파괴되었던 강을 원상복구하며 역사 차원에만 머물렀던 친일 청산에서 벗어나 환경 측면의 친일 청산으로 전환하여 생태문화 사업 추진의 주요 근거로 제기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북은 선제적으로 강 생태 문화 활성화 계획을 수립하고, 강문화 거점 공간을 조성한 뒤 생태의 복원과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강문화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천경석
  • 2020.09.07 18:55

한국소리전당 소리킥2 온라인 전환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기획제작한 소리킥 시즌2 흥부, 소리를 차다!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으로 전환된다. 전당은 우석대학교 태권도학과 선수들과 퓨전국악실내악단 소리愛, 소리꾼 이건일조현정, 상모꾼 안태호 등 전북 출신 예술인들이 대거 출연한 소리킥 시즌2 흥부, 소리를 차다!가 온라인으로 전환된다고 7일 밝혔다. 당초 소리킥 시즌2는 오는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소리전당 연지홀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공연예매 티켓만 600여장, 수익금 1200만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연이지만 수도권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가 2주 연장되면서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했다. 예매한 티켓은 모두 환불조치 되며 녹화는 오는 12일 연지홀에서 진행된다. 온라인 공개는 유튜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채널에서 무료로 공개되며 공개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소리킥은 판소리의 고향인 전북의 소리에 태권도를 결합한 새로운 장르의 융복합 공연이다. 고전소설 흥부전을 바탕으로 권선징악이라는 테마를 더한 태권소리극으로 짜임새 있는 스토리는 물론 태권도와 판소리를 접목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국악 장단에 현대적인 유머까지 덧입혀 전 세계인 누구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국 전통 문화가 주는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태권도의 각종 품새와 겨루기 동작, 고난이도 격파,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칼군무까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퓨전국악실내악단 소리愛는 2011년 창단,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각종 페스티벌에 참여해 1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쳤다. 이번 소리킥 공연에서는 국악 작곡과 연주를 담당했다. 이밖에도 샌드아트 흥부와 놀부 이야기, 판소리, 국악, EDM까지 다양한 음악이 만들어 낼 사운드 트랙이 펼쳐진다. 소리전당 관계자는 이번 공연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불가피하게 취소가 됐다면서 온라인 영상에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시·공연
  • 최정규
  • 2020.09.07 17:30

광고가 미치는 영향은?

길을 걷다보면 길 위에는 다양한 광고를 접할 수 있다. 광고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며, 현대 생활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광고는 생산품을 대량 생산하고 대량 소비하도록 하는 공간적 사회적 거리를 연결해 주는 교량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광고는 매체의 발달과 시대적 요구에 맞춰 신문, TV, 자동차, 잡지, 인터넷, 휴대폰, 광고지, 벽보, 옥외광고, 플래카드, 의류, 생활용품 등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광고의 효과는 어느정도일까. 광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 박영삼 사진작가는 8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전주 교동미술관 본관에서 광고는 말한다는 주제의 개인전을 갖는다. 7번째로 여는 개인전이니 만큼 작가가 현대 광고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에 착안하고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특히 광고 매체 중에서 화물차 버스 및 택시의 부착광고물, 사거리의 플래카드, 현대상가의 간판, 한옥마을 상가 및 대문의 간판, 스키장, 광화문 전주역 전주롯데백화점 광주고속터미널 등에서 촬영한 사진을 수집하고 정리했다. 박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광고는 소비자의 심리와 예술성을 결합시켜 제작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광고는 상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광고는 제품을 팔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다. 광고가 제품을 파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마음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어떤 제품을 상대 제품보다 눈에 띄게 하고, 소비자들이 좋아하도록 해서 사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해주어야 한다. 광고는 제작 초기부터 철저하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그는 이번 사진전을 통해 광고의 시대적 변화 경향 및 미래의 방향을 가늠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사진이 매체로써 광고에서 갖는 역할과 비중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가를 짚어보는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 전북사진대전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여행자의 잔상, 여로의 감성, 가을상추객, 여행자의 군상, 전주 태조로 완상 등을 주제로 6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 전시·공연
  • 최정규
  • 2020.09.07 17:30

[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시간이 없다

얼마 전 어느 작가의 전시장에 갔을 때에 나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작품은 일반인들의 눈을 의식한 프레임과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로움이 절충 된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눈에 맞추었다는 것은 곧 사실적이고 장식적이며 완성도를 갖는 것이고,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로움이란 추상적이고 즉흥적 충동이 가미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길을 가고 싶지만 주변의 시선과 동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절충하게 된다. 그러기에 멀리 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계속 맴돌게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주문했다. 주변의 시선에 맞추려 하지 말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힘껏, 지속적으로 가보라. 결과를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고, 한발 한발 가다보면 어느 덧 스스로 예상하지 못했던 고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일단 거기까지 목표를 삼아 나아가라. 아마도 그 작가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작가는 주변의 지지를 받아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주변의 시선을 훌쩍 떠나 독보적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주변의 시선을 어쩌지 못하는 고리에 잡히는 순간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볼모가 된 삐에로처럼. 시간이 없다. 나는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매일 만나도 매일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 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얽혀 살 것 같지만, 홀로 되어 멀리 가게 되는 것은 멀지 않다. 시간이 없다. 언젠가 강의 중 한 한국화가가 금생에는 이렇게 하고 내세(來世)에나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하겠습니다.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없다. 내세까지 어떻게 기다리겠는가? 그것이 중요하고 긴급하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 당장 실천에 옮겨라. 그렇게 해도 갈 길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봐야 내세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 삶도 마찬가지이다.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삶의 물결에 흔들리다보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 길을 갈 때에만 보람을 느낀다. 그것이 길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0.09.07 17:27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21’ 한국영화 공모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가 코로나19로 어려워진 한국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 2020년도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제작투자 지원작 공모를 통해서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국내외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극영화, 또는 다큐멘터리 장편 기획을 선정해 제작 투자하고 완성작을 영화제를 통해 다시 소개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주요 섹션 중 하나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21로 선보일 한국영화 1편을 공모를 통해 추가 선정할 예정이다. 투자제작도 확대된다. 예년 평균 3편, 3억 원 규모였던 투자제작 범위를 총 5편, 4억 원 규모로 대폭 확대했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지난 6월 제12회 전주프로젝트마켓 시상식을 통해 박혁지 감독의 시간을 꿈꾸는 소녀와 에릭 보들레르 감독의 어 플라워 인 더 마우스를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21 선정작으로 발표했으며, 로이스 파티뇨 감독의 다큐멘터리 삼사라와 알란 세갈 감독의 극영화 세 탐정: 종이, 찰흙 또는 돌(가제)을 추가 선정했다. 이번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21 추가 공모 대상은 제작국가가 대한민국인 극영화 또는 다큐멘터리다. 극영화의 경우 순제작비 4억 원 이내의 저예산 장편영화 가운데 시나리오 개발 완료 후 제작이 예정되어 있거나 현재 제작 중인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이번 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21 한국영화 추가 선정은 한국 독립예술영화를 응원하고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돌파해 나가자는 선언과 다름없다며 코로나19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국내외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이 절실해진 지금, 전주국제영화제의 대표적인 섹션이자 선도적인 제작투자 지원 프로그램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제작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해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영화·연극
  • 최정규
  • 2020.09.06 15:48

코로나19 속 전주대사습놀이 무관중 개최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 전주대사습놀이가 무관중으로 진행된다. 경연대회는 정부시상이 달린 문제이며, 100만 국악인구의 열망이 담겨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전주대사습놀이조직위원회는 오는 10월 11일과 12일 이틀간 전라감영과 전주한옥마을 일대에서 제4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와 제38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본선경연을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본 대회에 앞서 열리는 예선경연은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달간의 기간을 두고 진행한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일주일에 두 곳의 장소에서 2~3개의 종목에 대해서 예선을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장소는 전주 천양정과 전주소리문화관, 전주덕진예술회관, 한국전통문화전당, 전주향교, 전라감영 등에서 분산 개최된다. 6일부터는 학생대회 예선을, 11일부터는 전국대회 예선을 치른다. 본선대회는 예선이 모두 끝난 뒤, 보름 후에 진행될 예정이다. 전국대회 본선은 10월 12일 정오, 학생대회 본선은 10월 11일 오후 4시에 각각 전라감영 핵심건물인 선화당에서 치러진다. 대회는 출전자와 보호자 1명 외에는 경연장 입장을 불허하며 또한 대기 공간을 확보해 대기자들 간에 접촉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또 개개인과의 통화 및 문자를 통해 경연참여를 위한 이동장소와 시간을 서로 겹치지 않게 하고, 관중은 무관중으로 진행된다. 심사위원들도 마스크착용과 충분한 거리두기를 실시할 예정이다 성악부분의 출전자는 투명 아크릴 전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반주자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송재영 이사장은 코로나19 상황 속에 치러지는 대사습 대회는 예전처럼 성황을 이루지는 못하겠지만, 대사습 출전을 위해 그동안 실력을 갈고 닦은 학생들과 명인들의 희망과 소망을 저버릴 수 없어 철저한 방역지침을 통해 본 대회를 진행하게 되었다며 내실 있게 대회를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최정규
  • 2020.09.06 15:48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