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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쓴 시간의 결실”⋯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첫 걸음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의 주인공들과 등단의 첫 순간을 응원하는 중견·원로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4일 전북일보 7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은 새로운 후배 문인들의 등단을 축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지역의 중견·원로 시인들과 당선 작가, 당선자들의 가족·친지, 전북일보 임원 등 50여 명의 내외빈이 참석해 최은영(시)·양준희(소설)·최재민(동화) 작가의 첫 출발을 응원했다. 시상식에서 각 부문 당선자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쓰는 시간’과 ‘당선의 순간’을 되짚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원고를 고쳐 쓰던 고독의 시간부터 뜻밖의 당선 통보 전화까지, 수상 소감에는 문학을 향한 각자의 태도와 삶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시 부문 당선자 최은영 씨는 첫눈이 내리던 날을 떠올리며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그는 “신춘문예 투고를 위해 우체국을 다녀오는 길, 아이들이 눈을 보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원고가 든 가방을 가슴에 안았다”며 “첫눈과 함께 보낸 시들이 첫눈처럼 환대받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당선 연락을 받기 전까지 결과를 체념한 채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는 최 씨는 “한 편의 시를 수십 번 고쳐 쓰며 마음에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기쁨이 조금씩 실감났다”고 전했다.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양준희 씨는 소설 쓰기를 ‘고독한 암중모색의 과정’에 비유하며, 이번 당선을 “캄캄한 밤길에서 등불 하나가 켜진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설을 쓰며 더 나은 독자이자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노력해왔다”며 “과분한 격려를 발판 삼아 매일 성실하게 써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가족과 친구들, 특히 첫 독자가 되어준 딸과 이날 함께한 부모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동화 부문 당선자 최재민 씨는 오랜 영상 기획·제작 경력을 소개하며 비교적 늦게 동화를 쓰기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그는 “동화를 쓰기 시작한 뒤 아이들의 움직임과 말소리가 이전과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며 “아이들의 마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글을 계속 써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발걸음 같은 시작이 이번 당선으로 이어졌다며 심사위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현아 기자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1.14 18:38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길

본심에 오른 13편을 꼼꼼히 읽었다. 먼저 소재의 다양성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AI를 다룬 글이 많아 우리가 AI 시대를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종심에 오른 모든 응모작이 우열을 쉽게 가리지 못할 만큼 우수했다. 작가는 참신한 소재를 찾았더라도 모름지기 하고 싶은 말을 설득력 있게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을 지녀야 한다. 그 기준으로 ‘거짓말 영수증’ 과 ‘롤러코스트가 멈춘 날’이 마지막까지 내 손에 남았다. ‘거짓말 영수증’ 은 재기발랄하며 통통 튀는 글이다. AI시대에 등장한 피노키오를 떠오르게 한다. 거짓말이 불러오는 더 큰 거짓말. 그리고 홍수처럼 쌓이는 주인공의 중압감을 잘 표현했다. 빠른 전개로 긴장감을 높였지만 중간중간 다듬어지지 않는 문장이 있어 아쉬웠다. 적합한 어휘를 사용하는 힘을 기르길 바란다. ‘롤러코스트가 멈춘 날’은 재혼 가정의 화학적 결합의 어려움을 5학년 소녀의 눈높이에서 잘 그려냈다. 소재는 좀 진부할 수 있으나 시기와 질투라는 사람의 본성을 잘 짚어냈다.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고 문장이 탄탄하여 오랜 습작 기간을 믿게 했다. 잔 글이 유행하는 시대인데 뚝심 있게 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길 기대하며 당선작으로 올린다. 좋은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는다. 어린 독자는 더 그렇다.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모든 예비동화작가들의 문운을 빈다. 심사위원 김종필 작가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01 21:05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의 희망을 찾아

당선 소감은 꼭 처음 하는 고백 같습니다. 어떻게 써도 어설플 것 같고, 어떻게 써도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애써 치우며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책상에 앉습니다. 몇 달간 쉬지 않고 일한 노트북이 보입니다. 참 많이 썼습니다. 색색의 필기구는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생각이 막힐 때는 흰 종이에 아무 단어나 쓰곤 했습니다. 제목도, 장르도 다양한 책이 쌓여있습니다. 틈틈이 읽었습니다, 충전식 블루투스 스피커도 여러 개 있습니다. 상상이 멈출 때는 크게 음악을 들었습니다. 미리 올려두었던 새해의 탁상달력도 보입니다. 이제껏 제대로 펼쳐보지 않았던 열두 개의 장을 천천히 살펴봅니다. 눈이 곱게 내려앉은 나무, 엇갈려 선 펭귄, 아빠를 보고 웃는 아이. 활짝 핀 흰 꽃, 매달린 채 흔들리는 조등, 해 질 무렵의 차밭, 흰 파도가 밀려오는 청록색 바다, 붉게 물든 노을 아래 붙어 있는 두 사람, 달 속에 든 드라마 속 오래된 연인, 정갈하게 붙들린 채 곶감이 되어가고 있는 단감, 바람을 맞고 있는 오름길의 억새, 깊은 호수에 잠긴 듯 비치는 설산, 그렇게 계절을 담아낸 열두 개의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특별함과 평범함, 따뜻함과 슬픔, 반가움과 두려움,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그 안에 다 모여 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쓰게 될 동화에도 그렇게 많은 마음이 들어설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모여져 드러나는 것은 이왕이면 비겁함보다는 용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아픔보다는 희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차는 식지 않았습니다. 찻잔 모퉁이에 닿은 손가락에 온기가 느껴집니다. 따뜻한 힘을 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내. 딸. 형제, 친구, 선배, 후배, 사랑합니다. 그리고 좋아합니다 ,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곁을 지켜주고 계신 부모님, 그립습니다. 뽑아주신 전북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감을 쓰고 있는 오늘의 시간이 좋습니다. 좋은 일이니까요. 내일은 좀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습니다. 제게도, 여러분께도. △최재민 씨는 1970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TV 다큐멘터리와 교양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으며 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01 21:04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동화] 롤러코스터가 멈춘 날 -최재민

롤러코스터가 느릿하게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드디어 복수의 시작. 무서운 속도로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지혜는 예상대로 비명을 질러댔다. 깔끔했던 녀석의 얼굴이 콧물과 눈물로 엉망이 되어갔다. 손거울이라도 하나 가져다주고 싶었다.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밉기만 한 지혜와 단짝처럼 붙어 앉아 롤러코스터를 탄 나다. 남들은 같은 집에서 사는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른다. 만난 지 고작 팔 개월 된 동생인 지혜가 처음부터 싫었던 것은 아니다. “조아야. 동생이 생기니까 좋지?” 엄마는 동생을 새로 산 학용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느닷없이 생긴 열한 살 짜리 동생이 금방 좋아질 리 없다. 싫었던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별다른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쿨한 편이다. 남편이 필요하다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했고, 그렇게 엄마의 고향 친구였던 아저씨를 새아빠로 인정하려고 했다. 당연히 아저씨의 딸인 지혜도 편견 없이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미움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혜야. 이번 과학 경시대회에서 일 등 한 거야?”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긴, 다 실력이지. 대단하다. 조아는 공부랑은 아예 담을 쌓고 사는데.”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지혜는 정말 운이 좋을 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혜는 과학학원을 다녔다고 했다. 과학 경시대회를 앞두고는 특별반 과정까지 들었다. 이게 다 돈 많은 아저씨 밑에서 자랄 수 있었던 지혜의 운이다. 지혜에 비하면 나는 운이 없는 아이다. 학교 방과후 수업 말고는 따로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다. 마트 판매원으로 일하던 엄마는‘생활비가 모자란다’는 주문을 외워 내가 해달라고 하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시켜 왔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면 공부랑 내가 쌓은 담은 나 혼자 쌓은 게 아니라, 엄마랑 같이 쌓은 것이다. 물론 아저씨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뭐든지 이야기만 하라고 했다. 램프의 요정 지니보다 더 친절한 말투였다. 그러나 나는 현실감각마저 탁월한 5학년이다. 갑자기 학원에 다닌다고 꼴찌 수준인 내 성적이 오를 리 없다. 학원에 다니고도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내게는 분명 아저씨의 무시라는 혹이 붙을 게 뻔했다. 엄마한테 당하는 무시를 아저씨한테까지 당할 순 없었다. 아저씨 집으로 들어와 산 지 육 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지혜의 생일을 맞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혜는 엄마를 새엄마라고 불렀고, 나는 아저씨를 그냥 아저씨라고 불렀다. 엄마는 아저씨를 새아빠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나는 딱 이 정도 경계가 적당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일날. 지혜가 그 선을 넘었다. “새엄마, 그냥‘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엄마는 안 된다고 말해야 했었다. 무려 십이 년을 함께 살아온 친딸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엄마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엄마는 기대했던 표정 대신 ‘장한 어머니상’이라도 받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영악한 지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엄마 품을 파고들었다. 지혜는 영악한 여우 같았고, 엄마는 자기 욕심에만 겨운 곰같았다. 화가 나서 엄마가 잘라둔 케이크를 놔두고 굳이 반쪽이 그대로 남아있는 케이크에 포크를 찔러넣어 푹 퍼냈다. 그 바람에 견고하게 서 있던 케이크가 내 맘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우악스럽게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단맛만이 나를 구제하리라. “우리 조아도‘아빠’라고 한번 불러볼래?” “…….” 갑자기 툭 치고 들어온 아저씨의 말에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 나다. 이럴 때는 대꾸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답이다. 나는 케이크만 계속 먹었다. “안 뺏어 먹을 테니 천천히 먹으렴. 그러다 탈 날라.” 나는 아저씨의 말에도 멈추지 않았다. 지혜의 생일 케이크라도 다 먹어버려야 눈앞에서 엄마를 빼앗긴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아저씨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 저주의 주문이었다. 다음날 나는 설사에 시달리다 병원까지 다녀와야 했다. 전날 케이크를 많이 먹었다는 엄마의 말에 의사 선생님은 당분과 지방 섭취가 과해 소화기관에 부담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순 엉터리 선생님이다. 내 속을 뒤집어놓은 건 케이크가 아니라 친딸의 분노 지수를 높인 엄마의 무신경함이었으니까. 그날부터 나는 내가 언젠가는 이 집을 떠날 손님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 아빠를 잃고, 이제는 하나뿐인 엄마마저 빼앗긴 열두 살의 아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더는 마음을 표 내지 않기로 했다. 불쌍한 아이보다는 인생을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가 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감정 따위는 얼마든지 숨길 수 있을 것 같은 조숙한 아이도 가끔은 그냥 아이가 되는 순간이 온다. “엄마, 강아지 키워도 돼요?” 지혜가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속으로 “야호”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3학년 때였나,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우리 집 형편과 실제 돌봄의 어려움을 들어 강아지를 키우자는 말이 내 입에서 쏙 들어가게 했다. 그때만큼 엄마가 미웠던 적도 없다. 그러나 다 맞는 말이라서 도무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제 지혜도 엄마가 언제나 말랑말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배움의 끝은 물론 상처로 남으리라.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생각해 보자니! 강아지 키우기에 결사반대의 입장을 보이던 엄마 입에서 나온 말 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혜가 친딸이 아니라서 물렁하게 대하는 걸까. 그렇다면 엄마의 진심을 위해 내가 나서야 할 시간이다. 불리한 타이밍에서는 적절한 선수교체가 답이 되기도 하니까. “이지혜.” 나는 성까지 붙여 선전포고하듯 불렀다. 지혜는 의심 없는 말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언니, 언니도 강아지 키우고 싶지?”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이래서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강아지는 안돼. 사료에 병원비에 미용비까지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게다가 매일 냄새나는 똥하고 오줌을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산책은 또 누가 시킬 건데. 그러니까 포기해. 엄마도 같은 생각이지?” 엄마가 날 말리며 늘어놓았던 말들을 이렇게 잘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난 잔머리가 아닌 머리가 좋은 아이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세 개의‘안 돼’공을 강아지 양육 금지라는 스트라이크존에 정확히 꽂아 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엄마가 공평한 심판을 자처하며 내릴 마지막‘아웃’선언이다. 결국 지혜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꿈을 버리는 동시에 함께 사는 엄마가 누구의 진짜 엄마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엄마라고 부른다고 다 진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근데, 강아지 키우면 지혜가 똥하고 오줌 치울 자신 있어?” “네.” “산책도 시킬 수 있고?” “네.” 예상치 못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다급해졌다. “엄마, 사료에 병원비에 미용비는 어떻게 감당하고?” “상황이 달라졌잖아. 이제 아빠도 계시고.” “그런 게 어딨어. 내가 키우고 싶다고 할 때는 절대 안 된다며.”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지혜랑 같이 키우면 좋잖아.” “왜 말이 달라지는데? 왜 지혜만 특별대우 하냐고?”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맑은 날인데 뛰어가는 내 눈에 담기는 풍경은 꼭 수영장 물속에서 보는 것처럼 흐렸다. 숨이 차서 더는 못 뛰겠다 싶을 때쯤 놀이터가 나왔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냥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마음 여기저기가 찌릿하면서 아팠다. 그사이 크고 작은 고양이 몇 마리가 다녀가더니 어느새 밤이 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긴 그림자 하나가 내 몸 위로 쓱 내렸다. “여기 있었어?”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망설이다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아저씨는 입고 있던 외투를 말없이 입혀주었다. 아저씨는 앞에서, 나는 뒤에서 걸었다. 아저씨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아저씨는 조아랑 많이 친해지고 싶어.” 밤중의 설교는 듣기 싫다. 그러려면 아저씨 입을 막을만한 뾰족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저씬 지혜를 더 사랑하죠? 아저씨 진짜 딸은 지혜니까.” “…….”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저씨가 걸음을 멈추더니 그대로 돌아섰다. “진짜 딸, 가짜 딸이 어딨어? 엄마랑 나한테는 우리 딸들만 있어. 그게 진짜야.” “우리 딸들요?” “그래 조아하고 지혜, 우리 딸들!” 방심한 사이‘우리’라는 말이 내 심장을 야릇하게 간지럽혔다.‘넘어가면 안 돼’하며 마음을 다지는 순간 내 등짝에 갑자기‘빡’하는 소리가 났다. 이건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의 전매특허‘등짝 스매싱’이다.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부러 화내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울었는지 엄마의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따지지 못한 채 엄마를 안고 말았다. 만나자마자 엄마가 밉다고 말하려 했는데, 왜 맘대로 되는 게 없는 걸까. 나의 가출 아닌 가출 사건이 있고 나서 며칠 후 우리 가족은 모두 놀이공원을 찾았다. 가족애를 다져야 한다는 아저씨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오자마자 함께 피자를 먹은 후 엄마와 아저씨는 둘만의 데이트를 갖겠다며 우리끼리 원하는 놀이기구를 타다가 다섯 시에 회전목마 앞으로 오라고 했다. 이런 게 혹 고양이한테 쥐를 맡기는 꼴이 아닐까? 표 내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지혜가 미웠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계획이 필요하다. 아니, 이런 건 계략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무서워서 롤러코스터를 한 번도 못 타봤다는 지혜를 살살 꼬드겼다.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지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의 명물‘스카이데빌’은 무려 70미터 높이에서 수직으로 하강하는 롤러코스터였다. 계획은 그대로 적중했다. 겁에 질린 지혜를 지켜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거짓말처럼 롤러코스터가 고장을 일으키며 갑자기 멈춰 섰다. 이대로 열차가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높이였다. 함께 매달린 사람들이 울기 시작했다. 마음을 나쁘게 써서 하늘이 내게 벌을 주는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언니, 미안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지혜가 말했다. 그제야 지혜가 내 옆에 있다는 게 생각났다. “네가 뭐가 미안해?” “나, 언니 일기장 봤어. 그래서 지금 벌받나 봐.” “일기장?” 나는 일기장 표지에‘이 일기를 보는 사람은 하늘이 꼭 벌을 줍니다. 그러니 절대 촉수 금지.’라는 경고문을 써두었다. “언니 마음을 알면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 “그래서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고 한 거야. 사실 난 강아지 무서워.” 이상하긴 했었다. 엄마가 몇 번이나 강아지를 보러 가자고 했는데, 지혜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계속 미루고 있었다. “왜 내 맘에 들고 싶은 건데?” “언니가 내 언니니까.” 아저씨와 지혜가 부녀라서 그런가. 말로 사람 울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언니, 정말 미안해. 내가 일기만 안 봤어도.” “안 미안해도 돼. 내 일기장 봐도 벌 안 받아.” “진짜?” “엄마도 맨날 내 일기장 몰래 보거든. 근데 아무 일 없더라.” 지혜의 얼굴이 좀 편해졌다. 이상한 일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는데, 지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별로 무섭지 않다. “우리 여기서 무사히 나가면 강아지 보러 갈래.” “응. 언니가 옆에 있으면 안 무서울 것 같아.” 지혜가 나를 보고 웃는다. 밉게만 보이던 그 얼굴이 귀엽게 보인다. 그때 사람들이 밝아진 목소리로 웅성거린다. 롤러코스터 레일을 따라 형광색 점퍼를 입은 안전요원 아저씨들이 올라오고 있다. 나는 손을 뻗어 지혜의 손을 잡았다. 지혜가 웃는다. 이쁘다, 내 동생.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01 21:04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대상의 핵심을 짚어내는 맑은 눈, 시를 읽는 재미를 주는 작품 만나

숙고의 시간이 길었다. 예심을 거친 16명의 시작품은 몇몇을 제외하고 저마다의 개성과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자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며 논의의 대상을 좁혀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포쇄」와 「박쥐의 문장」, 「기대면 추락 위험」과 「도꼬마리와 꽃뱀과 제비」, 그리고 「원탁」이다. 「포쇄」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시각이 좋았다. 다소 낡아 보이는 지점들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밀고가는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 오래된 그릇을 꺼내 햇볕에 말리는 그림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선명성도 강렬했다. 그러함에도 ‘고서’, ‘서가’, ‘고문서’가 반복되듯 나오면서 시의 확장성을 놓치고 있었다. 「박쥐의 문장」은 남다른 감각과 발랄한 상상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독특한 문장으로 새로운 시 세계를 열어가려는 열정을 느끼기에도 충분했지만, 군데군데의 시행이 산만하게 다가왔다. 「기대면 추락 위험」은 현실의 모순이나 뒤틀림을 시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높이 봤다. 구체성이 결여되는 지점을 두고두고 고민해 보길 바란다. 「도꼬마리와 꽃뱀과 제비」는 자연의 생명성을 단정한 언어와 서정으로 되살리려 많은 공력을 들이고 있었지만, 아직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원탁」은 소통 불능의 시들이 넘쳐나는 작금에 긍정적이고 따뜻한 어떤 세계를 펼쳐 보이는 점을 높이 샀다. 시가 독자에게 작은 위로와 토닥거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시는 보여준다. 시적 대상을 심각한 눈으로 보지 않고 대상의 핵심을 맑은 눈으로 짚어내는 솜씨도 돋보인다. 곁길로 새지 않고 집약적으로 시를 밀고 가는 힘 또한 만만치 않아, 모처럼 시를 읽는 재미를 만나는 기쁨이 컸다는 것을 밝힌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안도현·박성우 시인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01 21:03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첫눈과 함께 도착한 당선의 소식

우체국 가는 길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가방을 멘 아이들이 눈이다 소리치며 신나게 뛰어가는데 커지는 눈발에 에코백 안에 든 봉투가 젖을까 가슴에 안았습니다. 접수를 마치고 나오니 눈발은 더 커져 검정 외투에 하얗게 쌓였습니다. 첫눈과 함께 보냈으니 내 글들이 첫눈처럼 환영 받길 바라며 소진된 에너지 탓에 집에 오자 곧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폭설이었네요. 카페에서 당선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 편의 시를 사십 번 오십 번 고쳤을 때 마음에 들었다는 메리 올리버의 ‘시 쓰기 안내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벅차고 기뻤습니다. 카페 바깥 통로에 서서 너무 기쁘다고 기쁘다고 수없이 말했습니다. 시가 될까 두근두근 거리는 저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셨던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나중도 언제까지나 감사드립니다. 신랄하게 또는 날카롭고 신중하게 합평을 나누던 문우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많이 보고 싶고 감사합니다. 혼자는 올 수 없었던 시의 길이었습니다. 열심히 쓰고 고치며 시를 쓰겠습니다. 항상 응원해준 가족에게 큰 기쁨을 나눕니다. 부족한 저의 시를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 안도현 시인님 박성우 시인님께 고개 숙여 무한 감사드립니다. 전북일보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 최은영 씨는 부산 출생으로 경성대학교를 졸업했으며, 2021년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금상과 2023년 고산문학대전 신인상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1.01 21:03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삶의 발견, 내면의 서술

202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작년보다 조금 늘어난 146편이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8편이었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의 경향을 간략히 짚어보자면 간병, 글쓰기에 대한 고민, 이웃과의 갈등 등 거대 서사를 지양하고 작고 개인사에 집중된 소재가 주를 이루었다. 지난해 우리는 절망과 희망이 혼재된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을 겪은 터, 사회적으로 극복해야 할 거대서사가 존재할 때 소설은 작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알레고리를 지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최종 논의된 작품은 「구름 솜사탕」, 「비바 라 비다」, 「둥지부동산」, 「대리석 화분」, 「캠핑」이었다. 각 작품은 치매 노인, 이웃과의 갈등, 이국을 배경으로 상처를 안고 삶을 이어가는 경계인을 다루고 있으며 안정된 문장과 작자의 개성이 돋보였다. 작자들의 좋은 필력과 입담이 인상적이었으나 대부분 완성된 결말을 통해 주제의식의 발현에 이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선택받지 못한 작품에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202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은 「캠핑」이다. 당선작을 가리는 데에 이견 없이 비교적 쉽게 결정되었다. 「캠핑」은 본심에 올라온 18편의 작품 중 작자의 세련된 글솜씨가 가장 돋보였으며 다른 작품을 읽어나갈수록 그 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한 부부의 일상, 익숙해진 현재와 과거 기억과의 충돌로 빚어진 삶의 발견에 대한 내면의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캠핑이란 소재와 제목은 적절해 보였다. 개성 넘치며 안정된 문장, 인물의 심리를 상징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이루어낸 인물의 성격 형상화는 작가가 이미 숙련된 글쓰기의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세련된 플롯, 결말을 통해 발현되는 주제의식은 삶에 대한 깊은 여운과 질문을 남겼다. 작가의 글솜씨가 신인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감탄을 주었다. 작가가 오랜 시간 창작에 매진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축하를 보내며 열심히 써서 좋은 작가로 남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신경숙 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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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2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설레는 모험의 시작

저는 소설 쓰기를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저의 무기는 칼 대신 한갓 텍스트고, 적수는 용이 아니라 생의 무의미와 불가해함이겠고요. 그 여정에는 곳곳에 의심과 무기력, 게으름, 무엇보다도 두려움이 매복해 있습니다. 한 발 한 발 두려움을 이기고 여기까지 오는데 혼자 힘으로는 어림없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난 몇 분의 스승님들, 특히 소설에 대한 진지함과 애정을 배운 하성란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첫 소설부터 곁에서 함께해준 유재연 작가님과 합평 멤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첫 독자가 되어준 딸과 묵묵히 지지해준 남편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저의 등단을 기뻐해주셨을 돌아가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이로써 “글은 계속 썼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남기신 아버지께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발짝 뗄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신 전북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든든한 뒷배를 얻은 기분입니다. 죽음의 순간을 상상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 다음,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온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상상해봅니다. 오래오래 작가로 살고, 그간의 삶을 돌아보는 제 모습을요. 미래의 제가 지금의 저에게 말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더 큰 상을 받거나 독자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처음 등단 소식을 알게 된 지금 순간만큼 기쁘고 설레지는 않을 거라고요. 그러니 지금 할 일은 그저 겸허히, 순진무구하게 기뻐하는 일이라고 말하네요. 실컷 기뻐하고 나서,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행장을 추스르고 텍스트의 모험에 뛰어들려 합니다. 이 모험이 오래도록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양준희씨는 1968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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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1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캠핑-양준희

몇 번을 거절한 끝에 나는 남편과 캠핑을 같이 가기로 했다. 그의 갑작스런 캠핑에 대한 열정, 자연인에 대한 열광에 감응해서는 아니었다. 당신은 그냥 가만히 맥주나 마시고 놀다가 밥 해주면 먹고 경치 감상만 하면 돼, 일은 내가 다 할게, 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도 아니었다. 한 번쯤 양보해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남편은 내가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하루를 지내는 것, 바비큐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보이스카웃 놀이를 하는 것이 싫을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기적으로 내게 캠핑을 가자 할 리 없지. 당신도 가보면 좋아할 거라니까. 나보다 자기가 더 나를 잘 알 거라 단정하는 성격도 참 바뀌지 않는다. 어쨌든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며칠 전 교재용 자료를 검토하다가 한 장의 흑백사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가 찍힌 그 사진을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자말리 오닐. 자말리? 불쑥 손짓한 12년 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남이섬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이번에 가기로 한 캠핑장이 들어서기 전이었지만 확실히 같은 장소였다.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이제 와서 어렵게 잡은 일정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그때가 몇 살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일이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방 안에 들어오는 햇살을 어머니의 손거울로 비춰 동생의 눈에 되쏘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손거울을 벽에 걸린 큰 거울에 비추었다. 내가 든 손거울에,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비쳤고, 그 거울 속의 나는 손거울을 들고 있으므로 그 손거울에는 내 모습이 되비쳤다. 그런 식으로 무한히 반복되어, 거울 안에서 수십, 수백 명의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광학적 원리를 동원할 것도 없는 그 단순한 현상은 어린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거울 속에서 마법의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 시절 유행하던 TV 만화영화의 영향일 터였지만, 나는 여러 개의 내가 있는 세계가 어딘가에 있다고 남몰래 믿었다. 그 스펙터클을 엄마에게 보여주었을 때 심드렁한 반응 때문에 더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의 믿음—혹은 바람—은 나중에 거울이 단순히 투명한 유리 뒷면에 수은이나 은을 칠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혼자 심심할 때면 거울 놀이를 하면서 거울 속의 나, ‘나들’이 조금씩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의 상상은 이렇다. 여기 거울 밖에 선 나는 거울에 비칠 때 조금 달라진다. 세상의 어떤 거울도 100퍼센트 그 사람을 똑같이 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금 달라진 내가 두 번째로 거울에 비칠 때는 다시 또 조금 달라진다. 그리고 그 내가 다시 세 번째로 거울에 비칠 때는 또 조금. 이런 식으로 무한히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 저 거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나와 닮았지만 내가 아닌, 나라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된다고. 언제부터 거울 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것은 처음에 왔을 때처럼 그저 사라졌고, 한때 그토록 열중했던 놀이가 어느새 잊히듯이 나도 모르게 잊혔다. 어른이 된 후 몇 번인가 그 이야기를 꺼내놓았고— 대개는 마음이 말랑해진 술자리에서— 처음 맞장구를 쳐준 사람이 자말리였다. 결혼 전 다니던 직장의 동료 재이의 소개로 만난 자말리는 자메이카 출신의 유엔 직원으로 서울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다. 재이의 미국인 남자친구까지 넷이 함께했던 자리에서였다. 어, 너도? 어린 시절의 사소한 비밀과 경탄을 나누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급속하게 가까워지게 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자말리가 아니다. 나를 결혼에 이르게 한 것은 비밀스러운 마법이 아니라 현실적 고려였다. 이른바 결혼 적령기가 넘친 나이와 비슷한 사회적 경제적 위치, 그리고 둘 다 젊은 날 품기 마련인 낭만적 사랑에 대한 기대를 이미 접고 있었다는 사실 같은 것들. 지금의 나는 퇴직 후 본격적으로 사들인 어마어마한 캠핑 장비를 챙기며 들떠있는 남편을 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고 있다. 생각보다 안 막히네. 내가 뭐래, 일요일이 더 안 막힌다니까. 자기 주장이 맞았음을 증명하게 되어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말이 많아진다. 그러니까 말야. 인간의 몸은 몇 조 개의 세포로 되어 있고 오늘 살아 있는 세포는 내일은 전혀 같은 게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 그래서 7년마다 신체의 모든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 즉 7년 주기로 다른 몸이 된다는 것. 흥미로운 이야기다. 문제는, 내가 이 얘기를 아흔아홉 번은 들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책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들은 것을 빼더라도. 전공은 남북관계사이지만 원래 과학— 나는 잡학이라고 생각하지만—에 관심이 많은 데다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 부쩍 말이 많아진 남편은 한 말을 하고 또 하고, 매번 할 때마다 새롭게 신이 나서 떠들었다. 기억력도 조금씩 감퇴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신체의 장기나 부위마다 교체 속도가 달라서, 예를 들어, 피부나 장 세포는 수개월마다 새로워지며 간 조직은 3년이 걸린다는 얘기로 이어질 것이다. 아니면 뇌세포는, 불행히도, 거의 교체되지 않는다는 대목으로 건너뛸지도 모른다. 남편이 직장을 다닐 때는 상관없었지만 지난 연말 이른 퇴직을 한 이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몇 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는 나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졌기 때문이다. 각자의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큰 숙제가 되었다. 나는 남편의 도돌이표 대화를 견뎌내기 위해 건성으로 듣기 기술을 발전시켰다. 적당한 간격으로 그러게, 어머, 응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점심 메뉴 같은 걸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혼자서도 잘 떠들었다. 그래도, 운전할 때는 좀 운전에 집중하지. 나는 가방 속에 든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에 생각이 미쳤지만 꺼내지는 않았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남편과 싸우고 홧김에 가방을 샀느니 할 때는 내심 유치하다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책략은 꽤 효과가 있었다. 사소한 갈등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작은 승리를 만끽하게 해주고 대신 값비싼 물건을 하나씩 사서 몸에 지니거나, 그가 야근하는 날 한우 살치살 같은 걸 혼자 구워 고급 와인과 함께 먹었다. 딱히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그가 살치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감정의 수지를 맞춰가는 산술게임을 통해 나는 겉으로 평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싸움을 중단하거나 우회하는 것은 지혜나 관용이라 부르기는 열적었고, 그저 감정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한 합리적 생존 전략이라고 믿었다. 휴게소 잠깐 들를게. 또? 나는 그냥 갔으면 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이 탓인지 밤에도 한두 차례 깨어 화장실에 갔고, 잠이 얕아진 나도 덩달아 깼다. 하지만, 남자들이 신체 일부의 기능에 과도하게 자존심을 연결시키곤 한다는 생각에 모르는 체했다. 그가 연구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그랬다. 머릿속에 이른 퇴직의 댓가, 포기해야 할 지위와 안락함 같은 것들이 맴돌았으나, ‘그동안 구라는 칠 만큼 쳤어,’라고 말하며 지었던 자조적 표정을 보자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아이가 없는 우리는 이미 안정된 경제력을 갖추었고 서로의 자존심은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캠핑 사이트에 딸린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남편이 텐트를 펼치고 폴대를 하나하나 끼우는 모습을 다소 삐딱하게 지켜보았다. 대단한 캠핑 애호가처럼 굴지만 태생이 백면서생인 남편은 몸을 쓰는 일에 약하다. 캠핑에 대한 전문성은 주로 좋은 장비를 비교하고 사들이는 데에 발휘되었고, 막상 캠핑장에서는 반(反)캠핑주의자인 나보다 크게 나아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는 하도 원해서 한번 와주었다는 시혜자의 포지션을 고수했으며 적극적으로 나서 도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사서 고생을 하고 싶어 온 것 아닌가. 나는 다 마신 맥주캔을 구겨놓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일어섰다. 휴가철이 지나 캠핑장은 한적했고, 텐트를 걷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초가을 오후의 햇살이 떨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틀어놓은 음악이 들려왔다.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귀에 익은 멜로디는 어슴푸레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재이는 내가 일하던 압구정동의 한 토플 전문 어학원 강사였다. 같은 팀에 배정되어 나는 리딩 파트를, 재이는 리스닝 파트를 가르쳤는데 우리는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 나이대가 비슷한 여자이며 국내파라는 공통점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유학을 전제로 하는 토플 학원에서는 해외파를 선호하는 풍조가 강해, 말 그대로 국내에서만 영어를 공부한 국내파는 어학 실력과 교수 스킬이나 경험 등이 우세해도 밀리는 분위기였다. 특히, 방학 때면 학비를 벌기 위해 미 명문대 재학생들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귀국하곤 했는데 그들은 프린스턴이나 컬럼비아 출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수강생과 학부형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엄밀히 말하면 재이는 순수 국내파는 아니었다. 혼자 힘으로 워싱턴 DC 소재의 대학에 다니는 중으로, 당시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재이의 부드러운 강인함에 끌렸고, 나보다 두세 살 어린데도 언니처럼 의지했다. 나중에 그녀가 교육 사업에 꿈을 품고 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존경하는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온화하고 성실한 재이를 누구나 좋아했다. 재이 옆에 있으면 나는 좀 부족한 사람, 심지어 경박하고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 감정을 쉽게 뛰어넘을 정도로 나는 재이가 좋았다. 우리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곧잘 어울려 술을 마셨고, 때때로 늦어지면 학원 근처 재이의 오피스텔에서 밤을 새우고 바로 출근하기도 했다. 재이에게는 에릭이라는 미국인 남자 친구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냐는 내 말에 재이는 그가 기버(giver)라고 대답했다. 나는 말의 내용보다는 그 말을 할 때 재이의 얼굴에 번지던 따뜻한 웃음 때문에 그가 좋은 사람일 거라고 확신했다. 재이는 에릭의 어릴적 친구가 일 때문에 서울에 오게 되었다며 같이 만나자고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재이 일행이 보였다. 외국인이나 독특한 차림의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홍대 앞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두 남자 중 안경을 쓴 지적인 타입이 에릭, 건장한 쪽이 그의 친구인 자말리였다. 에릭은 프로그래머로 글로벌기업의 한국지사에서 일했고 자말리는 유엔 직원으로 한국에서 3개월 정도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말리의 첫인상은 압도적이었다. 19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에 두툼한 흉곽, 살짝 붉은 기운이 도는 갈색 피부의 그는 스파르타의 전사처럼 보였다. 자말리가 걷는 주위로는 작게 물결이 갈라지듯 미묘한 공간이 생기고 그곳이 조용한 찬탄, 약간의 호기심과 어쩌면 두려움—내가 그에게 느낀 감흥의 다양한 변주—의 눈길로 채워졌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청하기까지 했다. 자말리는 선선히 그러라 했는데, 불쾌할 수 있는 제안을 언짢아하지 않으면서, 도를 넘지 않는 친절로 받아주는 그의 태도에 나는 얼마간 매료되었다. 위압적인 외모와 달리 자말리는 조용하고 수줍은 데가 있어, 거기서 오는 부조화가 그에게 모종의 사랑스러움을 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 넷은 종종 함께 어울렸고, 어느 때부턴가 자말리와 내가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자말리는 시간이 날 때면 카메라를 매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헤매기를 즐겼다. 나도 여러 차례 동행하여 삼십여 년 동안 모르고 살았던 도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때로는 열정적인 아마추어 작가의 피사체가 되어주었다. 종일 걸어서 피곤해지면 그가 묵고 있던 레지던스에 가기도 했다. 서울에 파견 나온 유엔 직원을 위한 임시 숙소로 쓰이던 그곳은 직원 세 명이 함께 사용했지만, 출장과 지역 행사 등으로 자말리가 혼자 쓸 때도 많았다. 숙소는 구도심 한가운데 있었지만, 거리의 소음은 그가 묵는 15층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마스터베드룸의 창으로는 제법 큰 나무들이 우거진 오래된 학교 교정이 내려다보였다. 자말리는 숙소에 딸린 널따란 주방에서 이국적인 요리들을 만들곤 했다. 그런 날 중의 하루였다. 자말리가 주방에서 치킨타진을 끓이는 동안, 나는 거실에서 자말리가 찍은 사진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흑백의 화면에 잡힌,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 세월이 내려앉은 기와집, 이가 맞지 않고 변색한 보도블록, 촘촘하게 자리한 노포의 간판들. 공기 중에는 매캐하고 향긋한 냄새가 떠돌았다. 이윽고 자말리가 나를 부르더니, 타진 남비—모로코 출신 직원이 두고 갔다고 했다—를 식탁에 내려놓고 과장된 동작으로 뚜껑을 열었다. 많이 드세요. 자말리가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자말리는 어설픈 표현으로 나를 즐겁게 하곤 했다. 맛있게가 아니라 많이 먹으라니, 한국식 인사법은 이상하다고 내가 말하자, 자말리는 너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엄마처럼 말했다. 항상 식사를 조절하는 내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완벽한 육체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현대인의 만트라가 되어버린 듯한 다이어트의 차원을 넘어, 야생동물처럼 강인하고 효율적인 신체라는 이상은 상당히 오랜 기간 나를 지배하였다. 당시 인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 주인공이 한 ‘육체야말로 인간의 신전’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 나는 다양한 식단 조절과 수련—온갖 종목의 스포츠와 댄스—에 변덕스럽게 몰두했으나, 모든 이상이 그러하듯이 영원히 가 닿을 수 없어 현실에서 예정된 좌절이 폭음이나 폭식으로 보상되기 일쑤였다. 수면 아래서 이루어지는 이런 싸움과 실패를 어찌어찌 감출 수 있던 나는 주변인들에게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자말리는 달랐다. 자말리는 몸이 관리의 대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몸은 맞서 싸울 상대가 아니야. 내 편이지. 그렇지만, 너무 제멋대로 굴게 두면 사고를 치잖아. 자말리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닭고기 한 덩이를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그는 몸은 자기 편이며 무엇보다 즐거움의 원천이라고 했다. 연중 온화한 카리브해의 태양 아래 자라난 사람의 몸에 대한 감각은 다를 거라고 나는 멋대로 짐작하였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자말리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자메이카에 있는 형이 육상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것,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왔다는 것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돕는 게 좋아서 지금의 일을 선택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사진을 찍는 거라고도 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직업 사진작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할 때 자말리가 눈을 빛내는 것이 나는 부러웠다. 너는, 너는 뭘 하고 싶어? 나?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품었던 어린 시절부터의 꿈들이 차르르 지나갔다. 꿈의 광휘와 스케일은 차츰 줄었지만, 대학원을 다닐 때까지도 공부를 더 하고 싶다거나,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지금이 좋아. 만족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한 것이 걸려서 나는 덧붙였다. 너의 꿈은 멋지다. 네가 부러워. 이건 진심이었다. 자말리는 한참 나를 보더니 어색한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 부럽지 않아. 너는 젊고 스마트해. 아무것 할 수 있어.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말리는 어리둥절했다가 따라 웃었다. 나는 결국 눈물이 날 때까지 웃고 말았는데 그 눈물 중 일부는 진짜였다. 생경한 단어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생경함 때문에 더더욱,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게 외국어는 생계 수단이기에 앞서 낯선 세계로 향한 창이었고, 나와 다른 모국어를 가진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두 언어 간의 유격을 유영하며 거기 환상을 채워 넣는 일이기도 했다. 모국어에서 이음매 없이 달라붙어 있던 존재와 언어가 헐거워지고서야 온전한 의미를 드러내는 말들이 있었다. 더께처럼 얹힌 상투성을 벗은 그 말들은 제 색깔로 찬연히 빛났다. 나는 언제부터 꿈을 꾸지 않게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엉뚱하게도 다른 것을 물었다. 거울 놀이를 안 하게 된 건 언제부터야? 글쎄. 언제부턴가 거울 속 얼굴 중 하나가 문득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좀 무서운데. 그렇지. 거울을 마주 보게 세워놓았을 때 생기는 무한 공간을 부르는 말이 있다는 것도 그때 들었다. 프레임 안의 프레임이 반복되는 미장아빔(mise en abîme). 심연에 놓인다는 뜻. 나는 비로소 어릴 적 거울 놀이에서 느꼈던 매혹을 이해했다. 그것은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본 자의 현기증이었다. 어느덧 자말리가 서울을 떠날 때가 다가왔다. 우리는 재이 커플과 함께 송별회를 겸한 주말 여행을 가기로 하고 토요일 낮에 남이섬으로 향했다. 남이섬은 당시 이미 인기 있는 근교 여행지로 여기저기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예약한 숙소는 복층구조의 독립채로 아래층에 침실, 주방과 널찍한 거실이, 윗층에는 욕실이 딸린 작은 방이 있었다. 펜션 주인은 두 사람의 흑인 남자와 두 사람의 한국인 여자 일행을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나는 이미 그런 눈길을 여유롭게 맞받을 수 있었다. 주변을 산책한 우리는 맥주와 안줏거리를 잔뜩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자말리가 랩탑을 꺼내 아이튠의 플레이리스트를 열었다. 레게를 클럽 풍으로 연주하는 하우스 레게와 또 다른 라틴 음악들이 주르르 떴다. 살사 댄스를 배웠던 나는 재이에게 기본 스텝을 가르쳐주었고, 에릭과 자말리는 그런 걸 배워야 하는가 하는 반응이었다. 재이가 에릭을 상대로 서툰 스텝을 연습하는 동안, 자말리와 살사를 추면서 나는 그들을 바로 이해했다. 그의 춤은 걸음을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리듬이 몸에 내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교본에 그려진 스텝을 외워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며 밟는 그런 춤과는 달랐다. 춤을 추다 지치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다시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고,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취기와 피로감으로 몽롱한 상태로 보니 어느새 재이와 에릭은 소파에 앉아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자말리와 나는 마주 보고 웃으며 조용히 춤을 추었다. 자말리가 몸을 붙여오자 열대 과일의 농밀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의 손이 나의 티셔츠와 반바지 사이에 살짝 드러난 맨살을 부드럽게 스쳤다. 재이와 에릭의 모습이 아득해지고 음악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말리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몸은 여전히 리듬을 타는 채로 귓가에 속삭였다. Wanna go upstairs (이층으로 갈래)? 이제 남편은 새로 산 매트를 자랑하는 중이다. 빨리 들어가서 한번 누워보라고 성화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 충전되어 바로 호텔 침구의 쾌적함을 선사한다고 홈쇼핑에서 떠들던 그 에어매트일 것이다. 굳이 야외로 나와 텐트를 친 다음 쾌적함을 찾는 아이러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운동하다 허리를 한번 삐긋한 이후로 잠자리에 까다로워진 나는 최고급 독일제라는 그 물건이 영 미덥지 않았다. 응, 이따가 잘 때. 그때 들어가지 뭐. 한번 들어가 보라니까. 뭘 자꾸 들어가 보래. 힘들게. 왜, 어디 아퍼? 아까 밥도 거의 안 먹고. 걱정 속에 숨겨진 작은 비난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내가 함께 즐겨주기를, 자기와 함께 있는 시간을,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진심으로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혔다. 캠핑을 따라오는 것과 좋아하는 것—잡다한 장비를 챙기고 텐트를 치고 걷는 부산함, 찬 기운이 도는 거친 잠자리, 공동으로 사용하는 낯선 샤워실을 무릅쓸 만큼—은 다른 문제다. 남편이 특히 이해 못 하는 건 내가 숯불 바비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고기가 왜 싫어? 몇 번이고 물었다. 나는 결국 그냥 외워, 라고 말했다. 이렇게 농담 속에 든 뼈로 찌르고 찔린 자잘한 상처 역시 결혼 생활의 일부였다. 그리고, 농담이나 성급한 화해, 지속적인 타협으로 덮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이야기되지 않는 문제들. 조심스럽게 닫혀 있는 영역. 자말리의 기억이 밀어넣어져 있던 곳이기도 했다. 흑백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미궁같은 골목의 이미지들 위로 퍼지던 타진 냄새와 함께. 나는 결혼 후에도 한동안 날아온 자말리의 이메일에 대해서도, 며칠 전 보게 된 그의 사진에 대해서도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말리가 내게 프로포즈를 했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모두 이제는 닫힌 문 저편의 일이었다.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다음날 배를 타고 어딘가로 들어갔다가 다시 배를 타고 나왔다. 그때의 기억은 가벼운 숙취가 비지엠처럼 깔리는 가운데 색채의 물결로 넘실거리던 사람들과 공기 중에 떠돌던 모호한 관능의 분위기가 뒤섞이고, 그 위에 무해한 농담과 웃음이 흩뿌려진 추상화 같은 것으로 남아있다. 나에게 자말리와 보낸 시간은 불순물—일테면 미래에 대한 약속 같은—이 섞이지 않은 완결된 경험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합당하게 느껴졌다. 완벽한 상태로 고정되어,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사진첩 갈피 속 사진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말리와 나의 끌림은 다른 대륙을 탐험하는 호기심 같은 것이어서, 지속되는 사랑과는 다르다고 여겼다. (호기심이야말로 사랑을 지속시키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 정확하게는 결혼 후였다.) 그래서 그가 함께하는 미래를 암시하는 제안을 했을 때, 그리고 나의 거절에 상처 입은 표정을 했을 때는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이어진 이별은 예의 바르고 따뜻하게 표현된 아쉬움과 함께였고, 그는 드문드문 내게 안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의 이메일은 흔히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직 서울에 있어요? 세계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당연하기라도 한 듯이. 유엔에서 주어지는 임무에 따라 세계를 여행하는 자신의 삶이 기준이 된 거겠지만 내게는 넌 아직 그렇게 살고있냐는 채근으로 읽히기도 했다. 왜 너를 서울에, 강남의 한 학원에 묶어두고 있냐는. 때로 그는 휴가를 받았다며 나를 마드리드나 방콕 같은 도시로 부르기도 했다. 처음 그런 이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항공편에 몸을 싣고 떠나는 나를 상상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어쩌면. 강의를 며칠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다면. 그 후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갑자기 휴가를 일주일쯤 쓸 수 있다면. 남자 친구가 없었다면. 자말리를 만난 다음 해에는 이미 나에게 남자 친구가 있었다. 몇 개월마다 다른 도시로 옮겨가지도,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나중에는 내 남편이 되어, 상대적으로 평범한 내 삶의 축을 이루게 되는.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서른다섯이었고, 현실은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벌이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 같았다. 체력의 한계를 느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어학원 강사는 일종의 승자독식 구조로, 유학파 출신의 젊은 강사들이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치열한 판이었다. 나는 강의를 줄이면서 학습 콘텐츠 개발로 방향을 틀어 장기적인 활로를 찾으려 했다. 그때 남편은 대학에 자리 얻기를 포기하고 연구소에 들어간 참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걸맞는 제 몫의 열패감과 은밀한 자부심, 안정에 대한 갈망을 갖고 만났고, 이러한 균형은 꽤 괜찮은 결혼 생활의 열쇠로 보였다. 그에 더해, 각자 몇 번의 실패한 연애에서 얻은 교훈이 있었다. 둘 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사랑보다 우정에 가깝다는, 그것이야말로 결혼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의 든든한 토대가 되어주리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나는 흔히 낭만적 사랑의 징표로 알고 있는, 눈이 멀도록 부신 빛을 뿜어내는 설렘과 열에 들뜬 도취 상태가 지속될 수는 없으며,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는 신념에 도달해 있었다. 실패한, 정확히는 방해받은, 사랑만이 영원하다는. 어차피 다른 무엇으로 변질될 감정이라면 처음부터 그것으로 출발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우정이든, 동지애든, 책임감이든, 낭만적 사랑에 비해 폄하될 이유가 전혀 없는 대체물로. 해가 가면서 자말리의 존재는 현실감을 잃어갔고, 그가 차츰 뜸하게 보내오는 이메일은 마치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상, 혹은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다른 시간에서 온 전령 같았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것, 누릴 수도 있었던 무엇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켰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는 대신 지상으로 안착시키는 중력을 선택했다. 나는 더 이상 지난번 메일을 받을 때는 마드리드에, 이번에는 방콕에 있는 그런 삶을 상상하지 않았고, 자말리는 나에게 하나의 기호로 남았다. 내 삶의 어느 순간 불현듯 소환되어 새로운 의미로 해석될 과거의 여러 기호들과 함께.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캠프파이어와 둘 사이에 내려앉은 낯익은 권태와 이상한 평안과 주저, 그토록 다채로운 침묵의 베일을 먼저 찢은 것은 남편이었다. 부스럭부스럭 그가 품에서 뭔가를 꺼낸다. 실은, 하면서 어렵게 나에게 들이민 것을 받아들면서 나는 어리둥절하다. 이혼 서류라도 되나. 하지만 들여다본 그 종이쪽은 이혼 서류가 아니다. 하물며 낭만적인 손 편지는 더더욱 아니다. 미학적 배려 따위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듯 건조한 활자로 내용을 전하고 있는 그 서류는 진단서다. 전립선암이래. 2기. 평온을 가장한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서서히 활자의 내용을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 한다. 누군가가 전립선암은 순한 암이고, 2기는 생존율이 80퍼센트라고, 아니 99퍼센트라고 떠들어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평온을 가장할 뿐인, 정말 평온하지는 않은 남편은 말을 잊었다. 그때 조명이 훅 어두워진다. 우리는 흠칫하지만 곧 랜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신 켜두었던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꺼졌음을 깨닫는다.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것이지만 그건 지금 아주 작은 문제로 보인다. 캠프파이어 불꽃만이 주변을 밝히는 어슴푸레함 속에서 그가 이건 조직검사 결과라며 다음 주에 CT와 MRI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뼈에 전이되었는지를 검사한다는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는 울먹이는 것 같다. 나도 어둠 속에서 조금 운다. 새벽이 오고 있었고 차가 막히기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남편이 혹시나 자동차의 시동을 걸어보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다시 거칠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만 여전히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랜턴 하나 제대로 못 챙기면서 캠핑 전문가는 무슨. 서비스를 불러야 하나, 중얼거리더니 남편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는지 자동차의 보닛을 열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보면 뭐 알아? 그냥 서비스 불러. 남편이 비켜봐, 하면서 내 팔을 툭 치는데 뭔가가 엔진룸으로 달칵 떨어진다. 진짜, 그냥 서비스 부르면 될 걸 가지고. 저걸 어떻게 꺼낼 거야?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캠핑 전문가는 서비스를 부르기로 하고 내 전화를 찾는다. 전화만 하면 15분이면 와. 그렇다, 전화를 할 수 있다면. 바꿀 때가 지난 내 전화기가 야외의 찬 공기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꺼져버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는 더 이상 휴대전화를 진즉 바꾸지 뭐했냐, 충전 케이블은 왜 안 챙겨 왔냐 등의 말로 싸우는 대신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다. 새벽이 어느새 조금씩 다가와 푸른 어둠이 어스름해지기 시작한다. 캠핑 관리사무소까지 걸어가서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4시간 대기 중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혼자 있기 무서워 나는 남편을 따라나선다. 우리는 화난 사람들처럼 입을 꾹 다문 채 조금 떨어져서 걷는다. 뭐 한다고 이렇게 깊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 가지고. 텅 비어 괴괴한 캠핑 사이트를 지나, 새벽 달빛이 미끄러지는 강가를 지나, 저만큼 관리사무소 불빛이 보인다. 힘을 내 걸어갔지만 아무도 없다. 비상시 000-0000-0000로 연락하라는 안내문만 보인다. 텐트로 돌아가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돌아가는 길은 멀다. 쉬었다 가. 힘들어.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강가에 놓인 벤치에 털썩 주저앉는다. 남편은 나를 흘끗 보고 멈춰서더니 강가를 서성거리다 잘그락잘그락 돌을 고르기 시작한다. 하나를 주워 강을 향해 수면을 비껴가게 던진다. 뭐해. 내 목소리에 짜증이 실린다. 지금 물수제비뜨기 할 때야. 하지만 남편은 들은 척 만 척 연이어 돌을 던진다. 새벽의 흐린 달빛 비추는 강의 수면 위로 미끄러지도록. 어이없어하면서 나는 그를 바라본다. 하나, 둘, 셋. 돌멩이는 담방담방 튀더니 세 번 만에 물속으로 맥없이 들어간다. 이번에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는 점점 신을 낸다. 주의 깊게 돌을 찾고—납작하고 평평하며 적당한 무게감이 있는 것으로—다시 물가에 서서 강을 향해 팔매질한다. 이게 힘으로 하는 게 아니야, 손목 스냅을 이용하는 거라고. 물수제비를 뜰 때마다 하는 그 말도 잊은 채 집중한다. 나도 어느새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본다. 우리는 이제 뭐 하던 중인지 잊었고,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군다. 오로지 손을 떠난 돌멩이가 그리는 파문에 집중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스팟 스팟 습 습 습... 남편은 봤어, 하는 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보았다. 날렵한 돌이 수면을 미끄러지다시피 하며 점점 작아지는 원을 무한대로 그리는 것을. 돌의 무게와 속도, 수면에 대한 입사각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때 일어난다는 드문 순간이다. 평소의 그라면 물론, 무한대라는 건 운동에너지가 다할 때까지를 말하는 거라고, 현실 세계에서는 마찰력이나 다른 장애물 때문에 결국 돌이 멈추게 된다고 토를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말없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살짝 가쁜 숨을 쉬고 있다. 순수한 놀이의 기쁨이, 연한 어둠 속에 부드럽게 뭉개놓은 목탄화 윤곽처럼 보이는 얼굴을 물들였다. 나는 관자놀이께가 희어지기 시작한, 제 안에 자라고 있는 이물과의 싸움을 앞둔 남편의 옆얼굴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미숙한 청년을 본다. 그리고, 그 전의 풋풋한 대학생을, 여리고 영민했을 소년을. 무한대로 이어지는 거울 상 앞에 선 그를. 그리고 나를. 나는 과거로부터 밀려온 파문 끝에 선 한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 거울 앞에 섰을 때와 같은 현기증을 느낀다. 너무 늦게 도달한 하나의 문장이 내 안에서 머뭇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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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1 21:0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 김소영 '어떤 어른'

얼마 전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수많은 장학생을 후원했고 학교를 설립하여 국가에 헌납했으며 인권, 문화, 역사를 위해 평생을 낮은 자세로 섬기면서도 대가를 바라거나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철학으로 묵묵히 촛불을 밝혀 온 그분을 보며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 만난 책이 ‘2025 전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김소영의 <어떤 어른>이다. 오랜 기간 독서 교실을 운영해 온 김소영 작가는 수많은 어린이를 만나는 동안 ‘좋은 어른’이 되고자 애써왔다. ‘존경받을 수 있는 어른, 닮고 싶은 어른, 때론 기대고 싶은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노력했다. 작가는 어린이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 아이들에게 물 한 잔을 줄 때도 가장 좋은 컵과 받침까지 준비한다. 어린이에게 비속어를 쓰지 않고 존대를 하며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한다. 그런 소소한 배려와 넉넉함이 어른의 품격을 만든다고 강조하며 때론 ‘냉정한 비판 속에서도 품격과 유머를 잃지 않는 어른’이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흔히 ‘좋은 어른’이 되려면 큰 업적을 세우거나 세상을 바꾸는 특별한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화려하거나 위대한 인물이 아닌, 일상 속에서 묵묵히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주목한다. 돌아보니 내 곁의 수많은 어른들은 성실하게 일상을 대하며 소중함을 일깨운 분들이었다. 봄이 오면 쑥버무리나 쑥개떡을 해서 싱그러운 봄을 먹이시던 어머니, 축의금 봉투에 정성스럽게 축하 편지를 써넣던 이웃 언니,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던 아저씨, 태풍 부는 날 우산을 함께 쓰며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준 아주머니까지. 지금도 그들은 내 마음속 어른으로 살고 있다. 최명희 소설 <혼불>에서 “우리 사람의 정신 속에는 반드시 정신의 눈이라 할 혈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곳에 제대로 있고, 그 혈을 보는 눈이 밝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른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의 눈’이란 단순한 나이나 경험이 아닌 성찰과 바른 도리, 세상을 품을 수 있는 품격을 뜻할 것이다. 내 주변의 좋은 어른들 또한 묵묵히 자신의 혈을 지키며 세상을 비춰온 그런 존재였다. 나 또한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을 어른의 모습을 갖추고 싶다. 소중한 일상을 성실히 지키며 살아가는 일. 그런 수많은 작은 일상들이 모여 한 사람의 품격이 빚어지고 그것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품격이 될 것이다. 그렇게 소중히 마음의 혈을 지키며 살아가다 보면, 이웃에, 내가 속한 사회와 국가에 한 줌의 소금 역할을 하는,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어떤 어른>은 바쁘고 거친 세상 속에서 느리더라도 바른 길을 걷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책이다. 그런 길 위에서 품격 있고 고요히 빛나는 어른이 되도록 안내할 것이다. 다가오는 ‘전주독서대전(2025.9.5.~9.7)’에서 김소영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국어교사 출신으로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이후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 진행하며, <우리, 이제 다시 피어날 시간> 오디오북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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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25 18:57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소설] 느지막이 새로운 길 앞에 서다

소설을 긁적이기 시작하면서 이런 날이 오기까지 30년이 흘렀다. 몇 번의 최종심 심사평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지 얼마간 도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나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영화에 빠져들었고, 소설은 그저 이미지로만 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영화 속 수많은 삶과 허구들이 소설로 들어서는 경계를 막아섰다. 50대에 접어들자 프레임 속 이미지에 갇혀있던 눈에서 시리게 눈물이 흘렀다. 나를 가두고 있던 프레임의 틀을 벗어나자 생각은 차곡차곡 정리되고, 그 거름을 자양분 삼아서 이야기들은 조금씩 스스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글쓰기란 어쩌면 자문자답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의 동감을 설득하는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작년, 전북일보 최종심에 올랐던 나의 작품에 대해 김병용, 송하춘 선생님은 큰 울림을 던졌다. 꽁꽁 싸매고 살아온 내 삶과 글을 과감히 탈피해서 다양한 타인들의 생각으로 고치고 또 고쳤다. 인생의 변곡점에 들어선 나이에 아직 늦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느지막이 맞이한 새로운 도전 앞에서 그저 설레고 벅차다. △ 장용돈 씨는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중에 동아문학상(소설)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전태일 문학상(소설 부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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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40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소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

202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4편이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현실이 소설의 현재를 넘어서는 시대에 소설 역할은 무엇일 수 있을까. 사회, 경제, 정치적 억압이 심할 때 소설의 경향은 지극히 개인적 서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대의나 대전제를 작품에 적용하거나 가늠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오히려 소설은 그러한 조건에서 문학적 힘이 발휘된다는 전제를 굳게 믿고 큰 기대와 함께 심사에 임했다. 심사위원들은 14편의 소설을 꼼꼼하게 읽고 최종심에 올릴 작품 4편을 선정하여 심의에 들어갔다. 단점이 적은 작품보다는 장점과 미덕이 많은 작품, 신춘문예 특성에 잘 맞는 작품에 중점을 두고 당선작을 가리는 최종 심사에 들어갔다. 「점, 선, 면」은 발상이 기발하고 전개가 독창적이며 개성도 돋보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독백의 서술이 다소 설명적이고 관념이 삶이 되지 못하고 끝맺는 주제의식의 발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미친 인간들의 노래」는 정치, 경제계의 추악한 면면을 현실감 있게 그린 전개, 가독성이 좋았으며 인물의 성격을 통한 주제의식의 형성이 매끄러웠다. 다만 주요 서사가 익숙하고 단조로운 고발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새로움이 덜했다. 「기원제」는 현실을 사는 직장인의 욕망과 애환, 삶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전개가 자연스러우며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생활의 한 치부를 건드려 여운을 길게 남긴 좋은 소설이었다. 다만 소설의 주제가 다소 협소하고 너무 많이 다룬 소재이다 보니 새로움이 덜했다. 좋은 필력을 가지고 있으니 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202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은 「넋두리」이다. 작품은 현재의 농촌을 배경으로 소를 키우고 소를 잃는 농부의 이야기이다. 그런 이유로 낡은 느낌을 주는 것 빼곤 단점이 가장 적고 장점이 넘치는 소설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단점도 소설 안에 들어가면 기우에 불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전혀 낡지 않은 현재를 그리고 있다. 작품은 소설이 가져야 할 여러 미덕을 잘 갖추고 있다. 뚜렷하며 시대적 반영이 이루어진 주제의식, 서사적 긴장감, 안정적인 문장 등 여러 작품 중 단연 돋보인 작품이었다. 지역어의 복원을 통한 유려한 문장은 이 시대의 소설이 필요로 하는 좋은 예이다. 두 심사위원은 지금 꼭 필요한 소설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렇게 진득한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넋두리」를 당선작으로 뽑게 되어 기쁘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건네며 좋은 작가로 남길 바란다./심사위원 이광재·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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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동화]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화쓰기 정진

3살짜리 손녀가 감기에 걸렸어요. 어린이집에 못 가고 답답해 하길래 도서관에 갔지요. 널찍한 유아실이 놀이터인줄 알고 뛰는 손녀를 잡으러 다니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어요. 동화쓰기를 시작하고 20년 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영광의 순간은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믿기지가 않았어요. 공모전에 수없이 떨어지고 좌절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지요. 글쓰기에 재능도 없는데 헛꿈을 꾸는 건 아닐까. 동화에서 도망갈 궁리를 찾는데, 딸이 육아를 부탁했어요. 헛된 꿈보다 손녀 육아가 보람 있는 일인 것 같았어요. 손녀와 개미와 벌, 나비를 쫓아다니느라 동화는 잊어버렸어요. 3월, 손녀가 어린이집에 가자 다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선이 더욱 기쁜 건, 내 고향 신문에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떠나왔지만 잊은 적 없는 사랑하는 고향, 전라북도. 고향신문에 작품이 당선되어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준 전북일보 관계자분들, 부족한 제 동화를 읽어주고 당선작으로 밀어주신 심사위원분들, 감사합니다. 이제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화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거친 초고를 읽어주는 글벗 선생님들, 든든한 버팀목 양중님, 혜진, 대희, 경하, 하영 사랑합니다. △ 김정숙씨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현재 경기도 김포시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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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동화] 기발한 설정과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

요즘 어린이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맞춰 본심에 오른 7편의 작품은 SF, 판타지, 의인화, 생활 동화가 고루 있었다. 7편 모두 어린이의 관심을 담고자 하는 노력이 잘 드러났다. 그중 ‘형광펜’, ‘단비 오는 날에’, ‘재주 내기 한판 할래’가 눈에 띄었다. ‘형광펜’은 어린이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 점이 뛰어났다. 그러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형과의 관계에서 주인공이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수동적인 상태로 결말을 맞이해서 아쉬웠다. ‘단비 오는 날에’와 ‘재주 내기 한판 할래’와 를 두고 오랜 고심을 하였다. ‘단비 오는 날에’는 안정적이고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가독성이 뛰어났다. 이야기는 인공비만 내리는 미래 도시의 우산 가게가 배경이다. 할아버지는 우산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도 우산을 만들면서 자연비를 기다린다. 최근 심각해진 기후위기를 상징적으로 다루면서 희망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인공비가 내리는 미래 도시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아서 우산이 필요 없다는 설정에 설득력이 떨어졌다. 당선작 ‘재주 내기 한판 할래’는 도깨비 더잘난이 휴대전화와 내기를 하겠다는 시작이 기발했다. 옛이야기를 읽는 듯한 자연스러운 문장과 빠른 전개도 장점이었다. 더 잘난은 휴대전화에 빠진 아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어른들에게는 구경거리가 된다. 다시 떠돌던 중 아들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할머니를 만난다. 더잘난이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가서 아들 목소리를 선물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작품은 진정한 재주는 내가 더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다소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앞으로 크게 발전하리라 기대해 본다. 당선을 축하하며 응모해 주신 모든 예비 작가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심사위원 전은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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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수필] 겨울에도 꽃은 핀다-김수현

올해 초, 사람들에게 글을 그만 써야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마음을 가다듬기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글을 쓰는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리해야 할 때를 아는 것도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시기를 한국어교육학과에서 극복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교수님들이 계셨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도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해도 되나, 겁이 날 정도였다. 2학기가 되고, 글쓰기와 관련된 전공과목을 수강했다. 주제를 선정해서 신문 기사를 작성하거나, 글을 다시 쓰고, 고쳐 썼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글을 1년 이상 쓰지 않았을 때였다. 쓰다 보니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어교육학과 전공 연계로 후에외국어대에서 특강을 하고 난 후, 중복 투고 확인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당선 통보를 받았다. 한국어교육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알려주시는 송복승 교수님, 김지현 교수님, 한지현 교수님, 이정아 교수님, 박은경 교수님, 김정 교수님, 나선혜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한국어교육학과 강의실에서 맞은편을 바라본다. 내가 10년 전에 글을 배웠던 문예창작학과가 있다. 글의 토대를 닦을 수 있게 해 주신 김길수 교수님, 곽재구 교수님, 안광진 교수님, 장철문 교수님, 전성태 교수님, 김춘규 교수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덧붙여, 이 자리까지 오는 데에 많은 지지를 보내 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김수현 씨는 전라남도 순천 출신으로 순천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같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수료했다. 그는 현재 순천대 한국어교육학과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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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시] 치열하게 꿈꾸는 시인이 될 것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 한 척, 넘실대는 파도를 가로질러 수평선으로 향합니다. 때론 기우뚱 방향을 잃기도 하지요. 시에 대한 갈증과 물음을 가득 싣고 떠난 배처럼, 시는 가까이 존재하지만 확 잡히지 않는 또 다른 나였습니다. 아우성처럼 쏟아지는 많은 말들을 마음속으로 다시 밀어 넣습니다. 10대 때부터 함께 한 ‘시’이지만, 모든 것이 치열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핑계일 테니까요. 차곡차곡 접어 둔 못다 한 언어들은 앞으로 써야 할 작품 속에 녹여내면 되지 않을까요. 시를 쓰면서 조금 깨달은 게 있습니다. ‘시’는 언제나 그 과정 속에 놓여 있기에, 매 순간 새롭고 치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어렵고 힘들지만 참 설레이고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넘치게 받은 당선 소식에 감사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부족한 제 자신을 다독이면서 더 힘을 내라는 메세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먼저 부족하지만 가능성을 보시고 선택해주신 김사인 시인님, 박남준 시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창살에 갇히지 않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시인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조말선 선생님, 시의 내밀성을 찾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는 제가 많이 안타까우셨죠. 시의 바닥과 그 깊이를 채워주시려고 하신 마음 알기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신 사유와 인식, 그리고 대상의 속성으로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이미지와 묘사를 잃지 않는 시인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함께 한 신정민 선생님, 강영환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시’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많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던 다정한 지평 선생님들, 저보다 더 많이 기뻐해 주시는 모습에 울컥했습니다. 애정어린 잔소리로 응원해 준 사랑하는 남편과 딸 시현, 기뻐해 주시는 아버님, 버팀목과 안식처인 김경남 나의 엄마, 현승, 현준 사랑하는 가족을 비롯해, 진심으로 기뻐해 주시는 소중한 지인분들과 나의 사랑하는 벗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딸이 글쓰는 걸 늘 응원해주셨던 그리운 아버지, 아직 늦지 않았지요, 치열하게 꿈꾸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 이주경 씨는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부산광역시와 김해장유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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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 고요한 영혼의 시위를 당겨라

‘신춘 병’이라는 오직 문청이라 분류 지칭되는 종족에게만 대책 없이 전염되고 일사불란하게 치유를 거부하는 지독한 병이 세대를 초월해서 아직도 유효한가 보다. 일천여 편이 넘는 투고 시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왔다. 모두 열두 분의 44편이었다. “필락경풍우 시성읍귀신(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 붓을 들어 떨치면 비바람이 놀라고 시를 지어 이루면 귀신도 울고 가는 이라며 두보가 이백을 일러 존경을 표한 헌사가 있다. 모름지기 시를 짓는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문장을 꿈꾸어야 하지 않는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젊은 날 시마에 빠져 시의 날을 벼리기도, 그렇지 못한 남루한 시적 재능을 자학하던 시절이 있었다. 발칙 풍부하고 패기 넘치는 상상력, 갓 건져 올린 물고기의 비늘에 파닥거리는 윤슬, 우주를 들이마신 숨을 멈추며 이윽고 고요한 내면의 시위를 당긴 숨 가쁘도록 팽팽한 긴장, 수면을 차고 튀어 오른 물방울에 비친 영혼의 무게. 신춘문예 심사를 하다가 위와 같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다. 잊고 있었던 호승심이 일기도 부러움에 눈꺼풀이 가만히 내리 감기기도 한다. 「카카리키 앵무」외 2편과 「컨베이어 벨트」외 3편, 두사람의 작품을 두고 아주 잠시 머리를 맞댔다. 기성의 시문법, 감각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훈련도 쉽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심사위원으로 대표되는 기성의 미적 감각과 안목을 돌파 해주는 그러한 신선함 속에 시적 설득력을 발휘하는 새 목소리, 새 힘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의욕과 모험의 열정을 기대하는 것. 기준이 그러했다. 「자석 수평계」, 「새점」, 비록 완성도가 높은 수준작이기는 하지만 기성세대와 크게 다를바없는 작품은 적어도 신춘에서는 보류하기로 했다. 당선작은 왜 꼭 한사람이어야 할까. 「들깨꽃 부각」은 시대상황과 맞물려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시란, 시인이란 내일을 향한 날카로운 예각의 안테나를 갈고 닦고 기다려야 한다. 뮤즈의 샘물이 가득 차오르기 까지. 「카카리키 앵무」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층간소음문제, 육아, 가족, 교육문제등을 반려동물을 통해 바라본 작품이다. 당선작을 받쳐주는 다른 작품의 수준이 조금은 고른 이에게 마음이 더 기울였다. 또한 시를 끌고 나가는 뒷힘과 함께 당선자 쪽의 발랄과 생기가 우리의 의도에 더 맞는 것으로 여겼다. 부디 당선작이 대표작이 된 시인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라며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박남준·김사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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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9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 카카리키 앵무-이주경

조용히 우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주전자 물 끓는 소리보다 작게 울어도 가둔다 미풍에 머리카락 날리는 소리보다 작게 울어도 가둔다 창문보다 낮게 목소리를 죽이는 아이, 이웃집엔 중문도 방음벽도 없단다 얌전히 울면 해바라기 씨를 가득 줄 테야 호기심 많은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을 쪼아대도 가둔다 짧고 단단한 부리로 백합 꽃잎을 쪼아대도 가둔다 동글동글한 눈빛으로 수도꼭지를 툭툭 건드려도 가둔다 집안에서 제일 예민한 각도로 웅크리는 아이, 이웃집엔 꽃병도 수도꼭지도 없단다 너의 호기심을 잠그면 해바라기 밭을 줄 테야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오후 햇살이 올리브색 깃털 위로 미끄러져도 가둔다 건반 위를 콩콩 뛰어다니기만 해도 가둔다 깨지지 않는 거울을 보고 혼잣말을 해도 가둔다 방안에서 깃털을 고르는 아이, 이웃집엔 햇살도 거울도 없단다 방안 가득 네 꿈을 펼친다면 새장을 통째로 줄 테야 아파트 밖을 나서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창문 여는 소리만 들려도 가둔다 놀이터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높아져도 가둔다 마오리족의 깃털처럼 가벼워지려는 아이를 가둔다 창살 안에서 노란 깃털을 뽐내는 아이, 이웃집엔 너 같은 아이도 악보도 없단다 내 앞에서만 노래하면 새장을 요람처럼 흔들어 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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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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