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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남성 정장(正裝)이나 여성 패션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후 의류변천사와 궤를 같이 한다. 우선 신분과 위엄이 옷에서 사라져 사람들은 개성적이고 실용적인 옷을 스스로 만들거나 맞춰 입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옷차림은 더욱 혁명적이었다. 그때까지 구체제에서 억눌리고 감추어졌던 자신의 몸매를 과감히 드러낼 수 있는 의상이 유행했다. 몸을 옥죄던 코르셋이나 속치마가 사라지고 심지어 속내의까지 벗어 던지는 파격이 성행했다.그리스 로마시대 여성옷에서 빌려온 이 패션은 영국·독일로 번져 가면서 서구사회를 흔들고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미를 드러내 놓고 자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른바 ‘노출 패션’의 시초가 된 것이다. 당시 어떤 풍속사가는 이런 유행을 두고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하려는 여성옷의 영원한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그렇다면 현대 우리나라의 여성 ‘노출 패션’의 선구자(?)는 누구일까. 아마도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가수 윤복희가 아닐까 싶다. 30여년전 그녀가 김포공항에 내릴때 입고 온 원피스는 무릎위 20cm까지 끝자락이 올라가 있었다. 이른바 ‘미니스커트’다. 이후 우리나라 여성들의 옷차림은 경제발전 수치와 비례해서 위·아래로 좁아져 가는 추세다. 한때 남자의 장발, 여자의 미니스커트가 풍속사범으로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됐으면서도 유행을 막을수는 없었다.근래 들어서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아예 파격을 넘어 아슬아슬한 경지까지 넘나들고 있다. 특히 한낮 기온이 섭씨3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같은 여름철이 더욱 심하다. 등과 가슴선이 그대로 노출된 차림에 핫팬츠니 배꼽티가 거리를 버젓이 활보한다. 오죽하면 점잖은 초로(初老)들이 ‘또 낮도깨비들이 판치는 계절이 됐다’고 혀를 내두를 지경에 이르렀을까. 하지만 자신의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고자 하는 과시욕은 여성만의 특권이랄수도 있다. 아무리 노출이 심하다 해도 보기에 따라서는 참신함과 건강미가 넘치는 패션도 많다. 다만 노출이 너무 지나쳐서 보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그런 옷차림만은 삼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태도라는 생각이다.
1945년 8월 14일 전세계에 전대미문의 죽음과 파괴, 그리고 정치 및 사회경제적 격변을 몰고 온 제2차 세계대전이 그 막을 내렸다. 대부분의 유럽열강들은 전쟁에서 패배했거나 혹은 전쟁으로 그 세력이 쇠퇴해 버림으로써 전쟁전의 유럽 주도의 세계질서는 급속히 와해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과 소련이 양 초강대국으로 등장하여 세계의 패권을 겨루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성립되었다.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채 못되어 세계는 새로운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미 전쟁이전부터 서로 상반되는 이데올리기, 정치 및 경제제도를 갖고 있던 미국과 소련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전쟁중의 동맹국으로서의 협조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립관계, 곧 냉전(Cold War)시대로 들어가고 말았다.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이란 열전(Hot War)을 치르고 난 뒤 곧바로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무장휴전’의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미국과 소련이 그들간의 상이한 체제와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대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져 왔다. 1830년대에 프랑스인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미국과 러시아를 미래의 강대국으로 지적하면서 이 두나라는 미래에 각기 세계의 반의 운명을 좌우하도록 예정되어졌으며 그들은 필연적으로 경쟁자로서 대립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이러한 역사적인 필연성과 함께 ‘핵(核)의 시대’의 도래는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을 또한 불가피하게 했다. 1945년 7월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도에서의 원자폭탄 실험의 성공, 그리고 연이은 1945년 8월의 두 차례에 걸친 실제적인 원자폭탄의 사용에 의하여 세계는 ‘핵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그러나 1949년 소련의 핵실험 성공으로 미국의 핵 독점이 붕괴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그들간의 직접적인 대결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전후 미국과 소련간의 관계는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비극적으로 죽을 때까지 서로 상대방과 싸우는 한 병 속에 든 전갈과 독거미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코카콜라는 미국식 맛의 상징이자 문화적 특징으로 여겨질만큼 미국을 대표하는 상표이다.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의 첨병으로도 유명하다. 1886년 애틀랜타의 약제사인 ‘존S·팸버턴’에 의해 발명됐는데 코카나무 잎에서 코카인을 추출하고 콜라나무 열매에서 카페인을 뽑아내 혼합했다해서 코카콜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처음에는 자양 강장음료로 출발했으나 1900년대 탄산음료로 바뀌어진 가운데 지금은 1초에 4만개, 하루에 30억병이 소비되는 세계 최대 음료제품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현재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우리 돈으로 무려 70조원인 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하니까 그 위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코카콜라가 지금까지 세계적인 상표로 성장해 오기까지는 숱한 일화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서도 ‘신비의 곡선’으로 불리우는 콜라병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1915년 루드라는 사람은 유리병을 만드는 공장의 가난한 직공이었다. 당시 코카콜라는 모양이 예쁘고 물에 젖어도 미끄럽지 않고 겉보기 보다는 양이 적게 들어가는 병을 현상 공모했다.루드는 6개월이나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으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친구가 입고 있는 주름치마를 보고 거기서 힌트를 얻어 허리가 잘룩하고 주름이 잡힌 지금의 콜라병을 창안해내 6백만달러의 현상금을 거머쥐는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이 병은 촉감이 남자의 상징을 꼭 잡는 것 같다고 해서 여성들에게 인기였다는 일화도 있다.코카콜라는 세계적인 상표답게 판매전략 또한 세계적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는데는 코카콜라가 간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실현하지 못한 지역이 2개소인데 그 하나는 북한이고 또 하나는 달이라고 한다.그런데 지구내에서 유일하게 미개척지인 북한도 드디어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조치와 함께 상륙하게 됐다고 21일 AP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중국 북부공장에서 수백상자의 코카콜라가 트럭에 실려 국경을 넘어 22일 신의주에 반입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달 뿐인가?
탈세, 탈루, 포탈, 조세포탈, 세금포탈 모두가 같은 말이다. 옳지 않은 방법을 써서 세금을 내지 않는 일을 말한다. 탈세에 대해 당국의 단속이 강할수록 탈세 수법이 치밀해진다. 기업자금으로 사채놀이, 병원 수입 축소신고, 명의신탁주식 변칙 상속, 연예인의 출연료 줄이기 등 다양하고 지능적이어서 가난한 보통사람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탈세자 대부분이 이른바 가진 자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그들의 전형적인 매출 축소의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매출액을 먼저 결정하고, 비용과 신고소득을 역산하는 일도 있다. 지출비용을 늘리는 것도 탈세자의 단골 수법이다. 가족과 함께 개인용도로 외식을 하고 고급 승용차를 굴려도 사업비용으로 처리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같은 매출누락, 비용 과다계상 등 탈세수법이 횡행하는데는 투명한 거래나 영수증 제도의 미정착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요즘 말썽많은 의약분업도 어느정도 탈세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제도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의란(醫亂)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의약계의 탈세문제도 시원하게 정리됐으면 한다.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있는 자들의 횡포는 봉급생활자들의 부담으로 돌와와 상대적 빈곤감과 함께 강한 불만을 갖게 한다. 의란에 대한 여론의 비난과 질타는 제도의 시시비비를 떠나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의료인들은 그동안 불만스런 의료제도를 고쳐보려는 방법이 미숙했던 것같다. 모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홍보와 이해가 중요했으나 그동안 무사안일하게 이를 게을리 해온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 수입을 누락시켜 세금을 적게내는가 하면 의약품 등 필요경비를 부풀리고 고용의사 급여를 적게 계상하는 등 납세 의무를 저버린 경우도 없지 않았다.몽매한 국민들은 의란을 겪으면서 의료제도의 미흡, 진찰권의 회복, 생명존중의 사명감과 인술,이 모두를 잘 배우고 있다. 하지만 왜 팔불출처럼 탈세가 생각나는 것일까.
간디는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기차에 오르는 순간 간디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홈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고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간디는 신속하게 자신이 신고 있었던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던져놓았다. 간디와 함께 동행했던 사람들은 간디의 그러한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승객이 간디에게 질문을 했음은 물론이다. 승객의 질문에 간디는 웃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 짝마저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마음을 비우며 공존공생하는 간디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요즈음 의약분업 갈등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7월 1일부터 국민보건행정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의약분업의 실시를 앞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이해가 상충되면서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의료계의 병원폐업 시위가 일고 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환자도 발생하고 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표어로 시작한 의약분업안은 의료계와 약업계,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진 안이다.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쳤음도 물론이다.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신발 한 짝을 벗어 주는 간디의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공존공생의 사회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간디가 출발한 기차에서 신발 한 짝을 던져주지 않았던들 떨어진 신발 한 짝은 아무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신발 한 짝을 되찾기 위해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 내렸다면 간디는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의약계가 국민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 신발 한 짝을 던져주는 간디의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차(茶)의 기원은 중국의 전설적 황제 ‘선능’과 얽혀있다. BC 2737년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황제의 일지에는 그가 어느날 물을 끊이고 있는데 근처 숲에 있던 나무의 잎새 하나가 날아와 단지속으로 들어갔다 한다. ‘그 나뭇잎을 물에 넣어 끓여 마셨더니 갈증과 졸음이 사라지고 심기를 편하고 활달하게 하더라’고 이 일지는 적고 있다. 물론 이 기록은 후세 사람들이 각색했을 가능성이 짙다.실제로 중국 사람들이 차를 즐겨 마시기 시작한 것은 서기 780년경 부터이고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 전래된 것은 828년 신라의 사신 대렴(大廉)이 당나라에서 씨앗을 들여오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가지 문헌에는 그 이전부터 차를 마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확실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오늘날 차는 전세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됐지만 서구사회에 차가 처음 전해진 것은 실크로드가 개통되고도 한참 지난 16세기였다. 중국에서 차를 사가지고 간 베니스 상인들은 차가 열병·두통·관절염에 특효가 있다고 떠벌렸으며 네덜란드의 어떤 의사는 차야말로 모든 질병을 예방하며 장수를 약속하는 영약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한다.차나무 순을 발효시켜 만든 홍차는 서구사람들이 커피이상으로 즐기며 푸른잎이 그대로 나도록 말린 찻잎을 끓인 녹차는 건강 음료로까지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일본·대만등 동양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차의 대명사가 되고 있기도 하다.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전남과 경남, 제주도등 남쪽지방에서만 재배되고 있는 차나무가 엊그제 자생 북방한계선을 넘어 전주 오목대에서 발견됐다 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것도 수령 2백년이 넘은 1백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학계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전주시는 이 차나무 군락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한편 인근 한옥보존지구와도 연계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다. 하지만 당장 급한 일은 2백년만에 발견된 이 차나무가 호사가들에 의해 훼손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인류의 조상이 유인원(類人猿)이었다는 학설이 진화론이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과 같은 성성이과 영장류가 진화하여 직립(直立)보행이 가능해지면서 최초의 인간으로 구분되는 네안데르탈인이 탄생한 것이다. 유럽과 서아시아 지방에 살았던 그들은 두뇌의 크기도 지금 우리와 같을뿐더라 연장을 만드는 기술도 상당히 발달해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사용했다. 고고학적으로 구석기시대 인류로 구분되는 이들을 묘사한 그림이 이마는 좁고 두툼하게, 코는 굵고 뭉툭하게 묘사돼 마치 짐승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들은 흰색 피부에 얼굴에는 털도 없이 지금의 유럽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다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영장류와 같이 허리는 구부정하고 팔이 길며 다리가 짧아 두발로 걸어다닐뿐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엊그제 영국 런던에서 발표된 한 연구보고서가 현대 남성은 오랜 시간 앉아서 지내는 생활양식때문에 영장류에 가까운 네안델타르인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대부분의 남성이 직장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집에서도 TV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즐기느라 몸을 쭈그리고 장시간 앉아있는 일이 많아 어깨는 둥그레지고 허리는 구부정해 간다고 밝혔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한 뒤 수십만년이 지난 지금 첨단과학문명속에 사는 남성이 다시 원시시대로 퇴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ET와 같은 공상과학소설의 외계인이나 미래 인류의 모습은 두뇌의 발달로 머리만 크고 몸통은 왜소해지는 가분수형을 연상시켜 온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이 조사보고서는 문명의 발달이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인류의 체형마저 원시로 되돌려 놓을 수도 있다는 문명파괴설을 제시한듯하여 흥미롭다.그렇다고 그런 현상이 어디 그쪽 뿐이랴. 초등학교때부터 체형에 맞지않는 책걸상때문에 이미 허리가 휘는 학생이 많은 우리나라에 컴퓨터 매니아는 또 얼마나 많은가. 두뇌는 두뇌대로 커지고 허리는 허리대로 구부러지는 기형인간이 탄생하지는 않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가격파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IMF이후 소비자들은 상품의 싼 가격을 보다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상품 가격이 정말로 저렴한 것인지 꼼꼼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판매자들이 가격 경쟁을 하게 되면 수익성 측면에서 별로 좋을 것이 없다. 그러나 판매자들이 가격 경쟁을 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즐겁지 못하다.싸지도 않으면서 싼 것처럼 보인다면 판매하는 입장에서 매우 즐거운 일이다. 엄밀히 따진다면 싸지 않기에 소비자는 속은 것이다.실제로는 가격할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할인은 한 것처럼 표시하거나 실제의 가격 할인 폭보다 과장해서 표시하는 것은 기만적인 가격표시이다. 예전의 서울 모백화점에서는 제값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설정해 놓고 할인해서 파는 수법으로 고발된 적이 있다. 사기의 예는 얼마든지 많다.캔커피가 10종인데 그 중 3종만 할인 특매하면서 캔커피 30%할인이라고 광고하는 경우, 하루나 이틀정도 판매할 수량밖에 없으면서 해당 상품을 10일동안 할인특매한다고 광고하는 경우, 특정일에 어떤 상품을 1백개 한정판매한다고 해놓고 1백개를 초과하여 판매하거나 기간을 연장하여 판매하는 경우, 전년도에 가격인하 한 사실을 지금 ‘30% 가격인하’라고 광고하는 경우 모두 기만과 사기다.가격은 올리지 않았지만 상품의 용량을 줄이거나 부품이나 원료를 싼 것으로 바꾼 경우, 가격인상요인이 발생하면 재빠르게 가격을 올리면서도 가격인상요인이 사라지면 가격을 내리지 않거나 조금만 내리는 경우도 알고 보면 비윤리적 행태다.도내에 진출한 모할인점의 매출액이 몇 달만에 수백억원에 이르렀다. 그 할인점은 형편이 어려워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상공회의소 회비 몇백만원도 못낼 지경이라 한다. 그런데 오늘도 그 할인점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게다가 할인점의 상품 가격이 별로 싸지도 않다면 엄청난 마진을 올리고 있을텐데 말이다. 또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일본 언론들은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 만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만날가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한 손으로 악수를 할 것인가, 아니면 두 손으로 악수할 것인가도 큰 관심사의 하나였다는 것이다.물론 한 손으로 냉랭하게 악수를 나누는 것과 두 손을 맞잡고 뜨겁게 악수를 나누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일본언론이 우리의 남북정상의 첫 만남에 남다른 관심을 갖는 또 하나 이유는 바로 지난 70년 3월 19일 당시 서독 브란트총리와 동독 슈토프총리의 첫 정상회담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 당시 양독정상은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만 주고 받은 다음 의전행사도 없이 회담장으로 직행하는 냉랭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난 12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남북정상의 첫 만남은 파격 그 자체였다.지금까지 관례가 없는 김정일위원장의 비행장 영접도 그렇고 김대통령과 두손을 맞잡고 뜨거운 악수를 나눈 모습도 감동적이였다. 그리고 육·해·공군의 의장대 사열과 60만 평양시민의 열광적인 환영은 우리가 미처 예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30년전 동·서독의 첫 정상회담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우리 국민들 가운데서는 김대통령과 김국방위원장이 첫 상봉시 악수보다는 진한 포옹을 했더라면 더 좋았고 감동적이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악수와 포옹은 모두 반가움의 몸동작이지만 악수는 손으로 체온을 느낄 수 있지만 포옹은 가슴으로 심장의 고동을 느낄 수 있는 점이 다르다.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15일 작별인사에서 말끔히 해소됐다. 두 정상은 서로 끌어안고 볼을 비비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악수를 나누던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의 순간이었다. 독일은 첫 정상회담 이후 19년만인 89년 10월9일 통일됐다. 우리는 이날 남북정상의 뜨거운 포옹를 보면서 독일보다는 통일의 시기가 훨씬 빨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날을 간절히 기다려 본다.
2000년 한국의 6월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을 달로 기록될 것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의 고통에 시달리던 한반도가 55년만의 뜨거운 만남으로 새롭게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던 평양이 열리고, 쉽게는 만날 수 없었던 남과 북의 두 정상이 얼굴을 마주하고 두 손을 잡게 되었다.6월 13일, 평양 순안 공항에서 두 정상의 뜨거운 악수는 55년만의 만남이었고, 이제까지 남북 대립과 갈등을 한꺼번에 지워버리고 화해와 협력으로 향하는 새로운 세기의 만남임과 동시에 새천년의 역사적 만남이 된 것이다. 그 동안 설왕설래하며 말도 많았던 ‘햇볕정책’이 꽃을 피우고 이제는 그 열매를 거둘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이번 정상회담은 55년만의 첫 만남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뜻깊다 하겠으나, 두 정상의 ‘평양선언’은 우리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고 크나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평양선언에서 두 정상은 남북의 화해와 통일,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이산가족의 상봉 그리고 경제를 비롯한 각 부문의 협력을 다져나갈 것을 다짐하였다.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서로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고 실천하는 것뿐일 것이다. DJ의 방북 사실이나 그 성과에 마냥 들떠 있을 수 만은 없다. 지금부터 차분히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내용들을 남과 북이 서로 구체화시켜 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큰 골격에 살을 붙여 나가는 작업을 조속히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일괄타결을 원했던 북측의 입장 때문에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이끌어 내지 못한 마당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양측의 실무회담은 다른 어느 때보다 그 중요성이 큰 것이라 하겠다. 한 번의 만남과 약속으로 55년 벽이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남과 북이 같은 길을 가다보면 힘들고 험난한 장애도 뒤따를 것이다.하지만 어렵고 힘들게 마련한 이 길에 어떤 장애가 뒤따르더라도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쳐 헤쳐나가는 것이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종식시키고 민족의 공동번영과 평화통일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부디 새천년의 역사적 만남이 역사적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경협이 강화될 것이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남북 경제공동위가 구성되고 남북경협에 대해 당국자간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면 북한특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판문점의 접촉이나 왕래기능이 회복되고 사회간접시설투자가 논의되면서 경협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대북 직접투자도 확대되고 대북사업의 신규참여자도 증대될 것이다. 정상회담이후 대북경협의 유망사업으로는 공단조성, 도로 및 철도연결, 항만시설정비, 농약, 농기계, 유휴선박, 방제, 종자개량, 한약재, 섬유, 신발, 의복, 봉제, 식품가공분야 등이 거론되고 있고 특히 낙후된 북한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에너지분야와 통신분야의 사업도 활발히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그런데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사회간접시설투자만해도 10조원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후 실리를 추구하는 북한과의 경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단기에 국내외 재원조달처를 발굴하기란 쉽지 않다. 국제금융기구의 SOC 공적 차관은 북미 관계개선과 북한의 시장경제 변화를 전제로 회원가입이라든지 공적 차관 심사등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지원에 활용가능한 재원은 대외협력기금이나 남북협력기금, 북한의 대일청구권, 국제기구의 개도국에 대한 빈곤퇴치, 환경재건등에 있어서의 공적차관정도이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당장 사용 가능한 SOC 투자재원은 남북협력기금이다.그러나 남북협력기금도 경수로 계정 및 공적 기금을 제외하면 2천1백80억원 정도뿐이라고 한다. 대북경협이 성공하고 통일을 일구어내기 위해서는 험난한 길이 예고되고 있다. 모처럼 조성된 남북 화해분위기가 재원부족으로 망쳐져서는 안된다. 남북 협력기금의 확충 뿐만 아니라 국내 민자유치, 그리고 해외자본유치가 급선무가 아닐까.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에게 희망을 상징한다. 인간을 처음 만든 프로메테우스는 신(神)의 전유물인 불(火)을 회향나무 가지에 붙여 인간사회에 전한다.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주신(主神) 제우스는 이 축복에 맞먹는 불행을 주기로 하고 헤파이토스에게 부탁해 흙으로 여자를 빚게 한다. 그가 바로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Pandora)이다. 신들은 이 여자에게 온갖 재앙이 들어있는 상자 하나를 줘 지상에 내려 보내면서 절대로 상자를 열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판도라는 남편이 없는 사이 이 상자를 열고 만다. 그러자 상자 속에 갇혀 있던 질병·고통·슬픔 등 모든 재앙이 빠져 나왔다. 인류에게 닥치 재앙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판도라가 서둘러서 상자를 닫자 맨밑바닥에서 꾸물대던 ‘희망’만은 나오지 못하고 상자속에 갇히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어떤 가능성이나 좋은 일을 상정(想定)할 때 ‘판도라의 상자’를 응용하는 것은 바로 이 상자속에 갇혀있는 희망의 메시지 때문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분단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들어갔다. 실로 반세기만이다. 불과 한시간 남짓 비행끝에 김대통령이 순안(順安)공항에 도착하자 예상외로 김정일(金正日)북방위원장이 영접을 나와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니 놀랐다기 보다는 이 역사적인 두 정상의 ‘만남’을 지켜보며 벅찬 감격을 억누르지 못해 눈시울을 적신 국민들이 많았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오전 8시15분 청와대를 출발해서 불과 두시간만에 도착한 평양, 그 평양의 하늘도, 서울의 하늘도 똑같이 맑고 청명했다.공항과 평양시내 거리를 가득 메운 환영인파는 또 무엇인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어 이 시대 우리 민족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두 말할것도 없이 남북의 평화와 협력과 통일이라는 사실의 깨달음이다. 김대통령의 말대로 이번 정상회담은 겨우 그 첫걸음을 내디딘데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이번 만남으로 희망이 가득 담긴 ‘판도라의 상자’하나를 더 얻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변호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미국이다. 변호사의 천국답게 대략 1백만명의 변호사가 등록돼 활동하고 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변호사의 70%정도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한다. 그렇게 숫자가 많다보니 미국사회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는 저명 변호사도 많지만 사건 수임에 혈안이 된 일반 브로커 수준을 넘지 못하는 저질 변호사도 수두룩 하다.벌이가 시원치 못해 사무실도 못갖춘 변호사가 공중전화 부스를 연락처로 의뢰인과 상담하는 경우도 있고 돈이 되는 수임사건이면 마피아와도 손을 잡는것이 일부 미국 변호사들의 생리다. 하긴 강도나 절도 마약사범 같은 범죄자들도 경찰에 검거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변호사이고 그들은 형량(刑量)을 저울질하면서 필요하면 경찰이나 검찰과도 협상을 벌이는 것이 미국 사법제도의 관행이다. 걸핏하면 총질을 해대고 폭력이 난무하는 범죄천국 미국에서 살인사건 검거율이 40%선에 머물정도로 치안에 허점을 보이는데는 이런 변호사들의 보이지 않는 활약(?)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죽하면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워렌 버거 같은 사람이 ‘굶주린 메뚜기처럼 변호사가 넘쳐 흐르는 사회’라고 개탄하면서 망국론까지 들먹였을까.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는 가장 선망받는 직업군(職業群)으로 꼽힌다. 엘리트 명망가들도 많다. 그러나 문민정부 사법개혁에 따라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희소가치가 줄고 잇딴 비리사건으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현재 개업변호사만 4천명을 넘고 있으니 일탈과 비행을 저지르는 변호사가 없을수 없을 것이다. 엊그제 박모변호사가 사기혐의로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되기 하루전에 미국으로 도피한데 이어 이번에는 3천9백억원대 금융 사기범의 국외도주에 담당 변호사가 핵심역할을 한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법조계 안팎에서 이러다가는 우리도 변호사 망국론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자성론이 나오는 모양이다. 변호사는 사회 정의구현의 최후 보루이다. 변호사가 썩으면 그 사회는 곱절로 곪아 터질수밖에 없다.
매미라는 이름은 “맴맴”하고 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쓰름매미의 옛 이름인 쓰르라미는 “쓰르람 쓰르람”운다하여 붙여졌다. 매미소리는 때로 소음공해가 되기도 하지만, 만약 여름에 매미가 없다면 여름이 무미건조할 것이다.매미의 알은 부화되자마자 땅을 파고 들어가 4-6년에 걸친 긴 시간을 굼벵이로 보내게 된다. 매미의 애벌레는 땅 속에서 침과 같이 생긴 주둥이로 나무 뿌리의 수액을 빨아먹으면서 자란다. 땅속에서 보내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4-6년 정도이다. 다 자란 애벌레는 맑은 날을 골라 대체로 저녁 해질 무렵 땅위로 기어나와 나무 줄기나 나뭇가지 등에 몸을 고정시킨 후 탈피를 한다.과학자들은 매미들이 어떻게 이 긴 기간을 정확히 측정하여 정한 해가 되면 몇시간의 간격을 두고 일제히 땅속에서 기어나와 나무를 타고 올라가 탈피하는지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오랜 세월을 땅속에서 보내고 난후 탈각하여 태어난 멋진 매미는 그들 특유의 노래 소리를 세상에 메아리치지만 겨우 몇 주밖에 살지 못한다.이러한 매미는 예로부터 다섯가지 덕이 있다하여 숭앙을 해왔다. 머리부분은 관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므로 문(文)을 상징하였고, 맑은 이슬만 먹고 산다하여 그 깨끗함이 청(淸)이요, 사람이 먹는 곡식을 먹지 않으니 염(廉)이요, 굳이 집을 짓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사니 검(儉)하고, 철에 맞춰 허물을 벗고 어김없이 울어대니 이를 신(信)이라 하여 추앙한 것이다.특히, 때가 되면 어김없이 땅속에서 기어나와 탈각하는 현상을 해탈이나 불사의 신생(新生)으로 비유하였다.남북정상회담은 반세기의 긴세월 동안 대립의 음지에서 지낸 우리 민족에게 탈각의 시기가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캄캄한 땅속의 어둠을 이제 떨치고 벗어나 민족의 아픔을 해탈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매미의 울음소리같은 낭보가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보유자들은 순수하게 자동차 관련 세금만 무려 16조원을 넘게 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자동차공업협회는 지난해 정부가 자동차 관련 세금으로 거둬들인 액수는 모두 16조4천28억원으로 전체 세수의 17.4%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를 공장도 가격 5백만원대 수준인 1천5백㏄급 소형 자동차를 기준으로 할 때 대당 지난해 부과된 세금은 20만9천원으로, 이는 시가 4억원 상당인 서울 강남의 40평형 아파트에 붙는 재산세 및 토지세 24만6천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그러나 1년간 자동차를 운행할 때의 면허세 취득세 등 전체적인 세부담은 3백7만원으로 47만원에 불과한 미국보다 6.5배가 더 많고 1백84만원인 일본보다는 1.7배, 2백20만원인 독일 보다는 1.4배가 더 많으며, 국내 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할 때는 미국의 17.6배, 일본의 5.8배, 독일의 3.8배에 이른다.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세를 물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낸 세금은 2천5백㏄급 이상 대형차의 경우 3년10개월이 지나면 총 세금이 자동차 가격(세전 공장도 가격)을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우리의 자동차 관련 세금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그런데 이번에는 자동차가 휘발유를 사용하는데 따른 세금이 지난해의 경우 자동차 1대당 평균 1백12만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자동차 소유자들을 놀라게 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휘발유 1ℓ당 세금은 최저 8백58원에서 최고 9백3.6원까지 돼 휘발유 소비자 가격의 70%가 세금이었는데 총 세금은 8조8천억원으로 이를 승용차 대수 7백83만7천대로 나누면 대당 1백12만원 꼴이라는 계산이다.자동차 소유자 입장에서 보면 자동차 없이는 단 하루도 생활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울며 겨자 먹는 꼴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자동차 관련 세금이 이렇게 엄청나도 괜찮은 것인지, 정부가 자동차 소유자들을 봉(?)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뒷맛이 씁쓸하다.
16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국회에 등원하는 의원들은 다른 어느 때 보다도 감회가 깊었으리라 생각된다.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의 험난한 준령을 넘어야 했고, 납세실적 뿐만 아니라 개인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네티즌들의 열띤 검증도 거쳐야만 했다. 이제는 가슴에 금배지를 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세상이 되었다.또 한가지 16대 국회에 주목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여야 가릴 것 없이 386세대로 회자되는 젊고 활기찬 차세대 주자들이 대거 국회로 진출했다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매너리즘에 빠져 허덕이는 국회의원과 당리당략에 묶여 실종된 정치 현실을 지켜보던 국민들의 뜻이 그러한 선택으로 표출된 것이다.하지만 이번 국회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산적한 국정을 풀어 나가는데 어느 당도 단독으로는 주도권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리 예견을 했지만 그래도 혹시 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여당은 국회의장 선출과정에서 마치 기업이 전략적 제휴를 취하듯 ‘투 플러스 포’의 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른바 DJP 공조로 일컫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연합에 민국당 2석, 한국신당 1석과 무소속 1석을 합해 ‘DJP+4’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크로스 보팅이다, 비판적 지지는 이미 물 건너 갔고 앞으로의 정치일정이 종전과 같이 터덕거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겨우 국회의장 선출은 끝났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이다. 여야는 표 싸움을 위한 세몰이에만 전념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국회는 또다시 공전과 파행을 거듭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또다시 구태를 되풀이하려는 국회의원들에게 다른 나라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세계의원연맹(IPU) 보고서를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독일의 통일정책은 빌리 브란트 시대에 대전환기를 맞게 된다. 초대 서독수상인 아데나워는 힘의 우위의 정책을 수행하면서 경제력과 국방력을 강화하였고 강력한 서독의 힘을 토대로 동독 존재의 부인과 서독정부의 유일 합법성을 강조하는 단독대표권을 주장하였으며 동독을 승인한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독트린을 추진하였다. 그를 이어 수상에 오른 에르하르트는 기본적으로 아데나워 통독정책을 계승하였고 소극적이긴 했으나 동방접근 탐색전을 시도해서 서독의 새로운 통일외교를 향한 기반을 닦는데 기여했다. 그후 키징거 수상은 동독을 고립시키겠다는 과거 아데나워나 에르하르트 정부의 외교노선에서 진일보해서 동독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였다.그러나 독일의 통일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빌리 브란트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서독 건국 후 20여년만인 1969년 집권한 사민당의 브란트 수상은 동방정책을 통해 대 동구권 평화공존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였고 할슈타인 원칙의 완전폐지, 당시 유럽국경선 인정, 무력사용 포기에 관한 독일과 소련간 조약, 독일과 폴란드간 오데르-나이세 국경선 인정 및 상호 불가침조약 등을 체결하였다. 또한 그는 동독과의 접촉, 화해, 승인을 통해서 최선의 협력을 도모했고 1970년 두 차례에 걸쳐 동서독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각종 협정을 체결했다. 브란트의 선(先) 민족통일 후(後) 국가통일이라는 통일정책은 슈미트와 콜 수상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20여년이 지난 후 동서독 통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남북정상회담을 나흘 앞두고 있다. 빌리 브란트의 통일정책이 결실을 맺기까지 20여년이 걸렸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남북통일로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단기에 결실을 맺고 김대통령이 제2의 빌리 브란트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일국의 정상들이 만나 회담을 가질 때 그 회담내용 못지 않게 관심이 가는 대목이 공식만찬에 오르는 메뉴이다. 언론이 식탁에 오르는 요리에 대해서까지 시시콜콜히 보도하는 것도 그런 호사가들의 흥미를 충족시켜 주기 위함이다. 그도 그럴것이 포크나 나이프로 대변되는 서양권과 수저나 젓가락을 사용하는 동양권의 음식문화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한자리에 앉으면 과연 무슨 음식을 먹을까는 비단 호사가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만찬 장면 사진이 화제였다. 서툰 젓가락질로 음식을 입에 가져가는 닉슨과 이를 지켜보며 미소짓는 마오쩌둥의 다정한 모습이 결국 죽(竹)의 장막을 무너뜨린 동서화해의 첫 장(場)을 기록한 것이다. 이 때 만찬에 나온 요리가 그 유명한 ‘북경오리’요 독하기로 소문난 마오타이주였다. 그 후 북경오리 요리와 마오타이주가 세계적 명품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경우는 다르지만 남북한 정상의 평양회담 만찬메뉴도 관심이 가기는 마찬가지다. 91년 10월 남북 고위급회담 때 연형묵 북한 총리가 주최한 만찬메뉴에는 대동강 숭어, 가물치회가 올랐고 뱀술과 인삼주가 반주로 나왔었다. 육류사정이 어려워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못 내놓지만 민물고기인 가물치회도 맛이 일품이라고 자랑하던 북한측 관료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이번 평양회담에서 김대중대통령이 답례 형식으로 여는 만찬에는 조선궁중음식 정찬과 함께 비빔밥을 내놓기로 했다 한다. 분단후 첫 정상회담이란 역사성을 감안해서 모든 이질적 재료를 섞어 조화로운 맛을 낸다는데 의미를 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설명은 어딘지 서운하다. 비빔밥 하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전주 아닌가. 기왕에 비빔밥을 내놓으려면 ‘전주비빔밥’이어야 옳을 것 같다. 전세계적인 관심속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전주비빔밥’이 올랐다 치자. 그 홍보 효과를 어디다 비길 수 있을 것인가. 전주, 나아가서 전북을 세계인에게 알릴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관계자들은 그저 앉아서 흘려 보낼 것인지 묻고 싶다.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전화기를 때려 부순다든지 은행의 현금인출기에 모래를 집어넣어 못쓰게 만드는 파괴적 행위들이 심심치 않게 저질러 지고 있다. 고급주택가의 방범등·감시카메라·순찰함등이 망가뜨려 지거나 힘있는 관공서의 현관에 방뇨를 해대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이뿐이 아니다. 인적이 드문 심야에 길거리나 아파트에 주차돼 있는 차량들을 모조리 펑크내거나 예리한 도구로 차체를 긁어 훼손하는 행위도 빈발한다. 모두가 현실에 대한 불만을 이런 방식으로 표출하는 ‘파괴망상증환자’들의 소행이라고 밖에 볼수 없는 현상들이다.범죄용어에 반달리즘(Vandalism)이란게 있다. ‘이유없는 파괴행위’를 두고 쓰는 말이다. 원래 반달리즘은 5세기 중엽 로마를 침공한 게르만족의 한 종파인 반달(Vandal)족들이 로마문명에 대한 반감과 시기심으로 로마거리를 닥치는대로 파괴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그래서 흔히 문화·예술의 파괴행위를 말하지만 오늘날에는 주의·주장이나 요구사항도 없이 맹목적인 파괴행위를 일삼는 범죄를 포괄적으로 반달리즘이라 부르는 것이다.유럽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80년대부터라고 한다. 풍요와 복지가 넘쳐나다 보니 일종의 권태감, 또는 사회환경에 대한 염증같은 것이 파괴 심리로 이어져 히스테리 증세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사회에서의 반달리즘 현상은 IMF경제위기 이후 두드러졌다는게 보편적인 시각이다. 실업·실직의 고통, 빈부격차의 심화등으로 못 가진자의 불만이 쌓이고 사회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이런 파괴행위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충동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주말인 지난 3일밤 무주리조트를 찾은 관광객들의 차량 70대가 한꺼번에 훼손돼 2억여원의 재산피해를 냈다한다. 주로 고급승용차만 골라서 예리한 도구로 차량의 몸체를 흉칙하게 긁어 못쓰게 만들었다니 취객이나 불량배의 단순한 심술이라기 보다는 너무나 의도적인 파괴행위가 아닐 수 없다.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이런 반달리즘이 횡행하는 세태를 보면서 우리사회의 진정한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갑자기 무더워졌다. 사무실마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아이스크림류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사상 체질론에 의하면 빙과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더위엔 역시 청량음료와 빙과다.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이 눈이나 얼음을 저장하는 동굴을 만들어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차가운 음료수를 만들어 먹게 한 것이 빙과류의 시초라는 기록이 있다. 한편,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는 우습게도 발빠른 젊은이를 보내 고산에서 눈을 가져오게 해 빙과를 만들어 즐겼다고 한다. 폭군 네로는 알프스에서 만년설을 운반해와 장미나 무궁화의 향료를 넣은 물에 꿀, 과즙, 수액 등을 섞어 마셨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더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그리고 중국에서는 4천여년전 상류층들이 향신료에 우유를 넣고 오래 끓인 후 눈을 이용해 얼린 부드러운 풀상태의 밀크아이스를 기호식품으로 애용했다. 서양보다는 훨씬 높은 기술을 보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육이 들어있는 쥬스를 눈과 섞거나 밀크아이스와 섞은 후르츠아이스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선 석빙고를 사용하여 얼음이나 눈을 보관하였다가 왕과 귀족들이 애용했다는 기록도 있다.이처럼 높으신 분들만 즐기던 빙과류가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일반인들의 기호식품으로 등장한 것은 자콥 퍼셀이란 미국인이 1850년 아이스크림 공장을 설립한 이후부터다. 우리나라에선 삼강산업이 30년전 빙과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최근 이른바 족벌체제로 경영되던 재벌 기업이 아이스크림처럼 시원스럽게 녹아 내리고 있다. 새천년에 접어들었는데 영원한 기업 황제나 세습을 꿈꿔서는 곤란하다. 신속하게 처리돼 아이스크림처럼 국민들을 시원하게 해 줬으면 한다. 날씨가 무더워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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