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2-26 10:08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오목대] 무진장과 BYC

전북을 연고로 한 BYC는 쌍방울과 더불어 오랫동안 내의류 제조 부문에서 경쟁사였다. 원래 백양(白羊)이었으나 BYC 브랜드를 출시한게 대박을 내면서 1996년 BYC로 회사 이름도 변경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정읍에서 한영대(1923~2022) 창업주가 백부의 양말공장을 인수해서 '한흥메리야스공장'을 세운 게 기원이다. 그런데 영남 지방에서 ‘BYC’라고 하면 속옷을 만드는 기업체가 아니라 특정지역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북 북동부에 있는 봉화군(Bonghwa), 영양군(Yeongyang), 청송군(Cheongsong)의 앞글자를 따 BYC라고 부르는 것이다. 전북 무진장과 더불어 낙후지역의 대명사라고나 할까. 아닌게 아니라, 봉화, 영양, 청송군은 인구, 경제력, 인프라 등 여러 수치를 감안할때 가장 낙후된 곳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낙후됐다는 것과 주민의 삶의 질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다. 그런데 낙후의 대명사였던 무진장은 과거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으나 경북의 BYC와는 크게 다르다. BYC는 철도, 고속도로 접근성이 무주에 비해서도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주는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진안은 새만금포항고속도로가 군을 동서로 관통하며, 장수는 앞의 두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무진장이든 BYC든 대표적인 인구소멸지역의 한계를 뚜렷하게 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교통 인프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점에서 전북의 고속도로나 철도망, 국도‧국지도 건설은 향후 지역발전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고속도로나 항공망이 얼마나 갖춰졌느냐가 지역사회의 발전을 좌우하게 됨은 물론이다. ˝성을 쌓는자는 망하고, 도로를 내는자는 흥한다˚는 칭기즈칸의 명언은 괜히 나온게 아니다. 성을 굳건히 쌓아놓고 적을 방비하는 것은 가장 안전한것 같아도 사실은 몰락을 향한 첫걸음이며, 반대로 길을 내 끊임없이 다른 문화나 세력과 교류하면 흥한다는 말은 너무나 명철하다. 길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연결이나 네트워크의 연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혀 다른 문화와 문명, 가치관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선다는 얘기다. 요즘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전국 어디에서든 한두시간내에 수도권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의 차이, 생활문화의 차이는 수년, 아니 십수년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전북은 지금 그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꾀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무진장과 BYC의 사례에서 알 수있듯 성을 쌓지않고 도로를 내면 탈 낙후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도로뿐만 아니라 사고의 벽을 과감히 무너뜨려야 한다는 거다. 관행적 사고의 틀에 갇혀 외부 세계를 배타적으로만 보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한 지역에 밝은 미래가 없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8.27 18:30

[오목대] '케데헌'의 성공비결, 독창성과 보편성

돌풍이 따로 없다. 아니 파죽지세란 표현이 옳겠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다. K-POP 아이돌을 소재로 한 해외제작 애니메이션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줄임말)이 이제 북미 극장가까지 점령했다. 공식 개봉도 아니고 넷플릭스가 ‘싱어롱 이벤트’로 마련한 상영회만으로 이어진 결과라니 더 놀랍다. 케데헌은 지난 6월 20일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에 올라섰고, 음원 순위에서도 빌보드 200차트에 8위로 처음 진입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주요곡 모두 10위권에 올랐다. 스트리밍 1억 회를 넘어선 것도 오래다. 8월 들어서는 OST <골든(GOLDEN)>이 영국 오피셜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오피셜싱글 차트에 케이팝아티스트가 정상에 오른 것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새역사(?)를 만든 2012년 이후 13년 만이다. 케데헌은 가상 걸그룹과 K팝을 결합한 독특한 콘셉트에 한국적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애니메이션이다. 무당, 도깨비, 저승사자와 같은 한국의 전통 설화를 소재로 끌어들이면서 서울의 지하철, 잠실 주경기장을 비롯한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 여기에 탁월한 기술력과 창의성, 사회적 트렌드까지 더해 글로벌 팬덤을 움직였다. 전통 무속 신앙과 현대의 K팝·아이돌 문화가 융합한 독창적 세계관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케데헌의 독창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케데헌을 가장 빛낸 것은 역시 완성도 높은 음악이다. <골든>을 비롯한 영화 속 모든 곡이 동시에 빌보드에 진입한 결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가상 콘텐츠가 실제 음악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케데헌의 사례는 흥미롭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음악시장을 정복한 사례는 디즈니가 먼저다. 겨울왕국의 ’Let It Go‘나 라이온 킹의 사운드트랙이 선례다. 그러나 디즈니가 음악으로 세계를 정복했다면 케데헌은 음악에만 그치지 않고 가상세계에 현장감과 현실감을 더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폭이 다르다. 한국적 신화에 K팝의 현장감을 더한 케데헌이 이끈 변화는 또 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K팝 문화의 확장성이 가져온 파급력이다. 케데헌에 등장한 ’한국적인 것‘이 새삼 주목을 끌면서 문화와 관광,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환경은 그 결실이다. 이쯤 되니 케데헌의 진짜(?) 성공 비결이 궁금해진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분석이 있다. "영화 속 정교하게 배치된 한국 문화의 다양한 요소와 완성도 있는 음악이 문화적 특이성 속에서도 보편성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들여다보니 독창성을 빛내는 힘이 보편성에 있음을 알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8.26 18:48

​[오목대] 민생지원금, 누구를 위한 ‘공돈’인가

‘또 준다고?’ 어디 ‘공돈’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꺼림칙하다.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이렇게 막 퍼줄 돈은 있을까? 그리고 나중에는? 추석을 앞두고 지자체들이 다시 ‘돈 풀기’ 경쟁에 나섰다. 국가에서 전 국민에게 나눠준 1차 민생지원금(소비쿠폰)의 사용기한이 한참이나 남았고, 예고된 2차 지급일도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지자체들이 정부 지원금과는 별개로 돈 보따리를 풀겠다고 호들갑이다. 연초 설 명절에도 상당수의 지자체가 민생지원금을 풀었으니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전북에서는 부안군과 고창군이 추석 전에 주민 1인당 20~30만원씩의 민생안정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제와 남원·정읍·완주·진안은 올초 설 명절을 전후해서 이미 20~50만원 씩의 민생지원금을 나눠줬다. 그렇다면 지금껏 계속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 호소는 괜한 엄살이었을까? 정부가 아주 떠들썩하게 돈을 풀었는데도 부족하다며, 굳이 또 지방의 곳간까지 열겠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 부안·고창군의 재정자립도는 10%에도 못 미쳐 전국 최하위권이다. 전북지역 다른 시·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자체의 현금성 복지비용 지출 비율이 높으면 행정안전부 차원의 페널티까지 있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일까? 주민 반응을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금성 지원은 다른 정책과 달리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누가 뭘 했는지’ 강한 메시지도 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다. 게다가 내년엔 지방선거가 있지 않은가. 제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정치적 타이밍에 맞춰 선심을 쓸 수 있는 기회다. 지금 연임이 최대 관심사인 지자체장들이 심각한 재정난 속에서도 포퓰리즘에 몰두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전북에서 ‘지방자치단체장 3선 연임 제한’에 걸리는 익산과 임실은 지난 설에도, 이번 추석에도 민생지원금 경쟁에 전혀 관심이 없다. 단순한 우연일까? 걱정이다. 장기적인 비전 없이 계속되는 정부와 지자체의 퍼주기 정책에 국민이 무의식적으로 길들여지면서 조금만 힘들어도 공돈을 기대하고 요구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실제 공돈을 퍼주는 이웃 자치단체를 부러워하면서 ‘우리는 왜 안 주냐, 이사 가겠다’며 주민들이 지자체장을 압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랏빚이 무섭게 불어나더니 올해 1200조원을 넘어섰다. 국가 재정이 악화일로다. 계속되는 돈 풀기가 과연 침체된 국가경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근본 해법인지, 아니면 유권자들의 민심을 겨냥한 얄팍한 정치행위인지 돌아봐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자체장들이 그렇고, 중앙정부도 다를 게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공돈일까? 어차피 지속가능성이 없는 단발성 정책이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주는 돈은 받더라도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계속되는 공돈 자극에 중독돼 아무 생각 없이 침을 줄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기 전에 말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8.25 17:40

[오목대] 검찰총장 시키라고 간언한 사람들

특검 수사에서 피의자들이 조사를 통해 거짓말이 금방 드러날 판인데도 살려고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진술거부를 일삼으면서 재판 출석을 계속 기피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으면 좀 떳떳하게 대응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국민들의 날선 반응이다. 사즉생(死卽生)으로 가야 살 길이 나오는데 이들 부부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특검 출석을 거부한 채 팬티 바람으로 강력하게 저항한 모습이 고스란히 CCTV에 찍혀 그 모습이 곧 국민들한테 공개될 것 같다. 국민들은 지난 3년 윤석열이 집권한 동안 나라가 개판으로 운영되었다면서 힐난한다. 무속인들을 옆에 끼고 나라를 좌지우지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자 비분강개 한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김건희를 둘러싼 주술공화국이었다는 것이다. 날마다 대통령은 술에 취해 비몽사몽인 채로 국정을 운영 함으로써 그가 바이블처럼 되뇌던 공정과 상식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으니 그걸 믿고 따랐던 국민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일약 이탈리아어로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를 주창한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같이 스타덤에 올라 대통령이 된 그는 검찰공화국을 만드는 데 진력한 것밖에는 없었다. 국민들은 검찰총장까지 지낸 대통령이라서 법치를 밥먹듯 운운해 모든 일에 법의 잣대로 국정운영을 잘 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때 민정수석실 공직비서관을 지냈던 최강욱 전 국회의원은 인사검증 때 그를 부적격자로 판단해서 보고했지만 나중에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게 잘못이었다고 꼬집었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장관도 검찰총장 후보자 면접 때 검찰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주변 참모들이 그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에워싼 것이 결국 대한민국을 망치게 한 주범을 만들었다. 당시 검찰개혁을 놓고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윤석열 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시키는 것을 걱정하면서 반대했다. 심지어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2020년 11월 24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한테 직무집행정지를 명령하고 징계를 청구하는 등 대립각을 세웠다. 지금 중요한 것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검찰총장을 시키라고 간언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다. 그가 대통령이 안되었으면 우리 나라가 이토록 절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3년만에 실패한 계엄령으로 권좌에서 물러나 영어의 몸이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가 임기를 다 마쳤더라면 무슨 더 큰 일이 생겼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천운이 남아 있다. 임기 시작부터 정치검찰을 동원해서 정적 이재명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결국 수사의 칼끝이 부메랑 되어 그의 심장에 꽂혔다. 모든 일이 인과응보요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의 권세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것만 같았지만 하늘은 그 조짐을 알고 칼을 빼앗아 역사의 심판정에 세웠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8.24 17:07

[오목대]고령층의 AI·디지털 소외

세상이 온통 AI(인공지능) 얘기다. 일상생활에서부터 교육이며 산업현장, 미디어, 의료, 투자결정에 이르기까지 관련되지 않은 분야가 없다. 음식점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못하면 ‘밥도 굶게 생겼다’는 우스개 말이 나온지 얼마 안됐는데 그건 고전이다. 챗GPT 같은 생성형AI가 나오고, 한 걸음 더 나간 피지컬AI가 거론된다. 요즘 전주시내에는 피지컬AI 국가예산을 확보했다는 홍보가 요란하다. 노인들 입장에선 세상이 어지럽다. 눈만 뜨고 일어나면 확 달라져 있어 무서울 정도다. 그 속도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얼마 전까지 손만 흔들면 잡을 수있던 택시도 이제 호출앱을 깔지 않고 타기 힘들어졌다. 노인들이 많이 타는 시내버스 요금도 현금 결제 비율이 1%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년층을 비롯해 저소득층, 장애인, 농어민 등 정보취약계층은 더욱 소외되고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다. 교육부가 19일 공개한 ‘1차 성인 디지털 문해능력조사’는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9∼10월 만 18세 이상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내용은 스마트폰을 조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측정했다. 예컨대, ‘카카오톡으로 받은 온라인 청첩장 확인해 결혼식장 찾아가기’ ‘기차표 앱으로 부산에서 서울 가는 표 예매하기’ ‘키오스크를 이용해 음식 주문하기’ ‘은행 앱으로 송금하기’ 등이다. 이러한 디지털 기기 활용능력을 수준1부터 수준4까지 4단계로 구분했다. 수준1은 ‘일상생활에서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 조작을 어려워하는 수준’이며 수준4는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활용해 다양한 문제 해결이 원활한 수준’이다. 조사에서 ‘수준 1’에 해당하는 사람이 8.2%였다. 100명 중 8명이 디지털 문맹인 셈이다. 전체 성인 가운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은 40.4%였는데, 60대 이상이 77.7%였다. 학력이나 소득이 낮을수록 디지털 문해능력이 떨어지는 경향도 나타났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개인의 디지털 역량 차이는 소득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의 건전성과 국가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초중고 교육은 물론이려니와 정보취약계층에 대한 교육이 절실해졌다. 노인복지관이나 거점 경로당, 대학 평생교육원 등을 활용해 AI와 디지털 교육을 지원했으면 한다. 학습장과 강사 확보, 취약계층에 대한 바우처 지원 등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을 표방했다. 이 목표도 디지털 격차를 극복해야 가능하지 않을까.(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8.21 17:27

[오목대] AI 시대의 전북 산업생태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며칠전 "1945년 독립은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한 발언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왔다. 한편에선 당장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쪽에선 불편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고 옹호하고 나섰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조상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되새겨야 할 광복절에 과연 독립기념관장이 이같은 언급을 하는게 적절한가” 라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의 항복과 연합국의 승리가 패전국 식민지의 독립으로 이어진 건 사실이나, 그 이면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임시정부의 노력, 숱한 민초들의 끊임없는 저항이 있었음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참전이 승리의 결정타이긴 했으나, 유럽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처칠은 어쨋든 스탈린과 더불어 히틀러에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싸워 베를린을 정복시켰던 인물이다.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한 처칠에게도 사실은 통렬한 아픔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장관이었던 처칠은 오늘날 튀르키예 갈리폴리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해 정치생명이 끝나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대는 바로 오스만제국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 튀르크가 아니던가. 이스탄불 인근 갈리폴리에서 세계 최강 영국 해군 중심의 연합군은 무려 25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결국 패퇴했다. “유럽의 병자인 오스만 따위가 감히 대영제국 해군의 적수가 되겠느냐”는 오만과 안이한 현실인식이 이러한 참사를 부른 것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뒤 제2차대전이 터지면서 처칠은 정계에 컴백했으나 갈리폴리 전투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치욕이었음이 분명하다. 천하의 처칠조차도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만에 빠지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20일 서울 상의회관에서 '기업성장포럼 발족 킥오프 회의'를 개최했는데 이날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발표됐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10대 기업과 수출품목은 대부분 변화가 없는 반면, 미국은 엔비디아·애플 등 혁신기업이 10대 기업을 새롭게 채우며 산업 구조가 역동적으로 재편됐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시가총액 기준)은 20년전 엑슨모빌, GE, 마이크로소프트(MS), 시티은행 등이 10대 기업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AI를 리드하는 엔비디아, 애플, 아마존, 알파벳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외하고 모두 바뀐 셈이다. 반면 한국(자산총액 기준)은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으로 큰 변화가 없었고, HD현대, 농협이 새로 진입하는데 그쳤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시대적 조류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거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낙오한 전북 또한 새롭게 도약할 것인지, 아니면 더 밀려날 것인지 다시 한번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다. AI시대를 맞아 전북 산업생태계를 전면 재편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집단지성의 힘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8.20 18:31

[오목대] 위안부 피해자 외침... '내가 증거다'

지난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기림의 날은 2017년 12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공식적·법적인 국가기념일이 됐다. 올해로 8년째지만 국가기념일로서의 기림의 날은 아직 친숙지(?) 않다. 기림의 날을 8월 14일로 제정한 배경이 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 1991년 8월 14일이다. 그날, 침묵을 깬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외침은 큰 힘을 불렀다. 피해 할머니들의 공개 증언이 이어지고 거대한 역사적 실체가 다가왔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위안부 피해자 찾기에 나선 것도 그즈음이었다. 여가부는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을 위해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해 8월 14일부터는 위안부 피해자 등록이 시작됐다. 사실 일본 정부는 30여 년 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이른바 ‘고노 담화’를 통해서다. 당시 고노 장관은 역사 연구와 교육으로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도 약속했지만, 고노 담화의 의미와 효력은 지속되지 못했다.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외침이 만들어낸 연대의 힘은 강했으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역사는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오히려 폄훼와 왜곡이 더해졌다. 올해도 전국 곳곳에서 기림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주제인 ‘용기와 연대로 되찾은 빛, 평화를 밝히다’에는 피해자의 용기 있는 증언이 사회적 연대로 확산하고, 기억과 책임의 메시지가 미래세대에 이어지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 안타깝게도 그 연대의 힘을 만들고 키워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작고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이옥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생존자는 6명 남았다. 게다가 생존 할머니들은 고령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앞날을 예견할 수 없는 처지다. “일본은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겠지만 나는 죽지 않을 거야. 내가 죽더라도 내 문제를 함께 하는 젊은이들이 내 문제를 기억하고 함께할 거야.” 진실을 알리고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는 일에 여생을 바쳤던 고 김복동 할머니의 목소리가 아직 쟁쟁하다. “내가 증거”라고 외쳤던 할머니들이 떠나고 있다. 기억과 증언의 힘이 사그라지고 있으니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국가적 과제가 더 무겁고 절박해졌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8.19 17:24

[오목대] ‘묻지마 해외연수’, 달라질까

명분은 늘 그럴싸했다. 그래서 각 기관이 경쟁적으로 추진했고, 주변에서는 거마비까지 건네며 장도(長途)를 응원했다. 그들이 무리 지어 비행기에 오른 후 돌아올 때까지의 실망스러운 행적이 속속 드러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대한민국에 해외연수 열풍이 불었다. 정치인과 공무원, 시민단체·언론인·농어민까지 너도나도 명분을 만들어 해외로, 해외로 나갔다. 마치 모든 문제의 답이 바다 밖에 있는 것처럼. 글로벌시대, 선진 사례를 직접 체득함으로써 조직의 정책 역량을 강화하고, 개인의 전문성 향상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해외 일정을 아예 여행사에서 짜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외유성 해외연수의 부끄러운 민낯과 비위가 속속 드러났다. 이 같은 논란에 단골로 등장한 게 지방의원들이다. 지방의회는 그때마다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전북지역 시·군의회가 예정된 해외연수를 속속 취소해 눈길을 끈다. 고창군의회를 시작으로 익산시의회, 군산시의회가 잇따라 올 공무국외연수를 취소했다. 부적절한 해외연수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난을 받을때도,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지역사회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비행기에 오르던 사람들이다.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할당된 몫’을 챙겨왔던 그들이 올해 예산 전액을 반납했다. 지역경제 회복과 주민 생활안정, 시급한 지역 현안 처리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지방의회, 지방의원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를 비롯해 전주와 익산·군산·고창 등 전북지역 대다수의 지방의회가 국외연수비 부풀리기 의혹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잔뜩 몸을 움츠린 것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던 지방의회 해외연수가 도덕적 지탄을 넘어 위법성 문제로 수사대상에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성의 목소리 대신 생색을 냈다. ‘시민 생활고를 고려한 솔선수범’이라며….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자체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전주시는 빚이 올해 6000억원을 넘어섰다. 관행으로 굳어진 외유성 해외연수에 마냥 혈세를 낭비할 수는 없다. 하루라도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지방의회 뿐만이 아니다. 공공기관의 해외연수 프로그램 전체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전북지역 각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해오다가 서거석 전 교육감이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수혜자가 급격히 늘어난 학생 해외연수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꼭 바다 건너에 찾고자 하는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해외 성공사례를 참조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안방에서도 상세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해외에 나가 시야를 넓히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리가 있다. 주민 혈세에 손대지 않는다면 말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8.18 18:25

[오목대]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대항마

세상사가 경쟁없이 발전할 수는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영역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승자가 가려진다. 누가 더 남모르게 땀 흘렸는가가 성패를 가늠한다. 우리 전북은 DJ가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부터 DJ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정서가 생겨났다. 1987년 1노3김이 맞붙은 대선 때 DJ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북인들이 똘똘 뭉쳤다. 그 때부터 만들어진 민주당 일당체제가 40년 가까이 깨지지 않고 있다. 세상이 하루게 다르게 변해 가는데 전북인이 민주당 하나로 똘똘 뭉친 것은 가히 기록적이다. 지난해 총선 때 10석 전석을 석권토록 한 것이 동력으로 작용해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이 82.65%를 얻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입지자들이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난리법석이다. 그 이유는 민주당 공천을 받는 게 보증수표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복절 전까지 입지자들이 유급당원을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현재 전북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당원이 늘어 15만8천이 웃도는 것으로 파악된다. 도민 가운데 9.1%가 민주당원인 셈이다. 하지만 당원 가입을 안했어도 도민들이 민주당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다.그래서 민주당은 항상 전북을 안방으로 여긴다. 이재명 대통령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관계로 어떻게 하면 보은할 것인가를 조각 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대통령이 그냥 국토부장관 등 전북 출신 4명을 장관으로 발탁한 게 아니었다. 앞서 지적한대로 민주당이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선출직을 뽑아온 관계로 온실속의 화초마냥 억세질 못하고 나약하기 그지 없다. 대외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선출직으로 진출해 아직껏 혁신은 커녕 새바람을 불어 넣지 못하고 있다. 오직 당원 관리만 잘 하면 누구나 선출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물안의 개구리 같은 좁은 세상에 갇혀서 살고 있다. 특히 단체장과 같은 당이면서도 지역발전에 관해 엇박자를 내는 바람에 불안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지방의원 상당수가 일정한 소득이 없는 사람이 많아 항상 부정에 연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초록은 동색이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은 지방의원들에 강하게 징계를 해야 함에도 어물쩍하게 넘겨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난도 쏟아진다. 아무튼 이런 구태의연한 정치적 폐단을 없애려면 경쟁의 정치체제가 작동해야 한다. 지난 총선 때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후보)의 바람이 불어 조국혁신당이 비례대표에서 12석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조국 대표가 사면복권 되면서 정치전면에 나설 것이 확실함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일단 귀추가 주목된다. 박지원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합당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거대여당의 독주속에서 견제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도내서도 민주당이 진입장벽을 높혀 놓아 경쟁력 있는 일부 단체장 후보들이 조국혁신당으로 출마준비를 하고 있다. 도민들이 지난 총선 때처럼 조국혁신당에 표를 주면서 민주당을 견제할지는 의문이 든다 .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8.17 16:26

[오목대] 지역 인재 외면하는 태권도원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최종 결과가 주목된다. 일단 2026년 상반기 국가유산청의 인류무형유산 차기 신청대상 공모에 태권도를 신청한뒤, 2028년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최종적으로 2030년 최종 유네스코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36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태권도가 단순한 무예를 넘어 명실공히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평화와 존중의 철학이 담긴 무형유산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때마침 오는 28일부터 31일까지 태권도원 T1 경기장에서 ‘무주 태권도원 2025 세계태권도 그랑프리 챌린지가 개최되기에 요즘 태권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때보다 크다. 태권도원은 지난 2004년 말 무주군이 태권도공원 조성지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2009년 9월 4일 태권도공원 건립공사 기공식을 하면서 이날을 태권도의 날로 지정했다. 2014년 4월 24일 태권도원이 개관했기에 올해로 벌써 11년이나 됐다. 무주는 말할것도 없고 전북인들은 태권도 종주국의 메카에 있다는 자부심도 가득하다. 세계 유일의 태권도 전문공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게 있다. 무주 태권도원이 개관한지 만 11년이 됐으나 당초 기대했던 ‘태권도의 성지’로서의 위상과 전북·무주군의 기대와는 동떨어지게 흘러가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본부는 춘천으로 이전이 확정됐고, 서울 강남에 있는 국기원의 무주 이전은 흐지부지됐고 누구 하나 챙기는 사람이 없다. 더 큰 문제는 태권도원을 관장하는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이 외지인들의 잔치에 그치고 있다. 정작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전북의 태권도인들은 겉돌고 있는 것이다. 제1·2대 이대순 이사장부터 시작해, 제3대 배종신, 제4대 김성태, 제5대 이상욱, 제6대 오응환 이사장까지 단 한 번도 전북 출신이 임명된 적이 없다. 이쯤되면 태권도원이 왜 무주에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농촌진흥청이나 국민연금공단에는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만큼 많은 전북 인재들이 채용되거나 핵심 포스트에 발탁되고 있다. 나주 혁신도시에 있는 한전, 진주혁신도시에 있는 LH 본사에 광주전남이나 경남 출신 인재가 포진하는 것을 보면 태권도원의 인사 운영은 뭔가 크게 잘못돼 가고 있는게 분명하다. 과거는 그렇거니와 새 정부도 출범한 만큼 이제는 전북 출신 인사가 태권도원의 재단 이사장과 사무총장을 맡아야 한다. 이들이 무주 태권도원의 발전을 적극 추진해야 할 때다. 전북 출신 태권도인들 중에서 국가대표를 지냈거나, 체육행정에 일가견을 가진 이들은 수 없이 많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사람도 있고, 두루 태권도 행정을 경험한 풍부한 경력자도 있다. 정권이 바뀌고, 이젠 시대가 변해 비정상의 정상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체감해야 할 때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8.13 19:17

[오목대] 일본 총리와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인 열 명 중 여섯 명이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단다. 일본여론조사회가 ‘종전 80주년’을 앞두고 지난 6일과 7일, 남녀 3천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다. 정확하게는 응답자의 62%가 참배해야 한다고 답했고, ‘참배해서는 안 된다’고 답한 응답자는 33%에 그쳤다. 태평양 전쟁의 성격에 대해서도 42%는 ‘침략 전쟁’이라고 평가했지만 12%는 '자위권 성격의 전쟁'이라고 답했고, 전체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44%는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좀체 바뀌지 않는 일본 국민의 정서가 반갑지 않지만 그나마 평화헌법에 대한 평가에 60%가 ‘이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니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광복 80주년, 저들에게는 종전 80주년인 올해도 8월 15일을 앞두고 일본 총리와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에도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많은 정치인이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해 논란이 됐던 터다. 더구나 초당파 의원 70여 명은 이날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까지 만들어 참배를 강행했었다. 돌아보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은 1985년 8월 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와 각료들의 참배가 시작이었다. 그 후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항의에 중단됐던 신사참배를 다시 살려 논란의 불을 지핀 사람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다.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아예 공약으로 내세웠던 그는 급랭하는 한일관계에도 불구하고 재임 기간 6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참배를 강행했다. 근래 들어 일본에서도 극우성향 국민이 늘어나면서 정치인들이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신사참배에 나서는 모양새다. 기시다 현 총리의 퇴진설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차기 총리 후보로 나선 정치인들의 성향이나 행보는 더 놀랍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극우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나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이기도 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도 빠지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온 정치인들. 특히 해마다 두 번씩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온 다카이치 후보는 ‘총리가 돼도 참배하겠다’고 밝혔고, 고이즈미 농림상은 기자들의 질문에 ‘중의원이 된 이후 신사참배를 한해도 거르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에둘러 표현했으니 신사참배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인식은 더욱 분명해졌다. 사실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가늠케 하는 상징적 기준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인가. 한일관계가 나아지리란 기대나 희망이 속절없어 보인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8.12 17:26

​[오목대] 광장과 공원, 그리고 전주

광복 80주년, 서울의 랜드마크 광화문 광장이 다시 주목받는다. 8월 15일, 뜻깊은 날을 기념하는 경축행사와 함께 이재명 대통령의 정식 취임식인 국민임명식이 이곳에서 열린다. 광화문 광장은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모스크바 붉은 광장, 베이징 천안문 광장처럼 도시와 국가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랜드마크(landmark)는 특정 지역을 대표하거나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독특한 지형이나 시설물을 말한다. 전국 각 지자체가 대규모 광장과 특색 있는 공원을 조성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각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해 속속 사업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17년간 공들여 지난해 준공된 경남 진주시의 진주대첩광장을 꼽을 수 있다. 또 경기도 용인·화성시 등 곳곳에서 랜드마크 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광장과 공원은 시민들이 모이는 복합문화공간·휴식공간이자,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사공간이다. 그렇다면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천년도시’라고 자부하는 전주는 어떨까. 가장 아쉬운 공간이 바로 광장과 공원이다. 물론 전주에도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 적지 않다. 노송광장·오거리문화광장·덕진광장·효자광장·서곡광장 등이다. 하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곳이 없다. 대부분은 광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심지어 어떤 곳은 광장이라 불리는 이유조차 알 수 없다. 공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이 주거지 인근에 조성된 소규모 근린공원이고, 나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가운데 올해 전주시가 추진한 ‘덕진공원 열린광장 조성’ 사업이 논란에 휩쓸렸다. 유서 깊은 전주의 명소, 덕진공원 입구부에 넓은 잔디광장을 조성하겠다며 시민공원을 지켜온 300여 그루의 나무부터 제거했다. 공원 어디서든 호수가 보일 수 있는 개방형 휴식공간을 만들겠다는 이유에서다. 당연히 시민 반발이 이어졌다. 광장은 소통·공론의 장이다. 그런데 덕진공원 열린광장은 조성계획에서부터 ‘시민과의 소통’이 없었다. 사업이 계획대로 마무리돼 광장이 조성되더라도 그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최근 수년간 지역 곳곳에서 재개발사업, 도시정비사업이 추진됐다. 도시 변혁·도시공간 재창조를 위해 공공영역에서 광장이나 공원을 설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전주시가 도시의 거점, 금싸라기 땅을 빈 공간으로 남겨 시민에게 돌려줄 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5년간 유예된 ‘도시공원 일몰제’가 지난달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도심 녹지공간, 휴식공간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민 휴식공간이면서 대규모 행사와 집회를 열 수 있는 소통공간의 필요성은 여전히 높다. 민선8기 우범기 시장은 취임과 함께 ‘전주 대변혁’을 공언했다. 도시의 권역별 거점과 녹지를 과감하게 ‘빈 공간’으로 남겨, 시민의 발길로 채우겠다는 의연한 결단이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8.11 18:34

통합반대가 공천받기 위한 수단?

미국 트럼프대통령이 관세폭탄을 터뜨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금 대내외 상황이 하루 앞도 예측 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 녹록치 않게 돌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경쟁력을 확보하려고 제기한 완주 전주 통합이 정치인들의 반대로 또 무산될 위기를 맞아 걱정스럽다. 전북은 그간 정권들로부터 농락을 당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보수 때는 전북이 이 나라에 속하느냐는 질문에 부딪칠 정도로 찬밥신세였고 진보 때는 혹시나 행여나 하면서 망건 쓰다가 장 파하는 꼴이 되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때 전북이 처한 상황을 3중고로 표현할 정도로 전북의 현실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있어 국토부장관을 비롯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장관을 전북 출신으로 발탁했다. 이재명 대통령 한테 82.65%의 지지율을 보인 전북이 첫 조각 때 4명이나 요직 장관에 발탁된 것은 이 대통령이 전북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전북은 특히 대광법 통과로 국비로 사회간접시설을 확충할 수 있는 기회게 만들어지면서 완주 전주 통합여건이 예전과 달라졌다. 완주군민들은 임진왜란 때 이치 웅치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전주성을 지켰던 자랑스런 충렬의 후예들인 만큼 완전 통합을 이뤄 장차 2세들 한테 자랑스런 선조들로 남아야 할 것이다. 당장 눈 앞에 놓인 이익 보다는 미래를 바라다 보는 안목을 갖고 통합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지금 통합문제가 서둘러 추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다른 지역이 메가시티로 가고 있어 더 이상 늦춰선 안된다. 우선 당장 완주군민들은 아쉬울 게 없어 굳이 희생해 가면서 통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시안적 생각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정권적 차원에서도 인센티브 등 도움 줄려는 의지가 엿보여 이를 마다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간 정치인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대를 하는 게 자신 한테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 반대목소리가 커졌다. 그 이유는 결정권을 쥔 주민들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가로 막는게 최상이라고 잘못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껏 가마솥 불볕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반대의 목청을 높힌 이유는 민주당 공천 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통합을 반대하는 것 자체가 지고지선 한 것으로 말하지만 개인의 정치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선거운동 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간 내면을 보면 군수 자리를 놓고 피튀기는 싸움이 반대논리를 이끌고 있다. 아무튼 정부도 주민투표를 부칠 것인지 정확한 로드맵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찬반양측간에 갈등의 골만 더 깊게 패이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도민들이 전북의 시간이 왔다고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통합을 통해 전북의 에너자이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완주와 전주가 통합되면 땅덩어리가 지금보다 5배로 넓어져 경제영토 확장으로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가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8.10 17:50

[오목대] 전북 도지사들의 인생 후반전

인생은 전반전 못지않게 후반전이 중요하다. 은퇴 후 인생 2막을 후회없이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초고령 시대를 맞아 더욱 그렇다. 요즘 장례식장에 가보면 100세를 넘기고 돌아가신 분들이 흔하다. 이제 본업에서 퇴직한 후 30∼40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관심사다. 퇴직 후 활동이 더욱 빛나는 인물은 누굴까. 아마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James Earl Carter, Jr 1924∼2024)가 아닐까 싶다. 그는 지난해 말 100세까지 장수하다 서거했다. 재임 중 실적만 보면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이었다. 국내 경제정책의 실패와 외교분야에서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그는 퇴임 후가 더 화려하다. 세계 곳곳을 돌며 평화의 메신저 역할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또 사랑의 집짓기 운동(해비타트) 등 왕성한 자원봉사 활동을 벌였다. 가장 '성공한 노년'을 보낸 셈이다. 이를 전북지역으로 좁혀보면 어떨까. 전북의 수장(首長)을 지낸 도지사의 경우를 보자.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전북 도지사를 역임한 인물은 현 김관영 지사를 포함해 31명이다. 이들 중 28대 조남조 지사까지는 관선시대였다. 그리고 1995년 첫 민선지사로 유종근 지사가 당선되었다. 이후 강현욱, 김완주, 송하진 지사가 바톤을 이었다. 이들이 어떤 노후를 보내고 있는가가 궁금했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지난 2일 전주 완산구청 뒤 전북역사문화교육원에서 열린 송하진 지사(73)의 강연을 듣고서다. 그 전까지 도지사를 지낸 분들은 대개 전북을 떠나 생활하다 작고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송 지사는 지역에 거주하며 재능기부를 통해 활동적 노년(Active Senior)을 보내는 중이다. 이날 송 지사는 ‘서예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1시간 30분 동안 특유의 입담과 유머로 열강을 펼쳤다. 9월부터는 후백제시민대학 학장을 맡아 봉사하기로 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지낼까. 유종근 지사(81)는 퇴직 후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풀려나 2016년에 국회의원 선거(전주시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회에서 목사인 부인과 함께 지내고 있다. 민선과 관선 지사를 지낸 강현욱 지사(88)는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장과 조선대 관선이사장, 군산고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회장으로 활동했다. 올해 6월에는 전주시내 한 음식점에서 가까운 분들이 모여 미수(米壽)잔치를 차려주었다. 김완주 지사(79)는 (사)천년전주사랑모임 이사장을 맡았다 지금은 병원에서 투병 중이다. 이들은 한때 정치무대에서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인생 후반전은 건강과 관계, 재능여부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이다. (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8.07 16:44

[오목대] 불붙은 전북교육감 선거

쿠릴타이는 칸의 명령에 의해 개최됐던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이자 회의다. 우리에겐 몽골이 익숙하지만 사실은 흉노, 선비, 거란 등도 쿠릴타이가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몽골에 복속된 시기의 고려왕들도 부마(황제의 사위) 자격으로 참석했다는 거다. 주요 기관이나 단체 등은 명칭이나 형식만 다를뿐 대부분 쿠릴타이를 가지고 있다. 전북대의 경우 총장과 학장, 부총장과 처장 등 35명으로 구성된 대학 내 최고 의사기구인 학무회의라는게 있다. 내년말로 예정된 전북대 총장 선거를 앞두고 몇몇 후보가 자천타천 거론되고 있는데 학교 안팎에서는 학무회의 멤버 여부가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예를들면 백승우 전 농생명대 학장, 송양호 전 법전원장, 윤영상 전 기획처장, 조재영 전 산단장 등이 바로 학무회의 경험을 지닌 차기 총장 후보군들이다. 전북대 총장 선거보다도 요즘 지역정가의 화두는 내년 6월 3일로 예정된 교육감 선거다. 서거석 전 교육감이 낙마하면서 선거전은 확 불이 붙었다. 이남호 전북연구원장은 이달말 원장직에서 사직하고 9월초부터 본격적인 교육감 선거 채비에 나설 예정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주시 금암동 종합경기장 사거리 주변 건물에는 유력한 교육감 후보들이 사무실을 마련, 앞으로는 거의 매일 경쟁자를 마주치면서 선거전을 치러야 할 상황이다. 이남호 전북연구원장, 노병섭 새길을여는참교육포럼 대표,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 등이 바로 이 주변에 사무실을 마련했다고 한다. 김윤태 우석대 부총장도 9월말 출판기념회를 신호로 본격적인 출마 채비에 나설 것이라는 후문이며, 황호진 전 부교육감, 유성동 좋은교육시민연대 대표 등의 출마설도 나돌고 있다. 교육감 선거의 이슈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리기 위해 각 후보들은 민심얻기에 나섰다. 한쪽에선 “일선 교사들이 아닌 대학교수들이 교육감을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가 하면, 다른 편에선 “김승환 시즌2가 과연 전북교육을 위한 해법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교육감 선거전에서도 “큰 조직의 경영이나 관리를 성공적으로 해본 CEO로서의 경험도 없이 전북교육을 이끌어가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소위 ‘쿠릴타이’ 참석 경력을 중시하는 목소리도 높다. 또다른 이들은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재명 대통령과 코드를 맞출 수 있는 친분있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닌게 아니라, 과거 교육부나 중앙정부와 시종 대립각을 세우면서 결과적으로 전북교육에 부담을 줬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다. 교육관련 단체 등은 유정기 전북교육감 권한대행에 대해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유정기 권한대행을 향해 쏟아내고 있는 이러저런 요구는 결국, 내년 교육감 선거전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나 이해관계가 저변에 깔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8.06 18:11

[오목대] '쿠팡'과 24시간 도는 선풍기

2018년에 개봉된 독일 영화 <인 디 아일(In the Aisles)>은 독일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동독 출신인 토마스 슈투버 감독은 노동자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면서도 통일된 독일의 현재와 변화된 환경에서 그들이 겪는 갈등을 섬세하게 들춰냈다. 감독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치적 영화란 혐의(?)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인데,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것은 또 있다. 야간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 거대한 상품 더미로 채워진 대형마트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 영업시간이 끝나면 거대한 물류창고가 되는 대형마트. 한 줌 빛도 새어들지 않는 이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요한스트라우스의 왈츠곡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넓지 않은 통로를 지게차가 오가며 싣고 옮겨 내려놓는 물건을 고객들이 가져가기 쉽게 다시 진열하는 일. 지극히 반복적인 노동이 이루어지지만, 잘 구획된 질서 정연한 공간과 요한스트라우스나 브람스의 클래식 음악이 쉼 없이 흘러나오는 이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4년 전 여름, 쿠팡의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물류창고 안 열악한 노동환경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을 때 이 영화 <인 디 아일>의 대형마트 속 풍경이 떠올랐다. 쿠팡의 물류창고 시설은 놀라웠다. 축구장 15개 크기라는 거대한 공간, 수백 명이 일한다는 이곳은 사방이 막혀 있지만 더위를 식혀줄 시설은 에어컨 대신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선풍기가 전부였다. 물건을 하나라도 더 쌓으려고 층과 층 사이에 간이층까지 만들어 놓았던 창고까지 거들어 환경은 최악. 이곳 창고 안 선반마다 놓여 있던 멀티탭에서 시작됐다는 덕평물류센터 화재는 불을 끄는 데만 5일 넘게 걸렸다. 쿠팡 물류센터의 환경은 달라졌을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쿠팡의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제대로 된 휴게 공간 및 에어컨 마련’과 ‘2시간 이내 20분 휴식 보장’이 이들의 요구다. 현실을 들여다보니 더 놀랍다.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여전히 많고 그중에는 창문이 없는 곳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45분 정도의 점심시간 뿐. 견디기 힘든 염천 속 불볕더위와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알고 보니 물류센터는 창고로 분류돼 냉방 시설 설치 의무가 없단다. 쿠팡 말고도 다른 물류창고의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를 이제 알겠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소식도 이어지고 있지만, 노동환경은 좀체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5.08.05 17:47

[오목대] 만경강·새만금 수변도시, 기대와 우려

장밋빛 미래일까, 예고된 실패일까. 전국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수변도시 프로젝트’가 새삼 관심이다. 하천·호수·항만 등 물과 접한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주거와 문화·레저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미래지향적 도시 모델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도시개발 패러다임으로도 주목받는다. 여기저기서 수변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추진하는 부산 에코델타시티와 경기도 화성 송산그린시티, 시흥·안산의 시화멀티테크노밸리 등을 꼽을 수 있다. 단순한 공간 확장을 넘어 지역사회의 수자원과 자연환경을 도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전환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전북에서는 ‘만경강 수변도시’와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익산시가 역점 추진하고 있는 7000세대 규모의 미래형 주거단지 ‘만경강 수변도시’를 놓고는 최근 사업 전면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와 논란이다. 지역의 인구구조와 주거 수요, 구도심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익산시는 단순한 주택 공급이 아니라 균형발전과 미래 성장기반을 위한 새만금 배후도시이자 공공기관 거점도시 조성 프로젝트라고 반박한다. 새만금에도 6.25㎢ 규모, 거주 인구 3만9000명으로 설계한 거대한 수변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바다를 메운 수변공간에 친환경 도시를 만들어 스마트 서비스와 산업을 결합하는 형태로 주거와 업무·관광·레저가 집약되는 복합도시다. 약 2조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새만금지구 첫 도시개발 사업으로 올 하반기 분양을 앞두고 있다.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토지 분양과 기업 유치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기후위기 시대, 홍수 등 재해 위험성도 제기돼 수질 회복과 해수면 상승에 대비한 관리수위 조절 등의 과제도 안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향후 새만금지구에 70만명의 인구 유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 과연 가능한 청사진인지 의문이다. 더 걱정인 것은 만경강 수변도시다. 단순 주택공급 사업이 아닌 미래 주거 수요에 대비한 신성장 거점도시 조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친수공간 활용계획과 기후위기에 대응한 지속가능한 도시 전략 등 친환경 미래도시라고 할만한 공간디자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구절벽 시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의 투자 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분양도 걱정인데, 새만금 배후도시를 내세운 만경강 수변도시 사업까지 거의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 시흥 ‘거북섬 개발사업’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이다. 1994년 시화호 방조제 완공 이후 세계적 수준의 해양레저도시라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걸고 개발된 시흥 거북섬은 최근까지 유령도시로 불렸다. 수요 예측 실패에 따른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마저 이 지경이다. 장밋빛 전망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5.08.04 18:32

[오목대] 통합걸림돌은 정치인

전주 용머리고개로 호남선 철도가 부설되었으면 전주가 어떻게 되었을까. 유림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좌절되었지만 지금도 후회스럽다. 전주 팔달로가 4차선으로 좁게 개설된 것도 주민들 반대 때문이었다. 완주 전주 통합문제가 찬반양측간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지만 훗날 전주 용머리 고개로 호남선을 부설 못해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처럼 다시금 통합을 못하는 일이 생겨선 안될 일이다. 4번째인 완주 전주통합문제가 주민들의 의사에 전적으로 달려 있지 않고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놀아나는 느낌이다. 누가봐도 완주와 전주는 역사적 배경이나 경제적 관점에서 상호의존적이며 불가분의 관계라서 통합해야 옳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로 번번히 무산되었다. 이 문제는 현재의 가치와 미래가치가 충돌하는 양상이라서 전북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 이상 늦춰선 곤란하다. 지역을 발전시키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소비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고용창출도 더 늘게 할 수 있다. 전주는 땅덩어리가 좁아 더 이상 공장을 유치할 수 없다. 재건축조합을 통해 아파트를 신축하지만 비싼 땅값 때문에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젊은층은 내집 마련을 위해 인근 완주로 빠져 나간다. 특히 청년들이 장래를 내다보고 워라밸 할 직장이 없어 청년들의 엑소더스로 인구감소가 심각하다. 지금 완주군민들은 군의 재정상황이 좋아 아쉬울 게 없고 각종 복지시스템이 잘 갖춰져 불편할 게 없다고 자족하지만 커 가는 2세들을 생각하면 오늘에 만족하지 말고 내일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분명 수소도시 완주군은 전주와 전북의 에너자이저다.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시설이 잘 갖춰져 외지업체들이 공장을 이전해오고 싶은 지역이다. 그 이유는 그간 조성한 공장용지가 동이나 다시 추가로 부지를 마련해야 할 상황까지 다달았기 때문이다. 그간 완주군민들은 알게 모르게 전주와 인접한 관계로 피해 본 측면이 많다. 폐수배출 업체가 들어온 것을 비롯 혐오시설이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생활환경이 위협 받았다. 전주가 시세 확산에 따라 물리적으로 완주군을 잠식한 바람에 완주군민들의 피해의식만 커져갔다. 관선시대에 저질러진 행정의 횡포가 지금도 힘으로 밀어부친 것으로 비춰진다면 군민들은 반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부 군민들이 김관영 지사의 전입신고를 방해하거나 우범기 시장 한테 물세례를 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무튼 각 시도마다 통합이 대세로 파이를 키우려고 메가시티 건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 때 완주 전주 통합은 시대적 과제다. 어찌보면 이재명정부 출범으로 전북이 발전할 기회를 맞았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통합은 찬반양측이 물리적으로 충돌하지 말고 대화를 통해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찬성측이 105개 상생사업 추진을 조례를 통해 실천하겠다고 의지를 보인 만큼 완주군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반대가 아직도 우위를 점해 어렵지만 결론은 정치인의 통큰 결단이 필요하다. 통합시장이나 통합시의회 의장은 완주군 출신이 맡도록 하면 모든 게 끝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5.08.03 17:16

[오목대] 유튜브에 빠진 노인들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저녁에 침대에 누워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가장 즐겨 보는 것이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다. 전 국민이 거의 유튜브 중독 상태라 할 정도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 생활시간조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인의 수면시간이 1999년 조사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는데 “유튜브 등을 보는 사람이 늘어난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TV 시청은 큰 폭으로 줄어든 반면 유튜브 같은 동영상 시청이 대폭 늘었다. 유튜브는 20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허름하고 좁은 차고에서 탄생했다. 이듬해 검색의 제왕 구글이 전격 인수하면서 디지털 세상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창립 20년만에 온라인 동영상(OTT)은 물론 음원, 숏폼, 뉴스까지 휩쓸고 있다. 이처럼 유튜브가 빠르게 발전된 배경에는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 확산과 숏폼 기반의 인공지능(AI) 알고리즘 추천 구조가 자리한다. 이중 유튜브 알고리즘은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이 심각하다. 필터버블(Filter bubble)과 반향실(echo chamber)효과 때문이다. 여기서 필터버블은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화된 맞춤형 정보를 이용자에게 지속적으로 추천하는 것이다. 또 필터버블은 반향실이라는 독특한 정보환경 창출로 이어진다. 개인이 기존의 가치관 및 관점과 일치하는 정보에만 노출돼 확증편향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폐해가 지속되자 국회 입법조사처가 나섰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비판적 사고나 대안적 관점을 검토할 기회를 상실케 한다”면서 “정치적 확신이 극단화되는 정치적 양극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는 지난해 말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이나 태극기부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 이와 관련,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년층일수록 유튜브 중독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도 눈길을 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교수(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초청 강연에서 “노인에게 디지털 미디어 중독은 외로움과 고립감의 해소 수단일 수 있다”며 “정치적 견해 등에서 ‘내 생각이 맞다’는 심리적 지지를 얻으면서 중독이 깊어진다”고 설명했다. 60대 이상에서 유튜브 채널에 대한 신뢰가 높고, 허위 뉴스 검증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했다. 그동안 디지털 미디어 과몰입 대책은 아동과 청소년에 집중됐다. 하지만 노년층은 습득한 정보에 대한 검증 노력이 부족해 ‘인포데믹(infodemic·거짓정보 전염병)’ 우려가 크다. 노년층을 위한 중독 예방과 디지털 문해력 교육이 시급하다.(조상진 논설고문)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5.07.31 16:53

[오목대] 지역발전과 랜드마크

랜드마크(Landmark)란 항공과 해운에서 유래된 용어인데 멀리서도 눈에 띄는 물체를 의미한다. 특히 그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나 조형물 또는 자연경관은 랜드마크로서 톡톡히 기능하기 마련이다. 가시적 랜드마크 뿐 아니라 무형의 랜드마크도 중요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하면 성가족성당, 세계적인 축구팀 바르셀로나 또는 가우디가 생각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며칠전 최병관 전 행정부지사가 익산의 랜드마크를 만들자며 ‘모듈형 돔 구장’ 건립을 제안,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돔 구장은 단순한 야구장이 아니다. 콘서트, 박람회, 청소년 체전, 생활스포츠대회, e스포츠까지 연중 콘텐츠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다. 2036 하계올림픽 유치 추진단장을 맡았던 그는 “익산이 단순한 배후도시가 아닌 전략적 스포츠 거점도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이다. 내년 익산시장 후보의 일원으로 그가 던진 화두 하나는 비단 익산뿐만 아니라 도내 시군이 내년 지선을 계기로 향후 청사진을 어떻게 그려가고 실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주목을 끌었다. 돔 구장을 예로들면, 한편에선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과연 그 필요성은 있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할 수 있다. 또 한편에선 “가만히 앉아서 죽느니, 뭐라도 한번 해보자”는 반박도 있을 수 있다. 지역발전과 랜드마크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는 가히 폭발 직전이다. 특히 지역 출신 인사들이 대거 주요 직책에 등용되면서 도민들은 금방이라도 뭐가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딱히 눈에 확 들어오는 대형 프로젝트가 없다. 전북에만 주어지는게 아니고 타 시도에도 함께 배분되는 것은 사실 별게없다. 잔칫상 가운데에 있는 맛있는 요리가 가치있는 것이지, 똑같이 주어지는 밥 한그릇, 국 한그릇은 구태여 서둘러 먹을 필요가 없다. 가만 놔둬도 내 몫이기 때문이다. 이젠 전북에도 확실한 랜드마크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대부분 웅장하고 역사성이나 상징성이 있다.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나선 전북도 대표단이 엊그제 독일 최고 권위의 공연장 ‘슈타츠오퍼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랐다. 전북의 무형문화재인 부안 ‘띠뱃놀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고섬섬'이 1300명의 관객을 뜨겁게 사로잡았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촌스럽고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전북의 전통문화가 국내 예술단체 최초로 슈타츠오퍼 무대에 오른 사례라고 한다. K-컬처의 본 고장인 전북은 전통을 재해석해서 대중화 한다면 얼마든 성공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과거와 현대의 조화라고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는 전북은 앞으로 유형, 무형의 랜드마크를 통해 발전전략을 구사해야 할것 같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5.07.30 19:21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