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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반성문 쓰는 아버지 - 김학

김학 수필가 나는 2남 1녀의 아버지다. 그 아이들의 나이는 어느새 40대에 접어들었다. 나는 자녀들에게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방송국 프로듀서로서 직장 일에 바빠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을 내지 못했다. 또 문학을 한답시고 글 벗들과 어울려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불평불만 없이 잘 자라주었다. 그러면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뒤 성적이 상위그룹에서 머물렀으니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키우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사실 나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해야 되는 지를 몰랐다. 아버지 역할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7살 때인 31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 상여가 나갈 때 어머니는 큰아들인 나에게 삼베옷을 입히고 대나무 지팡이를 들려주며 상여 뒤를 따라가라고 하셨다. 나는 부끄럽다며 그 상복을 입지 않으려고 버둥거려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다. 그런데 그 때는 그것이 불효인 줄도 몰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나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배울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가 외아들이셨기 때문에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도 계시지 않았으니, 곁눈질로 배울 수도 없었다. 내 아들 형제가 아버지 노릇을 잘 하는 걸 보면서 나 스스로 반성하곤 한다. 내가 아버지 노릇을 잘못했기에, 두 아들이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는지 많은 관심을 쏟는다. 며칠 전에는 백승종의『조선의 아버지들』이란 책을 세 권 사서 아이들에게 우송해 주기도 했다. 그 책에는 조선시대의 이름난 아버지 12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책을 읽고 나한테서 배우지 못한 성공적인 아버지 노릇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조선조 청백리 정갑손이란 대쪽영감이 있었다. 자신은 조상대대로 초가집에 살며, 무명 이불을 덮고 살았다고 한다. 그가 함길도 감사로 근무하던 중 출장을 갔을 때 향시(鄕試)가 열려 그의 장남이 장원을 차지했단다. 출장에서 돌아온 정갑손은 향시 합격자 명단으르 확인하다 아들 이름을 발견하고 합격을 취소해 버렸다. 그러자 그 아들은 경상도 외가로 내려가 다시 향시에 응시하여 장원을 하고, 한양에서 치른 과거에서도 장원급제를 했다고 한다. 본 실력으로 장원을 했는데도 오해를 살까 봐 그렇게 경계으니, 얼마나 결백한 사람인가?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란 말을 잊고 살았다. 그 호칭을 사용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부나 숙부가 계셨더라면 그 아버지란 호칭을 사용했을 텐데 그런 기회도 나에겐 없었고 그 아버지 대신 어머니란 호칭은 다른 사람보다 배 이상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전남 강진에서 18년이나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용은 아내가 보내 준 붉은 치마에 편지를 써서 책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다. 그것이 이른바 유명한 『하피첩』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비록 『하피첩』을 만들어 줄 수는 없어도 이렇게 수필로서 내 마음을 전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또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에게 밥상머리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밥상머리교육-유언(1~49)]을 시리즈로 써서 아이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주고 있다. 나의 아이들이 나의 이 뜻을 마음에 깊이 새겨주면 좋겠다. 나는 팔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아들딸에게 아버지로서 때늦은 반성문을 쓰고 있다. △김학 수필가는 1980년 월간문학 등단해 전북문인협회, 전북펜클럽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목정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손가락이 바쁜 시대> 등 수필집 17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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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3 18:24

[금요수필] 관계

이용미 바람이 몹시 불며 비까지 내리는 밤이었다. 몸살이 오려는지 으슬으슬 떨리는 몸은 자연스럽게 장롱 문을 열어 두툼한 이불을 안아 한 덩어리가 되었다. 따뜻하고 안정된 몸과 마음은 그대로 잠들어 깨어나지 못한들 어떠랴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사놓고 몇 달이 지나도록 관심조차 없던 이불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계절에 맞는 침구를 꼼꼼하게 고르는 동료 옆에서 딱히 필요도 없는 이불 한 채를 덩달아 샀었다. 그 가을 여름이 시작되는 그때는 그렇게 요긴하게 쓰이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연찮은 관계 맺음이 때로는 생각 밖의 행운을 가져오는 것과 같이 밤마다 느끼는 안온함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서 따라간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피식 웃어본다. 이 나이에 시험을 보는데 높은 점수까지 바라면 과욕이라 생각하면서도 중요 문장에 밑줄을 긋고 깨알 같은 글씨로 옮기는 앞뒤 동료들을 보면 셈이 나니 어쩌랴. 머릿속은 텅빈 듯. 꽉 찬 듯 더 집어넣을 수도, 꺼낼 수도 없는데. 연례행사 보수교육은 여전히 가슴과 머리를 비집고 나오려고 해서 억지로 누르고 달래며 그럭저럭 이론과 실기까지 마졌다. 이제부터 무장해제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수제 맥주 전문점으로 향했다. 이름부터 침을 꼴깍 삼키게 하는 000양조장이다. 지향점과 고민은 조금씩 다르지만, 긴장과 이완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뭉치니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이 담대해진다. 농담의 수위까지 높아져 엄연한 성별마저 애매해지면 어떡하느냐고 깔깔대며 술과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 술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내숭을 떨며 도리질을 하고 못이기는 척 홀짝 홀짝 맛보는 척 할 때도 있지만, 술이 술을 부르면 술술 넘겨도 얼굴색은 변함이 없다. 모계로부터 부여받은 DNA 때문이리라. 공교롭게도 다섯 동료가 같은 인자를 갖지는 않았으련만, 술 앞에서 즐거워하고 허물 없어함은 복이 아니고 무엇이라. 술과 친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어울릴 수 있을까? 고마운 나의 어머니, 아니, 나의 외가(外家)여.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은 앞뒤 잴 것 없이 발걸음을 전자상가로 옮기게 했다. 그리고는 별 망설임도 없이 권하는 제품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결재를 해버렸다. 20여 년을 써온 김치냉장고가 기능은 멀쩡한데 맛있게 담근 김치 맛까지 변할 것 같이 지저분해진 김치 통이 문제였다. 통만 바꾸자니 그 값이 만만치 않아 일을 저지른 셈이다. 조금 높아진 냉장고 문을 볼 일도 없이 수시로 여닫는다. 들어 있는 것이라고는 작년에 담았던 김치 한 통과 과일 몇 가지뿐이다. 허전한 공간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 김장철을 기다린다. 이렇게 또 다른 김치냉장고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필요해서 맺은 관계라도 흐트러짐 없이 이어진다면 축복일 수 있다. 사람과의 인연이 억지로 맺어지거나 쉽게 떼어내기 어려운 것 같이 의식주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엇하고의 관계든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는 고마운 관계이기를 소망하는 나날이다. 만남은 때가 있고 헤어짐도 때가 있다 해도 그것은 인연만이 아니오, 관계의 영향도 있다. 하늘이 준 인연을 사람이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관계가 좋으면 인연이 잘 자라서 천명을 다하고 관계가 나쁘면 인연이 중도에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인연이 씨앗이라면 자라서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은 관계다. 이용미 수필가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하여 현재 마이산 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수필집 「그 사람」외 2권을 펴냈으며, 행촌수필문학상과 진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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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05 18:51

작은 내 서재 - 신팔복

신팔복 내 어린 시절은 책이 귀했다. 농사만 짓고 살던 두메산골이라 책이 귀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모여 길쌈하며 재담이 좋으신 분이 구전돼오던 이야기를 꺼내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장화홍련전을 들으며 몸이 오싹했고, 콩쥐팥쥐 이야기를 들을 때는 몇 번씩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했던 숨을 후련하게 내쉬었다. 듣고 또 들어도 홍미 진진하고 감명 깊었던 이야기는 꼭 이웃 동네에서 일어났던 일 같아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다. 학교에 입학해서 장끼전을 빌려다 읽으며 키득거렸다. 교과서도 물려받던 시절이라 동화책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어 진안읍내 사거리 서점에 들러보니 책이 꽉 차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랜 기간 조금씩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타잔을 사서 읽었고, 다음엔 보물섬을 사서 읽었다. 그때부터 서재가 무척 부러웠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과학전문 서적을 비롯하여 단편소설, 문학 전집, 백과사전 등을 샀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라서 여유 있는 방이 없었다, 아내와 힘께 쓰는 방은 세간 살림과 아이들 육아 용품으로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많지 않은 책이었지만 툇마루에 보관해야 했다. 자녀들을 출가 시키고 빈 빙이 생겼다, 책장을 사고 책을 정리하여 자연스럽게 작은 내 서재가 만들어졌다. 컴퓨터로 인터넷도 즐기며 글도 쓰고 독서도 하는 장소로 오로지 내 전용 공간이 됐다. 평생교육원에서 수필 공부를 하면서부터 많은 문우들도 생겼다. 그들이 발간한 책을 보내주면 책꽂이에 보관하여 그런대로 서재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겨서 매우 좋다. 나는 책을 모아 두었지 읽는 것에 등한했다. 글을 쓰려면 풍부한 식견이 있어야 하는데, 주제도 모르면서 글을 쓰려고 했으니 엉터리였다. 마치 맥도 짚지 못하면서 침부터 꽂는 돌팔이와 같았다. 몸살을 않는 것처럼 머릿속만 어지럽고 글은 한 자도 나가지 않았다. 책상에서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작을 해보지만 지금도 글쓰기는 쉽지 않다. 요즘은 서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도서관과 복지관이 생겨서 이를 대신하고 있다. 전문 서적을 비롯해 문학, 철학, 종교, 과학, 경제, 사회, 복지 등 다양한 책들이 엄청 많다. 맘만 먹으면 구애받지 않고 독서를 할 수 있다. 가까운 인후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해 오고 또 너른 공간에서 읽기도 한다. 시설이 쾌적하고 조용해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여름엔 냉방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되어 휴식 공간도 되는 일거양득이다. 책에는 인생의 길이 있고 정보가 있다. 험난한 인생 항로에 등댓불이 되어 밝혀준다. 좋은 책은 말이 없어도 서로 통하는 친구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작가와 대화할 수 있다. 독자는 감명 깊은 문장이나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되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 진다. 은연중에 그의 고매한 인품을 닮고 싶어진다. 그게 독서의 매력일 거다. 내 서재는 보잘것없는 작은 공간이지만, 책을 읽을 때는 세상의 번거로움을 잊고 마음이 평화롭게 해주는 안식처다. 고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쌓아두기만 했던 책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상의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마음의 양식인 주는 독서삼매경에 빠져 볼까 한다. 젊을 때 날밤을 새워 책을 읽지 못한 것이 눈도 침침해지는 지금에 와서야 때늦은 후회로 남는다. 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해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 회원, 진안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 메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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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9 19:04

시안(詩眼)으로 본 사계(四季) - 김계식

▲ 김계식 시인 허기진 새 몇 마리 어지럽게 지저귀는 소리 끝으로 밝아오는 여명 숨을 몰아쉬던 바람도 밤새 묻은 어둠을 떨쳐내고 있다. 화창한 날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도 채 다가서기 전 풍전세류로 비웃음 당하던 수양버들이 엄동 속 온기 휘어잡아 연녹색 푸름으로 춘산을 입짓하며 화해를 손을 내민다. 어찌 하늘의 드높음 만이랴. 생명 가진 것들의 짙은 소망 그 생기로 피어나는 숨결인 걸. 새로운 봄소식 먼저 맞이할 수 있는 언덕에 올라 발목 잡은 젖은 시간을 털어내며 꿈으로 봄기운으로 맑은 새벽을 맞는다. 봄을 맞는다. 아직도 허연 눈발을 뒤집어쓴 이른 봄 산자락의 게으른 봄 마중이다, 입춘에 어렵사리 불려나온 우수(雨水)의 살얼음 풀리는 소리 들린다. 어디서 그 소릴 들었는지 진흙 질컥한 짚신 바닥을 동구(洞口) 정자나무가 땅 위로 드러난 노근(露根)에 쓱쓱 닦고 있었다. 새벽 기침(起沈)을 어려이 참고 아랫목 뭉그적거리는 노인과 달리 터진 바짓가랑이 불알 내보이는 아이놈 벌써 이른 봄산에 안달한다. 언치가 부담스런 외양간 누렁이 논밭 갈던 두려움 까맣게 잊고 틈둑 보드라운 새 풀잎 냄새에 되새김질하는 아래턱이 더욱 바쁘다. 두어 장 넘어감을 인지한 지금에야 게으름에 젖은 무르팍에 힘을 모으는 늦깎이 봄 마중. 폭염(暴炎) 몸 사릴 때 붙박임보다 작은 부유(浮游)릍 감사하는 부레옥잠은 하늘 피어나는 흰 구름 빛깔을 굳히고 땡볕 줄곧 갈라대는 쓰르라미 소리를 점철하며 벌써 여리게 들어서는 살살이꽃 하늘거림을 꿈 그리듯 숙연하다. 익힌 인연으로 감지하는 나는 옥비녀에 서린 설움 닦아내는 한 줄기 바람 폭염 그늘로 파고들며 푸는 회오를 그냥 모르쇠 하고 있다. 상사화 피는 계절 허공을 향한 울부짖음, 메아리마저 내려앉을 곳을 잃었다. 더 붉게 타오르는 열정으로 소진을 까맣게 모르는 부단한 재연(再燃)이었다. 이윽고 또 이울고 찾을 길 없는 빛과 소리 어렴풋한 방향을 짚어 솟아나는 푸른 잎사귀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루어낼 해후(邂逅)이더냐. 같은 이름으로 불려도 끝내 등진 대답 언제 어디서 하나 될 것인가. 가림없이 내리쬐던 한여름의 열기, 밤 시간 점철하는 귀뚜라미의 호곡으로 한풀 껐여 양지로 뜨겁고 음지로 시원한 얼룩빼기가 된다싶더니 마당 한복판으로만 더 두터운 햇볕은 붉은 고추 닦달하고 콩 꼬투리 비집어 콩알을 세다가 물러감을 앙탈하는 뒷자락 가을은 그렇게 시나브로 다가왔다, 익어가는 벼이삭 따라 변해가는 토실한 메뚜기는 손 빠른 아이의 손에 붙잡혀 피 꽃대로 만든 꿰미에 어린 살과 등껍질 사이로 꿰이던 날이다. 내일도 모르는 놈 퇴화된 입에 생식기만 내세우는 놈이라고 비아냥거렸던 하루살이가 그냥 부러웠다. 세상 으스대던 벗어진 이마면 무엇 하며 튼실한 날개면 무엇 할 것인가? 생각에서 운명까지 시베리아 툰드라 동토(凍土)가 운해를 넘어 보료로 보이던 날, 사뿐히 내 려앉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뇌리를 채워진다. 하지만 다행히도 말로 바꾸지 않고 깊이 묻어둔 결과인지 우랄산맥을 넘을 때 덜커덩 기체 내려앉는 이상기류를 운명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며 오싹 오금 저린 순간을 맞았다. 생각-말-행동-습관-성격-운명 이런 절차로 생각이 끝내 운명이 되는 거라면 그날의 내 심신은 지금 영원히 녹지 않는 빙벽 속에 갇히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솔깃이 인다. /김계식 김계식은 정읍에서 출생해 전주교육청 교육장을 역임했다. 창조문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돌부처의 푸념>외 24권을 출간했으며, PEN문학상,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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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2 15:50

한글날(즈음) 소회 - 곽창선

지난 9일 574회 한글날을 맞이했다.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우리의 말과 글의 탄생을 자축하며 역사적 의의를 되돌아보는 날이다. 우리말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열정으로 우리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모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현대인에게 말과 글은 생명줄 같은 자산이다. 세계의 수많은 문자 중, 누가, 언제, 왜, 어떻게 만들었나 하는 영원과 뿌리가 명확한 문자는 훈민정음이 유일하다. 세종은 백성의 우매함을 어여삐 여기사 누구나 읽기 쉽고 쓰기에 편리한 우리글을 세종 25년에 음운 문자 자음 17자와 모음 11자를 반포 하셨다. 훈민정음은 최초 28자였으나 초성(3자) 중성한자가 폐기 되고, 최종 24자(자음 모음)를, 창제 된지 3년 후 1446년에 세상에 빛을 보았다. 모음은 하늘과 땅 우주의 기본원리를 표본으로 삼았고, 자음은 사람의 발성 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다. 중국의 눈치를 살피고 반대파들의 저항을 고려하여 발문(跋文)은 한문으로 쓰여 졌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 청강지곡을 쓰시고, 새로운 글의 우수성을 만천하에 증명하였다. 한국은 국토의 크기로만 볼 때는 매우 작은 나라다. 그러나 인구수로 볼 때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남북한이 합치면 약 7000만으로 15위에 해당한다. 민족 언어를 중심으로 볼 때 한국은 더욱 크다. 한국어는 지구상에 쓰이고 있는 수천 가지 언어 중에서 중국어, 힌디어, 스페인어, 영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 이어 사용 인구로 열세 번째를 차지하는 언어이다. 이러한 한국어에 대해 우리는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한글이 오늘에 이르기 까지 한글 창제와 발전 과정을 뒤 돌아 보면 수많은 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는 한글연구의 선각자 주시경 선생의 노고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일본의 강압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조선어학회를 발족시키고, 맞춤법 통일안과 표기법등을 고안 우리 말 큰 사전의 기초를 닦아 나왔다. 우리 겨레는 반만 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 오면서 타고난 창의성과 뛰어난 기량, 피땀 어린 끈기로 독자적인 민족 문화를 창조,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글 창제는 우리 문화사상 으뜸가는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의 여러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독창성과 과학성을 지닌 뛰어난 문자라는 사실을 한 결 같이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문자가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겨레는 지구상에서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도 크나큰 민족적 긍지가 되어 왔다. 말과 글이 없다면 지금처럼 첨단 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즐기며 살 수 있을까? 생명 줄 같은 우리말과 글이 있어 쓰고 읽으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으니 행복하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말과 글을 잘 보존하고 지켜 나감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에 뒤지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면서 우리의 말과 글을 계승, 발전시키고 나아가 세계화로 향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다 곽창선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장을 역임했으며 <표현 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와 현재 표현문학회, 신아 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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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5 17:43

[금요수필] 째보선창

김철규 군산 내항에는 째보선창과 빨간 등대 하나가 있다. 군산 금암동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있는데 이 개울에 다리를 놓고 사람들과 자동차도 다니고 있는데 금강의 수변이 언청이 모습을 했다고 하여 째보선창이라는 닉네임이 붙으면서 한 세기를 풍미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군산 하면 째보선창이라는 대명사 하나가 따라다닌다. 또한 째보선창 바로 앞에는 일본인들이 개항을 하면서 빨간 등대 하나를 세웠다. 이 빨간 등대는 군산항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금강 하구인 내항에 들어오는 모든 선박들에게 위험한 지역이니 조심하라는 신호의 표시로 빨간 등대를 세운 것이다. 이 째보선창은 군산항의 역사와 함께 숱한 사연을 담고 있다. 나는 군산유학의 첫 번째 하숙집이 째보선창가였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선친과 교분이 있는 고군산 하숙이라는 여인숙 뒤편 방에서 하숙을 했는데 학교를 오갈 때면 매일 째보선창을 거쳐야 했다. 곧 집 안마당 역할을 한 것이다. 째보선창가에는 군산수협의 수산물 공판장이 있어 조수가 낮은 조금이 되면 수많은 수산물로 뒤덮여 비린내가 진동을 했었다. 생선을 팔려는 사람들과 생선을 사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하루가 지나고 이침 해가 뜨면 길가에서 뱃사람들이 쓰러져 잠자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광경은 한 겨울을 빼고는 봄, 여름, 가을에는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군산항이었다. 이처럼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군산항 선창가의 애환이 서린 째보선창이다. 태어나고 살고 죽고 생사고락을 같이한 째보선창은 군산이라는 항구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1990년대에 이르면서는 주인 잃은 헛간과 같이 적막만 흐를 뿐이다. 그토록 문전성시를 이룬 째보선창은 그 이름마저 시들어 가고 있어 그 흔적이라도 남는 기념물이 들어서 주기를 속없이 기대해 본다. 특히 필자의 사춘기시절을 보냈던 째보선창이기에 아직도 마음 한켠에 남나있는 추억 이야기를 꺼내 그 시절을 더듬게 하고 싶다. 또한 칠흑 속의 어둠을 밝혀주는 빨간 등대도 군산항을 찾는 선박들만이 아니라 낭만에 젖은 청춘들에게는 더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금강 하구언에 유일한 이 빨간 등대는 사랑에 불타는 청춘남녀들에게 때로는 등댓불처럼, 때로는 빨간 정열의 불이 되어 인생의 활로를 가능케 해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낭만 속의 하염없는 사연을 지닌 채 불만 반짝일 뿐 휴업상태다. 도시개발의 일환으로 수변도로에 공사가 한창이지만 누구에게도 멋진 친구가 되어 주고 추억을 한 아름 안아주며 희비쌍곡선을 그어준 째보선창과 빨간등대의 추억은 간데없고 유유히 흐르는 금강 물과 함께 화려했던 시절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그러나 째보선창과 빨간 등대는 아직 자신을 지켜내고 있다. 필자는 이곳을 맛과 멋과 낭만이 넘실거리는 옛 군산항의 이미지를 살리는 요지(要地)로 되살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금강과 운명을 함께할 째보선창/그리고 빨간 등대/추억을 머금게 하는.../당신들은 우리 군산의 영원한 동무/꿈틀거리는 새싹으로 피어나야 할 사랑/나는 오늘도 당신들을 안고 싶소. △김철규 수필가는 전북일보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을 거쳐 전라북도의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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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4 16:12

[금요수필] call 인생

백봉기 결혼식장에서 <전국노래방 도우미 연합회장>이라는 생소한 직함의 화환을 보았다. 우리나라에 만개가 넘는 직업이 있다지만 노래방 도우미가 하나의 직업이 되어 전국적인 조직까지 있다는 것은 퍽 의외였다. 갑자기 오래전 KBS에서 방영한 이란 드라마가 생각난다. 7살 된 딸이 있는 이혼남 택시기사와 사랑에 배신당하고 자살까지 시도했지만 결국 밑바닥 인생을 선택한 콜걸이 서로의 비슷한 처지에서 연민을 느껴 사랑하게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는 이야기다. 부르면 달려가는 콜택시기사와 콜걸의 만남이라 더욱 감동적이었다. 콜Call 인생은 부름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예컨대 콜걸이나 콜택시기사, 파출부, 대리운전기사 등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예식장에서 낯설게 느꼈던 노래방 도우미도 그런 종류인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남이 불러주지 않으면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간다. 더구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 동창회에 가서 한 때는 잘 나가던 친구를 만났다. 고급차에 골프가방을 싣고 다니던 친구였는데 조용히 내 곁으로 오더니 술 한 잔을 권하며 힘들었던 지난날들의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중소기업을 운영했는데, 중국의 덤핑상품들 때문에 견디지 못해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나고 자신은 시용불량자가 됐다고 했다. 사업이 잘될 때는 세상살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부도로 생활고까지 겹치게 되자 어쩔 수없이 선택한 것이 대리운전기사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가족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밤거리로 나섰단다. 그런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며 밀폐된 공간에서 취객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요금 때문에 다투고, 운전이 서툴다거나 길을 잘 찾지 못한다며 생트집이고 여성들의 성적인 모욕까지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부름을 받고 그들을 위해 사는 call 맨들, 전화 한통에 2-3분 내로 장소까지 달려가는 콜택시, 거친 행동도 감수하면서 억지웃음까지 줘야하는 콜걸과 노래방도우미, 취객들의 운전을 대신하는 대리운전기사, 힘들고 급할 때 달려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파출부, 기족들도 꺼리는 일을 마다 않는 간병인들 모두 진정으로 감사해야할 콜call 맨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다. 인권까지 무시당하는 일이 허다하고, 적은 소득에 사회적인 인식마저 낮아 3D업종이 되었다. 특히 노래방 도우미나 대리기사들은 밀폐공간에서 술 취한 손님들을 상대로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별별 수모들을 겪어야 한다. 이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누군가? 바로 우리다. 그러나 우리도 언제 어느 때에 대리운전을 시작한 친구처럼 생활고로 콜Cal 맨이 될지 누가 아는가? 이들을 따뜻이 격려하고 이웃처럼 도와줘야 할 사람들도 바로 우리다. 콜 인생 남이 불러줘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 사회에 이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분들만큼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힘들게 일하는 이들에게 질책 대신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 필요하다. 당당한 직업인으로 인정받고, 일한 만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배려와 함께 어쩌면 나와 내 가족도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될 극한직업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공생 공존하는 것이 선진국민의식이다. △백봉기 수필가는 <한국산문>으로 등단하여 수필집 여자가 밥을 살 때까지 탁류의 혼을 불러 팔짱녀 해도 되나요를 발간했다. 현재는 온글문학회장과 전북예총 사무처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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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7 16:38

[금요수필] 가기 싫은 곳

최기춘 살다 보면 가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갈 곳이 있다.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려면 마음이 심란하고 가기 싫다. 군대도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제대 한지 50년이 되어가는 요즘도 가끔 군대 가는 꿈을 꿀 때가 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괜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고 나이 들어 가장 가고 싶지 않은 곳은 요양시설이라 한다.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요양병원에 문병을 다녀왔다. 병원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나고 실내 공기도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우리가 문병한 환자는 거동이 불편하여 일상생활을 요양사들에게 의지하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병실에 여섯 명이 있었는데 거의가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어떤 할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분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나라도 문병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아내는 문병을 갈 때면 꼭 음식을 챙긴다. 집에서 끓인 도토리묵을 대접하려고 준비했는데 문 옆에 았는 성미 급한 할머니가 나도 좀 주세요.했다. 안 그래도 좀 넉넉하게 준비해 갔기에 나누어 드릴 참이었다. 입원 환자 중 스스로 앉지도 못하고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분들은 먹여드렸다. 어떤 할머니는 정신이 혼미하여 아내가 먹여드리는 데도 혼자서 알아듣지도 못할 이야기를 횡설수설하는데 웃지 않으려 해도 웃음이 나왔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아 웃음이 나오지만 매일 간병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을 보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젊은 시절 술좌석에서 웃으며 농담삼아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이 먹으면 예쁘고 밉고, 많이 배우고 못 배우고, 벼슬의 높낮이 즉 미모도 학력도 지위도 모두 평준화가 된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누워서 연명만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실감이 난다. 우리는 불과 30년 전만 해도 대부분 안방에서 임종했다. 사랑채에서 거처하던 할아버지도 임종할 때면 안방으로 모셨다. 그래서 안방이 이승과 저승의 이별정거장이라는 우스갯말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정거장이 요양시설로 바뀌었다. 그래서 몸이 불편한 어른들은 그 정거장인 요양시설에 가지 않으려 한다. 장수(長壽)는 축복일까? 나이가 들어 늙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들까? 장수는 분명 축복이겠지만 노년에 건강을 잃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심리적, 경제적 부담 등으로 가족 간의 불화와 갈등, 고통을 겪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그러면 행복한 노후(老後)는 멀기만 한 것일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요즘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웬만해서는 요양지설 가기를 꺼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요양시설을 갈 때마다 느낀 일이지만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특히 근무환경이나 처우가 좋지 않으니 자연적으로 서비스의 질도 좋지 않다. 노인들도 사회 환경이 바뀌어 노후에 병들어 거동이 불편하면 요양시설에 갈 수밖에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요양시설의 환경과 서비스가 나쁘니 가기 싫어하는 현실이다. 요양시설의 환경과 서비스 질을 높여 노후면 가장 가고 싶은 요양시설은 요원 한가? 법과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노인들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100세 시대라 하지만 인류의 역사로 볼 때는 점 하나다. 점 하나의 순간을 맞는 노인들이 안락하고 품위 있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기춘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은발의 단상〉외 1권이 있다. 대한문학작가회, 영호남수필 회원이며 전북수필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임실문학회 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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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0 16:46

[금요수필] 후발주자(後發走者)-

박순희 빛나는 문화와 역사는 선구자들이 견인해왔다. 그 어떤 사상이나 한 일이 다른 사람보다 앞선 사람이 선구자라면 개척자는 불모지를 일구기 위해서 비범한 개척정신과 노동력을 겸비해야만 가능하다. 즉 가시밭을 헤치는 피나는 노력과 멀리 바라볼 줄 아는 혜안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어떤 분야든 반드시 선구자나 개척자가 있었다. 그들이 피땀으로 닦아놓은 길이 있어 뒤에 가는 사람들은 보다 쉽게 따라 갈수 있었다. 분명 개척자나 선구자는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환경적으로 닥쳐오는 모든 어려운 여건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다각으로 극복해 갔다. 또한 선구자와 선발대는 엄밀히 따진다면 차이가 있겠지만 선발대 역시 선구자와 공통점이 많다. 앞서 간다는 것은 책임감과 함께 모험도 따르고 개척해 나가야하는 과제를 해결해야하는 고통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슷한 개념의 선발주자가 있다면 비주류 후발주자가 있다. 2진, 방외인, 스페어, 대기조 등의 이름으로 환호 받지 못한 비주류의 비애에 대해 생각해본다. 주류와 1등만이 환영받는 우리나라 문화에선 후발주자는 언제나 찬밥 신세였던 건 부인할 수 없다. 그 나름의 형편과 처지가 있어 선발로 뛰지 못했지만 후발주자 역시 투지력은 누구 못지않은 승부 근성 즉 답습과 재생으로는 후발주자를 못 벗어난다는 각오를 끝까지 놓아서는 안 된다는 심리다. 선발대의 뒤를 따르는 사람을 싸잡아 후발주자라는 안일의 표상처럼 취급한다면 곤란하다. 누구든 자기의 보폭과 성향에 따라 전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선발된 주류라고 모두가 완벽한건 아니다. 모든 상황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게 진리이기에 예수님께서도 2천 년 전에 이미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셨다. 오늘의 주류가 하루아침에 비주류가 될 수 있는 게 이 땅의 토양이고 보면 영원한 주류도 영원한 비주류도 없다. 주류라고 목에 힘주거나 비주류라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대기만성의 의지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가 냄비 근성을 이겨낸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경쟁 사회는 등수로 서열을 매기면서 치열해진 경쟁에 한걸음 더 나아가 살벌해졌다. 어떤 분야의 개발에 선구적 업적을 이루어 냈다는 것은 이미 주도권을 선점한 이점이 기득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를 쓰고 선발주자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선발대라고 안심하고 머뭇거리다가 역전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우린 일찍이 학습되어있는 교훈이다. 비주류와 후발주자를 같은 등급으로 친다면 어떤 곳에나 나는 비주류에 속한다. 생각해보니 후발주자라는 말이 나한테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공부부터가 만학을 했으니 자연히 후발주자였고 꼭 무엇부터 있어야 한다는 철칙이 있었던 건 아닌데 문화생활에서 후발 주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의 신 모델로 바꾼 것도 남들보다 한 발 늦다. 생각해보니 돈 문제 보다는 성향과 관계가 깊다. 후발주자가 한 가지 좋은 것이 있긴 하다. 후발로 신제품을 살 땐 모든 기능이 그동안 부족했던 기능을 보안해서 업그레이드된 상품으로 생산되니 최신기능의 모델을 구입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그런 점을 노린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후발성향이라는 걸 새삼 발견했다. 그러나 후발주자나 비주류가 싫지 않은 이유는 신중한 결과 최고 최선의 선택기회가 있다는 것에 위안 받는다. 후발주자에겐 겸양과 도발정신이 있고 선발로 향할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 △박순희 수필가는 <한국문인>으로 등단했다. 현 행촌수필문학회 부회장.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 <대체로 맑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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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3 17:17

[금요수필] 그믐달

정성수 1)왠지 쓸쓸한 달 그믐달은, 새벽녘에 걸터앉으면 더 쓸쓸하다. 나도향의 그믐달만 봐도 그렇다. 직유법과 은유법을 쓰고 있는 문장들은 그믐달을 가냘프고 애절한 느낌을 주는 달이라며 여성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작가는 서산 위에 잠깐 떠 있다가 지는 초승달은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만 그믐달은 온갖 풍상을 겪고, 원한을 품은 채 애처롭게 통곡하는 원부와 같은 애절한 맛이 있다고 했다. 자정을 훨씬 넘어 귀가하는 술주정꾼이나, 노름을 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이나, 어떤 때는 도둑놈이 본다는 그믐달은 또한 정情 많은 사람이 바라보거나, 한 있는 사람이 바라보거나, 무정한 사람이 바라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드는 사람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이 아니면 그믐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어 외로운 달이라는 것이다. 그믐달은 초승달의 반대 모양으로 크기가 작은 달이다. 왼쪽이 둥근 눈썹 모양의 달로 새벽녘이 되서야 나온다. 새벽 동쪽 하늘에서 잠시 볼 수 있어 일반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기 힘들다. 나도향의 그믐달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달 중 그믐달을 독특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비유 대상을 끌어들여 애절함과 한스러움을 표현했다. 이 글은 앞부분은 느린 호흡으로 작가 자신이 그믐달을 사랑하는 이유를 열거하고 마지막 문장에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또한 단정적인 표현으로 글 전체의 통일성을 부각하고 있다. 작가 나도향은 외롭고, 쓸쓸하고, 애절하고, 한스럽고, 슬픈 정서를 느끼게 하는 그믐달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처지를 그믐달을 통해 드러낸 반면에 비수와 같은 싸늘함과 냉정함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죽은 사람은 떠나기 전에 산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일이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삶을 잠시 펼쳐보고 몇 잔의 술에 취기가 들면 자기들의 세상 속으로 사라진다. 밤하늘에는 망자가 못다 한 말들이 별이 되어 떠 있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김정수시인을 생각했다. 시인의 월남전이 떠오르고 그의 고엽제병이 밤하늘에서 지상을 덮쳐오는 동안 불현듯 떠난 그가 나를 읽고 있었다. 그 동안 시인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김정수시인은 입버릇처럼 말한 대로 대전현충원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 날 것이다. 김정수시인이 못 다한 시의 언어들이 밤하늘 별로 떠 있다가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가 있는 시문들이 부드럽게 들린다. 그믐달이 떴다. 그와 먹었던 추어탕에서 미꾸라지들이 꼬리를 흔들면서 물속으로 사라진다. 미꾸라지들은 드디어 자유롭다. 나는 밤새 잠을 못 이루고 그믐달은 나를 위해 새벽하늘을 지키고 있다. 시인이 떠나면서 한 그릇의 밥을 준 것처럼 나는 산사람들에게 먹이는 일을 해야 한다. 김정수시인의 시집을 천천히 읽으면서 자꾸만 아름다운 시인으로 부활하고 싶어진다. 김정수 시인이 그믐달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어 밤하늘에 그믐달이 되어 걸려 있었다. △정성수 시인은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주비전대학교 운영교수,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향촌문학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시집 <공든 탑>, 동시집 <첫꽃>, 동화 <폐암 걸린 호랑이>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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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7 16:21

[금요수필] 어느 조각상

윤재석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한국자생 식물원에 가면 나무의자 위에 앉은 위안부 앞에 정중히 엎드려 인사하는 신사복 차림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눈에 익은 듯 하면서도 약간은 낯설다. 조각상의 이름은 영원한 속죄로 조각가 왕관현의 창작 예술품이다. 예술은 창작이다. 개인의 사상을 상상을 통해 표현하는 작품이다. 작품 내면의 세계는 창작자만이 알 수 있다. 독자나 관람객들은 작가가 그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조각상을 두고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신경전으로 떠들썩하다. 위안부를 상징하는 여인상 앞에 엎드린 남자의 모습을 두고 나름의 해석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납작 엎드려 사죄하는 모습이 아베를 닮았다면서 외국의 정상을 이렇게 폄하 하느냐는 시비다. 한국은 개인이 조각한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반격이다. 하나의 예술품을 두고서 주관적인 관점에서 해석을 하며 두 나라 의견이 나누어졌다. 그런데 조각상 하나를 두고 두 나라가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두 나라의 역사에서 기인하고 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을 일본군의 위안부로 삼기 위해 강제로 징용해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은 위안부로 차출되어 다녀온 명확한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진정한 사과 한마디가 없다. 끌려간 당사자 본인을 통해서 밝혀지고 서류나 정황들이 면백히 밝혀졌음에도 오리발이다. 그러니 우리국민들이 통탄할 수밖에... 일본의 자세가 너무도 몰염치하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으로 일관하면서 발뺌을 한다. 일본과 같은 전범국 독일은 당시 피해국가와 피해를 입은 유태인을 비롯하여 전 인류에게 독일정부수상이 앞장서 수없이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런데 일본은 사죄는커녕 되려 영토분쟁, 위안부문제, 대량학살, 그런 행위를 숨기려 갖은 술수를 자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자세도 미래 지향적인 명쾌한 답변이 아쉽다. 한 사람의 예술품을 가지고 국가적 관계로 이어가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라 여긴다. 처음에는 한 예술가의 작품이라고 했다가 국가 정상에 대한 예양이 아니다 면서 오히려 예술가 한 사람에 대해 질책하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졸속하고 편협된 사고로 국민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 좀 더 당당하고 의연한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한일 관계는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말에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고 했다. 나의 기쁨이 남의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쁨도 고통도 함께 가지면서 이해해야 한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고통을 많이 주었다. 그 아픔을 가진 자는 오래 기억하고 있다. 일본은 잘못된 과거는 진실한 마음으로 사죄해야 한다. 가까운 이웃 나라로 화해하면서 발전하는 길은 역사를 바로 알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리라. 한 예술가의 작품으로 두 나라가 떠들썩한 반응은 두 나라가 아직도 불편한 관계임을 말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사에 반성은 없으면서 조각상 하나에 과잉 반응하는 태도는 스스로의 중압감에서 벗아 나고자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양심 있는 일본 지식층도 반성할 건 반성하고 용서받을 건 용서받아 선진국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윤재석 수필가는 대한문학상을 수상했다. 영호남수필문학회 부회장과 은빛수필문학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진안지부장을 맡고 있으며 수필집 <삶은 기다림인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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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0 16:39

[금요수필]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

임영희 벌써 반세기가 된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큰 병원에서는 심리치료로 음악요법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TV가 별로 없어 FM 라디오에서 듣는 음악이 전부였다. 해거름 퇴근할 때쯤이면 전파상에서 흘러나오는 향수 짙은 고향노래가 나를 달래주었다. 문호 셰익스피어도 음악을 듣는 순간은 모두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 모두가 코로나로 불안과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트로트가 큰 위로를 준다. 태어날 때 4.2Kg의 우량아로 울산에서 태어난 어느 가수는 10살 때 부모와 헤어져 할머니의 슬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가난하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맞기도 일쑤였다. 그래서 폭력에 시달리다 폭력 단체에 가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간절한 만류로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김천예고 서수용 선생님을 만나 전학을 해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서 선생은 그의 노래를 들어보더니 너는 노래로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고 말해 가슴에서 에밀레종을 치는 소리가 났단다. 그러다 고교 3학년 때 당시 공중파에서 놀라운 시청률을 자랑하던 스타킹에 나오고, 23세 때 다시 그 방송에 나왔는데 패널 가운데 전문교수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표현된 노래라며 극찬을 했다. 예전보다 안전감 있고 호소력이 훨씬 성숙했다며 청중들의 기립 박수도 받았다. 이후 그 일을 계기로 유명대학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동영상을 본 독일 RUTC 대학에서 제의가 들어와 유학하게 된다. 유학 중에 한국 음식이 너무나 먹고 싶어 찾아다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곰탕을 먹고 있는데 찔레꽃 노래가 흘러나와 곰탕 국물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후 집에 와서도 그의 전축에서는 찔레꽃 노래만 종일 나왔다. <찔레꽃>은 할머니가 생전에 자주 듣던 유일한 노래란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라는 가사다. 그리고 가끔 한국 노래 CD를 사러 갔는데 루치아노 파바로티 노래를 듣고 웅장함에 매료되어 성악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전설의 카루소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귀국해서는 예식장 등 닥치는 대로 노래를 불렀으나 전 재산을 소속사에 사기를 당했다. 이후 물탱크 청소 등 궂은일을 하며 라면 하나로 이틀을 버티며 살았다. 그러다 지난 3월 종편에 방송된 트롯 서바이벌 미스터 트롯에 출연해 4위에 올라 유명세를 치렀다. 그는 출연 당시 성악가 출신인 점 등이 화제가 돼 트롯과 성악가 파바로티를 합친 트바로티라 불리며 출연자 중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성악을 하다 트롯을 부르려니 부단한 노력을 했으리라. 지금은 스승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성공하여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불우한 과거를 씻어가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입대도 미루며 영화도 두 번 찍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얼마전 종편 콜센터 신청곡에서 60살 가까이 된 아줌마가 오빠라며 환호할 때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흐뭇하기까지 했다. 또 한 청년은 취업의 고민 중 그의 노래를 신청해 듣고 위로를 받았다. 베트남에서 온 여자 암 환자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고 좋아했다. 이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전국노인복지관에 1억 원 상당 손 소독제를 기부하였다. 음원 수익금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랑을 잊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기부한 것이다. 항상 인사 잘하고 남에게 박수 받는 사람 돼라. 남에게 욕먹지 않는 사람 돼라는 할머니의 유언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 임영희 수필가는 전북백일장에 시가 당선되어 문학에 입문해 대한문학 수필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문화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야기할머니로 유치원 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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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3 16:29

아, 이런 정신머리- 임석재

임석재 이게 어디 갔지? 분명히 수첩과 함께 샤프연필과 볼펜을 넣었는데 연필이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우선 볼펜으로 조경업자와의 상담내용과 조감도를 그려 놓았다. 내가 찾는 샤프연필은 본체가 노란 플라스틱으로 두껍고 견고하다. 그래서 들고 쓸 때는 묵직한 느낌이 나서 즐겨 쓰는 필기도구이다. 또한 쓰고 지우기도 쉽고 부드럽고 진하지 않은 색깔이 거부감을 주지 않아 십여 년 넘게 써온 것이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본다. 가방 속에 숨었나? 가방 속의 물건을 다 꺼내고 찾아보아도 없다. 그렇다면 처음에 챙겨 넣으면서 바닥에 흘린 것인가, 아니면 산소 입구에서 수첩을 꺼내면서 빠졌을까?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 들어서 실수가 더 잦아졌다. 지난 봄에는 그동안 오래 써온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맘먹고 좋은 것으로 장만한 것이라 금전적인 손실도 크지만 어디서 잃어버렸는지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였다. 운동을 하면서 벗었다가 다시 쓰고 물리치료실에 와서 양복의 안주머니에 넣어 둔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았다. 다시 되짚어 차 속을 찾아보고 그날의 족적을 되새기며 추적을 해 보아도 허사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늘 끼고 다니던 반지가 없는 것이다. 거실에 앉아 있다가 문득 손가락이 허전하여 바라보니 왼손 약지에 반지가 없어졌다. 혹시 지갑 속에 두었나 하고 안방 탁자 위 지갑을 급히 찾아보았다. 그 지갑은 아내가 헝겊으로 만들어준 손지갑이다. 검은색 테두리에 갈색과 노란색을 한 줄씩 넣어서 바느질로 꿰맨 퀼트 작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죽으로 된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만 나는 아내의 사랑어린 이 지갑을 애지중지 한다. 돈을 지불하러 지갑을 꺼내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지갑 속 종이봉투 속에서 돈을 꺼내면 실소를 짓는 사람도 있다. 쌈지 같다는 사람도 있고 너무 깔끔을 떤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 손지갑의 안쪽에는 옷핀을 꽂아놓았다. 이 옷핀은 쓸모가 많다. 반지도 끼지 않을 때는 이 옷핀에 꿰어 놓았었다. 손이 붓거나 일을 할 때는 반지를 빼서 두어야 하는데 잃어버릴까 염려되어 궁리한 것이다. 지갑 속의 카드며 명함 모두를 꺼내 보아도 없다. 아내까지 동원해서 탁자의 서랍 속이며, 내가 신문이나 TV를 볼 때에 자주 앉는 소파의 방석까지 들치며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내 나름 언제나 잃어버리지 않으려 세심한 주의를 하였건만 이런 일이생기고 말았다. 아깝고 서운하고 아, 이렇게 정신이 없나 하는 자괴감(自愧感)에 더 가슴이 쓰렸다. 아내는 어딘가에 잘 두었지만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하였다. 하지만 손에서 반지를 언제 뺀 것조차 기억이 나지 않다니 정녕 이것이 일종의 치매기가 아닌가 걱정도 된다. 그러다가 화장대 옆의 반지 상자를 보았다. <나의 반지 함, 잊어버리지 말자> 볼펜으로 또렷하게 쓴 글자들도 내가 한심한 듯 바라본다. 아, 나는 왜 이리 정신이 없을까? 내가 미웁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소멸되고 희석되어 가는 것은 지극히 정상인데도 내 탓이오.하고 가슴 칠 수밖에 없는 내가 싫다. /임석재 수필가 임석재 수필가는 김제금산초등학교에서 정년하고 대한 문학으로 등단을 했다. 전북문인협회, 행촌 수필 회원이며 현재 아람수필문학회 회장으로 있다. 수필집 <나, 또 하나의>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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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6 15:24

[금요수필] 인연

박귀덕 남편 따라서 병원을 갈 때 심심하면 암송하려고 가져갔던 신석정의 작은 시집이 화두가 되어 병실사람과 대화를 했다. 그녀의 고향은 전주라서 고향 사람, 그리고 동갑이라는 매개로 더욱 따뜻한 가슴을 열어주었다. 이후 짬이 날 때마다 자판기 커피를 나누었다. 그녀는 집이 얼마 멀지 않은 곳이어서 매일 외출을 했다. 그 때마다 필요한 물품을 부탁하기도 하면 도움을 주었다. 웃음이 멎은 병실에 생기를 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 처럼 둥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거의 누워서 생활을 했다. 간혹 클래식 음악 소리가 침상 밑으로 흘러나올 뿐이었으며 외진이 있을 때만 일어나 모습을 보였다. 신석정 집안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뒤 선입견 때문인지 표지 모습과 닮아 보였다. 그 옆 침대에는 젊은 청년이 입원을 했다. 병색도 없는데 왜 입원했을까? 잠시 생각하다 잊었다. 다음 날 젊은이가 수술을 마치고 왔다. 젊은 엄마는 아들을 안고 자지마, 자지마.를 외치며 뺨을 때린다.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기가 싫어 생각을 접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뺨을 때리는 엄마의 손은 멈춤 없이 계속되었다. 슬며시 옆으로 가서 청년의 침대를 들여다보니 창백한 얼굴로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수술을 했다지만,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고 쇼크 상태였다. 나는 황급히 간호사실로 뛰어가 쇼크요. 하고 외쳤다. 간호사들이 곧바로 뛰어왔다. 교수가 오고 청년은 바로 수술실로 이송되었다. 재수술을 했다고 한다. 청년의 엄마가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청년은 아버지에게 자기 간을 이식해 주는 수술을 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갔으나 아들은 건강해서 바로 입원실로 올라왔단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재우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자려고 해서 뺨을 때렸다 고 하며 혈관이 터져 출혈이 되는 줄도 모르고..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내 손을 꼭 잡고 고마워했다. 나는 괜히 쑥스러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드님을 하느님이 보살펴 주신 것다.고 했다. 오래전 병원에서 쇼크 환자를 접한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 이 청년의 상태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평소에 남의 침대를 잘 기웃거리지 않는 성격인데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 내 눈에 띄어 쇼크임을 직감하고 그 청년을 구한 것 참 신기하다. 간호사실 바로 앞방에 있게 해 준 것도 모두 청년과 무슨 연결 고리로 이어진 듯 조화로웠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다고 했다. 그렇게 천륜으로 만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간을 선뜻 내어준 청년이 기특했다. 그리고 그의 효성이 아름답다. 청년과 함께 입원해 있던 남편도 연이 맞는 의사를 만나 새 생명을 얻기도 했었다. 간이 나빠서 정기 진료를 받던 중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간 진료를 하던 분이 왜 위를 검사해보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권유에 따라 위내시경 검사를 했더니 위암 초기였다. 바로 수술을 받고 완치를 했던 생명의 은인이었다. 비록 남편은 떠났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여러 해 동안 알뜰하게 건강을 보살펴 준 의사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다. 귀한 생명을 연장시켜 준 그분의 고마움을 품고 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삶은 기적보다 소중하다. ◇ 박귀덕 수필가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부회장, 행촌수필 회장, 전북수필 회장, 수필과비평 전북지부장을 역임했다. 수필집 <삶의 빛, 사랑의 숨결>,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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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30 17:35

[금요수필] 이토록 사람의 향기가 그리운 것은

안홍엽 꽃의 계절이 끝났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 겨울 달빛보다 더 시린 목련꽃, 인동의 시간들을 견뎠던 만큼 봄꽃들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느 땐 바로 가까이 피어있는 꽃들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지만 봄의 꽃들은 그럴 수가 없다 이제 봄꽃의 향연은 끝나고 세상은 여름 꽃으로 단장을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코로나의 습격은 축제의 마당을 통곡으로 바꾸어 버렸다. 아름다운 봄꽃 향기가 온 누리에 기득해야 할 계절에 온 세상을 악취로 뒤덮여버렸다. 거기에 축제마당을 종횡으로 헤집고 다닌 사람들의 못된 짓거리들은 꽃의 향기를 뒤덮을 만큼 악취를 풍겨놓았다. 꽃의 향기가 제각각인 것처럼 사람들의 향기도 마찬가지여서 세상을 즐기리라 오해를 했다.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가는 봄꽃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절규했다. 그런데 봄의 축제도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코로나는 인류의 생명뿐만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끊임없는 위협을 하고 있다. 주연과 배역이 바뀐 정치권은 백성의 아픈 곳,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를 애써 모른 체 하려는 듯 가증스럽다. 승자의 저주는 하늘을 찌르고 패자의 갈등은 날이 새도 마찬가지다. 방법이 없어 민주주의는 선거라는 제도를 아쉽게 채택했다지만 차라리 이럴 바에야 선량한 독재자를 찾는 것이 오히려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가설까지 생각하게 한다. 명색이 민주주의를 품고 살아 온 사람들이 오죽하면 이런 한탄스러운 푸념을 했을까. 언필칭 우리는 경이롭고도 놀라운 나날들 속에 살아왔다. 진실한 꿈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나 사랑스러운 세계를 원하거든 네 적을 포함해 모든 것을 사랑하도록 하라고 권고한 간디의 말을 되새겨본다. 어차피 함께 만들어가에서 진실해 보이고도 싶고 모두를 사랑하고도 싶지만 반복되는 배반의 세월을 어떻게 추스려야 할까? 최인호는 우물 안 개구리는 대해(大海)가 있음을 모른다는 속담도 있지만 용서를 애원하는 자도, 해야 할 자도 진실함도 사랑함도 모두가 사람이 해야 될 일인데 사람들끼리 잘 못 만나 봄꽃 향기도 날려버리고 봄의 축제도 흥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모두 우물 안 개구리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향기로운 사람들을 만나 그 향기에 포근히 안기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오순도순 만들어가는 세상이 이상향이다. 이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공동 작업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좋은 세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 했다. 어쩌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가 참 꿈같고 기적 같다. 석유 값이 물 값 보다 싼 이상한 세상을 살아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 보다 더 진한 향기를 풍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향내는 가시지를 않는다. 꽃은 향내가 없어도 자태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꽃으로 행세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애써 향내를 버리려 해서 안타깝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려는 그 이름은 다름 아닌 꽃의 향기와 같은 것이다. 꽃의 향기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는 300명의 대리자를 뽑아 황금빛 뺏지를 달아주었다. 그 뺏지의 뒷면에는 5000만 국민을 사람의 향내에 취하게 하라는 명령이 새겨져 있다. 그 향기를 기대해 본다. △안홍엽 수필가는 전주 mbc 편성국장을 역임했고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전북문화상 수상작가로 산문집 <사랑이 꽃비 되어>, <별과 사랑과 그리움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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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3 16:36

[금요수필] 잠자리

김세명 삼라만상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알 듯 말 듯 스며든다. 산 계곡 숲속에서 은은하게 느끼던 나긋나긋한 푸른 향기다. 숲속은 포근하다. 저 나무들도 사람의 삶과 같지 않은가? 수종 간에 소리 없는 경쟁을 하며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여유롭게 보인다. 자연도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안정되어가는 숲으로 이루어지겠지.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묵은 이파리들이 팔랑댄다. 춤을 추듯 너울거린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반복되다가 한 잎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팔랑대며 팽그르르 돌다 덜어진다. 아름다운 환상이다. 언덕에는 찔레꽃이 피고 강변에는 물새들이 촐싹대던 어린 시절을 어이 잊을 건가. 그 시절 그리움이, 빛바랜 일기장 글씨처럼 흐릿해져 간다. 강가에서 물고기 잡기나 삼대에 거미줄을 감아 잠자리를 잡고, 자연과 벗하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내 고향 북고사로 가는 방죽가에서 왕 잠자리 암컷을 잡아 실로 다리를 묶어 바이~바이~하며 원을 그리면 그 말을 알아듣는지 숯 잠자리가 날아와 헐레(짝짓기)를 한다. 미물이지만 종족의 번식을 위해 계속 시도하는 왕잠자리들을 포획했다. 암컷을 향해 끝없이 도전한다. 잠자리 잡기에 해가는 줄 몰랐다. 잠자리는 7년간 유충으로 물벌레에서 잠자리가 된다고 한다. 사람은 왜 날 수 없을까? 하며 잠자리를 부러워도 했다. 나도 청년기를 지나며 사람도 미물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시련을 당하면 종족을 더 번식하는 것은 본능이다. 육이오 사변 후 베이비붐이 증명한다.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다. 제 복(福)은 타고 난다며 굶주리며 넘어져도 단련하며 활달하게 자랐다. 배워야 산다 며 인생의 완성을 위해 학문을 익히고, 우월감에 젖어 고아한척 이기심에 빠지지만 한치 앞만 바라볼 뿐이다. 생존경쟁을 위해 아등바등하며 사는 게 너무 처절할 때가 많았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다른 생물보다 사람이 우월하다고 단정 할 수도 없다. 요즘처럼 코로나19 미물에게 인류가 고통 받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코로나 이후 모든 게 변했다. 빈부의차도 비 대면으로 종교의 패러다임도 위선으로 외면 받고 있다. 신천지도 극락과 지옥도 누가 가보았냐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런 말도 먹히지 않는다. 사람도 미물처럼 한 시절 맴돌다 종족을 번식하고 살다 때가 되면 간다. 천수를 누리기도 하고 불행을 당해 요절하기도 한다. 평탄하기도 하지만 직선과 곡선 원형을 그리며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며 생을 이어 간다. 철따라 꽃이 피고지고 신록이 우거지면 쉼 없이 생태계는 번식을 하고 모든 생물은 먹이사슬에 따라 나고 죽고를 반복한다. 누구나 그 대열에서 부귀공명을 누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잠자리 포획처럼 소용없다며 good bye~ 하는 게 삶이 아닐까 ? △김세명 수필가는 2001년 『수필과비평』지로 등단했으며, 전북문협과 전북수필 모악에세이 회원, 신아문예 작가회 감사, 수요반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業(업), 청무성(聽無聲) 수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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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6 17:18

잠자리- 김세명

김세명 수필가 삼라만상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알 듯 말 듯 스며든다. 산 계곡 숲속에서 은은하게 느끼던 나긋나긋한 푸른 향기다. 숲속은 포근하다. 저 나무들도 사람의 삶과 같지 않은가? 수종 간에 소리 없는 경쟁을 하며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여유롭게 보인다. 자연도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안정되어가는 숲으로 이루어지겠지.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묵은 이파리들이 팔랑댄다. 춤을 추듯 너울거린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반복되다가 한 잎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팔랑대며 팽그르르 돌다 덜어진다. 아름다운 환상이다. 언덕에는 찔레꽃이 피고 강변에는 물새들이 촐싹대던 어린 시절을 어이 잊을 건가. 그 시절 그리움이, 빛바랜 일기장 글씨처럼 흐릿해져 간다. 강가에서 물고기 잡기나 삼대에 거미줄을 감아 잠자리를 잡고, 자연과 벗하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내 고향 북고사로 가는 방죽가에서 왕 잠자리 암컷을 잡아 실로 다리를 묶어 바이~바이~하며 원을 그리면 그 말을 알아듣는지 숯 잠자리가 날아와 헐레(짝짓기)를 한다. 미물이지만 종족의 번식을 위해 계속 시도하는 왕잠자리들을 포획했다. 암컷을 향해 끝없이 도전한다. 잠자리 잡기에 해가는 줄 몰랐다. 잠자리는 7년간 유충으로 물벌레에서 잠자리가 된다고 한다. 사람은 왜 날 수 없을까? 하며 잠자리를 부러워도 했다. 나도 청년기를 지나며 사람도 미물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시련을 당하면 종족을 더 번식하는 것은 본능이다. 육이오 사변 후 베이비붐이 증명한다.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다. 제 복(福)은 타고 난다며 굶주리며 넘어져도 단련하며 활달하게 자랐다. 배워야 산다 며 인생의 완성을 위해 학문을 익히고, 우월감에 젖어 고아한척 이기심에 빠지지만 한치 앞만 바라볼 뿐이다. 생존경쟁을 위해 아등바등하며 사는 게 너무 처절할 때가 많았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다른 생물보다 사람이 우월하다고 단정 할 수도 없다. 요즘처럼 코로나19 미물에게 인류가 고통 받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코로나 이후 모든 게 변했다. 빈부의차도 비 대면으로 종교의 패러다임도 위선으로 외면 받고 있다. 신천지도 극락과 지옥도 누가 가보았냐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런 말도 먹히지 않는다. 사람도 미물처럼 한 시절 맴돌다 종족을 번식하고 살다 때가 되면 간다. 천수를 누리기도 하고 불행을 당해 요절하기도 한다. 평탄하기도 하지만 직선과 곡선 원형을 그리며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며 생을 이어 간다. 철따라 꽃이 피고지고 신록이 우거지면 쉼 없이 생태계는 번식을 하고 모든 생물은 먹이사슬에 따라 나고 죽고를 반복한다. 누구나 그 대열에서 부귀공명을 누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잠자리 포획처럼 소용없다며 good bye~ 하는 게 삶이 아닐까 ? 김세명 수필가는 2001년 『수필과비평』지로 등단했으며, 전북문협과 전북수필 모악에세이 회원, 신아문예 작가회 감사, 수요반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業(업), 청무성(聽無聲) 수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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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9 15:15

[금요수필] 내 손 안의 3종 세트

문경근 퇴직을 한 뒤 집안에서의 생활 비중이 크다보니 매일 나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물건들이 있다. 요것들은 모양이나 크기, 색깔도 고만고만하여 지근거리에 두고 돌려가며 부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나와 같은 동병상련(同病相憐)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아마 수긍을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 손 안의 3종 세트라 부르는 휴대전화, 컴퓨터 마우스, TV 리모컨이다. 특히 요즈음 같이 코로나 19의 포로가 되어 방안에 갇혀있다 보니 손 안의 3종 세트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틈새를 노려 나 사이와 거리가 더욱 가까워져 한 몸이 된 듯하다. 이 들의 공통점은 일단 손아귀에 들어오면 그 기능을 손쉽게 발휘하여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 간편함과 신속함에 깜짝깜짝 놀랄 뿐이다.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은 이들은 내 손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생명체로 진화한 듯 나와 소통을 시작한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과 거리가 가까울수록 짧아지는 나의 동선(動線)은 게으름으로 이어지며, 요즘은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이들이 나를 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내가 말로만 듣던 3차원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실감한다. 공간을 수학적으로 나눈 것을 차원이다. 1차원은 선(線)으로 앞과 뒤의 방향뿐이고 2차원은 면(面)이라 하여 1차원에 좌우 양면이 더 추가 된 것이라 하다. 그런데 3차원은 공간(空間)으로 2차원에 위, 아래의 높이라는 방향까지 더 해 진 것이니 이들의 지배가 시작 된 것이다. 내 손 안의 리모컨은 TV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닌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자극만으로도 별의별 정보가 쏟아진다. 거리는 두되 마음은 가까이하라는 자막이 흐른다. 옆에 항상 대기하며 언제든 부르면 냉큼 다가올 수 있도록 충실한 비서 휴대전화에 문자 도착 신호가 뜬다. 대면은 어려워도 마음의 끈을 놓지 말자는 지인의 연락이다. 휴대전화는 옆에 없으면 불안하고, 외출할 때도 마지막에 반드시 챙기는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무료한 시간이 흐를 즈음, 쓰다만 수필을 다듬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움켜쥔다. 이 물건 역시 손아귀에 쏙 들어와서 톡톡 건드려만 주면 세상을 향한 문이 스르르 열린다. 나는 원고를 불러오기 전에 몸을 풀듯 잠시 인터넷 항해를 하는 습성이 있다. 인터넷이야 휴대전화로도 접속할 수 있다지만, 탁 트인 화면의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도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쓸 때만은 온전히 내 심중의 사유가 작동하는 시간이다. 내 손 안의 3종 세트와 한참을 놀다 보면 눈은 침침해지고 어깨도 뻐근해 심심함을 달랠 겸 이들을 탁자 위에 나란히 놓고 아내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화면에 나타난 그들의 정지된 모습은 무심하고 냉정하다. 손만 내밀면 간편함을 즐기며 게으름에 빠지다 보니 이들 3종 세트가 애물(愛物)에서 애물(碍物)로 바뀌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걱정된다. 정보화 기기의 편의성이 타성이 되기 전에 3종 세트를 경계할 시점에 이른 건 아닐까. 하지만 이들과 애증(愛憎)이 깊어져 즉각 헤어지기는 어렵고 적당한 거리의 유지가 상책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그 적당함을 찾기 위해 밀고 당기는 밀당을 하며 내 의지를 시험 중이다. ◇ 문경근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공무원연금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읍수필, 전북수필, 행촌수필, 전북문협 회원으로 있으며 수필집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외 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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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2 17:22

[금요수필] 학산(鶴山)이 주는 행복

이우철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학산을 오른다. 도시에 이처럼 갈 수 있는 산이 있으니 즐거운 일이다. 송정서미트를 지나 망태저수지에는 아침을 즐기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누가 돌보거나 가꾸지 않아도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산은 스스로 변화하면서 수천년을 이어온 전주의 심장이나 다를 바 없다. 중턱을 넘어가면 전주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보광재가 나온다. 교통사정이 열악했던 시절 완주 평촌사람들은 이 길로 전주까지 시장을 다녔던 곳이다. 촌부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게로 짐을 날랐고 채소를 팔아 어려운 생계를 이어 갔으리라. 수레도 다니며 선조들의 땀방울이 어린 산길, 짐승이 우글거리고 강도들의 은거지이기도 했을 것이다. 학산은 학의 날개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고산을 줄기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의 지형은 아늑하고 평화스럽기 그지없다. 눈, 비가 와도 태풍이 몰아닥쳐도 방패막이가 되었고 예기치 않는 재해를 막을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 모악산이 있고 나들이하기 좋은 강천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노년에 은퇴자들이 몰려드는 지역이다. 등산은 진땀을 빼는 한고비쯤 있어야 맛이 있다. 보광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면 깔끄막길이 나온다. 숨이 가쁘고 등짝에 진땀이 젖는다. 내려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뱃살을 줄이고 건강을 위하는 일이니 참고 견뎌야 한다. 때론 중단할까 돌아갈까 갈등이 앞서지만 어디 등산뿐인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렇듯 그 고비를 참고 넘기면 내리막길처럼 순탄하게 풀려지기도 한다. 정상에 오르니 상쾌한 바람으로 몸은 날아갈듯 가벼워진다. 구구 욱구구 산 비둘기 울음소리는 정겹고, 보랏빛 철쭉꽃이 만발해 있다. 코로나 역병 때문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오르내리지만 눈으로만 가볍게 인사를 한다. 어디 낙원이 별것이던가? 몸속의 묵은 찌꺼기를 땀으로 흘려보냈으니 보약을 매일 한 첩씩 먹은 셈이다. 아내도 제법 선수가 되었다. 처음엔 중간에서 내려가기를 반복했지만 이젠 쉬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혼자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가면 멀리갈 수 있다고 한다. 그간 묵은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 좋다. 부부중 누구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가정의 분위기는 불안해지기 마련이니 나이 들수록 함께 건강해야 한다. 능선을 따라 정수장방향으로 내려오면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공기는 맑고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여유롭다. 도시에 살면서 어찌 욕심을 다 채울 수 있을까만 가까운 곳에 산이 있고 계곡에 물이 마르지 않으니 노후에 이만한 곳도 없으려니 싶다. 마음이 답답할 때,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힐 때 숲이 있고 훌쩍 떠날 수 있는 학산이 있어 행복하다. △이우철 수필가는 순창 출신으로 공무원으로 퇴직한 뒤 「대한문학」에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와 전북수필(부회장), 행촌수필, 순창문협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나이 드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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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5 16:25

[금요수필] 물 꺼!

양영아 희뿌연 모래바람 속에 한 여인이 그림자처럼 휘청거린다. 비쩍 마른 여자의 머리 위에 물동이가 버겁다. 맨발이다. 약 시오리는 훨씬 넘게 걸었다는 그 여인의 얼굴은 갈라져버린 대지를 닮았다. 식구들의 생명수를 이고 간다. 그곳도 예전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였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못된 지도자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하여 사랑하는 가족도, 아름답던 주변 환경도 모두 잃어버린 시리아 난민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우물마다 시체가 버려지고 파괴된 건물더미가 물줄기를 덮어버렸다. 더 보려니 우울한 TV 화면만큼 내 마음도 우울해져 TV를 끄고 일어겄다. 그리고 머리도 식힐 겸 목욕탕으로 갔다. 그런데 수도가 고장인지 사람도 없는 자리에서 물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또한 그 옆 아주머니의 물도 계속 넘치고 있었다. 요즘은 절수기 설치로 잠깐 흐르다가 자동으로 닫히는데 그 아줌마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아예 고무줄로 고정해놓고 쓰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이 넘치니까 잠그면서 쓰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심히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목욕탕 주인이냐고 시비조로 나왔다. 주인만이 물을 아껴야 하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목욕탕 풍경도 자세히 보니 가관이다. 너도, 나도 물이 넘치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물새가 깃털 다듬듯 제 몸 가꾸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상큼한 오이는 천연재료로 공해가 없지만, 온몸에 도배하듯 바르는 저 유제품과 오일은 어떻게 될까? 끈적임을 씻어내려니 물도 엄청나게 쓴다. 그 더러움을 답싹 안고도 불평 없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저 물의 겸손을 우리는 과연 알고나 있는가.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물이 도랑물 같다. 물에 녹아 없어지는 물질이라면 괜찮지만 오염의 주범이 대부분일 텐데 문제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탕 밖으로 나가려는데 젊은 여자 둘이 침을 튀기며 싸우고 있다. 샤워기 물을 시종 틀어놓고 목욕하는 여자를 보다 못한 간섭녀가 나무라는 중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도 소시민답게 돌아섰는데 그녀의 용기가 대단했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가려는 발걸음을 돌려서 간섭녀의 역성을 들어 주기로 했다. 물 꺼! 당신 집에서도 이렇게 계속 틀어 놓고 써요? 샤워 시간 2분만 줄여도 24리터의 물이 절약된대요. 당신 손주들 십 리 밖에서 물 길어오지 않게 하려면 어서 잠그세요. 나는 갑자기 생긴 용기에 TV에서 보았던 풍경을 현실로 착각하며 한 수 거들었다. 막무가내의 나의 말에 대책 없는 듯 샤워녀는 옹알거리며 샤워기를 껐다. 그 의로 풀풀 날리는 흙먼지 길 위에서 비틀거리며 물 길어 오는 샤워녀의 후손이 클로즈업 되어 보인다. 아냐. 그래선 절대 안 돼. 이제 더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물동이를 이고 십 리씩 걷는 일은 없어야 해. 나는 목욕탕 문을 다시 열고 나서면서 샤워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물 꼭 잠그면서 써요! 바짝 얼어버린 샤워녀를 남겨두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마르지 않은 머리 위에 삼월의 햇볕이 참 따스하다. 물 꺼! 이 한마디에 겨울잠 자던 새싹 들이 해 맑게 웃거 손짓 하며 고개를 내민다. △양영아 수필가는 교직에서 은퇴하여 「대한문학」 수필 「표현문학」 시로 등단했다. 행촌수필문학회장, 꽃밭정이수필문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집<슴베>,<불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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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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