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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익산은 마한의 건마국이었나?

익산지역이 마한의 고도로 인식되어 왔던 근거는 중국 고대사서 『삼국지』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고조선 준왕이 바다를 건너 익산으로 와서 마한을 개국했다고 요약된다. 일반적으로 문헌기록에 보이는 마한 54개 소국 가운데 건마국은 익산의 금마 일원, 감해국 혹은 염로국은 익산 함열 일대, 여래비리국은 익산 여산 일원으로 비정되어 왔다. 그 가운데 건마국은 마한 연맹체의 맹주로 자리잡고 있었고, 마한 정치체의 성장에 따라서 익산의 건마국에서 충남 직산의 목지국으로, 목지국은 한강유역의 백제에 정복되는 단계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어 왔다. 이병도 박사가 건마국을 마한 후기의 맹주국으로서 익산으로 비정한 이래, 특별한 비판없이 건마국은 익산일 것으로 인식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근거는 현재의 지명인 금마(金馬)와 건마(乾馬)의 음운이 비슷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건마(乾馬)의 음이 金馬 혹은 古馬의 어느 편에 가깝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천관우는 『삼국지』의 국명 열거 순서가 북에서 남이라는 방향에 착안하여 감해(感奚)를 익산에 비정하고, 마한 54개국 열거의 마지막 순서에 가까운 건마를 장흥의 백제 때 명칭인 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이나 신라 때의 마읍현(馬邑縣)이라는 점에서 장흥 일대를 건마국으로 비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건마국을 이른 단계의 마한 소국으로 이해하거나 마한 후기의 맹주국으로 보는 견해에서도 차이를 보이며, 오늘날 익산과 장흥지역은 매우 떨어진 지역으로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에는 거리감이 없지 않다. 한편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정관(貞觀) 13년(639) 백제 무광왕(武廣王)이 현재의 금마지역인 지모밀지(枳慕蜜地)로 천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한의 성립과 준왕의 남천지로 비정되는 금마 일대는 백제시대에는 지마마지 혹은 지모밀지에서 금마저(金馬渚)로 그리고 신라시대에는 지모현으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금마군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 상해의 방언에서 支牟와 金馬의 발음이 jin mou로 동일하게 발음하고 있음이 확인되는데, 현대의 중국어로도 乾은 qian이나 gan으로 발음되고, 金은 jin으로 발음되고 있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어인 금마와 건마가 유사한 음운이라는 사실만을 근거하여 동일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금마 일대를 마한 소국 가운데 건마국으로 비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요망된다. 건마국의 명칭은 3세기 중엽에 쓰여진 『삼국지』에 처음 등장하며, 기록된 소국명은 3세기 중엽경의 양상일 가능성이 크다. 익산이 마한의 고도로 인식되는 시기, 즉 준왕의 남천과 관련된 마한의 성립시기는 문헌자료나 고고학 자료(그림1.2.3)에 의하면 B.C 3세기경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건마국이 등장하는 기원후 3세기 중엽까지 약 600여년 동안 건마국이란 명칭으로 존재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고고학적 성과로 보면 익산지역에서는 마한의 성립과 관련된 토광묘 축조집단 이후, 특히 3~4세기에는 다른 지역과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의 우월적 지위를 갖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삼국지』에 마한의 국명으로 등장하는 건마국의 위치 비정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요망되며, 이 뿐 아니라 건마국이 익산이라는 전제로 전개된 마한의 성장과 세력변천에 대한 견해도 재고되어야 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 문화일반
  • 기고
  • 2021.10.26 17:57

전주한옥마을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윤혜정씨

제2회 전주한옥마을 전국시낭송대회에서 윤혜정(67광주)씨가 대상을 거머쥐었다. 시낭송과 시문학을 사랑하는 대표적 공연단체인 (학)한벽루사람들(대표 강민서)은 2021년 전북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4일 한국전통문화전당 공연장에서 제2회 전주한옥마을 전국시낭송경연대회(운영위원장 김도영)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에서 실력있는 100여 명의 시낭송가들이 응모했고, 이 중 예심을 통과한 33명을 대상으로 본선대회를 치렀다. 그 결과 영예의 대상은 땅의 연가(문병란 시)를 낭송한 윤혜정씨가 선정됐다. 금상은 임경화씨(45광주), 은상은 정선혜씨(70울산)가 수상했으며, 동상은 5명(김춘실, 김명희, 박기영, 손효성, 황주현)이 수상했다. 대상, 금상, 은상 수여자는 (학)한벽루사람들이 수여한 시상금과 시낭송가 인증서를 수여받았으며, 특히 대상 수상자인 윤혜정씨는 향후 전주한옥마을 시(詩)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영예를 얻었다. 이번 경연대회를 주최한 강민서 대표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시 치유는 지각정서나 인지행동 장애로 불안한 심리를 시낭송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보다 안정적인 정서 심리 상태로 변화시켜 준다면서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전주한옥마을의 인지도 상승으로 인해 작년보다 훨씬 많은 참가자가 도전했는데 이러한 분위기를 잘 활용해 시낭송을 전주한옥마을의 큰 축제이자 전주미래문화자산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경연대회는 조만간 편집을 통해 유튜브 한벽루사람들로 중개될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이강모
  • 2021.10.26 13:38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수석 궁정화가의 개 1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천재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의 사후에 나온 말들이지만 그의 그림은 표현주의적인가 하면 초현실주의적이고 민중적 요소가 강한가 하면 일상의 매력 있는 초상화가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공간 구성이나 질감에서도 현대의 화가들이 감탄할 만한 그 무엇이 보인다. 그의 유명한 두 장의 마하를 보고 있으면 그 여인은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다시 농염한 눈길로 보는 까닭에 살아 있는 여인을 보는 듯하면서도 예술의 승화로만 말할 수 있는 미적 쾌감까지 가산되어, 보는 사람을 당혹하게 한다. 여인의 눈길과 온몸이 그러한 자세로 다시 말을 건네 오는 것이다. 우아한 두 다리의 발끝은 오른 편 위쪽에 있는 한 쌍의 눈과 묘한 대응을 이룬다. 나체의 마하의 배꼽에서 무릎까지의 당당한 포즈는 차라리 도발적이기도 하여 매력적이고 주술적이며 마술적이라는 표현이 걸 맞는다. 고야가 살던 당시에 에스파냐는 엄격한 가톨릭 국가여서 신성시 되지 않는 나체를 그린다는 것은 최악이었다. 그래서 나체의 마하 위에 옷을 입은 마하를 겹쳐 그려 걸어두었다 한다. 결국에는 이 그림 때문에 종교 재판에 출두하기도 했다. 누드라는 말은 옷을 벗었다는 말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예 옷을 입지 않았거나 옷을 벗었거나 그것이 그거 아니냐는 말도 할 수 있겠으나, 옷을 벗는다는 것은 부끄러움과 함께 도발적인데 반하여 아예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태초의 생명에 대한 건강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마하는 처음부터 옷을 입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발적으로 옷을 벗었기에 그토록 요염한 에로티시즘을 풍기는 것이리라. 멋쟁이 남자를 마호라 하고 멋쟁이 여자를 마하라고 하는데 이 부인은 당시 왕비와 맞서는 기품과 아름다움으로 사교계의 꽃이었던 알바공작의 부인이라는 설이 있기도 하나 신빙성이 조금 부족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당시의 세도가였던 재상 고도이의 주문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10.25 17:41

안숙선 명창, 2021년 문화예술발전유공자 은관문화훈장 수상

남원 출신 안숙선 명창(72)이 2021 문화예술발전유공자 정부 포상식에서 은관문화훈장 수상자로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하는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해 문화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은관문화훈장은 금관문화훈장에 이어 2등급에 해당한다. 안숙선 명창은 창극, 완창 공연과 현대적인 무대까지 다채로운 공연활동 및 후학양성 및 기관의장으로 우리 소리를 알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국가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로 국악 전문 복합문화시설 조성, 춘향제 제전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국악에 대해 널리 알렸다는 평이다. 앞서 안숙선 명창은 국가문화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99년에 옥관문화훈장(4등급)을 수여받은 바 있다. 남원 산동면 출생인 안 명창은 지난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을 시작으로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86년 남원 춘향제 춘향국악대전 대통령상, 1998년 프랑스문화부 예술문화훈장, 2011년 의암주 논개상, 2013년 만해문화예술부분 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다.

  • 문화일반
  • 김선찬
  • 2021.10.19 17:31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56)어휘와 어법에 천착, 비평의 새 길 연 오하근 평론가

오하근 평론가 오하근 평론가는 1941년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에서 부 오해준과 모 선준량 사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제초등학교 졸업하였고, 김제중학교와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1964년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부안여자고등학교와 전주해성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75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군산공업전문대학(현 호원대학교)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를 재직하였다. 1989년 전남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소월 시의 상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85년 뉴욕의 주립대학과 연변대학의 교환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며, 중학교 다닐 때 『무정』, 『유정』, 『단종애사』와 『원효대사』 등 이광수 소설을 섭렵하였다.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시인 신석정, 김해강, 백양촌 선생이 소개되는 광경을 보면서 찬탄과 경이에 빠졌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전주고 1학년 때 서라벌예대에서 주최하는 전국고등학교 현상문예에 시 「옛날」이 당선되었는데, 담임 선생님 옆자리에 앉은 신석정 선생이 이를 크게 칭찬해주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운명과도 같은 신석정 시인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석정 선생을 모시고 강인한, 오홍근, 강일부 등과 함께 맥랑시대라는 동인회를 결성하여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하였다. 1960년 전북대학교에 입학해서는 그는 의외로 소설을 썼고, 3학년 때는 전북대학신문사 주최 현상문예에 소설 「신화」 가 당선되었다. 당시 그와 함께 시에 당선된 장지홍, 수필에 당선된 김형진은 훗날 오하근이 주축이 된 『문예가족』의 멤버가 되어 많은 활동을 하였다. 대학 시절 김교선, 이기우, 천이두 등의 지도로 문학평론에 몰두하였으며, 마침내 1981년 『현대문학』에 「불, 그 영원한 조합」이라는 평론이 추천 완료되었다. 그 후 그는 우리 문단의 깐깐한 평론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특히 해석의 오류로 먹칠 된 작품들에 대한 바로 잡기에 앞장서면서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연구 저서들을 다수 출간하였다. 『김소월 시어법 연구』를 비롯하여 『한국현대시 해석의 오류』, 『전북현대문학(상, 하)』 등의 역작을 저술하였다. 그는 1970년대 초 석정 선생의 추천으로 시 부문에 등단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사양하고 그로부터 10여 년 후 평론으로 등단하여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 이상 평론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부안여고에 재직하면서 「국정 중학 국어에 나타난 오류」(신동아)와 「인문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타난 오류」(전북일보)를 발표하여 당시 교과서의 문장, 문법, 표현법 등 수많은 오류를 지적하여 바로잡게 하였다. 오하근 평론가는 작품 속의 어휘와 어법에 집요하게 천착함으로써 새로운 평론의 길을 열었다. 그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던 『김소월 시업법 연구』(1995)를 비롯하여 많은 평론에서 작품의 어휘와 어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끈질긴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한 「어느 선각자의 도전과 좌절」이라는 글에서는 현대문학사에서 외면당했던 많은 작가를 새롭게 조명하여 우리 문단을 풍성하게 하였다. 호병탁은 『문예연구』(2018년 96호)의 기획 추모특집 「오하근론」에서 그가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를 두 가지 관점에서 밝힌 바 있다. 첫째는 작품 속의 어휘와 어법을 제대로 잡아주어 작품 해석의 물꼬를 제시하였다. 특히, 문학작품 중에서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작품, 해석에 논란이 있는 작품, 고착된 오류가 있는 작품들을 골라 오류를 바로잡아 올바르게 해석하는 물꼬를 열었다. 다음으로는 전 북문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이라고 하였다. 2010년 『전북현대문학』 상ㆍ하 권을 상재하여 전북지역 문인들의 작가론과 작품론을 개진하여 전북문학의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현대문학의 초창기 유엽(柳葉,1902-1975)으로부터 시작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전북문학사를 다듬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최명표는 「자세히 읽기와 지역에서 살기」라는 오하근 추모 기획특집에서 그의 공로를 김소월 시 정본화 작업으로 소월 시 연구의 활로를 모색하였으며, 전북문학을 정리한 점이라고 하였다. 문신은 오하근의 비평은 어김없이 진정성이라는 해석이 뿌리를 내렸다고 하면서 오하근은 해석의 힘을 사랑했고, 해석의 힘으로 비평의 지평을 열어가고자 했다라며 그의 비평적 진정성은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오하근은 이렇듯 평론에 굵직한 획을 남겼으며 크게 영달할 기회가 있었지만, 한평생 고향에서 후학들 지도와 연구에 전념하다가 76세 되던 해인 2017년 11월 17일 밤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생전 고인과 함께했던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청운사 주지 도원스님을 비롯하여 동인회 문예가족, 전북대 국문과 제13회 동기생들, 금요회, 맥랑시대 가족들은 2019년 5월 3일 김제시 청운사 연지에 오하근 평론가 문학비를 세우고 그의 문학을 기렸다. 이날 제막식에는 호병탁의 사회로 서재균 오하근문학비건립추진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안평옥 시인의 추모시 낭독이 있었다. 그의 제자 오용기은 『문예연구』(2018)의 추모특집에서 늘 함께했던 스승과의 사별을 안타까워하면서 스승의 문학적 열정을 다음과 같이 회억하였다. 선생님 웃음소리 기침소리 사이로 쟁쟁하게 되살아올 문학의 혼과 열정을 기다리렵니다. 평생을 두고 선생님께서 나누신 인정과 지성에 감동한 많은 분들이 살아 있는 백과사전을 무심코 찾다가 문득 빈자리 허전하게 더듬게 될지도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냥 가신 것이 아니라 봄 잎이 녹음 되고 단풍으로 천지를 채운 뒤 욱욱청청한 숲에 침잠함으로써 오히려 새 날 다시 뽀땃이 암냥하는 순리로 돌아오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 문예연구 96호(2018 봄)

  • 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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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9 17:26

국립무형유산원, “영상 보고 힐링하세요!”…영상 콘텐츠 5편 공개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이종희)이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에 휴(休), 무형유산 무형유산 영상 콘텐츠 5편을 공개했다. 휴(休), 무형유산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위해 지난해부터 국립무형유산원이 제공하고 있는 비대면 힐링 콘텐츠 서비스다. 이번에 공개한 나답게, 평택농악 이수자 김지훈 ON과 육아빠, 평택농악 이수자 김지훈 OFF에는 무형문화재 전승자로 사는 삶과 한 사람으로 사는 삶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다. 코로나19를 살아가는 무형문화재 전승자의 고민과 일상을 영상 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그려냈다. 나전국화덩쿨무늬 북엔드는 올해 <무형유산 UCC 영상 공모전> 당선작으로, 나전칠기 기법을 활용하여 생활 소품인 북엔드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자연과 무형유산에서는 자연의 재료가 전통공예 기술을 거쳐 일상의 물건으로 재탄생하는 이야기를 보여 준다. 빈녀난타품은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인 연등회의 기원 설화에 대한 그림자 애니메이션이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앞으로도 국민이 일상 속에서 무형유산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지속해서 서비스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박현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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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8 17:16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나는 인구 조사원이 아니올시다 3

이런 궁핍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 속에서도, 2남2녀 중 유일한 생존자로 이제 어른이 된 티투스와 실질적으로 두 번째 부인인 핸드리케의 협력으로 더욱 더 순수하게 그림만 그릴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파산과 인기의 저하 등 일련의 역경에도 불구하고 시인 얀 포스는 그에게 암스테르담 최고의 화가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각박하기만 했다. 그가 죽기 6년 전에는 그토록 그를 섬기던 핸드리케가 세상을 버리고 아들 티투스도 그의 죽음 전 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자기를 감싸고 있던 가족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가 63세 되던 3월 아버지 없는 티투스의 딸 티티아가 태어났으나 그 손녀도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지는 못하였나보다. 그 해 10월 그는 자기에겐 유난히 영욕의 세월이었던 이승의 끝을 맞이한다. 야경夜景이라는 그림의 블랙코미디 같은 에피소드를 보면 참 세상의 허무함이 느껴진다. 당시 암스테르담의 시민들은 유머 감각보다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 중의 한 무리가 렘브란트에게 멋지게 군복을 차려 입은 자기들의 모습을 그려줄 것을 주문했다. 사람이란 밖에 나가면 어쩔 수 없이 그 비중에 따라 우열이 가려지지만 스스로 자신을 비하시켜서 좋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렘브란트는 같은 돈을 받은 그 사람들을 공평한 크기와 명암으로 그리지 않고 어떤 사람은 크게 그리면서도 많은 빛을 주고, 또 어떤 사람은 절반은 햇빛 속에 절반은 어둠에 있게 하거나 아예 그늘 속에 눈만 그려 넣는 등으로 표현하였으니 같은 돈을 내고도 열등하게 그려진 사람들이 분노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의 증오는 분노로 바뀌고 급기야는 렘브란트가 그때까지 쌓아놓은 최고의 명예와 부를 헐뜯기 시작했다. 주문은 점점 없어지고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 길 끝이 파산 신고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독백하였다. 나는 인구 조사원이 아니올시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10.18 16:57

천주교 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에 ‘세계평화의 전당’ 개관

전주 치명자산성지에 세계 평화의 전당이 개관했다. 치명자산성지는 신유박해(1801년, 조선순조 1년) 순교복자 유항검 가족과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는 천주교 성지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지난 16일 완산구 대성동 치명자산성지에 세워진 세계평화의 전당 유항검 홀에서 개관식을 열었다. 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관으로 열린 이날 개관식에는 오영우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송하진 전북도지사, 김성주 국회의원, 주한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축복미사, 교황 축복장 전달, 축하연 순으로 진행됐다. 송하진 도지사는 세계평화의 전당은 세상을 향해 열린 사랑의 방주라는 기치처럼 생명 존중과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 국민 마음을 치유하는 장소라며 다양한 관광자원과 연계해 즐길 거리가 가득한 열린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계평화의 전당은 지난 2015년 10월 문화광관체육부 국고보조금사업으로 확정된 후, 기본계획과 건축설계용역,인허가 완료, 계약 및 착공, 공사를 거쳐 올해 5월 준공했다. 건립 예산은 총 296억9000만원이다. 3만9053㎡부지에 지상 3층 규모(연면적 9359.31㎡)로 건립된 복합문화시설로 피정연수관, 컨벤션홀, 전시장(보두네홀), 객실 76개(2인실가족실), 세미나실, 식당, 카페, 상담사목 센터 등을 갖췄다. 치명자산성지를 치유와 내적 평화의 명소로 조성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으며, 인근 전주한옥마을과 연계해 순례객 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대중 문화관광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10.17 17:19

쓰레기 만들지 않는 장, ‘불모지장’…23일 단 하루만 개장

청년들(시리, 페퍼, 진아, 모아)이 오는 23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전주시 자원봉사센터 잔디광장에서 세 번째 불모지장을 연다. 불모지장은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가는 장을 의미한다. 청년들이 불모지장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쓰레기 만들지 않는 시장을 통해 많은 양의 쓰레기가 배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불모지장 기획자 모아 씨는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당장은 불편한 실천을 공유하고, 대안을 경험할 수 있는 불모지장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과 같이 이번 불모지장에서도 아나바다를 실천한다. 아(아끼다)에서는 대안 용품과 과탄산수소, 베이킹소다, 세제, 곡류 등의 다시채움장을 연다. 나(나누다)에서는 친환경농법과 자연농법 등으로 지은 농산물, 못난이 농산물(외관상의 이유로 폐기되는 농산물), 간식 등을 판매한다. 바(바꾸다)는 <바꾸다캠페인 종이팩>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바른 배출 방법에 따라 종이팩을 배출하여 불모지장 측이 만든 종이팩 수거함에 넣으면 된다. 다(다시 쓰다)에서는 의류, 소품, 책 등 중고 물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모아 씨는 이번 불모지장은 현재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로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만약 2단계로 하향 조정이 된다면 현장 접수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현장 접수가 어렵다고 했다. 이번 불모지장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다. 이용 시간은 최대 30분, 입장 인원은 30분당 15명으로 제한한다. 예약은 오는 20일 오후 6시까지 불모지장 인스타그램에서 가능하다. 한편 첫 번째 불모지장은 삼삼오오 인문실험, 두 번째 불모지장에서는 여약사회, 약사회 등 단체와 개인의 후원을 받았다. 아직 세 번째 불모지장의 후원자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우 인턴기자

  • 문화일반
  • 전북일보
  • 2021.10.17 17:15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의 전통문화바라보기] 트로트와 엔카

몇 년 전 전남 진도 출신으로 학창시절 판소리를 전공했던 송가인은 종편 방송인 내일은 미스트롯을 통해 대중음악의 스타가 되었다. 이러한 한 트로트의 오디션 방송은 장르의 새로운 열풍을 일으켰고 지금도 많은 각 방송 매체에서 다양한 장르 접목으로 국악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국악 창법과 유사하고 닮은 꼴을 많이 간직한 트로트(Trot)는 원래 빠르게 걷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라는 뜻의 명사이다. 이러한 트로트의 어원은 1910년대 미국과 영국 등에서 유행했던 리듬을 4박, 2박으로 나눈 폭스 트로트(fox-trot)란 명칭에서 나왔다. 이후 일본은 이러한 음악을 자국의 민속 음악과 접목하여 엔카(演歌)를 만들었고 대중가요 장르로 유행시켰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의 대중가수들은 전통의 민요를 신민요 풍으로 부르며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였고 새로운 문화 접목을 통해 한(恨)의 트로트를 만들어 냈다. 한국의 트로트가 품었던 과연 한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트로트가 대중에게 다가서기 시작한 1930년대는 전통 예술인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였다. 조선의 왕립 음악기관인 장악원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아악부로 치부되어 간신히 축소 연명하고 있었지만, 궁궐 밖 민속악의 판소리 명창, 기악의 명인들은 조선음악연구회를 만들어 국민들의 애환을 노래하고 사라져가는 우리 얼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질세라 대중음악인들도 나라를 잃은 마음을 노래로 풀기 시작했는데 그러한 암울했던 시대의 트로트는 황성옛터, 타향살이 등 한의 가요로 불리며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트로트에 대한 필자의 의견과 다른 인식의 경우도 물론 있다. 그 경우는 우리의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에 뿌리를 둔 왜색 음악으로 논의하며 다른 방향으로 판단하는 경우이다. 필자는 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논의하는 평론가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구성진 황성옛터와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위안받았던 모습을 보며 자란 세대로 그 존재가치의 계기가 어찌 되었든 시대와 역사를 품고 우리의 삶을 노래한 것은 잘 알고 있다. 특히 전통소리인 판소리를 공부한 한국인이 더 트로트를 감칠맛 나게 가슴을 졸이며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그러한 역량이 일본의 엔카를 많이 학습하고 불렀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엔카처럼 서양음악 선율은 단조이지만 한국 특유의 계면조 선율과 같고, 전통소리의 목구성(국악 전문용어로 성음<聲音>이라 한다)이 가미되어 한국인만의 소리인 트로트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날의 실패와 잘못은 또 다른 희망과 미래를 준비하는 자산이 된다.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대의 한 과거는 지나갔다. 이제 어려웠던 시대의 대중음악인 트로트는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적 감성과 수요에 의해 변화하였고 다시금 전통예술과 창의, 융합되어 세계 대중음악 중심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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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4 17:58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개발에 밀려난 마전 분구묘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40기의 조선 왕릉 가운데 김포 장릉 인근 문화재보존지역에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건설 중인 아파트의 철거 여부를 놓고 찬반 논쟁이 일고 있다. 국토개발 과정에서 발견되는 문화유적에 대한 훼손을 막기 위해서 공사를 시작하기 전 지표조사를 통해 유적 부존 여부를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면서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문화유적의 보존 목적도 있지만 문화유적의 보존에 따른 공사 주체자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김포 장릉의 경우는 아무런 사전조사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김포 장릉이 공사의 장애물(?)이 될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2007년 전주 서부 신시가지 개발과정에서 발견된 마전유적도 위의 사례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마전유적은 마한 전통의 분구묘로서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삼천천을 중심으로 마한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던 세력집단의 분묘로 밝혀졌다. 그런데 마전 분구묘는 발굴조사 이전에는 지표상에서 크게 노출되지 않았고, 이 유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문학대라는 누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문학대는 고려시대 초축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년)에 중건했는데, 1976년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 24호로 지정되었다. 신시가지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문학대를 통과하는 남북 대로의 건설이 계획되었다. 문학대가 지방문화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별다른 대책없이 넓은 도로를 건설하고자 했던 전주시 관계자들의 담대함에 놀랄 뿐이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포 장릉 주변의 개발공사 문제를 보면서 2007년 마전유적의 발굴과정에서 있었던 당시의 복잡한 심정에서 언제까지 문화재는 개발의 장애가 되어야 하는지 자괴감을 가지게 된다. 마전 분구묘 유적은 황방산 산줄기에서 뻗어내린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에서 하단부에 걸쳐 5기가 열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다. 이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3호분은 문학대를 축조하는 과정에서 분구 상면이 일부 삭평이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었고, 나머지 4기의 분묘에서는 주구와 매장시설만이 노출되었다. 매장 시설로는 토광, 석곽, 석실, 옹관 등 다양하게 확인되었는데, 특히 3호분에서는 토광목곽에서 석곽과 석실로 이어지는 주매장시설의 변화과정과 분구확장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였다. 출토유물은 각종 토기류와 철기류 옥 등인데, 4호분 3호 토광에서는 600여점이 넘는 옥이 부장되어 있었고, 5호분에서는 환두대도, 3호분 1호 석실에서는 말재갈과 다양한 토기와 옥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로 볼 때 마전유적의 주인은 전주 삼천천을 기반으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집단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문학대는 누정이다. 따라서 주변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최적의 장소에 세웠을 것이다. 마한 전통의 분구묘의 입지조건 역시 구릉의 정상을 따라 열을 지어 배치하는 것이 공통적 현상이기 때문에 마전유적도 그러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인간 삶의 쉼터와 죽은 뒤의 안식 공간이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인간들의 생각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주변 환경의 중요성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다행인지 모르지만 도 지정문화재인 문학대와 발굴조사가 완료된 마전 분구묘 유적은 인근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문화재란 원래 있던 환경 속에 자리하고 있을 때만이 온전한 가치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보면, 문학대와 마전유적의 이전은 못내 아쉬운 결정일 수 밖에 없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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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2 17:59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나는 인구 조사원이 아니올시다 2

렘브란트는 세계적으로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뒤러(Albrechht Duerer1471-1528), 세잔(Paul Cezanne 1839-1906),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보다 더 많은 100여점의 자화상을 자신에게 아부하거나 학대하는 일 없이 깊은 자기 응시와 성찰 속에서만 그리고 또 그렸다. 자화상이 많다는 것은 화가 자신을 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자기를 신뢰하고 또 반성하며 자신의 예술에 절망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며 인간을 증오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 본래의 고독을 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자화상뿐만 아니라 주위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정겨운 풍경도 그렸고 성서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푸줏간의 고기 덩어리를 그리는가 하면 생명처럼 사랑했던 어머나 코르넬리아와 아네 시스키야, 아들 티투스를, 나중에 궁핍만을 나눠줘야 했던 하녀이자 두 번째 아내 핸드리케를, 심지어는 자기를 조롱했던 사람들까지도 똑같은 애정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당시 풍속 화가들이 많았던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물 화가, 초상화가로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아내 사스키아와는 2남2녀를 두었으나 세 자녀는 어릴 적에 죽고 2남 티투스만 병약하게 장성했는데, 그마저 아버지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역시 허약했던 아네 사스키아도 결혼 8년만인 1642년에 죽는데, 공교롭게도 이 해는 렘브란트에게는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그 때가 렘브란트 미술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야경夜景이 그려진 해이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델란드에서 전개된 단체 초상화 분야에서 결정적 의미를 갖게 되는 이 야경이라는 그림은 렘렘브란트의 생활을 급변시키지는 않았으나, 이로 인해 세상이 그에게 주던 인기와 명성, 그리고 부에 대한 결별이 시작 되었던 것은 확실하다. 수입이 줄어들면서 재정적으로 점차 곤란을 받게 되고 끝내는 파산신고서를 쓰고 유태인의 거리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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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1 17:11

제15회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대상에 양예준 학생

전주 한옥마을 곳곳에는 선생님의 이름과 글들이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글귀도 따라 읽고 사진도 찍었는데 마치 선생님이 우리 가족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 것 같아 신기했어요(대상 양예준 학생의 최명희 선생님께 일부) 2021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에서 양예준(서울강서초 4년) 학생의 '최명희 선생님께'가 대상(전라북도교육감상)을 받았다. 이번 공모전은 학교학원지역 아동센터 등의 단체 참여는 줄었지만, 개인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전국 219개 학교(전북 51개교, 전북 외 168개교)에서 1,251명의 학생이 작품을 응모했다. 이 중 113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대부분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추었다는 내용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본인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 구체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눈에 띈 이유다. 어린이들 특유의 긍정적 태도로 일상 속에서 재미를 찾고, 서툴지만 그것을 연필로 꾹꾹 정성스럽게 눌러 표현한 노력이 돋보였다. 연필 향이 전해질 만큼 어린이들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작품 중 양예준 학생의 '최명희 선생님께'가 대상을 받았다. 최우수상에는 김현수(전주한들초 6년) 학생의 '수라갯벌 탐험기', 이다연(청원초 4년) 학생의 '한글을 지켜주신 주시경 선생님께'가 선정됐다. 심사는 고형숙(화가)김근혜(동화작가)이경옥(동화작가)정소라(화가)최기우(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관장) 작가와 김미영 문학박사, 전선미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맡았다. 이경옥 작가는 편지와 일기, 동시, 독후감 등 다양한 형식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글씨마다 연필 향이 전해져 심사하는 동안 행복했다. 움직임과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 쓰는 말도 과감하게 사용해 글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도 느껴졌다고 말했다. 2021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의 수상 작품은 11월부터 네이버의 손글씨 블로그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우수 작품은 최명희문학관 마당에 전시된다. 한편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은 평생 만년필 쓰기를 고집했던 소설가 최명희(1947~1998)의 삶과 문학 열정을 통해 우리말과 우리글의 소중함을 느끼고 손으로 쓴 편지와 일기로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15년 동안 이어진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에는 총 4만 5천여 편의 작품이 출품되면서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최고의 글쓰기 공모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박현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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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1.10.11 16:58

뜨겁게 달군 인두로 그리는 그림과 문양…낙죽장 청죽 이신입展

문화연구창 전주부채문화관(관장 이향미)은 오는 11월 2일까지 문화관 지선실에서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낙죽장 청죽 이신입전(展)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신입 낙죽장의 작품인 낙죽선, 반죽선, 옻칠 합죽선 등 신작과 대표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이 낙죽장은 낙죽 기법을 이용해 부채의 대나무 부분인 부챗살과 변죽에 박쥐, 매화, 용 등 다양한 문양을 그려 넣어 부채의 예술성을 높였다. 낙죽은 불로 지진다는 뜻의 낙과 대나무 죽이 합쳐진 말이다. 낙죽 기법은 인두로 대나무 겉면을 지져서 그림이나 문양을 넣어 표현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이 낙죽장은 전라북도 최고의 명장인 고 이기동 선자상(전라북도 무형 문화재)의 아들이다. 그는 부친에게 부채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아 부채를 만드는 기법부터 낙죽의 기술까지 고루 갖췄다. 대개 낙죽 하는 사람들은 전기인두를 이용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화로를 이용하는 전통 낙죽 기법을 재현한다. 이신입 낙죽장은 지난 2013년에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51호 낙죽장에 선정돼 전북에서 최초로 낙죽장 문화재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어 대한민국 공예품 대전 국무총리상, 전주 전통 공예 대전 특별상 특선,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전주시장육군참모총장 표창장 등을 수상했다. 한편 전주부채문화관은 전주의 부채에 대한 역사적 가치, 문화사적 의미를 알리고자 설립됐다. 부채 유물 전시와 부채 판매, 컬러링 부채 체험, 부채 그리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박현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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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1.10.09 18:31

“연극배우·동화작가들과 소설 ‘혼불’ 동화로 읽어요”

최명희문학관이 9일 한글날을 맞아 관람객과 함께하는 낭독과 체험행사를 마련했다.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열렸던 이날 행사에서는 소설 <혼불>속 옛이야기를 동화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한국문학관협회의 지역문학관 특성화 프로그램 지원사업으로 제작한 동화 <신발 얻은 야광귀>와 <나무꾼과 개구리>를 낭독했다. 우선 작품 속 나무꾼과 개구리, 야광귀 형제, 청암부인, 콩심이 등을 연기한 창작극회 배우 박규현이종화김수연김소연 씨가 낭독한 뒤, 관람객과 함께 나도 주인공! 동화 낭독하기 시간을 가졌다. 연극배우에게 다양한 역할의 목소리와 표정 연기 방법을 배우고, 동화 속 등장인물로 분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다. 각색 작업에 참여한 김근혜이경옥장은영 동화작가와는 원작인 <혼불>속 야광귀와 개구리 이야기를 읽고, 소설이 동화로 태어나는 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혼불>에 나오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며 우리말과 친해지는 국어사전을 펼쳐라!도 같이 열렸다. 이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동화책과 책갈피를 선물로 받았다. 또 「혼불」에 등장하는 명문장을 손글씨 작품으로 담는 혼불문장나눔과 작가 최명희의 취재수첩인 길광편우 만들기, 누름꽃을 더해 나만의 책갈피를 만드는 꽃갈피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열렸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예약으로 운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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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희
  • 2021.10.09 18:16

진정욱 도예가 대한민국미술대전 공예부문 우수상

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예가 진정욱이 2021년 제40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전통미술공예부문 최고상인 우수상을 받았다고 7일 전했다. 진 작가는 이번 미술대전에서 분청사기 인화문 문자도 대접시를 출품했다. 안재영 전통공예 심사위원장(청주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 역임)은 심사평에서 전통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짜임, 조형성과 장식성, 색채 조화 등을 중심으로 작품을 선정했다며우수작인 진정욱의 분청사기 인화문 문자도 대접시는 작품 중앙에 유교적 가치관이 깃든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글자와 그림을 조합한 문자도(文字圖)를 담은 수작이라고 했다. 특히 분청사기에 인화문 기법을 더해 형태와 장식을 감각적으로 잘 배치했다고 강조했다. 올해 대한민국미술대전 전통미술공예부문 전시는 17일까지 성남아트센터 미술관에서 열리며, 이곳에서 진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진 작가는 이번에 수상한 작품과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시 시리즈를 전북 완주 삼례생활문화센터와 완주 복합문화지구 누에에서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 작가는 단국대 대학원 도예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군산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전시는 개인전 10회, 단체전 150여회 열었다. 부산공예문화상품 전국공모전과 전국갑오동학미술대전,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대한미국현대조형미술대전,대한민국황실공예대전에서 대상, 대한민국분청도자대전에서 금상, 전라북도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라북도공예협동조합 이사장, 대한민국우수숙련기술자, 백년소공인, 전라북도미술협회 부지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전국기능경기대회대한민국명장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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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희
  • 2021.10.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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