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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부담이 많은 진짜 모나리자를 간직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1911년 8월 21일, 루브르박물관에 그림을 그리러 들어갔던 젊은 화가 루이베르에 의하여 모나리자의 실종이 처음 이뤄진 후 프랑스 경찰에 의하여 국경과 항만이 봉쇄되었고 전 세계의 신문은 이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하였다. 도저히 분실될 수 없는 장소에서 없어진 이 그림은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정치적 농간이라는 추측이 높아만 갔다. 그 당시 다른 미술품 도난 사건으로 구속되어져 있던 세기의 시인 아폴리네르를 진범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는 어느 기자가 특종을 터뜨리기 위하여 그림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르 마탱이라는 신문은 초능력을 써서라도 모나리자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심리학자에게 5000프랑(당시 시가)을 지불하겠다고 밝혀, 모나리자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무당이나 점쟁이 혹은 점성술가들 까지도 수사에 동원되는 촌극을 빚었다. 온갖 조롱과 빈정거림 속에서 루브르박물관의 학예실장이 해임되고 일부 직원들도 징계를 당했다. 그로부터 2년 4개월 후인 1913년 12월, 전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액자 수리공으로 일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인 빈센조 페루치아를 피렌체에서 체포함으로서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 철저하게 에두와르도의 하수인이었던 빈센조는 체포된 후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허영심이나 공명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끝내 에드와르도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탈리아 사람의 명작이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껴 나폴레옹이 약탈한 모나리자를 되돌아오게 한 것뿐이다 또는 모나리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의 미소로부터 떨어지면 미칠 것 같았다고 말하여 이를 주제로 많은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모나리자가 하룻밤 묵었던 여관의 이름이 라 조콘다라고 고쳐졌으며 빈센조가 모나리자를 가져 온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가 조국의 산하를 보고 싶어 빈센조를 데리고 왔다라는 등의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몰랐고 에드와르도는 그럴만한 사람을 제대로 골랐던 것이다. 원래 모나리자의 작가인 다 빈치에 의하여 프랑수아 1세에게 팔려진 것이다.
1945년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한 지 7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전북의 수많은 독립군과 의병이 여전히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 재판기록이 있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전북지역 자치단체와 민간단체, 역사 연구자가 서훈대상자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유공자 출신지역별 현황에 따르면, 전북에서 올해까지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077명이다. 지역별로 서울수도권과 전국 8도, 북한의 평안도황해도함경도까지 살펴봤을 때, 경상북도(2292명), 충청남도(1480명), 경기도(1401명), 경상남도(1352명), 전라남도(1295명) 다음 순이다. 그러나 전북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규모와 전개양상에 비해 서훈자수가 적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년 국제연맹에 보고하기 위해 조사 편찬한 자료인 한일관계사료집의 통계수치를 보면, 전북 등 호남지역의 독립운동 참여인원은 대략 27만에 달한다. 경기도, 평안도에 이어 3번째 규모다. 국가보훈처 연구원 출신인 천지명 동국대 학술연구교수는 전북 지역에서 서훈대상 발굴은 다른 지역보다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다며 과거에 조선총독부의 조선소요사건 경과표자료에 따라 남한대토벌이후 전북지역 독립운동이 위축됐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일관계사료집을 분석하면 전북지역 독립운동 참여도가 상당히 적극성을 띄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30여년 간 서훈대상 발굴 작업을 해 온 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은 여전히 전북 지역 국립대학이나 연구기관, 자치단체 등은 서훈대상자 발굴 및 의뢰에 소극적이라며 다른 지역과 많이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인천대독립운동사연구소가 최근 3년(2019~2021)간 전북 독립운동가와 의병 400여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했다. 서훈여부에 대한 결과는 수 년에 걸쳐서 나올 예정이다. 이 소장은 지난 2019년에 신청했던 결과가 올해 통보된다고 결과발표가 늦은 이유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훈대상자의 광복 이후 행적까지 상세하게 검토한다며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상범으로 활동해 징역을 살았던 사람은 포상을 받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전북 자치단체, 광복회 전북지부 등의 단체가 서훈대상자를 발굴하는 작업을 활발히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2018년부터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기준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훈처는 수형옥고 기준인 3개월, 태형 90대 등이 기록을 폐지하고, 관련인사의 일기와 회고록 등도 증거로 인정하기로 했다. 천 교수는 기준 완화로 서훈을 받기 수월해진 측면이 있다며전북 지역 독립운동사 연구를 활발히 벌이면서, 서훈 대상자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훈 보상에 대한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국가보훈처의 연구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서훈대상을 검토하는 연구원은 25명 내외다. 이 소장은 공훈발굴과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적다보니 밀려드는 포상신청 서류를 정리하는 데도 버거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과를 국으로 승격하고 인원도 지금보다 3배 가량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전통악기 중에 어(한자)라는 악기가 있다.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서 쓰이는 악기로 그 모양은 흰 호랑이, 즉 백호白虎와 닮은 모습이다. 조선 역대 왕의 제사 음악으로 사용되는 종묘제례악이나 공자孔子의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문묘제례악의 악기이다. 이러한 전통악기 어의 음악적 상징과 뜻은 장엄하고 숙연함. 그리고 악곡의 마지막 종지終止를 뜻한다. 악기의 생김새는 백호를 닮아 등에는 27개의 톱날이 있는데 저어齟齬라 쓰고 차아라 읽는다. 또한 대나무 끝을 세 조각으로 세 번 쪼개 아홉 조각으로 갈라서 만든 채를 갖고 백호 모양의 머리를 치며 연주를 하는데 이 채의 명칭은 견이다. 생김새도 이처럼 특별하다 보니 그 역할이 참으로 특이하고 절묘하다. 자고로 어는 연주도 마지막 한 번, 음악의 끝을 알릴 때만 사용하는 단 한 번의 악기이다. 그러므로 이 악기의 연주자는 전체 음악을 모두 알아야 하고 이러한 모든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묵묵히 수행하는 완결자 역할을 한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은 자신의 수필집 인연을 통해 서양악기 연주자 플루트 플레이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연주자가 맡은 악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로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서는 한 구성원이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라는 글이었다.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사회는 웅장한 연주곡과 같다. 바로 국악의 제례악, 서양 오케스트라의 교향곡과 같은 것이다. 각자의 사명과 역할을 충실히 해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성숙한 모습으로 완성된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몹쓸 병마와 싸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생겨난 약속인 사회적 거리두기.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 개인의 역할을 충실히 실천할 때 우리의 국가 대한민국은 멋진 하모니를 연출할 것이요, 공동체라는 어울림의 곡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나 하나 괜찮겠지. 나만 그런가? 에이, 다들 그러잖아. 이러한 일부분의 모습은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약속과 역할을 저버리는 생각이며 잘못된 판단일 것이다. 전통악기인 어가 곡 중간에 치거나 마지막 연주를 하지 못한다면? 만약 오케스트라 플루트가 아무 곳이나 나와 연주를 진행한다면 어찌 될까? 그 곡은 엉망이 되어 연주곡 전체를 무너트릴 것이요, 연주자 개인도 한 번의 실수에 큰 실망과 잘못으로 힘들어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하는 사회에 대한 규율과 약속을 충실히 지킬 시점에 서 있다. 특히 병마와 불신不信이 넘쳐나는 현 세상에 더욱더 말이다. 우리 모두 전통악기 어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는 종지의 음악이 필요한 시기임을 우리 모두 각인하자. 각자의 사명과 의지를 다 하며 그 뜻을 함께하자. 그리하면 우리의 전통악기 어의 기능과 역할처럼 모든 시작의 끝을 알리며, 병마 없는 아정하고 맑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까.
국립무형유산원과 전북도무형문화재 사이 보이지 않은 갈등이 있는 모양새다. 전북도무형문화재는 국가무형문화재에 비해 국립무형유산원 공연 허가와 대관에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립무형유산원은 차별 없이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무형유산원이 그 동안 지역문화예술계와 소통이 부족했던 점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도 무형문화재연합회 등에 속한 무형문화재 A씨는 무형유산원 공연에 지역무형문화재가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심지어 공연장 대관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전에 공연하고 전시할 공간이 없어서 무형유산원에 대관을 의뢰했는데 국가적인 행사 이외에 다른 행사는 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행사는 1년에 몇 차례 정도 하는 데, 행사가 없을 때 (우리한테) 대여하면 되지 않겠는가라며 지역 상생차원에서 다른 지역 무형문화재에게도 대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씨는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은 국가행사나 지역행사를 가리지 않고 연다며 공연장 대관 역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립민속국악원은 남원농악이나 무용협회, 남원용성중학교 국악 정기연주회 등을 연다. 국악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악과 관련한 공연이라면 국가 지역 상관없이 대관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무형문화재 B씨는 지역 무형문화재가 그 곳(무형유산원)에서 공연을 하면 위상이 낮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지역 문화재나 국가 문화재나 대통령령에 따라 지정받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국가 무형문화재나 지방 무형문화재를 차별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무형유산원 관계자는 국립무형유산원 대관 규정에 의거해 대관업무를 진행한다며 국가나 지방문화재 모두에게 대관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립무형유산원 대관규정을 보면, △무형문화유산 보존전승진흥 등에 기여할 수 있는 공연 등 문화예술행사 △전통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공연 △국제무형문화교류에 기여할 수 있는 국내외 학술대회 △기타 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공연 또는 행사를 대관요건으로 제시한다. 국가 무형문화재와 지역 무형문화재를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 유산원 관계자는 이어 대관료 면제 규정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국가나 지역 상관없이 문화재 이수자 기준만 확인되면 면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 19로 외부에 공연장 대관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 상황이 발생한 원인으로 소통부족이 꼽힌다. 이 문제는 국립무형유산원이 지난 2014년 문을 연 이후부터 줄곧 지역문화예술계에서 제기돼왔다. 전북지역 한 대학의 예술관련 학과에 몸담고 있는 한 교수는 무형유산원이 전북에 유치되면서 지역 문화재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며그런 기대치에 못 미치다보니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가장 큰 문제는 무형유산원이 지역 문화재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관련 정책에 대한 고민도 없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계 인사는 국악, 문화재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지적이 나온다며공통적으로 무형유산원이 전북에 있는 외딴 섬 같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작품설명: 투명한 레진으로 가죽 벗긴 토끼를 통째로 밀봉했다. 힘차게 뛰어올라 바닥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동선을 찾아 설치한 것. 토끼집을 연상시키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구조물과 미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다.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현대문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지만, 작가의 경쾌한 상상력으로 가시를 제거한 풍자로 다가온다. 미술가 약력: 신재은은 서울인천수원청주에서 9회 개인전, 공감본능, 창원조각비엔날레-가볍거나 유연하거나, 네이쳐 프로젝트, 음식사냥전 등에 출품했다. /작품 해설 = 문리 (미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전북지역의 마한 소국은 함열함라 일대의 감해국(感奚國), 고창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김제의 벽비리국(闢卑離國) 등에 대한 의견이 모아지고 있을 뿐, 대부분 연구자 개별 의견만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문헌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적인 자료를 근간으로 마한 소국의 공간적 범위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문자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한 구체적으로 마한 소국명칭을 대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만경강유역에서는 익산시, 완주군, 전주시, 김제시 등을 4개 지역별로 마한 분구묘나 주거 유적의 빈도수가 높게 나타나기 마한 소국의 중심으로 비정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편의상 현재의 행정구역 중심이지만 인접된 지역에서는 중첩되고 있다. 먼저 익산시(Ⅰ-1소국)의 주요유적은 모현동과 영등동 일원에 분포되어 있는 분구묘와 주거유적을 들 수 있다. 모현동 묵동유적의 분구묘는 수평 확장과정 및 출토유물을 보았을 때 5세기 중 후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강유역의 백제 석축묘에서 출토되는 고배와 직구호 등 동일한 유물이 부장되어 동시대에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금강유역과 달리 마한의 전통적 묘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완주(Ⅰ-2소국)지역 중심 마한 소국의 주요 유적은 완주 상운리와 수계리 분구묘, 그리고 익산 사덕의 주거유적으로 들 수 있다. 완주 상운리 유적은 완만한 구릉 일원에 위치하며, 전기단계부터 후기단계의 분구묘가 분포하고 있어 그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 가-1지구의 1호분의 매장주체인 토광에는 점토곽을 시설한 후 목관을 시설한 것으로 규모나 축조방법에서 볼 때 최고 유력자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부장유물인 환두대도, 금동이식, 철정, 철부, 철촉 등의 다양한 철기유물과 옥류, 토기 등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완주 상운리 분구묘는 군집양상과 규모, 출토유물 등에서 마한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던 고도의 철기제작 기술을 소유하고 있었던 유력 집단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벽비리국(闢卑離國)으로 비정되는 김제일대(Ⅰ-3)에서 주목되는 유적은 농경수리유적인 벽골제를 들 수 있다. 벽골제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330년에 시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시기는 백제가 김제지역을 영역화하기 이전에 해당한다. 발굴결과 부엽공법과 토낭을 쌓아 제방을 축조하고 있는데, 토낭을 이용한 수법은 마한 분구묘를 성토하는 수법과 같아 벽골제 축조 주체는 마한 세력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주지역의 소국(Ⅰ-4)은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으로 비정되고 있는데, 주요유적으로는 축조 중심연대가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전 분구묘와 6세기 초에 해당하는 장동 분구묘를 들 수 있다. 그리고 6세기 중엽이후의 주구를 갖춘 석실분이 축조된 안심유적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만경강유역에서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마한 분구묘가 축조되었던 이유는 마한의 성립지로서 강력한 마한문화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지역이 마한의 본향이라는 자긍심은 백제 무왕의 익산천도와 견훤의 후백제 건국으로 이어지고 근대에 이르기 까지 면면히 지속되고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속보 = 그 이듬해에 있었던 을미의병에 참여했던 분들과 일제 침략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똑같은 활동을 했다. 을미의병과 관련된 분들은 서훈 대상자가 되고 2차 동학농민혁명의 참여자분들은 서훈 대상자가 안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관련기사 8월 9일 2면, 7월 23일 13면, 5월 21일 13면) 지난 5일 늦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동학 순국선열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기를 바란다는 제목으로 동료 역사학자 7인과 함께 성명을 발표한 고석규 전 목포대 총장은 9일 전북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 전 총장은 명예회복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여러 기념 행사는 하게 되었지만, 서훈자로 되어야만 진정한 명예회복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성명서 제목을 정했다고 부연했다.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2차 동학농민혁명군이 서훈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밝혔다. 현재까지 전 장군뿐 아니라 1894년 일제에 맞서 항거했던 동학농민혁명군 역시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 전 총장은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이) 그동안 못 받았던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전봉준 장군이 받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성명서에 나와 있다고 했다. 고 전 총장의 말대로 성명서에는 관련 법령인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규정한 예우가 나와있다. 이 법은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람의 명예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위한 근거법인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과 동일한 내용이다. 또 성명서에는 고등학교 한국사 9종의 교과서에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일제에 항거했다는 내용이 서술된 점, 한국 역사학계가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무장투쟁을 규명한 점 등도 서훈을 해야 할 근거로 들고 있다. 고 전 총장은 보훈처가 2차 동학농민참가자에 대한 서훈을 심사하는 데 문제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이나 비리가 있어 서훈이 안 된 것은 아니다며 역사 해석에 대한 차이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2차 봉기를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이라는 민족운동 차원으로 보느냐 아니냐라는 역사 해석상의 차이 때문에 현재까지 심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독립유공자 서훈이라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서훈에 대한 요구를 충분히 못한 부분도 있었고, 서훈을 심사하는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상황이 못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면서 동학농민 기념일도 생기고, 이런 것들이 서훈을 받아들여도 되겠다는 상황이 된 것이지 않겠냐. 이러한 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심사에서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된다고 부연했다. 이에 국가보훈처의 공훈발굴과는 전북일보에 학계 의견을 듣고 있고, 내용에 대해 충분히 확인하고 있는 중이라면서도 아직 어느 방향으로 할 것인지 맞다아니다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독립유공자는 개인에 대한 포상이라며 어떤 사건에 대해 평가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어떠한 특정 사건만을 심사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앞서 고 총장을 비롯한 김봉곤(원광대), 김양식(청주대), 성주현(청암대), 신순철(원광대), 신영우(충북대), 이상식(전남대), 홍성덕(전주대) 등 8명의 역사학자들은 성명서를 내고 동학농민명예회복법과 독립유공자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 전공 역사학자들의 불찰과 게으름도 없지 않았다면서 이제 우리 역사학자들은 관련 제도와 법령, 연구 성과에 의거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박현우 인턴기자
이 제품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겠소? 예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은은한 윤곽과 부드럽게 명암을 조성하는 다빈치의 스푸마토(윤곽을 엷게 하는 기법)입니다.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포착해서 재생하기엔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할 수는 있습니다. 루부르박물관 살롱 카페의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는 어마어마하고도 엉뚱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칭 후작이라는 에두아르도 드 발피에르노(Eduardo de Valfiermo)의 질문에 대한 미술품 위조 전문가 쇼드롱의 대답이 바로 그것이었다. 1910년 가을 드디어 쇼드롱은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배율이 높은 확대경으로 며칠 동안 그림을 살피고 오래된 이탈리아의 침대를 구하여 그 나무판을 원화와 같은 77cm 53cm로 잘랐다. 원화를 촬영한 선명한 사진으로 정확한 구도를 잡고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사용하였던 물감으로 빛의 양감을 자아내기 위해 물감을 층층이 겹쳐 바르고 다시 엷은 색의 유약을 발랐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생긴 균열선을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천천히 마르는 기름을 사용하고 그 위에 빨리 마르는 기름을 사용한 다음 바람결에 말렸다. 국내 작가의 작품에서도 선 보여진 바 있는 이 방법은 마르는 속도가 각기 다른 두 종류의 기름이 각기 다른 작용을 일으키면서 감쪽같이 균열을 만들어 냈다. 쇼드롱은 그림이 오래 되었다는 인상을 더욱 강하게 주기 위하여 흑연가루를 여기 저기 묻혀 두었다. 모두 6점을 그리는 것으로 쇼드롱의 임무는 끝나고 이제는 에두아르도의ㅤ활약만 남았다. 1911년 6월 에드와르도는 이 6장의 모나리자 모사품들을 모두 뉴욕의 안전한 곳에 보관시키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두 명의 미술품 전문가까지 동원하여 제물이 될 고객을 찾아 나섰다. 몇 주일 동안의 집요한 활동 끝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걸작을 손에 넣겠다는 6명의 고객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그들 6명은 하나같이 자신만이 흥정의 대상인 줄 알았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모나리자를 훔쳐내어 그 6명 모두가 자기가 살 모나리자가 진짜인 것으로 알면 되었다. 애초부터 에두와르도는 위조된 모사품을 비싸게 파는 것이 목적이었다.
속보 = 한국 동학농민혁명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이 2차 동학농민혁명(이하 2차 봉기) 참여자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관련기사 7월 23일 13면, 5월 21일 13면) 2차 봉기 참여자는 독립군이나 의병과 마찬가지로 항일 활동을 벌였지만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우가 미흡했다는 게 한국 근대사학계의 중론이다. 이로 인해 당초부터 독립유공자로 지정해 역사적 행적에 걸맞게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석규(목포대)신영우(충북대) 명예교수와 김봉곤(원광대)김양식(청주대)성주현(청암대)신순철(원광대)이상식(전남대)홍성덕(전주대) 교수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동학 순국선열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들 8명 학자들은 2차 봉기 참여자가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사실은 한국 역사학계가 이미 연구성과로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2차 봉기는 1894년 6월 21일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군의 무장을 해제시킨데 따른 반발로 일어났다며 즉 일본의 국권침탈에 항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며 일본은 이 때부터 조선을 보호국화한 뒤 궁극적으로 식민지화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이들은 2차 봉기는 이에 맞선 반일항쟁의 시작점이라며 농민군은 관료와 유생들에게 항일무장투쟁 전선에 합류할 것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한국사 9종 교과서도 2차 동학농민군을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일제에 항거했다고 모두 서술하고 있다며 2차 봉기 참여자들이 독립유공자 예우를 받을 충분한 근거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제도와 법령도 2차 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동학농민명예회복법은 2차 봉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중심의 혁명 참여자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 독립유공자법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가 순국한 분을 순국선열로 정의하고,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예우하도록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법률 모두 서훈 대상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사람 등으로 규정하는데, 동일한 내용이 기재돼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차 봉기 참여자에 대한 서훈문제는 수십 년째 미해결로 남아있다며 1977년 손화중 후손이 신청한 서훈은 부결됐고, 최근 전봉준최시형 등 2차 봉기 참자들에 대한 서훈은 현재 재심 중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전공 역사학자들의 불찰과 게으름 때문이라고 반성했다. 이들은 역사학자들은 관련 제도와 법령, 연구 성과에 의거해 2차 봉기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한다며 독립보훈 업무를 맡고 있는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심사위원들은 서훈심사를 사적 진실에 부합하는 결과로 매듭짓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주문인협회(회장 유대준)가 전주를 예찬한 작품을 공모한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전주시민문학제에 선보일 작품이다. 장르는 운문과 산문, 그림일기로 나뉜다. 주제는 전주의 역사와 문화, 덕진연못, 한옥마을, 전동성당, 전주의 음식 등 전주에 관한 내용이어야 한다. 전주에 사는 초중고등학생, 일반인(대학생 포함)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단 이미 등단하 사람은 제외된다. 공모기간은 오는 9월 15일까지다. 응모는 이메일 접수가 원칙이지만 우편접수, 직접방문(그림일기)도 가능하다. 당선작은 책으로 발간하고 수상작은 액자나 앞치마로 제작해 전시할 예정이다. 그림일기, 운문과 산문으로 나뉘어 시상하며, 시상식은 10월 중에 진행한다. 대상을 받은 사람은 백만원의 상금을, 금은동상과 장려상을 받은 사람에게도 각각 상장과 상금이 수여된다. 전주시민문학제는 전주시가 주최하고, (사)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가 주관한다.
815광복절이 다가오는 가운데 친일잔재 청산작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전북 자치단체와 문화기관 등은 협업을 통해 친일파 생가터 등 각종 시설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친일잔재 청산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친일 잔재로 판단하기 어려운 시설과 사실관계 오류, 개인이 설치하거나 주거로 활용되는 상황까지 다양한 문제가 쌓여있어 갈길이 멀다. 전북도는 지난 3월 도내 14개 시군에서 친일잔재 전수조사 용역 후속조치 계획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전북대 산학협력단, 시군 향토연구자, 지역문화원 등과 펴낸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에 나온 보완의견이다. 이 보고서에는 친일잔재 시설 등 134건이 제시돼 있다. 이들 가운데 청산이 완결된 경우는 48건, 추진 중인 경우 9건, 단기 검토 중인 경우 13건, 중장기 검토는 64건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중장기 검토 항목이다. 이들 가운데 사실관계에 오류가 발견되는 곳들이 보인다. 일례로 진안군에 있는 풍혈냉천이 대표적이다. 풍혈냉천은 한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솟는 곳을 의미하는 데, 용역보고서에도 조성시기가 조선후기로 돼 있다. 1780년대에 처음 발견됐으며 일제 강점기에 하천공장과 잠종 보관소로 잠시 이용됐을 뿐이다. 최규영 진안향토문화연구소장은 일제시기 잠종 보관장으로 일시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잔재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진안 강정리 전영표 가옥도 사실관계 확인이 다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용역보고서에는 일제 강점기 목수가 일본식으로 지었다는 이유로 친일잔재로 분류했지만, 최규영 소장은 전체 구조가 얼핏 일본식으로 보이나 한옥장이 한식으로 지은 집이다. 조사단이 오해한 듯 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이 설치하거나 각종 이해관계로 청산에 난항을 겪는 경우도 있다. 1880년 마스토미야스자에몬이 세운 고창 홍해 농장이다. 이 농장은 러일전쟁 당시 수탈현장으로 활용됐다는 이유로 친일잔재로 분류됐는데, 사유지로 방치돼 있다. 이 때문에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주거시설이나 농장으로 활용되서 조치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익산시 (구) 동양척식 주식회사 이리지점은 개인소유 주거로 활용되고 있으며, 고창군 삼양사 염전(고전리 염전참고)은 현재 소금생산시설로 염전농가에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소금생산의 특성상 현재 구조물에 어떤 조치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친일잔재 청산에 돌입한 첫 단계라 부족한 부분이 다소 있다며 계속 시군과 함께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후속 조치를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판소리는 참으로 어려운 예술이다. 평생을 해도 마음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 소리이다. 판소리는 입문하여 먼저 스승에게 소리를 익히고 많은 복습과 철저한 다듬어진 소리가 될 무렵 혼자서 오랜 수련 시간을 갖는다. 이것을 보통 독공獨工이라 하고 혼자서 소리 공부의 길을 떠나기도 한다. 소리의 길을 험난하다. 그래서 홀로 많은 시간을 자신과의 싸움에 보낸다.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리꾼 홀로 폭포수 아래 정좌하고 소리하는 모습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소리에 입문하여 어느 정도의 시간과 습득의 시간을 가진 후 찾아오는 자신만의 독공으로 이러한 수련은 보통 보름, 100일 등의 기한을 정한 후 깊은 산이나 절에 들어가 집중적으로 소리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근대 5명창으로 불리던 송만갑은 100일 공부를 할 때 하루에 춘향가를 세 바탕씩이나 불렀다고 한다. 이는 춘향가 한바탕 보통 6시간 소리 합해서 자그마치 18시간 이상의 소리 공부로 참으로 엄청난 분량의 연습 시간이었다. 이렇듯 소리꾼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성음을 갈고 닦아 스스로가 생각하고 소원했던 명창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소리꾼이 계곡이나 절에 들어가 100일 독공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그것은 첫째 득음을 하기 위해서이다. 득음이란 판소리에서 필요로 하는 쉰 듯한 목소리 즉 수리성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음색을 만들어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기능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소리꾼은 단기간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많은 양의 연습을 통해 이러한 효과를 얻어냈으며 현시대에도 많은 소리꾼이 그러한 방법을 이용하여 실력을 연마하고 있다. 두 번째 자기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이는 독공으로 통해 얻은 득음이 자신만의 특별한 소리로 재탄생하여 세상 어디에도 찾아 들을 수 없는 목구성으로 존재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독공은 어느 계곡의 폭포수 아래에서, 어느 깊은 굴속에서, 어느 시골 암자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완성된다. 조선 후기 많은 전승의 어려움 속에 이어온 판소리. 이러한 판소리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 창작되어 스승에서 제자로 구전심수口傳心授<입으로 전해주고 마음으로 가르침>되어 전해진 우리 전통예술의 꽃이다. 서양음악처럼 악보가 존재하여 쉽게 접할 수도 없었고 득음이란 어려움에 가까이 두고도 범접할 수 없었던 우리의 판소리. 하지만 우리 서민의 정신과 애환을 담고 있기에 이제는 우리 삶에 가까이 있으며 어느 곳에 가도 한 대목, 단가 한 곡 부를 수 있는 곳이 많이 갖춰진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무더운 2021년 8월. 많은 판소리 학도들과 명창의 길을 원하는 소리꾼이 폭포와 절을 찾아 독공이 행해지고 있다. 여름날 모두의 건강과 득음이 함께 하기를 소원하며 그러한 우리의 판소리가 세계 속의 성악으로 재탄생하기를 다시금 기원한다.
작품설명: 추상미술의 세계를 연 파울 클레는 예술은 보이는 것을 복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준다라고 했다. 최원은 귀에 들리는 소리, 너무 커서 인식할 수 없는 소리 등을 모두 소음으로 규정하고, 그것들을 숨 멈춘 붓질로 포착하고 있다. 그 도전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회화적 맛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기에 감동을 준다. 미술가 약력: 최원은 서울동경전주군산에서 16회 개인전, 전북현대작가회, 서울현대미술제, 부산비엔날레 등에 참여했으며, 무주예술창작스튜디오 관장이다. /작품 해설=문리(미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김영 시인 김영(본명 김웅)시인은 1929년 9월 전북 순창군 순창읍 옥천동에서 아버지 김동혁과 어머니 손순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식자공으로 근무하였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김영이 다섯 살 때까지 순창 해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였으며 어머니가 병원을 그만두고 행상할 때는 외가댁에서 외할머니에 의해서 키워졌다. 1937년 순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6학년까지 모두 갑(甲)을 맞아 전교 1등을 차지하였고 1943년 순창농림고등학교(현 순창제일고등학교) 졸업 당시 『여섯 해』라는 시집을 발간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재학 중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아 그는 고향에서 천재로 알려졌고, 1949년에는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이무영, 염상섭으로부터 창작법 강의를 듣고 작품활동을 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좌익계 전국문학예술총동맹 순창군지부 서기장을 맡았고, 혁명극과 시낭독 등으로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1950년 9월 28일 이후 인민군이 패퇴하자, 잔류한 좌익세력과 그 협력자들이 회문산으로 들어갈 때 시인도 합류하였다. 김영이 입산한 이유는 『남부군』의 작가로 유명한 이태가 빨치산 동료였던 시인 김영(본명 김웅)을 주인공으로 삼은 실명 소설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연세대 재학 중 고향으로 돌아온 김영은 여순사건 이후 남로당 혐의자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탈법적인 처형을 목격하면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시인은 되는 것은 바쁘지 않다. 먼저 철저한 민족주의자가 되어야겠다. 그는 회문산 입산 후, 전북총사령부 제2정치부에서 전단지 원고 작성과 배포를 도맡았다. 토벌군에 밀려 지리산의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었지만, 허기와 추위에 시달리다가 심한 동상과 열병까지 앓다가 1952년 3월 8일 백무골에서 체포되었다. 1952년 4월 광주수용소를 거쳐, 그해 11월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다. 그는 전향 거부로 3년간이나 독방생활을 하는 등 고독의 극한과 폐결핵 중증으로 각혈까지 하면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다. 이 무렵, 이미 죽었다고 소문이 무성했던 어머니를 재회했고, 고향 출신 국회의원 임차주와 순창교회 박석은 장로 등이 구명운동을 했다. 1958년에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 전향서를 쓰고 1960년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5.16 군사 쿠데타로 이마저 기각되고 말았다. 1962년 재소자 문예 작품 전시회에 그의 시 「벽과 인간」이 당선되어 법무부차관상을 받았다. 1964년 12월 19일 마산교도소에서 가출옥으로 세상에 나왔으며, 1965년 9월에는 신동아 논픽션에 「벽과 인간」이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는 그의 자전적 소설 『빨치산의 철장 수첩』(1990)을 읽으면서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을 절감했다. 한 사람의 천재가 시대와 대결하여 무너지고 좌절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벽에 부닥쳐 종소리는 머리와 꼬리를 잘라 먹고 뱀처럼 꿈틀거린다. 수건이 마르지 않은 방에서 열병을 앓고 난 신경들이 부딪쳐서 불꽃을 낸다. (중략) 벽에 두개골을 곤두박쳐 스스로 출혈을 마시고라도 보랏빛 새벽을 열어야 한다. 「벽과 인간」 서른여섯의 노총각 김영은 출옥 후, 열한 살 아래의 고향 처녀와 결혼하였다. 순창고등학교의 영어 강사로 교단에 섰지만, 빨치산 경력이 문제가 되어 그만두어야 했다. 그 후 10년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물레방아글모임이라는 문학단체를 이끌었다. 1978년, 겨울에는 서울 영등포 도림동으로 이사하여 고물상과 리어카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88년 11월에는 『창작과 비평』에 「한 줌의 흙」 등 다섯 편의 시를 기고하였고, 첫 시집 『깃발 없이 가자』를 비롯하여 자전수기 『총과 백합』(1988)과 『빨치산 철장 수첩』(1990), 제2시집 『별난 사람 리어카 시인』(1991), 서간집 『두 하늘에 띄운 그림자』(1991) 등을 연달아 출간했다. 시인은 그의 첫 시집 『깃발 없이 가자』의 서문에서 총소리가 요란한 전쟁터에서 피 묻은 수첩에 쓴 시가 대부분이었으며, 출소 후에도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땅을 파면서 비닐하우스 안에서 시를 썼고, 행상을 하면서 섬광처럼 스쳐 가는 시상을 리어카 위에서, 때로는 사과 상자 위에서 썼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시인은 음지에서 습지로/독버섯 따 먹고 살아온 인생/이었고, 역사여 입을 열어라/ 누가 이들의 꽃봉오리를 짓밟았는가(「음지-태양 없는 땅」 중에서)라고 올곧게 몸부림치는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아이들의 울음에 음악이 흐르고/갓난이의 방실 웃는 얼굴은 / 꽃봉오리보다 아름답다// 내일에 이 집의 주인 /내일 피는 해바라기/(「기저귀」 중에서)에서 보듯 밝고 아름다운 내일을 꿈꾸며 살았다. 시인은 1995년 10월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시인의 시에는 평이성과 현장성이 두드러진다. 시인은 시란 우리 시대 다수가 읽고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듯 그의 시편은 평이한 시어로 우리가 당면한 현장을 잘 그려냈다. 그리하여 민족적 양심에 호소하면서 분단의 벽에서 벽돌 한 장이라도 헐어내기를 갈망했다. 장교철(전북문인협회 부회장)은 김영의 시 세계는 체험이 직서적으로 드러난 통한의 목소리다. 그러면서 그는 문학의 궁극적인 목표를 개성과 인간의 해방을 근력하고 있다.라고 정리한 바 있다. 참고 : 장교철 「우리 분단의 슬픈 역사를 피울림으로 통곡하더니」(순창문학 제2호) 김 영 『빨치산 철장수첩』(1991) 외
루돌프 아른하임 예술가가 사회의 존경받는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술가가 사회 모두의 사상과 감정을 대변하는 우리의 대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 표현은 새로운 사회 질서를 발견하고 시각적 형태로 제시하는 것을 예술가의 사명으로 보고 있다. 비평가는 이러한 예술가의 새로운 질서 발견을 돕는 협력자이기 때문에 작가의 예술 표현이 개인의 정서 표현을 초월하여 그 사회의 새로운 진로나 질서를 찾았는지, 그것은 왜 가치가 있는 새로운 질서인지를 제시해야 하며 이 때 비평가의 언어적 진술은 예술가의 시각적 한계를 보완해 준다는 것이다. 아른하임(Rudolf Arnheim 1904~2007) 또한 미술이 눈에서 눈으로 전달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았고 시각적 구조는 언어적 방법에 의하여 보완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미술 표현의 언어적 설명은 시視감각이 전할 수 없는 부분까지 보완해줌으로써 논리적 뼈대를 구축하며 좀더 효과적으로 체계있게 의사를 전달해 주는 미술 비평을 필수 불가결의 조건으로 보고 있다. 이제 비평의 태도에 관하여 말해보자. 비평이 필요한 것이란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비평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비평가의 유형에는 귄위자 형, 법관 형, 번역가 형, 인상주의 형 등이 있다. 권위자 형은 자신이 생각한 이사에 따라 작가의 의도르 난도질하는 지극히 자기 만족형의 부류이고, 법관 형은 자신이 습득한 지식에 따라 몇 가지 법률을 만들고 거기에 작가의 의도를 맞추어 비평을 하는 부류이다. 반대로 번역가 형은 나는 감히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단지 작가의 성격, 시대와 환경을 작품의 이미에 반영하고 분석해서 감상자로 하여금 분명하게 보는데 일익을 담당할 뿐이다라는 식의 부류이며 인상주의자 형은 비평 자체를 자신의 기호를 표준으로 하는 사람들로 번역가 식의 비평은 과학적이며 객관적이어서 싫고 법관 형의 비평은 너무 보편적이어서 싫은, 다시 말하면 자신의 비평이 반드시 예술적 예술적이고 주관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유형이다.
남원지역 등 시민사회단체가 남원가야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제출한 해설 부분에 기문국이라 명시된 용어 삭제를 촉구했다. 남원시민단체와 전국의 280여 개 시민문화단체는 2일 남원시청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남원가야를 기문국으로 표현하는 근거는 유일하게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이 기원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대상 가야고분군 대부분은 한국사의 본래 가야지명으로 등재했지만 남원의 유곡리두락리 고분군과 합천의 옥전 고분군만 일본서기의 임나지명인 기문국과 다라국으로 왜곡 해설 등재하려해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남원유곡리, 두락리 고분군으로 등재하되 해설에 기록된 기문국과 관련된 모든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는 또 남원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만인 의사가 잠들어 있는 충절의 고장이다며 더 이상 기문이라는 말은 삼가고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에 임나일본부설 강화하는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 전문 재검토하라라는 글이 게재돼 2일 기준 5400여 명이 동의했다. 해당 글은 남원이 기문국을 주장한다면 왜군의 통치를 받았다는 일본 서기의 거짓 기록을 사실인걸로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며 국민들은 임나의 후손으로 각인되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처를 받을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전북도는 1일 제44회 전라북도 공예품대전의 입상작을 2일부터 6일까지 전북도청 기획전시실에서 일반에게 공개전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예품대전에는 종이, 도자 분야 등 6개 분야 93점(작품 수량 438점)의 출품작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지난달 28일 이유라 전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 한지문화산업학과 교수(심사위원장)를 비롯한 심사위원 12명의 심사를 거쳐 50명의 입상작품이 선정됐다. 대상은 종이 분야에 출품한 하윤옥 씨의 예단함이 뽑혔다. 금상에는 조방선 씨의 도자 분야 궁중담소, 은상 유명한 씨의 기타분야 전통을 담다와 김경철 씨의 종이 분야 상투관, 동상 변중호 씨의 금속 분야 인연 등 4명이 이름을 올렸다. 장려상에는 이형묵 씨의 금속 분야 추억 속 전래동화 등 12명, 특선은 이경희 씨의 도자 분야 나무 등 10명, 입선은 김재익 씨의 금속 분야 은가비 등 20명이 선정됐다. 입상자에게는 대상 200만 원, 금상 100만 원, 은상 각 70만 원, 동상 각 50만 원, 장려상 각 30만 원이 제공된다. 이어 특선에는 전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 등 후원기관장 상장과 상금 각 30만 원을, 입선작은 전라북도공예협동조합 이사장의 상장을 받게 된다.
상장 로고 제목으로 쓴 26장의 대통령상이란 1년간 정부에서 각 전통예술 경연대회에게 주어지는 대통령 상장의 수이다. 다시 말해서 1년에 전통예술 부문 대통령상을 받는 국악인이 26명이란 이야기이다. 또다시 말하자면 전국의 명인명창이 한 해에 26명씩 나온다는 말이며, 2년이면 52명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무려 3년이면 78명. 4년이면 104명이다. 이러한 현실을 기쁘게 생각해야 하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야 하나. 알지 모를 아이러니에 빠지고. 우선 필자의 고민은 후자에 두고 그러한 이유의 일장일단을 이 글을 읽는 구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올해 2021년 정부시상 지원 경연대회의 상장을 살펴보면 무용 분야는 총 15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은 2곳, 음악 분야는 총 12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은 2곳, 연극 분야는 총 8개 대회 중 대통령상이 있는 곳이 총 1곳. 전통예술 분야는 총 86개 대회 중 국립국악원 온나라국악경연대회까지 포함 총 26개의 대통령상을 보유하고 있다. 전통예술의 진흥과 인재 등용을 위해선 꼭 정부가 수여하는 상장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공신력 필요를 뜻하며 명예에 걸맞은 공정성과 운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 지방자치단체의 시군에서는 여러 전통예술 경연대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파악하고, 진흥하며 공정성과 더불어 각 특색있는 지역의 명분을 만들어 경연대회를 장려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러한 역사적 좋은 의도의 깊은 뜻을 간직하고 생겨난 각종 경연대회는 전통예술의 진흥과 우수한 국악 인재 등용에 힘써야 하는데 그러한 모습은 후자로 퇴색되고 운영단체나 개인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황금만능주의 악순환으로 순수성이 사라진 안타까운 과거를 본 적이 있다. 이제 그러한 과거의 아픈 기억은 잊어버리고 소중한 우리 전통예술의 등용문인 전통예술 경연대회를 올곧은 신념과 공정, 가치로 무장하고 감사함과 더불어 소중히 이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 정부시상인 대통령상의 수가 무용이나 음악, 연극보다 전통예술 부문에 더 많은 이유는 그 최고의 상이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이며 지켜야 할 우리 선조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에서는 전통예술 분야 정부시상 경연대회 총 86개 대회 중 37개의 경연대회가 매년 치러지고 있다. 그것은 43%란 엄청난 전통예술의 영향력이며 그만큼 전통예술의 본향은 호남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더 바람이 있다면, 호남을 비롯하여 전국각지의 경연대회에서 등용되어 매년 나오는 26명의 대통령상 수상자들도 존재가치를 더욱 드높여 그러한 숫자의 자존감을 나타내고 우린 민족의 예술성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사)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문병학, 이하 전북민예총)이 30일 오후 2시부터 전주동문거리 동문창창에서 제18회 문화정책 전국 대토론회를 연다. 이번 토론회는 전북 각 시군에서 문화콘텐츠를 개발한 사례를 공유한뒤, 지역 역사문화 콘텐츠의 질적향상과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가족뮤지컬 금와의 꿈의 총감독 정상식과 부안 도깨비 공연제작자 오해룡, 3D 입체 퍼즐 풍남문을 만든 전주 문화밀당 대표 강수연, 전주세계축제 콘텐츠운영부장 한지영이 문화콘텐츠 개발 사례와 에피소드, 향후 활용가치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토론 중간에는 동문창창의 잼데이 공연팀이 출연할 예정이다. 문병학 이사장은 이번 토론회가 지역 역사문화로 대중문화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면 좋겠다"며 지역의 문화관광과 예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토론회는 코로나19 방역규칙에 의거해 비대면무관객으로 진행되며, 유튜브 전북민예총으로 시청할 수 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서현석)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도민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한 크리에이터 토크콘서트를 연다. 이번 공연은 매해 새로운 주제를 갖고 제작하는 프로젝트 슈퍼히어로의 일환으로 총3부에 걸쳐 진행한다. 첫 주자는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이다.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경일은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tvN 어쩌다 어른 등 TV 강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주제는 인생! 까짓것!으로 31일 오후 2시와 오후 7시에 강연한다. 김경일은 강연에서 심리학적 관점을 투영해 인생을 조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수많은 계획이 어긋나고,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대중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두 번째 주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제이쓴, 오는 8월 7일 사랑과 자존감을 주제로 강연한다. 마지막 주자는 지역예술인 임호영이다. 오는 8월 14일 싱어송라이터 전태익, 무예공연예술단 지무단 등 특별게스트와 함께 다채로운 공연을 펼친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관계자는 관객과 호흡하고 공감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코로나19 시대에 새로운 소통창구가 될 것이라며 도민에게 특별한 콘텐츠를 제공해 문화예술계의 자긍심을 높이는 기회를 마련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번 토크콘서트에서는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코로나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특별한 할인 혜택을 준비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10% 할인된 가격으로 토크쇼를 관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각 공연마다 소외계층 30%를 초청한다. 한편 이 공연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2021년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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