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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시인의 '풍경']문과 벽

안팎을 드나들 수 있게 여닫는 시설이 문입니다. 방이나 집의 둘레를 막은 수직 구조물은 벽이고요. 벽으로 둘러친 방에 사람과 햇살과 바람이 드나드는 문을 냈건만 열리지 않는, 열 수 없는 문이 벽이 되어 안과 밖을 갈라놓기도 하지요. 문에는 고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요, 여닫으려 낸 문에 고리가 없으면 벽이 되고 맙니다. 저 문고리가 꼭 잘 열어둔 큰 귀 같습니다. 사람의 얼굴에 입 하나, 귀가 둘인 이유는 한마디 내놓기 전에 두 마디 들으라는 은유일 것입니다. 남의 말 귀담지 않고 입 벌려 제 소리만 쏟아내면 세상은 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 큰 문고리가 있어 누구라도 안팎을 드나들 수 있겠습니다. 당신을 믿습니다, 잘해 봅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악수합니다. 서로 손 맞잡습니다. 내 손에 당신을 찌를 칼이 없소, 내 마음속에 당신을 해할 미움이 없소 안심시키고 안심합니다. 저 커다란 고리가 꼭 악수를 청하는 성만 싶습니다. 덥석 손 맞잡고 그윽이 눈 맞춰야겠습니다. 풍경(風磬)을 흔드는 바람인 듯 청량하게 두어 번 흔들어줘야겠습니다. 선방(禪房)의 문고리만 잡아도 지옥고(地獄苦)를 면한다던가요? 문을 벽으로 만드는 것, 스스로 위리안치(圍籬安置)하는 일입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5.01.11 07:54

미술관 정체성 직결…전주시립미술관 작품 구입 예산 확보 필요

전주시립미술관이 2027년 개관을 목표로 건립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안에 담길 콘텐츠는 불투명한 상태다. 전주시는 올해부터 작품 수집을 진행하겠다는 구상을 세웠지만 실제 작품 구입비로 반영된 예산은 0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작품 수집 계획과 방법 등을 논의하기 위해 필요한 심의 기구(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한 실정이다. 미술관 작품 수집은 미술관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만큼, 소장품 확보를 위한 연차별 계획과 확실한 예산편성이 요구된다. 9일 전주시에 따르면 시립미술관의 총사업비는 491억 원이다. 건축공사비에 360억 원, 부지매입비와 설계공모비, 설계용역비 등으로 131억 원이 투입된다. 이는 미술 작품 확보를 위한 예산은 제외한 수치다. 시는 당초 개관 전까지 50억 원을 들여 소장품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본예산에 작품 구입비(전액 시비)가 미반영 됐다. 시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시는 작품 기증과 관리전환 형태로 작품을 수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후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예산을 확보해 올 하반기부터 미술작품을 수집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미술관 개관 전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고, 작품 수집은 기증과 관리전환을 통해서도 가능한 부분”이라며 “현재 작품 기증자들에게 줄 사례비는 따로 책정된 상태”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술관 등록 요건을 갖추려면 최소 100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증과 관리전환 방식으로 작품을 일부 수집할 수는 있지만, 등록 요건을 갖추려면 실질적으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더욱이 미술 작품 수집 등을 위한 심의 기구(추천위‧심의위) 위원 구성이 완료되지 않아 수집 계획이나 방법 등이 명확하지 않다. 위원 구성을 위해서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시는 작품 수집 과정의 공정성과 전문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23년 제정한 ‘시립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 설치 및 작품수집 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또 작품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기 위한 세부 사항이 담긴 시행 규칙도 제정했다. 시는 오는 20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법제 심사와 조례·규칙심의회 심의, 시의회 상정 등을 거쳐 개정안을 공포 시행한다. 작품 수집계획 관련 심의 기구 위원 구성은 조례안 개정 이후에나 가능하다. 타 지역 한 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지자체 상황에 따라 작품 수집 방법이나 예산에 차이가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작품 수집은 1~2년 전부터 진행한다”며 “미술관 건립과 개관을 위한 위원회가 일찍부터 구성되면 세세한 부분까지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는 시립미술관 건립이 민선 8기 역점 사업으로 추진되는 만큼, 예산 확보와 작품 수집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시 관계자는 “올해부터 전주 연고 근현대 작고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수집을 진행하려고 한다”며 “개관 전까지 100점 이상의 작품을 확보해야 미술관 등록이 가능하다. 지역 미술인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5.01.09 18:43

[지역서 꿈 펼치는 청년 예술인] ④ 영화감독 이기백 씨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시키는 영화는 사회 문제와 정치적 이슈, 인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등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예술 형태로 설명된다. 애향의 도시 전북특별자치도 속 전주도 2000년부터 국제영화제를 키워오며 영화의 도시로 입지를 다지며, 창의적인 실험으로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영화계 꿈나무를 키워내고 있다. 그중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위해 끊임없이 성장하며 활동하고 있는 영화감독 이기백(25) 씨를 만나, 지역 영화계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9일 전주시 중화산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마주한 감독은 여느 대학생과는 다르지 않은 앳된 모습의 25살 청년이었지만, 그는 벌써 영화계에 발을 들인 지 5년 차의 경력자다. 이 씨는“원래부터 영화에 대한 뜻은 없었다. 20살 때 경험 삼아 들어본 전북독립영화협회의 ‘마스터스쿨’이라는 영화제작 강좌에서 만나 동료들이 제 삶을 바꾼 것 같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이어 그는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는과거 인연이 닿은 동료들의 영향이 컸다”며 “당시 합을 맞췄던 동료들은 저와는 다르게 ‘영화’라는 존재에 미쳐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면서 어떤 존재를 그처럼 갈망했던 적이 없었던 저로서는 (동료들이)너무 신기했고, 부러웠다. 그렇게 은연중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작업을 해왔고, 그랬던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에 터를 잡고 지역의 이야기를 영상과 영화 속에 담아내고 있는 이 씨는 지난해 영화 <인어>를 연출해 전주국제단편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콩나물상을 받았다. 그 밖에도 ‘2024 전주국제영화제 씨네투어’ 트레일러와 최근 지역 출판계의 눈길을 끈 ‘전주책쾌’의 홍보영상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화려한 이 감독의 이력에는 푸근한 지역의 향기가 배어있었다. 이처럼 5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지역의 색깔을 담아 표현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그에게도 걸림돌은 존재했다. 이 감독은 “워낙 상업적인 공간으로 발달한 수도권에 비하면 지역은 기술적인 한계도 분명히 존재하고, 영화 제작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인력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중 영화인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계속해서 삭감되고 있는 영화계 예산 소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라는 장르는 제작 과정도 중요하지만, 관객들과 마주하는 순간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생각해, 극장 속 스크린에 상영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느낀다”며 “하지만 최근 계속해서 영화계 예산이 삭감되며 영화제작은 물론 작품이 관객과 마주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로, 영화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힘겨운 상황에도 지역 예술 생태계 속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그럼에도 지역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이 씨는 “기회의 불모지라지만, 전주에는 매년 개최되는 영화제와 더불어 영화인들의 안식처와 같은 전북도립영화협회도 있어 타지역에 비하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이라 생각된다”고 말하며 지역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지역에서 활동하며 좌절할 때도 많겠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제가 살아가는 이 지역이 지닌 매력을 활용해 저만의 이야기를 연출해 나갈 것”이라 덧붙였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5.01.09 18:43

[지역서 꿈 펼치는 청년 예술인] ➂미술 작가 이보영 씨

한 예술가가 창작해 낸 작품에는 개인의 감정은 물론 생각과 사상 등이 담겨, 작가의 내면세계를 외부로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누군가는 이 수단을 노래로, 연극으로, 연주로, 영상으로 선택해 예술로 승화해 내지만, 새하얀 화폭을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채워내고 있는 이보영 작가(40)가 선택한 수단은 ‘회화’다.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꿋꿋하게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 작가를 7일 만나 그녀의 창작 과정, 영감의 원천, 그리고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작가는 ”그냥 어렸을 때부터 했다“고 대답하며, 인터뷰 시작과 동시에 식으려야 식을 수 없는 그림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 그는”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 그냥 그림이 좋아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길로 대한 전공도 미술학으로 정하게 돼 20여 년의 세월을 붓을 잡게 됐다“며 ”지금껏 그림을 그려오며 순탄한 길만 걸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길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마다 그림 작업을 해야 하는 길로 (삶이) 계속해서 유도돼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수많은 개인전과 더불어 단체전과 교류전에 참여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이 작가에게 항상 아쉬웠던 점은 양질의 문화예술계 직업군의 ‘부족함’이었다. 작가는 ”지역 작가들이 계속해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이유는 창작활동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능력’ 역시 뒷받침돼야 하지만, 지역 문화계는 예술가의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직업군이 많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많은 청년 예술인이 등을 돌린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와 같이 그림을 공부했던 제 주변의 친구들 역시 양질의 직업을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가, 지역을 지키는 젊은 작가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앞으로 지역 내에서 성장할 젊은 예술인이 지역 사회를 떠나지 않고도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이 어려운 지역 예술 생태계를 인지하고 있는 이보영 작가였지만,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럼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며 지역 예술계에 보탬이 될 것을 약속했다. 그는 ”어렵다고 포기했을 거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 같다“며 ”지금까지 작업해 왔던 대로 저는 저만의 자리를 지키며 지역 간판 작가로 성장할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주 출생인 이보영 작가는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전주와 서울, 뉴욕 등에서 17번의 개인전을 비롯해 Parts of a Whole, 경계를 넘어서, 1980년대와 한국 미술, 전북미술의 오늘전, 청년작가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또 그는 <2016 광주신세계미술제 선정작가>, <2020 전라청년미술상> 등 많은 수상 경력을 갖는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5.01.07 18:08

전북도립국악원 유료 공연 도입…'내돈내산' 관람 시동건다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이 올해부터 일부 공연을 유료로 전환한다. 그동안 무료로 진행되어 온 전북도립국악원 공연은 무료공연의 특성상 노쇼(예약부도) 비율이 높고, 공연 중간에 입‧퇴장하는 관객들로 문제가 발생했었다. 이에 도립국악원은 무료 공연 시 발생하는 허수의 관람권 예매를 최소화하고, 실관람객에게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자 올해부터 유료 공연을 도입할 방침이다. 7일 도립국악원에 따르면 올해 창극단‧관현악단‧무용단 정기공연은 유료로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창극단과 관현악단 정기공연을 유료로 전환한 결과 일정 부분 예산 절약과 절약된 예산이 공연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며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됐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창극단 정기 공연 ‘춘향’은 이틀 동안 유료 관객 1197명을 기록하며 700만 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관현악단 정기공연 ‘레퍼토리 시즌 아르누보Ⅱ’도 608명이 유료로 공연을 관람했고, 약 370만 원의 이익을 냈다. 국악원은 지금처럼 무료 공연만을 고집한다면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작품 개발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정기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에만 의미를 둘 뿐,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를 충족시킬 작품 제작은 어렵다는 의미이다. 지난해 문승우 전북자치도의원은 국악원의 유료 공연 도입을 적극 주장하며 시행을 촉구했다. 당시 문승우 도의원은 제407회 임시회 전북도의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우리나라 공연시장에서 국악 분야의 유료 관객 비중은 55.2%, 티켓 평균 가격은 1만 6437원으로 나타났다”며 “국악 분야도 공연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볼만하다”고 제안했다. 공립예술단의 유료 공연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경기도립예술단, 부산시립예술단, 전남도립국악단 등 광역자치단체 공립예술단 대부분이 유료 공연을 시행하고 있다. 객석점유율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연 작품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공연 관람 문화 개선 등 복합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기초자치단체 공립예술단인 전주시립예술단에서도 회원제와 유료공연을 도입해 시행중이다. 유료화 공연이 긍정적인 부분도 크지만,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연조차 유료화할 경우 문화예술 향유 기회가 더욱 줄어드는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도립국악원이 관람료를 받음으로서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또 문화소외계층의 관람 축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도립국악원은 문화소외계층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위해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찾아가는 국악공연’ 등 공익성 프로그램을 유지‧강화해 문화 향유권을 확보할 방침이다. 또 목요상설공연은 계속해서 무료로 운영한다. 향후 유료로 전환될 경우 최소 수준의 관람료를 책정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국악원 관계자는 “유료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계획과 방안을 수립해 최적의 공연 관람 문화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5.01.07 17:20

[지역서 꿈 펼치는 청년 예술인] ② 연극배우 김수연 씨

연극배우는 미디어 매체가 아닌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캐릭터를 표현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예술가다. 이들은 다양한 역할을 맡아 극적인 상황을 전달하며, 대사와 몸짓, 감정을 통해 관객과 대화한다. 전북 연극계 역시 창의력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반영해 현대적 변화를 꾀하는 연극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많은 지역 극단 중 ‘창작극회’에서 꿈을 펼치고 있는 배우 김수연(27·천안) 씨를 만나, 연극에 대한 그만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연극 씬에 뛰어든 김수연 씨는 벌써 6년 차 배우로, 지역 연극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청년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꿈을 찾아 진학한 대학을 졸업하니, 공백기 없이 바로 무대 위에 오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그렇게 지역 내 극단을 찾아보니 창작극회라는 연극단체를 알게 됐고, 그 길로 바로 입단 지원을 신청하게 됐다. 그 이후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극단에 소속돼 무대에 올라 연극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기회의 불모지인 지역에 터를 잡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람 사이의 정’ 때문에 지역을 떠나지 못했다고 답했다. “수도권으로의 상경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전북만이 가지고 있는 사람 냄새가 더욱 이곳에 머물게 한 것 같다. 실제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다수의 대학 동기가 상경을 꿈꿔 저 역시 상경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면, 연극배우로서 첫 발걸음을 창작극회에서 시작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좋은 동료를 만났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처럼 지역 연극 생태계에 적응하고 있는 김 씨지만, 그 역시 가슴속 한켠에 품고 있는 아쉬운 점도 많았다. 그는 “전북 지역만이 아닌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게 된 청년 예술인들이 주체가 돼 작품을 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하지만 앞으로의 지역 연극계는 청년들이 주체로 선배들의 그늘에 기대지 않고 무대를 올릴 기회가 많아지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어 “과거에 비하면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이 늘어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현장의 예술인들에게는 홍보가 미비해 적재적소에 맞는 사업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고 속내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양한 예술 장르 간의 협업이 활발해져, 서로의 강점을 살린 융합 작품이 탄생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러기 위한 지역 내 청년 예술인 사이의 원활한 네트워킹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내내 남다른 지역 사랑을 보여준 김 씨는 끝까지 ‘전북 문화 예술계 발전’에 대한 소망도 내비쳤다. 김 씨는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대공연장을 비롯해 소극장, 학교, 복지관 등 무대의 크기는 신경 쓰지 않고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기회로 전북문화예술계가 발전해, 돈을 벌기 위해 ‘예술인’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닌 청년 예술인들의 의지에 더욱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충청남도 천안 출생인 김수연 씨는 천안업성고등학교를 졸업해 백제예술대학교 뮤지컬학과를 졸업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5.01.06 17:22

글로벌 OTT 선두주자 K-콘텐츠, 지역에서도 발굴·육성해야

오징어게임과 같은 K-콘텐츠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전북도 자체적인 콘텐츠산업 발굴·육성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뉴미디어 플랫폼이 지닌 영향력이 K-콘텐츠 열풍으로 지속되고 있는 만큼, 콘텐츠와 이를 생산하는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단순히 내수용 콘텐츠 생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정책이 요구된다. 최근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한류 확산을 위한 K-콘텐츠 육성 동향’에 따르면 전 세계 콘텐츠산업 시장이 2022년 기준 약 2조 60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연평균 6.0% 성장하고 있으며 오는 2027년까지 3조 3000억 원 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24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서도 외국인이 K-콘텐츠를 접촉한 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답변이 66.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콘텐츠에 대한 호감 상승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대로 이어져 K-푸드, K-뷰티 등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K-콘텐츠 및 연관 산업 수출 확대 방안을 수립해 2027년까지 글로벌 한류 팬을 3억 명으로, K-콘텐츠 수출액을 250억불까지 확대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콘텐츠·장르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해외시장, 영화제, 인센티브)도 강화해 수출을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다. 전북에서도 지역 문화 자산을 활용한 K-콘텐츠 활성화 추진에 적극적인 모양새다. 남원시의 경우 지역의 대표 문화 자산인 춘향전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웹툰 '향단뎐'을 미디어 기업과 공동 제작해 선보였다. 지난해 4월부터 카카오웹툰에서 연재했으며 누적 조회수가 200만 회를 돌파하며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문제는 콘텐츠 산업을 구성하는 기업 대다수가 영세하고, 지역에서는 콘텐츠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산업조사’를 보면 서울은 20만 2462명이 콘텐츠산업 종사자(7개 영역·22년 기준)로 활동하고 있으며 충남 지역에서도 7145명이 콘텐츠산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전북 지역 콘텐츠산업 종사자는 6374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역 콘텐츠산업의 미래를 위해 문화예술과 산업 간 균형을 찾고, 산업 인력 양성에 더욱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콘텐츠산업은 장래성이 밝고 문화·예술과의 유기적 협업이 가능해 발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북특별자치도콘텐츠융합진흥원 최화평 로컬사업팀 팀장은 “(지역일수록 콘텐츠산업은)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며 “인력을 발굴·지원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예산 투자가 필수이지만, 세수 부족 등의 이유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흥원에서는 예비 창작자를 발굴·육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교육 사업과 제작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다양한 주체의 니즈를 엮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민관 협력해 창작자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5.01.06 17:00

[지역서 꿈 펼치는 청년 예술인]① 싱어송라이터 신민수 씨

지역 청년 예술가는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제시해 예술 분야의 다양성과 혁신을 끌어내는 등 문화산업을 넘어 지역 사회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지역 사회의 문화적 다양함과 창의성을 반영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은 주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본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지역 예술 생태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청년 예술인들이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을 이끌어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기 바라며, 청년 예술인들이 겪는 도전과 성취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4차례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특히 예술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 수도권 또는 해외로 나가려 한다. 지역 내에서의 전시, 공연, 네트워킹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역에서의 수익 창출이 어려운 경우 더 나은 경제적 조건을 찾아 대도시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전주에 머무르며, 지역에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아 지역민들에게 문화를 즐길 기회를 주고자 최선을 다하는 지역 청년 예술인이 있다. 싱어송라이터임과 동시에 문화공간 ‘더 바인홀’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신민수(27·전주) 씨가 바로 그다. 신 씨는 클래식 기타라는 악기를 가지고 진실된 목소리로 잔잔하면서도 따뜻하고 감성적인 노래를 선사하는 청년 예술가다. 그는 2018년 남성 3인조 그룹 ‘오렌지문’으로 데뷔해, 2023년 전라북도 레드콘 음악창작소 7기 뮤지션으로 참여하는 등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데뷔부터 약 8년이라는 세월을 지역의 관객과 마주하며, 열심히 활동해 오고 있는‘가수’라는 직업에 눈에 뜬 계기는 ‘지인의 제안’이었다. 신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노래방에서부터 ‘보컬’의 꿈을 꾸게됐다”며 “(같이 어울리던)친구 중 노래를 배우고 있는 친구가 제 목소리를 듣고 함께 노래를 배우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해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보컬리스트로 활동을 이어가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대에 입대하며 기타라는 악기를 접하게 됐다”며 “처음 접했던 악기지만 금방 재미를 붙이기도 했도, 어느 정도 실력도 늘어가다 보니 작곡에 대한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대하고 무대 위에서 스스로 작사 작곡을 한 음악을 선보이다 보니, 싱어송라이터라는 수식어가 붙게됐다”고 설명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시작했던 ‘가수’로서의 여정 속 신 씨에게 항상 아쉬운 점은 ‘공연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지역은 아무래도 수도권에 비하면,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적고, 예술인들이 활동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어 예술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힘든 구조인 것 같다”며 “더 많은 지원사업과 공모사업 등으로 저뿐만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설 자리가 더 넓어지길 바란다”고 바람을 표현했다. 이어 신 씨는 “지역 내 문화 예술 분야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청년 예술인에게는 ‘공연’은 단순히 무대에 올라 공연을 올리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기회라고 생각된다”며 “무대는 일반 관객분들 앞에 올라 본인만의 예술 세계를 보여줄 기회이기도 하지만, 문화 행사를 기획하는 기획자와 문화재단 등 기관 소속의 전문가들에게도 노출될 수 있는 자리다. 이처럼 소중한 기회가 지역 사회의 청년 예술인에게 더 많이 부여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이같이 어려운 지역 예술 생태계를 인지하고 있는 가수 신민수 씨 역시 자신의 공연 활동의 확장성을 위해 끊임없이 실력을 갈고닦으며 더욱 성장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7년이라는 세월을 달려오며 저도 모르게 현재에 안주하며 게을러진 한해였던 것 같다”며 “새롭게 맞이한 2025년에는 독학으로 배운 기타 연주의 기본기를 더욱 탄탄히 다지는 등 더욱 전문성 있는 활동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가수 신민수 씨는 오는 14일 새로운 앨범 ‘그대만 사랑할래요’를 발매한다. 새롭게 선보여질 앨범은 팝/어쿠스틱 장르로 당일 낮 12시부터 멜론, 벅스, 유튜브뮤직 등 다양한 음원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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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현아
  • 2025.01.05 17:57

[안성덕 시인의 풍경] 걸어 걸어가다 보면

날이 밝았습니다. 해가 떴습니다. 어제 그날이 아니고, 어제 그 해가 아닙니다. 묵은 날이 아니고 새날인 것은, 어제 떴던 해가 아니라 새로운 해인 것은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내가 되려는 마음입니다. 남보다 먼저 새날을 맞으려는 사람들 정동진으로 호미곶으로 달려갔지요. 남보다 먼저 새로운 해를 보려는 사람들 모악산에 국사봉에 올랐지요. 바다는 멀어서 못 가고 산은 높아서 못 올랐습니다. 핑계가 많은 나,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지평선에 섭니다. 들판 끝으로 거북이걸음을 뗍니다. 끝 간데없는 들판이 하늘과 맞닿아 있네요. 우보만리(牛步萬里)라던가요. 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끝에 닿을 것입니다. 남들처럼 내달리지는 못해도 멈추지 않으렵니다. 만 리도 끝이 있을 겁니다. 고단한 어깨를 기대는 듯 사람 人 자 쓰며 기러기 떼가 남으로 가네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지요. 앞서 치고 나간 토끼가 언덕 위에서 낮잠을 자지 않더라도, 어서 와 손 내밀지 않더라도 걸어가야만 할 이유입니다. 걸어 걸어가다 보면 지금 저 황량한 보리밭에도 푸르름이 번질 것입니다. 금세 종달새 높이 떠 봄노래 부를 것입니다. 한여름 땡볕을 견디면 서늘한 바람 불어올 겁니다. 신발 몇 켤레 더 장만해야겠습니다.

  • 문화일반
  • 기타
  • 2025.01.04 08:00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 카카리키 앵무-이주경

조용히 우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주전자 물 끓는 소리보다 작게 울어도 가둔다 미풍에 머리카락 날리는 소리보다 작게 울어도 가둔다 창문보다 낮게 목소리를 죽이는 아이, 이웃집엔 중문도 방음벽도 없단다 얌전히 울면 해바라기 씨를 가득 줄 테야 호기심 많은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탁자 위에 놓인 꽃병을 쪼아대도 가둔다 짧고 단단한 부리로 백합 꽃잎을 쪼아대도 가둔다 동글동글한 눈빛으로 수도꼭지를 툭툭 건드려도 가둔다 집안에서 제일 예민한 각도로 웅크리는 아이, 이웃집엔 꽃병도 수도꼭지도 없단다 너의 호기심을 잠그면 해바라기 밭을 줄 테야 혼자 놀기 좋아하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오후 햇살이 올리브색 깃털 위로 미끄러져도 가둔다 건반 위를 콩콩 뛰어다니기만 해도 가둔다 깨지지 않는 거울을 보고 혼잣말을 해도 가둔다 방안에서 깃털을 고르는 아이, 이웃집엔 햇살도 거울도 없단다 방안 가득 네 꿈을 펼친다면 새장을 통째로 줄 테야 아파트 밖을 나서는 아이를 창살에 가둔다 창문 여는 소리만 들려도 가둔다 놀이터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높아져도 가둔다 마오리족의 깃털처럼 가벼워지려는 아이를 가둔다 창살 안에서 노란 깃털을 뽐내는 아이, 이웃집엔 너 같은 아이도 악보도 없단다 내 앞에서만 노래하면 새장을 요람처럼 흔들어 줄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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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01 18:38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수필] 겨울에도 꽃은 핀다-김수현

“언니, 자?” 잠결에 동생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날따라 초저녁부터 일찍 잠이 든 터였다. 평소 방문이 닫혀 있으면 동생은 걷는 것도 조심하곤 했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뻗어 머리맡에 둔 안경을 찾을 때였다. 방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자는 거, 깨워서 미안해.” 미안하다면서도 동생은 자기 휴대전화를 불쑥 들이밀었다. 어느 유튜버가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텍스트로 와글와글 떠들었다. 안경을 쓰자 그제야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국회의사당이 휴대전화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끔 서울에 올라갔을 때 지하철 안에서나 보았던 곳이다. 국회의사당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대.” 그 말에 준비 없이 찬물에 몸을 담근 듯, 숨이 가빠졌다.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역사책에서 계엄령에 대해서 배웠다. 전라도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여순사건에 대해 조금 더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나의 삶과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계엄령과 가까운 것은 미얀마였다. 미얀마에서 온 유학생들은 ‘계엄령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유학생들은 자기 나라에 있었을 때,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군대가 오면 골목으로 흩어져 숨을 죽였다고 한다. 미얀마 상황을 동영상으로 볼 때면, 미얀마 유학생들은 울곤 했다. 젊은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군대로 가도록 법이 바뀌었으며, 미얀마로 돌아가면 출국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말로만 들었던 미얀마의 현실이, 한국에도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문득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처형될 사람들의 사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같은 이불로 몸을 둘러싸고, 동생과 나는 작은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뚫고 집을 배회하는 것만 같았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었고, 닫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자들과 시민들도 따라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헬기가 날아다니고, 군대는 국회의사당의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일련의 과정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동안, 휴대전화는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렸다. 사람들은 메신저의 속도가 느려지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이 되지 않는 것을 두고 걱정했다. 외국계 메신저를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예술을 하거나 언론을 배우는 친구들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소식은 외국까지도 금방 퍼져, 외국의 친구들이 한국에서 얼른 몸을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연락이 왔다. 커뮤니티에는 도로에 탱크가 다닌다는데, 진짜냐고 묻는 글들이 올라왔고, 가상화폐 거래소는 접속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원화의 가치는 떨어졌고, 비행기표를 구매했던 사람들은 출국 금지 명령이 내려오지 않을지 걱정하였다. 나와 동생은 생필품을 구비할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으며, 과거 계엄령에 대해서 다시 찾아보곤 했다. 문득 얼마 전, 일터에서 앞 시간대 사람과 교대하며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 아침, 그는 평소와는 달리 상기된 표정이었다. 매장에 방문했던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 의견 충돌이 생긴 모양이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우리가 과하다고 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었잖아.” 그가 어릴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의 사촌들은 광주에 살고 있었고, 혼란한 광주에서 근처 지역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그의 고모는 사촌 누나 둘의 손을 잡고 밤에 산을 탔다. 그러나 군인들에게 발각이 되었고 고모와 큰 사촌 누나는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작은 사촌 누나는 중학생이었지만, 또래에 비해 작았다 한다. 군인은 그의 작은 사촌 누나에게 너는 어려서 살려 준다고 했다. 그의 작은 사촌 누나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면서 며칠을 걸어 그가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광주에 있던 그의 친척 중, 살아남은 사람은 그의 작은 사촌 누나 단 한 사람이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마 그녀는 머리의 묵은 흉을 만지작거렸으리라.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몇십 년 만에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계엄령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해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표현의 자유마저 걱정해야 할 정도로 민주주의는 퇴보하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덕담을 나누는 시점에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혼란이 와도 해는 매일 뜬다. 새해는 올 것이고, 1월 1일의 겨울 해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빨리 세상을 밝힐 것이다. 겨울 추위에 마냥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추울수록 뛰어야 몸이 더워지는 법이다. 이불에서 나와 책장에 있는 역사책을 꺼내 든다. 얇게 먼지가 쌓여 있다. 마른 휴지로 가만히 숨죽인 시간을 털어 낸다. 슬프고 화날 때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책의 여백에 오늘 날짜를 쓴다. 새해의 시작이 조금 울적하더라도 괜찮다. 서로 손을 잡고 따뜻하게 데운 방바닥에 앉아 옛날이야기, 지금 이야기 가릴 것 없이 도란도란 나누다 보면 지금보다 한결 가볍게 새해를 시작할 테니. 나뭇가지가 창밖에서 참 춥게 흔들린다. 쓸쓸하고 힘든 계절이다. 그래도 몇몇 나무는 꽃을 피운다. 대표적인 것이 동백이다. 제주에는 동백이 한창이라고 한다. 곧 이곳도 동백이 필 것이다. 겨울에도 꽃은 핀다. 그리고 몇 되지 않는 꽃에도 새들이 지저귀며 모일 것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5.01.01 18:36

[새해특집] 기후재난에 대비하는 전북의 기후 천사들

기후재난은 잔물결처럼 밀려왔다. 2019년 극심한 기상 이변으로 북극곰이 먹이를 찾으러 러시아 도시에 출몰했다. 해빙 면적이 급격히 줄면서 북극곰은 먹잇감을 사냥하지 못했고, 굶주린 곰이 도시 외곽까지 접근했다. 3년 전부터 시작된 꿀벌 집단 실종 현상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꿀벌이 약 400억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꿀벌 대체재를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2024년을 돌아보면 기상이변 현상은 더욱 심각했다. 여름이 유달리 길었던 탓에 9월 한가위 폭염을 경험해야 했고, 11월에는 불시개화와 폭설로 전국이 혼란스러웠다. 단순히 북극곰과 꿀벌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엔 기후 재난이 어느새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재난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면서 기후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친환경 소비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환경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기후감수성을 실천하는 전북의 기후 천사를 소개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새활용 전주 다시봄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에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쓸모를 잃어 버려지는 쓰레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설이 있다. 바로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이다. 센터는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도 있었지만, 쓸모가 없거나 버려지는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쓰임을 부여하는 새활용(up-cycling·업사이클링)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새활용, 즉 업사이클링은 ‘업그레이드’와 ‘리사이클링’의 합성어다. 버려지는 폐기물에 가치를 더하는 것으로 기존보다 더 좋은 품질, 더 높은 수준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2021년 야심 차게 문을 연 센터에서는 병뚜껑과 비닐봉지 등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양한 활용 사례를 소개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새활용 교육과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며 쓸모없어진 자원에 쓸모를 입히고, 지구 자원의 생산과 소비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기후감수성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실제 영화관 스크린과 영화관 좌석 원단 등을 활용해 각종 생활 소품을 만들고, 병뚜껑 등 플라스틱 소재를 이용해 열쇠고리를 제작한다. 또한 버려지는 식품 제조·폐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등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 등을 지원·육성하며 새활용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새활용센터 다시봄, 새로운 쓰임 고민전주시새활용센터는 지역에 자원순환 생태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새활용 교육사업 △공간 활성화 사업 △새활용 산업 지원 △연대 협력 사업 등에 힘쓰고 있다. 특히 쓸모를 잃은 자원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새활용 문화를 시민들이 흥미롭게 인지할 수 있도록 기획전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열린 기획전 RE: BORN에서는 자투리 가죽이나 부스러기 가죽을 활용해 완성한 설치작품을 전시해 선보였다. 폐기물에 불과했던 가죽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선보인 익숙한 이미지, 낯선 존재 전시회에서도 자개장의 예술적 가치를 보여줬다. 작가는 천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자개장에 환경파괴로 사라진 동식물의 이미지를 덧대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센터는 버려지는 폐기물이 모이면 새로운 쓰임을 찾을 수 있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방문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를 위해 1년 내내 미술 전시회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자원의 쓰임을 알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대중에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화두로 던지고, 새활용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센터 2층에는 지난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새활용 기업 4곳과 내부 평가를 통해 연장한 2개 기업 등 총 6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센터는 새활용 산업을 발전시켜 비즈니스로 확대하고자 입주한 스타트업 육성을 함께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네트워크 구축과 새활용 소재 찾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전주 늘미곡, 전주 제비마트, 완주 담아가게, 익산 게스트 지구인, 남원 비니루 없는 점빵, 군산 자주적 관람 등 전북지역 제로웨이스트 6개 업체 네트워크를 구성해 새활용 문화 확산 기반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내년에는 들깻묵 부산물을 활용해 생활 소품을 제작하는 지역 업체 조아지구와 교류해 특색 있는 새활용 방식을 제안해 나갈 예정이다. 전주시새활용센터 이은주 센터장 미니인터뷰 전주시새활용센터 이은주 센터장은 지난 추석 때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어쩌면 올해 추석이 가장 시원한 추석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 센터장은 문자를 받고 철렁하며 마음이 내려앉았다고 고백했다. 더는 지금보다 나아진 세상을 꿈꾸며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표 온도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여름철 강수량이 늘고, 벚꽃 개화 시기가 들쑥날쑥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때문에 기후감수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이상기후를 넘어 기후재난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질 만큼 이상 기후 현상으로 평범한 일상이 크게 위협받고 있어요. 단순히 폭우와 폭설, 폭염 등에 따른 피해를 넘어서 기후 변화로 생겨난 인플레이션 심화까지 기후위기가 우리 삶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이제는 많은 분들이 체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기후감수성이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기후감수성은 기후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그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특히 소비와 비즈니스 공공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이 센터장은 공공의 모든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기후감수성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2025년부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쓰고 버린 현수막과 배너, 포스터 등을 폐기하지 않고 생활 소품 등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전주시와 논의 중에 있다. 그는 “자원순환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앞으로는 새활용이 자원순환 영역에서 최종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기후위기가 화두인 오늘날 사회에서 함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많은 이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센터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5.01.01 17:58

‘임진왜란,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 학술대회 개최

김제시가 주최하고 김제문화원과 (사)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이 주관한 ‘임진왜란,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 학술대회가 지난 27일 김제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첫 발표자로 나선 하태규 교수(전북대학교)는 “임진왜란 초기 웅치전투와 이치전투에서 3개월간 버티어 줌으로서 호남에서 군량미와 물자를 공급하려던 일본군의 전략을 와해시켰다”며 “웅치전투, 이치전투, 안덕원전투를 하나로 묶어서 기념사업을 전개하는게 옳은 방식”이라고 밝혔다. 노영구 교수(국방대학교)는 “웅치전투에서 험한 산악지대에서 목책과 장애물을 설치하고 활과 화살로 일본군의 조총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전술을 김제군수 정담이 창안하고 실제 웅치전투에서 전술적으로 사용하므로서 일본군과 웅치전투에서 화차 등 화기 사격과 궁시의 근접 사격으로 일본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욱 교수(국립순천대학교)는 “난중잡록에 정담군수가 밝힌 ‘나의 뜻은 결정되었으니 그대들은 내가 하는 것을 보라’는 각오를 인용하면서 정담군수가 관군 징병과 의병 규합을 위하여 앞장 섰고 김제사족들의 지원을 받아 의병모집이 가능했다”고 했다. 송화섭교수(중앙대학교)는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방어선인 웅치전투에서 가장 큰 전공과 전술 성과는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들이었음이 이번 학술대회에서 밝혀졌다”며 “앞으로 김제시와 김제문화원이 적극적으로 정담군수와 김제의병의 공적으로 김제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2023년 12월 30일 임진왜란 웅치전투 전적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고시했다. 웅치전투는 1592년 6월 말경부터 3개월간 진안 곰티재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서 전라도 관군과 의병들이 벌인 전투로 초기 호남방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전투다.

  • 문화일반
  • 이강모
  • 2024.12.30 11:42

[안성덕 시인의 '풍경']돌아본다는 것

어둑어둑 하루가 저뭅니다. 어질어질 또 한 해가 갑니다. 하루, 한 주, 한 달은 그닥 빠르지 않건만, 한 해 한 해 쏜살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시절엔 사십 리 밖 신태인역 완행열차가 칙칙폭폭 느려터졌었지요. 기적도 없이 또 한 해의 종착역입니다. 칸 칸 대나무 마디 같은 세월을 뒷전으로 밀어내야 할 시간입니다. 발자국은 바른지, 길 구불거리지는 않았는지 노을 스러지기 전에 돌아봐야겠습니다. 멈춘 듯 흘러가는 저 강물, 홍안의 소년이 어느새 강변 억새처럼 머리가 세었습니다. 돌아본다는 것, 아침에 뜬 해를 저녁에 다시 띄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흘러간 물로 물방아를 돌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나를 떠나 나를 보자는 말입니다. 소싯적 연살을 깎으며 보았습니다. 대나무 마디 속에 고막 같은 흰 막이 있었습니다. 깜깜한 적막 밀려오기 전에 내 안의 소리 들어야겠습니다. 아직 희미한 내 발등 보일 때 발자국과 길을 돌아보겠습니다. 서산을 넘던 해도 잠시 가빴던 날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바다로 가는 강물도 잠시 한숨 고릅니다. 허공에 발자국 찍으며 철새 두엇 날아가네요. 한 해의 마디를 묶는 것은, 발자국 잘못 찍었거든 행여 길 잘못 들었거든 새해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일 겁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4.12.28 08:30

문화계 단비, 2024 천인갈채상 시상식 성황리 개최

(사)천년전주사랑모임(이사장 김병진)은 지난 23일 더뮤지션에서 ‘2024 천인갈채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천인갈채상’은 전북 문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25세 이상 45세 이하 예술인을 격려하기 위한 상으로 시민들이 상금을 모으고 직접 투표해 수상자를 정한다. 이날 시상식에는 천인갈채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순하 대북연주가(44)와 장우석 한국화가(43)를 비롯해 서거석 교육감 등이 참석했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00만원이 각각 수여됐다. 이순하 대북연주가는 “천인갈채상이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통해 지역 예술가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연주 활동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장우석 한국화가는 “예술가로 살며 매일을 되묻는다. 잘하고 있는 건지 그 하나로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간다”며 “묵묵히 걷다 본 많은 분들이 뽑아주신 값진 상을 받게 되었다. 예술가 모든 분들의 오늘이 저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 모든 오늘을 함께 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김병진 이사장은 “수상한 두 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큰 문화예술인으로 성장해 나가시길 빈다”며 “모금이 쉽지 않았지만 좋은 취지의 천인갈채상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4.12.25 15:30

[2024 전북문화계 결산] ➂축제-화려한 성과 뒤 조직 운영 그림자 커

올해 치른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와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모두 화려한 성과는 거뒀지만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조직 운영의 그림자가 컸다. 전주독서대전과 한지축제, 전주비빔밥축제 등 시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된 전주형 통합축제는 정체성 없는 백화점식 축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북예술인들의 축제인 전라예술제 역시 짧은 준비 기간으로 지역 문화‧예술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프로그램 안정화된 영화·소리축제…지역 밀착과 조직 운영 물음표 극장을 찾지 않는 시대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국민 10명 중 9명이 구독하는 시대에서 전주국제영화제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분투했다. 영화제를 찾은 방문객들의 특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고민했고, 답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돋보였다. 올해 영화제는 한국영화 1513편, 국제경쟁 81개국 747편의 작품이 출품되며 역대 최다 출품 기록을 경신하는 쾌거를 이뤘다. 총 6개 극장 22개관에서 43개국 232편의 작품을 590회 상영했고, 매진 회차는 590회 중 381회로 상영 회차의 64.6%가 매진을 기록했다. 세계적인 거장 차이밍량 감독이 23년 만에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해 주목을 받았다. 미야케 쇼, 허진호, 김한민 감독을 비롯해 변우석, 유지태, 데라켐밸 배우까지 2400여명의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제를 찾아 관객들과 소통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23년 만에 축제 개최시기를 가을에서 여름으로 옮기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공연예술축제로 변화를 추구해온 소리축제가 전통예술 기반의 공연물은 극장에서, 대충 진화적인 공연은 야외무대에서 펼침으로써 예술성과 축제성을 두루 갖춘 여름축제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전북에 뿌리를 둔 농악과 판소리를 소재로 한 개·폐막 공연을 비롯해 판소리와 창극, 음악극, 전통풍물굿까지 닷새간 80개 프로그램에 106회 공연을 선보였다. 올해는 축제 기간을 열흘에서 닷새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객석 점유율이 84.2%로 지난해보다 14%P 올라 예술성과 흥행성을 두루 잡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처럼 두 축제 모두 안정기에 접어든 만큼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개최하는 축제인 만큼 지역과의 밀착과 조직 운영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리축제는 23년 만에 축제 개최시기를 변경했지만,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없이 서둘러 개최시기를 변경해 잡음이 일었다. 영화제 역시 행사를 두 달여 앞두고 촉발된 내부 분열로 파행을 겪어야 했다. 영화제는 홍보팀장 없이 치러졌고, 홍보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불편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몫이 돼버렸다. △지역축제, 신선한 기획력과 내실 있는 프로그램 필요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북지역 가장 큰 예술축제인 전라예술제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지만 분과별 프로그램을 나열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새로운 시도나 기획력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평가다.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전주형 통합축제 ‘전주페스타’는 투입된 예산에 비해 축제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살리지 못하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전주가 '맛과 멋'의 고장으로 불리는 만큼, 지역축제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할 수 있는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할 것이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4.12.23 15:56

전주 서고산성, 전북자치도 문화유산 지정

전주 황방산(서고산) 일대를 중심으로 전주 서부권의 방어 기능을 담당했던 전주 서고산성이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전북자치도는 지난 20일 전주 서고산성을 전북자치도 문화유산(기념물)으로 지정 고시했다. 서고산성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처음으로 기록됐고, 지난 1970년대부터 2017년까지 3차례의 지표조사를 통해 개략적인 현황이 파악됐다. 전북자치도와 전주시는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차례의 시굴·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축조된 토축 성벽과 통일신라시대에 개축된 석축 성벽 그리고 삼국시대~후백제 건물지 등을 확인했다. 삼국시대 토축 성벽의 경우 산사면을 L자형 또는 계단식으로 굴착한 뒤 점토와 석재, 모래 등을 섞어 판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백제의 토축 성벽을 일부 절토한 뒤 석축으로 개축한 흔적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서고산성은 이러한 시굴·발굴조사를 통해 성곽의 축조 방법과 변천 과정에 대한 전모가 드러나며 시대성을 담은 대표 산성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시는 서고산성이 전북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유적 훼손 방지, 경관 보존을 위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구 고시 절차를 이행할 계획이다.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면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 발굴조사, 산성 정비·복원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은영 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서고산성은 발굴조사를 통해 역사적 가치가 증명된 전주의 중요 유산"이라며 "향후 전주 서고산성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정비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4.12.22 16:29

[2024 전북문화계 결산-②전시·공연] 도민과 마주한 문화행사 늘었지만 퀄리티는 '글쎄'

전북 무대예술과 전시 분야는 작지만 큰 울림이 있는 성과를 보였다. 올해 문화계 예산이 대폭 삭감되며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더욱 어렵게 한 해를 시작했지만, 음악 장르별·내용별로 사회적 메시지 등을 전달하는 새로운 시도들은 더욱 다채로웠다. 특히 올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원년의 해를 맞이해 이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과 전시도 끊임없이 선보이며, 예술활동을 통한 참신한 시도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도민들과 마주할 수 있는 문화 행사의 양은 늘어났지만, 그에 비해 공연과 전시의 질은 떨어졌다는 평가를 남겼다. △다양한 시도 선보인 공연계 움직임 비해 대작 없어 ‘아쉽’ 올해 초 새롭게 수장이 바뀐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은 정통 창극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안고 야심 차게 창극단 정기공연 ‘춘향’을 준비해 공연을 올렸다. 공연은 국악원의 관현악단, 무용단이 함께한 작품으로, 지난 1986년 문을 열어 올해 38주년을 맞은 국악원과 함께 성장해 온 창극단, 관현악단, 무용단의 연륜과 공력을 마주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극의 전개가 지루했다는 평과 함께 정통 창극의 면모가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남겼다. 국립민속국악원은 기획 공연 '고택, 고백 Go Back', '달리는 국악무대', 상설 공연 '광한루원 음악회' 등을 통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악 환경을 조성하고 저변을 확대했다. 또 해외 및 국내 유관기관과의 교류 및 협력을 추진하며,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국악치유 체험프로그램과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국악 체험교실을 운영하는 등 K-문화관광 거점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예비도시로 선정된 ‘전주’의 본도시 지정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전주문화재단의 움직임 역시 눈에 띄었다. 실제 이들은 ‘세계거리축제<전주예술난장>’, 전통혼례 재현식, ‘K-뮤지컬 마당창극’ 등 문화관광을 견인할 굵직한 사업을 추진 시민과 함께 문화예술의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문화 플랫폼을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올해로 지천명을 맞이한 국악 최고 명인·명창 등용문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지난해 처음 도입한 블라인드 심사를 폐지하고, 기존 남성 참가자만 출전할 수 있었던 ‘활쏘기부’ 부문에 여성들의 출사표도 받아들이는 등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더욱 발전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모습을 보였다. △지역문화예술 활성화와 도민들의 문화쉼터 역할 ‘톡톡’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올 한 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특별한 사업을 기획해 도민문화 향유 기회 확대와 문화 복지 실현에 힘썼다. 실제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에바 알머슨 특별전:에바 알머슨 Andando(안단도)’ 기획과 더불어 사비나미술관 기획으로 진행된 ‘Snap, Share, Save 우리에게 남을 것은 사람이야’ 전시’ 등을 다양하게 올렸다. 도민들의 문화쉼터로 빠질 수 없는 전북도립미술관 역시 올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부터 지역 미술계의 많은 관심을 모은 '이건희 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의 막이 올랐기 때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추진하는 이건희컬렉션 지역순회전의 열 번째 전시로 한국 근현대 시기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12.22 14:20

[안성덕 시인의 '풍경']이웃

어느 동 무슨 아파트가 부의 가늠자가 되었습니다. 가구당 보유자산의 75%가 넘는다는 아파트가 눈가는 데마다 우뚝합니다. 주거 형태별 비율도 50%를 훨씬 넘는다는데, 언제부터인지 이웃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은 지루함을 견디게 하고 공간을 넓게 보이려는 이유라지만, 엉거주춤 이웃 간의 어색한 시선을 잠시 맡아주기도 합니다. 큼큼거리며 보이지도 않는 하늘 올려보지 말고, 풀리지도 않은 신발 끈 내려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게요, 아침이면 담 너머로 안부를 묻고 저녁이면 울 너머로 음식을 나누던 이웃들은 죄다 어디로 갔을까요. 아침 8시 엘리베이터 안이었지요. 삐삐 삐삐, 중량 초과로 문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12층, 엄마와 3학년쯤 아이가 비집고 들어 온 뒤였습니다. 난감한 두 사람 한발 물러났다가 다시 들어오는데 또다시 경고음입니다. 윗집 아랫집 간밤 늦은 퇴근에 아직 천근만근인 눈꺼풀 때문인 듯싶습니다. 아니 꼬박꼬박 아침밥 챙겨 먹는 내 탓인가 생각하는데, 말없이 15층 할아버지가 내렸습니다. 17층 아가씨와 14층 젊은 아빠는 벽으로 바짝 물러섰고요. 빈틈없던 가운데에 자리가 생기고, 엄마와 아이가 들어섰지요. “고맙습니다”, 고마운 이웃이 내리고 고마워하는 이웃을 싣고 엘리베이터는 나비처럼 사뿐 내려앉았지요.

  • 문화일반
  • 기고
  • 2024.12.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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