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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의 명창이야기] (26)학식 높았던 명창 김연수(4)-판소리의 특성

김연수의 판소리 학습과 관련해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김연수 자신이 정정렬을 가장 따르고자 했던 스승이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김연수가 정정렬을 만나 판소리를 배운 것은 1936년이다. 상경 직후인 1935년에는 송만갑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정렬로부터 판소리를 배울 때는 충청북도에 있는 현암사와 내금강 표훈사 등 구체적인 장소까지 말했다. 현암사에서는 <적벽가>를 배우고, 표훈사에서는 <춘향가>를 배웠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스승을 모시고 절에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한 것이다. 1차로 <적벽가>를 배우고 나서 다시 <춘향가>를 또 배웠던 것을 보면, 김연수가 정정렬의 소리를 매우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연수는 1938년 스승인 정정렬이 별세한 후, 정정렬 선생이 5년만 더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실제 김연수는 정정렬의 판소리를 모범으로 삼고 자신의 판소리 세계를 구축하려 했다.김연수는 다른 소리꾼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보통의 소리꾼들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판소리를 약간씩 바꿈으로써 자신의 판소리 세계를 구축한다. 그런데 김연수는 배운 것을 약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전면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김연수의 판소리는 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와는 아주 다른 판소리가 되어 버렸다. 김연수 자신이 배웠다고 말한 판소리와 현재 전승되고 있는 김연수 바디 판소리는 완전히 달라서, 전승계보를 통해서는 김연수 판소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김연수의 판소리는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과거의 틀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그러면 김연수의 판소리는 어떤 것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졌는가? 음악적 특성 면에서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정정렬의 소리를 모범으로 삼았다. 사설에서는 신재효의 사설과 일제강점기 당시 인기를 끌었던 판소리계 신소설을 대거 차용했다. 특히 김연수는 신재효의 사설을 많이 차용했다. 그런데 김연수는 신재효로부터는 사설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신재효가 판소리 사설에서 추구했던 이른바 합리성까지 그대로 따르려고 했다. 물론 신재효가 추구한 합리성과 김연수가 추구한 합리성은 다르다. 신재효는 유교적 합리성이라고 할만한 내용을 추구했지만, 김연수는 근대적 합리성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을 추구했다. 예를 들자면, 신재효는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자신의 눈을 뜨기 위해 딸을 팔아먹었다는 오해를 살까봐,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바치겠다는 약속을 심봉사가 아니라 심청이 하는 것으로 하였다. 김연수는 <적벽가>의 '장승타령'에서 조조와 장승이 말을 주고받는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하여, 나무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천하가 말세 되어 시절이 분분하면 사람과 귀신이 뒤섞여 목신도 능히 말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을 굳이 덧붙였다.겉으로 볼 때 김연수 판소리가 다른 판소리와 가장 다른 점은 김연수 판소리의 사설이 마치 연극의 대본같이 생겼다는 점이다. 김연수는 자신의 판소리 사설을 출판했는데, 그 사설집은 대사로 볼 수 있는 부분은 등장 인물에 따라 배역을 표시하였고, 해설 부분은 도창이라고 해서 대사와 구분을 하였다. 사설 곁에 장단을 표시하기도 했다. 내용 또한 보다 극에 가깝게 수정하였다. 판소리를 부를 때도 극적인 표현을 특히 강조하였다. 요컨대 김연수는 판소리를 극으로 보았던 것이다. 김연수는 근대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극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데다가, 데뷔 때부터 창극에 관여하여 한 평생을 창극을 하며 살았던 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전시·공연
  • 전북일보
  • 2010.04.05 23:02

[공연] '비싸고 어려운' 오페라는 가라

#1. 수십 년 전 연애사를 가지고도 마치 얼마 전 일인양 서로에게 자랑을 하고 질투를 하는 노처녀들. 남자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는 이들 앞에 매력적인 남자가 나타난다. 탈옥수인 미남 청년과 두 노처녀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묘사, 현대인이 겪는 무료함을 풍자한 코믹오페라 '신사와 노처녀'.#2. "따르릉~ 따르릉~". 인간의 편리에 의해 만들어진 전화는 때로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기도 한다. 인간 심리와 기계물질주의에 대한 불신을 표현, 전화벨 소리로 시작해 전화를 끊으며 끝이 나는 '폰 녀(Phone 女)'.'비싸고 어려운' 오페라는 가라. 뮤직 씨어터 슈바빙이 '작고 쉬운' 두 편의 오페라로 소극장 오페라의 재미를 보여준다.3일과 4일 오후 4시·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리는 '신사와 노처녀'와 '폰 녀'. '88 서울올림픽' 문화축전에서 초연된 오페라 '시집 가는 날'의 작곡자 메노티가 영국 BBC 방송국의 요청을 받아방송을 위해 창작한 작품이다.뮤직 씨어터 슈바빙 대표인 이은희 전북대 교수는 "두 작품 모두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유쾌하게 표현된 작품"이라며 "이 지역에서는 처음 공연되지만, 숨소리까지 들린다는 소극장의 특성을 살려 관객과 가깝게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지휘는 이일규, 연출은 조승철. 이은희 신선경 신선영 박은지 송주희 문선미 황은지 신은경 김한나(소프라노) 조성민 이하나 (메조 소프라노) 김현오 장성일 박호영(바리톤)이 출연한다.

  • 전시·공연
  • 도휘정
  • 2010.04.02 23:02

[전시] 남천 송수남 작가 전주 MBC 창사 45주년 특별기획전 7일 개막

남천(南天) 송수남(72)은 호방하게 웃되 말은 아낀다. 1980년대 '현대 수묵 운동'을 주도한 그는 수묵 추상의 대가로 불린다. 하지만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은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며 "순간순간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을 뿐"이라고 답한다.전주 MBC 창사 45주년 특별기획전에 그가 초대됐다. 오랜 화력임에도 불구하고 전주 개인전은 처음이다. "나이가 들면서 귀소본능이 든다"는 그는 "전주에서 나고 자랐던 시절을 떠올려보곤 한다"고 했다.이번 전시에서 수묵의 정신을 구현한 그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작품 250여 점이 걸린다. 1950년대 전주 경기전 외에 1960년대 붉고 푸른색을 과감하게 끌어들인 채색 산수, 1970년대 관념적인 산수와 장식적인 산수가 소개된다. 1980~90년대 흑백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구도의 '남천 산수'에서 2000년대 화려한 꽃그림까지 어마어마한 규모다. "와서 보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그가 자신있게 말하는 이유다.그의 작품은 어찌보면 단조롭다. 한 일(一)자가 빼곡히 들어찬 선의 나열. 어떤 것은 가로로 누워 있고 어떤 것은 세로로 서 있다. 때로는 빽빽하게, 때로는 호방하게. 지루한듯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군더더기 없는 반복이 가져다주는 무념무상의 경지. 먹의 농담과 강약 만으로 담백하면서도 깊이를 드러낸다."한 일자는 곧음입니다. 500여 년을 올곧게 이어온 선비정신이죠. 나는 혼탁한 세상에 이것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또 그립니다."선을 긋는 행위는 모든 것이 하나로 귀결되는, 선(禪)의 수행과도 같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사상적 기반은 불교. 대학 시절 이기영 선생의 불교철학 강의에 감명을 받았고, 가장 좋아하는 명구도 '제행무상(諸行無常·만물은 잠시도 하나의 모양으로 머물지않고 변한다)'이다."나이 먹을수록 몸은 가볍고, 생각은 단순·소박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림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봅니다. 설명이 많을수록 전달이 더 안 돼요. 나도 내 그림이 어렵습니다.(웃음)"울긋불긋한 꽃그림도 수십여 점 내놓았다. 2004년 홍익대 교수에서 물러난 뒤 화려한 꽃그림에 빠져들었다."나이 먹으니까 화려한 게 좋아지더라고요. 몸이 이곳 저곳 고장 나니까, 꽃을 보면 그런 걸 다 잊을 수 있어요. 앉아서도 그리고, 누워서도 그리고 마음까지 젊어지는 기분입니다."흐드러진 매화 꽃더미와 꽃술은 사군자 필법을 따랐고, 철쭉과 진달래, 수선화 등과 나비와 달이 어우러진 그림도 눈에 띈다.스승 없이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했듯, 그는 제자들의 화풍에 절대 간섭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자연히 두면 뭔가 된다. 걱정스럽던 학생들도 때가 되면 자기 그림을 찾아간다"며 오히려 패거리를 만들지 말라고 반대했다. 그는 「두고 온 고향」, 「한국화의 길」, 「수묵 명상」등 여러 권의 책도 내기도 했다. "그림은 그림이고 글은 글"이라며 "틈나는 대로 끄적거린 담백하고 소박한 얘기"라고 덧붙였다."수묵은 '없는 것'입니다. 선적인 것은 나의 인생입니다. 남천을 알려면 전시에 와요." 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전시는 7일부터 27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실에서 계속되며, 개막식은 7일 오후 6시다.

  • 전시·공연
  • 이화정
  • 2010.04.02 23:02

[공연] '빌리 엘리어트' 주인공 한자리에 모인 밤

공연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막이 내리고 찾아왔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런던 무대에서 주연을 맡았던 역대 빌리들이 모두 나와 함께 춤추는 광경은 예상치 못한 큰 감동을 전했다. 31일(현지시간) 밤 런던 빅토리아역 인근 빅토리아팰리스 극장에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5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다. 2005년 3월31일 이곳에서 세계 초연된 지 5년째 되는 날을 기리는 특별한 이벤트였다. 커튼콜까지 끝나고 관객의 기립박수가 이어지는 가운데 다시 막이 올랐고, 올리비에상 사상 최연소 최고 배우상 수상자인 초대 빌리 리암 모어를 비롯한 약 20명의 역대 빌리들이 가슴에 'BILLY'를 선명하게 새기고 등장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빌리들의 춤은 과거 빌리 시절보다 한층 성숙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무대 위에서는 폭죽이 터졌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객석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 빌리 역의 배우들 외에도 작곡가 엘튼 존을 비롯해 스티븐 달드리 연출과 리 홀 작가 등 '빌리 엘리어트'를 만든 얼굴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했다. 이들은 공연 전 무대에 올라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서로에게 성공의 공을 돌리며 빌리의 5번째 생일을 만끽했다. 엘튼 존은 "'빌리 엘리어트'는 정말 대단한 쇼이며 위대한 이야기다. 빌리는 단순히 한 소년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약자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이라며 "오늘 이 밤을 즐기자"고 외쳤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제이미 벨을 포함하면 전 세계에서 총 40명의 빌리가 탄생했다. 런던에서는 22명의 소년이 빌리가 됐다. 뜻깊은 이날 공연에 빌리 역으로 무대에 선 주인공은 2008년 9월부터 빌리로 출연 중인 톰 홀랜드(14)였다. 그는 엘튼 존을 비롯한 제작진과 역대 빌리들이 지켜본 무대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차게 연기해 큰 박수를 받았다. 스트리트 댄스가 주특기인 그는 극중 "춤을 출 때 기분이 어떠냐"는 오디션 심사위원의 물음에 답하는 노래인 '일렉트리시티'를 부르고 나서 강렬하고 열정적인 춤을 선보여 기립박수를 받았다. 자그마한 소년의 춤이라고 믿기 어려운 폭발적인 무대였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탄광촌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빌리 엘리어트'는 빌리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10대 초반 소년의 놀라운 춤과 더불어 꿈을 향한 빌리의 노력, 가족 간의 사랑이 감동을 몰고 온다. 빌리와 그의 절친한 친구 마이클의 재기 발랄한 행동은 웃음을 전하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편지를 읽는 대목에서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동시에 광부들의 집단 파업과 경찰의 강경 진압 장면 등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한 소년의 성장기가 묵직한 주제와 함께 다뤄지면서 가볍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는 것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였다. '빌리 엘리어트'의 5주년 소식은 BBC 등 현지 언론이 일제히 다뤘으며, 이날 현장에도 수많은 취재진과 팬들이 모여들어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영국 내의 이러한 관심은 '빌리 엘리어트'가 영국 웨스트엔드 뮤지컬의 자존심을 세운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명 영화를 각색한 이 뮤지컬은 런던 초연 이후 지금까지 450만 명의 관객들 동원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올리비에상 4개 부문을 받았으며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도 지난해 토니상 10개 부문을 휩쓰는 돌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명작 뮤지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까지 영국과 미국 외에 호주에서 공연됐으며,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선보인다. 이에 앞서 뉴욕과 런던 '빌리 엘리어트' 공연 관람을 위한 뮤지컬 여행 상품이 등장하는 등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공연은 8월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다.

  • 전시·공연
  • 연합
  • 2010.04.02 23:02

[전시] 인도네시아 전통 섬유 바틱의 아름다움

바틱(batik)은 수천개의 문양과 다양한 색을 지닌 인도네시아의 전통 섬유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의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틱은 2009년 유네스코의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정도로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바틱 예술을 소개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섬유예술-바틱'전이 2일부터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에서 열린다. 바틱은 천연 밀랍을 방염제로 사용해 염색한 섬유로 색을 바꿔 염색할 때마다 방염하고 염색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제작된다. 식물, 동물, 기하학 무늬 등 3천개가 넘는 문양과 다양한 색을 가진 바틱은 인도네시아에서 의복과 실내 장식품, 혼수품 등에 사용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120여점의 바틱은 모두 인도네시아의 바틱 예술가 조세핀 코마라가 이끄는 바틱 공방 '빈 하우스'에서 만든 것으로 한 점당 5~7개월의 제작기간이 소요된 수공예품이다. 전시는 바틱으로 만든 '샤롱'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전통 치마와 바틱으로 만든 탑 형태의 조형물 등을 통해 바틱이 갖는 조형성과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전시는 21일까지 계속되며 4월3~28일에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순화동 재단 문화센터 영상실에서 '페산트렌'과 '무지개 분대', '픽시', '포비든 도어' 등 인도네시아 영화 4편이 상영된다. ☎02-2151-6514.

  • 전시·공연
  • 연합
  • 2010.04.02 23:02

[공연] '토종 브랜드' 워커힐쇼 선보인다

47년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 최대의 극장식 쇼인 '워커힐쇼'가 처음으로 우리나라 공연만으로 꾸며진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은 4월5일부터 1년간 워커힐씨어터의 쇼(워커힐쇼)로 한국인 배우 60여 명이 출연하는 '꽃의 전설(Legend of Flower)'을 올린다고 31일 밝혔다. 지금까지 워커힐쇼는 약 30분 동안 펼쳐지는 민속공연과 1시간가량 이어지는 외국인들의 공연으로 구성됐다. 외국인들의 공연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호주, 유럽 등에서 활동하는 무희들이 주로 참여했다. 그러나 새롭게 준비한 '꽃의 전설'에는 외국인 출연자가 한 명도 없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환상적인 홀로그램 영상을 배경으로 춤과 음악, 타악, 비보이 댄스, 고공널뛰기, 공중 그네타기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총 4장의 공연으로 85분간 펼쳐진다. 1년여간 기획된 이 작품을 제작하는 데는 60억원이 투입됐다. 호텔 측은 한식 메뉴를 즐길 수 있는 디너쇼 형식으로 만든 이 공연을 '블록버스터급 코리안 쇼'로 명명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홍보할 예정이다. 박광철 홍보팀장은 "2010∼2012년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류 대표 공연으로 인식되도록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워커힐호텔이 1963년 4월8일 개관 기념으로 가수 겸 트럼펫 연주가인 루이 암스트롱을 초청해 시작한 워커힐쇼는 국내 최초이자 동양 최대의 극장식 쇼로 자리를 잡았다.

  • 전시·공연
  • 연합
  • 2010.04.01 23:02

서양화가 강정진 개인전…뭉게뭉게 피어난 자연의 생명력

"가꾸지 않고, 길들이지 않고 내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림이 진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났던 성격도 점점 둥글어져갔습니다만, 그림 속 풍경은 더 강렬한 색감으로 덧칠됐죠. 하지만 내 그림을 통해 '따숩고' 아름다운 마음만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서양화가 강정진씨(55·예원예술대 교수)의 원색의 향연으로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맑게 개인 하늘이 늘 파랗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떤 날은 붉고, 또 어떤 날은 노랗다. 그는 자연의 객관적인 재현이나 묘사가 아니라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배열을 적절히 이용해 생명의 조화를 만든다. 정오의 작렬하는 햇빛과 저물어가는 석양의 애잔한 풍경, 만개한 복사꽃에선 움트는 생명력이 영감을 준다."예술은 있는 것도 없게 하고, 없는 것도 있게 합니다. 화폭에 희노애락을 깔아 놓고 질펀하게 풀어놓으면, 마음의 붓끝에서 자연이 피어나죠."색의 번짐을 활용해 이미지를 완성했으며, 힘찬 선으로 풍성한 질감을 드러내고 대담한 생략 등도 시도됐다.전주 전시는 오는 4월 1일까지 계속되며, 4월 13일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도 두번째 전시를 갖는다.원광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현재 한국미협 이사, 미술교육원 운영위원회 위원장, 서울미술협회 부이사장, 목우회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 전시·공연
  • 이화정
  • 2010.03.31 23:02

[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23)시(詩)와 클래식(4)

우리나라의 클래식, 첫 시 노래는 홍난파(1898~1941)의 <봉선화>이다. <봉선화, 1920>은 선율이 먼저 만들어 진 후 5년 뒤 김형준이 선율에 맞게 시를 지은 노래로서 이렇게 노래 선율이 먼저 작곡되고 그에 맞게 작시(作詩)하는 시 노래도 꽤 있다. 홍난파는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봉선화> 같은 애절한 선율이 떠올랐을 것 같다.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가 나온 지 100년 정도 지난 후다.우리나라에 등장한 초기 서양식 노래는 19세기 말 기독교의 전래에 동반된 찬송가이며 당시에는 찬송가나 외국민요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 시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봉선화>는 시와 음악이 하나 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예술가곡인 셈이다.<봉선화>는 일제의 박해가 심해 처음에는 은밀히 불려지다가 1932년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최명숙 노래로, 4년 후 <빅타레코드>에서는 박경희 노래로 음반에 실렸다. 그러나 <봉선화>가 대중적 사랑을 받는 애창곡이 된 계기는 일본 무사시노 음악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김천애가 1942년 무대에서 <봉선화>를 하도 애절하게 노래 한 후부터이다.<봉선화>와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다른 가곡들은 박태준(1900~1986)의 <동무생각, 1922>, 현제명(1902~1960)의 <고향생각, 1922>, 이흥렬(1907~1980)의 <내 고향, 1926> 등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은 모두 작곡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음악가들이었다. 홍난파는 바이올리니스트, 박태준은 교회음악, 현제명은 성악, 이흥렬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시에 잘 어울어지는 노래를 만들어 이들 노래는 지금도 애창되고 있는 것이다.1930년대의 시 노래로는 홍난파의 <사공의 노래, 1932>, 현제명의 <그 집 앞, 1933> 등이 있다. 채동선(1901~1953), 김성태(1910~), 조두남(1912~1984), 김동진(1913~2009) 등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서도 예술성 있는 시 노래가 많이 작곡되었으니 채동선은 정지용의 시 <그리워> <향수> 등으로 작곡하였고 김동진은 시 노래에 우리의 전통정서를 반영하고자 노력하였다. 윤이상도 <고풍의상> <달무리> 등에 우리의 전통음악 재료를 시 노래와 결합하고자 노력하였다.1940년대는 광복을 전후하여 전반에는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우리 시에 우리가락을 붙힌 예술가곡이 드물다. 1945년 광복 후에 정감 짙은 김소월 시가 나타나면서 억제되었던 창작욕구도 넘쳐나 시정 가득한 시 노래들이 많이 작곡되는 것이다.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에는 김동진의 <6·25의 노래> <행군의 아침>, 윤용하의 <민족의 노래> <보리밭> 등 전쟁의 상흔이 반영된 노래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1960년대 이후에는 현대음악에 관심 있는 작곡가들에 의해 현대어법의 시 노래가 작곡되기도 했다. 백병동(1936~)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1960> <남으로 창을 내겠소, 1961> <강강술래, 1968> 등이 현대음악어법의 시 노래이다.김동진의 <목련화>가 1970년대에 대중노래처럼 사랑을 받게 되고 한명희 시에 장일남이 곡(曲)을 붙인 <비목>이 한 TV드라마의 주제음악으로 선택되기도 하면서 우리나라의 시 노래, 예술가곡은 꽤 두터운 애호가층을 갖게 되는 것이다.시 노래의 짜임새는 음악은 같은 음악이 반복되는데 가사, 즉 시는 1절 2절이 다른 유절가곡(Strophic form)이 있고 시와 음악 모두 반복없이 길게 펼쳐지며 만들어지는 통작가곡(Through composed form)이 있다. 홍난파의 <봉선화>, 김성태의 <동심초> 같은 시 노래가 유절가곡이고 이은상 시에 김동진이 작곡한 <가고파> 같은 노래가 통작가곡의 시 노래이다. 두 형태가 부분부분 조합된 짜임새의 노래도 있다.시 노래는 시를 운율에 맞게 노래하면서 음(音)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음악그림이다. 예를 들어서 '해가 바다로 가라앉네' 하는 시어(詩語)이면 해는 높은 음, 바다는 낮은 음으로 상징화 한 뒤 선율이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내려가게 하며 해가 바다로 사라짐을 음으로 그리기도 하는 것이다. 문득 한 생각! 프랑스의 샹송이나 독일의 리트처럼 우리의 전통 시 노래인 민요, 잡가, 판소리 나 가곡, 시조, 가사를 현대 정서에 맞게 하여 온 국민의 사랑을 받게 할 수는 없을까? 김동진이 주창했던 '신창악'이나 지금 한켠에서 행해지고 있는 국악가곡, 국악가요가 그런 노력의 발현인가?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 전시·공연
  • 전북일보
  • 2010.03.30 23:02

[공연] 서재형-한아름 콤비의 신작 '토너먼트'

내놓는 작품마다 고정관념을 깬 참신한 시도로 주목받아온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 콤비가 신작을 무대에 올린다. 이들이 이끄는 극단 죽도록달린다는 내달 20-25일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연극 '토너먼트'를 공연한다. LG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 기념 기획공연의 하나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2004년 데뷔작 '죽도록 달린다'로 동아연극상과 올해의 예술상 등을 차지한 두 사람은 '왕세자 실종 사건', '릴레이' 등 독특한 형식의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해왔다. 2006년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은 '호야'와 '청춘 18대1' 등에서도 신선한 실험을 보여줬다. 이밖에 한아름 작가는 지난해 초연한 창작뮤지컬 '영웅'의 대본과 작사를 맡았으며, 서재형 연출은 새로 출범한 대학로공연예술센터의 예술감독으로 선임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토너먼트'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중반 서울 잠실 석촌호수 주변의 포장마차 촌을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좌절과 도전, 희망을 다룬다. 그동안 이들의 작품은 내용보다는 새로운 형식미로 화제를 모았지만, 이번에는 기본에 충실한 무대를 예고하고 있다. 도시 미관을 위한 단속과 철거가 한창인 포장마차 촌에서 아버지의 포장마차 일을 도우며 살아가는 삼형제에게 세상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무리한 등반을 고집하다 사고를 당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산악인 택진, 딸이 금메달의 꿈을 이뤄주길 바라는 펜싱 국가대표 출신의 형 택기, 집을 나가 불법 노점상 단속반원이 된 막내 택현이 펼치는 인생이라는 토너먼트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극의 중요한 요소로 펜싱이 사용되는 점도 눈에 띈다. 이 작품에서 펜싱은 우아하고 귀족적인 스포츠가 아닌, 좌절과 고난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돌파구의 의미를 가진다. 펜싱 선수였던 택기와 그의 딸 경아는 물론, 다리가 불편한 택진도 펜싱을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출연 민대식, 조한철, 오찬우, 이진희, 조성호, 김영아, 김진아, 김선표, 임철수, 박용진, 박수진, 이원, 김정윤, 박지희, 이경훈. 4만원.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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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30 23:02

[최동현의 명창이야기] (24)학식 높았던 명창 김연수(3)-판소리 수업

명창 김연수는 1967년 국악예술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창본 춘향가」라는 책 뒷부분에 '저자 연보'를 싣고 있다. 이는 김연수가 자신의 이력을 기록한 것이므로 일단은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김연수는 14세까지 9년간 한학을 수업하다가, 서울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귀향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창악에 뜻이 생겨 7년간 축음기를 통하여 독습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 번에 밝힌 것처럼 이 시기에 김연수는 고흥 지방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이 시기에 김연수가 독습을 했다고 한 것은 아마도 내세울 만한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그런데 김연수는 1935년(29세) 창악 전공의 뜻을 품고 당시 순천 군수 성정수씨 댁에 머물던 5명창의 한 사람인 유성준 선생을 찾아가 입문하고 <수궁가> 전편을 배웠으며, 그 해 7월 상경하여 '조성성악연구회'에 입회하고, 송만갑 문하에 들어가 <흥보가> 및 <심청가> 전편을 배웠다고 하였다. 김연수의 말을 따른다면, 김연수는 1935년 한 해 동안에 <수궁가> <흥보가> <심청가> 등 세 편을 다 배웠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물론 소리의 기초가 잘 닦여 있고, 또 오로지 판소리 학습만을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연수의 경우는 아무래도 과장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김연수가 순천에 머물던 유성준을 찾아가 <수궁가>를 배운 것은 분명하다. 작고한 정광수 명창도 김연수가 유성준으로부터 <수궁가>를 배운 것이 분명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런데 문제는 김연수가 <수궁가>를 끝까지 배우지 못하고 나왔다는 데 있다. 유성준은 성질이 괴팍하기로 수문난 소리꾼이었다. 그런데 김연수 또한 성격이 두리뭉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김연수는 한학에 신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유성준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판소리 사설에 오류가 많았다. 김연수는 틀린 사설이 나올 때마다 늘 잘못을 지적했다고 한다. 기분이 상한 유성준은 크게 화를 내고 김연수를 목침으로 내리쳐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김연수는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끝까지 배우지 못하고 유성준 곁을 떠났다고 한다. 실제로 김연수의 <수궁가>를 보면 유성준의 <수궁가>를 오롯이 전승하고 있는 임방울, 정광수, 강도근의 <수궁가>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부분들은 대부분 신재효의 <토별가>에서 차용하였다. 신재효의 사설은 정확하기는 하지만 음악이 딸려 있는 사설이 아니다. 따라서 만약 김연수가 유성준으로부터 <수궁가>를 다 배웠다면 구태여 음악도 없는 신재효 사설을 가져다가 음악을 만들어 넣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송만갑으로부터 배웠다는 <흥보가>와 <심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김연수가 스스로 밝힌 스승은 정정렬이 또 있다. 김연수는 1936년 정정렬 문하에 입문하여, 제1차는 1월에 충청북도에 있는 현암사에서 <적벽가> 전편을, 제2차는 7월에 내금강 표훈사에서 <춘향가> 전편을 배웠다고 하였다. 이 또한 한 달에 한 편씩을 배웠다는 것이니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특히 <적벽가>의 경우에는 절반 가량이 정권진이 부른 <적벽가>와 같다. 보성소리를 이어받은 것이다. 만약 정정렬로부터 <적벽가> 전편을 다 배웠다면, 앞 부분 절반을 <보성소리 적벽가>로 메꿀 이유가 없다. 명고수 김명환은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라는 책에서, 김연수가 정응민에게 와서 판소리를 배웠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소리를 열심히 배우지는 않고, 사냥에만 열심이었다고 했다. 판소리는 소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사설만을 베꼈다고 하였다.이런저런 사실로 보면 김연수가 연보에 쓴 내용은 다소 과장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김연수는 유성준, 송만갑, 정정렬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배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김연수의 판소리 스승은 이들 말고도 더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김연수가 이를 스스로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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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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