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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수필] 겨울에도 꽃은 핀다-김수현

“언니, 자?” 잠결에 동생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날따라 초저녁부터 일찍 잠이 든 터였다. 평소 방문이 닫혀 있으면 동생은 걷는 것도 조심하곤 했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뻗어 머리맡에 둔 안경을 찾을 때였다. 방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자는 거, 깨워서 미안해.” 미안하다면서도 동생은 자기 휴대전화를 불쑥 들이밀었다. 어느 유튜버가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텍스트로 와글와글 떠들었다. 안경을 쓰자 그제야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국회의사당이 휴대전화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끔 서울에 올라갔을 때 지하철 안에서나 보았던 곳이다. 국회의사당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대.” 그 말에 준비 없이 찬물에 몸을 담근 듯, 숨이 가빠졌다. 계엄령이라는 단어는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역사책에서 계엄령에 대해서 배웠다. 전라도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여순사건에 대해 조금 더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나의 삶과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계엄령과 가까운 것은 미얀마였다. 미얀마에서 온 유학생들은 ‘계엄령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유학생들은 자기 나라에 있었을 때,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군대가 오면 골목으로 흩어져 숨을 죽였다고 한다. 미얀마 상황을 동영상으로 볼 때면, 미얀마 유학생들은 울곤 했다. 젊은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군대로 가도록 법이 바뀌었으며, 미얀마로 돌아가면 출국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말로만 들었던 미얀마의 현실이, 한국에도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문득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처형될 사람들의 사진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같은 이불로 몸을 둘러싸고, 동생과 나는 작은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뚫고 집을 배회하는 것만 같았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었고, 닫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자들과 시민들도 따라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헬기가 날아다니고, 군대는 국회의사당의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일련의 과정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동안, 휴대전화는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렸다. 사람들은 메신저의 속도가 느려지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이 되지 않는 것을 두고 걱정했다. 외국계 메신저를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예술을 하거나 언론을 배우는 친구들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소식은 외국까지도 금방 퍼져, 외국의 친구들이 한국에서 얼른 몸을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연락이 왔다. 커뮤니티에는 도로에 탱크가 다닌다는데, 진짜냐고 묻는 글들이 올라왔고, 가상화폐 거래소는 접속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원화의 가치는 떨어졌고, 비행기표를 구매했던 사람들은 출국 금지 명령이 내려오지 않을지 걱정하였다. 나와 동생은 생필품을 구비할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으며, 과거 계엄령에 대해서 다시 찾아보곤 했다. 문득 얼마 전, 일터에서 앞 시간대 사람과 교대하며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 아침, 그는 평소와는 달리 상기된 표정이었다. 매장에 방문했던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 의견 충돌이 생긴 모양이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우리가 과하다고 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었잖아.” 그가 어릴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의 사촌들은 광주에 살고 있었고, 혼란한 광주에서 근처 지역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그의 고모는 사촌 누나 둘의 손을 잡고 밤에 산을 탔다. 그러나 군인들에게 발각이 되었고 고모와 큰 사촌 누나는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작은 사촌 누나는 중학생이었지만, 또래에 비해 작았다 한다. 군인은 그의 작은 사촌 누나에게 너는 어려서 살려 준다고 했다. 그의 작은 사촌 누나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면서 며칠을 걸어 그가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광주에 있던 그의 친척 중, 살아남은 사람은 그의 작은 사촌 누나 단 한 사람이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마 그녀는 머리의 묵은 흉을 만지작거렸으리라.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몇십 년 만에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계엄령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해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표현의 자유마저 걱정해야 할 정도로 민주주의는 퇴보하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덕담을 나누는 시점에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혼란이 와도 해는 매일 뜬다. 새해는 올 것이고, 1월 1일의 겨울 해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빨리 세상을 밝힐 것이다. 겨울 추위에 마냥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추울수록 뛰어야 몸이 더워지는 법이다. 이불에서 나와 책장에 있는 역사책을 꺼내 든다. 얇게 먼지가 쌓여 있다. 마른 휴지로 가만히 숨죽인 시간을 털어 낸다. 슬프고 화날 때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책의 여백에 오늘 날짜를 쓴다. 새해의 시작이 조금 울적하더라도 괜찮다. 서로 손을 잡고 따뜻하게 데운 방바닥에 앉아 옛날이야기, 지금 이야기 가릴 것 없이 도란도란 나누다 보면 지금보다 한결 가볍게 새해를 시작할 테니. 나뭇가지가 창밖에서 참 춥게 흔들린다. 쓸쓸하고 힘든 계절이다. 그래도 몇몇 나무는 꽃을 피운다. 대표적인 것이 동백이다. 제주에는 동백이 한창이라고 한다. 곧 이곳도 동백이 필 것이다. 겨울에도 꽃은 핀다. 그리고 몇 되지 않는 꽃에도 새들이 지저귀며 모일 것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5.01.01 18:36

[202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재주내기 한판 할래 - 김정숙

구름산 꼭대기 큰 바위굴에 도깨비 가족이 살고 있어요. 아빠도깨비는 예전에 씨름 잘하기로 유명했고요. 엄마도깨비는 재주꾼 '참'으로 뽑혔대요. 이 부부에게 태어난 도깨비 ‘더잘난’은 힘이 세고 재주가 뛰어났어요. 쓰러진 통나무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것도 식은 죽 먹기고요, 남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성대모사 재주가 보통이 넘었어요. “마을에 내려가 재주 내기 한판 할래!” 배운 재주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더잘난이 아빠를 졸랐어요. “더잘난, 마을은 위험해. 차도 많고. 더구나 도깨비 재주보다 센 휴대폰이 사람들 혼을 쏙 빼갔다는 소문이 있어.” “그럼, 휴대폰이랑 재주내기 할래!” 더잘난은 재주대결 할 생각을 하자 힘이 불끈 솟았어요. 휴대폰과 재주내기를 한다면 이길 자신이 있었거든요. 안개가 아랫마을의 높은 건물을 다 잡아 먹은 밤이었어요. 엄마아빠가 잠든 걸 확인한 더잘난이 쏜살같이 산 아래로 내려왔어요. 거리엔 자동차가 씽씽 달리고요, 사람들이 북적북적 했어요. 가게마다 색색의 전깃불을 켜고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었어요. 더잘난은 자동차 지붕에 올라 타 보기도 하고, 사람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어요. 더잘난이 장난을 치며 돌아다녀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검색하기 바빴어요. 아빠 말처럼 휴대폰의 재주에 사람들이 모두 홀린 것 같았어요. 더잘난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아이를 봤어요.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는 더잘난이 옆에 앉는 줄도 몰랐어요. “야, 나랑 재주내기 한 판 하자!” “싫어!” 아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짜증을 냈어요. 더잘난이 아이를 슬쩍 밀었어요. 아이가 휴대폰을 들고 땅바닥에 주저앉았어요. “헉!” 더잘난과 눈이 마주친 아이가 흠칫했어요. 더잘난이 혓바닥을 쏙 내밀었어요. 아이가 벌떡 일어나 뒷걸음을 쳤어요. “나랑 한 판 붙자!” “바빠. 학원가야 돼.” 더잘난이 아이의 다리를 덥석 잡았어요. 아이는 다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버둥댔어요. “재주 내기 하자!” “안 돼. 바쁘다고!” 아이가 신경질을 부리며 더잘난을 노려봤어요.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더잘난이 공중제비를 돌았어요. 아이의 입 꼬리가 잠깐 올라갔다가 금세 내려왔어요. “쳇 별거도 아니면서. 요건 손만 까닥하면 다 해주는데.” 아이가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어요. 아이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휴대폰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고, 춤도 추었어요. 휴대폰의 재주는 더잘난의 상상을 뛰어 넘었어요. 또 친구도 사귀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금방 소식을 전할 수 있대요. “이제 알겠니? 네 재주가 얼마나 시시한지.” 아이가 휴대폰을 더잘난 코앞에 들이댔어요. 더잘난은 휴대폰의 놀라운 재주에 정신이 아찔했어요. 엄마, 아빠보다 더 뛰어난 자신의 재주가 시시한 취급을 받아 속도 상했어요. 더잘난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노란차가 달려와 아이를 태우고 떠났어요. 더잘난은 휴대폰 재주에 밀리긴 했지만, 구름산으로 돌아가기 싫었어요.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고 좋아하는 사람을 꼭 만나고 싶었어요. 더잘난은 색색의 전기불이 켜져 있던 흥청거리에 다시 가보기로 했어요. 그 거리에 유난히 사람이 많았거든요. 너무 빠르게 달려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는지 몰라 이번에 천천히 걷기로 했어요. 더잘난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광장에 가서 발랑발랑 재주넘기를 했어요. 때마침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이 더잘난의 재주넘기를 보고 뛰어왔어요. “와, 도깨비다. 같이 사진 찍어요!” 젊은 여자 두 명이 더잘난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어깨가 으쓱해진 더잘난은 젊은 여자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여자들이 더잘난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더잘난은 사람사이에서 옴짝달싹도 못하고 사진만 찍혔어요. 이리저리 떠밀리고 더잘난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사람들 등쌀에 더잘난은 흥청거리가 싫어졌어요. 더잘난은 재주를 부리는 척 하다가 작은 골목으로 달아났어요.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구름산이 있는 산등성이 마을로 향했어요. 높은 빌딩이 많은 산 아래와 달리 산비탈 마을은 지붕이 낮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골목길 입구에 가로등이 켜 있고 허리가 굽은 사람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게 보였어요. 가까이 다가간 더잘난이 전봇대 뒤로 숨었어요. “비가 오려나. 무릎이 콕콕 쑤시네.” 볼이 홀쭉하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할머니가 중얼거렸어요. 할머니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 옆에 세워둔 수레를 잡고 일어서려고 했어요. 비틀거리던 할머니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어요. 더잘난이 가로등 아래로 달려갔어요. “할멈 괜찮아?” 더잘난이 할머니를 부축했어요. 허리를 편 할머니가 더잘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어요. “이게 누군 겨? 도깨비 아녀?” “헤헤. 할멈, 나 가짜 도깨비야.” 더잘난은 흥청거리 사람들이 생각나 거짓말을 했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내 눈은 못 속여. 넌 진짜 도깨비구먼. 이게 얼마만이여?” 할머니가 더잘난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어요. 반가워하는 할머니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더잘난이 생글거렸어요. “할멈, 나랑 재주내기 한판 어때?” “이 늙은이랑 재주내기를?” 할머니가 옷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며 웃었어요. 그때 할머니 목에 걸린 휴대폰이 윗옷 사이로 삐져나왔어요. 휴대폰을 발견한 더잘난이 뒷걸음을 쳤어요. “할멈도 있네.” 더잘난이 휴대폰을 가리켰어요. 할머니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조심스럽게 어루만졌어요. 할머니 손이 움직일 때마다 손등의 굵은 힘줄도 따라 꿈틀거렸어요. “늙은이가 전화할 때가 어디 있남? 혹시나 아들한테 연락 올까 가지고 다니는 거지. 한 달 요금이 쌀 한 말 값이 넘는구먼.” 할머니는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시 품에 넣었어요. “도깨비도 돌아 댕기는구만. 잘 있다고 전화 한번 할 것이지.” “할멈, 전화 기다려?” “좋은 전화 갖고 다니면 혹시나 연락 올 까 했지. 다 쓸모없는 짓이구먼. 자식 놈 목소리 한번 듣는 게 소원인데……. 전화가 안 와.” “그럼 할멈이 전화해.” “전화를 받아야지…….” 할머니가 말꼬리를 흐리자 더잘난도 함께 시무룩해졌어요. 만능 재주꾼인줄 알고 부러워했던 휴대폰이 할머니를 더 쓸쓸하게 하는 것 같았어요. “쳇, 재주가 많으면 뭐해? 할멈 마음도 모르면서.” 더잘난이 할머니의 앞섶을 노려봤어요.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언덕길로 향했어요. 어둠속으로 할머니가 사라지자 더잘난이 외쳤어요. “할멈, 기다려!” 순식간에 할머니를 따라잡은 더잘난이 수레를 언덕에 올려놓았어요. “호오, 힘이 장사네.” “맞지? 할멈. 내 재주 아직 쓸 만하지?” 할머니의 칭찬에 으쓱해진 더잘난은 공중제비를 휙휙 돌았어요. 그리고 휴대폰에서 보았던 아이돌가수 춤을 흉내 냈어요. 할머니가 앞니를 드러내고 웃었어요. “할멈, 정말 재밌어?” “암, 재밌고말고!” 할머니가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벙싯거렸어요. 재주를 실컷 뽐낸 더잘난이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어요. 할머니 얼굴이 어두워졌어요. 더잘난도 할머니랑 헤어지는 게 섭섭해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몇 발짝 걸었는데 할머니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더잘난이 뒤를 돌아봤어요. 할머니가 휴대폰을 들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어요. 더잘난이 살금살금 되돌아왔어요. “아들, 전화 좀 받아. 오늘따라 할 말이 많구먼.” 더잘난은 휴대폰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까 바짝 다가갔어요. 휴대폰의 신호음이 울렸어요. 신호가 끝나고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간다는 안내가 나왔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할머니가 휴대폰에 대고 말을 했어요. “아들, 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나도 괜찮아. 애미 안 놀랜다.” 음성사서함을 닫은 할머니가 다시 전화번호를 눌렀어요. 할머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 졌어요. 지켜보던 더잘난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어요. 실망한 할머니가 전화를 끊으려고 했어요. 그때, 더잘난이 움칠하더니 할머니 전화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어요. “엄니, 나야! 아들!” 할머니가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렸어요. 휴대폰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도깨비처럼 나타나도 안 놀랜다고 했잖아.” “정말 내 아들 맞는 겨?” “엄니, 아들 목소리도 잊었어?” “그럴 리가. 내 아들 목소리 맞다.” 할머니가 휴대폰을 쓰다듬었어요. 휴대폰 속에서 엄니, 엄니,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달래듯 가만가만 속삭였어요. “아가, 오늘 말이여. 도깨비를 봤다. 너도 어릴 때 도깨비불 본 적 있지. 비올 때 앞산에 도깨비불이 꽃처럼 피었구만. 기억 나냐? 너는 무섭다고 내 등 뒤로 숨었어. 고놈들이 어찌나 장난이 심하던지 앞마당까지 불을 켜고 왔지. 그런 밤은 넌 꼭 오줌을 쌌단다. 아가, 너도 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나도 괜찮다.” “알았어. 엄니, 내가 도깨비처럼 불쑥 나타나도 놀래지마.” 할머니 휴대폰 속에서 나온 더잘난이 구름산으로 쏜살같이 뛰어갔어요.

  • 문학·출판
  • 기고
  • 2025.01.01 18:35

[새해특집] 기후재난에 대비하는 전북의 기후 천사들

기후재난은 잔물결처럼 밀려왔다. 2019년 극심한 기상 이변으로 북극곰이 먹이를 찾으러 러시아 도시에 출몰했다. 해빙 면적이 급격히 줄면서 북극곰은 먹잇감을 사냥하지 못했고, 굶주린 곰이 도시 외곽까지 접근했다. 3년 전부터 시작된 꿀벌 집단 실종 현상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꿀벌이 약 400억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꿀벌 대체재를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2024년을 돌아보면 기상이변 현상은 더욱 심각했다. 여름이 유달리 길었던 탓에 9월 한가위 폭염을 경험해야 했고, 11월에는 불시개화와 폭설로 전국이 혼란스러웠다. 단순히 북극곰과 꿀벌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엔 기후 재난이 어느새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재난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면서 기후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친환경 소비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환경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기후감수성을 실천하는 전북의 기후 천사를 소개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새활용 전주 다시봄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에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쓸모를 잃어 버려지는 쓰레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설이 있다. 바로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이다. 센터는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도 있었지만, 쓸모가 없거나 버려지는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쓰임을 부여하는 새활용(up-cycling·업사이클링)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새활용, 즉 업사이클링은 ‘업그레이드’와 ‘리사이클링’의 합성어다. 버려지는 폐기물에 가치를 더하는 것으로 기존보다 더 좋은 품질, 더 높은 수준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2021년 야심 차게 문을 연 센터에서는 병뚜껑과 비닐봉지 등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양한 활용 사례를 소개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새활용 교육과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며 쓸모없어진 자원에 쓸모를 입히고, 지구 자원의 생산과 소비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기후감수성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실제 영화관 스크린과 영화관 좌석 원단 등을 활용해 각종 생활 소품을 만들고, 병뚜껑 등 플라스틱 소재를 이용해 열쇠고리를 제작한다. 또한 버려지는 식품 제조·폐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등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 등을 지원·육성하며 새활용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새활용센터 다시봄, 새로운 쓰임 고민전주시새활용센터는 지역에 자원순환 생태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새활용 교육사업 △공간 활성화 사업 △새활용 산업 지원 △연대 협력 사업 등에 힘쓰고 있다. 특히 쓸모를 잃은 자원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새활용 문화를 시민들이 흥미롭게 인지할 수 있도록 기획전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열린 기획전 RE: BORN에서는 자투리 가죽이나 부스러기 가죽을 활용해 완성한 설치작품을 전시해 선보였다. 폐기물에 불과했던 가죽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선보인 익숙한 이미지, 낯선 존재 전시회에서도 자개장의 예술적 가치를 보여줬다. 작가는 천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자개장에 환경파괴로 사라진 동식물의 이미지를 덧대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센터는 버려지는 폐기물이 모이면 새로운 쓰임을 찾을 수 있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방문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를 위해 1년 내내 미술 전시회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자원의 쓰임을 알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대중에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화두로 던지고, 새활용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센터 2층에는 지난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새활용 기업 4곳과 내부 평가를 통해 연장한 2개 기업 등 총 6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센터는 새활용 산업을 발전시켜 비즈니스로 확대하고자 입주한 스타트업 육성을 함께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네트워크 구축과 새활용 소재 찾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전주 늘미곡, 전주 제비마트, 완주 담아가게, 익산 게스트 지구인, 남원 비니루 없는 점빵, 군산 자주적 관람 등 전북지역 제로웨이스트 6개 업체 네트워크를 구성해 새활용 문화 확산 기반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내년에는 들깻묵 부산물을 활용해 생활 소품을 제작하는 지역 업체 조아지구와 교류해 특색 있는 새활용 방식을 제안해 나갈 예정이다. 전주시새활용센터 이은주 센터장 미니인터뷰 전주시새활용센터 이은주 센터장은 지난 추석 때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어쩌면 올해 추석이 가장 시원한 추석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 센터장은 문자를 받고 철렁하며 마음이 내려앉았다고 고백했다. 더는 지금보다 나아진 세상을 꿈꾸며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표 온도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여름철 강수량이 늘고, 벚꽃 개화 시기가 들쑥날쑥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때문에 기후감수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이상기후를 넘어 기후재난이라는 표현이 익숙해질 만큼 이상 기후 현상으로 평범한 일상이 크게 위협받고 있어요. 단순히 폭우와 폭설, 폭염 등에 따른 피해를 넘어서 기후 변화로 생겨난 인플레이션 심화까지 기후위기가 우리 삶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이제는 많은 분들이 체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기후감수성이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기후감수성은 기후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그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특히 소비와 비즈니스 공공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이 센터장은 공공의 모든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기후감수성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2025년부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쓰고 버린 현수막과 배너, 포스터 등을 폐기하지 않고 생활 소품 등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전주시와 논의 중에 있다. 그는 “자원순환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앞으로는 새활용이 자원순환 영역에서 최종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기후위기가 화두인 오늘날 사회에서 함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많은 이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센터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5.01.01 17:58

‘임진왜란,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 학술대회 개최

김제시가 주최하고 김제문화원과 (사)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이 주관한 ‘임진왜란,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 학술대회가 지난 27일 김제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첫 발표자로 나선 하태규 교수(전북대학교)는 “임진왜란 초기 웅치전투와 이치전투에서 3개월간 버티어 줌으로서 호남에서 군량미와 물자를 공급하려던 일본군의 전략을 와해시켰다”며 “웅치전투, 이치전투, 안덕원전투를 하나로 묶어서 기념사업을 전개하는게 옳은 방식”이라고 밝혔다. 노영구 교수(국방대학교)는 “웅치전투에서 험한 산악지대에서 목책과 장애물을 설치하고 활과 화살로 일본군의 조총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전술을 김제군수 정담이 창안하고 실제 웅치전투에서 전술적으로 사용하므로서 일본군과 웅치전투에서 화차 등 화기 사격과 궁시의 근접 사격으로 일본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욱 교수(국립순천대학교)는 “난중잡록에 정담군수가 밝힌 ‘나의 뜻은 결정되었으니 그대들은 내가 하는 것을 보라’는 각오를 인용하면서 정담군수가 관군 징병과 의병 규합을 위하여 앞장 섰고 김제사족들의 지원을 받아 의병모집이 가능했다”고 했다. 송화섭교수(중앙대학교)는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방어선인 웅치전투에서 가장 큰 전공과 전술 성과는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들이었음이 이번 학술대회에서 밝혀졌다”며 “앞으로 김제시와 김제문화원이 적극적으로 정담군수와 김제의병의 공적으로 김제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2023년 12월 30일 임진왜란 웅치전투 전적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고시했다. 웅치전투는 1592년 6월 말경부터 3개월간 진안 곰티재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서 전라도 관군과 의병들이 벌인 전투로 초기 호남방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전투다.

  • 문화일반
  • 이강모
  • 2024.12.30 11:42

[안성덕 시인의 '풍경']돌아본다는 것

어둑어둑 하루가 저뭅니다. 어질어질 또 한 해가 갑니다. 하루, 한 주, 한 달은 그닥 빠르지 않건만, 한 해 한 해 쏜살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시절엔 사십 리 밖 신태인역 완행열차가 칙칙폭폭 느려터졌었지요. 기적도 없이 또 한 해의 종착역입니다. 칸 칸 대나무 마디 같은 세월을 뒷전으로 밀어내야 할 시간입니다. 발자국은 바른지, 길 구불거리지는 않았는지 노을 스러지기 전에 돌아봐야겠습니다. 멈춘 듯 흘러가는 저 강물, 홍안의 소년이 어느새 강변 억새처럼 머리가 세었습니다. 돌아본다는 것, 아침에 뜬 해를 저녁에 다시 띄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흘러간 물로 물방아를 돌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나를 떠나 나를 보자는 말입니다. 소싯적 연살을 깎으며 보았습니다. 대나무 마디 속에 고막 같은 흰 막이 있었습니다. 깜깜한 적막 밀려오기 전에 내 안의 소리 들어야겠습니다. 아직 희미한 내 발등 보일 때 발자국과 길을 돌아보겠습니다. 서산을 넘던 해도 잠시 가빴던 날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바다로 가는 강물도 잠시 한숨 고릅니다. 허공에 발자국 찍으며 철새 두엇 날아가네요. 한 해의 마디를 묶는 것은, 발자국 잘못 찍었거든 행여 길 잘못 들었거든 새해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일 겁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4.12.28 08:30

[2024 전북문화계 결산]⑤종교-종단 뛰어넘는 화합력, 종교의 대중화에 노력

2024년 한 해 전북 종교계는 종단을 뛰어넘는 화합의 물결이 눈에 띄었다. 불교는 법등축제를, 원불교는 개교 109주년 대각개교절 봉축 행사를 열어 종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꾀했다. 또 원불교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본사 금산사는 각각 왕산 성도종 종법사, 화평스님을 새 수장으로 맞이했다. 특히 온 국민을 놀라게 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맞서 전북의 5대 종단(불교·천주교·천도교·원불교·개신교)이 힘을 모으기도 했다. △다양한 축제로 종교의 대중화 올해 전북에서는 종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위한 다양한 축제가 개최되면서 화합의 장이 만들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김제 금산사는 지난 5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봉축법요식을 올리며, 단순 종교행사가 아닌 지역 전통문화유산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며 민족 동질성의 보존과 전승을 꾀했다. 원불교 전북교구는 지난 4월 109년 대각개교절 봉축 행사를 열고 법연 관계의 소중함을 전파하기도 했다. △원불교,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본사 금산사의 새 수장 올해 원불교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본사 금산사는 새 지도자를 맞이했다. 원불교 제16대 왕산 성도종 종법사의 취임식인 대사식이 지난 11월 3일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영모전 광장에서 봉행됐다. 대사식은 제15대 전산 김주원 종법사가 퇴임하고, 왕산 종법사가 공식 취임하는 자리였다. 대사식은 원불교 주법인 종법사 직위를 공식적으로 넘겨주는 교단의 행사로 지난 1994년 대산 김대거 종법사가 좌산 이광정 종법사에게 직위를 처음 넘긴 이래 교단 역사상 4번째 있는 일이었다. 지난 4월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본사 금산사 주지에 화평스님이 선출돼 4년의 임기를 채우게 됐다. 화평스님은 1988년 월주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계를 수지하고, 1993년 일타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어 1998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하고, 2001년 원광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7년 불교전문강당과 2012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졸업했다. △종단을 뛰어넘은 평화를 위한 ‘목소리’ 전북의 5대 종단(불교·천주교·천도교·원불교·개신교)은 지난 10일 평화를 염원하는 목소리를 합쳐, 시국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전주고백교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이병호 천주교 원로주교를 비롯해 법만 스님, 이선조 원불교 원로교무,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등 50여 명의 종교인들이 참석해 온 국민을 놀라게 한 12·3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 종교
  • 전현아
  • 2024.12.26 15:45

초연한 심경들의 낯섦, 김환생 시집 '낙일' 출간

김환생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낙일(落日>(월간순수문학)을 펴냈다.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순수서정시를 쓰는 김 시인은 창조적 관점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시편으로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다. 시를 통해 인간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는 시인만의 철학이기도 하다. “못 이룬/사랑이다//죽어서도 못 지울/님의 눈이다”(‘낙일’ 전문) “이 세상/슬픈 짐을/훌훌 벗어버리면/생전 무거운 육신/얼마나 가벼우리//때가 이르면/이승도/그의 업도 모두 거두고/힘든 영혼 또한/가까이 부르시련만//오늘도 아니 부르신다/내게 맡겨주실 일이/아직 남아 있는가 보다.”(‘령’전문) 허무와 무상을 극복한 초연한 심경을 표현한 김 시인의 시들은 정직하고 강직해 시인만의 뚜렷한 철학이 묻어난다. 시인이 쓴 ‘낙일’은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죽음과 절망을 극복하고 동백꽃으로 윤회하는 승화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한다. 동백꽃은 어둡고 음침한 죽음의 계곡에서 붉은 생명으로 부활하는 이미지로, 신성한 붉은 생명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해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소재호 시인은 발문을 통해 “시를 쓸수록 내가 쓴 시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꼭 이렇게 쓰고 싶었음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시를 쓰고 있다”며 “그러니 이 얼마나 뻔뻔한 시인인가. 그렇지만 그런 뻔뻔함이 없다면 어떻게 한 줄의 글이라도 쓸 수 있겠는가 싶다”고 서술한다. 1997년 월간순수문학으로 등단한 김환생 시인은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장, 전주기전중학교장,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장, 석정문학관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전북문인협회, 전주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국제PEN전북지역위원회, 교원문학회, 미래문학, 월간순수문학, 계간별빛문학 등의 회원이다. 그동안 펴낸 시집으로는 <만경강>과 <노송>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2.25 15:37

문화계 단비, 2024 천인갈채상 시상식 성황리 개최

(사)천년전주사랑모임(이사장 김병진)은 지난 23일 더뮤지션에서 ‘2024 천인갈채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천인갈채상’은 전북 문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25세 이상 45세 이하 예술인을 격려하기 위한 상으로 시민들이 상금을 모으고 직접 투표해 수상자를 정한다. 이날 시상식에는 천인갈채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순하 대북연주가(44)와 장우석 한국화가(43)를 비롯해 서거석 교육감 등이 참석했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00만원이 각각 수여됐다. 이순하 대북연주가는 “천인갈채상이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통해 지역 예술가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연주 활동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장우석 한국화가는 “예술가로 살며 매일을 되묻는다. 잘하고 있는 건지 그 하나로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간다”며 “묵묵히 걷다 본 많은 분들이 뽑아주신 값진 상을 받게 되었다. 예술가 모든 분들의 오늘이 저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 모든 오늘을 함께 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김병진 이사장은 “수상한 두 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큰 문화예술인으로 성장해 나가시길 빈다”며 “모금이 쉽지 않았지만 좋은 취지의 천인갈채상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4.12.25 15:30

여산 이영자 시인,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펴내

“사십 세 이후로/ 인상은 자신이 만들어 간다기에/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내./ 더 온화하고 후덕하길 소망하며,/ 인간사 살다 보면 내 뜻대로만 되던가,/ 거울에 비친 얼굴이 마음에 안 차/ 상냥한 표정을 지어보려 애쓰지만,/ 내면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야/ 사랑이 샘물처럼 흘러넘쳐서/ 편안한 아름다움이 생기리니,/ 고운 인물이 되려면/ 밝고 맑은 마음으로 자주 웃으며,/ 덕담을 잘해야 하리,”(시 ‘거울을 보며’ 전문) 수필가이자 시인인 이영자 작가가 시집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아트매니저)을 펴냈다. 책은 6부로 구성돼 약 90편의 시를 품고 있다. 정휘립 문학평론가는 평설을 통해 “이여산 시인이 구축한 시적 영역은 천진난만한 시간의 고운 색채가 수더분하다”며 “그가 장착한 시적 의장(意匠)은 지난날의 회억에 몰입하는 깊이만큼, 현재의 인간적 자아를 조성하고 확립하는 쪽으로 초점의 조리개를 조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시인의 작품 세계는 차분한 그리움의 일관적인 주제를 지닌다”며 “그는 신경병적인 감성 체계의 교란이나 속류적인 사회 현상의 모순을 향한 울분 등을 뒤로 물리치면서, 나름의 곡한 이생 자세를 견지해 본인만의 고유한 인생관으로 나름의 개성을 확보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다”고 강조했다. 이 시인은 전북 익산시 여산면 출생으로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해, 초등교사로 43년간 봉직 후 정년 퇴임했다. 그는 2000년 <지구문학>과 2019년 <대한문학>으로 각각 수필과 시 부문에 등단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아름다운 인연>, <하얀 꽃그늘 아래 누워서>, <향수>, <마음 밭 잡초를 뽑으며>, 시집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등이 있다. 현재 그는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주문인협회, 여류문학회 등의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2.25 15:13

시적 감수성 극대화…복효근 디카시집 '사랑 혹은 거짓말'

디카시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복효근 시인이 두 번째 디카시집 <사랑 혹은 거짓말>(도서출판 작가)을 출간했다. 디카시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창작 원리가 창안되면서 하나의 예술적 표현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디지털카메라에 시가 조합되어 생긴 신조어다. 복효근 시인은 시적 모티브를 품고 있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이미지에 5행 이내의 짧은 언어를 융합시켜 시적 감수성을 극대화했다. 총 60편의 디카시가 수록된 디카시집은 사진에서 촉발된 상상으로 압축된 서사를 형상화해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장미꽃잎을 먹은 자벌레는 꽃잎 같은 날개가 돋아 나방이 되었지/책갈피에 눌린 마른 꽃잎 편지에 붙여 보낸 날들이 있었어/그 나방이는 어디로 날아갔을까”(‘꽃잎을 탓하다’ 전문) “슬픔에 겨워 누군가를 피 흘리게 하고 싶을 때 꽃은 뾰족하다/폭발음이 나지 않게/그 모든 것을 눈물로 바꿀 때 꽃은 꽃이 된다/꽃인 네가 그러하듯이”(‘꽃의 감정’전문) 디카시 창작 1세대인 시인 복효근은 이번 시집에서는 전보다 더 유려한 비유와 압축된 서사로 깊은 울림을 준다. 실제 영화 명량의 영화감독 김한민 감독은 책 서평에서“복효근 시인의 디카시를 읽으면 눈이 참 맑아졌다”며 “시인이 순간 포착한 디카시는 환상적이면서도 아이러니컬하고 극적인 시나리오를 연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지와 언술 사이에 참으로 매혹적인 메타포가 출렁인다”며 “시인과 함께 ‘아름다운 죄 하나 짓고 싶은’ 섬진강의 푸른밤을 거닐어보고 싶어진다”고 평했다. 1991년 등단 이후 10여 권의 시집을 펴낸 복효근 시인은 신석정문학상, 박재삼 문학상, 한국작가상, 디카시 작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동안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마늘 촛불>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4.12.25 14:41

[2024 전북문화계 결산]④문학·출판- "비교적 평이하게 지나간 지역 문학계, 아쉬움도 많아"

2024 전북 문학계는 비교적 커다란 사건 사고 없이 비교적 평이한 한 해를 보낸 만큼, 적지 않은 아쉬움도 남겼다. 올해 상반기에는 앞으로 3년간 전북 문학계를 이끌 전북문인협회의 회장 선거로 문인들의 뜨거운 논의가 이뤄졌다. 이후에는 지역 곳곳에 분포한 도내 문학관과 관련한 크고 작은 이슈로 전북 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반기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과 함께 지역 문학인들도 크고 작은 문학상 수상 선정되기도 해 지역 문학의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역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해 성과를 냈다는 소식에 비해 지역 문학계를 대표할 만한 혹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새로운 수장 맞이한 전북문인협회 2023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전북 문학계는 제33대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이하 전북문인협회) 선거로 뜨거웠다. 제33대 전북문인협회 회장 선거 후보자로 지난해 12월 조미애 표현문학회 회장과 백봉기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이 최종 등록해, 선거는 2파전으로 치러졌다. 특히 이번 전북문인협회 회장 선거는 과거 직선제 투표와 달리 대의원제로 진행돼,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 크고 작은 잡음도 함께했다. 실제 이번 회장 선거를 앞두고 해외여행에 나선 남원문인협회장의 실수로 대의원 추천 기간을 넘겨 소중한 투표권을 잃게 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올해 1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백봉기 신임회장이 74표 중 49표를 얻어 66% 득표율로 당선돼 3년간의 임기를 채우게 됐으며, 백 회장은 임기내 ‘전북문학관 건립과 공간 활용 극대화’, ‘건지산 문학의숲 조성’, ‘문학 메세나운동 전개’ 등의 공약을 실천할 것이라 밝혔다. △문학인들의 사랑방 ‘문학관’의 제 역할은 글쎄 지난해부터 많은 문인의 관심을 받은 ‘전북문학예술인회관’이 이달 초 착공식을 개최하고,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다. 과거 전북문학관의 위치에 들어설 전북문학예술인회관은 지난 2020년부터 신축 계획을 추진했으며, 총사업비 157억 원이 투입돼 부지면적 6225㎡, 연면적 2958㎡ 규모로 건립될 예정으로 많은 도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곳이다. 하지만 행정적 이유와 관련한 여러 문제로 당초 지난해 5월에 착공해 올해 12월 준공을 목표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며, 많은 문인의 볼멘소리를 사기도 했었다. 또 올해 초 위탁 운영자가 바뀐 최명희 문학관 역시 인력 충원이 수개월째 되지 않고, 지난해 90건 넘게 행사가 진행된 것과 비교해 최근까지 공모 당시 계획했던 사업을 단 한 건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부실 운영을 지적받기도 했다. △지역 문인들이 일궈낸 크고 작은 성과 전북문인협회는 제35회 전북문학상 수상자로 이소애 시인, 양영아 수필가, 이정숙 수필가, 김기찬 시인, 표순복 시인 등 5명의 작가를 선정해 시상했다. 6월 바다의 날을 기념하고 해양문학에 대한 관심을 드높이기 위한 제18회 바다문학상 대상에는 박홍재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기우 작가의 의 희곡집 <이름을 부르는 시간>(평민사·2023)이 2024년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됐다. 문학나눔 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국내 문학 창작 여건 조성과 출판시장 활성화 견인을 위해 선정해 오고 있는 것으로, 올해 발표된 책 총 373권 중 희곡은 3권밖에 포함되지 않아 지역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이경옥 아동문학가는 비영리 공익법인 아이코리아가 주최하는 '한국안데르센상 작품공모‘에서 창작동화 부문 최우수상에 이름을 올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4.12.25 14:3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의 서랍에 넣어놓은 저녁이 궁금합니다. 꼬마전구 같은 요정들 몇이 모여 달그락달그락 저녁을 먹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서랍을 열 수 없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열어 봅니다. 말들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눈빛으로 하는 말이 흘러옵니다. 거기 그렇게 있어 주기만 해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묻고 또 묻습니다.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새벽에 들은 노래’ 중). 넋은 산 사람 안에 있어요. 마음의 머릴 빗어주고 몸의 신발끈을 묶어주죠. 우리가 죽어도 살아 있는 초험적인 것이라 하죠. “반쯤 죽은 넋”은 무엇일까요. 슬픔 마르기 전에 비탄에 젖거나, 희망이 잘려나가 살고픈 뿌리를 잃는 것이겠죠. 죽어 이승으로 가지 못하고 거대한 학살터를 떠돌고 있는 것이겠죠.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요.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요.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요.”(소설 ‘소년이 온다’ 중) 혀는 “가슴과 가슴을 연결하는 금실인 언어”를 내죠. 먹고 노래를 불러요. 내밀어 장난을 치거나, 키스를 합니다. 폭력 속에 아름다움을 굴리기도 해요. 이렇게 혀를 쓰고 쓰다 보면 녹아 없어지겠죠. 이제 입술을 열면 침묵의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 햇볕 가득한 곳에서 침묵이 시간을 낳아 기르고 있을 겁니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파란 돌’ 중). “눈동자처럼 고요”한 파란 돌은 영혼이겠죠. 그걸 주우려면 “다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작가의 말처럼 “질문의 마지막 겹에 사랑”을 놓아야겠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요.” “죽은 자는 눈이고 산 자는 사람이라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라는 게 제 시에 있어요. 죽은 자는 눈으로 이 세상에 오죠. 산 자는 눈이 좋아 우두커니 서 있어요.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이죠.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낮인지 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어스름입니다. 번져가는 그 먹물 속에 서있는 걸 좋아합니다. 죽어가는 낮을 태어나는 밤이 놓아주지 않아서죠. 밥과 김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사별할까요. 지나가버린 혼은 우주 어느 의자에 앉아 있을까요. 밥을 먹는 나에게서 김이 나가는 걸 느끼는 존재가 있겠지요. 그래도 밥을 먹고,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친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소리를 내는 순간”(소설 ‘내 여자의 열매’ 중)을 껴안겠습니다.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4.12.25 14:18

[2024 전북문화계 결산] ➂축제-화려한 성과 뒤 조직 운영 그림자 커

올해 치른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와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모두 화려한 성과는 거뒀지만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조직 운영의 그림자가 컸다. 전주독서대전과 한지축제, 전주비빔밥축제 등 시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된 전주형 통합축제는 정체성 없는 백화점식 축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북예술인들의 축제인 전라예술제 역시 짧은 준비 기간으로 지역 문화‧예술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프로그램 안정화된 영화·소리축제…지역 밀착과 조직 운영 물음표 극장을 찾지 않는 시대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국민 10명 중 9명이 구독하는 시대에서 전주국제영화제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분투했다. 영화제를 찾은 방문객들의 특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고민했고, 답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돋보였다. 올해 영화제는 한국영화 1513편, 국제경쟁 81개국 747편의 작품이 출품되며 역대 최다 출품 기록을 경신하는 쾌거를 이뤘다. 총 6개 극장 22개관에서 43개국 232편의 작품을 590회 상영했고, 매진 회차는 590회 중 381회로 상영 회차의 64.6%가 매진을 기록했다. 세계적인 거장 차이밍량 감독이 23년 만에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해 주목을 받았다. 미야케 쇼, 허진호, 김한민 감독을 비롯해 변우석, 유지태, 데라켐밸 배우까지 2400여명의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제를 찾아 관객들과 소통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23년 만에 축제 개최시기를 가을에서 여름으로 옮기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공연예술축제로 변화를 추구해온 소리축제가 전통예술 기반의 공연물은 극장에서, 대충 진화적인 공연은 야외무대에서 펼침으로써 예술성과 축제성을 두루 갖춘 여름축제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전북에 뿌리를 둔 농악과 판소리를 소재로 한 개·폐막 공연을 비롯해 판소리와 창극, 음악극, 전통풍물굿까지 닷새간 80개 프로그램에 106회 공연을 선보였다. 올해는 축제 기간을 열흘에서 닷새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객석 점유율이 84.2%로 지난해보다 14%P 올라 예술성과 흥행성을 두루 잡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처럼 두 축제 모두 안정기에 접어든 만큼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개최하는 축제인 만큼 지역과의 밀착과 조직 운영 내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소리축제는 23년 만에 축제 개최시기를 변경했지만,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없이 서둘러 개최시기를 변경해 잡음이 일었다. 영화제 역시 행사를 두 달여 앞두고 촉발된 내부 분열로 파행을 겪어야 했다. 영화제는 홍보팀장 없이 치러졌고, 홍보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불편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몫이 돼버렸다. △지역축제, 신선한 기획력과 내실 있는 프로그램 필요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북지역 가장 큰 예술축제인 전라예술제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지만 분과별 프로그램을 나열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새로운 시도나 기획력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평가다.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전주형 통합축제 ‘전주페스타’는 투입된 예산에 비해 축제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살리지 못하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전주가 '맛과 멋'의 고장으로 불리는 만큼, 지역축제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할 수 있는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할 것이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4.12.23 15:56

이어서 개인전 '시침핀'…서학동사진미술관 29일까지

미술가 이어서의 두번째 개인전이 29일까지 서학동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시침핀’을 테마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황동으로 제작된 시침핀과 삼베, 추포 등의 섬유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일상 속 바느질에서 우연히 시침핀의 역할과 존재감을 생각하다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시침핀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 옷감을 마주대고 바느질을 해본 사람들은 시침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밖에 없다. 이에 작가는 시침핀에 존재감을 부여해주고 예(禮)를 갖추어 작품화했다. 주인공이 완성되기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에서 시침핀 자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특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무심하게 누구에게나 선뜻 내 줄 수 있는 시침핀들, 그것들의 이야기”라며 “길고 긴 시간 동안 내가 지나친 그 수많은 나의 인생의 시침핀들은 어딘가로 흘려버리고 다시 시작점으로 주섬주섬 지겨운 손길을 옮기고 있는 걸까”라고 회상한다. 국민대 예술대학 입체미술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작가는 지난 2022년 ‘내가 세운 나뭇가지 하나’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가졌다. 한편, 서학동사진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끝으로 30일부터 내년 1월 20일까지 3주간 휴관한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4.12.22 16:36

전주 서고산성, 전북자치도 문화유산 지정

전주 황방산(서고산) 일대를 중심으로 전주 서부권의 방어 기능을 담당했던 전주 서고산성이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전북자치도는 지난 20일 전주 서고산성을 전북자치도 문화유산(기념물)으로 지정 고시했다. 서고산성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처음으로 기록됐고, 지난 1970년대부터 2017년까지 3차례의 지표조사를 통해 개략적인 현황이 파악됐다. 전북자치도와 전주시는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차례의 시굴·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축조된 토축 성벽과 통일신라시대에 개축된 석축 성벽 그리고 삼국시대~후백제 건물지 등을 확인했다. 삼국시대 토축 성벽의 경우 산사면을 L자형 또는 계단식으로 굴착한 뒤 점토와 석재, 모래 등을 섞어 판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백제의 토축 성벽을 일부 절토한 뒤 석축으로 개축한 흔적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서고산성은 이러한 시굴·발굴조사를 통해 성곽의 축조 방법과 변천 과정에 대한 전모가 드러나며 시대성을 담은 대표 산성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시는 서고산성이 전북자치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유적 훼손 방지, 경관 보존을 위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구 고시 절차를 이행할 계획이다.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면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 발굴조사, 산성 정비·복원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은영 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서고산성은 발굴조사를 통해 역사적 가치가 증명된 전주의 중요 유산"이라며 "향후 전주 서고산성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정비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4.12.22 16:29

[2024 전북문화계 결산-②전시·공연] 도민과 마주한 문화행사 늘었지만 퀄리티는 '글쎄'

전북 무대예술과 전시 분야는 작지만 큰 울림이 있는 성과를 보였다. 올해 문화계 예산이 대폭 삭감되며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더욱 어렵게 한 해를 시작했지만, 음악 장르별·내용별로 사회적 메시지 등을 전달하는 새로운 시도들은 더욱 다채로웠다. 특히 올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원년의 해를 맞이해 이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과 전시도 끊임없이 선보이며, 예술활동을 통한 참신한 시도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도민들과 마주할 수 있는 문화 행사의 양은 늘어났지만, 그에 비해 공연과 전시의 질은 떨어졌다는 평가를 남겼다. △다양한 시도 선보인 공연계 움직임 비해 대작 없어 ‘아쉽’ 올해 초 새롭게 수장이 바뀐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은 정통 창극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안고 야심 차게 창극단 정기공연 ‘춘향’을 준비해 공연을 올렸다. 공연은 국악원의 관현악단, 무용단이 함께한 작품으로, 지난 1986년 문을 열어 올해 38주년을 맞은 국악원과 함께 성장해 온 창극단, 관현악단, 무용단의 연륜과 공력을 마주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극의 전개가 지루했다는 평과 함께 정통 창극의 면모가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남겼다. 국립민속국악원은 기획 공연 '고택, 고백 Go Back', '달리는 국악무대', 상설 공연 '광한루원 음악회' 등을 통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악 환경을 조성하고 저변을 확대했다. 또 해외 및 국내 유관기관과의 교류 및 협력을 추진하며,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국악치유 체험프로그램과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국악 체험교실을 운영하는 등 K-문화관광 거점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예비도시로 선정된 ‘전주’의 본도시 지정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전주문화재단의 움직임 역시 눈에 띄었다. 실제 이들은 ‘세계거리축제<전주예술난장>’, 전통혼례 재현식, ‘K-뮤지컬 마당창극’ 등 문화관광을 견인할 굵직한 사업을 추진 시민과 함께 문화예술의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문화 플랫폼을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올해로 지천명을 맞이한 국악 최고 명인·명창 등용문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지난해 처음 도입한 블라인드 심사를 폐지하고, 기존 남성 참가자만 출전할 수 있었던 ‘활쏘기부’ 부문에 여성들의 출사표도 받아들이는 등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더욱 발전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모습을 보였다. △지역문화예술 활성화와 도민들의 문화쉼터 역할 ‘톡톡’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올 한 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특별한 사업을 기획해 도민문화 향유 기회 확대와 문화 복지 실현에 힘썼다. 실제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에바 알머슨 특별전:에바 알머슨 Andando(안단도)’ 기획과 더불어 사비나미술관 기획으로 진행된 ‘Snap, Share, Save 우리에게 남을 것은 사람이야’ 전시’ 등을 다양하게 올렸다. 도민들의 문화쉼터로 빠질 수 없는 전북도립미술관 역시 올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부터 지역 미술계의 많은 관심을 모은 '이건희 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의 막이 올랐기 때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추진하는 이건희컬렉션 지역순회전의 열 번째 전시로 한국 근현대 시기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12.22 14:20

[안성덕 시인의 '풍경']이웃

어느 동 무슨 아파트가 부의 가늠자가 되었습니다. 가구당 보유자산의 75%가 넘는다는 아파트가 눈가는 데마다 우뚝합니다. 주거 형태별 비율도 50%를 훨씬 넘는다는데, 언제부터인지 이웃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은 지루함을 견디게 하고 공간을 넓게 보이려는 이유라지만, 엉거주춤 이웃 간의 어색한 시선을 잠시 맡아주기도 합니다. 큼큼거리며 보이지도 않는 하늘 올려보지 말고, 풀리지도 않은 신발 끈 내려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게요, 아침이면 담 너머로 안부를 묻고 저녁이면 울 너머로 음식을 나누던 이웃들은 죄다 어디로 갔을까요. 아침 8시 엘리베이터 안이었지요. 삐삐 삐삐, 중량 초과로 문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12층, 엄마와 3학년쯤 아이가 비집고 들어 온 뒤였습니다. 난감한 두 사람 한발 물러났다가 다시 들어오는데 또다시 경고음입니다. 윗집 아랫집 간밤 늦은 퇴근에 아직 천근만근인 눈꺼풀 때문인 듯싶습니다. 아니 꼬박꼬박 아침밥 챙겨 먹는 내 탓인가 생각하는데, 말없이 15층 할아버지가 내렸습니다. 17층 아가씨와 14층 젊은 아빠는 벽으로 바짝 물러섰고요. 빈틈없던 가운데에 자리가 생기고, 엄마와 아이가 들어섰지요. “고맙습니다”, 고마운 이웃이 내리고 고마워하는 이웃을 싣고 엘리베이터는 나비처럼 사뿐 내려앉았지요.

  • 문화일반
  • 기고
  • 2024.12.21 08:00

제41회 전북연극상·2024 엘림연극상·우진청년연극상 수상자 선정

제41회 전북연극상 대상에 공연예술창작소 극단 데미샘의 편성후 씨, 2024년도 엘림연극상에 창작극회 엄미리 씨, 우진청년연극상에 창작극회 류가연 씨가 이름을 올렸다. 전북연극상은 매년 향토 연극 발전에 이바지한 연극인을 위해, 엘림연극상은 지난 2018년 엘림건설 엔지니어링 후원으로 제정됐다. 각각 상패와 상금 100만 원을 수여한다. 전북연극상을 받은 편성후 씨는 지난 1994년 연기활동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0여 년 동안 선도적인 연극인으로 전북연극의 위상과 부흥을 견인하며, 수많은 공연의 배우로서 또는 공연조력자로서 다재다능한 기량으로 전북연극발전을 위해 이바지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북연기자상은 홍영근(극단 작은소리와 동작)·이재현(공연예술창작소 극단 데미셈)·최욱로(전주시립극단)·김소연(창작극회) 씨, 신인연기상은 최애란(완주연극협회) 씨에게 돌아갔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5인에게는 지난 6월 제27회 박동화연극상의 대상을 받은 이도현 수상자가 후원한 시상금 100만 원(각 20만 원)이 수여될 예정이다. 엘림연극상을 받은 엄미리 씨는 창작극회 단원으로 연극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올해 극단 작은 소동 2024년도 지역대표예술단체 육성지원사업에 ‘이웃집 쌀롱’, ‘할머니의 레시피’, ‘무와의 꿈’과 극단 무대지기 ‘959-7번지’ 작품에서 배우로 참여해 작품을 빛냈다는 평을 받았다. 또 지난해 신설된 만 45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우진청년연극상’은 류가연 씨(창작극회)가 받았으며, 상패와 상금 100만 원이 전달된다. 한편 제41회 전북연극상, 2024년도 엘림연극상, 우진청년연극상 시상식은 오는 24일 오후 3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12.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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