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새벽을 가르고 붉게 솟아오르는 해돋이가 힘차고 웅장하다면 서족 하늘을 신비스럽게 낙조(落照)로 물들이는 해넘이는 평온하면서도 애잔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해돋이가 동적이고 남성적이라면 해넘이는 정적이고 여성적이다.
뜨는 해는 그 모습이 힘차다. 그래서 뜨는 해를 보면 누구나 함성을 토해 내지만 지는 해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해돋이가 북소리처럼 온 세상을 깨운다면 해넘이는 가야금소리처럼 가느다란 현을 타고 세상을 잠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넘이라면 이 고장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서해안의 풍광을 꼽을라치면 낙조가 언제나 첫손에 꼽히고, 김제의 망해사, 변산과 격포, 그리고 선운산의 낙조대가 빠질 수 없을것이다.
그중 격포 채석강의 낙조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채석강의 수천 수만 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기묘한 바위절벽과 깍아지른 듯한 단애(斷崖)는 그야말로 자연이 억겁의 세월동안 밀물과 썰물로 빚어낸 걸작품인 것이다.
채석강이라는 지명은 중국의 시성 이태백(李太白)이 뱃놀이 도중 물에 비친 달 모습에 반해 달을 따려고 뛰어들었다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채석강(彩石江)에서 따 온 것이라 할말큼 주위 경치가 아름답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이 채석강의 비경이 서해 낙조의 붉은 빛에 살포시 물들어 가고 저녁 무렵이면 온 하늘과 땅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서쪽 바다에 잠기는 해가 붉게 물들면서 바다는 맞닿은 하늘과 구름을 곱게 물들이고, 썰물로 빠져나간 채석강의 바닥도 붉게 타오른다.
바닥을 물들인 낙조는 이어져 오른 채석강의 바위도 붉게 물들이며 이내 사람의 눈빛마저 붉게 물들인다.
올해도 해넘이와 함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언제나 한해를 보내는 마음은 아쉽고 안타깝지만 참으로 어느 해 못지 않게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우리가 매일 일상의 생활을 반복해서 살아가지만 단 하루라도 똑같은 날이 없는 것처럼 매일 반복해서 뜨고 지는 해돋이와 해넘이지만 언제나 그 의미는 다른 것이다. 올 연말의 해넘이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좀더 의미 있는 해넘이 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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