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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고려청자



그러나 이것은/천년의 꿈 고려 청자기(靑磁器)!/빛깔 오호!빛깔/살포시 음영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조촐하고 깨끗한 비취(翡翠)여/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물방울 뚝뚝 서리어/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박종화(朴鍾和)의 시 청자부(靑磁賦)는 고려청자의 은은하고 신비한 빛깔을 이렇게 찬탄했다. 우리민족의 대표적 문화유산의 하나인 고려청자는 9세기 중엽 중국에서 기법을 들여와 만들었지만 중국을 능가하는 독창적 기술개발로 11∼12세기 절정을 이루었다. 예술성이나 아름다움에서 중국 자기는 비교가 되지못해 당시 중국인들도 스스로 그점을 인정했다.

 

송(宋)나라 휘종의 사신으로 고려 인종원년(1123년) 개경에 왔던 서긍은 그의 저서‘고려도경’에서‘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고 극찬했다. 또 북송말엽 태평노인(太平老人)은‘수중금(袖中錦)’이란 책에서 당대 중국 상류사회의 천하제일 열가지를 뽑는 가운데 중국청자를 제쳐놓고‘고려비색’이라 하여 고려청자를 꼽았다.

 

이런저런 경로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가 소더비등 세계적 경매장에 등장하는 고려청자기 한 점에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것도 뛰어난 예술성과 희귀성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그 뛰어난 청자 예술도 고려가 멸망하면서 비법이 전수되지 않아 맥이 끊기고 말았다. 아무리 엄밀한 고증과 발달된 현대 과학기술을 동원해도 고려청자를 1백%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니 그 신비스러움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엊그제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인근 해저에서 고기잡이 하던 어민에 의해 처음 발견된 고려청자가 무려 4백54점이나 인양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인양된 청자의 종류도 다양하여 학계는 지난 75년의 신안 해저유물 발굴에 버금가는 중요한 발견으로 보고 있다니 흥분할만 하다.

 

이 유물들은 고려청자 전성기때 생산중심지의 하나였던 부안(扶安) 유천도요지에서 제작된 것을 개경등지로 운송하던중 배의 침몰로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배의 침몰이 확실하다면 부근엔 더 많은 유물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인양해역에 대한 보호구역 지정등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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