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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문학포럼 한일중 작가 대표단

"이번 포럼을 통해 3국 문인들이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최원식)"정치가, 사업가의 모임이 아닌 문인들이 모임이기 때문에 단기 성과나 실리에 급급하기보다는 2천년 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100년 후에 우리 모습은 어떨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시마다 마사히코)"문학을 통해 서로 다른 민족이 갑자기 가깝고 친해지길 기대한다면 다소 순진한 바람이겠으나 서로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톄닝) 올해 처음으로 개최되는 한일중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중국 작가단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 작가단의 최원식ㆍ오정희 부위원장, 일본 작가단의 시마다 마사히코 위원장과 이노우에 히사시 특별 고문, 쓰시마 유코 부위원장, 중국 작가단의 톄닝 위원장, 모옌ㆍ레이쉬옌 부위원장은 29일 포럼 개막에 앞서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다. 최 부위원장은 "3국 작가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 간 갈등을 넘어서서 한자리에 모인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문학이 추구하는 '이월'의 가치가 나라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 이룩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가 겸 시인인 시마다 마사히코 위원장은 "한일중 3국은 사이에 벽이 놓여 있지만 서로에 대해 흥미를 느끼는 같은 아파트 이웃 주민과도 같은 관계"라며 "서로 알려면 '훔쳐보기'보다는 서로 방문해 차 한 잔 하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이번 대회의 의의를 강조했다. 중국작가협회 주석이기도 한 톄닝 위원장은 "3국 작가들이 서로 문학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교류하면서 더욱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며 "이번 동아시아문학포럼의 성공을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가 작가들은 처음으로 열리는 3국 간의 문학 교류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동안 한일, 한중간 문학교류는 있었지만 한일중 문학 교류는 처음입니다. 3국은 그동안 때로는 날카로운 각을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공동운명체라는 인식 속에서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성숙해 필연적으로 서로 소통하고 서로 이해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오정희)"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3국 작가들의 모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비롯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3국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매우 감동적입니다."(쓰시마 유코)작가들은 동아시아 관계 증진을 위한 문학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배용준, 이승엽 등의 예에서 보듯 스포츠, 영화 등에서는 이미 국경이 없어졌고 문학도 소리는 나지 않지만 깊은 형태로 교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을 통해 문학에서도 3국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앞으로 더욱 강하게 연결돼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습니다."(이노우에 히사시)"문학을 통해 당장 금융위기를 극복하거나 군사적 충돌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문학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들어 다른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학을 통해 국경과 국적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모옌) "3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는 하지 못하지만 문화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포럼이 3국이 서로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초석이 됐으면 합니다."(레이쉬옌)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동아시아문학포럼은 30일과 내달 1일 '현대사회와 문학의 운명: 동아시아와 외부세계'를 주제로 메인 포럼을 진행한다. 이어 내달 5일까지 서울과 춘천에서 다채로운 학술, 교류 행사를 개최한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8.09.30 23:02

"한옥경관 보존은 주민통합모델 결과물"

전주가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한옥경관을 보존하고, 주민통합모델로 한옥마을의 혁신시킨 결과물이었다는 사례 발표가 '제26차 아시아문화예술연맹(FACP) 총회' 세미나에서 주목받았다.2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FACP 총회 '공연 예술의 미래 환경'을 주제로 한 제4차 회의에서 문윤걸 예원예술대 교수는 '전통문화를 활용한 창조도시화 전략 : 전주시의 사례'를 통해 전주시가 한옥경관 보존하기 위해 전통문화구역을 조성하고, 민간추진기구 등을 설립해 주민들의 삶을 통합시키는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또한 도시경관을 공간적으로 재구성해 전통공연을 축으로 북부 예술·소리산업지구, 역사문화 교육을 중심으로 한 서부 전통문화콘텐츠체험지구, 전주한옥마을 인근 전통생활문화체험지구가 형성돼 전통문화를 활용한 전주시의 창조도시화 전략을 설명했다.앞서 '주요 국가별 공연예술 현황 발표'를 주제로 한 제3차 회의 세미나에서는 일본과 싱가포르의 공연예술 현황에 관한 상반된 사례가 발표돼 문화예술분야에 관한 정부의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강조됐다.타카기 사토시 일본 아트협회 담당은 일본 경제 침체로 정부 예산을 삭감하고, 공연예술단체를 민영화시켜 지난해부터 공연예술 관람객과 시장 규모가 줄었다고 말했다.반면 리우 친 초이 싱가포르 닌양 아카데미 부회장은 정부가 2006년부터 예산을 늘려 싱가포르 전역에 걸쳐 하루에 73개의 문화예술 공연과 행사가 열릴 만큼 공연예술이 급성장했다고 소개했다.국가예술자문위원회, 국립예술공연센터 등 건립과 함께 싱가포르 비엔날레·아트페스티벌, '싱가포르 시즌' 개최 등 국가적 노력이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08.09.29 23:02

익산 함라마을 돌담 원형복원

옛집과 담쟁이 넝쿨, 감나무가 내다보이고 작은 풀꽃들이 어우러진 옛 돌담길이 원형을 찾아 옛 고향의 추억을 만나게 하는 명소로 다시 살아난다.개발로 사라져가고 있는 마을의 돌담길 원형 찾기를 위해 지난해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예고된 익산 함라마을 담장이 원형복원된다.문화재청이 19세 기에 축조된 영·호남 지역 10개 마을의 돌담길을 근대문화재로 등록예고하면서 시작된 사업의 결실이다. 함께 등록예고된 마을의 돌담길들은 장인이 아니라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서민적인 돌담이나 돌과 흙을 섞어 만든 토석담에, 길이도 700m에서 10㎞로 다양하다. 특히 그동안 문화재 지정이나 등록이 개별 건축물 위주의 점(點)단위에 그친 데 반해 돌담길의 문화재 등록은 등록범위를 면(面)단위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부분.각 자치단체마다 관광적 요소를 부각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환경에서 옛 것을 발굴하거나 복원하는 사업이 새로운 정책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익산시는 함라면 함열리 314번지 일원의 함라마을 옛 담장(등록문화재 제263호)을 문화재청으로부터 1억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원형 복원할 계획이다.이번 사업은 조해영 가옥 일대쪽부터 도지정문화재인 김안균 가옥, 함열향교대성전, 향토유적인 이배원 가옥 등 1,500m에 이르는 주변의 옛 담장을 원형복원하는 것으로 전북대 건축과 남해경교수가 자문을 맡았다.함라마을 옛 담장은 대체로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토담, 돌담, 전돌을 사용한 다양한 형태의 담이 혼재되어 있고, 쌓기 방식은 평 쌓기 방식으로 축조되었으며, 담의 지붕은 한식기와 및 시멘트 기와를 써서 처리되었다.또 일반농가의 담장이고, 주택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담장이 높은 점이 특징이며 담장 일부는 거푸집을 담장의 양편에 대고 황토 흙과 짚을 혼합하여 축조한 보기 드문 전통방식으로 축조되었다.시 관계자는 "이번 복원과 더불어 주변에 위치한 도지정 문화재인 김안균, 조해영 가옥, 함열향교대성전과 향토 유적인 이배원 가옥 등과 어우러진 옛 담장이 복원되면전통마을로서의 품위를 더해주어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익산시는 이번 옛 담장 복원을 현재 추진 중인 함라 한옥 체험단지와 연계한 새로운 지역 관광상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한 동네의 향토적 정서를 담은 돌담길의 복원은 농촌 관광체험의 교소를 확대한다는 의미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문화재청의 돌담길 원형찾기를 위한 근대문화재 등록예고로 전북에서는 익산 함라마을과 함게 무주 지전마을이 선정됐었다.

  • 문화재·학술
  • 엄철호
  • 2008.09.29 23:02

"전라감영 복원, 의미·주체 고민부터"

전라감영 복원범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라감영이 지닌 의미와 복원 주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25일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 열린 전라감영 복원 학술대회 '전라감영 복원,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원도연 전북발전연구원 지역개발소장은 "전라감영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입장과 복원방식이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기념의 주체와 대상이 다시 나뉘어 진다"고 말했다.원소장은 "추진 주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전라감영 복원사업 추진위원회(가칭) 구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전주시와 전라북도, 주민대표,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추진위를 구성해 전라감영 복원과 관련, 전체적인 사업 방향과 예산 등을 주도적으로 끌고나가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전주시가 주최하고 전주시 시정발전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학술대회 역시 전라감영 복원범위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경상감영, 강원감영, 충청감영 등 다른 도시의 지방감영 복원이 기존 감영의 박제된 공간성만을 재현함으로서 원형의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며 "전라감영은 그 원형성과 역사성 및 활용성이 부각된 단계적 복원을 통한 원형복원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나 전라감영 복원을 건축학적 입장에서 바라본 진정 전북대 교수는 "근대건축물은 감영과 마찬가지로 상징적 의미로서 최소한의 부분만 남기며 물리적으로 활용가능한 건물은 새로운 기능을 부과한다"며 "감영부지 전체에 대한 광범위한 완전한 복원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복원의 규모보다는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전라감영 복원을 바라본 정철모 전주대 교수는 "도시내 문화공간이 분절되거나 독점되어서는 안되며 모든 시민들에게 열려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문화적 교류와 상호작용이 촉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특히 전주의 '세계문화유산도시 추진'이 제안돼 주목을 모았다.완전복원의 가치를 강조한 조법종 교수는 "전라감영의 단계적 복원을 통한 원형복원을 추진하고 그 복원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도시 전주'를 완성하는 목표가 이뤄져야 한다"며 '"조선왕조의 발상지 및 지방정부의 대표도시로서 현재 복원가능한 통치공간인 전라감영과 그 밖의 역사공간이 원형성을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인만큼 선정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8.09.26 23:02

전주 경기전 '어진전' 보물로 승격된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해 온 전주 경기전내 '어진전(御眞殿)'이 전북도지정 유형문화재(제2호)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된다.25일 전북도에 따르면 문화재청 문화재분과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가 지난 18일 심의를 통해 경기전내 어진전을 보물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이에따라 문화재청은 다음주관보를 통해 이를 예고하고 한달후인 11월초 경기전내 어진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정식 지정하게 된다.이에앞서 전북도는 지난 5월15일 어진전에 대한 보물 승격을 문화재청에 신청했으며, 7월22일에는 문화재청 전문위원들이 현지조사를 벌였다.1614년(조선 광해군 6년)에 재건된 어진전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건물의 배치나 평면·구조면에서 우리 나라 전통 건축물의 품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다.또 조선시대 태조 진전(眞殿)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건축물로 당시에 사용했던 일산(日傘)과 병풍 등의 유물이 남아있다.도 관계자는 "조선시대 전국 4곳에 태조 어진을 봉안했지만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고 전주 경기전의 어진전만 현재까지 남아있다"며 "그동안 경기전 중심건물인 어진전을 보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한편 경기전 어진전에 봉안됐던 조선 태조 어진은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현재 서울 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다음달 23일께 3년여만에 전주로 환안될 예정이다.태조 어진은 오는 2010년 경기전 유물전시관 완공때까지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된다.

  • 문화재·학술
  • 김종표
  • 2008.09.26 23:02

亞·한국 도작문화 짚어보기

아시아와 우리 역사 속 도작 문화(稻作文化)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전북대 인문한국 쌀·삶·문명 연구원(원장 김기현)이 24일 오후 3시 전북대 진수당 가인홀에서 '아시아적 시야에서 본 벼와 쌀' 주제로 해외 석학 초빙강연을 연다.다나카 코지 지역연구통합정보센터장(교토 대학 교수)이 이날 강연자로 나서 아시아 도작문화를 발전시킨 도작기술 발전 과정과 벼농사가 지니는 현대적 의의를 생태·환경·문화적인 측면에서 검토한다.벼농사와 쌀 문제를 식량이나 곡물무역 범주로 한정하지 않고, 생명과 생활 측면에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킬 예정.이어 25일엔 전북대 사범대학 교수회의실에서 '임원경제지 연구의 문명사적 의의' 주제로 포럼이 열린다. 「임원경제지」 는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농업 전반을 비롯해 토지제도, 식물과 원예, 기상과 천문 등 총 16개 분야를 백과사전식으로 펴낸 책. 「임원경제지」 의 가치를 사상사, 농업사, 서지학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검토하는 자리다.심경호 고려대 교수의 기조 강연에 이어 '임원경제지 농업사적 배경과 가치(염정섭 전북대 HK교수)' '풍석 서유구의 사상사적 위치(이천승 전북대 HK연구교수)' '사대부의 생활 이상과 임원경제지(조창록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동아시아 유서 편찬과 임원경제지의 특성(이동철 용인대 교수)' 등이 발제에 나선다.지난해 11월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한국지원사업에 선정된 전북대 인문한국 쌀·삶·문명 연구원은 초벌 번역이 완료된 원고 「본리지」 13권부터 10년에 걸쳐 완간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08.09.23 23:02

"혼불 속 효자다리 어머니 사랑 깊게 표현"

'그 이서 사는 효자는 캄캄헌 밤 어둡고 무선 디를 어머이 혼자 물에 빠짐서 댕기는 것을 알고는 엄동 설한 얼어붙은 물 속에 지 몸뚱이를 바우같이 꼬부려서 웅크려 당구고 다리를 맨들어 어머이가 건너가시게 해 디렸지. (…) 그래서 인(人)다리가 된 거시여.' (「혼불」 중에서)「혼불」 다시 읽기.19일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 9월 월례문학세미나에서 「혼불」에 등장하는 도내의 효자 다리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홀에미다리' '한(恨)다리' '인(人)다리'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내 이웃집 아저씨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옛 이야기 같았다.이 다리들의 공통점은 천심깊은 효자가 과부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데 있다.강사로 나선 정군수 시인은 "혼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내 문화와 역사가 고증돼 있다"며 "특히 효자 다리 소재 자체는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갖는 사랑을 더 깊게 표현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홀에미다리'는 김제 청도리 귀신사 입구로 흐르는 개울가에 있다. 사람이 딛고 건널만한 길고 널찍한 돌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순창 옹천골에 있었던 '한(恨)다리'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 다리의 설화를 기억하고 있다.김제 이서면에 '은교리'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은교리'가 변해서 '은다리'가 되고 '인다리'가 됐다고 말한다."혼불은 한 여성이 가정을 일으키는 개인사적인 이야기 외에도 민족의 정신이 이어지는 과정이 담겨 있어요. 여성의 힘이 담겨 있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싶습니다."이날 월례문학행사는 특별히 야외에서 진행됐다. 고 최명희씨와 대학시절부터 친구였던 정씨가 그를 보내며 썼던 시 '혼불로 길이 되소서' '삼우제' '수의' 등을 시민들이 작접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김제 출신인 정씨는 전북시인협회회장, 혼불정신선양회 이사, 전주문인협회장을 역임하고, 전북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 전담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등과 연구논문집 「김시습연구」 등을 펴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08.09.22 23:02

[일과 사람] '천년전주한지포럼' 강진하 대표

"한지의 생활화·산업화·세계화가 한지산업의 큰 축입니다. 글로벌 시대를 외치다 보니, 한지의 세계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죠. 오늘 토론회도 한지 문화 교류 사업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습니다."18일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한지문화외교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 '천년전주한지포럼'의 강진하 대표(58·전북대 교수). 이날 토론회는 '유엔사무총장 게스트룸 한지공간 연출' '일본 가나자와 교류전' '미국샌디에고 한지패션쇼' '상해한국문화원 초청 한국향, 전주 한지문화제' 등의 해외 사례를 발제하고 효과적인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본래 그는 종이를 연구하는 학자였다. 종이와 살고지고 하다가 13년 전 전주를 대표하는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른 종이에 비해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한지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 단아하면서도 색감에 따라 화려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한지는 한국적인 미(美)도 빼어나다.지난 2004년 그는 한지 관련 전문가, 공예가, 지인들과 함께 사단법인 '천년전주한지포럼'을 만들었다. 전주한지의 생활화하고, 상품화하는데 힘을 모으기 위해서다.이들의 한지 사랑 활동은 크게 세 가지. 한지 발전을 위한 정책 개발 토론회, 해외 홍보, 한지 전문잡지의 발간이다. 우선 매년 1∼2회 여는 토론회를 통해 한지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 전주시에 정책을 건의해왔다.또한 매년 중국 미국 일본 등과 교류하면서 현지 교민들, 외교대사관과 함께 전주 한지 알리기에 힘써오고 있다."지난해 10월 상해문화원에 교류사업차 갔을 때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패션쇼 공예품 전시회장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더군요. 이후 현지에서 요청해 12월 한지공예체험을 하러 갔습니다. 다음달에도 공예체험을 위해 다시 찾을 계획입니다."특히 중국은 서화지 시장, 미국이나 유럽은 문화상품 위주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다음달엔 한지전문잡지 「한지와 나」 창간호가 나온다. 앞으로 계간호로 한지에 관한 정보, 한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실을 예정.한지 제품 마케팅에도 힘을 쏟고 싶은 그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한지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이화정
  • 2008.09.19 23:02

[작가의 방] ⑮ 수필가 김경희씨

"나는 이름 앞에 관사도 없고 형용사도 없습니다. 다만, 문인(文人) 말고 꼭 문학인(文學人)이라고 써주세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거든요."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진 책장 선반. 수필가 김경희씨(62)는 그 아래 앉은뱅이 탁자를 두고 수필을 쓰거나 시를 짓는다.시는 혼자 끄적끄적하는 것. 1985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온 그는 "수필을 쓰면 수필로 죽어야지 시인 행색을 할 생각은 없다"며 단호히 말했다. 등단 전부터 직접 '가리방'에 철필로 글씨를 써 등사판에 대고 롤러로 밀어 몇 권의 책을 펴냈다. 1979년부터는 최승범 고하문예관 관장이 펴내는 「전북문학」에 글을 발표해 왔다. 그는 "웃고 찍은 사진은 등단했을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대학에서 넥타이를 매고 근무하는 게 죄스러운 때가 있었습니다.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이 매운 눈물을 흘리던 시절에도, 군인들이 정치하던 시절에도, 펜은 잡고 있었지만 역사를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쓰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순창농림고등학교와 광주교육대학 부설 초등교원양성소를 수료하고 잠깐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곧 다시 전주로 내려와 서해방송 전주분실과 전주대에서 근무했다. 2004년에는 전주대 생명과학부 행정실장으로 정년퇴임하고, 2007년까지 신아출판사 상무로 재직하며 「수필과비평」 편집인과 「소년문학」 주간을 역임했다. 그는 "젊은 시절 서울서 인생이 한 번 꺾이고나니 사는 게 힘들었다"면서도 "서울서 허덕거리지 않고, 다시 전라도 문화 속에서 서늘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게 참 고맙다"고 했다."글을 쓰다보면 밥도 되지 않는 걸 한다고 가족들 숨죽이게 하는 게 미안합니다. 진작 문학에 사표를 낼까도 싶었지만, 그게 안되더군요. 다른 것은 다 평범해도 글만큼은 남들과 다르고 싶어요.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정신은 가지고 가다가 쓰러져야 할 것 아닙니까."삶이 고단하고 인연이 단출한 사람일 수록 사회감정에 쉽게 지치게 된다. 결코 단조롭지 않았던 삶. 글은 자연히 인간 본질에 대한 것들을 향하게 됐다.담담하면서도 진중한 글쓰기는 아름다운 것보다 참된 것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 것. 김씨는 "시가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이고 소설이 한강이나 낙동강 쯤이라면, 수필은 전주천 같다"고 했다. 그래서 더 맑아야 하고 사람과 더 가까워야 한다.'나는 지금 뱀이라면 허물을 벗어야 하고 매미라면 탈바꿈을 해야 한다. 그리고 누에라면 마지막 잠을 자고 섶에 올라 고치를 지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과거로부터의 생활을 청산하고 오롯이 내 이름 석 자를 손에 쥐고 홀로 가는 사람으로서의 길에 비겁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아야 한다.' (「내 생명의 무늬」(수필과비평사) '내 신념과 철학' 중에서)쾌작 한 편 딱 부러지게 쓰지 못해 염치없다는 김씨. 그러나 고민하며 살아온 삶과 고민없이 지내온 삶과의 차이는 분명하다.이미 수필집도 일곱권이나 냈고, 이제는 수필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 그는 수필 읽기와 쓰기 등 일종의 수필 개론서를 자신의 수필관을 담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현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감사와 양지노인대학 수필창작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8.09.18 23:02

[작가의 방] ⑭가야금 산조·병창 예능보유자 강정열 교수

지문이 다 닳아없어진 단단한 손가락은 열두줄 명주실을 타고 놀았다. 오른손 두번째 손가락은 가야금을 뜯기 알맞게 굽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가야금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손가락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악기의 일부가 돼버렸다."사람들은 가야금을 오래 타서 굽어진 줄 아는데, 쉽게 말하면 손가락이 '병신'이 된 거예요."스물여섯. 부산에서 생활할 때 집에 불이 났다. 불 붙은 전기선이 떨어지면서 오른쪽 손을 감아버렸다. 살과 힘줄이 붙어서 오그라든 손을 펴기 위해 세 번의 수술을 했고, 힘이 빠진 손가락을 바위 덩어리에 대고 연튕김하듯 단련했다.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강정열씨(58·전북도립국악원 교수)는 그 때가 진짜 고비였다고 말했다.대금 명인 강백천이 백부, 동편제 판소리 명창 강도근이 당숙,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의 계승자 강순영이 고모, 안숙선 명창이 한살 위 친척누나인 그에게 가야금과 소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곱살에 강순영 명인에게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해 열세살에 고 진만국 선생에게 가야금 산조와 병창을 배웠다.가난한 살림에 소리와 가야금을 익히며 고생도 많았다. 변성기 때는 남들 100일 공부를 1년씩 걸려 하며 소리를 되찾았다. 반년은 남원 육모정 폭포수에서 소리를, 나머지 반년은 청왕봉 용정암 아래 움막에서 가야금만 탔다. 손에 눈이 달려야 한다며 불을 끄고 새벽 공부를 하던 시절, 그는 "내가 이걸로 꼭 성공한다는 욕망 밖에 없었다"고 했다."이게 무속에서 나와 창으로, 창에서 현악기로 옮겨온 것입니다. 평생 이것만 하고 살다보니 어느 것 하나 싫고 좋고가 없습니다. 소리에 힘이 들어갈 때는 가야금을 죽이고 소리의 빈 공간은 또 가야금이 살려주니, 오묘한 멋이 있지요. 가야금 병창은 솔직히 내가 하면서도 마음이 끌려요."판소리 목으로는 수리성을 가졌다. 곱기만 한 소리와 달리 강하고 힘찬 맛이 있다. 장단의 박을 짚어주거나 소리가 없는 공간을 메꾸어 주는 소극적 역할에만 머물기에는 가야금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 그는 "원래는 판소리를 전공하려고 했지만, 가야금 또한 놓을 수가 없었다"며 "이왕이면 1인 2역이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공부할 때 버릇이 몸에 익어 아직도 새벽 4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는 강씨.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전북도립국악원 가야금병창반을, 밤 9시까지는 전주시 금암동에 있는 개인 전수관에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흐트러짐 없는 삶을 위해 다른 약속도 잡지 않는다."자부심이나 자만 같은 건 없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잘했다고 하면 잘했는갑다 생각하면 그만이지요.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하고 죽는 게 예술입니다. 또 지금 잘하네 못하네 해도 죽고나야 제대로 평가받는 게 예술가의 삶이죠."내년은 그의 예술을 완성시킨 고 정달영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10주기가 되는 해. 추모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서공철, 정달영으로 이어지는 고제(古制)의 맥을 잇고 있는 그는 때묻지 않은 옛날 그대로의 소리를 지켜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남자에 의해 불려지는 가야금병창을 듣기 힘든 시대. "내 모든 혼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는 그는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8.09.11 23:02

전주 동고산성 복원한다

국내 유일의 후백제 유적지인 동고산성(전북도 기념물 제44호)을 국가지정 사적지로 승격시키는 등 문화유적 정비 복원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7일 전주시에 따르면 20여년에 걸친 동고산성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다양한 유적이 발굴됨에 따라 이를 근거로 사적지로 승격 받고, 성곽 터를 복원하는 등 본격적인 후백제 문화유적 복원사업을 추진해나가기로 했다.시는 동고산성과 관련해 지난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억4326만원을 들여 모두 5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한 가운데 견훤궁터와 동문지, 성곽 일부 등을 발굴했다.견훤 왕궁 터임을 알리는 초석을 비롯해 적심시설, 기단석, 내주 초단석, 건물지 배수로, 초석주좌 등 동고산성 부지임을 알리는 다양한 유적들을 발굴해낸 것으로 전해졌다.이를 근거로 시는 내년부터 오는 2014년까지 총 100억원을 투입해 동고산성 터와 인근 부지를 중심으로 한 후백제 문화유적 정비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해나가기로 했다.후백제 문화유적 복원사업의 경우 회랑도 정비와 성곽보수(1500m), 왕궁건물 및 부속건물지 건물복원, 안내판증설, 진입로정비, 주차장확보 등이 잇따라 추진될 계획이다.특히 후백제 문화유적 복원사업의 핵심사업이 될 동고산성의 국가사적지 지정을 위해 올해 5억6100만원을 들여 마지막 발굴조사(6차)에 들어가는 등 다양한 고증확보에 나선다.시는 이번 발굴조사에서 동고산성 일대의 성문형식이나 구조, 초축과 증개축여부 등을 파악해나갈 계획이며, 동고산성의 국가사적지 지정은 내년 초께 신청할 방침이다.시 관계자는 "지난 1990년부터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다양한 유적들이 발굴됐다"며 "이를 근거로 후백제 문화유적 복원사업을 보다 활발하게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한편 지난 900년에서 36년간 후백제 도읍지였던 전주시의 교동 승암산에 있는 동고산성은 후백제 관련 유물들이 다양하게 매장돼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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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대식
  • 2008.09.08 23:02

이황·송시열등 편지 완주유치 될까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대원군 이하응, 서예가 이삼만, 의병 최익현, 동의보감을 펴낸 허준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의 편지를 한 곳에서 도민들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완주군이 묵적(=붓으로 쓴 편지)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옛 선현들의 혼이 담긴 편지를 한 곳에 모아 관광자원화 하기위한 야심찬 계획이 성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완주군은 최근 (사)한국고미술협회에 의뢰, 백록문화박물관(회장 이대선·62·경북 영주)이 소유하고 있는 3735점에 대한 옛 선현의 편지를 감정한 결과, 27편은 가짜로 밝혀졌으나 대부분(3708점)이 진품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완주군이 이번에 이대선씨가 소장하고 있는 편지를 감정한 것은 그의 편지 전체를 유치하기 위해서다.평생 선현들의 편지 수집을 해온 이씨는 지난해말 완주군에 기증 의사를 밝혀 인수, 인계작업이 진행돼 왔다.이 씨는 완주군에 자신의 작품 전체를 희사하는 대신 박물관을 건립해 자신이 명예관장을 맡도록 하는 등 몇가지 조건을 제시, 현재 협상이 진행중인 상태다.완주군은 한국묵적박물관을 건립, 선조들의 피와 땀, 철학과 지혜가 담겨있는 편지를 한곳에 전시해 전북은 물론, 전국 청소년들에게 정신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인수에 앞서 완주군은 최근 1700만원의 감정비를 들여 이 씨의 작품 전체에 대한 감정을 실시한 결과, 옛 선현들의 편지의 가치는 무려 20억9700만원에 달했다.퇴계 이황의 간찰(편지)의 경우 1점에 1000만원에 달해 최고가 였고, 조선말 정치인인 김홍집, 좌의정을 지낸 송시열, 대원군 이하응, 전북 출신 서예가 이삼만의 편지는 각각 1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 문화재·학술
  • 위병기
  • 2008.09.05 23:02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 확대여부 도민들 관심에 달렸다

전주 무형문화유산전당이 실질적인 아시아·태평양지역 전당으로 확대될지가 전북 도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1일 전주시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 건립사업의 사업 확대에 따른 타당성재조사를 실시하는 가운데 사업대상지인 전북 도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등을 실시한 뒤 이를 반영해 나가기로 했다.기획재정부는 아태무형문화유산전당 건립사업과 관련해 시가 애초 사업비 493억원에서 400억원이 증액된 893억원을 요구해오자 타당성조사를 실시하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한 이번 타당성조사는 이번 주부터 전국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며, 이중 40% 정도를 전북도민으로 할당한다.결과적으로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전북 도민들의 적극적인 지지 의사가 제시될 경우 무형문화유산전당을 아시아와 태평양을 대표하는 전당으로 확대 건립할 수 있는 것.기획재정부는 이번 설문조사와 관련해 전당 건립에 따른 소득세 지불 의사 금액, 전주 유치 찬반, 방문 참여 의향, 무형문화 유산의 가치 인식 정도 등을 물을 계획이다.전주시 동서학동 전북도 산림환경연구소 부지(면적 5만9588㎡)에서 추진될 아태문화유산전당 건립사업의 확대 여부는 올 11월 용역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시 관계자는 "아태문화유산전당의 경우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대표전당으로 들어서야한다"며 "이를 위해 전북 도민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구대식
  • 2008.09.02 23:02

'금파 김조균 선생 10주기 추모공연' 소리전당서

1998년 10월 30일 전주덕진예술회관에서 열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공개발표회'.가슴을 졸인 것은 객석 뿐. 장구를 치던 스승은 제자의 춤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쇠약해진 몸을 일으켰다. '바람 한 자락 붙들었다' 놓듯 '한량춤'을 풀어낸 금파(金波) 김조균 선생(1940∼1998)은 제자이자 아들인 김무철씨에게 '한량춤' 부채를 건네주었다. 경건한 대물림 의식. 전설과도 같은 그의 뒷모습에 관객들은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해 12월 24일 금파 선생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김무철씨는 지금도 그 때 그 부채로 춤을 춘다.전북 춤의 전설이 된 금파 김조균 선생. 그의 10주기를 기리는 추모공연 '전설(傳設)'이 3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다.정읍·이리·전주권번에서 예기와 한량들을 가르쳤던 정자선과 그의 아들 정형인으로부터 '남무'와 '삼현승무' '한량무' '호적구음살풀이춤' '전주검무'를 전수받은 금파. 그의 춤은 투박스러우면서도 넉넉한 품이 있었다.중학교 3학년때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흑장삼을 입고 춤을 췄던 소년. 그러나 그는 서울의 큰 무대를 마다하고 1960년 서라벌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전북무용협회 회장, 전주시립민속예술단 무용부감,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부 교수 등을 맡으며 전주춤의 뿌리를 지켜왔다.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은 "강인한 정신력과 탁월한 능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섰던 금파 선생은 전북 무용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기려야 할 진정한 예술가"라고 그를 기억했다. 정승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장은 "금파 선생은 전라도 정서를 춤으로 이입시켜 온 명인"이라며 "그의 춤 가운데 '한량무'는 남성적이면서 높은 수준의 기량과 품격으로 우리 무용원에서도 춤 레파토리로 정착시키고 있는 명무"라고 존경을 표했다.헌정의 의미가 담긴 '전설'은 특히 김숙 전북무용협회 회장에게 각별하다. 중학교 시절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까지, 김회장은 그 고단했던 삶을 진정한 춤꾼이 되기 위한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혼신을 다해 춤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오신 금파 선생님의 길을 되돌아보고 싶었다"며 이번 공연의 예술총감독을 맡았다.'전설'은 선생이 1961년 만든 금파무용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KNUA 무용단원들이 함께 한다. 1부는 '그들에게 바치는 장미-한량춤'과 2부는 '성스러운 광기-KNUA 무용원을 빛낸 별들', 3부는 '우리 전설 다시 돌아오다-학이여, 그리움이여!'로 채워진다.1998년 전북도지정 무형문화재가 된 금파류 '한량춤'은 높은 예술성과 넘쳐흐르는 흥을 역동적인 춤사위로 풀어낸 남성이 추는 홀춤. 호남의 여유있는 산새와 평야가 춤 안에 담겼다. 'KNUA 무용원을 빛낸 별들'은 국내외 무용콩쿠르에서 수상한 17명의 무용스타들이 만든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실력있는 젊은 무용수들을 통해 우리나라 춤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 '학이여 그리움이여!'는 학처럼 고고했던 금파 선생의 춤사위를 떠올리며 정승희 한예종 무용원장이 직접 안무한 작품이다.전북, 전주춤을 있게한 금파 김조균 선생. 죽는 날까지 무대를 잊지 못했던 그의 몸짓이 다시 무대 위에서 되살아난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8.09.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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