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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이 있음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월남에서 부상을 당해 미국으로 돌아온 상이용사들을 위해서 미국은 대대적인 위문공연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프로그램의 총감독은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보브 호프(Bob Hope)를 이 공연에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바쁜 데다 선약이 있어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보브 호프가 없는 위문 공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감독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중요한 자리에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며 여러 번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감독의 끈질긴 부탁에 보브 호프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한 5분 정도만 얼굴을 보이고 내려와도 괜찮겠습니까? 감독은 그렇게만 해줘도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해 보브 호프는 그 위문 공연에 출연하기로 약속했습니다.드디어 공연 당일, 5분을 약속하고 무대에 올라간 보브 호프가 말을 끄집어내자마자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5분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록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계속 공연을 했습니다. 보브 호프는 무려 40분 동안이나 공연을 하고 내려왔는데 그의 얼굴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감독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5분만 공연하기로 해놓고 40분 동안이나 무대 위에 있었습니까? 그리고 눈물을 흘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보브 호프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앞줄에 앉아 있는 두 친구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나가보니까 앞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상이군인 두 사람이 열심히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오른팔을 잃었고, 또 한 사람은 왼팔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른팔을 잃어버린 사람은 왼팔로, 왼팔을 잃어버린 사람은 오른팔로 상대방의 손바닥을 치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보브 호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두 사람은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이 이야기는 슬픔 많고 고통 많은 세상에서 서로의 불행을 이해하고 돕는 모습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삶이 고달파도 그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할 때 사람은 능력을 발휘하고 그 속에서 특별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 귀한 은총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유는 있습니다. 내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세상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까지 신경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들의 변명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짧은 생각에서 나온 말입니다. 충북 음성의 꽃동네에 가면 육신의 장애를 입은 자들과 연약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가면 조금만 움직일 수 있어도 자신보다 더 중한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의 고통을 나눕니다. 괴로움도 나누고, 눈물도 나눕니다. 모든 슬픔을 나누어 가집니다. 그래서 꽃동네에는 질병이 있고 뒤틀림은 있지만 탄식이 없습니다.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 돕는 자리가 곧 작은 천국입니다. 어디에서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순간 그곳은 천국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두 손이 있습니다. 이 손은 서로를 감싸주고, 도와주고, 쓰다듬는 손입니다. 결코 싸우고, 빼앗으라고 있는 손이 아닙니다. 삶이 다하는 그 날까지 상처를 어루만지고, 사랑하라는 손입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두 손이 있음은 사랑할 기회라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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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13 23:02

사랑으로 짓는 행복의 집

어느 가정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한 번은 남편이 옷가게에 가서 모처럼 좋은 바지를 사왔습니다. 그런데 바지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아내에게 부탁을 했습니다.“여보, 수고스럽겠지만 바지 길이를 이만큼만 줄여 주시오.” 아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바지를 줄이려고 하는데 자꾸 졸음이 왔습니다. 집안 살림을 하느라고 너무 피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지를 펼쳐놓은 채 드러누워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이때 시어머니가 들어와서 그 모습을 보고 애처롭게 여기며 바지를 살짝 줄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시누이가 그 모습을 보고서 똑같은 마음으로 바지의 길이를 줄여 놓았습니다. 한참 후에 깨어난 이 아내는 아무 것도 모르고 또 바지를 줄여버렸습니다. 결국 그 남편의 새 바지는 반바지(?)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우습고 재미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가정을 불행하다고 말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멀쩡한 바지가 반바지로 변한다 해도 사랑으로 하나된 가정은 절대 불행이 없는 법입니다. 실수는 있고, 실패는 있을지라도 불행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집안에 쌀은 떨어져도 사랑하는 마음이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돈이 바닥나고, 물질이 없어져도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오직 사랑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자동차의 황제’ 헨리 포드는 무척 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동차 산업으로 거부가 된 뒤에 고향 땅에 작은 주택 한 채를 지었습니다. 이 때 친구가 방문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만장자의 집치고는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이 말에 헨리 포드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건물이 문제가 아닐세. 그 속에 사랑이 있으면 위대한 가정이고, 만약 사랑이 없다면 석조로 지은 대저택도 금방 무너질 것일세.”그렇습니다. 행복의 집은 눈에 보이는 외형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집을 지을 때 사랑을 재료로 사용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초라해도 그 집이 사랑으로 지어졌다면 그 사는 곳이 곧 작은 천국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호화롭고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다 해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거기에는 집만 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돈을 모으고, 새 집을 마련합니다. 보다 좋은 차, 좋은 환경, 좋은 음식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행복의 집은 이런 것으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짓지 못하고, 권세로 짓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의 집은 천 년, 만 년의 세월이 지나도 오직 사랑으로만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다 한길로 치달으며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노래한다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이에 미혹 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허상이요, 속임수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집이 있고 그 안에 침대가 있다고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방안에 웃음이 있고, 식구의 얼굴에 평화가 있어야 가정입니다. 밥 먹고 잠자는 장소가 모두 가정은 아닙니다. 아플 때 싸매 주고, 슬플 때 그 슬픔을 나누어 가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정다운 대화가 있고 노래가 있으며 따스한 마음이 있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곳, 그곳이 가정입니다. 행복의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 날마다 사랑을 나누고 여러분의 집 대문에 ‘행복의 집’이란 문패를 달아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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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29 23:02

화려함 빼고 세월호 슬픔 함께 나눈 특별한 연등회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흥을 돋우는 음악과 신나는 노래도, 화려한 율동도 없었다. 대신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꽃상여를 앞세우고 길게 이어진 연등행렬 참가자들의 얼굴에선 밝은 표정을 찾기 어려웠다. 26일 저녁 서울 동대문부터 종각사거리 구간에서 5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펼쳐진 부처님오신날 연등회 행렬은 예년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고통과 슬픔을 함께", "신속한 사후처리, 책임지는 행정", "배 고프지? 엄마랑밥 먹자".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귀가 적힌 100여 개의 만장(輓章) 뒤로 붉은색과 흰색 장엄등 행렬이 이어졌다. 흰색 장엄등은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적색 장엄등은 실종자들이 시민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있음을 상징한다. 참가자들은 '무사귀환 극락왕생'이라고 쓰인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일부는 검정 조끼를 단체로 맞춰 입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는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하는 뜻에서 올해 부처님오신날 연등회를 천도의식과 추모재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1천년 역사를 지닌 중요무형문화재 122호 연등회에는 한과 흥이 함께 서려 있다. 즐거울 때는 축제였고, 힘든 시기에는 넋을 달래는 의례였다. 행진이 끝난 뒤 종각 사거리에서 열린 회향한마당 이름도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하는 국민기원의 장'이었다. 강강술래 등은 생략하고 희생자 넋을 달래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천도의식으로 진행됐다. 앞서 이날 오후 필동로 동국대 운동장에서는 연등법회가 열렸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모든 악업과 장애를 없애고 두려움을 멀리함으로써 구하는 바를 만족시키고자 설법했던 천수경(千手經) 독경, 큰 고난이 있을 때 다 함께 기도하고 정진하는 정근(精勤), 축원의식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모든 국민이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무관심과 이기주의를 버리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기원했다. 27일 낮 12시부터 조계사 앞 우정국로에서 열리는 전통문화마당도 연등놀이와 공연은 모두 취소하고 전통문화체험과 희생자를 애도하고 실종자 귀환을 염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조계종은 "올해 연등회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고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뜻으로 준비했다"며 "힘을 합쳐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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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25 23:02

<세월호참사> 기독교복음침례회 "이준석 선장 교인 아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관계사와 거액의 자금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크라운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언론에서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본 교단의 교인이라고 보도됐지만 인천 교회에 확인한 결과 교인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최근 언론에서 청해진해운 직원 90%가 본 교단의 교인인 것처럼 보도되고 있지만, 확인 결과 10% 남짓 정도로 교인은 극히 일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명했다. 선장을 제외한 기관사, 조타수 등 나머지 14명의 세월호 선원에 대해서는 "15명중 선장에 대해서만 교인 여부를 확인했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며 "필요하면 추후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기독교복음침례회 김성일 총회장, 이용화 안성교회 대표, 이 은우 사무국 총무, 변우섭 전 총회장 등 교단 간부가 대거 참석해 교단의 입장을 강변했다.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친척이 대표인 트라이곤코리아가 교단에 거액의 자금을 대출해줬다는 의혹과 관련 "트라이곤코리아가 교회를 짓기로 교단과 계약을 하고 신축헌금으로 받은 것인데 일정에 차질이 빚어져 교회를 짓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작은 규모의 회사가 자본금 수십 배에 달하는 거액을 교단에 낸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여기서 변명을 해봐야 설명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들은 과거 오대양 사건과 교단이 마치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언급되고 있다며 이 역시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 대표는 "과거 오대양 사건은 수차례 재조사까지 거쳐 본 교단과 아무 관련없는 자살사건으로 종결됐다"며 "몇몇 사람이 '오대양 구원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모 방송사에서 본 교단의 교리를 말하며 '구원받으면 죄를 지어도 된다'고 가르친다고 했는데 기독교에서 그런 교리를 가진 곳은 없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최근 기독교복음침례회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정모 교수에 대해서 이 대표는 "정씨는 음란서적을 선전하면서 성경 아가서를 성생활 지침서인 것처럼 강연을 하고 다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사이비로 규정한 인물"이라며 "정씨가 교수가 아니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날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말하면서 특정인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교회를 압수수색했다"며 "이는 있을 수 없는 종교탄압"이라고 비판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1962년 유 전 회장이 장인인 권신찬 목사와 함께 세운 기독교 교단으로 동남아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100여개의 교회가 있으며 신도는 약 10만여명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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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24 23:02

부활, 깨달음, 탄생 그리고 제의의 봄

오는 4월 28일은 원불교 교조인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날이면서 원불교 생일이다. 원불교의 4가지 축제와 2번의 재사인 사축이재(四祝二齋) 중 가장 큰 경절이 바로 대각개교절이다. 소태산은 26세 젊은 나이에 깨달음을 얻고 홀로 기쁘고 자신감이 충만해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인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다고 선언했다. 소태산은 자신의 대각(大覺)과 기존 성현의 깨달음을 대조해 보려고 각 종교의 대표 경전인 유교 사서, 불교 금강경, 선교 음부경, 동학 동경대전, 기독교 구약 신약 등을 열람한 뒤 새로운 가르침을 펼 때에 불법을 주체로 기존의 모든 교법도 통합 활용하여 원만한 종교를 만들고자 하였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다시 나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서양에서 온 종교이기에 양력을 많이 쓰지만 부활절은 음력을 기조로 해마다 날짜가 바뀐다. 올해 부활절은 춘분 뒤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일요일인 지난 20일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매우 컸다. 교육, 의료, 복지 등 국가가 힘이 약해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훌륭하게 개척하고 열어주었다. 그 이면에는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의미를 반추하며 빛과 소금으로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날 가장 권위있고 큰 교회를 많이 가지게 되었다. 음력 4월8일은 부처님 오신날이다. 불기 2558년 부처님 오신날은 양력으로 5월6일이다. 금강경에 보면 석가모니가 전생에 수 천억 명의 모든 부처님을 다 받들어 섬겨서 한 분도 빼놓은 일이 없었다는 법문이 있다. 평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부처님은 뻥도 세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받들었을까하는 의아심을 내었다. 그러나 실제 부처님 오신날이 되면 신실(信實)한 불자를 비롯해 불심이 없는 사람도 1년에 한 번 사찰에 와서 연등을 켠다. 불교에 의지해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도, 불교에 근원한 원불교 교도뿐아니라 이웃 종교인도 부처님 오신날을 축하하는 것을 보면 전생에 부처님에게 떡을 얻어먹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말이다.5월11일은 춘기 석전대제(釋奠大祭)날이다. 석전대제란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큰 제사를 가리키며, 예법과 음악이 존중되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85호 의례이다. 순창향교에서는 봄과 가을에 두 번 대제를 모신다. 이땅의 유림은 이 의식을 통해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과 어려운 이웃을 돕고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미풍양속을 권장해 왔다. 현대에 와서 삶의 형태는 달라졌어도 인륜을 중시하고 윗어른을 공경하는 유가의 가르침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묘제례인 석존대제는 생활전통문화유산으로 길이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의 큰 경절과 기념일이 45월에 집중돼 있다. 부활절, 대각개교절, 부처님오신날, 석전대제를 통해 이 땅의 성현이 다시 살아나고 깨달음을 얻고 탄생하고 끼친 뜻을 받들어 드리고 있다. 순창지역 종교인들의 모임인 순창종교인협의회에서는 각 종교의 경절인 부활절, 대각개교절 부처님오신날, 석존대제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걸고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있다. 내 종교의 경절도 축하해야 하지만 이웃 종교의 경절을 챙겨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대종사님이 우리 모두의 스승님이고 인류가 받들어야할 소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영원히 자리매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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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22 23:02

내가 약할때에

동화작가 정채봉 씨의 글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라는 글이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젊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 벗으로부터 따돌림 받은 독수리, 위 독수리로부터 할큄 당한 독수리.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상처가 심한 독수리는 없을 것이라고들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는데 금방 의견이 일치했습니다.이 때, 망루에서 파수를 보고 있던 독수리 중의 영웅이 쏜살같이 내려와서 이들 앞에 섰습니다. ‘왜 자살하고자 하느냐?’ 물었습니다. ‘괴로워서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이들이 답합니다.영웅 독수리가 말합니다. ‘나는 어떤가? 상처 하나 없을 것 같아? 이 몸을 봐라!’ 영웅 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 빗금진 상흔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위 독수리가 할퀸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다. 마음의 빗금 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웅 독수리가 또 말했습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 없는 새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보통 독수리와 영웅 독수리의 차이는 상처를 보는 눈의 차이였습니다. 영웅 독수리는 상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상처 속에 감춰진 축복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많은 상처 덕분에 하늘을 높이 나는 영웅 독수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사람들은 아름답게 화장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었지만, 그 아래 감춰진 상처는 영웅 독수리의 날개 아래 감춰진 상흔과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상처야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아픔일 것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많이 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오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 상흔을 더욱 많이 남긴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한 인간의 위대함은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큰 상처를 견디어 내었느냐로 평가됩니다. 역경 중에도 포기하지 않은 집념으로 측정됩니다. 시련을 기회로 삼고 상처를 진주로 만든 삶의 지혜 속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를 치유할 때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는 몇 가지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합니다.첫째, 낙심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나약함을 보임이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쉽게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실 때 베드로는 흥분해 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버리고 말았는데 이 때 주님은 ‘검을 든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반드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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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15 23:02

고슴도치의 사랑

고슴도치의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슴도치들은 사랑하는 짝을 발견하기까지 별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런 갈등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가까이 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하는 짝에게 접근할수록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전혀 문제가 없는데 가까이 가니까 아픔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부의 갈등도 이와 똑같습니다. 각자 홀로 살아갈 때에는 부부로서 겪는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부가 되고,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갈등이 생깁니다. 부부가 진정한 의미의 연합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갈등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갈등이야말로 부부가 연합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며 참 행복으로 안내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갈등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하나 되는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갈등을 회피하면 안 됩니다. 갈등을 직시하고 싸워야 합니다. 단 성경이 가르쳐주는 대로 생산적이며 건전하게 싸우는 지혜를 동원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항상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온유한 마음과 유순한 대답입니다. 분노를 다스릴 능력과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삶의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신앙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설적인 싸움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 부부 싸움을 건전하게 하는 방법이 있어 소개해 봅니다.1. 그 날의 문제와 하나의 주제만을 가지고 싸운다.2. 싸움을 하되 장외 경기는 금한다.3. 인격을 모독하는 무차별 공격을 하지 않는다.4. 싸운 뒤에 분방하거나 침묵 작전으로 들어가지 않는다.5. 고함을 지르거나 욕설을 하지 않는다.6. 다른 사람을 개입시키지 않는다.7. 절대로 폭력을 쓰지 않는다.8. 자녀들 앞에서 싸우지 않고, 싸울 때도 적절한 장소를 택한다.9. 승부에 관계없이 속전속결로 끝낸다.10.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기꺼이 용서한다. 이렇게만 싸운다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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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08 23:02

'모두가 은혜' 깨달음을 나누다

종교적인 깨달음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원불교는 올해 원기 99주년과 대산종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봉축행사로 화합의 메시지를 전한다. 원불교는 모두가 은혜입니다를 기치로 오는 28일 대각개교절을 전후한 봉축기간에 법회와 기념식 등의 법잔치, 의료진료와 에너지 절약실천 사업 등 은혜잔치, 법등축제와 전시회 등 놀이잔치로 나눠 각종 행사를 진행한다. 대각개교절은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날로 원불교가 개교한 날이다. 지난 1~4일까지 전주 오거리 문화광장에서 아나바타 장터를 시작으로 오는 13일에는 한옥마을에서 염주팔찌 만들기 체험이 이뤄지며, 오는 20일에는 전북교구 원음합창단의 정기연주회가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이어 오는 23일 익산의 중앙총부에서는 법등 점등식을 시작으로 시민에게 등축제를 선보인다. 이어 24일부터 27일까지 문화행사와 체험마당 등이 곁들여지며, 28일에는 중앙총부와 함께 국내외 600여 교당과 기관에서 경축식을 실시한다.이 기간 25일에는 전주교도소에서 합동법회도 열린다. 30일 전주전통문화관에서는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라는 주제로 청년층을 위한 문화공연과 초청강연이 이뤄진다. 이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씨의 강연과 대중가수 투빅김그림 씨의 공연이 이어진다. 다음 달 5일에는 고창, 부안, 오수지역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행사도 마련된다. 이와 함께 진안 출신의 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종사(1914~1998)의 탄생 100주년도 기린다. 오는 13일 진안군 성수면 원좌길에서 생가 복원 봉고식을 시작으로 그가 주창한 뜻을 설파한다. 그는 33년간 종법사로 재임하며 세계적인 종교연합운동을 제창해 종교간 평화와 화합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다. 다음달 25일 익산 중앙총부 영모전 광장에서 대사종사성탑 제막식과 함께 대법회가 예정됐다. 이날 7개 종단이 참석해 그의 사상을 되새기는 시간을 함께 한다. 28일부터 다음달 25일까지는 중앙총부에 있는 원불교역사박물관에서 유물기획전시가 이뤄다. 이에 앞서 다음달 141824일에는 각각 서울국립극장부산KBS홀익산 원불교반백년기념관에서 칸타타 공연을, 오는 10월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정상덕 사무총장은 내년 원기 100년을 앞두고 올해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접근으로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통일환경화합문제에 초점을 뒀다면서 여기에 대산종사가 평소 설법했던 종교간 진리는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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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명
  • 2014.04.07 23:02

교황 "화목한 부부 관계를 이어가려면…"

"부부는 종종 싸우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서로 접시를 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부 싸움이 하루를 넘겨선 안 됩니다. 싸움 뒤에 는 반드시 화해를 하세요.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작은 몸짓 하나면 족합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의 주례 공개 강론에서 결혼의 신성함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dpa 통신이 보도했다. 교황은 이날 특유의 소탈한 어법으로 강론을 하면서 부부는 특별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고 부부 싸움 뒤에는 반드시 화해하도록 권고했다. 교황은 "결혼에는 사실 여러 어려움이 뒤따른다. 직장 문제가 있고 돈은 부족하다. 아이들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며 "부부는 종종 과민해지고 싸운다. 결혼(관계)에서 말다툼은 항상 일어나는 법이다. 때로는 서로 접시를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에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게 인생살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결혼한 부부가 다툼을 벌이고 나서 화해하지 않은 채 그날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항상 강조해 왔다"며 "여러분이 가정에서 화해를 하는데 유엔을 부를 필요는 없다.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작은 몸짓 하나면 충분하다. 내일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날)"라고 덧붙였다. http://blog.yonhapnews.co.kr/minchol1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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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03 23:02

믿음의 본질

금이 간 항아리라는 우화를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물지게에 각각 항아리 하나씩을 매달고 물을 날랐습니다. 오른쪽 항아리는 온전했지만,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물을 받아서 집으로 오면 오른쪽 항아리에 물이 차 있었으나, 왼쪽 항아리에는 물이 반 정도 비어 있었습니다. 금이 간 왼쪽 항아리는 주인님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주인님에게 일을 두 번 시키는 것처럼 보여 너무 미안한 나머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주인님 제가 도저히 송구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금이 간 항아리입니다. 저를 버리시고 좋은 항아리, 금이 안 간 깨끗한 항아리를 새로 사서 사용하세요.그러자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나도 네가 금이 간 거 알고 있어. 그러나 나는 항아리를 바꿀 마음이 전혀 없단다. 우리가 물을 나르기 위해 지나온 길을 한 번 보렴. 금이 가지 않은 항아리가 있는 오른쪽은 아무런 생물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가 됐구나. 하지만 네가 지나왔던 왼쪽을 한 번 봐라. 네가 반쯤 금이 가서 물을 흘린 자리 위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있지 않니? 금이 간 네 모습 때문에 많은 생명이 풍성하고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지 않니? 그러니 너를 어떻게 버릴 수 있겠니?우리 인생이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조금 금이 간 자, 부족한 자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금이 가지 않으니까 생명이 없었습니다. 금이 가서 좀 새는 모습이 있어야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깨끗하고 금이 안 간 항아리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명문대 나오고 금이 간 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 완벽했습니다. 그러자 자식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2등을 했는데도 그것도 성적이냐라고 하면서 욕을 합니다. 1등을 해도 욕을 합니다. 전교 1등을 해야지, 반에서 1등하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가 바싹바싹 마릅니다. 자신의 완전함을 주장하면서 남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삶이 아니라 금이 간 항아리의 심정으로 겸손하게 삶을 살아야 합니다.기독교 신앙은 의지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우리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이라면 우리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무줄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무줄은 잡아당기고 있는 동안에는 늘어나지만 손을 놓으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사람은 외부적인 압력과 강요를 당하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 달라지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외부적인 간섭이 떠나가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다가가서 너희도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하자 부탁을 했는데, 3번 다 제자들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이 그만 쉬고 자라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졌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너희가 깨어서 기도하라는 잔소리로 제자들이 깨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셨습니다. 욕망의 부재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부정적으로 안 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으로 무엇을 함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억지가 아닌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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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4.01 23:02

동행자

이전에 비해 요즘은 비행기를 많이 탑니다. 비행기를 타려면 몇 가지 절차가 있습니다. 먼저 탑승 예약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약속한 날짜에 공항에 나가서 탑승절차를 밟은 후 출구로 나갑니다. 시간에 맞추어 비행기에 탑승합니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곧바로 자신의 지정된 좌석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작은 가방을 선반 위에 넣고 좌석에 앉습니다. 그 때 자연스럽게 동행자가 정해집니다. 옆에는 뚱뚱한 남자가 앉을 수도 있고, 날씬한 미인이 앉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동행자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자리가 정해지면 동행자가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목적지까지 내내 같이 가야 합니다.저는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나그네 인생길을 가는 우리에게 삶의 자리를 정해주십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 옆에 동행자들을 붙여주십니다. 그래서 지금 내 곁에 배우자가 있고, 자식이 있습니다. 친구가 있고,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붙여주신 동행자들입니다. 인생의 여행길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우리와 동행하도록 짝지어주신 사람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들처럼 고마운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들이 있기에 나그네 인생이 외롭지 않고, 이들이 있기에 고달픈 인생이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동행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 곁에 있는 동행자는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그러나 나의 곁에는 항상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생을 살다보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동행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외로울 때 위로해 주고, 우울할 때 기쁨을 줄 수 있는 동행자가 좋은 것이지, 철저하게 악역을 맡고 사는 사람은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때때로 나의 교만과 모난 성질을 고치기 위해서 그들을 붙여주십니다. 못된 남편, 못된 아내, 못된 시어머니, 못된 며느리를 만나게 하십니다. 가까운 사람 중에 늘 고통을 주는 동행자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그 아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로 인해 오늘의 내가 있고, 그로 인해 다듬어진 내가 있다면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미련함이 인간의 지혜보다 낫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리석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미련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항상 앞서 보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 내 곁에 있는 동행자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동행자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주고, 격려하십시오.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십시오. 후회 없는 사랑을 하십시오. 잠시 후면 당신이나 동행자나 짧은 나그네 인생길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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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25 23:02

최후 순간에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작가인 볼테르(1694~1778)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글을 많이 썼고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100년 안에 성경도 사라진다.” 연설을 했습니다. 불신앙에 빠진 프랑스 시민들은 신론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만약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렇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십시오!” 그렇지만 그도 나이의 벽을 뚫지 못했습니다. 점점 노인이 되어 갔고 결국 병들어 죽음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간절히 부탁하기를 “선생님, 만약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그 때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볼테르 선생님, 선생님의 생명은 6개월은 고사하고 이제 6시간도 연장 시킬 수 없습니다.” 원기 왕성할 때 확신에 찼던 무신론은 의사의 선고에 의해 흔들려 “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하고 죽었습니다. 산양의 일종인 ‘스프링복’이라는 양들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풀을 뜯어 먹으면서 평화롭게 행렬을 이루지만 앞쪽에 양들이 풀을 뜯어 먹어버리면 뒤따르는 양들이 풀을 차지하기 위하여 앞 다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양들의 대열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뒤쪽의 양들이 속력을 내어 앞으로 달려오므로 앞쪽은 선두를 지키기 위해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모든 양떼가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리다가 달려가는 힘에 의해 낭떠러지에 떨어져 버린답니다.스프링복이라는 양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대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에 잠겨 봅니다. 나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삶이 아니었던가. 모두가 과속으로 달려만 가고 있습니다. 사고의 위험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음미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있습니다. 양보가 없습니다. 서로를 바라다 볼 시간이 없습니다. 생수를 옆에다 놓고도 모두가 목말라 죽을 것 같다고 아우성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아귀다툼으로 달려가지만 결국은 모두가 낭떠러지로 굴러야하는 인생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봅니다. 그런데 더더욱 신기한 것은 그런 모습이 내 자신이 아닐까요? 오늘은 전 속력을 다해 달리던 시간 잠깐 멈춤으로 내 열손가락으로 움켜잡았던 것 잠시나마 내려놓고 펼쳐진 열손가락으로 이웃을 돌아보면 어떨까요?신앙이란 인색함을 깨는 작업입니다. 재물은 쌓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드리고 나누고 베풀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나누는 것이 모으는 것이고, 그렇게 나눈 재물만이 천국과 영원까지 메아리칩니다. 이제 움켜쥔 손을 펴십시오. 그러면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움켜쥔 손을 펼 때, 마음도 펴지고, 가슴도 펴지고, 얼굴도 펴진다는 것입니다.계산적으로 살지 마십시오. 계산은 행복을 뺏습니다. 더 나아가 계산은 결정적인 때에 너무 무력합니다. 큰 병에 걸리면 그 때 계산적인 삶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습니다. 삶에서 유형적인 것보다 무형적인 것이 더 중요합니다. 유형적인 것은 덤입니다. 덤은 없어져도 좋지만 믿음은 끝까지 남아야 합니다. 최후의 순간에 남는 것도 믿음밖에 없습니다. 죽어서 천국까지 유효한 것도 믿음으로 심은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과 거룩한 비전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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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8 23:02

"사랑이 없으면"

진공청소기를 판매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판매원 훈련을 받은 이 남편이 자기가 훈련받은 것을 먼저 부인에게 실습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부인을 앉혀 놓고 청소기의 좋은 점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하고 물었습니다. 살 마음이 생깁니까?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네. 사고 싶군요. 이 때 남편이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내가 선전한 기계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까? 그러자 부인이 얼른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이 정도 기계 하나 못 사 주겠소? 대화의 핵심을 비껴간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사랑 가득한 부인의 말에 입이 벌어지지 않을 남편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 동기가 된 행위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어디에서나 작은 천국을 이루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으면 어떠한 행위도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눈에 보이는 외양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봉사를 많이 하고, 구제하는 일에 힘씁니다. 잘 다듬어진 기도로 감동을 주려 합니다. 그것이 훌륭한 교인을 만드는 것으로 단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말과 행동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처음부터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남자를 지으시고 그 다음에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드셨습니다. 여기에는 서로 사랑하되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깊은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 여인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구나! 얼마나 사랑스러우면 이토록 눈물겨운(?) 사랑의 고백을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미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은 사랑에 기초해야 합니다. 부부 생활이 그렇고, 교회 생활도 그러하며, 사회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사랑을 기초로 해야 하며, 그 사랑 위에 행복을 창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실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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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11 23:02

태도는 사실보다 중요하다

19세기는 자유를 위해 온 세계가 투쟁하던 시기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미국 노예 해방, 아프리카 자유해방 등 해방의 사건들이 19세기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20세기는 자유를 찾고 나니 한 걸음 더 나가서 평등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양반과 상놈의 계급이 사라졌습니다. 양성평등을 가장 많이 부르짖은 시기입니다.21세기는 행복의 시기입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교회,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여 지고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가장 많이 발달한 학문이 ‘행복학’입니다. 행복학자 데이비드 마이어 박사는 “행복은 주관적인 자기 만족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많이 가지고, 높이 올라갔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은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영국 행복 연구소에서 세계 150국가 국민들의 행복도를 조사하였더니 온 세계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나라가 방글라데시였습니다. 가장 어려운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34위였습니다. 태평양을 끼고 사는 나라 18국가 가운데 가장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행복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 만족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게 가지고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고 불행한 사람이 있고, 낮게 살면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영국의 유명한 성경 주석가요, 설교자였던 매튜 헨리(Matthew Henry) 목사가 있습니다. 하루는 이분이 지방으로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다가 강도를 만나 물건을 다 빼앗기고, 얻어맞고, 옷이 찢긴 채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치료를 받고 강당에 선 매튜 헨리 목사는 이렇게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이곳으로 집회를 인도하러 오던 중 강도를 만나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첫째,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고 이제야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둘째, 돈과 물건만 빼앗기고 생명은 빼앗기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셋째, 많은 것을 잃었으나 모든 것을 잃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넷째, 내가 강도가 아니고, 강도 당한 자임에 감사드립니다.”말씀을 전하러 가다가 강도를 만난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지만 매튜 헨리 목사는 항상 감사를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인생을 사느냐입니다. 같은 문제라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삶을 보느냐입니다. ‘태도는 사실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보다는 그 사실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어떤 고난이냐는 사실보다는 그 고난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없기를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고난을 바르게 대할 수 있는 태도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를 없애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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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04 23:02

공수래 공수거 인생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가다가 포도원을 발견했습니다. 포도원 울타리 사이로 포도 열매가 탐스럽게 달려 있는데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침을 꿀꺽 꿀꺽 삼키며 포도원 안으로 들어갈 방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울타리를 빙 돌아보아도 조그마한 구멍밖에 찾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구멍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살찐 몸통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영리한 여우가 기발한 생각을 했습니다. “옳지, 금식을 하면 되겠구나.” 여우는 그 자리에서 3일을 쫄딱 굶었습니다. 그리고서 머리를 쑥 밀어 넣으니까 날씬해진 몸이 쏙 들어갔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배고픈 김에 3일 밤낮을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그 후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 하는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울타리의 작은 구멍에 머리를 밀어 넣어보니까 이번에도 몸통이 걸려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떡합니까? 여우는 억울하지만 또 다시 3일을 굶어야 했습니다. 그 후 홀쭉해진 몸으로 겨우 포도원을 빠져 나온 여우가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아이고,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배고프기는 마찬가지구나!”우리의 인생살이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가는’ 인생들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그 무엇인가를 움켜쥐어 보겠다고 주먹을 꽉 쥐고 나오지만, 떠날 때는 모두 돌려주고서 두 손 펴고 돌아갑니다. 이것이 인생살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만 잠깐 빌려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의 삶을 다하고 돌아갈 때에는 남김없이 돌려주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은 뒤에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고,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다 두 손 펴고 돌아가는 것입니다.알렉산더 대왕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제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신하들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너희는 내가 죽거든 나의 시신이 들어갈 관 양쪽에다가 구멍을 뚫어라. 그리고 나의 손을 그 구멍에 내어놓고 장례식을 치러라.” 천하를 호령하던 그도 인생이 ‘공수래 공수거’임을 잘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왕으로 살든, 평민으로 살든 그 소유는 하나님께서 잠깐 빌려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그 소유를 영원히 누릴 수 없습니다. 잠시 전세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이제 돌려다오” 하면 즉시 돌려주고 빈 손으로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진 것이 좀 있다고 큰 소리 칠 것도 없고, 가진 것이 적다고 기죽어 살 일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잠시 빌려주신 생명, 시간, 재능, 물질을 어떻게 선용하고 돌아갈 것이냐 하는 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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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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