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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름은 그 존재만으로 견고한 울타리가 된다. 한국시단에서 ‘김용택’이라는 이름 뒤에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섬진강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그랬다. 그것은 시인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훈장인 동시에 그를 가두는 안온한 경계이기도 했다. 최근 김용택 시인이 펴낸 시집 <그날의 초록빛>(창비)은 그가 평생 일궈온 거대한 울타리를 스스로 허물고 나간 한 창작자의 치열하고도 정직한 모험이 담겨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신이 오랫동안 다듬어온 과거의 문법을 과감히 ‘낡은 거울’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거울의 표면을 깨뜨리고 나아가 거울 밖 미지의 생명들이 뿜어내는 가공되지 않은 파동에 온몸을 맡긴다. 시인은 노련함에 기대는 대신 낯설고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을 다시 읽는다. 과거의 성취가 주는 지루함과 작별하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언어들로 44편의 시를 완성해냈다. 이는 기성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한 시인이 내뱉을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고백일지도 모른다.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가 마을에 들고 나는 흔적이 없을 때까지/ 나는 마을을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어 회관 문턱을 넘어/ 마을 공동밥상 앞에 앉았다/ 공부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어서/ 내 모든 공부가, 아는 것이, 지식이/마을에서 소용없어지고,/ 나는 그렇게/마을이 공인한 마을의 일원이 되었다/(…중략…)/ 나는 눈물을 짓는다/슬퍼서가 아니다/ 하루의 경제적 경영 범위에 따른/ 몸의 고졸한 움직임들이/ 그토록 아름답다”(‘고졸한 경제행위’ 부분) 시인이 마주한 세계는 조급하지 않다. 억지로 해석하거나 재단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는 자연의 순리 앞에 무릎을 꿇고 생의 진실을 겸손하게 응시한다. 무거운 세상을 균열내는 것은 강력한 힘이 아니라 끝내 꺾이지 않는 부드러움이라는 사실을 맑은 언어로 증명해낸다. 그런 의미에서 <그날의 초록빛>은 노년의 완숙미를 뽐내는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의 첫 초록을 목격한 소년의 설렘으로 가득하다. 생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는 한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나희덕 시인은 해설을 통해 “섬진강을 따라 오롯이 흘러온 김용택의 시적 생애가 이제 지구의 드넓은 대지에 이르렀다”며 “그의 시에는 여전히 싱그러운 흙이 묻어 있고 생명의 물기가 남아 있다”고 헌사했다. 그러면서 “‘나는 퀴퀴하게 낡은 나의 거울에서 나간다’라는 노익장의 선언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며 그가 보여준 문학적 탈피에 경의를 표했다. 1948년 임실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1982년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섬진강>, <맑은 날>, <그 여자네 집>과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은하수를 건넜다> 등을 통해 문학의 지평을 넓혀왔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예산 감축이라는 산업적 위기 속에서도 ‘영화적 본질’과 ‘대안적 창의성’을 정면으로 내세우며 새로운 도약을 선언했다.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독립영화 고유의 실험정신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다. 31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에는 윤동욱 조직위원장 권한대행과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문석·문성경·김효정 프로그래머가 참석해 올해의 청사진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은 “국가 전체적인 세수 감소로 영화계가 어려운 여정을 걷고 있지만, 적은 예산을 쥐어짜서라도 내실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며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영화제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전 세계 54개국에서 온 237편(해외 140편·국내 97편)의 상영작을 확정했다. 특히 전체 작품 중 81편이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로 선정되며 전주국제영화제가 창작자들에게 신뢰받는 플랫폼임을 입증했다. 개막작은 비평가 출신 거장 켄트 존슨 감독의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선정되어 예술가들의 허영과 두려움을 우화적으로 그려낸다. 폐막작은 2024년 12.3 내란 사태 직후 남태령에서의 긴박한 대립을 2030 여성들의 시선으로 담아낸 김현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남태령>이다. 전작 <어른 김장하>를 통해 따뜻한 울림을 전달한 김현지 감독은 폐막작 <남태령>에서 시대적 아픔을 재기발랄한 감각으로 풀어내 영화제가 지향하는 동시대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올해 정식 신설된 ‘가능한 영화’ 섹션이다. 고비용 제작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기술적 발전과 창의성만으로 일구어낸 대안적 사례들을 조명함으로써, 영화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산업이 강요하는 조건이 아닌 다른 환경에서도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창작의 핵심은 자본이 아닌 창의성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투자 위축으로 극영화 제작이 침체된 상황에서 적은 예산으로도 명쾌한 메시지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들이 한국경쟁 부문에서 압도적인 약진을 보인 현상과도 궤를 같이한다. 특별전과 부대행사도 풍성하다. 196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거장들을 다룬 ‘뉴욕 언더그라운드 더 매버릭스’와 배우 안성기의 연기세계를 재조명하는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가 관객을 기다린다. 동시에 유니버셜 픽쳐스와 협업한 ‘슈퍼마리오 인 갤럭시 전주’,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100필름100 포스터’의 극장 문화 대담 프로그램도 기대를 모은다. ‘올해의 프로그래머’ 변영주 감독은 자신이 직접 큐레이션한 고전과 동시대 작품들을 통해 관객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이번 영화제는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의 연임이 결정된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서는 무대인 만큼, 지난 3년간 구축해온 운영의 연속성과 조직적인 결속력이 한층 견고해진 모습이다. 정준호 위원장은 집행위원장의 역할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하며 "중동 전쟁 여파로 급등한 항공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항공과 에어로케이 등 민간기업으로부터 직접 후원을 받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민성욱 위원장 역시 “(연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프로그래머들이 엄선한 작품들이 관객들과 최상의 상태로 만날 수 있도록 정준호 집행위원장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자체 보유한 전통문화 콘텐츠를 강조하며 ‘K-컬처의 수도’라 자부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실질적인 콘텐츠 산업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래 먹거리인 방송 영상과 디지털 분야에서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어,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2024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도내 방송·영상 산업(독립제작사 제외) 사업체 수는 고작 11개에 불과했다. 이는 전국 총 1151개 사업체 중 단 1%에 그치는 수치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기존 방송사의 지역국 형태임을 고려하면, 순수 민간 제작 역량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지리적 여건이 유사한 강원(19개)이나 전남(14개)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지역의 서사를 영상 콘텐츠로 가공해 외부로 확산시킬 ‘엔진’ 자체가 꺼져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한지, 판소리 등 전북의 우수한 원천 소스들은 디지털 콘텐츠로 전환되지 못한 채, 지역 내 소규모 행사용으로만 소비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미래 산업인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솔루션 분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북은 이 분야에서 업체 수를 산출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변이 얇으며, 어렵게 버티고 있는 소수의 사업체마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기술력을 요하는 캐릭터 개발이나 게임 제작 업체가 적다 보니, 도내 대학에서 배출된 청년 인재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실제 전국 애니메이션 산업 종사자는 2022년 6373명에서 2024년 6832명으로 꾸준히 증가했지만, 전북은 같은 기간 39명에서 19명으로 ‘반토막’이 난 것으로 확인된다. 기업 규모의 영세성도 고질적인 문제다. 도내 콘텐츠 기업의 80% 이상은 종사자 1~4명 규모의 소기업으로 밝혀졌다. 매출을 견인할 대형 업체는 대부분 수도권에 쏠려 있고, 도내 업체들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며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지역이 전통 콘텐츠에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를 담아낼 ‘디지털 그릇’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도내 콘텐츠 업계 종사자 A 씨는 “콘텐츠 산업 발전은 단발성 지원 사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실속 있는 기획으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강소 기업과 이들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지역 내 사업체 수가 너무 적다 보니 지원금 예산 규모 자체도 타 지역에 비해 적게 배정되는 실정”이라며 “지역 영세 업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로드맵 마련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문학의 근대성과 보편성을 탐구하며 전북 평단의 위상을 높여온 이보영 문학평론가(전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27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1933년 전주에서 태어난 이씨는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비평 ‘연화의비의(秘義)-김동리론’이 당선됐으며 같은 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추상미술과 인간’으로 미술평론 부분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모교인 전북대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자이자 한국문학 비평가로서 지역 평단을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씨의 비평 철학은 식민지 시대를 관통한 한국적 특수성을 전제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작품을 단순히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텍스트를 분석하는 ‘자세히 읽기’를 통해 문학 속에 내재된 역사적 의미를 길어올리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줬다. 특히 국권침탈기의 문학을 ‘난세의 문학’이라 규정하고, 당시 작가들이 일제라는 거대한 타자를 의식하며 근대적 리얼리즘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규명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이러한 비평적 관점은 한국문학사의 주요 작품들을 재평가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는 이광수의 <무정>에 내재된 친일적 성향과 몰정치성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염상섭 소설 연구에 천착하며 학술적 기틀을 다졌다. 주요 저서로는 <식민지시대문학론>, <한국근대문학의 의미>, <이상의 세계>, <염상섭 문학론> 등이 있으며 <오스카 와일드 예술평론>, <톨스토이와 도스트예프스키> 등을 번역했다. 이 씨는 중앙 문단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 작가들의 작품세계에도 관심을 쏟으며 전북문학의 가치를 높이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적 이중잣대’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 예술계에는 자생력 부족 등을 이유로 지원금 삭감의 칼을 휘두르면서도, 정작 도 스스로 청산대상으로 규정한 인물들의 선양사업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정책적으로 자기부정에 빠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북도는 지난 2020년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을 통해 도내 친일 잔재 133건을 직접 규명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는 등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들을 명백한 청산대상으로 분류하며 행정적 대응의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현재 도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에는 도 스스로 내놓은 조사 결과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실정이다. 실제 올해 전북문화관광재단 지원사업에서 도내 시·군 문인단체 대다수는 자생력 부족 등을 이유로 탈락했다. 반면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인물을 기리는 특정 단체는 선정돼 공적자금을 지원받게 됐다. 재단 측은 “기획안 내용이 우수하고 제자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행정이 규정한 청산 대상사업에 스스로 공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모순은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가치 판단의 문제를 넘어 행정원칙의 일관성이 무너진 부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적 공간의 역사적 감수성 결여도 심각하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최근까지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의 작품을 비판적 주석 없이 예술성만 강조해 전시해왔다. 교육적 가치를 우선해야 할 국립기관이 과오는 은폐한 채 심미적 가치만 부각하는 것은 관람객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해당 콘텐츠는 지역 예술계의 거센 항의 끝에 지난 2024년 삭제됐다. 지자체의 행태는 더욱 직접적이다. 군산시에서 운영하는 채만식문학관은 2명의 공무원이 상주하며 1년에 1억3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이다. 군산의 ‘백릉길(채만식)’이나 고창의 ‘인촌로(김성수)’ 등 친일인사의 호를 도로명주소로 고수하는 현실은 행정의 역사적 감수성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최기우 작가는 30일 전북일보와의 통화에서 “언어를 짜깁기해 만든 미사여구에 무슨 사상이 담겨 있겠느냐"며 “삶과 철학이 무너진 작가의 작품을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보존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친일 문인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그늘에 가려진 다른 소중한 문인들을 지우고 묻어버리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북도 관계자는 “순수하게 예술적 측면으로 봤을 때는 그들의 성과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며 “과거에 대한 행적은 비판해야겠지만, 행정에서 예술 창작에 대한 기회까지 박탈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친일과 관련해서는) 논의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측면이 있다. 앞으로 관련 사안은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예술집단 고하가 제42회 전북연극제 대상을 수상하며 ‘제44회 대한민국연극제 부산’에 전북특별자치도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전북특별자치도연극협회가 주최한 이번 연극제는 지역 연극계를 대표하는 창작 축제이자 전국 무대에 나설 작품을 선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제한된 예산 여건으로 올해는 두 개 극단만이 참가했지만, 창작극 중심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 전북 연극의 저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호응 역시 지역 창작극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대상을 받은 예술집단 고하는 창작극 ‘오얏꽃이 피었다’(김정숙 작/ 김경민 연출)를 통해 과거의 강요된 선택으로 인해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왕가 여성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작품은 인간 존재의 한계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의 문제를 중심 서사로 풀어내며 극적 긴장감을 형성했다. 금상은 극단 새로고침의 ‘METEOR: 떨어지는 별’(전준모 작·연출)이 차지했다. 이 작품은 재앙의 상황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구조로 전개되며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선택이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무대에 오른 두 작품은 모두 인간의 선택이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중심에 두고 각기 다른 미학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창작극임에도 완성도 높은 서사 구조와 무대 구현을 보여줬으며, 새로운 창작 인력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했다. 심사위원단은 두 작품 모두 완성도가 높아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은 치열한 심사였다고 밝혔다. 한 작품은 극작과 연출을 겸하며 독창적인 구조와 형식을 시도했으나 무대 확장성 측면에서 보완 필요성이 제기됐고, 다른 작품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으나 장면 전환의 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일부 장면에서는 춤 요소가 극적 흐름과 완전히 결합되지 못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연기 부문에서는 연극 고유의 현장성을 살린 발성과 전달력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자연스러운 일상 언어 중심의 연기 경향 속에서도 무대 언어로서의 표현력과 입체적인 인물 구축이 향후 과제로 제시됐다. 심사는 대한민국연극제 심사 규정과 전북연극제 기준을 준용해 진행됐으며, 희곡의 완성도와 연출의 창의성, 배우들의 연기력이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을 전달했는지가 주요 평가 기준이 됐다. 이날 개인상 부문에서는 김경민이 연출상을, 정준모가 희곡상을 수상했다. 무대예술상은 ‘오얏꽃이 피었다’의 무대미술을 맡은 길고은이 받았으며, 최우수연기상은 이혜지에게 돌아갔다. 우수연기상은 ‘METEOR : 떨어지는 별’의 하형래와 ‘오얏꽃이 피었다’의 강지수가 각각 수상했다. 제42회 전북연극제는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완성도 높은 창작극을 선보이며 지역 연극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대상 수상작인 예술집단 고하의 ‘오얏꽃이 피었다’가 전국 무대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 모아진다.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우수 경칩 지난 지가 언젠데 봄이 아직 이거든요. 내 눈에만 그랬나요? 광대나물꽃, 봄까치꽃, 냉이꽃이 전부였으니까요. 명주바람 아니어도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그닥 싫지 않았습니다. 분명 초행인데 차창 밖 눈 익은 마을엔 산수유가 한창이었고요. 꼭 유년의 골목이었습니다. 봄 찾아가는 이가 나뿐 아니었나 봅니다. 남원 지나자 고속도로는 저속도로가 되어버렸지요. 흑매 만나러 가다 갇혀 한나절 봄만 더 늦어지겠다는 푸념이 길었지만, 다행히 길은 감겼다 풀렸다 이어졌습니다. 구례 화엄사, 주차장부터는 걸었지요. 오리 길에 울긋불긋 사람도 만발했더랬습니다. 녹슨 발목이 뻑뻑했으나 몇 송이 붉은 동백도 만나고, 계곡물에 비친 나도 만나고 투덜거릴 일 하나 없었습니다. 불이문 지나 사천왕문 지나 각황전 가는 계단에 마음이 먼저 앞장섰습니다. 때맞추기 힘들다는 흑매 뵙고 내려오는 길, 만월당 담장 안 매화에 여럿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고요. 펑, 펑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였을까요? 마루의 노스님도 가만 눈길 주고 계셨습니다. 아직 댓돌 위에 털신과 흰 고무신이 나란했습니다만, 봄보로 봄봄 이미 봄이었습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신임 집행부가 축제 개최 시기를 가을로 되돌리고, 올해 개막공연을 생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년 전 차별성 확보를 위해 ‘여름축제’로 변경한 것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철 조직위원장은 축제 정상화의 일환으로 이같은 계획을 언급했다. 이는 지난 2024년 글로벌 브랜드 강화와 여름 휴가철 관광객 흡수를 목표로 개최 시기를 8월로 옮긴 지 불과 2년 만에 나온 정책적 변화이다. 소리축제가 이같이 개최 시기 변경을 논의하게 된 배경은 여름철 극심한 폭염 등 기후 리스크로 관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의 여름 개최가 당초 내세웠던 비수기 전략의 이점을 증명하지 못한 채 브랜드의 정체성만 약화시켰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도내 문화계 인사는 “여름 개최는 다른 축제와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기후 리스크를 상쇄할 만큼의 관객 동원이나 새로운 변화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며 “가을에 행사가 많다는 이유로 개최시기를 옮겼지만 바꿔서 생각하면 그때가 적기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최시기 변경은 축제 본연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정상화 절차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최시기 복귀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철학 부재와 행정 공백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축제 개막 공연을 생략하거나 간소화하겠다는 방안은 축제가 지켜온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이에 소리축제 측은 조직위가 그동안 개막공연을 준비하며 소모적인 부분이 많았고, 시기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개막공연 대신 세레머니 형식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조성원 프로그램팀 팀장은 “축제는 플랫폼의 역할을 해야 한다. 공연제작에 대한 의무를 가져가는 게 맞는지 내부적으로 10년 넘게 고민해왔다”며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시기 변경 역시 단순한 날씨 탓이 아니라 ‘축제성 회복’을 위한 방안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반면 현장의 시각은 다르다. 축제와 협업해온 한 예술인은 “올해 개막공연을 위해 유관기관과 실무협의가 상당 부분 진행 중이었으나 집행부 교체와 함께 무산됐다”며 “개막공연은 축제의 정체성과 그 해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메시지인데 행정공백이나 제작 준비시간 부족을 이유로 포기하는 것은 축제의 상징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번 파행의 근본 원인은 전북도의 인선 지연이 꼽힌다. 집행부가 3월 중순에야 확정되면서 국제적 수준의 메인 프로그램을 기획할 물리적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독립적인 전담조직을 갖춘 소리축제가 지자체의 인선 시계에 따라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25주년을 맞은 축제가 내놓은 구상이 지속 가능한 축제 모델을 위한 전략적 전환점이 될지는 향후 구체화될 최종 실행 계획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소리축제 측은 올해 8월 축제 운영을 지켜본 뒤 개최 시기 변경 및 프로그램 개편안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도내 문화·공연계 관계자는 “올해 25주년을 맞은 소리축제가 지역예술인의 참여 요구와 글로벌 콘텐츠 생산이라는 두 개의 가치 사이에서 명확한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며 “지자체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운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명 전시가 열린다고 했는데, 전시장 포스터도 없고 문도 닫혀 있네요. 오늘 전시 기간이 맞긴 한가요?” 전주 한옥마을 내 대표 전시공간인 전주한벽문화관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이 전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상 운영되지 않으면서 관람객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전시가 제때 열리지 않으면서 공공 전시공간 운영 신뢰도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된 전시는 전주문화재단의 ‘2026 전시공간 지원사업’에 선정된 진현진 작가의 개인전 ‘발원: 바라고 또 바라다’로, 지난 11일부터 이달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안내된 관람시간은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주 5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그러나 26일 오전 10시 30분 기준 전시실은 정상 운영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전시장 외부에는 해당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돼 있지 않았고, 관람 시작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전시실 출입문은 닫혀 있었으며 내부 조명도 꺼진 상태였다. 최근 포근해진 날씨로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전시 운영이 불규칙하게 이뤄질 경우 관람객 불편은 물론 문화공간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전주문화재단이 지역 예술 지원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공모 선정 전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은 지원사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전시 운영 구조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한벽문화관에서 진행되는 다수 사업이 외부 단체 대관 형태로 운영되는 가운데, 이번 전시는 자체 추진 사업이지만 별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비예산 사업’으로 분류돼 관리가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역 시각예술계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지역 작가는 “공모에 선정돼 전시 기회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시장 관리나 홍보가 뒷받침되지 않는 지원은 작가에게 허탈감을 줄 수 있다”며 “단순 공간 제공을 넘어 전시 기간 동안 기본적인 운영 인력과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벽문화관 운영팀 관계자는 “전시 담당 팀장과 실무자의 갑작스러운 병가와 연가로 인해 인수인계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해 운영에 차질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별도 예산이 없는 사업으로 대관료를 받지 않는 구조이며, 홍보 역시 입구 현수막 중심으로 진행돼 외부에서 확인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전시장 운영에 더욱 신경 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벽문화관 전시실은 회화·조각·공예·사진 등 다양한 시각예술을 선보이며 지역 예술 생태계 활성화와 시민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운영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번 사례를 계기로 공공 전시공간의 운영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골 작은 읍에서 자란 내가 처음 만난 도시는 익산이다. 한 사람만 거치면 뼛속까지 다 아는 작은 마을에서, 낯선 도시로 떠나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고등학생 시절 익산은 기대했던 만큼 다채롭지 않았다. 새벽 기차를 타고 역에 내리면 파고들던 한기와 빽빽하게 짜인 일상에 도시의 풍경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이리역 폭발사고로 다니던 학교도 피해를 보았다던 익산은 거대한 폭발이 남긴 침묵의 도시처럼 보였다. 활기차다기보다는 정체되어있었고 깊이보다 건조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익산』은 내 기억과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를 일깨워주었다. 전은희 작가는 익산을 아파트 숲 사이에 수천 년 전 청동기 시대의 집터가 있고, 쓰던 항아리로 무덤을 만든 마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익산이 인간의 삶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부드러움’과 ‘풍부함’이라는 키워드로 익산을 그리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부흥을 간절히 원했던 무왕의 꿈을 품고 있고, 서동과 선화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낭만과 맞닿아있다. 발굴을 통해 그 웅장함을 드러낸 왕궁리 궁궐터는 비어있어 오히려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그러듯 도시 역시 아픔과 좌절의 시련을 겪는다. 만경강 변 배가 드나드는 나루였던 춘포는 일본인 지주의 농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대장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둑을 막아 물길을 돌렸지만, 그곳에서 생산한 쌀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 갔다. 이러한 일제의 수탈과 강압에 누구는 의병으로 또 누구는 독립운동과 만세운동으로 맞섰다. 그들의 숭고한 피와 목숨이 익산을 지켜낸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무심코 걷던 그 차가운 아스팔트 아래 백제의 섬세한 예술혼이 잠들어 있었고, 철길을 따라 흐르던 근현대의 아픔이 역동적인 성장의 동력이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내 기억 속에도 회색빛을 뚫고 나오던 찬란했던 순간이 있었다. 매년 봄이면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하얀 목련, 하숙집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친구들과 나누던 따뜻한 밥 한 끼, 그리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앞두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쥐포 하나를 구워 들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었던 시간들. 그 소소하고 명랑한 순간들 덕분에 나는 외롭고 힘들었던 내 고등학교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익산을 생각할 때 기차역의 차가운 공기보다 그 공기를 가르며 피어났던 하얀 목련과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먼저 떠올린다. 도시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결국 그 땅 위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임을 이 책이 가르쳐 준 덕분이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등이 있다. <책 깎는 소년>은 6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70년 전, 제주의 밤은 천둥소리조차 비명이 되던 시간이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칼날 앞에 누군가는 이름을 잃었고, 누군가는 존재 자체를 지워야만 했다. 제주4·3의 심연을 20년 넘게 기록해온 허영선 전 제주4‧3연구소장이 나란히 펴낸 두 권의 시집은 어둠을 뚫고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헌사이다. 첫 번째 시집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 4·3레퀴엠>(마음의숲)이 비극의 불바다를 건너온 여인들과 아이들의 생존을 풀어낸다면 <법 아닌 법 앞에서: 4·3법정일기>(마음의숲)는 70년 만에 열린 재심 법정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피어난 존엄의 기록이다. 저자는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4·3이 지나간 역사가 아닌 지금 우리 곁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현재형의 고통으로 소환한다. 저자의 문장은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대신 70년이라는 침묵의 시간을 뚫고 나온 증언들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려는 단단함과 정직함을 담고 있다. 국가의 비수 앞에 학생복조차 입어보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저자는 “철을 잃어버린 아이들/노래를 잃어버린 새처럼/사랑을 잃었어”('철을 잃은 아이들' 중)라며 나직하게 읊조린다. 이 기록들은 연민을 넘어선 유대감의 증표이다. 저자에게 글을 쓰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슬픔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폭력 앞에서도 스스로 생을 밀어 올린 이들의 주체적인 역사를 입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집 <법 아닌 법 앞에서: 4·3법정일기>는 재심 법정의 건조한 기록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해냈다. 저자는 2021년 제주지방법원에서 울려 퍼진 ‘피고인 무죄’라는 글자를 붙잡아 억울하게 씌워진 낙인을 걷어내고 그들의 명예를 되찾아줬다. 이처럼 저자의 시선은 훼손된 존엄을 회복하는 일에 맞닿아 있다. 제주 4·3을 과거의 눈물로 소비하려는 관성적 태도를 거부하고 진실을 불러낸다. 시로 풀어낸 허영선의 기록은 제주라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응답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가 일궈온 긴 세월이 시집을 통해 마침내 ‘무죄’라는 단단한 마침표를 찍는다. 시인의 눈으로 직시하고 역사가의 마음으로 기록한 문장들은 70년 전 비극이 오늘날의 존엄으로 승화되는 치열한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시종 재일 시인은 “이 시집은 4·3사건에 대한 끝나지 않는 기억, 이것을 계승하는 자를 겸허히 만들고 있다”라며 “거기서 사유의 깊이를 바다 울음의 여운처럼 진동시키는 음운의 힘. 어찌 경약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밝혔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허영선 시인은 제민일보 편집부국장과 제주4‧3평화재단 이사, 제주4‧3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해녀들>, 산문집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역사서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등을 펴냈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의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이 전문성을 잃은 복불복 심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정청탁을 막고 공정성을 높이겠다며 도입한 심사위원 추첨방식이 오히려 해당 분야를 모르는 비전문가를 심사석에 앉히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재단은 “표기 방식의 오해일 뿐 실질적인 경력은 충분하다”고 해명했지만 심사위원 선정 단계에서부터 누가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전문성을 증명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24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사업 심사위원 구성은 미술장르에 컴퓨터공학 전공자와 영상전문가가 배치되고 연극 심사에는 마케팅 관련 협회 인사가 투입되는 등 장르별 전문성 부재 현상이 다수 확인됐다. 이는 해당 분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의 손에 지원금의 당락이 맡겨졌음을 의미한다. 실제 재단 심사평에서도 “계획이 추상적”이라거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대부분의 장르에서 반복됐다. 이같은 현상은 심사위원들이 기획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심사위원 인력풀의 기형적 편중 역시 공적 심의의 투명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내 6개 문화재단에 다양한 인적 자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자체 재단인 전주문화재단 인력이 전체 10개 장르 중 음악, 연극, 전통, 다원 등 4개 장르 심사위원으로 포함됐다. 도 단위 사업을 시·군 재단 실무자들이 심사하는 구조는 서로의 사업을 밀어주고 끌어주는 ‘상부상조 심사’라는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재단은 현행 시스템이 ‘절차적 공정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홍승광 재단 문화예술본부장은 “심사위원 선정은 인력풀 내 3배수를 무작위 추첨한 뒤 제척사유를 확인해 섭외하는 방식”이라며 “특정 기관 인력의 포진은 추첨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내 전문가들이 이해관계나 민원 발생을 우려해 심사를 기피하는 현실적 한계가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전문성 논란에 대해서도 재단은 ‘행정 표기의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공식 직함은 현재 소속을 따르다 보니 발생한 기재상 문제일 뿐, 실제 심사위원들이 과거 배우 활동이나 평론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시스템 탓으로 돌리려는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는 “누가 보더라도 수긍할 만한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배치하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라며 “심사를 받는 예술가(지원자)들의 수용성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단은 현장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향후 명단 공개 시 현재 직함 외에도 주요 예술 경력을 함께 기재하고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소액다건’식 지원에서 벗어나 트랙별 특성화 지원으로 체계를 전환할 계획이다.
지역에서는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던 전자음악 씬(Scene)을 불러내는 ‘굿판’이 열린다. 로컬 문화기획팀 ‘어반스트라이커즈 전주’가 다음 달 4일 오후 8시, 전자음악 공간 해상도와 해결 리스닝룸에서 다원예술 프로젝트 ‘제5회 BOLD: GOOD’을 개최한다. ‘제5회 BOLD: GOOD’은 전자음악과 시각예술, 문학이 결합된 프로젝트로, 그간 지역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던 전자음악 씬의 존재를 보다 직접적으로 가시화하고자 기획됐다. 전자음악과 디제잉이 예술적 감상보다는 유흥의 맥락으로만 소비돼 온 지역의 고정된 인식 속에서, 전자음악 씬이 마치 ‘없는 것’처럼 취급돼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단체는 이처럼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지역 씬의 부재를 한국적 정서와 종교적 전통인 ‘굿(巫堂)’의 언어로 돌파하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씬을 갈망하고 목격하고자 하는 바람을 모아 신을 불러내듯 지역 안팎을 연결하고 사람과 씬을 호출한다. 동양의 종교적 실천이자 한국의 무속 전통 속에서 굿은 소리와 몸, 제물과 염원, 분명한 목적을 통해 이 세계에 없는 것을 끌어들이는 능동적 행위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통적 태도를 차용해 회피나 이주가 아닌,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을 스스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핵심 정신으로 삼는다. 프로그램은 전자음악, 시각예술, 문학으로 구성된다. 음악 파트에서는 MINDWICH, XS, IF, CASHTRAY, SINGLE LEG, MOONICE, THANG, 3D3N, HANFLO 등 9명의 DJ가 참여해 각자의 개성을 담은 세트를 선보이며 굿판의 소리적 층위를 형성한다. 시각예술 파트에는 매드김(김성빈), 작호(최혁), 한준 등 3명의 청년 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은 ‘기원’이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관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미술 작업과 제단의 형식을 통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씬으로 전환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문학 파트에는 Q, WEOL DAM(월담)이 참여해 시와 글을 통해 공간 곳곳에 존재하지만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감각과 존재들에 언어를 부여하는 ‘언어적 기도’를 펼친다. 공간적 배경 역시 주목할 만하다. 단체는 그동안 ‘임대’ 현수막이 걸린 공실을 활용해 사람들이 머물지 않던 장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게릴라성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월 개소한 ‘공간 해상도’를 거점으로 지역 전자음악 씬의 지속적인 활성화를 도모한다. 제도와 관성적 시선 속에서 지워져 온 부유하는 씬들이 보다 단단한 기반을 마련하고 확장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지역에서 쉽게 마주하기 어려웠던 전자음악 씬을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다원예술 프로젝트 ‘GOOD’은 미성년자 입장이 제한되며, 현장에서는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자세한 사항은 공식 인스타그램(@bold.letusb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읍의 봄밤을 국악의 흥으로 물들일 무대가 마련된다. 정읍시립국악단은 3월 상설공연 ‘흥으로 여는 새봄’을 오는 25일 오후 7시 연지아트홀에서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전 출연진이 함께하는 길놀이로 문을 열며, 무용부의 ‘검무’, 창극부와 연주부가 함께하는 ‘비나리·액맥이’ 등 다채로운 전통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특히 국가무형유산 춘향가 보유자인 신영희 명창이 특별출연해 ‘만정제 춘향가’ 중 ‘사랑가’를 들려줄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이어 채향순류 장고춤과 남도민요 ‘삼월삼진날’, 실내악 연주곡 ‘아리랑 랩소디’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대가 펼쳐지며, 공연의 마지막은 전 단원이 함께하는 ‘진정한 봄’으로 마무리된다. 조용수 정읍시립국악단장 “새봄의 시작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흥과 멋을 살린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편 국악단은 다음 달 29일 같은 장소에서 문화산책 ‘소리의 정원’ 공연도 이어갈 예정이다.
우리는 왜 직선만이 정답이라고 믿어왔을까. 모든 것이 수직과 수평으로 정렬되는 세상에서,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인 직선을 거부하고 나만의 각도를 찾으려는 다섯 명의 예술가들이 있다. 남들과 똑같은 시선을 강요받는 현대인들에게 “삐딱함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개성”이라고 외치는 기획전이 24일부터 29일까지 교동미술관 본관에서 열린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함께 수학하며 각자의 조형언어를 다져온 김정해, 김효선, 최진희, 한정원, 해랑 박선영은 기획전 ‘삐딱善’을 통해 삐딱함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뒤집는다. 이들에게 삐딱함이란 중심에서 밀려난 결핍이나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세상을 응시하는 ‘가장 나다운 각도’를 의미한다. 작가들은 안과 밖, 자연과 인공, 이상과 현실 등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시선을 억지로 교정하거나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화폭에 담았다. 전시명의 핵심인 ‘선(善)’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가들이 말하는 선은 단순히 도덕적인 착함이나 이분법적인 판단에 머물지 않는다. 익숙한 질서를 의도적으로 비껴가며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작가들만의 감각적인 방식인 것이다. “조금 다르면 어때?”라고 묻는 듯한 이들의 삐딱한 시선은 우리에게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정하면서도 강렬하게 일깨워준다. 결국 ‘삐딱善’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방향이 빚어내는 긴장과 균형을 확인하는 자리다. 관람객은 작품을 통해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삐딱한 선’을 마주하게 된다. 규격화된 일상에서 벗어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각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하 재단)의 ‘2026년 문화예술육성 지원사업’ 선정 결과를 두고 예산 배분의 형평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지역 예술계를 대표해 온 주요 단체들이 대거 탈락하고 특정 인사가 연관된 단체들에 지원금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22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9억5000만 원이 투입된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심사에서 전북시인협회, 국제펜(PEN)문학 전북지부 등 지역 문단을 지탱해온 대표 단체들이 선정에서 제외됐다. 특히 한국문인협회 산하 14개 시·군지부 중 단 두 곳을 제외하고 전원이 탈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은 “지역 문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단체는 탈락시키고 소규모 단체들만 선정한 것은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지원이 중단되면 역사 깊은 단체들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성토했다. 장교철 전북PEN문학회장 역시 “문학인들을 구걸하는 처지로 몰아넣고 자존심을 짓밟았다”며 “객관적인 지표보다 심사위원의 입맛이 우선시되는 불투명한 심사기준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날을 세웠다. 올해 장르별 심의기준을 보면 문학분야 평가는 △계획의 구체성 및 타당성 40% △신청단체의 실행역량(사업실적 및 경력) 40% △발전기여도 및 파급효과 20%로 구성됐다. 실적과 경력 배점이 40%에 달함에도 지역 대표 문학단체들이 탈락하면서 심사 기준에 의문이 커지는 상황이다. 더욱이 "글을 통해 뜻을 전달하고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은 (신청서가) 문학작품과 다르지 않다”라는 심사평은 공공지원사업의 객관적 평가 기준이 심사위원의 주관적 잣대에 밀려났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반면 특정 인사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복수의 단체들이 명의만 바꿔 지원금을 중복 수령하는 행태는 전혀 걸러내지 못했다. 재단 이사직을 역임했던 한 인사가 개인 지원금을 받은 데 이어, 본인이 운영하는 다수의 단체까지 사업에 선정되면서 예산을 가져간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정통성을 지닌 단체에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재단이 특정 인맥의 예산 독식은 사실상 방치하면서 공적 기구로서 공정성을 저버렸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진 분야 신청 자격으로 ‘개인전 1회 이상’의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예술가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가로 활동 중인 한 예술인은 “성장의 마중물이 되어야 할 지원사업이 오히려 ‘자력 전시’를 요구하고 있다”며 “재단이 자금력을 갖춘 이들만 넘을 수 있는 문턱을 세워 예술가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현장 이해도가 낮은 외부 심사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심사 방식이 전문성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재단 심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홍승광 재단 문화예술본부장은 “올해 예산 증액분은 개인예술가 지원에 우선 배정했다”면서 “특정 인사의 중복 수혜 건은 내부에서 인지했으나 외부 심사위원들의 선정 결과를 임의로 조정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향후 현장 의견을 수렴해 성장 단계별 지원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덧붙였다.
대개 일제강점기, 새마을운동 시대에 생겨났지요. 간이역은 시설이 낡고 오래된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정의합니다. 이용객이 줄어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산간벽지 승부역도 왁자했었지요. 간이역, 이젠 영화나 소설이나 다큐나 시에서나 뚜우 뚜우 거립니다. 세월의 승부에서는 지고 추억의 승부에서는 살아남은 셈입니다. 수선화 촉인 듯 고개를 내밉니다. 그 봄 속으로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 봄 春 나루 浦 전라선 춘포역, 개찰구를 빠져나간 세월도 사람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건만, 이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역 아닌 역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큰 들이라서 일제강점기 대장촌(大場村), ‘오바무라’라 불렀지요. 익산에서 여수 가다 보면 동이리 다음 역이었고 전주에서 익산 갈 땐 삼례 다음이었고요. 1914년 기적을 울려 1996년 ‘춘포역’으로 이름표 바꿔 달고 1997년 간이역이 되었다가, 2007년 문을 닫았네요. 만경강변 벚꽃 흐드러진 어느 봄날 덕진역에서 타 춘포역에서 내린 적 있었지요. 만발했던 벚꽃도 봄나루 사공도 간 곳 모릅니다. 춘포역 플랫폼에 소리 없이 기적이 우네요.
전북특별자치도가 ‘K-문화수도’라는 청사진을 내걸고 있지만, 정작 도민과 소통하는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문화를 외면하고 있다. 대외적 홍보와는 달리 문화·예술 카테고리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특정 단일 사업보다 낮은 단계로 분류돼 있어 전북도가 내세우는 문화중심지로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된다. 19일 전북도 홈페이지의 분야별 정보를 살펴보면 △전북 고향사랑 기부제 △전북 복지 △저출생 대응 정책 △전북, 마이웨딩 △토지/교통 △전북 농업 등이 배치돼 있다. 하지만 도의 미래전략이라고 주장하는 문화는 메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도민들은 문화 관련 정책이나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방대한 공고문을 뒤지거나 홈페이지 하단에 배치된 관련 사이트 링크를 찾아 헤매야 하는 처지다. 반면 결혼지원사업인 ‘전북, 마이웨딩’은 분야별 정보에서 한번의 클릭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문화분야는 별도의 사이트가 있어서 홈페이지에 넣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도립미술관이나 문화관광재단 등 기관 홈페이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농업 등 다른 분야도 별도의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유독 문화·예술 분야만 메뉴에서 증발한 것은 행정 내부의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고 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광역단체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하다. 전남도나 경북도는 홈페이지 첫 화면부터 문화와 관광 메뉴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해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도는 2023년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문화 메뉴를 넣을지 고민하고도 결국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문화수도’를 외치면서도 행정 내부에서는 문화를 마이웨딩 사업보다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지역 문화계는 행정이 문화를 대하는 저급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역의 한 문화계 인사는 “거대한 축제 예산으로 생색내기보다 도민의 정보 접근성 같은 기본부터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홈페이지를 개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메인 메뉴에 문화를 배치하려면 전체적인 시스템 확인과 타·시군 사례 비교가 선행돼야 한다. 예산 편성 문제도 얽혀 있어 당장 개편은 어렵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북도는 전북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홈페이지에 ‘문화관광'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전주문화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열린 ‘미래전략 포럼’ 종합토론에서 재단의 정체성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단순한 사업 수행기관을 넘어 지역문화정책을 설계하는 주체로의 전환 필요성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19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이번 포럼은 이흥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의 ‘지역 공진화 문화전략’과 라도삼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의 ‘AI시대, 지역과 문화기획’ 발제로 시작돼 향후 문화정책 방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했다. 종합토론은 원도연 원광대 교수를 좌장으로 김은정 전북일보 콘텐츠기획실장, 김영주 가톨릭대 교수, 박영준 문화기획자, 설지희 프롬히어 대표가 참여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갔다. 김은정 실장은 “문화재단의 성과는 사업 규모 확대가 아니라 지역문화 생태계의 건강성과 문화단체의 자생력으로 평가돼야 한다”며 공모사업 중심 구조 속에서 재단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교수는 “AI 시대에는 기존의 산업·이벤트 중심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지산학 협력, 문화데이터 구축, 실험적 플랫폼 조성 등 ‘공진화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영준 문화기획자는 “지역에 축적된 서사와 진정성이 문화의 본질”이라며 단기 성과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창작 인큐베이팅과 지속적인 지원 체계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지희 대표는 시민 참여 확대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전주는 문화 향유 역량이 높은 도시”라며 시민이 기획과 소비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와 거버넌스 구축 필요성을 언급했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문화재단이 공모사업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정책 설계와 생태계 조성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행정과 예술가, 시민을 연결하는 매개 조직으로서 ‘플랫폼’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이번 포럼은 전주문화재단 20년을 계기로 지역문화정책의 방향을 재점검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생태계 구축을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재단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에 따라 전주 문화정책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우리소리 우리가락’이 올해 첫 무대로 색다른 음악적 실험을 선보인다. 도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장르 ‘탱고’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현대 음악으로 풀어낸 공연이 관객을 찾는다. 우진문화재단은 20일 오후 7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제152회 ‘우리소리 우리가락’ 공연으로 페탈예술기획의 ‘세한송백: 겨울을 춤추는 푸른 열정’을 선보인다. 전주시가 후원하는 이번 무대는 클래식과 탱고가 결합된 ‘누에보 탱고’를 통해 동시대 청년 예술가들의 내면과 시대 감각을 풀어낸다. 공연 제목인 ‘세한송백’은 ‘추운 계절이 와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의미처럼,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예술적 열정을 상징한다. 페탈예술기획은 이를 ‘겨울을 이기는 춤’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해, 관객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우리소리 우리가락’이라는 이름에 대한 재해석에서 출발했다. 페탈예술기획은 “우리 소리라고 하면 흔히 국악을 떠올리지만, 한국인의 정서인 ‘한’을 현대적인 누에보 탱고와 결합해 표현하고자 했다”며 “정서적으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선택한 음악적 기반은 누에보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작품들이다. 피아졸라의 음악에는 노동자 계층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만큼, 오늘날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체 측은 “당대의 아픔이 담긴 음악을 통해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건네고 싶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은 자작곡과 피아졸라 작품을 넘나들며 구성됐다. ‘Rdando lentamente’를 시작으로 ‘항구의 겨울’, ‘Escualo’, ‘Cafe 1930’, ‘천사의 죽음과 부활’ 등 서정성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무대가 이어진다. 바이올린·첼로·피아노 등 클래식 악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탱고 특유의 강렬한 리듬과 감정선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2018년 결성된 페탈예술기획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젊은 예술가 그룹이다. 학교 선후배로 구성된 이들은 클래식과 무용을 결합한 융합 공연을 통해 자신들만의 색을 구축해 왔다. 최근에는 창작곡 EP ‘흑백개화’를 발매하며 음악적 정체성을 확장하고 있다. 단체는 이번 무대에 대해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전북은 국악의 기반이 매우 탄탄한 지역인 만큼, 클래식 기반 팀으로서 선정된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며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탱고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마음의 충격’으로 다가가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관람료는 1만 원. 공연 예매는 전주티켓박스를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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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교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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