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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네 살 징용자, 아버지의 기록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은 서랍장 깊숙한 곳에서 두툼한 종이(?)를 발견했다. 검은 철끈으로 묶여 있는 색바랜 원고 뭉치였다. 붉은 칸이 쳐진 200자 원고지를 빼곡히 채운 글씨. 열네 살에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던 아버지의 육필 수기였다. 수십 년이 흘러 아들은 칠순을 훌쩍 넘었고, 90세까지도 손가락 하나로 자판을 두드리며 교회 연대사를 집필하셨던 아버지는 올해 96세,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지내신다. 일제 강점기에는 어린 나이에 징용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해야 했고,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왔지만 5년 만에 터진 한국전쟁 때는 참전용사가 되어 분단국가 비극을 온몸으로 겪어낸 굴곡진 삶. 그 자신 노년을 맞은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지성호 씨의 소설 <아버지는 14세 징용자였다>가 출간된 배경이다. 아버지(지재관)가 남긴 육필 수기와 방대한 분량의 기록이 바탕이니 형식은 소설이지만 실화다. 그는 지난해, 아버지의 강제징용 길을 따라 일본의 강제노동 현장을 답사했다. 부산항에서 시모노세키로, 도쿄와 요코하마를 거쳐 아오모리에서 쓰가루 해협을 건너 홋카이도 산루광산까지. 답사 여정을 마치며 그는 ‘역사 안에 사는 삶과 역사 밖에 사는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저자는 전주에 살면서 30여 년 동안 대학에서 음악이론과 작곡을 가르쳤고, 수 편의 음악극과 창작오페라 곡을 발표한 작곡가다. 오직 한길만 걸어온 그는 왜 굳이(?) 소설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을까. 사실 그의 글은 징용으로 끌려가 가족과 헤어져 강제노동의 고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시간이 살아 숨 쉬는데도 여전히 강제징용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과 그런 상황을 안일하게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행태에 대한 분노가 바탕이다. 최근에도 지난 2004년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일본 시민단체가 설치한 군마현의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추도비가 강제 철거됐다. 추도 모임 중 ‘강제 연행’이라는 표현이 정치적 논란을 가져왔다는 것이 철거 이유다. 비슷한 시기, 경남 거제에서는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거제시가 불허했다. 극우단체들의 민원과 이의제기 때문이란다. 묘하게 닮아 있는 상황을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도 없다. 그래서인가. 저자의 물음이 더 또렷해진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징용자들의 피로 새긴 고통 앞에서, 그 수난사가 시간 속에서 상투화되어 박제화된다면, 그리하여 징용자들의 고통과 죽음과 그 인생이 역사의 지층에 화석처럼 묻혀 버리고 만다면, 무엇보다 그 기억조차 불편하다고 한다면, 치욕스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4.02.06 17:47

소멸의 시대, 학교 합치기

입춘(立春)이 지났다. 새봄이 오면 지난해 여름 새만금잼버리가 열렸던 부안군 하서면에서는 아주 특별한 학교가 새로 문을 연다. 하서면 내 백련초와 장신초, 하서초등학교 등 3개 작은 학교를 하나로 합친 통합 하서초등학교다. 이들 3개 학교 통폐합은 지역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추진됐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지난 2011년 하서면 주민들이 교육청에 학교 통합을 요구했고, 설문조사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의지를 확인한 교육청에서 행정절차에 나섰다. 통합학교 부지는 접근성이 좋은 장신초, 학교 명칭은 지역의 정체성 유지 측면에서 하서초로 결정됐다. 저출산 시대, 농촌 작은 학교의 출구 없는 위기를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남원에서도 학생 수 감소로 위기에 몰린 농촌 작은 학교들이 합치기에 나섰다. 통합 권역이 훨씬 넓어졌다. 대상 학교는 대강중, 수지중, 금지중, 송동중으로 학교명과 같은 이름의 4개 면 지역에 딱 하나씩만 있는 중학교들이다. 전북에서 읍·면·동을 뛰어넘는 지역 단위의 대규모 통합이 시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면 지역에 있던 3개 초등학교가 하나로 합쳐졌고, 각 면마다 하나씩 있는 중학교가 얼마 후면 인근 4개면을 합쳐 하나만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인구절벽 시대, 소멸 위기에 몰린 우리 농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농촌학교뿐만이 아니다. 신도심으로의 인구 이탈로 농촌학교와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은 원도심 학교에서도 학교 합치기가 시작됐다. 해마다 줄어드는 학생 수 문제를 걱정해오던 전주 완산초등학교와 곤지중학교는 지난해 하나로 합쳐 통합 운영 학교가 됐다. 학교급이 다른 초·중학교 통합 운영이라는 점에서 부안·남원의 통합 사례와는 구별된다. 학교의 위기는 수도 서울에도 닥쳤다. 학생 수가 줄어 문을 닫는 학교가 생기면서, 대안으로 인근 중학교와 고등학교, 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 각 학교에서는 새 학기 채비가 한창하다. 올해도 입학생 수에 온통 촉각을 세운 학교가 적지 않다. 작은 학교 통폐합 문제는 1980년대 이후 줄곧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학교 통폐합이 지역공동체 붕괴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학교와 상관없이 지역사회는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이제 학교가 아닌 지역소멸 걱정이 우선이다. 교육청과 지자체,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작은 학교 현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전북형 적정규모 학교 육성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작은 학교 문제는 교육계의 오랜 딜레마다. 지금도 이 의제를 꺼내든다면 숱한 논란과 날선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질 수 있다. 그래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숙제다. 지역 단위 작은 학교 통합 논의는 부안·남원에 이어 올해 전북지역 곳곳으로 확산될 것이다. 피하거나 배척할 일이 아니다. 지역사회 공론화 과정을 통해 혜안을 모아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02.05 17:34

22대 총선과 김관영지사

여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22대 총선이 6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이 현재처럼 과반의석을 차지하면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져 윤석열 대통령이 식물대통령으로 전락, 조기 레임덕을 맞으면서 자칫 파국을 맞을 수 있다. 반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끈 국민의힘이 승리하면 제1당이 되면서 윤 대통령이 날개를 달아 보다 강력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잼버리로 홍역을 치른 김관영 지사도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도정운영이 바뀔 수 있다. 운좋게 무혈입성해서 승승장구했던 김 지사가 뜻하지 않게 잼버리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사상초유의 마이너스 국가예산 확보라는 오점을 남겼지만 특자도 출범 후에도 이를 극복할 전기를 마련치 못하고 있다. 김 지사는 김앤장 출신 변호사답게 모든 것을 성과로 보여주겠다면서 '도전경성(挑戰竟成)'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한상대회를 전주로 유치하면서 지난해 10조원에 가까운 새만금투자유치를 성사시켰다. 정운천·한병도 의원의 도움을 받아 특자도를 출범시켰지만 아직도 윤석열 정권 기저에 부정적인 기운이 가시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막판까지 이원택 의원의 협조로 삭감된 예산부활을 위해 여야와 기재부를 넘나들면서 뛰었지만 전북정치력의 존재감이 약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김 지사가 이재명 대표의 영입인재 1호로 복당되면서 지사직을 거머쥐었지만 재선의 김윤덕·안호영 의원과는 도지사 경선을 치른 적대적 관계라서 아직도 겉으로만 같은 편이지 실제로는 각자 도생하는 관계다. 김 지사가 지사선거 때 군산서 가장 표가 적게 나왔다. 신영대 의원과 강임준 시장이 한편으로 똘똘뭉쳐 엔티로 작용해 표가 나오질 않았다. 지사 취임 이후 새만금을 이차전지 특구로 지정 받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도 상황이 반전되지 않아 김 지사와 정치적으로 가까운 채이배 후보가 김의겸·신영대 의원에 밀리고 있다. 정치인은 지역기반이 중요하다. 지역에서 밀어주고 끌어 주느냐의 여부가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김 지사가 고향 군산에서 중진인 강봉균 의원을 제치고 재선, 일약 정치적인 기린아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의 정치 스타일이 조직 보다는 개인역량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어서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특히 도내 유권자 3분의1 이상을 점하는 전주 여론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가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김윤덕과 김성주가 3선에 성공하면 차기 지사 선거전에서 강력한 라이벌이 될 수 있다. 반면 5선에 도전하는 정동영이 승리하면 예전 한솥밥 먹었던 관계로 더 협력관계가 돈독해질 것으로 낙관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김 지사가 일로서 성과를 나타내 도민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해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그의 입지도 엇갈릴 수 있다. 특히 중앙정치의 틀이 바뀌거나 국회의원으로 누가 뽑히느냐에 김 지사의 앞날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도민들이 잼버리 때 겪었던 아픔을 허투루 여기지 말고 중앙정치무대에서 전북정치권의 존재감 부각을 위해 열심히 일할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해야 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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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4.02.04 17:41

'골칫거리'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의 15%가 최근 1년 새 지방의원에게 부정부패에 얽힌 부당한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국민 권익위 조사 결과 같은 기간 전체 공공 부문 근무자의 2%만이 비슷한 경험을 한 것에 비하면 무려 7배가 넘는 수치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지방의원의 모럴 해저드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들은 계약 업체 선정과 이권 업무에 개입해 월권을 일삼고 수시로 갑질을 하며 불응하면 보복성 뒤끝도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도내 자치단체 한 곳은 응답자의 37%가 시의원의 부정부패를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이번 조사에서 빠진 군·구 의회까지 포함하면 지방의원의 궤도 이탈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방의원 의정활동이 이권 개입의 통로로 악용된 지도 오래다. 그들 직무와 사적 이익 연관성이 높아 걸핏하면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공적인 의사결정에 부정부패 소지를 줄이고 공직사회 투명성을 높이려고 마련한 이해충돌 방지법도 역부족인 상태다. 사리사욕을 노리고 우월적 지위를 통해 겁박하는 그들을 법으로 강제하기엔 한계가 있다. 직책을 내려놓고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 더욱 힘들다. 전북 도의원 40명 중 30명이 겸직 신고를 해 이해충돌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간 5600만원의 의정비를 받는 그들 중 겸직 직책만 8개에 달하거나 다양한 사업 운영과 관련해 보수를 받는 이도 12명이나 된다. 시군 의회 상황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꼴불견 그 자체다. 의원 개인의 가족 회사가 행정기관의 수의계약을 통해 일감을 무더기 수주한 경우가 허다하다. 해당 상임위 소속 부서에 인사 청탁은 물론 물품 강매 요구도 다반사다. 마치 집행부와 의회가 한통속인 양 오해 받기 십상이다. 의회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 할 집행부 입장에선 후환이 두려워 마지못해 응하거나 미리 ‘보험’을 드는 차원에서 선물 보따리를 풀기도 한다. 최근 논란이 된 군산시의원의 이해충돌 의혹이 대표적이다.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조경업체가 시의원 배우자와 사무실을 공유하고 수의계약으로 37건의 3억2500만원 상당의 일감을 따냈다. 해당 시의원이 관련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건설위원 소속이란 점에서 더욱 의심을 샀다. 지방의회 무용론이 오래전부터 제기된 데는 이런 부정부패뿐 아니라 도덕성 일탈, 자질 부족 등이 주민 신뢰를 잃은 탓이다. 코로나 기간에도 틈만 나면 관광성 해외 연수를 추진하고 실제 연수 중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행이 말썽이 됐다. 몇 해 전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김제시의회 불륜 사건 당사자인 현역 의원이 최근 스토킹과 폭행 사건에 휘말려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서민 경제가 최악인 상황에서 전주, 군산시의회가 의정 활동비 최대 인상폭인 150만원 카드를 꺼내 들자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지방의원 스스로 그들의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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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4.02.01 18:28

아날로그 교육의 회귀

미국의 각 주들이 필기체 의무교육법 만들기에 나섰다. 그들의 필기체 의무교육법은 초등학생들이 필기체를 읽고 쓰게 하는 교육을 의무화한 법이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미국에서 가장 초등학생 숫자가 많은 캘리포니아주의 필기체 교육 시행을 소개했다. 지난해 10월, 필기체 의무교육법을 제정했던 캘리포니아주 초등학생 260만 명이 1월부터 필기체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미국은 2010년대 들어서 각주의 ‘교육 공통 핵심 기준’에서 필기체 의무교육 조항이 빠지며 필기체를 가르치는 학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가 4~5년 전부터 다시 의무교육으로 바꾸는 주가 늘고 있다. 스물한 번째로 필기체 의무교육을 채택한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다섯 개 주가 의무교육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학교 교육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손글씨 쓰기가 이제는 의무교육법으로 제정되어야 하는 현실의 배경에는 교육 현장을 주도하는 디지털 기기 확산이 있다. 사실 초등학생들에게 손글씨 쓰는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태블릿PC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이 읽기 능력 등 기초 학력을 저하하는 원인이 된다는 우려가 실제로 증명되면서다. 과도한 디지털화가 문해력과 학력 저하를 가져온 환경에 직면한 나라들이 디지털 교육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스웨덴은 지난 2017년 유치원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했으나 최근, 기존 방침을 백지화하고 아예 여섯 살 미만 어린이에 대한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을 중단시켰다. 디지털 기기 대신 책을 읽고, 종이에 글씨를 쓰는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종이책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학교 도서 구입비를 대폭 늘려나가는 정책도 내세웠다. 디지털 기기를 교실에서 퇴출하는 나라들도 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2018년부터 아예 학생들이 학교에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제도화했다. 이탈리아, 핀란드, 네덜란드 등도 이미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했거나 모바일 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디지털 교육에 앞장섰던 나라들이 교육 방식을 아날로그로 되돌리는 배경에는 필기체 교육이 뇌와 인지 발달을 촉진하고 독해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실질적인 조언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우리나라는 교육 현장 전면에 디지털 교육 확대를 앞세우고 있다. 우리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 교육을 먼저 시행했던 나라들의 교육 정책 변화를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적 교육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더 절실해 보인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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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4.01.30 18:04

새만금 부침과 전북굴기

굴기(崛起)란 산이 우뚝 솟는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서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11월 중국중앙방송의 경제채널(CCTV-2)을 통해 방송된 12부작 역사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스페인, 영국 등 강대국의 조건을 다뤘는데 결론은 그 나라의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거다. 이후 역사굴기, 반도체굴기, 축구굴기 등 가히 굴기 신드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은 전북굴기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는 도민들이 많은데 구체적인 돌파구는 새만금 굴기 여하에 달려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30년간 새만금의 부침은 곧 전북의 부침이었다. 거대하지만 일개 사업에 불과하지만 새만금은 전북의 명운을 좌우할 핵심 사안이다. 1991년 11월 착공 이래, 2010년까지 19년 동안 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단체와의 마찰과 기나긴 법정소송으로 인해 2번이나 사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1999년 1월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는 ‘새만금사업 전면재검토’ 선언을 하는데 이는 결국 환경단체의 소송으로 이어졌다. 그때를 즈음한 시기에 김제공항이 일부 정치인과 지역민의 반대 등으로 무산위기에 빠진다. 결과적으로 이는 훗날 공항이 없는 전북의 단초가 된다. 유 지사가 강단있게 일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새만금과 공항을 밀어부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전북지사가 현직 대통령인 DJ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터여서 그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강만금’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새만금에 애착을 가졌던 강현욱 지사는 임기내내 길고 긴 소송전이 계속되는 와중에 결국 끝물막이 공사가 완료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내부개발 이었고, 핵심은 예산이었다. 이명박 정부때 김완주 당시 지사는 용비어천가 성격을 띈 소위 ‘새만금 편지’를 쓰게 되는데 도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됐다. 근본 취지는 새만금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고 싶은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나 결과적으로 꿀도 못먹고 벌만 쏘이는 격이 됐다. 당시 전북도에서 대외적으로 나가는 모든 문서는 반드시 기획실의 사전 검토를 받았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도지사가 대통령에게 보낸 이 편지는 공식적인 검증 절차가 없었고 이게 결국 독이 됐다고 한다. 송하진 지사때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새만금 예산은 파격적으로 증가했는데, 현 정부들어 초대형 악재인 잼버리 사태로 인해 새만금사업은 존폐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결국 김관영 지사를 중심으로 도민들의 힘이 모아지면서 일부가 기사회생했으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빠르면 한두달 뒤 새만금SOC 용역 결과가 나온다. 기업유치에 주안점을 두게 될 새 프로그램 발표 후 새만금사업의 부침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한 과정을 거쳐왔으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전북굴기를 좌우할 새만금사업은 정작 지금부터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4.01.30 15:12

GTX 시대, 전주 BRT

‘출퇴근 30분 시대’를 향해⋯. 전주시와 정부가 대중교통체계 혁신방안을 각각 발표했다. 전주시는 ‘BRT(간선급행버스체계)’ 신설, 정부는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확장 계획이다. 전주시는 올해 ‘도로 위의 지하철’로 불리는 ‘BRT’를 착공한다. BRT는 도심과 외곽을 잇는 주요 간선도로 중앙에 정류장과 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해 급행버스를 운행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도착정보시스템과 버스우선 신호체계·환승터미널 등 지하철 시스템의 장점을 갖춰 버스의 정시성과 신속성을 높일 수 있다. 전주시는 새해 BRT 등 혁신적인 대중교통 운영체계 구축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25일 밝혔다. 2025년까지 1단계로 기린대로 10.6km 구간에 BRT를 구축하겠다는 게 골자다. 예정대로 사업이 진행된다면 전주도 오는 2025년 말이면 ‘BRT 시대’를 열게 된다. 전주시가 BRT 계획을 발표하던 날, 정부는 ‘전국 GTX 시대’ 구상을 공식화했다. 현재 추진 중인 GTX-A·B·C 노선을 예정대로 착공·개통하고, 노선을 충청권과 강원권으로 연장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출퇴근 30분 시대’를 열고, 이후 충청·강원권 1시간 연결을 통해 ‘광역경제생활권’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또 수도권과 지방의 교통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방 4개 대도시권에도 GTX와 같은 수준의 광역급행철도(x-TX)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다만 지방 광역급행철도는 민간투자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GTX 확장은 수도권의 공간적 범위를 다시 넓혀놓을 게 뻔하다. 수도권 블랙홀을 더 키워 지방소멸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있다. 그나마 전북은 GTX 확장 계획에 끼워 맞춰 발표된 지방 광역급행철도사업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통격차를 해소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강조했지만 격차는 더 커지게 생겼다. 전북에서 그나마 새로운 교통체계로 눈길을 모은 게 전주시가 밝힌 BRT다. 전주시민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이미 20년 전에 국내에 도입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도시와 광주·대전·세종·부산 등 대도시에서 진작 시행하고 있는 교통체계다. 그렇다고 BRT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BRT 도입의 목적인 대중교통(버스) 이용률을 높이지 못한다면 시민에게 불편만 안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 도심 간선도로의 2~3개 차로를 버스에게 내주어야 하는 만큼 축소된 도로 및 횡단보도를 이용해야 하는 승용차와 택시, 보행자에게 불편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통은 의식주만큼이나 중요한 서민 생활의 핵심 요소다. 공교롭게 GTX와 전주 BRT사업 계획이 같은 날 발표되면서 비교 대상이 됐다. 오랜 준비 끝에 올해 첫발을 내딛는 전주 BRT가 뒤쳐진 전북 교통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4.01.29 15:14

한옥마을 케이블카 설치

전주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입소문을 타고 한옥마을을 오지만 특별히 보잘 게 없고 즐길만한 것이 없어 숙박은 안하고 타 지역으로 떠나간다. 지금 관광의 대세는 보는 것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체험형이 주를 이룬다. 전주는 한옥마을 이외에는 특별히 가볼만한 곳이 없어 반나절 관광권 밖에 안된다. 이 때문에 한끼 정도만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 순대국밥 한정식으로 떼우고 떠나버려 관광수입도 많이 올리지 못한다.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대규모 한옥단지를 조성해 관광객을 불러 모아 전주가 갖는 매력이 차별화 되지 않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경유관광지로 전락했다. 전주 한옥은 대부분이 일제 때 지어진 낡은 건물로서 문화재적 가치도 높지 않아 호감도가 낮다. 다만 생활형 한옥이어서 아파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체험공간으로 활용, 그 명맥을 잇는 정도다. 전주시가 그간 나름대로 관광객 머무는 시간을 늘려 체류형숙박관광지로 만들려고 노력을 했지만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한옥마을 경기전 전동성당을 거쳐 남부시장 전라감영 객사 등으로 동선을 옮기도록 투자했지만 관광객의 동선이 거의 한옥마을에 멈춰있다. 특히 먹거리도 다른 관광지와 특색 없이 비슷하고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집도 질이 갈수록 하향평준화 되어 인기가 시들해졌다. 예전에는 전주음식을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명맥을 유지하는 업체들이 갈수록 사라져 발길이 끊어지고 있다. 장인들의 손맛으로 그 명성을 날렸던 한정식도 반찬가짓수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져 지역민들까지도 외면, 갈수록 영업이 안된다. 이처럼 자체소비가 선순환구조를 이루지 못해 빈곤의 악순환 마냥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전주종합경기장에 컨벤션센터를 건립해 관광산업을 활성화 시키겠다고 우범기 시장도 다짐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전임자가 뒤범벅 해놓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야간 경관조명이 제대로 안돼 밤 9시가 지나면 적막강산을 이룰 정도로 어둡고 고요하기 그지 없다. 시내 중심부에 루미나리에가 설치돼 있지만 일부에 그쳐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시민의 안전 확보를 위해 가로등부터 LED로 전면 교체, 조도를 높여야 한다. 여기에 한옥마을서 기린봉을 거쳐 아중호수로 연결하는 3Km의 케이블카를 빨리 추진해야 한다. 여수시도 돌산대교에서 내항을 거쳐 오동도에 이르는 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한 것이 대박나 관광명소가 되었다. 목포도 유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지금은 천혜의 관광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호텔이나 위락시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4계절 전천후 관광지로 활용하는게 더 중요하다. 아무튼 전주천에 유지관리수를 상류에서 계속 흘려 보내 뷰를 살리고 전주천과 삼천을 준설, 물길을 살려 나가도록 해야 한다. 시멘트로 가교를 만들어 덕진연못의 정취를 망쳐 놓은 곳을 살려내면서 전주랜드마크가 될 타워가 대한방직터에 빨리 들어서도록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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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4.01.28 17:29

전략 공천의 셈법

- 전주을 선거구가 4월 총선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의 전략 지역구로 지정되면서 전략 공천 가능성까지 거론되기 때문이다. 정운천 양경숙 강성희 의원 등 3명의 현역이 뛰어든 데다 강력한 지지 기반의 민주당에선 6명의 예비 후보가 경쟁하는 양상이다. 이런 구도에서 전략 공천이 불거지자 그에 따른 셈법이 복잡해 선거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고 지구당에 대한 관행적 조치를 넘어 실제 전략 공천으로 이어질지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그런 가운데 전략 공천의 배경을 궁금해하며 다소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부정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자칫 역풍을 불러 선거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 상대방 후보 보다 당선 가능성이 낮거나 전략상 꼭 차지해야 할 선거구에 거물급 인사를 투입해 공천하는 방식이다. 가끔 당선시켜야 할 인물을 강세 지역에 배치해 금배지를 달아주는 경우에도 이 카드를 꺼내 든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전략 공천 기조에 전주을 선거구가 부합하느냐 여부다. 민주당에선 국민의힘 정 의원, 진보당 강 의원과의 3자 대진표가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전통적 우세 지역에다 예비 후보들이 오래전부터 표밭을 가꿔온 터라 바닥 민심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다 전북은 텃밭인 만큼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전체 선거 흐름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 오랜 동안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전주을의 최근 민심 추이를 보면 답이 나온다. 지난해 4월 재선거에서 탄탄한 지지층을 갖고도 후보를 내지 못할 만큼 민주당 시선이 곱지않은 데다 투표율마저 역대 최저치인 26.8%를 기록했다. 이곳은 사실상 재선 국회의원을 불허할 만큼 유권자의 정치 의식이 높고 중산층이 많아 섣불리 판세를 점칠 수 없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 정서를 감안하면 결코 만만치 않은 본선 대결에서 끈끈한 조직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다시 말해 이탈 세력이 발생해 기존 선거 전열이 흐트러지면 3자 구도의 팽팽한 싸움에서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전략 공천의 부정 이미지는 이른바 낙하산 공천이다. 이로 인해 경선 자체가 배제됨으로써 후보 반발, 지역 민심 이반의 후폭풍이 거세다는 점이다. 전주을은 과거 뿌리 깊은 경선 갈등에서 비롯된 앙금이 남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전략 공천 강행으로 탈당과 무소속 출마, 역선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위험 부담이 크다. 더욱이 전략 공천은 상향식 정당 민주주의에 역행할 뿐 더러 경선 무산에 따른 해당(害黨) 행위에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런 돌출 변수를 최대한으로 억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바로 경선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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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4.01.25 17:28

전두환, 이회창, 한동훈

자칫 여권 대분열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극적으로 만나며 양측 간 갈등이 하루 만에 해빙 무드에 들어갔다. 충남 서천시장의 화재현장을 찾아 피해주민 지원대책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다. 김건희 여사 ‘명품 백’ 논란 처리 방안을 놓고 한 위원장의 사퇴까지 거론됐던 양측 간 대립은 극적으로 수습되는 분위기다. 분열하면 여권이 공멸할 것이란 우려가 배경에 깔려있음은 물론인데,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관계는 앞서 당을 이끌었던 이준석, 김기현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다. 이날 행사장의 사진 한 컷이 눈길을 끈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향해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여 인사하는 장면을 두고 친야·친여 네티즌 간 설전까지 벌어졌다. 악수 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 어깨를 한 차례 툭 두드렸다. 친야 네티즌들은 “대통령 앞에 굴복했다”는 뉘앙스로 조롱한 반면, 친여 네티즌들은 한 위원장이 과거 야권 관계자는 물론 어린이에게도 마찬가지로 ‘90도 인사’를 했다며 반박했다. 권부의 중심에 등장한지는 얼마되지 않지만 사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끈끈한 동지이자 주군과 집사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호사가들은 이들의 관계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의 관계와 견주는 이들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비슷한 점이 없지도 않다. 박정희- 전두환은 14살 나이 차이가 났는데,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나이도 정확히 13살 차이가 난다. 조직속에서 수십년동안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끈끈한 관계가 이어졌기에 주군의 그림자조차 함부로 밟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총선 과정에서 한동훈 위원장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YS 시절 목이 잘리고도 정치적으로 확 커 버린 이회창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끝까지 주군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면서 훗날을 도모하느냐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오래전 흥미로운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제5공화국이 출범한 1981년 직후 허화평, 허문도, 허삼수를 일컬어 사람들은 소위 3허라고 불렀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시절 비서실장 허화평, 인사처장 허삼수와 전두환 중정부장 비서실장이었던 허문도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의 위세는 가히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 하지만 창업하는 이 따로있고, 수성하는 이 따로 있는 법이다. 신군부 권력창출의 디자이너 역할을 했지만 맨 먼저 허화평 정무수석이 나가 떨어졌다.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감히 이순자 여사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결정타였다. 애완견들은 거울을 보고 난 뒤 자신이 사람이 아닌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권력 핵심에서 밀려나 외유를 떠나야만 했던 허화평은 자신이 주인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일단 봉합은 했으나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공천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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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4.01.24 10:02

'연대'해야 하는 이유

유럽이 난민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은 오래전부터다. 초기에는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지 않았지만, 유고슬라비아 등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이 늘어나면서 유럽을 향한 난민 대열은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쯤부터는 난민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른바 대규모 난민 이동 사태가 이어진 것인데, 그 중심에는 시리아 내전으로 고국을 떠나는 시리아 난민들이 있었다. 시리아 내전은 ‘아랍의 봄’(2010년 12월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예멘 시리아 등 아랍 전 지역으로 번진 민주화 운동) 이후 지속되고 있는 내전이다. 한때 미국과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이들 국가의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되기도 했던 시리아 내전의 피해는 참혹하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2021년 7월 기준 사망자는 60만 명에 가깝고, 1,200만 명이 생존을 위해 시리아를 떠났단다. 내전이 있기 전인 2010년 시리아 인구가 2,100만여 명이었으니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되어 세계를 떠돌고 있다는 이야기다.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 정착해야 하는 난민들의 이야기. 자본주의와 국가폭력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온 노장 켄 로치 감독은 자신의 마지막 시선을 이들 난민들의 삶에 투영시켰다. 최근 개봉한 <나의 올드 오크(원제 The Old Oak)>다. 76회 칸영화제가 주목한 로치 감독의 은퇴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석탄 채굴로 한때 번성했으나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쇠락한 영국 북동부 마을에 시리아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다. 공공시설은 하나둘 문을 닫고 먹고살기조차 빠듯해진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찾아온 시리아 난민들. 주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분노하며 낯선 난민들을 경계하고 힐난한다. 사실 가진 것 없는 주민들과 ‘거대한 적의와 마주해야 하는’ 난민들이 처한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갈등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영화는 노동자 계급과 빈민들의 삶을 주목한 <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 리키>에 이어지는 로치 감독의 ‘영국 북동부 3부작’ 중 마지막 영화다. 영화의 메시지는 그래서 더 분명하지만, 전작들이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키는 영화였다면 <나의 올드 오크>가 이야기하는 것은 용기와 저항, 그리고 연대의 힘으로 만나는 ‘희망’이다. 로치 감독의 마지막 선물을 기다렸던 관객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먼 이야기 같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의 울림이 크다. 지난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전석 매진에 이어 본격적인 개봉 이후에도 관객들의 관심이 높다. 영화를 더 널리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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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4.01.23 18:35

특별시, 특례시, 특별자치도

처음은 역시 서울이었다. 명실공히 한반도에서 가장 특별한 곳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광복 직후 행정구역 명칭에 굳이 ‘특별(特別)’이란 단어까지 붙였다. 이후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 직할시·광역시의 명칭이 부여됐지만 20세기까지 ‘특별’이 붙은 행정구역은 서울특별시가 유일했다. 21세기 들어 ‘특별한 곳’이 늘었다. ‘호칭(명칭) 인플레이션’이 행정구역에까지 확장된 것이다. 지방자치법과 각각의 특별법을 근거로 특별자치시·도가 잇따라 출범했다. 고도의 자치권 보장과 특례 지원을 통해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2006년 제주에 이어 세종(2012년)과 강원(2023년)이 각각 특별자치시·도가 됐다. 그리고 지난 18일에는 전북특별자치도가 공식 출범했다. 서울을 제외하면 4번째 특별 광역자치단체다. 여기에 경기북부와 충북에서도 특별자치도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에 특별하지 않은 곳은 없다. 하지만 희소성이 없는 특별은 무색해진다. 별로 특별하지 않게 된다. 민선 7기 전주시가 공을 들였지만 실패한 ‘특례시’도 2022년 1월 일제히 출범했다. 인구 100만 이상인 대도시가 기초자치단체의 법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광역시에 준하는 행재정적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지방자치단체다. 경기도 고양과 수원·용인, 그리고 경남 창원시 등 모두 4곳이 특례시가 됐다. 이렇게 명칭에 새로 특별, 특례가 붙은 자치단체는 정말 특별해질 수 있을까? 18일 출범한 전북특별자치도 도민들의 최대 관심사다. 전북은 중앙정부의 특별한 재정지원과 각종 규제완화, 행정특례를 통해 지역발전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특별자치도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지난해 말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및 글로벌 생명경제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민의 기대도 커졌다.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중앙정부로부터 다양한 재정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재정특례’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특별법에 핵심이 빠졌다. 대규모 지역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가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아 원대한 꿈만 꾸다 허무하게 무산된 경우가 허다했다. 대한민국에서 수도권 밖은 모두 벼랑이다. 지금 특별한 곳, 위기에서 안전한 곳은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중심에 둔 수도권뿐이다. 특별시 서울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다가 수많은 위성도시와 신도시를 아우르는 매머드 생활권, 수도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곳에 대한민국 전체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저출산 시대,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까지 겹친 지방은 소멸 위기다. 결국 수도권공화국에서 균형발전 정책으로 내놓은 초광역권 전략 중 하나가 특별자치도다. 특별자치도가 됐다고 해서 특별한 기회, 새로운 시대가 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만들고 열어야 한다. 바뀐 명칭처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지역정치권과 도민의 몫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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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01.22 18:59

전북자치도시대의 첫 총선

상당수 후보가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이번에도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거의 당선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4·10일이 총선일이지만 전북에서 본선거는 거의 형식적으로 치러진다고 보면 된다. 왜 전북이 30년 이상을 특정당 중심으로 되었을까를 곱씹어봐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여야 경쟁을 통해 발전해 가는 정치 시스템인데 전북은 이같은 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선거 때 마다 나타나는 지역주의를 망국병이라고 칭하면서도 고칠 생각을 안한다. 충청도나 강원도는 그 지역 주민들이 경쟁의 원리를 일찍부터 도입, 선거 때마다 피 튀기는 싸움판을 만들었다. 그 결과 여야가 공존하는 경쟁의 정치판이 만들어지면서 지역발전이 척척 진행되고 있다. 항상 도세가 전북에 밀렸던 강원특별자치도가 지금은 전북 앞에서 내달린다. 윤석열정권이 들어서면서는 정관계 요로에 강원도 출신들이 대거 포진, 10조 원 국가예산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힘이 다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 이유는 강원도특별자치도민들이 총선 때마다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여야의원을 공정하게 뽑아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전북은 어떠했는가. 물을 필요도 없이 한쪽으로 완전하게 기우는 선거를 해왔다. 진보정권의 탯자리나 다름 없었다. 공천이 당선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항상 현역들이 당 대표의 눈치나 살피는 사병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작 유권자들은 안중에 없고 비중도 두지 않았다. 이같은 잘못된 선거문화를 유권자들이 확 뜯어 고쳐야 하는데 이를 행동을 옮기지 못했다. 민주당이 공천하면 묻지도 따져 보지도 않고 무작정 찍어줬던 싹쓸이선거가 패착이었다. 이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역량있는 인물의 원내 진입이 어렵게 돼버렸다. 지난해 정부가 얼마나 전북의원들을 가짠하게 보았으면 사상 유례가 없는 마이너스 예산을 편성 승인했겠는가. 남에게 경쟁에서 뒤지는 것을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김관영 지사의 심정이 어떠했을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지난 18일부터 전북이 특자도가 되었지만 금세 세상이 뒤바뀌는 게 아니다. 도전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패배의식을 떨치고 도전해야 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선거 밖에 없다. 총성 나지 않는 선거판에서 전북특자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그간 도민들에게 실망과 아픔을 안겨줬던 정치판을 새 인물로 바꿔야 한다. 여나 야가 경쟁적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국가예산을 확보하도록 그런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도 민주당 싹쓸이 선거로 가면 특자도 시대에도 전북발전은 영 가망이 없게 된다. 민주당 지도부가 전북을 자신들의 공깃돌처럼 여겨왔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선거를 통해 표출시켜야 한다. 강원이나 충청도처럼 갈아 엎을 때는 사정없이 갈아 엎어야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특자도민이 되었다고 마냥 기뻐만 할일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으로 총선판을 우리 의지대로 갈아 엎어야 한다. 그래야 자존감을 높이면서 전북 몫을 제대로 찾아올 수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4.01.21 17:17

불편한 인사 기류

- 9급 공채로 출발한 공무원이 이른바 ‘공무원의 꽃’ 으로 불리는 5급 사무관까지 승진하는데 족히 20년은 넘는다. 공채 7급은 요즘 ‘고시’ 로 불릴 만큼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5급, 7급 자리가 민선 이후 외부 인사의 공직 통로로 둔갑, 무게감이 떨어진 느낌이다. 선거판을 기웃거리다 운 좋게 정무직에 발탁돼 승승장구하는 ‘어공’ 들이 늘어나면서다. 도청에선 심지어 2급, 4급까지도 꿰찬다. 공채 공무원(늘공)의 느림보 승진 기회에 비하면 그야말로 벼락출세한 셈이다. 더구나 늘공 입장에선 공직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어공 상관을 모셔야 하는 처지라 상대적 박탈감은 훨씬 크다. 입신양명의 마지노선으로 일컫는 5급 사무관에 오르지 못하고 퇴직하는 공무원이 절대 다수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 개방형 직위 공모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직사회 경쟁력을 높이고자 전문성을 강조한 당초 취지가 실종된 탓이다. 선거 캠프 출신의 생계형 자리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 최근 이 같은 흐름에도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과거 고락을 함께한 선거 공신들이 주군 보좌에 힘썼던 역할과는 결이 다르다. 공직 경험이 풍부한 강현욱 김완주 송하진 도지사 시절엔 핵심 측근을 요직에 앉혀 비교적 조직 관리 안정에 주력해 왔다. 그에 비해 김관영 지사와 유종근 전 지사는 혜성처럼 등장해 실용 노선의 인재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둘 다 공직과는 거리를 둔 직업에서 잔뼈가 굵고 주로 서울과 외국에서 기반을 닦은 터라 지역 사정에 어둡고 인재풀이 좁다 보니 인사 뒷말이 많다. - 최근 도립국악원장 공모 논란도 이런 배경에서 불거졌다. 문제는 일찌감치 사전 내정설로 호된 곤욕을 치렀던 민선 8기 산하기관장 공모와 같은 전철을 되풀이했다는 점이다. 자격 논란은 차치하고 공모 절차의 공정성이 이미 훼손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공개모집을 통해 면접까지 마쳤는데 합격자 발표를 못하고 재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아울러 도청 대변인의 교체 과정도 순탄치 못해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후임자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면서 임명이 계속 늦어진 것이다. 잼버리 사태로 새만금 예산이 무더기 삭감된 위기 상황과 맞물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 지난해 8월, 잼버리 초반 총체적 난국에 대해 정부 여당이 노골적으로 파행 책임을 전북에 떠넘기며 몰매를 가했다. 새만금에서 개최됐다는 이유로 억울한 점이 있어도 전북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설상가상으로 새만금 예산을 78%나 깎으며 전방위 압박을 노골화 했을 때도 일단 숨죽이며 버텼다. 뒤늦게 크게 후회한 것이 그때 정면 대응을 하지 못한 점이다.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던 잼버리 조직위의 책임 문제를 제대로 반박했어야 했다. 나중에서야 전북도에서 찔끔찔끔 해명 자료를 냈지만 자기 변명에 급급한 인상만 줬다. 대변인 교체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4.01.18 17:36

프로레슬러 김일과 전북특자도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라”는 얘기가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가 벌교장에서 아낙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안규홍 의병장이 순사를 한 주먹으로 때려눕힌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보성 사람들의 패기에 놀란 일본의 두려움이 ‘벌교 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표현으로 굳어졌다고 보성군은 설명했다. 바로 아래에 있는 고흥반도에서 내륙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벌교였기에 내로라하는 주먹들도 벌교에 와선 명함조차 제대로 내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체육계에서 진짜 힘센 사람들은 고흥이 대표적이다. 프로레슬러 김일, 프로복서 유제두와 백인철, 축구선수 박지성, 김태영, 김영광 등 셀수 없이 많다. 체육계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한때 어깨에 힘 좀 줬던 사람들 중 고흥반도 출신은 의외로 많다. 강기정 현 광주시장, 송영길 전 민주당대표, 박상천 전 법무부장관, 장세동 전 안기부장, 화가 천경자, 언론인 추성춘씨 등 일개 군단위 치고는 유명 인물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고흥군은 1966년 23만여명에 달했으나 이후 급감하면서 지난해말 현재 6만1113명으로 떨어졌다. 전북의 시군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흥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게 있으니 바로 프로레슬러 김일이다. 스승인 역도산에게서 기량을 익힌 그는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 등과 더불어 1960~70년대 프로레슬링의 인기를 주도했던 3인방중 하나다. 좌절과 패배에 빠져있던 어렵던 시절, 구척장신 외국의 유명 레슬러를 통쾌한 박치기 하나로 쓰러뜨리는 장면에 국민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레슬링 가운을 입고 등장하는 김일의 모습은 전율, 그 자체였다. 그의 고향인 고흥군 거금도에는 ‘김일 기념체육관’이 있는데 여기엔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레슬링 가운이 전시돼 있다. 그런데 진짜 김일의 아름다운 인간적 면모는 지극한 고향사랑이다. 1960년대 말, 열성 팬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일 선수를 청와대로 자주 초청했다. 어느 날, 박 전 대통령은 “임자, 소원이 뭔가”라고 물었다. 당시만해도 밤엔 등잔불에 의존해 김을 따야할 정도로 상황은 열악했다. 김일은 “고향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이 김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제 레슬링 경기를 TV로 볼 수 없다”며 소원을 얘기했다. 불과 반년 뒤 거금도에는 제주도를 제외하곤 전국 섬에서 맨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역사(力士)의 고장’ 고흥군이 고 김일(1929~2006)을 기리는 동상을 세운 것은 다 이런 고향사랑에 대한 보은의 의미가 담겨있다. 18일 전북특별자치도가 출범한다.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또 한편으로 고향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실천하는 특별도민이 쏟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게 바로 전북특자도 출범을 지켜보는 도민들의 희망이자, 기대가 아닐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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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4.01.17 15:45

글쓰기의 본질과 신춘문예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등단의 문을 통과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절차다. 해마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등단 관문은 신춘문예다. 올해도 여러 개 일간지가 신춘문예를 통해 오랫동안 등단의 열병을 앓아온 문학도(?)들에게 기쁨을 안겼다. 신춘문예의 역사는 길다. 신춘문예 시원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다. 매일신보는 1914년, 문학작품을 공개 모집해 당선작을 뽑는 ‘신년문예모집’ 공고를 냈다. 신춘문예와는 이름도 다르고 형식도 다소 달라 신춘문예 역사의 정통 갈래로는 분류되지 않지만, 매일신보의 시도는 문학작품 현상공모를 확산하는 기반이 됐다. 본격적인 신춘문예는 1925년, 동아일보가 처음 문을 열었다. 첫해 당선작은 아동문학가 윤석중과 시인 김창술을 비롯해, 소설과 시, 동화 부문의 일곱 명 신작이었다. 김창술은 전주 출신이다. 1920년대 활발한 시작 활동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생애나 문학 세계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연말에 공모해 새해 첫날 당선작을 발표하지만, 당시에는 연초에 공모해 3월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봄이 열리는 3월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특성을 살려 공모 사업 이름을 ‘신춘문예’로 붙였을 터인데 형식이 달라진 지금도 이름을 지켜가고 있으니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된 셈이다. 동아일보의 뒤를 이은 것은 1928년에 시작한 조선일보 신춘문예다. 당시 수많은 잡지가 창간과 폐간을 거듭하면서도 문예 작품을 공모해 발표 공간을 넓히고 있었지만, 일간지 신춘문예는 그들과는 또 달리 파급효과가 커서 인기가 높았다. 그 세에 힘입어 50년대부터는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이 뒤를 이어 신춘문예를 만들었다. 전북일보도 그즈음 신춘문예를 운영했으나 60년대에 중단했다. 지금의 신춘문예는 1988년 말, 새롭게 형식을 다시 갖추어 부활시킨 것이다.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는 시와 소설, 수필과 동화 부문에 네 명의 신인을 배출했다. 당선자들은 모처럼 성별도 연령대도 다양하다. 문학 인구의 층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가 우선 반갑지만, 뜻밖에도(?) 심사평은 고르지 않다. 심사위원들은 오랫동안 갈고 닦은 글쓰기 공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글의 본질보다는 화려함에 무게가 쏠려 있는 문장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얼어붙은 마음을 열어 주는 작품을 많이 써달라’는 주문도 있다. 문학의 진정성보다 작가가 되겠다는 과도한 열망이 앞서는 환경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돌아보니 어지러운 시절, 정신적 위안을 주는 문학의 힘이 새삼스러워진다. 새롭게 출발하는 신춘문예 작가들의 분투를 기대한다./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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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4.01.16 17:45

농촌유학의 산실, 어쩌다가⋯

‘올해엔 몇 명일까?’ 새해 벽두, 농촌학교의 관심사는 단연 입학생 수다. 학교의 명운이 달려 있으니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다. 인구절벽 시대, 교육청에서도 학교별 입학예정 아동 수를 집계하면서 촉각을 세운다. 전북교육청의 ‘2024학년도 초등학교 예비소집’ 자료에 따르면, 올해 도내 취학대상 아동은 1만1523명이다. 해마다 그 수가 큰 폭으로 줄면서 1만명 선 붕괴가 눈앞이다.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작은 학교도 늘었다. 전북에서 새해 신입생이 아예 없는 초등학교가 32곳, 단 1명인 학교가 37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임실 덕치초등학교와 완주 봉동초등학교 양화분교가 눈에 띈다. 최근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농촌유학’이 태동한 곳인데도 학교에 유학생이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올 입학생은 1명뿐이다. 섬진강변 작은 학교인 임실 덕치초에서는 2006년 도시 학생들이 전학 와서 공부하고 돌아가는 ‘섬진강 참 좋은 학교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또 2007년에는 한 시민활동가가 완주 봉동초 양화분교와 연계해 산촌유학센터를 운영하면서 농촌유학의 모델을 정립했다. 당시 폐교 위기에 몰린 시골 작은 학교의 학생수가 갑자기 늘면서 이들 학교는 농촌 작은 학교 활성화의 모델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마침 농촌학교의 위기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시점이었다. 전북도가 즉각 도정에 반영했다. 2012년 ‘농촌유학 1번지’를 선포한 뒤 전국 최초로 ‘농산어촌유학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농촌유학지원센터도 설립했다. 하지만 반짝 성과에 그쳤다. 동력을 이어가지 못해서다. 그렇게 잊혀져가던 농촌유학 정책이 최근 부활했다. 민선 8기, 전북교육청이 적극 나섰다. 2022년 서울시교육청, 전북도, 재경전북도민회와 ‘농촌유학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서울 등 도시지역 학생을 유치했다. 새해에는 도내 13개 시·군, 31개 학교에서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농촌유학 운영 학교와 참여 학생수가 대폭 늘었다. 그렇다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상황에서 나온 비상대책이다. 차분하게 짚어보면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교육을 통한 귀촌’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농촌학교가 도시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수도권 아이들을 위한 대안교육기관이나 생태체험학습장으로 인식될까 걱정이다. 그것도 농촌지역 교육청과 지자체에서 그들에게 매월 50만원의 체재비까지 지원해주면서 말이다. 지속가능성도 문제다. 전북교육청이 농촌유학 정책에 다시 불을 지폈지만 정작 이 정책의 산실인 임실과 완주의 두 학교는 참여하지도 못한 채 다시 위기를 맞았다. 농촌유학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면서 그 기반과 동력을 진작 잃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농촌유학이 서울 등 도시 아이들이 아닌, 농촌과 지역사회 작은 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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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4.01.15 16:56

특자도민의 현명한 선택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오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시대가 열린다. 전북은 도제(道制) 마지막 해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련을 당해 도민들이 실의에 빠졌다. 법치주의를 실시하는 나라인 만큼 잘잘못은 권한과 책임에 따라 가려질 것이다. 일부 보수정치인들의 선동에 보수언론이 장단을 맞춰가며 춤추는 바람에 전북이 올해 국가예산을 확보하느라 애를 먹었다. 해마다 늘어가는 것이 국가예산인데 전북은 사상초유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해 과연 이 나라에 속한 게 맞느냐는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특별자치도는 특례조항이 많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과거보다 많아졌다. 호남권에 묶여 독자적으로 지역개발을 못했던 전북이 독자적으로 지역개발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능력만 닿으면 얼마든지 기업유치를 통해 지역개발을 앞당겨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을 말끔하게 새롭게 정비해 특자도민으로서 더 진취적이고 더 민주적이고 더 열정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잼버리 실패사례에서 보았듯이 무한경쟁시대에 그 누구 하나 도와주는 게 없고 오직 자기 스스로가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이제 전북은 더 이상 두렵거나 무서울게 없다. 산업화에 소외되면서 산업생태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해 1인당 총생산량에서 전국 최하위에 맴돌고 있지만 새만금에 이차전지특화단지가 조성되면서 기지개를 켰다. 지난 한 해동안 10조 원에 이르는 투자유치를 한 것도 전북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암시한다. 김관영 지사가 주창한 도전경성(挑戰竟成)과 백년대계(百年大計)란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처럼 전북도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시작, 새로운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지금 전북은 특자도시대를 맞아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다가오는 22대 총선결과가 전북특자도의 전환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전북정치권의 힘이 부족해 전북 몫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지금 국회의원들을 우리들이 잘못 뽑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이런 무능력한 사람들을 다시 뽑아주면 절대로 안된다. 물갈이가 나오지만 이번 만큼은 전북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에 책임 추궁 차원에서 전체를 갈아 엎어야 한다. 인정에 사로잡혀 연고주의에 얽매여 또 다시 무능력한 사람들을 다시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면 특별자치시대에도 가망이 없게 된다. 이재명 대표의 피습사건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더 견고해졌지만 옥석구분을 잘 해야 한다. 지역주민은 바라다보지 않고 당 대표만 쳐다보는 정치인은 해바라기 정치인인 만큼 팽시켜야 한다. 대세를 거스를줄 모르고 무작정 예스맨 역할만 하는 소신없는 사람도 도태시켜야 한다. 문재인 전 정권 때 좋은 기회를 못살리고 자기 보신하기에 급급한 사람도 더 기회를 주면 안된다. 여기에 시·도의원을 독려해서 무작정 유급당원만 늘리고 관리해온 사람은 능력이 없기 때문에 1차적으로 컷오프시켜야 한다. 특자도 시대를 맞아 전북 홀로서기가 성공하려면 특자도민들이 선택을 잘해야 한다. 모든 게 특자도민들 손에 달려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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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4.01.14 17:27

전주 상의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전주상공회의소가 다음달 회장 선거를 앞두고 내홍에 휩싸여 있다. 윤방섭 회장의 재출마 움직임에 일부 회원들이 제동을 걸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2021년 선거 뒤 회장 직무 정지 사태와 관련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약속한 재선 불출마를 이행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에 반발해 윤 회장 측 입장을 엄호 사격하는 측과 팽팽히 맞선 가운데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오는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도민 모두가 재도약 의지를 불태우는 상황에서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주상의 집안 싸움이야말로 이런 분위기에 역행하는 모양새다. 새만금 예산 문제 등 전북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 국면에서 누구보다 이를 타개하는데 앞장서야 할 입장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끝없이 추락하는 지역 경제 현실을 감안하면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문자 그대로 상공인들의 단합과 이익 도모를 위한 구심체인데 되레 갈등 양상을 노출함으로써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다. 마치 정치 집단처럼 권력 주도권 잡기에 몰두하는 양상을 보여 상공회의소 이미지만 훼손되고 있다. 속사정이야 모르긴 몰라도 회원들 대부분은 경기 침체 장기화로 피를 말리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들 스스로가 머리를 맞대고 돌파구 마련을 위한 숙고를 거듭해야 할 처지다. 이번 사태도 따지고 보면 지난 3년 전 회장 선거에서 무더기 회원 가입에 따른 불공정 논란이 발단이다. 법원 판결에 따른 회장 직무 정지가 장기간 이어지자 소송당사자 측은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밀실 합의를 통해 갈등을 봉합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전주 신시가지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할 때만 해도 전주 상의에 대한 기대감은 남달랐다. 사실상 지역 경제를 이끄는 만큼 그 위상에 걸맞는 역할과 존재감을 갈망했다. 이에 부응해 최근까지도 지역 현안 해결에 경제계 목소리를 대변하고, 실질적 2인자인 사무처장에 도청 국장급 인사를 수혈함으로써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회장 선거에선 파벌이 형성돼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하며 정치인 선거 뺨친다고 비아냥을 듣는다. 과거 상공인 화합을 해칠 수 있다며 합의 추대 방식으로 치렀던 선거와는 딴판이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선거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채 갈등 양상만 노골화됐다. 심지어 회장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와 일부 지지자들이 회원을 탈퇴하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됐다. 대기업과 타지 업체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지역 경제를 잠식하는 상황에서 토종 업체의 홀로서기는 점점 힘들어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움직임이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데다 브랜드파워의 마케팅 능력까지 장착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악조건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지역 업체 보호에 힘써야 할 전주 상의가 오히려 자중지란에 빠지면 설 자리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지역 업체 몫만 외칠 게 아니라 스스로 하청 조건이라도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4.01.11 17:31

전북대망론과 농민대통령

조합원 직선제로 오는 25일 치러지는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의 최종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10∼11일 이틀간 후보등록에 이어 12일부터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진다. 250만 농업인을 대표하는 ‘농민 대통령’인 농협중앙회장은 4년 임기에 30억원이 넘는 보수와 전국 5000여 개가 넘는 농협조직의 사업과 예산을 총괄하는 자리의 주인공이다. 간선제로 중앙회장을 선출한 과거와 달리 이번 선거는 조합장 등 1111명의 선거인이 중앙회장을 직접 선출한다. 조합원 수 3천명 미만 조합은 1표, 3천명 이상 조합은 2표를 행사해 전국적으로 총 1252표가 승패를 가른다. 예비후보는 무려 11명이나 됐다. 대부분 농협조합장 출신이나 총선 출마 경험이 있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농업회사법인, 농협중앙회 임직원 등 다양한 경력의 후보자들이 나섰다. 예비후보 11명은 △강호동(63년생·율곡농협조합장) △구정훈(61년생·옥과농협조합장) △송영조(56년생·부산금정농협조합장) △서석조(52년생·북영덕농협조합장) △이찬진(60년생·전 국회의원 출마) △임명택(56년생·전 농협중앙회 근무) △정운진(59년생·농업회사법인 우주 대표) △정병두(64년생· 전 국회의원 출마) △조덕현(57년생·동천안농협조합장) △최성환(56년생·부경원예농협조합장) △황성보(55년생·동창원농협조합장) 등 이었다. 요즘 화두는 충청권 대망론, 영남권 대망론이라고 한다. 영남권대망론의 선두주자는 현재로서는 강호동 예비후보다. 지난 선거에서 3위를 했기에 일단 지명도 측면에서 유리해 보인다. 또한 경남권 후보중 한명인 송영조 부산금정농협조합장 역시 막강한 다크호스로 꼽힌다. 이에 맞설 충청권 대표주자는 조덕현 충남 동천안농협 조합장이 돋보인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충청 출신 중앙회장 선출에 대한 기대를 한몸에 받고있다. 실제로 충청권에서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충청 민심이 '충청의 아들'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며 30여년 만에 충청권 출신 회장 탄생을 기대하는 눈치다. 호남, 충청, 경기 등 서부권 벨트의 지지세를 모으면서 급부상한다는 전언이다. 아쉽게도 호남대망론이나 전북대망론은 선택지에 아예 없다. 역대 대선때 이철승, 유종근, 정동영, 정세균씨 등이 전북대망론을 등에업고 레이스를 펼쳤으나 모두 실패했다. 농민대통령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도 전북 출신 후보는 아쉽게도 없다. 4년전 선거때 2위를 했던 유남영 후보(정읍농협조합장)가 권토중래, 재도전에 나섰으나 자금부족, 세부족을 이유로 뜻을 접었다. 전국단위 선거여서 30억원 이상이 필요하고, 지지세 역시 중요한데 전북 조합장들중에는 자신의 입지를 염두에 두고 지역 출신 후보를 외면한 것이 유남영 후보의 중도포기 사유라고 한다. 전북 표심은 조덕현 쪽에 많이 쏠리는 분위기인데, 강호동, 송영조 쪽에 붙는 조합원들도 상당수에 달해, 최종적으로 어느쪽에 힘을 실어줄지가 선거 결과에 중대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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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4.01.1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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