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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G20 정상회의를 홍보하는 공식 포스터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두 명 작가가 그려 넣은 쥐 그림 때문이었다. 이들은 공용물건손상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재판부의 양형 이유였다. 2년쯤 뒤, 서울과 인천의 지하철이 외국 ‘그라피티(graffiti, 건물의 벽 등에 마치 낙서처럼 긁거나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 작가들의 습격을 받았다. 지하철이나 열차에 그림을 그려 넣는 ‘트레인 바밍(Train bombing)’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수많은 그라피티 작가들이 활동했던 외국 지하철은 이미 포화상태였지만, ‘누구도 손대지 않은’ 한국의 지하철은 그만큼 매력적인 ‘캔버스’였다. 지하철에 그림을 그려 넣기 위해 외국 작가들이 지하철의 환풍구를 뜯어내고 침입하자 이를 막지 못한 한국 지하철의 허술한 보안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지만, 이를 계기로 국내에도 그라피티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라피티는 일반적인 벽화와는 영역이 다르다. 그라피티 대부분은 허락받지 않은 작업이다. 신분을 숨기고 도시의 공공장소를 찾아다니며 자신만의 언어로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는 그라피티 작가들의 작품은 일종의 ‘예술이 된 낙서’다. 그라피티로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가는 영국의 영화감독이기도 한 뱅크시다. ‘얼굴 없는 거리 예술가’로 알려진 그의 작업 역시 대부분 위법(?)이다. 그러나 권력과 제도에 저항하며 시의성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자유롭고 도발적인 언어로 담아내는 그의 그라피티는 독창적인 예술의 영역을 구축했다. 이제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는 그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고, 도둑 전시로 습격받은 미술관조차 그의 작품을 영구 소장하겠다고 결정할 정도다. 런던에서는 뱅크시가 그린 그라피티를 돌아보는 투어까지 생겨났다. 지난 연말, 경복궁 담장이 낙서로 훼손됐다. 낙서범들은 어이없게도 SNS로 범행 지시를 주고받은 10대들이다. 이틀 뒤에는 경복궁 다른 쪽 담장을 낙서로 훼손하는 모방 범행이 이어졌다. 이 낙서범은 자신의 낙서에 예술 행위를 운운했단다. 미술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은 그라피티에 대한 왜곡이다. 놀라운 것은 경복궁을 비롯한 여러 궁궐 곳곳이 이미 낙서로 도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반달리즘(vandalism)은 문화유산이나 공공예술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다. 인류 역사상 반달리즘의 뿌리는 깊다. 그 대부분이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비롯된 약탈과 파괴다. 둘러보면 여전히 반달리즘의 폐해가 많다. 그라피티를 내세운 반달리즘도 적지 않다. 올바른 인식의 확산이 절실해졌다. / 김은정 선임기자
사실 ‘꿩 대신 닭’이었다. 놓쳐버린 꿩은 화려하게 비상했는데, 꿩 대신 잡아놓은 닭은 횟대에 앉아 날갯짓이 없다.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무주군과 전북도는 곧바로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지역의 명운을 걸었다. 하지만 국내 후보지 경쟁에서 평창에 잇따라 미끄러졌다. 그리고 2004년 연이은 좌절의 끝에서 태권도원(당시 태권도공원) 유치에 성공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빅딜설이 파다했다. 평창이 국제무대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도전에 나서면서 전북이 발끈했다. KOC의 중재로 성사된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은 평창이 단독 제출하고, 2014년 대회 유치 신청은 전북이 우선권을 갖는다’는 합의를 강원이 파기한 것이다. 21세기 초 부안 방폐장 사태, 새만금사업 법정다툼 등으로 혼란 속 상실의 늪에 빠져 있던 전북은 10년 넘게 공들인 동계올림픽마저 어이없게 무산되자 쌓인 울분을 쏟아냈다. 도민총궐기대회까지 열었다. 평창의 재도전에 힘을 실어준 정부가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해 태권도원 경쟁에서 무주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어쨌든 2004년 말 동계올림픽 국내 후보지(평창) 발표가 있었고, 1주일 뒤 태권도원 후보지로 무주가 최종 선정됐다. 전북도와 무주군은 빅딜설을 일축했지만, 결과적으로 올림픽 대신 태권도원을 얻었다. 동계올림픽 무주유치추진협의회는 해산을 결정하면서 ‘태권도원을 유치해 무주와 전북에 희망의 불을 지폈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고 했다. 태권도원은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14년 개원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태권도원은 산골 무주에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지구촌 태권도의 성지로 날아오르는 용꿈이다.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실망의 연속이다. 민자유치 사업이 청사진에 그치면서 태권도원은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고, 관련 기관 및 단체 이전·집적화 계획도 전혀 진척이 없다. 세계태권도연맹(WT) 본부 유치를 기대했지만 무주는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연맹의 본부 이전 계획을 아예 몰랐다고 한다. WT 본부는 무주와 태권도원 경쟁을 벌였던 춘천에서 유치했다. 이후 춘천은 태권도 종주도시임을 자처하면서 각종 국제대회를 잇따라 유치했다. ‘태권도 성지화’를 외쳐왔던 전북도와 무주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의 공약인 국제태권도사관학교 건립 사업마저 논란이다. 새해 국가예산을 한푼도 확보하지 못해서다. 21세기를 열면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쏟아낸 도민의 염원이 허무하게 무산되고, 그 눈물과 울분을 어렵사리 희망으로 바꿔낸 게 개원 10주년을 맞은 태권도원이다. 그런데 태권도원 조성을 계기로 추진한 ‘태권도 성지화’ 사업이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지역사회 상실과 희망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태권도원, 그리고 태권도 종주도시로서 새 역사를 써야 할 무주가 전북도민에게 다시 상실감을 안길까 걱정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어쩌다가 전북이 깊은 수렁에 빠졌는가. 지금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고 바등 거리지만 맘 같이 잘 안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북정치권이 중앙정치무대에서 힘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독립변수라서 정치적으로 힘이 없으면 개인이나 조직이나 무력해질 수 밖에 없다. 정부 수립이후 전북은 처음으로 국가예산을 확보하면서 치욕스런 결과를 맛보았다. 지난해보다 국가예산 총규모가 2.8%가 SOC는 4.6%가 증가했지만 전북은 마이너스를 기록, 광역단체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전북 보다 인구가 적은 강원도도 10조 원에 접근했고 모든 시도가 긴축재정 상황 속에서 선전, 현안을 해결했다고 난리법석이다. 전북이 지난 한 해동안 새만금에 1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선전했다. 막판 예산심의 때 여야 협치로 새만금에 3000억 원을 증액시켰다고 플래카드를 부쳤다. 출향인사까지 합쳐 국회의사당에 가서 도민총궐기대회를 한 결과치고는 너무 초라한 성적표다. 전북 정치권은 그 정도 확보한 걸 놓고 공치사 하기에 바빴다. 21대 전북 현역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한 것을 보면 역겨움이 절로난다. 저런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도민들이 오히려 측은해 보일 정도다. 지금 당장 도민들이 외국에 가고 싶어도 신고 나설 신발이 없다. 그 이유는 공항이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대에 공항이 없으면 외국 바이어들이 기피한다. 전북도가 10조 원대의 투자유치를 새만금에 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지금 공항이 없어 실제투자로 연결될지는 더 지켜봐야 안다. 도민들은 새만금 공항관련 예산이 확보되었다고 자랑하는 정치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세워진 370억원도 국토부에서 적정성검토 결과가 잘 나와야 토지매입비로 사용할 수 있다. 또 한덕수 총리가 말한 빅피쳐에서 공항건설계획이 축소되거나 빠지면 상황은 난감해질 수 밖에 없다. 국힘이나 민주당은 선거를 앞두고 마치 공항이 건설될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지만 갈길은 어둡고 컴컴하다. 김경안 새만금개발청장이나 국힘 정운천 의원이 새만금공항건설에 속도조절론을 말하면서 신항만을 우선 개발해야 한다는 말은 시사한 바가 크다. 후발주자인 전북이 생각지도 않게 새만금을 이차전지 특구로 지정 받은 것이나 인천으로 유치가 거의 확정된 '한상대회' 를 전북으로 유치한 것은 김관영 지사의 개인기에 의존한 뚝심의 개가였다. 하지만 김 지사가 전방위로 뛰어도 바쳐주는 정치권의 힘이 약해 특자도 출범이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각에서 중앙정부가 재정권을 틀어 쥐고 있어 특자도도 조례를 법으로 명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특자가 붙으면 특별한 것이 아니라서 마냥 기뻐만 할일이 아니다는 것. 올 총선 때 역량있는 인물을 뽑지 않으면 전북낙후는 '백년하청'이 된다. 지난해 잼버리를 잘못 치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것도 결국은 국회의원을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역을 한번 더 뽑아준다고 나아질 기미가 없기 때문에 이번에 갈아 엎을 때 사정없이 판을 갈아 엎어야 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남원 공공의대가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옛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한 관련 법안이 지난 연말 법사위에서 좌절됐다. 여야 합의 사항이 아니면 통과 자체가 어려운 법사위 불문율을 감안할 때 무작정 밀어붙인다고 될 일도 아닌데 왜 자꾸 희망 고문만 하는 것인지 마뜩지 않다. 상임위 통과를 애드벌룬처럼 띄워 여론전을 펼쳤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숱한 과정을 거쳤지만 고비를 못 넘기고 급기야 자동 폐기되는 아픔까지 겪었다. 추진 과정도 간헐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 법안에 대한 본래 취지가 크게 퇴색한 느낌이다. 지역구 의원 전체가 불퇴전의 각오로 응집력을 발휘해도 결코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뭔가 뒷심이 부족한 모양새다. 일각에선 선거를 앞두고 의원들이 면피용으로 선전 효과만을 노린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간 공공의대 입법 과정을 되짚어 보면 전북 정치권의 역량과 한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번 경우에도 정부 여당 반대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최대 관문인 법사위 통과는 사실상 어려워 보였다. 번번이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정부 여당을 상대로 사전에 최소한의 조율이 전제돼야 한다. 물론 법사위 규정상 본회의 직행 가능성이 남아 있어 불씨는 여전하지만 이런 문제는 떠들썩하게 기자회견을 통해 분위기를 몰아가면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것이 공공의대가 자치단체의 먹잇감으로 둔갑, 전국 10곳 이상이 노리는 까닭이다. 과거 공공의대 남원 개교를 2024년으로 공식화하고 집권 여당으로 국회 다수 의석을 확보했음에도 '민주당 찬스' 를 놓친 때와는 전혀 딴판이다. 공공의대는 지방의 의료 공백과 맥락이 같다. 수억대 연봉을 보장해도 의사들의 도시 선호 현상 때문에 지역의 의료 현실은 암울한 지경이다. 필수 의료 과목 진료는커녕 응급실 환자도 제때 치료를 못 받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의료 사각지대를 줄여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달부터 남원의료원에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의사가 파견돼 환자 진료를 보게 된다. 전라북도와 업무 협약에 따라 안과, 감염내과 의사들이 매주 한차례 방문해 의료 공백을 메울 예정이다. 전체 의사 3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지방 의료 공백의 대안으로 공공의대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농촌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그에 따른 환자 비중도 급격한 증가추세다. 이 같은 의료 악순환 구조를 뻔히 알면서도 지금 상태에선 극약처방조차 쉽지 않다. 갈수록 당위성이 커지는 공공의대 법안의 추진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원들의 원팀 정신과 전투력 무장이 급선무다. 21대 국회 회기 마지노선인 5월까지 법안 통과의 히든 카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지역구 의원 10명의 몫이다. 총선 출마의 전제조건으로 인식하고 막판 반전 드라마를 기대한다. 김영곤 논설위원
김동연 경기지사는 3일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총선 전 주민투표가 사실상 무산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통해 커다란 아쉬움을 표시했다. 경기도의 경우 이미 서울보다 더 커진데다 상대적으로 낙후지역인 북부권에 대한 배려 등의 이유로 그동안 야심차게 북부특자도 추진에 주력해왔으나 총선전 투표가 무산된데 따른 소회를 피력한 셈이다. 그는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경기북부 지역에서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공통 공약으로 내걸고 민의를 확인받도록 하겠다"며 "특별법 제정을 관철해 35년 동안 정치적 손익에 따라 호출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 희망 고문을 끝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기도의 사례는 만일 전북특별자치도가 무산됐더라면, 또는 법 개정에 실패해 허울뿐인 전북특자도로 남게됐다면 얼마나 아쉬움이 컸겠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고 단지 지금부터 도전할 기회가 전북특자도민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에 불과하지만, 경기북부특자도의 무산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런데 오는 18일 전북특자도 출범을 앞두고 전북도, 도교육청, 도내 대학들이 하루빨리 해야할게 있다. 지극히 사소한듯 해도 전북바로알기 교과목을 당장 운용해야 한다는 거다. 타 시도의 경우 벌써 수년째 대학에서 지역 애착심 고취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곳이 있으나 전북의 경우 대학 이전 단계에서 일부 사회과목에 지역 관련 프로그램이 조금 포함된 정도다. 전북이웃청년웰컴활동 지원사업의 경우 전북 신규 전입청년과 학업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도내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역활동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갖도록 하고 있으나 이것으론 부족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도내 10개 종합대학, 9개 전문대학, 2개 기능대학에서 가칭 전북바로알기 교양 교과목을 개설해 운용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례로 전북현대를 들어보자. 전북현대 인스타 공식팔로워 수는 무려 23만5천명이나 된다. 1천만명의 도시를 연고로 하는 FC서울은 6만8천명, 2년 연속 우승팀인 울산현대가 9만8천명인 것과는 큰 대조를 보인다. 전북현대가 좋아 전북을 찾거나 심한 경우 진학을 전북으로 하는 학생까지 있는 것을 보면 ‘전북의 스포츠산업과 전북현대’를 주제로 한 강의를 전북바로알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입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지난해 5월 전북대는 ‘전대인의 날’ 행사를 통해 경기관람을 실시했는데 이후 찐팬이 되고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역에 대한 애착심 고취를 통해 청년들의 지역정착을 유도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상당수 지역에서 시행중인 청년들에게 사소한 금전적 혜택을 주는 것은 청년 인구유출을 일시적으로 늦추는 언발에 오줌누기식 정책에 불과하다. 청년들이 지역을 제대로 알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심을 갖게하는것, 그게 바로 전북특자도 성공의 첫 걸음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간다. 폐교의 위기는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폐교 소식이 들릴 때면 취재로 찾았던 학교가 생각난다. 2006년 2월 문을 닫은 고창 무장면 만화리에 있던 신왕초등학교다. 2월 졸업식이 끝나면 문을 닫게 되는 시골 초등학교의 풍경은 쓸쓸했다. 전교생이라고 해야 열 명. 여섯 명이 졸업하고 나면 네 명 아이들만 남게 된 신왕초등학교는 그해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그동안 열 명 아이들은 두 개로 나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6학년 누나 형들과 함께 공부해야 했던 4학년 득주는 ‘친구가 없어 재미없겠다’고 말을 붙이자 ‘형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다’고 했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2, 3학년 세 명도 싸우지 않고 형제처럼 잘 지냈다. 그해 전북에서는 초등학교 세 개가 문을 닫았다. 그중 하나인 신왕은 10여 년 전부터 통폐합 대상이었지만 ‘학교 지키기’에 나선 주민들의 열정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던 터였다. 그러나 2005년, 1학년 입학생이 끊기자 주민들도 결국 손을 들었다. 폐교를 받아들이는 의견서를 교육청에 제출하면서 교사들은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 없을까 고민했다. 신왕초등학교 30년의 기록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졸업식을 앞두고 발간된 ‘여시뫼봉의 얼이 담긴 신왕교육 30년’은 100여 쪽. 화려하진 않았지만 70년대 중반, 학교가 문을 열자 아이들이 먼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고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돼 기뻐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부터 30~40대 중년이 된 어른들의 어린 시절이 담긴 빛바랜 흑백사진, 신왕을 거쳐 간 632명 졸업생 명단까지 크고 작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교사들은 자료를 찾고 사진을 수집하느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지만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어릴 적 꿈을 가꾸었던 초등학교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해 2월 16일 오전 10시. 급식실을 꾸며 만든 졸업식장은 끝내 울음바다가 됐다. 농촌의 아름다웠던 초등학교는 그렇게 소중한 이름을 잃었다. 올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홉 곳이 문을 닫는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이들 말고도 폐교 위기에 처해있는 학교는 이미 스무 곳이 넘는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을 시행하겠다면서도 아예 폐교 관련 조례를 개정해 절차를 간소화했다. 사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환경에서 학교 통폐합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서 더 우려되는 것이 있다. 공간과 이름을 잃게 된 폐교의 쓰임이다. 오랫동안 마을의 중심이 되었던 이 공간이 소멸 위기의 마을을 일으키는 거점이 될 수는 없을까. 교육기관이 앞장서 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 김은정 선임기자
2024년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가 밝았다. 열두 띠를 나타내는 십이지(十二支)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인 용(龍)은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전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성한 존재다. 우리 민족에게도 용은 최고의 영물이다. 제왕을 나타내고, 희망과 성취를 상징한다. 그런 만큼 용과 관련된 전설과 지명을 갖고 있는 곳이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전통도시 전주도 그렇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바로 완산동 ‘용머리고개’다. 전국적으로 용머리를 뜻하는 용두동(龍頭洞)이라는 지명은 꽤 많다. 글자 그대로 동네의 모습이나 인근에 있는 봉우리의 형태가 용의 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서울 동대문구와 대전 중구, 광주 서구와 북구, 경기도 고양시, 경북 김천시, 충북 충주시, 충북 제천시 등에 용두동이 있다. 이들 도시와 비교하면 공식 행정지명조차 되지 못한 채 구전으로 내려온 전주 용머리고개의 전설과 명성은 그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주 용머리고개에는 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오래된 마을이 있다. ‘용머리 여의주마을’이다.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곳이니 범상치 않다. 하지만 전주의 오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 마을은 이름값을 하지 못한 채 정체성을 잃어갔다. 그러면서 시민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밀려났다. 도시의 중심이 외곽 신도시로 옮겨지면서 주거환경 노후화와 인구감소 등으로 마을은 활력을 잃었다. 골목길 안쪽부터 공·폐가가 속출했다. 그러던 중 전주시와 시민사회가 나서 잠자던 용을 흔들었다. 도시 경쟁력 회복과 주민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관련 법률에 따라 시행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서다. 거창한 이름이 무색했던 이 마을은 지난 2018년 국토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길을 걸었다. 2022년에는 마을에 생태숲이 조성되고,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동이용시설이 문을 열었다. 빈집을 허문 자리에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공동이용시설에는 카페와 회의실, 임대사무실 등이 들어섰다. 주민들은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 다양한 마을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마을 생태숲에는 초미니 도서관인 옛이야기도서관이 들어섰다. 지상 1층, 전체 건물 면적 32㎡ 규모인 이 도서관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으로 화제를 모았다. 소공원 안에는 33㎡ 이상의 도서관을 지을 수 없도록 한 공원녹지법 때문에 크기를 최소화한 것이다. 이 도서관은 용의 전설을 비롯해 전통도시 전주의 보석같은 옛 이야기들을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해 이 유서 깊은 용의 마을은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로 꼽혀 전국적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범상치 않은 마을 이름도 다시 알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잠자던 용이 깨어나 승천을 채비했다. 그리고 다시 용의 해다. 용머리 여의주마을과 그 여의주를 품은 전주‧전북의 힘찬 용틀임을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새만금 예산 3000억이 복원된 데는 나름 정치권의 선방 결과라며 애써 자위해 보지만 그래도 실망감은 감추지 못한다. 큰 폭으로 깎여 충격파가 컸던 탓인지 일부만 회복됐는데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이 여파로 전체 예산 확보 상황을 보면 양적으로 질적으로 기대치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다. 전국 9개 광역자치단체 중 사실상 전북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새만금 신공항의 경우 내년 착공을 앞두고 부처 요구 580억 중 327억만 반영됐다. 글로벌 시대 국제공항은 그 지역의 경쟁력이자 외자 유치의 관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유독 새만금에만 '적정성 검토' 라는 족쇄까지 채워 예산 집행마저 어려운 처지다. 여차하면 사업 중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안갯속 국면이다. 타시도 공항과 비교하면 정치 공학적 노림수도 무시할 수 없는 기류다. 부산 가덕신공항만 하더라도 내년 예산이 5300억으로 전년비 41배나 늘었다. 주목할 점은 공항 개항의 명분이었던 2030 부산세계박람회가 실패했음에도 당초 2035년 준공 일정을 6년 앞당겨 2029년에 마무리 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이 부산에 내려와 이 같은 개항 시기를 직접 못 박은 것이다. 가덕신공항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 최대 이슈였던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밀양, 김해와 3파전 끝에 김해 신공항에 밀려 탈락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때 김해 신공항을 백지화시키고 여야 특별법을 통해 가덕도 신공항을 선정함으로써 정치적 특혜 논란이 일었다. 뿐만 아니라 충남 서산공항은 지난 5월 예타 통과를 못했는데 우회적 루트를 통해 기사회생한 가운데 10월엔 대구경북 신공항이 예타를 면제 받았다. 잼버리 파행을 빌미로 기다렸다는 듯이 무더기로 새만금 예산 삭감을 강행했다. 이를 통해 정부 여당의 책임을 돌리고 야당 독점의 지역 정치권에도 일종의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한마디로 전북에 크게 아쉬울 게 없다는 속셈이다. 일각에선 도내 의원들의 예산 투쟁을 깎아내린다고 못마땅해 하는 눈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그들에겐 이 문제에 사활이 걸려 있다. 다시는 전북 몫을 빼앗기지 않도록 정치권이 단합해 자강 노력을 기울이라는 채찍인 셈이다. 전북이 항공 오지로 전락한지도 꽤 됐다. 정부 홀대는 물론 도민 일부의 부정적 견해도 한몫했다. 그들은 정부 논리에 따라 새만금 신공항의 경제적 가치를 비관적으로 본다. 공항이야말로 지역간 연결고리인 동시에 세계 진출의 통로 역할을 한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공항 현황을 보면 더욱 뚜렷하다. 인근 전남은 광주와 무안, 여수공항을 비롯해 충청지역은 청주공항, 부산 경남의 김해, 울산, 사천공항과 함께 TK는 대구와 포항공항, 강원도는 양양과 원주공항이 있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재경 도민회장의 새만금 신공항 반대 발언을 둘러싼 공방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도민 역량을 결집해도 모자랄 판에 자칫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격정된다. 김영곤 논설위원
때에 따라 떠오르는 단편적 생각이나 그 생각을 적은 글을 좀 멋스럽게 표현해서 단상(斷想)이라고 한다. 추일단상, 세밑단상 하는 식이다. 2023 계묘년 토끼띠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2024년은 갑진년 용띠해인데 곧 동터오틀 태세다. 올 한해를 보내는 전북인들은 지역에서 생활하든, 타지에서 활동하든 ‘새만금’이라는 세 글자가 가장 강하게 각인돼 있을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에서 시작해서 새만금 예산삭감, 새만금 기업유치 등등 평소 새만금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 일희하고 일비했던 나날이었다. 친구가 직장을 잃으면 불황이고, 내가 일자리를 잃으면 공황이라는 말처럼 사실 각 개인들에게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지역공동체의 일 보다 훨씬 더 강하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처럼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전북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일찌감치 없었다. ‘징게 맹갱 외에밋들’은 ‘김제 만경 너른 들’을 뜻하는 옛말이다. 사슴이 아름다운 뿔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듯, 금만 평야는 그 풍요로움 때문에 봉건시대에 탐관오리에 시달렸고,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가혹한 수탈의 대상이 됐다. 김제 죽산면에 있는 하시모토 농장은 일제시대 죽산면 농토의 절반 이상을 소유했던 일제 지주 하시모토가 수백명의 소작인들을 관리하던 곳이다. 익산 춘포면 대장촌 일대 역시 대대로 구마모토의 영주 가문이었던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일본 총리의 친조부가 이 마을을 개척한 대농장 소유주였다. 일제때 일본에서 아무런 주소도 없이 '조선 대장촌'이라고만 적고 편지를 보내도 제대로 배달됐다는 믿지못할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대장촌 역시 얼마나 큰 농장이었는지를 가늠케한다. 예전 금만평야의 또다른 외연이 오늘날 새만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과 낙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었던 새만금이 중앙정부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을 목도해야만 하는 도민들의 심정은 가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새만금 세밑 단상은 그래서 더 우울하거나 처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을 약 옆에 살 약도 있는 법. 어제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새만금 민간투자 10조원 달성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새만금개발청이 문을 연 이래 9년동안 1조 5천억원의 유치를 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임에 틀림없다. 일제가 패망한 뒤 광복 직후 국내 굴지의 기업인은 김연수 경성방직 회장과 박흥식 화신백화점 회장 정도였다. 6∙25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본금 기준(1955년) 대한민국 재계 순위는 1위 삼양사, 2위 대한석탄공사, 3위 한국산업은행, 4위 락희화학공업사, 5위 금성방직 등이었다. 삼성그룹, 삼호그룹, 개풍그룹 등은 1950년대말에 이르러서야 재계 최상위권에 등극하게 된다. 며칠전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HMM(옛 현대상선)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일약 재계 순위 13위에 랭크될 전망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새만금이 살아나면 전북에서 굴지의 기업이 활동하게 될 것이다. 새만금 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도민들이 갑진년 청룡의 해에는 기쁨과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한지발은 한지를 만들 때 쓰이는 도구다. 한지가 세계에서도 우수한 종이로 평가받는 바탕에는 이 한지발이 있다. 한지발은 한지를 뜰 때 쓰는 대나무로 만든 발이다. 못을 쓰지 않고 만든 발틀 위에 올려놓고 물질을 하여 종이를 뜬다. 좋은 한지는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하지만 한지를 뜨는 과정에서 이 한지발의 면이 고와야 매끄러운 종이를 얻을 수 있다. 질 좋은 한지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인 셈인데, 안타깝게도 그 쓰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작 과정이 어떤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5년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이 된 한지장과는 달리 한지발장은 종목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지발을 만드는 과정은 까다롭다. 재료의 특성을 잘 알고 단계마다 그에 맞는 도구를 잘 다루면서 숙련된 기술이 더해져야 원하는 한지발을 만들 수 있다. 그만큼 만드는 사람의 지혜와 슬기, 끈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한지발을 만드는 사람은 예전부터 많지 않았다. 그조차도 점점 줄어들어 한지발을 만드는 사람은 전국에서도 단 한 명. 전주에서 활동했던 도 문화재 기능보유자 유배근 명장이 유일했다. 한지발 없이는 한지를 뜰 수 없고 제대로 된 한지발은 유배근 명장이 없이는 만들 수 없으니 그의 존재 자체가 한지의 맥을 잇는 상징이었던 셈이다. 1940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유배근 명장은 어린 시절, 가업이 된 한지와 한지발 만드는 일을 익혔다. 한지발은 그의 어머니가 먹고살기 위해 배웠던 기술이다. 그가 살던 동네에서 한지발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뿐이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한지발 기술을 이어받았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한지 공장을 운영하면서 한지발 제작을 이어갔다. 한지가 잘 팔리던 시절에는 자연히 한지발 수요도 늘었다. 덕분에 80년대 초반에 문을 연 한지 공장은 직원이 30명이나 될 정도로 성업을 누렸다. 그가 직접 만든 한지발로 떠낸 질 좋은 한지가 유배지란 이름으로 팔려나가면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가 한지발 제작에만 매달린 것은 한지 폐수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그 뒤 온전히 전통 한지발 제작에만 일상을 바쳐온 그는 한지발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들마저 중단될 정도로 환경이 어려워진 환경에서도 직접 도구를 만들어 그 길을 지켜왔다. 그는 2005년 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50년 가깝게 한지발을 만들어온 그의 시간이 비로소 빛을 얻게 된 지 열 여덟 해. 갑작스러운 부음이다. 유배근 명장이 23일 세상을 떠났다. 섬세하고 미려한 한지발이 그의 이름으로 남은 자리, 이제 길을 함께 걸어온 아내와 아들이 이어갈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김은정 선임기자
연말연시 다시 축제의 계절이다. 설국을 기다려온 겨울축제들이 전국 곳곳에서 줄지어 열리고 있다. 올겨울 전북은 유난히 시리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 때인데도 분위기가 냉랭하다. 그래도 철따라 열리는 잔치는 거를 수 없다. 지난 주말 전북 곳곳에서 겨울축제가 일제히 개막해 2~3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임실 산타축제와 진안 마이산 겨울동화축제, 무주 꽁꽁놀이축제 등이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서는 소식이 없다. 2012년 시작돼 겨울철 대표축제로 자리잡은 남원 ‘지리산 바래봉 눈꽃축제’다. 매년 12월 하순부터 이듬해 2월 중순까지 약 50일 동안 바래봉 자락 설원에서 열리는 눈꽃축제에는 전국에서 수만명의 방문객들이 몰려 추억을 쌓았다. 지리산 바래봉 자락에서는 1년 내내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특히 봄철 철쭉제와 겨울 눈꽃축제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두 축제 모두 민간단체인 운봉애향회가 주최‧주관하고 남원시가 후원한다. 남원시가 직접 행사를 주최하는 춘향제‧흥부제와 달리 지역민과 행정이 긴밀하게 협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눈꽃축제가 올해 심상치 않다. 발표를 미루고 있지만 사실상 올겨울엔 축제를 열 수 없게 됐다. 아직껏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어 지연 개최도 쉽지 않다. 이대로면 다음해에도 축제 정상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 기후 탓이 아니다. 주관단체인 운봉애향회와 매해 2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후원기관 남원시의 갈등이 이유다. 여기에 남원시의회가 축제 회계 내역 비공개 등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실타래가 복잡하게 꼬였다. 행사가 열리는 시유지(지리산허브밸리)에 설치된 컨테이너박스와 대형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 처리 문제가 발단이 됐다. 이들 가건물은 안내소와 먹거리장터‧특산물 판매장 등으로 쓰이고 있다. 축제 기간에 한정해 부지 점용허가를 내주고 있는 만큼 일단 이를 철거해 허가 조건을 이행한 후 다시 점용허가를 신청해야 한다는 게 시의 주장이다. 지난해 겨울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축제를 재개해 큰 성황을 이뤘지만 1년 만에 다시 중단사태를 맞게 됐다. 여기에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온 ‘바래봉 철쭉제’도 최근 들어 ‘꽃 빛깔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과 함께 방문객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관광자원 관리 부실과 방만한 행사 운영이 도마에 올랐다. 천혜의 자연자원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았던 지리산 바래봉 자락 축제들이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 물론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면 행사를 한 해 거르더라도 제대로 짚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행사 주최‧주관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 발짝 물러나서는 안 된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바래봉 철쭉제와 눈꽃축제는 관광 남원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시린 계절을 보내고 바래봉의 눈꽃과 철쭉이 더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무려 78% 예산이 깎인 새만금에 불똥이 튀면서 사실은 잼버리 파행의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조만간 발표되겠지만 그 당시 잼버리 준비 상황을 되돌아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언론도 연일 이 점을 지적하며 대회 차질을 우려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코앞에 다가온 개회식을 앞두고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조직위 핵심들은 성공 개최를 띄우며 악화된 여론 잠재우기에 급급했다. 민심 달래기용 그들의 퍼포먼스는 불과 며칠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 뒤 국민 감정을 더욱 자극한 건 그들의 책임 회피성 발언과 함께 폭탄 돌리기식 떠넘기기, 유체 이탈 화법의 문제 접근 방식이었다. 도의회가 지적한대로 총체적 부실은 기초공사가 잘못된 데서 비롯됐다. 공무원의 고질적 무사안일을 겨낭한 것이다. 전체적 개선 분위기와 달리 직원 개개인이 공직사회 물을 흐리게 하는 미꾸라지 행태는 여전했다. 잼버리 기간 수의계약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업체에 일감을 주고 허위 실적증명서가 악용되는가 하면 쪼개기 발주를 통해 수의계약 비율이 전국 평균 2배에 달할 정도로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이 판을 쳤다. 다른 대회나 행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태마스터스 경우 113건 중 78건이 수의계약을 한 데다 심지어는 상한선 2000만원 초과한 계약도 33건에 달해 검은 고리의 유착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같이 편중된 수의계약과는 대조적으로 장애인 생산품 구매 실적은 법으로 강제 규정을 했음에도 목표치를 밑돌아 입방아에 오른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1% 구매를 의무화 했는데도 공무원들이 외면함으로써 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이런 기조에 따라 판촉 행사 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도 최근 3년새 실적이 고작 0.22~0.59%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처럼 두 얼굴의 공직사회는 그들의 자정 노력에만 맡기기엔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본인이 겪은 직장 상사 갑질과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선 득달같이 달려드는 반면 민원인이 당한 공무원의 갑질과 괘씸죄 행정은 아예 본체만체 하고 있다. 새만금 예산이 일부 복원되긴 했지만 그래도 빌미를 제공한 잼버리 파행에 대한 책임 문제는 불가피하다. 역대 대회를 통해 사전에 어느 정도 예상된 문제인 데다 준비 기간도 충분했는데 화를 자초한 건 조직위 무사안일에 귀책 사유가 있다. 앞서 지적한대로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는 것은 공무원의 몫이다. 이게 부실하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주 내년 출범하는 전북 특별자치도와 관련해 도시브랜드가 표절 논란에 휩싸여 하루 만에 변경되는 홍역을 치렀다. 4억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내로라하는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숙의를 거듭한 결과라니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란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1970년대에는 라디오에서 정규 방송 도중 간간히 이런 뉴스가 흘러나왔다. “∼병원에서 위급한 환자가 긴급히 Rh 마이너스 O형 혈액을 필요로 합니다. 해당 혈액형을 가지신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크고작은 사건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응급환자는 선의의 헌혈자로 인해 생명을 구하곤 했다. 세월이 좀 흐른 1980년대에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특히 TV자막을 통해 비슷한 유형의 호소가 이어지곤 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헌혈자를 구한다는 호소문이 난무하지 않을뿐이지 요즘에도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선의의 헌혈자가 없는 한 응급환자 치료에 필수불가결한 혈액은 만성 부족상태다. 지난달말 현재 기준 혈액 보유량은 전국적으로 5.8일분, 전북은 5.3일분에 불과하다. 만일 혈액보유량이 1일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보건복지부는 ‘심각단계’로 분류, 지속출혈이 있는 환자나 응급수술 환자, 수혈없이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 중환자 치료중인 암환자등에게만 우선순위를 두고있다.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 이름없는 헌혈전도사들이 우리 사회에는 제법 많다. 송태규 시인(전 원광중고 교장)은 가족 헌혈 횟수가 무려 700회가 넘어 유명한 헌혈전도사이자 헌혈명문가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영진 원광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오창석 한솔케미칼 경영지원팀장, 김병호 전주신흥고 교장 등도 상상을 초월하는 헌혈 기록을 지닌 명실공히 ‘헌혈전도사’들이다. 전북도 강영석 국장의 경우 직장내에 헌혈동아리를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헌혈운동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장 앙리 뒤낭이 제창했던 적십자 운동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헌혈은 사실 인도주의의 발로, 그 자체다. 대한적십자사 전북혈액원(원장 강진석)은 지난 10월 4일 전북도와 함께 전북도민 헌혈의날 선포식및 헌혈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 받으면서 타 시도에서도 잇따라 헌혈의날 선포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헌혈 직업군 분류에서 고교생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학교에서 단체로 하는 것은 봉사활동으로 인정하는 반면, 개인헌혈은 봉사활동 실적에서 제외, 헌혈 인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더욱이 조국사태를 거치면서 향후에는 고교생의 헌혈 전체를 봉사활동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함에따라 향후 심각한 혈액 부족 사태가 우려된다. 지역보건 향상을 위해 시민들이 함께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때마침 오는 26일 오후 2시 전북대에서는 의미있는 행사 하나가 열린다.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헌혈의집 전북대 한옥센터가 공식적으로 문을 연다. 한옥센터는 전국 첫 사례라고 하는데 이번 행사를 계기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헌혈운동 붐이 일었으면 좋겠다. 올 11월말 현재, 전북의 헌혈 횟수는 총 9만742건이다. 수백번씩 헌혈을 한 이들의 희생정신은 두말할 나위없이 소중하지만, 한 사람의 백보 보다는 백사람의 일보가 더 가치가 있고 효과가 있는게 바로 헌혈이다. 청룡의 해인 갑진년 새해 전북에서 헌혈 횟수 10만 건을 당당히 돌파하길 간곡히 소망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질병은 결핵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와 결핵의 관계는 석기 시대,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서 발견된 인골에 남아있던 흔적이 시작이다. 이미 석기 시대부터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의 존재는 놀랍다. 결핵은 시기도 따로 없이 세계 전역을 휩쓸었다. 앞선 것은 유럽인데, 산업혁명을 치른 19세기 말 유럽에서 창궐했던 결핵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휩쓸었다. 전염병인데다, 치료법도 없고 원인도 규명되지 못했던 시기였으니 전 세계를 휩쓴 결핵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프레데리크 쇼팽, 에밀리 브론테, 안톤 체호프, 프란츠 카프카, 데이비드 로렌스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들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핵이 전염병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후 치료제와 치료법이 개발되면서 사망률은 많이 감소했으나 ‘후진국형 질병’으로 치부되는 결핵을 완전히 퇴치하지는 못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결핵이 여전히 진행 중인 질병이고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발병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결핵의 존재가 새삼스러워지는 이유다. 10년 전만 해도 연말이면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사게 하는 ‘크리스마스 씰’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씰은 일종의 항결핵을 위한 모금 운동이다. 1904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발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캐나다 출신 선교 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 만들어 판매했다. 이후 부정기적으로 발행되다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하면서 해마다 발행, 국가가 공공기관 의무구입 규정을 만드는 등 앞장서면서 범국민 모금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14년 공공기관 크리스마스 씰 의무구입 규정은 폐지됐다. 판매 대부분을 공공기관에 의존하고 있던 크리스마스 씰 사업이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였으나 다행히 살아남았다. 우리나라 크리스마스 씰은 대부분 아름다운 도안으로 호평 받고 있다. 고유한 전통, 동식물 등 자연과 화제의 인물, 캐릭터 등 해마다 선정하는 주제도 다양하다. 결핵협회는 이제 크리스마스 씰 발행에만 그치지 않고 씰의 그림을 다양한 상품(굿즈)으로 만들어낸다. ‘크리스마스 씰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라며 사랑과 나눔의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씰은 10장 세트가 3,000원이니 부담도 적다.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 속 주인공이 등장했다.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씰을 샀다. 누구에게나 즐겁고 반가운 선물이 될 것 같다. / 김은정 선임기자
숨쉬기 힘들 정도로 코를 찌르던 악취가 사라졌다. 물론 반세기 넘는 세월 땅속 깊이 스며든 똥내까지 모두 걷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괄목할 만한 변화다. 익산시 왕궁면(王宮面) 온수리‧구덕리 일원 179만㎡에 자리잡은 왕궁축산단지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유서 깊은 역사의 땅, 왕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전통의 향기가 아닌 지독한 악취와 축산폐수의 진원지로 악명을 떨쳤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돼지 축사가 밀집돼 있던 이곳은 1948년 정부가 한센인 격리정책의 일환으로 조성한 ‘한센인 정착촌’이다. 정부가 강제 이주시킨 한센인들에게 축산업을 장려하면서 축사가 난립했다. 이후 1980년대 초반 축산업 호황기를 맞아 시설 규모와 사육두수가 급격히 늘었다. 그러면서 수질오염‧악취 등 환경문제가 부각됐다. 밀집된 축사에서 대량으로 발생한 축산분뇨는 그대로 단지 내 소류지에 쌓였고, 인근 하천으로도 흘러들었다. 왕궁특수지역이라 불리며 지역사회에서 비껴나 있던 이곳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새만금 수질오염 논란이 격화되면서부터다. 새만금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꼽힌 것이다. 논란 끝에 건립된 왕궁축산폐수처리장이 1998년부터 가동됐지만 금세 한계를 드러냈다. 고농도로 쏟아져 나오는 대량의 폐수를 기준에 맞춰 처리하기는 애초부터 역부족이었다. 결국 근본대책이 나왔다. 정부와 지자체가 축사를 사들여 철거하는 방식이다. 2010년 정부 7개 부처가 합동으로 ‘왕궁 정착농원 환경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축사 매입을 시작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애초 5년 안에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거듭 해를 넘겨야 했다. 협의매수는 난항의 연속이었고, 예산 문제도 불거졌다. 그래도 끝은 있었다. 익산시가 지난 8일 ‘모두 204개 축사를 매입하면서 13년에 걸친 현업 축사 매입사업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밝혔다. 완벽한 마무리는 아니었다. 농가 4곳과는 끝내 협의에 실패했다. 환경부는 내년 하반기께 매입 축사 철거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왕궁축산단지는 이제 체계적인 ‘생태계 복원’의 과제를 안게 됐다. 익산시는 지난해 왕궁축산단지 생태복원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영국의 ‘에덴(Eden) 프로젝트’를 도입해 생태체험학습공간으로 바꿔 놓겠다는 청사진이다. 하지만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막대한 예산문제 등으로 인해 동력을 잃었다. 다행히 왕궁축산단지가 올해 환경부의 ‘자연환경 복원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익산시는 정부 지원을 통한 생태축 복원에 기대를 걸고 있다. 환경부 사업은 기본계획 수립 등의 절차를 거쳐 2025년께 본격 시행될 전망이다. 한센인의 아픈 역사에 지독한 악취가 덧칠된 왕궁축산단지는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앞으로는 축산단지라 부를 수 없게 된 이곳이 혐오·기피 지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역사‧문화가 살아 숨쉬는 쾌적한 생태 마을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요즘 도민들은 새만금 국가예산삭감과 국회 의석수 한석이 줄어든다는 것에 매우 기분이 나빠 있다. 전북 보다도 인구가 훨씬 많이 줄어든 부산 경남은 그대로 놔두고 10석의 전북 의석수를 한석 줄인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것. 현역의원들의 정치력이 워낙 약하다보니까 이 같은 일이 생겼다면서 자존심 상해서 뭐라 말하고 싶은 마음도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후보자들이 내년 총선에 나서겠다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연일 기염을 토하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출마 하겠다고 이름을 내민 정치철새가 있는가하면 느닷없이 지역에 나타나 낙후된 전북발전을 위해 자신의 한몸 불사르겠다고 사자후를 토해낸 사람도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반응은 차갑고 냉소적이다. 현역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면서 어중이 떠중이 정도로 보고 있다. 유권자들은 선거가 닥치면 의정활동을 잘 했거나 국가예산을 많이 확보한 의원을 제외하고는 교체여론이 항상 우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면서 전체적으로 판갈이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그도 그럴것이 전북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부끄럽고 창피할 수가 없다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도 정치판을 갈아 엎어야 한다고 목청을 돋구웠다. 오죽하면 낙선한 중진들을 소환했겠는가. 이들을 소환한 이유는 현역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느냐는 가느다란 희망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흘러간 물로 어떻게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사람도 있지만 양수발전 원리를 보면 고인 물로 얼마든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면서 다시 한번 지역발전을 위해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 이처럼 전북이 망가진 원인도 그간 선거 때마다 인물을 보지 않고 무작정 민주당 일변도로 싹쓸이 선거를 해온 결과다. DJ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면 전북은 호남권에서 탈피해 자강의식을 갖고 홀로서기를 했어야 옳았다. 잔뜩 호남으로 묶여 파이만 키워 놓고 그 과실은 광주 전남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지 않았던가. 결국 똑똑한 인물을 키우지 못한 탓이 컸다. 지금은 멍청스럽게 누굴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무능한 정치권을 만들어준 업보가 되돌아온 결과라서 유권자인 내탓이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라나는 2세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도록 하려면 내년 총선 때 역량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옥석이 가려 지겠지만 지금까지 나와 있는 사람 중에는 글쎄요나 아닌데가 많다. 전국 꼴찌라는 불명예를 털어내면서 국가예산 등 의정활동을 잘할 인물을 발굴해서 금배지를 달아줘야 한다. 뒷담화나 까는 부정적인 의식을 떨치고 나부터 목에 방울 달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의 시민의식향상이 절실하다. 일부 지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현역들의 지지도가 낮게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것 보다 갈아 치워야 한다는 여론이 훨씬 높다는 것. 이쯤되면 현역들이 민심을 헤아려 불출마를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백성일 주필 부사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마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입지자들의 신구 대결이 볼만하다. 그런데 돌연 전북 선거구 1곳이 줄어드는 획정안이 발표되자 지역 정가는 술렁이고 있다. 기존 구도에서 텃밭을 중심으로 입지자들의 유불리가 좌우됨에 따라 셈법이 복잡한 양상이다. 그런 가운데 전북보다 배 이상 인구가 줄어든 대구 부산을 비롯한 타 시도를 놔둔 채 우리 지역을 포함한 건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전국에서 2곳 줄어드는데 그중 1군데가 전북이란 사실은 도민들 반감만 부채질한 꼴이다. 새만금 예산 삭감에 이어 전북이 동네북이냐는 조롱이 나온다. 지역 위상과 국회의원 존재감이 그만큼 추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총선 입지자들이 겨뤄야 할 운동장 1개가 사라진다는 것은 지역 발전과 직결된다. 앞서 밝힌 저평가된 현역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참인 정동영, 유성엽, 이춘석 전 의원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중진 역할론’ 까지 부상하고 있다. 잼버리 예산삭감 사태를 겪으며 무기력한 지역 정치권의 한계를 목도한 탓이다. 이런 배경에서 제기된 중량급 인사와의 시너지 효과를 묶는 ‘전북 자강론(自强論에) 에 주목한다. 현안 해결에 말발이 먹히고 전북 몫을 챙길 수 있는 3~4선 이상의 힘을 가진 국회의원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기류 속에 최근 보폭을 넓히고 있는 정동영 전 의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지역 정가에서도 그의 5선 도전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1승1패를 기록한 전주병은 벌써부터 김성주 의원과 세 번째 리턴 매치를 점치는 가운데 이들을 둘러싼 신경전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주 전주병 지역에서 열린 정치 모임에서 둘 사이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행사 주최자가 발언 도중 갑자기 정동영 정세균 인물론을 띄우면서 전북 현안 해결의 적임자라고 치켜세우자 김 의원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고 한다. 지난달 7일 열린 새만금 예산 복원 전북도민 국회 궐기대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불거졌다. 정 전 의원의 발언을 두고 사전 조율이 안됐다며 김 의원 측이 반발해 무산됐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샅바 싸움은 지역구마다 총선 공천을 둘러싼 시나리오가 난무한 상황과 궤를 같이하면서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밥 그릇‘ 부터 챙겨야 할 때다. 쪼그라드는 전북 위상을 감안할 때 선거구 1개가 줄어드는 것은 국회의원 1명이 갖는 제왕적 권한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다. 당장 전주 군산 익산을 제외한 11개 자치단체를 3명이 커버해야 하는 현실은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 역할을 무색케 한다. 지역 발전 관점에서 현재 10석도 부족한 가운데 겨우 '원팀 정신' 으로 근근이 버텨내는 형국이다.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1석을 줄인다는 것은 누가 봐도 전북을 희생양으로 정치적 손익 계산을 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소모적 감정 싸움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김영곤 논설위원
올 한해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인물 중 한명은 단연 홍범도 장군일 것이다. 육사에 있는 흉상 이전 문제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새삼 홍범도 장군은 최대 관심사였다. 광주시 광산구 월곡동에 가면 ‘홍범도 공원’(다모아어린이공원)이 있다. 이곳에 있는 흉상은 1.4m 높이로 장군이 묻혔던 카자흐스탄 홍범도 공원의 흉상을 본 떠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해 8월15일 광산구와 월곡동에 사는 고려인 주민들은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봉환된 1주년을 기념해 흉상을 세웠다. 홍범도 장군은 강제이주됐던 고려인들에게는 자부심과 정체성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월곡동은 중앙아시아에서 흩어져 살다 고국으로 이주해 온 고려인 동포 7000여명이 모여 사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려인 마을’이다. 고려인(高麗人)은 옛 소련이 붕괴된 후 그 일대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의미하는데 대략 50만 명이나 된다. 조선족(250여만 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새삼 고려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런데 타 시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구감소 해법을 고려인 동포에서 찾았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충북 제천이다. 제천시는 인구 절벽을 막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냈는데 바로 '고려인 재외동포' 유치다.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특별 사업에 선정된 데 이어, 지원 조례도 제정했다. 제천시는 중앙아에 살고 있는 50만 고려인들을 제천시민으로 데려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이다. 전북에서도 고려인마을을 유치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윤수봉 전북도의원(완주)은 지난 9월 제403회 임시회 5분자유발언을 통해서 지적했다. 충남도의 경우 10년 전까지만 해도 462명에 불과하던 고려인이 올해는 1만 650명이 살고 있고, 경북은 3792명이, 충북에는 5221명, 경남에는 4690명이 각각 거주하고 있는데 도내 고려인은 286명에 불과해 전국 시도중 최하위라는 거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산재한 고려인마을은 경기도 7곳, 충남 4곳, 충북 2곳 등 총 22개소에 이르고 있으나 전북에는 단 한곳도 없는 실정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고려인마을을 만들고 각종 교육, 지원책을 적극 추진해야만 한다. 며칠 전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한국에서 고려인마을을 찾다'(북코리아)라는 탐방기를 냈다. 장장 2년 4개월에 걸쳐 '아시아엔'에 기고한 탐방기를 묶은 소책자인데 기존 고려인 마을 25곳은 물론 인구 소멸 대응책으로 고려인 이주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경북 영천, 전북 김제, 충북 제천시에 관한 내용도 담았다. 지난 20년간 재외동포 사회를 연구해온 임 교수는 특히 제천시가 '고려인의 고향'으로 거듭날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을 수행 중인 지방 중소도시들이 제천시 사례를 참고해 외국인 우수인재 전형(유형1)뿐 아니라, 동포 당사자와 가족들 모두에게 일할 수 있는 비자를 제공하는 '유형2'에도 관심을 갖고 각 지역 여건에 맞는 유치·초청 사업을 시작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전북엔 언제쯤 고려인 마을이 만들어질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영화 <서울의 봄>이 12·12를 앞두고 누적 관객 7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지 20일 만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등 신군부가 주도했던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다. 영화가 개봉된 주말 3일 동안에만 150만 명을 불러 모은 데 이어 꾸준히 관객 수를 유지하면서 흥행세를 높여가고 있다. 영화는 일반적으로 개봉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 평점이 낮아지지만 서울의 봄은 올해 개봉작 중 관람객 평점이 가장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다양한 세대층에 고르게 지지를 받으며 한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이른바 ‘엔(N)차 관람’과 영화 속 소소한 정보인 ‘티엠아이’(TMI)를 공유하는 글이 늘고 있다. 2030 세대 사이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얼마큼 분노했는지 심박수를 인증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심박수 챌린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의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MZ 세대다. 새롭게 알게 된 ‘살아 있는 역사’에 분노한 젊은 관객들이 영화의 흥행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영화가에서는 이들의 힘이 ‘천만 영화’ 탄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떠오르는 책이 있다. 2017년 4월,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펴낸 자서전, <전두환 회고록>이다. ‘격동의 대한민국을 담아낸 당대의 역사서’ ‘30년간의 침묵을 깨고 공개되는 최초의 회고록’ 등 온갖 화려한 수사를 앞세운 이 책은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때론 솔직하게, 때론 담담하게 정리되어 있다’ 했지만, 실체는 거짓과 왜곡의 편찬이었다. “5·18 사태와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조작과 왜곡의 파편을 거리낌 없이 쏟아낸 저자는 수많은 사람을 상처 입히고 분노하게 했다. 결국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출판 배포 가처분 청구에 법원은 <회고록 1권>에 출판 배포를 금지하고 피해자들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즈음 세상에 나온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전두환 타서전>이다. 타서전은 ‘다른 사람이 서술한 전기’다. 그러니 이 책은 <전두환 회고록>에 대응하는 책이었다. 역사학자 정동일과 황동하가 펴낸 이 책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행적을 다룬 106건의 신문 기사를 자료로 그 전말과 진실을 담은 전기다. ‘한 시대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기록하기 위해 출간’한다는 이 책을 펴내면서 저자들은 이렇게 밝혔다. ‘전두환 회고록을 보며 처참함을 느낄 이들에게 우리가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잊지 않는 것, 그것뿐이다.’ 들여다보니 영화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 김은정 선임기자
‘경축, 정밀 안전진단 통과’ 노후 아파트단지에 내걸린 이런 현수막을 가끔 볼 수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아주 오래된 아파트지만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아 거주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현수막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전문기관의 진단에서 ‘위험한 건축물’로 낙인찍힌 것을 함께 기뻐하자는 이상한(?) 내용이다. 재개발·재건축 때문이다.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는 아파트 재건축 대장정의 시작을 알리는 문구다. 안전진단은 재건축의 첫 관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건축 추진이 가능한 D·E 등급을 받는 일이 만만치 않다. 정부가 안전진단 기준을 엄격히 규정해 재건축 규제수단으로 운영해온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완화해 재개발·재건축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지난 8일에는 노후 신도시의 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지역 아파트에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거나 아예 면제해주고, 토지 용도 변경 및 용적률 상향 등 파격적인 특혜가 주어진다. 특별법이 적용되는 노후 계획도시에는 전주 아중지구 등 지방 거점 신도시도 포함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이 특별법은 처음부터 분당·산본·일산·중동·평촌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를 겨냥해 추진됐다. 이 법이 ‘1기 신도시 특별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게다가 이 특별법에 따라 대규모 재건축사업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수도권 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989년 1기 신도시 개발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거침없이 추진된 수도권 신도시 정책은 수도권 1극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하면서 각종 부작용을 불렀다. 서울의 주거 및 교통문제 해소를 목적으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방의 인구 이탈을 부추기고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해 문제를 더 키운 것이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 수도권이 대한민국의 인구와 재화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면서 지방도시는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블랙홀을 키우는 데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인천 계양을 시작으로 3기 신도시 착공식이 이어지고 있고, 4기 신도시도 조만간 속속 공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비수도권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초광역화’ 구상이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가운데 느닷없이 ‘메가시티 서울’ 전략이 추진되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도 속속 확대되고 있다. 여야 대치정국에서도 1기 신도시 특별법은 일사천리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야말로 지방시대가 아닌 수도권 재개발·확장시대다. 역대 정부가 앞다퉈 균형발전을 외쳤지만 그럴수록 인구와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더 심해졌다. 묻고 싶다. 지금 그들이 외치는 균형발전은 ‘대한민국 균형발전’인가, ‘수도권 균형발전’인가, 아니면 그저 ‘민심 달래기용 정책구호’인가.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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