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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가 야심차게 도시의 미래 성장비전을 담은 2035 전주 도시기본계획(안)이 정부의 국토정책위원회로부터 재조정 요구를 받았다. 이유인즉 전주시의 계획인구가 너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전주시는 오는 2035년까지 계획인구를 83만5000명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국토정책위원회에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 추세를 반영해 실현가능한 수준으로 목표인구를 하향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전북환경운동연합과 전북생명의숲시민행동21도 공동 성명을 통해 인구 감소 흐름과 벗어난 인구 부풀리기 등을 이유로 전주시의 2035년 도시기본계획이 허점투성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새 전주시 인구가 7196명 늘어나는 데 그쳤는데도 2035년까지 17만6789명이 증가한다는 것은 과도한 목표인구 설정이라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계획인구 부풀리기는 비단 전주시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 1월 경기도 평택시와 용인시도 도시계획 수립을 위한 목표 인구로 각각 120만명과 150만명을 설정했지만 국토정책위원회에서 하향조정 요구를 받고 각각 90만명과 128만명으로 축소했다. 이처럼 자치단체가 도시 계획인구를 부풀리는 이유는 미래의 도시 팽창을 염두에 두고 개발 가능한 시가지화 용지를 좀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계산에서 나온다. 그러나 시가지화 용지를 늘리는 만큼 도심 공원이나 보존녹지지역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여름철 도심 열섬현상과 폭염 증가로 쾌적한 생활환경을 해칠 수 있다. 또한 도시개발 용지만 확보해 놓고 장기간 방치할 경우 도시 활력이 떨어지고 지가 상승에 따른 향후 개발비용 부담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민선 자치 이후 시장군수들이 한때 인구 공약이나 슬로건을 너도나도 내걸었었다. 익산시는 민선 5기 때 인구 50만 도시건설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지만 지난 2017년 인구 30만명 선도 무너지고 말았다. 완주군은 민선 6기부터 인구 15만 도농통합 자족도시를 내걸었지만 지난 2017년 9월 인구 9만7000명 선을 찍고 난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완주군은 이서 혁신도시와 삼봉 신도시, 산단 미니도시, 복합행정타운 조성을 통해 인구유입을 기대하고 있지만 전북 인구 절벽과 전주시내 아파트 미분양 등을 고려하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젠 자치단체의 인구 늘리기 슬로건이 실효성이 없다.
사회구성원들에게 조건 없이 일정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가 확산되는 추세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한 때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놓고 정부가 제동을 걸어 큰 논란이 일었으나 지금은 전국의 많은 지자체에서 청년수당을 도입했다. 지난 대선 후보 대부분의 공약이었던 노인기초연금 증액과 아동수당 지급은 현실화 됐다. 아직도퍼주기식 선심 행정이란 비판이 없지 않지만, 소득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깊어질수록 이런 형태의 기본소득제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전북도가 내년부터 전북 농가에농민 공익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적으로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시군이 이미 여럿 있고, 도내에서도 고창군이 농민수당 지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지난달 조례제정까지 마쳐 새삼스러울 게 없으나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확장성이 주목된다. 농업과 농가의 어려움은 굳이 사족이 필요치 않다. 역대 정권마다 농업에 대한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으나 농업환경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농가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20여년 전 경영이양직불제를 시작으로 2001년 논농업직불제 등 여러 형태의 직불금 제도를 도입했지만 소수 대규모 농가에 혜택이 돌아간 채 대다수 농가들은 도시 근로자 소득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농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초고령사회다. 10년 뒤면 농촌의 65세 노인이 절반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군 소멸에 앞서 농촌사회 전반이 붕괴될 것이란 경고가 결코 엄살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하다. 유럽 등 여러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가능한 농업에 관심을 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2년 전 농업인과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 조사에서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이많다는 데 70%가 응답한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 대다수도 농업농촌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것 같다. 전북도의농민 공익수당도입으로 우리의 농업과 농촌에게 얼마만큼 힘이 될 지는 미지수다. 농가에 지급하는 연간 60만원은 아동 한 명의 수당도 안 된다. 그럼에도 전북 전체적으로 연간 6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단다. 농가 소득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려면 수당을 높이는 문제여서 결국 재원 확보가 관건인 셈이다. 중앙 재정의 투입 없이 자치단체로서는 한계가 있다. 광역 지자체에서 어렵게 나선 만큼 이제 국가가 답해야 할 때다.
단 한장의 사진이 오랫동안 강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들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기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진 수병과 간호사가 바로 그것이다. 해군 복장의 수병이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간호사 복장의 여성을 끌어안고 강렬하게 키스하는 장면의 흑백 사진은 너무도 생생하다.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2차 대전 종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컷이 됐다. 사진속의 남성 주인공 조지 멘돈사는 당초 자신의 연인과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으나 종전 소식에 너무 들뜬 나머지 생면부지의 간호사 여성을 끌어안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베트남전의 참상을 널리 알린 네이팜탄 소녀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인상적인 사진으로 꼽힌다. 그런데 먼 훗날 21세기를 대표할 사진 한장이 판문점에서 전세계에 타전됐다. 마지막 분단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판문점에서 엊그제 김정은-트럼프 간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조연을 자처했으나 문재인 대통령 또한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한 가운데 사실상의 625 정전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혹자는 회담이 전격적으로 마련된 즉흥적인 것이라고 하고, 혹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이뤄진 회담이라고도 한다. 진위야 어쨌든 사람들은 툭툭 내던지듯 돌발적인 결정을 하는 듯한 트럼프의 리더십을 주목한다. 대충 던지는 것 같지만 언행 하나하나가 마치 프로기사 고수와 같다고 한다. 일본 전국시대 세명의 영웅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등이다. 오다가 타고난 천재라면 도요토미는 철저한 전략가였고, 도쿠가와는 인내와 덕을 겸비했는데 결국 최후의 승자는 숱한 시련을 인내심으로 극복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트럼프는 어리숙해 보이지만 어쩌면 현실속에서 혁신에 능한 오다 노부나가와 닮았는지도 모른다. 민선 7기가 출범한지도 벌써 2년차에 돌입했다. 역대 도백의 경우 단점은 차치하고, 유종근 지사가 비전 제시와 추진력이 돋보였다면, 강현욱 지사는 무리를 하지않는 스타일이었고, 김완주 지사는 근면과 꼼꼼함을 바탕에 뒀다고 한다. 현재 도백을 맡고있는 송하진 지사는 모르긴해도 앞선 이들의 장점만을 취하고 싶을 것이나 최종 평가는 임기가 끝난뒤 내려질 것이다. 비단 도지사뿐 아니라 교육감과 도내 시장군수들도 임기 2년차를 맞으면서 전임자들의 행적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진일보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초심에서 시작한다. 토끼는 귀를 잡고, 닭은 날개죽지를 잡으며, 고양이는 목덜미를 잡는데, 겸허한 초심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잡는 요체 아닌가.
정동영 만큼 명암이 교차하는 의원도 드물다. 전북 출신으로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그가 낙선해 미국으로 홀연히 떠나 칩거하는 등 냉 온탕을 오가며 4선이 됐다. 방송기자 출신으로 15대 총선때 덕진구로 출마해 전국 최다득표로 정계에 입문,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잘 생긴 외모에 앵커 출신으로 인기가 높아 하루 아침에 DJ입으로 변신,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을 지내면서 DJ의 신임을 받았다. 출마 때 개나리아저씨란 닉네임으로 전주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여성유권자한테 인기가 대단 이미지정치의 상징이 되었다. 정의원이 워낙 중앙정치 무대에서 바쁘게 뛰다보니까 지역구에 내려올 시간이 없었다. 당시 재선인 장영달 의원(완산구)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빛이 안 났다. 그 이유는 정의원의 이미지 정치에 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당 최고위원이 됐던 정의원은 초선들과 함께 권노갑고문의 2선후퇴를 요구하며 정풍운동을 주도했다. 그 결과 권 고문이 물러났지만 동교동 실세들이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때 앙금이 남아 정의원을 배척, 노무현이 대선후보가 됐다. 대학 동기였던 이해찬 대표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권 고문이 사무실을 마련해 주는 등 동교동계의 도움이 컸다. 반노이미지를 강조한 그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로 극적으로 선출됐지만 MB한테 531만표라는 사상 유례없는 표차로 낙선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노무현은 후보 당시 DJ의 모든 공과를 안고 가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정의원은 노 대통령의 공만 갖고 과는 버리고 가는 바람에 친노세력의 거센 저항을 샀다. 노 대통령 서거 때 봉하마을에서 쫓겨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선때마다 1백만표 안에서 승패가 갈렸지만 거의 더블 스코어차로 져 진보진영 한테 좌절감을 안겼고 전북 출신들도 MB때 맥을 못췄다. 그후 안철수 탈당으로 술렁이는 호남민심을 잡기 위해 2015년 12월 18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직접 순창에 내려와 그를 만났지만 결국 다른 길을 간게 패착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해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정몽준 한테 패배한 후 순창에서 씨감자를 재배해왔다. 그러나 문 대표는 정의원과 만나는 것이 비밀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몹시 실망해 씨감자만 받고 돌아 섰다는 것. 문 대표는 그 누구도 몰래 그를 만나려고 순창까지 왔는데 그때 이미 기자들이 와 있어 놀랐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한참동안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가 그냥 갈 수 없어 그를 만났다는 것. 이미 양측이 그의 복당과 비례대표문제를 어느정도 합의해 놓아 문 대표가 확답 받으려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평화당의 당 지지도가 2.5%이고 그의 정치가 콘텐츠 보다는 이미지 정치로 계속 흘러간 게 결국은 전북정치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기대가 엇갈린다. 전북정치의 자산인지는 전주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오늘의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예술가이자 중국의 반체제 인권운동가인 아이웨이웨이가 제작해 전 세계 사람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일깨운 다큐가 있다. 25명의 제작진이 1년여 동안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프랑스, 그리스, 독일, 스위스, 시리아, 터키 등 20여 개국을 찾아다니며 촬영한 <유랑하는 사람들(Human Flow)>이다. 인권의 가치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난민 문제를 추적해온 아이웨이웨이가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떠나는 난민들의 생생한 현장을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아낸 기록. 덕분에 다큐는 목숨 걸고 국경을 넘는 수많은 난민들의 절박하고 처절한 난민들의 삶을 서사적 풍경으로 보여준다. 걸어서 국경을 넘거나 좁은 보트에 몸을 칼날처럼 세워 쟁여진 채 바다를 떠다닌 난민들의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는 것. 다행히 어느 나라 해변에 발 딛을 수 있었던 난민들이 시간을 다투어 황망하게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모래위에 쌓이고 또 쌓여 거대한 설치물이 된 난민들의 구명조끼 행렬이다. 더 충격적인 현실이 있다. 의지할 보트는 고사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다 목숨을 잃는 난민들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를 흐르는 리오그란데 강가에서 엘살바도르 난민 아버지와 두 살짜리 딸이 꼭 껴안은 채 숨져있는 영상이 공개됐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너다 물살에 떠밀려 목숨을 잃은 부녀의 충격적인 죽음이다. 미국 국경을 불과 1km 앞에 둔 멕시코의 강가, 그 건너편에서 앞서간 남편과 딸을 지켜보던 아내의 울부짖음이 처절하다. 4년 전에도 유럽으로 가려다 배가 뒤집혀 터키해변으로 떠밀려온 시리아 난민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이 전 세계를 슬픔에 빠트렸다. 이 후 난민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난민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달라진 것은 별반 없다. 아이웨이웨이의 경고를 다시 떠올린다. 불확실한 이 시대에 하나의 운명 공동체인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보다 높은 수준의 관용, 연민 그리고 신뢰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더욱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인권과 공동체에 대한 몰지각한 인식이 가져오는 상처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다문화 가족의 자녀를 잡종강세니 튀기 로 표현한 한 자치단체장의 발언만 해도 인권과 공동체 인식의 비루함으로부터 온 것 일터. 공동체의 가치가 새삼스럽다.
지난 20일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흥미로운 연구논문이 게재됐다. 미국 미시건대와 유타대, 스위스 취리히대 공동연구팀이 세계 시민들의 정직성 실험을 한 결과가 실렸다. 공동연구팀은 세계 40개 국가 355개 도시에서 잃어버린 지갑 찾아주기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는 우체국 호텔 병원 문화관련 기관 등 공공기관과 민영회사 사람들이었다. 돈이 들어 있지 않은 지갑과 13.45달러(1만6000원 상당)가 들어 있는 지갑, 그리고 94.15달러(11만원 상당)가 든 지갑 등 3종류, 1만7303개의 지갑을 사용해 정직성 테스트를 진행했다. 지갑에는 돈뿐만이 아니라 열쇠와 명함 등도 함께 넣었고 직접 실험 대상자들에게 분실 지갑이라면서 건네주는 방식으로 실시했다. 실험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연구팀은 지갑에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챙기려는 의도가 강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지갑에 돈이 많을수록 돌려주는 비율이 높았다. 돈이 없는 지갑의 회수율은 평균 40%에 그쳤지만 13.45달러가 든 지갑은 51%, 94.15달러가 든 지갑은 72%로 회수율이 높아졌다. 지갑 회수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스위스였고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이 뒤를 이었다. 회수율이 낮은 국가는 중국 모로코 페루 카자흐스탄 케냐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실험은 사익이 행위를 이끈다는 고전적 경제 논리를 반박했다. 오히려 분실 지갑에 돈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정직해졌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둑으로 비치지 않으려는 심리가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사익보다는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지, 즉 자신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번 실험 대상국에서 한국은 빠졌다. 우리도 정직성 실험대상에 포함됐으면 아마 상위권에 랭크되지 않았을까. 체면과 도리, 양심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성을 보면 돈 지갑 회수율은 매우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정직성 실험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방금 한 말도 부정하고 약속은 파기하기 일쑤고 금방 들통날 거짓말도 거리낌 없이 해대고 내년 21대 총선에서는 선량들의 선택기준으로 정직성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전주의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다. 조선왕조와 관련된 유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李安社)가 살았다는 이목대와, 이성계가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다는 오목대가 있다. 조경단에 전주이씨 시조묘가 봉안돼 있고, 경기전에 태조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런 유적들을 옆에 두고도 오늘을 사는 전주시민들에게 왕조의 발상지라는 점이 그리 큰 자부심이나 실감나는 역사로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조선왕조가 그저 성씨의 본향 정도 수준 정도로 전주를 데면데면 여겼다면 이제와서 굳이 왕조의 발상지입네 요란 떨 일도 아니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이 전주를 왕조의 발상지로 각별히 생각했던 것은 조선왕조실록에 잘 드러난다. 특히 경기전에 보관했던 태조영정을 챙긴 것은 유별났다. 세종 때 지은 경기전에 태조 영정을 봉안하면서 공조 판서를 보냈다. 영정을 봉안할 때 문무관을 뽑는 과거를 시행하기도 하고, 경기전 5리 길 안에 향을 피우기까지 했다. 종 9품의 참봉이 경기전을 지켰으며, 영정을 잘 간수한 관리에게 특별 승진도 시켰다. 전주(全州)의 영정이 형세상 장차 여름을 지나게 되었는바, 습기가 스며들 걱정이 있을 듯하니 자주 봉심하고, 혹 본부 관사의 온돌방에다 보관하되, 불조심을 하는 등의 일을 십분 늘 신칙하라. 광해군이 전라감사에 이런 세부적인 내용까지 지시한 걸 보면 조선 왕들이 태조영정을 얼마만큼 소중히 다뤘는지 알 수 있다. 역사적 평가를 접어두고 선조 때 일어난 정여립 사건 처리에서도 조선왕조가 전주를 어떻게 여겼는지 보여준다. 전주가 조종(祖宗)의 어향(御鄕) 이니 전주에 있는 정여립의 조부 이상의 분묘를 낱낱이 파내어 이장하도록 하고, 또 그의 멀고 가까운 족류(族類)들도 모두 전주에서 내쫓아 딴 고을에 살도록 하라고 선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중죄인을 치죄하면서 보통 해당 고을의 격을 강등시켰으나 전주를 예외로 한 적도 있다. 조선왕조가 조경묘와 경기전의 체면을 막중하게 여겨서다. 전주시가 한옥마을에서 국립무형유산원으로 연결되는 오목교에 조선시대왕의 깃발을 걸었다. 전문가 자문을 거쳐 만든 왕의 행차에 사용되던 의장기 28기다. 왕조 발상지로서 시민들의 자부심과 함께 전주의 위상을 곧추 세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읍 태인에 가면 피향정이라는 유명한 정자가 있다. 연못의 연꽃 향기를 입은 정자라는 의미다. 전국적으로 최치원 마케팅을 하는 시군이 수십곳에 달하는데 피향정은 태인군수를 지냈던 최치원 마케팅의 한 사례다. 피향정 옆에 있는 빗돌을 보면 임꺽정을 지은 홍명희의 부친 홍범식(태인군수) 선정비, 실학 4대가 이서구(관찰사) 불망비, 탐학으로 동학농민운동을 유발한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친 조규순(태인현감) 불망비도 눈에 띈다. 그런데 피향정 바로 옆 도로명은 흥미롭게도 수학정석길이다. 역시 예상한 그대로다. 수학의 정석으로 유명한 홍성대 전주 상산학원 이사장의 생가가 바로 옆에 있다. 학교명상산(象山)이란 명칭은 태인 근처 상두산(象頭山)에서 가운데 글자를 빼고 따왔다. 홍 이사장이 불과 30세의 나이에 수학의 정석을 발간한 이래 지금까지 53년간 대략 50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바둑용어인 정석(定石)을 널리 알리는 역할도 했다. 작업의 정석 연애의 정석 등 수학의 정석을 변용한 수많은 예술작품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돈 방석에 올라선 홍 이사장은 남들처럼 국회의원 배지 한번 달고, 해외 골프여행 다니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으나 후학 양성에 올인했다. 1981년 상산고 설립 당시, 5억원만 있으면 그럴듯한 학교하나 세워서 사돈네 팔촌까지 이사장교장행정실장을 해먹고 교사 채용은 뒷돈을 받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는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하고도 단 한사람의 친척도 쓰지 않았다. 다른 자사고는 모두 대재벌이 후원하고 있으나 상산학원만은 홍 이사장이 지금까지 설립 이후 사재 500억원 이상을 출연했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을 바쳐온 그의 건학이념이 붕괴위험에 직면했다.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편승해 김승환 교육감이 전북의 커트라인을 타 시도(70점)와 달리 80점으로 높인 때문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 일부 진보진영을 등에업은 전북교육감은 이제 마지노선도 넘어섰다. 급기야 24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정치권에도 경고를 날렸다. 정치권이 조언한다면 모르지만 선을 넘어 개입하는 것은 단호히 처리하겠다며 교육부에서 부동의가 이뤄진다면 권한쟁의 심판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이쯤되면 누가봐도 막가자는 거다. 1964년 김용환 초대 교육감 이래 설인수, 유재영, 유재신, 홍태표, 임승래, 염규윤, 문용주, 최규호에 이어 김승환 교육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역대 교육감 중 혹자는 오명을 남기고 혹자는 지금도 칭송을 받는다. 3년후 임기 종료뒤 김승환 교육감은 과연 후세의 사가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될까.
지난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로 전주시의회가 구성됐지만 그간 시민들로부터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대다수 의원들이 전문성이 떨어지고 사명감마저 잊은채 자기 앞에 무작정 큰 감만 올려 놓을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는 명예를 숭상하기 보다는 시 의원 되는 것을 먹고 사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것. 특정 정당이 의회를 독점해 의회직을 장악하고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면서 다수당의 횡포가 극에 달해 올곧은 소수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시의회의 도덕성이 실추되면서 이권에 개입한 일부 의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등 염불 보다는 오히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부끄럽게도 청렴도가 계속 하위권에 맴돈 것이 이를 증명했다. 지난해 11대 시의회에 진입한 34명 의원중 1명이 보궐상태로 총33명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이 27명,민평당 3명,정의당 2명,무소속 1명이다. 대부분의 시의원이 시장과 같은 민주당이어서 처음부터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인가에 많은 의문을 가졌다. 바로 역시나였다. 우려했던 사항이 하나씩 불거지면서 또다시 시의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이 나온다. 이경신 복지환경위원장만 빼고는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대부분이 김승수 시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집행부 입맛에 맞는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특히 의회 안팎에서는 초선들이나 뜻 있는 다선의원들이 시행정의 문제를 샅샅이 지적하고 싶어도 위원장이 의사진행을 방해해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 반대발언을 일삼는 의원은 예결특위추천에서 배제시켜 버린다는 것. 김완주 전시장 때부터 민주당 완산갑 김윤덕 위원장이 김승수 현 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와 그곳에서 당선된 시의원들이 시장장학생 역할을 도맡아 방패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것. 시의회는 집행부와 교묘하게 악어와 악어새 마냥 공생관계를 구축해 밥값도 못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시의회가 도덕성과 자질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시의원이 된 탓이 크다. 그간 핫 이슈로 부각된 전주종합경기장 개발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롯데한테 통째로 금싸라기 땅을 바치는 특혜성 개발계획인데도 시의회는 장학생들 때문에 시민의 반대의견을 대변하지 못했다. 일부 초선이나 다선들이 롯데한테 엄청난 특혜를 안겨준 사업이라고 반대하지만 다수 횡포에 눌려 모기소리로 그쳤다. 시가 의회의 의견을 구한 것을 갖고 행안부한테 야구장 신설을 위해 대체시설 승인을 한 상태여서 앞으로 승인이 나면 개발계획 용역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간 도는 시한테 넘겨준 종합경기장 개발안이 양여조건과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지금은 무슨 이유로 찬성으로 돌아섰는지 의아해 한다. 시중에는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전주시 개발행정이 잘못 추진돼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도 시의회가 짝짜꿍 해서 그걸 못하고 있다.
한국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눈앞에 와있다. 지난달 유네스코 자문 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가 한국의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것을 권고한데 이어 오는 30일 유네스코의 최종 확정을 거치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등재는 확실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한차례 등재를 추진했으나 원점으로 돌아간 뒤 다시 추진해 얻게 되는 결실이다. 세계유산은 보존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보편적 가치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언제나 존중되어야 할 가치, 이를테면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등과 같은 불변하는 가치다. 한국의 서원 역시 이코모스로부터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보편화되었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이자 성리학의 지역적 전파에 이바지하는 등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한국의 서원이 등재된다는 소식에 중국의 일각에서 문제를 삼는 모양새다. 서원이 당초 중국 고대의 독특한 문화교육기구였었다는 점을 들어 중국으로부터 들여간 한국의 서원이 독립적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마치 자신들의 문화재를 빼앗아간 것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변할 일은 없겠지만 유쾌한 일은 아니어서 우리의 서원이 지닌 보편적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서원의 역사를 들여다보자면 중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다. 서원이 시작된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에 이르러 꽃을 피웠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했다. 반면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역사의 변곡점에서 시대를 이끌었다. 한국 서원의 시작은 1543년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다. 퇴계 이황에 의해 소수서원으로 이름을 바꾼 백운동서원은 조정의 사액을 받는 첫 서원이자 공인된 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이후 한국의 서원은 각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소수서원(영주)과 함께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안동), 도동서원(달성), 남계서원(함양), 무성서원(정읍), 필암서원(장성), 돈암서원(논산) 등 이번에 등재되는 9개 서원들이다. 한국의 서원이 인정받은 보편적 가치는 성리학의 전파에 기여하면서도 정형성을 보여주는 조선 건축의 정수라는데 있다. 주목되는 것이 있다. 서로 닮았지만 또한 서로 다른 9개 서원의 건축적 가치다. 공간을 늘리고 화려한 하드웨어 치장에 마음을 두기보다 서원마다의 진정한 가치를 창조적 문화유산으로 이끌어가는 지혜가 더 절실해졌다.
요즘 전라북도가 처한 현실을 보면 동네북 신세란 말이 딱 맞다. 정원이 1500명에 불과한 초미니 대학 하나 놓고 이리저리 패대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총선을 앞두고 전북 때리기로 표 결집을 노리는 외부 정치세력에도 화가 나지만 지역 현안을 놓고 번번이 네 탓 공방만 벌이는 전북 정치권의 한심한 작태에 더 분노하게 된다. 지난 2015년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국립한국농수산대학은 3년제로 학년당 정원이 550명에 불과한 특수대학이다. LH를 경남 진주로 뺏기고 농진청을 비롯해 농업관련 기관을 받으면서 전북을 농생명융합 중심도시로 조성하려는 취지에서 한국농수산대학도 옮겨왔다. 한국농수산대학이 이제 막 전라북도에 안착하려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지난해 한농대 멀티캠퍼스 추진을 위한 연구용역이 발주됐다. 명분은 중장기 발전방안으로 청년농 육성과 한농대 기능 및 역할 확대를 내세웠지만 지역별 입학생 불균형 문제도 담고 있기에 영남캠퍼스 설립 목적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었다.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올 1월 경남 합천군과 경북 의성군이 한농대 분교 유치를 내걸고 지역 정치권과 연계해 한농대 분할 시도에 나섰다. 현 한농대 총장이 경남 출신이기에 대학 분리는 빈말이 아닐 것이란 추측도 나돌았다. 급기야 지난 12일 경북 영주문경예천이 지역구인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이 영남 분교를 설치하기 위한 한국농수산대학설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현실화됐다. 전라북도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았기에 이제 갓 이전한 대학까지 나눠 가지려는 발상을 가졌을까. 만약 한농대가 영남에 있었다면 전북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처음 한농대 분할 움직임에 전라북도와 정치권이 강력히 대처하지 못하면서 자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농대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이다. 농식품부를 관장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전북출신 국회의원이 3명이나 있다. 그럼에도 한농대를 계속 흔들어 대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년 21대 총선이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전북흔들기는 갈수록 도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정치권의 반발과 대응 미흡으로 제3금융중심지 지정이 보류된 전철을 또다시 밟아선 안 된다. 주어진 밥그릇도 못 지킨다면 선출직들은 자리를 꿰찰 이유가 없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은 일본에서도자기 전쟁으로 불린다. 자기 기술이 보잘 것 없었던 일본이 오늘날 도자기 선진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게 전쟁 중 조선 도공을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 중 일본 3대 도자기로 꼽히는사쓰마 도자기의 원조가 정유재란(1597년) 때 남원에서 끌려간 도공 심당길이었다. 그의 자손은 현재 15대 심수관에 이르기까지 사쓰마 도기를 주도해왔다. 심수관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은 반세기 안팎이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인 시바 료타로가 1964년에 쓴고향을 잊을 수가 없소이다의 주인공으로 소개된 후 80년대 중반 KBS가 이를 극화하면서심수관가의 400년 비밀이 세상에 드러났다. 사쓰마 도자기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2대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를 통해서다. 당시 출품했던 높이 1m 55㎝의 대화병은 일본 국보로 지정됐다. 1902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최고상을 받았다. 심수관가의 비밀을 풀며 모국 속으로 깊이 들어온 이는 14대 심수관(본명 심혜길, 심수관은 본명 대신 전대의 이름을 따르는 이 가문의 관습)이다. 그는 특히 전북에 각별한 정을 나타냈다. 1989년 전북도와 자신이 살고 있는 가고시마현간 우호협력이 체결되는 자리에 참석했던 그는 선대로부터 4백년 동안 품어왔던 꿈이 실현된 것 같다는 감회를 밝혔다. 그는 남원도자기 일본 전래 400주년을 맞은 1998년 남원에서 불씨를 가져갔으며, 그 불씨로 구운 첫 도자기를 남원시에 기탁했다. 남원시는 아픈 역사와 함께 이국에서 예술혼을 꽃 피운 심수관가를 기리며 그간 여러 이벤트와 기념사업들을 진행했다. 남원시는 2008년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고, 그의 뒤를 이은 아들 15대 심수관에게도 2011년 명예시민증을 줬다. 심수관 도예전시관을 만들고, 여기서 매년 국제도예캠프를 열고 있다.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고향 남원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부르며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는오나리노래탑이 역사적 아픔의 현장인 만인의총에 세워지기도 했다. 우리가 찾지 않았으나 조선 도예가의 후손임을 당당하게 내세우며 우리 곁으로 왔던 14대 심수관이 지난 16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도예의 종가 남원을 도예도시로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이 땅을 지킨 우리도 제대로 못한 일이다. 남원의 예술혼을 역사 속에서 끌어낸 고인을 잊지 말고 오래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물건의 개수를 나타내는 단위 중에 12개 묶음을 다스라고 한다. 이는 본래 영어 더즌(dozen)의 일본식 발음인데 어떤 연유에서 인지 일상생활 속에서 다스란 단어는 참 익숙하다. 중장년 이상의 연령층은 한 묶음이란 의미로 오랫동안연필 한 다스라고 해왔다. 연필이 샤프펜슬로 대체되고, 요즘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이 주로 쓰이면서 일상에서 다스란 단어가 잊혀져갈 즈음 갑작스럽게 다시 다스(DAS)가 등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구냐는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다스란 회사가 MB 소유다, 아니다 말들이 무성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고 요즘 이 사건 재판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실소유한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BBK 투자금 반환 소송비 585만 달러(약 67억7000만원)를 삼성이 대신 납부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심 재판부는 61억여 원을 뇌물로 인정하고 징역 15년과 벌금 130억원을 선고했다. 중장년들에게 다스 하면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을 안겨준 연필이 우선 떠오르는데 10여 년 전부터는 이게 MB소유 기업이 연상되고, 또 뇌물이란 인식이 강하다. 성공한 기업인이었으나 MB는 대통령 한번 지낸뒤 탐욕의 대명사가 됐다. 어릴때는 옷을 더럽히지 말고, 어른이 돼서는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충고를 잊었나 보다. 한동안 잊혀진 듯 했던 다스가 최근 우리 앞에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엊그제 영면한 이희호 여사의 젊은 시절 별명이 바로 다스(das)였기 때문이다. 서울대 사범대 재학시절 이희호에게 따라붙은 별명은 독일어 중성관사 다스였다. 독일어는 남성, 여성, 중성에 따라 어미 변환이 많은데 das는 중성을 가르킬때 쓰는 단어다. 대학생 이희호는 행동만 봐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걸음걸이도 빠르고 행동이 남성적이었다고 한다. 남성 위주의 관습이 사회전반에 강하게 찌든 상황속에서 이희호는 거대한 벽에 맞선 1세대 여성운동가다. 지금부터 꼭 56년전 마포구 동교동엔 김대중과 이희호 문패가 나란히 걸렸다. 부부 문패가 가정집에 나란히 걸린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대 충격이었다. 미국에서 선진 교육을 받은 아내와 깨어있는 남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희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3김시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이희호 여사가 떠나면서 이젠 3김의 흔적마저도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동일한 단어다스가 사람에 따라 이렇게 까지 다른 의미로 각인된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70년대만해도 전국 7대도시안에 들었던 전주시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해 인구 65만으로 18위에 머물러 있다. 수도권 위성도시들의 급성장으로 이 또한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전주가 산업화에 뒤쳐져 도시발전이 거북이걸음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무능한 정치권과 시장 능력부재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청원과 청주가 통합해서 예산이 전주보다 8305억 많은 2조4892억인데 전주는 인구 30만이 무너진 익산보다 5674억 많은 1조6587억 밖에 안된다. 면적과 인구를 기준해서 국가예산이 지원되기 때문에 전주는 이 두가지를 시정의 최우선목표로 놓고 추진해야 한다. 3차례에 걸쳐 완주군과의 통합이 좌절되면서 전주시는 아직까지 성장동력을 못찾고 있다. 전주를 파리 로마처럼 아시아문화심장터로 발전시키겠다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 어느 관광지에서나 쉽게 맞볼 수 있는 길거리음식이 한옥마을에 난무해 한옥마을이 정체성 위기에 봉착, 관광객이 발길을 돌린다. 여기에 상가들의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자연히 음식값이 올라가는 악순환이 거듭해 예전처럼 장사가 잘 안되면서 임대상가만 늘었다. 전주한옥마을은 이씨조선의 본향이라서 다른 지역의 한옥마을과 괘가 다르다. 실제 주민들이 한옥마을에 거주하므로 이를 잘 살려 체험형관광지로 더 발전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시가 특별한 노력없이 관광객이 늘어난 것에 너무 안주한 게 패착이었다. 남부시장을 관광자원화 했지만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으로 그쳤다. 재선한 김승수 시장은 김완주 송하진시장 때 만든 한옥마을을 보완하고 일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 것 말고는 업적이 별로다. 뉴욕의 허드슨강 베슬처럼 한옥마을 말고 덕진공원 소리문화전당 일대를 하나의 벨트로 묶어서 개발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김 시장은 김완주 전지사가 16년간 시장 지사로 재직할때 대부분을 보좌업무에 매달린 관계로 전문성 부족으로 자기칼라가 부족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고시 출신인 김지사는 도시계획과 개발업무에 전문성이 있었지만 김 시장은 옆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에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식견이 부족해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 특히 리더십이 떨어져 직원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참모들의 전문성 결여가 심각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종합경기장 개발 방향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종합경기장 개발은 시민 대다수가 바라는 사항이어서 시의회를 포함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개발계획을 만들었어야 옳았다. 무엇이 급해 그렇게 쫓기듯이 개발계획을 만들었는지 의심이 가고 결국 고양이를 그리는 우를 범했다는 것. 특정정치인과 밀착돼서 시정을 운영한 것도 뒷말이 많다. 특정업체와의 수의계약을 높게 체결해 시민혈세를 낭비했다는 지적과 함께 특례시 지정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양 너무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배경에 의아한 시민도 있다. 집권 6년차인 김시장은 무작정 도지사가 되려고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시민만을 위해야 한다.
손으로 보는 졸업 앨범을 마주한 것은 2015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개관 1주년을 맞아 기획한 함께 36.5 디자인 전에서였다. 전시의 주제는 공존, 공생, 공진. 디자인의 신체적 사회문화적 환경적 공존과 공생 공진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나누고 나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전시회는 흥미로웠다. 디자인에 대한 가치와 역할을 돌아보게 했던 다양한 전시 공간 중에서도 특별히 관객들을 오래 머물게 하는 공간이 있었다. 손으로 보는 3D 졸업앨범 프로젝트였다. 전시대 위에 나란히 놓였던 9개의 흉상. 그 옆에 붙은 안내문을 읽고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9개 흉상의 주인공은 서울의 한 맹아학교 졸업생들이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과정 6년 동안 형제자매처럼 지냈지만 앞을 볼 수 없으니 목소리에 의지할 뿐 내 친구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에 누군가 3D 프린팅으로 이 아이들의 얼굴을 재현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다. 제작팀은 아이들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제작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을 촬영해 3D 프린팅으로 입체형 흉상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안겨질 앨범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컸다. 드디어 3D 프린터로 제작된 플라스틱 흉상을 처음 만졌을 때, 눈 코 입. 손가락으로 친구의 얼굴을 더듬어가던 아이들은 탄성을 터뜨리며 놀라움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누구는 코가 예쁘고 누구는 눈이 컸고 또 누구는 이마가 넓고. 함께 가슴 뜨거워졌었다는 전시 관계자가 전해준 이야기다. 3D 프린팅은 프린터로 물체, 다시 말하자면 입체도형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이미 의료, 생활용품,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우리의 일상에서도 활용되는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3D 프린팅의 쓰임새는 아직 진행 중이다. 특히 첨단과학 분야에서의 쓰임이 더욱 빛을 발해 그 확장성이 어디까지 이를지 미지수라는데, 그만큼 각 영역에서 활용되는 쓰임새의 확장성이 놀랍다. 전북 맹아학교 졸업생들도 올해 손으로 보는 3D 졸업 앨범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랜 교류를 바탕으로 미국 머서대학교 기술팀과 인연이 닿은 덕분이란다. 문득 처음 이 3D 프린팅으로 시각 장애 학생들의 졸업앨범을 제작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그 누군가로 인하여 사람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지난 11일 군산 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서해 EEZ(배타적경제수역) 골재 채취단지 지정 공청회가 어민들의 강력 반발로 무산됐다. 전국 40개 골재 채취업체로 구성된 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이 마련한 이 날 공청회는 군산 어청도 서남방 26㎞ 인근 EEZ 구역을 골재 채취단지로 지정해 5년간 3580만㎥의 바닷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어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자리였다. 군산 어청도 인근 EEZ 구역은 지난 2008년 정부에서 국내 모래공급을 위해 골재 채취단지로 지정한 이후 3차례 기간 연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채취 기간이 만료됐다. 해양기초자원협동조합은 이에 새로 서해 EEZ 골재 채취단지 재지정을 위한 공청회를 추진했다. 하지만 군산부안고창지역 어민들은 어업인들의 논밭을 파헤치려는 것이라며 결사반대 입장이다. 지난 10년간 어청도 골재 채취단지에서 서울 남산의 1.5배에 달하는 6200만㎥의 바닷모래를 마구잡이로 채취해가면서 수산자원의 서식장과 산란장이 심각하게 훼손된 마당에 또다시 바닷모래를 파가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골재업계에선 태안과 옹진 골재 채취단지에 이어 남해와 서해 EEZ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중단되면서 국내 골재대란과 함께 업계 종사자 1만여 명이 생존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여당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서해 EEZ에 대한 과학적인 시추 조사를 통해 어민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서해 EEZ의 바닷모래 채취를 놓고 골재업계와 어업계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바닷모래 채취 갈등은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부산 신항만 건설 등 국책사업에 필요한 골재공급을 위해 남해와 서해 EEZ에서 바닷모래 채취허가를 내줬다. 그러나 지난 2016년 연근해 어획량이 40년 만에 100만t 이하로 떨어지면서 국내 수산물 감소가 바닷모래 채취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에선 제한적으로 바닷모래를 채취하도록 했고 이후 모래 채취가 중단된 채 양 측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골재업계와 어업계 모두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데다 국내 골재 수급과 해양 생태계 보호라는 대의명분도 엇갈려 정부에서도 쉽사리 결론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안정적인 골재 수급과 해양 수산자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할 듯싶다.
전고, 그대의 영원한 자랑이듯 그대 또한 전고의 자랑이어라 전주고 교정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이 글귀가 전주고와 동문들의 모교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100년 역사에 4만여 졸업생을 배출한 전주고는 자타가 알아주는 호남 제일의 명문 고교다. 1978년 전주지역 평준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전주고에는 전국의 인재들이 몰렸다. 대통령만 제외하고 고관대작의 자리를 꿰차지 못한 곳이 없을 만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많은 인사들을 배출했다. 우리는 동창생이라는 컷을 달고 전북지역 각 고교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다른 고교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1개 면으로 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다른 고교와 마찬가지로 1개 지면을 할애하다 보니 어떤 기준으로 아무개만 소개됐느냐는 항의가 뒤따랐다. 다른 고교에 없는 불만이었다. 그만큼 전주고가 배출한 인물은 넘쳤다. 전북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사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근래 많이 평준화되기는 했으나 전북 도단위 기관장은 물론, 전문직군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의 출신 고교를 따지면 여전히 전주고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각종 선출직에서 동문 대결이 그리 이상스럽지 않은 것도 전주고가 배출한 풍부한 인적자산 때문이리라. 전주고가 배출한 동량들은 분명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학연이 갖는 폐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좁은 지역사회에서의 학연은 후배 챙겨주기와 편가르기 등의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 전주고에 대한 선망과 질시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전주고 100년은 이 학교만이 아닌, 전북의 자랑이다. 전주고 총동창회가 올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전북도민들과 함께 하는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교 재학생뿐 아니라 전북지역 학생들까지 범위를 넓혀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북의 미래를 진단하는 학술대회까지 열었다. 학연의 벽에 갇히지 않고 지역사회 발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겠다는 전주고 동문들의 각오로 읽힌다. 전북의 자랑인 전주고가 지역사회와 더불어 더욱 발전하길 바란다.
최근 도내 호텔을 대표해왔던 르윈호텔이 리모델링 공사에 착수하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기한을 알 수 없으나 최소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도내 상공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창승 회장이 맡아왔던 르윈호텔은 당초 매수 계약자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340억원대에 한 업자에게 최종 매각됐다고 한다. 완주 구이 출신인 이창승 회장은 건설과 금융 등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1991년 제4대 도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황색돌풍에 밀려 실패했고, 1995년 초대 민선 전주시장에 당선됐으나 법률위반 등으로 이듬해 낙마했다. 시장직을 잃고 절치부심한 그는 2008년 제18대 총선에 출마하는 등 정치적 재기를 모색했으나 결국 실패했고 기업인으로서 끝까지 지키려했던게 바로 호텔이었다. 하지만 호텔업도 이제 그의 손을 떠나게 된 모양이다. 한때 성공한 기업인이었던 그가 정치적으로 가장 우뚝 섰던것은 바로 1995년 첫 동시 지방선거였다. 바로 전주시장이었다. 호텔업자였던 그가 전주시장에 당선됐을때 코아호텔은 시장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역대 전주시장의 면면을 보면 사실 그 자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민선의 경우 초대 이창승 시장부터 시작해 양상렬, 김완주, 송하진, 김승수 현 시장으로 이어졌다. 이창승양상렬씨는 짧게 재임했으나 김완주송하진 전 시장은 나란히 재선가도를 달린후 민선도백에 당선됐다. 송하진 현 지사의 3선 도전 여부가 호사가들의 입줄에 오르는 가운데 벌써부터 김승수 현 시장도 특례시지정을 발판삼아 차기 도백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전망이 나돈다. 실행 여부를 떠나 전주시장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적경제적 흡인력을 감안하면 전주시는 전북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 사실 관선때도 전주시장의 위상은 대단했다. 전주시장을 지내면 최소한 부지사 정도까지는 진출했고, 잘하면 그 이상이었다.육종진이상칠송하철씨 등은 전주시장을 지낸뒤 부지사까지 역임했고, 최용복강상원씨 등은 관선 지사까지 지냈다. 전병우씨는 전주시장,부지사에 이어 국회 내무위원장까지 역임했다. 전주시장의 위상이 이처럼 높았다는 것은 전주시의 상징성이 컸다는 건데 솔직히 요즘 전주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인구나 정치경제적 파이를 키우지 못한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20년 뒤 전주시장의 위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재선의 김승수 전주시장이 가장 잘못하는 것은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이다. 자신이 천명했던 공약과도 동떨어진 개발계획을 내 놓고서 시민들의 여론은 무시한채 마이동풍식으로 무작정 절차이행을 강행하기 때문이다. 김 시장이 발표한 개발계획은 전주시민을 위한 개발계획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롯데라는 특정재벌한테 금싸리기 땅을 헌납한 것이나 다를바 없어 철회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김 시장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시장을 감시해야 할 시의회는 견제는 커녕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 초록은 동색이라는 비난을 함께 받고 있다. 일부 뜻있는 의원들이 시장의 개발계획이 잘못 되었다고 문제제기를 하지만 상임위원장급 시장 장학생들이 나서서 방해공작을 펴 초선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있다. 시의회 안팎에서는 김시장이 의회를 무시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종합경기장 개발 계획을 밀어 부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장학생들이 감싸줘서 가능했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전주가 현재 용머리 고갯길로 호남선을 내지 못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하다. 전주 유림들의 반대로 호남선이 용머리고갯길로 나지 않아 전주 발전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분명한 것은 전주종합경기장을 어떤 형태로든 개발해야 한다. 개발의 원칙은 이미 정해져 있다. 땅 주인인 도가 전주시한테 전주종합경기장을 넘겨주면서 조건을 달았기 때문에 그 조건에 맞게끔 개발하면 문제될 게 없다. 김 시장이 내놓은 개발계획은 전문성도 없고 생각머리 없이 그냥 내놓은 것이어서 폐기처분해야 한다. 땅 안팔고 50년 백년 임대로 해준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이나 똑같다. 전주 중심부의 금싸라기 땅 종합경기장은 미래지향적으로 개발돼야 한다. 이미 시민 70% 가까이가 여론상 개발해야 한다고 찬성해 그 시기를 무작정 늦춰선 안된다. 그간 도청이전을 잘못해 전주발전을 가로 막은 것처럼 다시금 그같은 누를 범치 않아야 하기 때문에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종합경기장 개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난 83년 전주역 외곽이전으로 그 자리에 세웠던 현 시청이 건축 당시부터 너무 비좁게 지어져 많은 문제가 생겼다. 인접 건물을 임대해서 사무실로 사용해 시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심지어 주차장이 적어 민원인들이 차댈곳이 없어 불법주정차로 과태료를 물어왔다. 앞으로 지을 시청사는 전주 완주통합을 겨냥한 통합청사이어야 하기 때문에 종합경기장이 위치로도 적지다. 그래야 공익을 충분하게 반영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침묵하는 양심세력들이 전주종합경기장 개발계획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세우라고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틀린 것을 바르게 지적하고 나설 때 전주가 발전할 수 있다. 김 시장도 시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용하는 만큼 무작정 소신이라고해서 조자룡 헌칼쓰듯 하면 안된다. 시의회도 이번 기회에 시민의 편에 서서 감시와 견제역할을 다해 환골탈태하길 바란다.
척독(尺牘)은 편지의 한 종류지만 그중에서도 짧은 편지를 일컫는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척독은 30cm 정도의 크지 않은 나무 토막위에 쓴 편지를 일컬었으나 후에는 종이 편지도 척독으로 분류됐다. 편지 형식의 짧은 글에 진심을 담은 척독은 형식도 자유로워 가까운 사이에 주고받았던 사적인 편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척독이 꽃을 피운 것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다. 적지 않은 문집을 통해 당대의 척독이 전하지만 손으로 쓰는 편지 대신 휴대전화 문자나 이메일이 자리 잡은 지금 척독은 아무래도 낯설다. 전주국립박물관이 기획한 선비문화 특별전에서 척독을 만났다. 수백 년을 건너 전시실에 놓인 짧은 편지의 주인들은 척독문화의 유행을 이끌었던 조선 후기 선비들이다. 박물관의 자료를 보니 척독을 이끈 이 역시 조선 시대 문인인 허균이다. 그는 명나라 사신 주지번에게 <고척독>을 받고 자신의 문집에 처음으로 척독을 실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척독은 격식을 중시한 옛 문장의 틀을 벗고 개인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선비들이 그만큼 척독을 일상에서 즐겼다는 증거다. 전주박물관 전시에서는 특히 조선후기의 대표적 문인 이덕무와 박지원의 척독이 눈길을 끈다. 일상을 소재로 자신이 느낀 감정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몇몇 척독을 들여다보니 거기 함축된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지인들에게 건네는 편지는 대체로 정깊은 안부 인사를 담고 있지만 선비로서 지켜야할 삶의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간결하고 짧은 문체로 발전해간 척독은 사적인 편지글이지만 누군가와의 소통하려는 바람이 담겨 있는 통로였다. 그렇고 보니 척독은 오늘날의 SNS 와도 같은 것 아니었을까 싶다. 길지 않은 문장에 담아낸 사적인 생각.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형식이 오늘날의 SNS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기능이나 역할만 비슷할 뿐 그 차이가 크다. 척독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품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의지의 출구여서인지 문장 하나까지도 헐겁게 쓰지 않았다. 상대방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넘쳐나니 이런 글이 바로 진정한 교류의 방식이다 싶다. 오늘날의 SNS도 개인의 품격을 드러내는 말의 성찬이 이어진다. 눈여겨 다시 읽게 되는 좋은 글들도 있으나 화를 불러일으키는 온갖 글들이 쏟아지는 요즈음, 말과 글이 가져오는 폐해가 심상치 않다. 척독의 품격을 다시 불러낼 방법은 없을까.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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