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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디지털 금광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구글이나 네이버 등 검색엔진을 통해 찾고자 하는 정보를 검색할 때 데이터센터를 통해 처리된 정보를 사용자의 컴퓨터로 전달하게 된다. 이 데이터센터는 컴퓨터 시스템과 통신장비, 저장장치인 스토리지 등을 갖추고 있고 인터넷 검색과 이메일 온라인 쇼핑 등을 처리한다. 10년 전만 해도 글로벌 시가총액 10위 기업에 석유관련 기업들이 대거 포진했다. 하지만 지금은 IT관련 기업들이 꿰찼다. 10위 안에 IT관련 기업이 7개나 포함된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등이 1위에서 5위까지 차지했다. IT관련 산업이 뜨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너도나도 데이터센터 건설에 올인하고 있다. 아마존은 9개 국가 15개 도시에 100개 이상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데 이어 최근에도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한 부동산 투자를 전년 대비 250%나 늘렸다. 구글도 올해 버지니아를 비롯해 14개 주에 데이터 센터와 지점 등을 건설하는데 130억 달러를 투자한다. 애플은 향후 5년간 110억 달러를 들여 텍사스주와 시애틀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 등에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네이버가 강원도 춘천에 이어 추진하는 제2 데이터센터의 유치전이 치열하다. 애초 경기 용인에 건설할 계획이었지만 전자파를 우려하는 지역주민의 반발로 포기하고 공모를 한 결과, 전국에서 136곳이 신청했다. 군산과 새만금개발청 부산 인천 대전을 비롯해 자치단체 60곳에서 78개 부지, 민간과 개인사업자가 58개 부지를 제안했다. 용인 데이터센터가 무산된 것이 네이버에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자치단체에선 미래 첨단산업 인프라 구축과 함께 지방세 증가 고용 창출 상권 형성 등 경제적 효과 때문에 뛰어들었다. 네이버는 9월 중에 우선협상자를 선정하고 내년부터 5400억원을 투입, 2022년까지 13만2230㎡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완공한다. 이와 관련, 전북연구원에서 새만금이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최적지라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추가 확장이 용이하고 기가와트급 재생에너지와 중국을 겨냥한 해저 광케이블망 구축이 강점이라고 제시했다. 새만금이 미국 버지니아주나 네덜란드 Agriport A7처럼 글로벌 데이터센터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
김승환 교육감이 29일 간부회의서 교육부의 상산고 자사고 유지 결정을 비난하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평가 일부의 위법성까지 밝혀졌는데도 정부와 교육부를 향해 협력관계 단절을 시사하는 발언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일단 상산고 문제에 대해 불복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목적과 가치를 달리하는 반대 진영에도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사과나 해명은커녕 오히려 도둑이 매를 든 격이다. 안하무인이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재량권을 남용했다는 교육부의 평가결과가 나오자 이에 대한 김 교육감의 책임론이 거세게 불고 있다. 상산고 총동창회는 독선과 아집으로 1년 7개월간 전북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요구했다. 학부모는 물론 여야 정치권, 일부 교육단체까지 이같은 움직임에 가세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에는 김 교육감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렴성에도 큰 생채기가 났다. 4차례나 측근 승진인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이 확정 판결됐기 때문이다. 이때도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교육청 대변인 논평대로 라면 법원판결 역시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자사고 결론 이전에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교육부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때 핏발 선 표정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런데 그가 다시 일전불사의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지금까지 진보교육감으로 자처해온 터에 아군이나 다름없는 현 진보정권까지 대놓고 적으로 규정, 한판 싸우겠다는 것이다. 전북교육이 사면초가에 놓인 형국이다. 취임 이후 중앙정부와 담 쌓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 결과 지난 2013년부터 5년간 중앙정부 특별교부금 3260억원을 받아 9개 시도 중 제주 다음으로 적었다. 불통으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수개월간 학부모학생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다 자사고 폐지라는 거센 광풍이 휘몰아치는 와중에도 그는 끄덕하지 않았다. 지금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교육수장으로서 전북교육을 위해 일 할 시간이 아직 3년 남았다. 제발 이 사태를 깊이 성찰했으면 한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세상사에는 도저히 힘들것 같은 승부에서 약자가 강자를 꺾는 경우가 왕왕 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이런 일이 많은데 상식을 깨는 결과에 사람들은 더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기록 경기에서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경우가 거의 없으나 둥근 공이 개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럭비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기 종목에서는 이변이 연출된다. 작년 이맘때쯤 월드컵 역사상 보기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FIFA랭킹 1위 독일과 한국이 맞대결을 벌였는데 결과는 잘 알려진대로 한국의 2-0 승리였다. 벼락이 친 것도 아니고 비둘기가 독수리를 잡아먹는 현상같은 전조도 전혀 없었는데 맑은날 이런 일이 발생했다. 킨샤샤의 기적으로 역사에 남은 알리와 포먼의 경기 또한 이변이었다. 은퇴한 노장과 40연승 가도를 달리는 숫사자의 대결에서 모든 도박사들이 포먼의 kO승을 점쳤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전쟁에서 이런 일이 나면 역사책에 남는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몰, 이순신의 기록적인 승리, 트라팔가르 기적을 일궈낸 넬슨 제독 등이 바로 그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주변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 며칠전 교육부에서 최종 결정된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 문제가 바로 그런 경우다. 결정권을 가진 도 교육청과 대항력이 없이 일방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학교측의 승부는 마치 칼자루를 쥔 사람과 칼날을 잡은 이의 승부처럼 보였으나 칼날을 잡은 이가 승리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다른게 아닌 민심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선거에서도 약자가 강자를 뒤엎는 일이 가끔 있다. 그래서 세상사가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내년 4월 총선때 도내 정치역학이 어떻게 변할지가 관심사인데 여기에서도 역시 다윗과 골리앗이 있다. 능력이 있고 시민을 위해 더 헌신해 온 사람들이 뽑힐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거의 당선을 담보하는 박스 선거의 특성상 누가 얼마나 많은 권리당원을 확보했는가, 아니면 조직력이 앞서는가에 따라 결과가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력이 강하고 고관현직을 지낸 골리앗을 꺾는 다윗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 그런데 요즘 호사가들 사이에서 내년 총선때 함께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진안군수 선거가 화두다. 올 추석 이전에 이항로 군수의 재판이 마무리될 전망인데, 지역정가에서는 이한기 도의원, 이우규 진안군의원, 전춘성 진안군 행정복지국장을 비롯해, 도의원을 지냈던 김현철이충국김종철씨와 김남기 전 군의원, 이기선 전 전북도 국장 등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진안에서도 역시 다윗과 골리앗은 있을텐데 과연 골리앗은 누구인가.
다른 시도교육청처럼 70점으로 기준점수를 정했더라면 상산고 재지정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친전교조 성향의 김승환교육감이 교육부의 권고안을 무시, 자신의 재량권에 속한다며 기준점수를 80점으로 올렸다. 김 교육감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자사고 폐지가 들어 있어 처음부터 상산고를 재지정에서 탈락시키려고 기준점수를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본인은 자사고 재지정을 받으려면 이 정도 이상은 돼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대응해 왔었다. 상당수 도민들이 상산고가 재지정에서 탈락하면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마지막 교육부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워낙 도교육청의 반대입장이 확고부동해 상산고측은 안심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지난 26일 교육부가 김교육감의 취소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발표함으로써 앞으로 5년간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평가는 교육감의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며 평가적정성이 부족하다고 번복 이유를 전했다. 처음부터 상산고가 입시기관으로 전락해 폐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논리였다. 이 학교 만큼 다양하게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학교도 드물다. 홍성대 이사장의 건학이념대로 국가동량을 기르기 위해 자율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놓고 색안경 끼고 반대입장을 취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갔다. 전국에서 1인당 소득이 최하위인 전북에 영재학교도 없는 현실에서 상산고를 일반고로 만든다는 것은 전북의 장래를 망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교육부는 상산고에 사회통합전형잣대 적용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4점 만점에서 1.4점을 얻어 기준점에 미달한 79.6점을 얻어 탈락위기를 맞았다. 사회통합전형을 잘못 적용해 상산고를 탈락시키려는 것은 교육부 지적대로 김 교육감의 재량권 일탈과 남용으로 위법하다는 것. 헌법학자 출신으로 매사를 법논리로 재단해서 마치 법만능주의자(?)인 것처럼 보이는 김 교육감은 상산고 재지정 문제를 떠나, 4차례 승진인사에 부당개입한 혐의가 인정돼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받았다. 본인은 이 판결에 억울할지 몰라도 공정해야 할 인사가 잘못됐기 때문에 분명 책임져야 한다. 전임 최규호 교육감이 전북교육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려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김 교육감이 전교조와 민노총 등 진보세력의 지원으로 3차례나 교육감에 당선됐다. 이제 그는 범법자 교육감으로 낙인 찍혀 영이 제대로 안서게 됐다. 이 상황에서 정의로운 교육을 시키라고 지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또 교육문제를 이념논쟁으로 변질시켜 상산고의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에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한편 상산고문제에 많은 사람이 걱정했으나 그래도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처럼 사즉생의 각오로 열심히 뛴 의원은 없다. 여야의원 151명의 서명을 받아 교육부에 올린 그의 용기는 자랑스럽다. 특히 홍성대 이사장의 건학이념이 계속 이어지도록 한 이번 결정은 법치주의와 사필귀정의 승리이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은 관광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명소다. 철길이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철길 양옆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낡은 집들이 이어지는 기묘한 풍경 덕분이다. 철길마을은 경암동 페이퍼 코리아 공장과 군산역을 연결하는 총 연장 2.5km의 철로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마을을 이른다. 철길은 1944년 페이퍼 코리아의 전신인 북선제지 공장의 신문 용지 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졌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북선 제지 철도>로, 1970년대 초까지는 <고려 제지 철도>로, 이후에는 <세대 제지선>이나 <세풍 철도>로 불리다가 세풍 그룹 부도로 새로운 업체가 인수한 후에는 <페이퍼 코리아선>으로 불리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마을 또한 철길이 놓여진 1944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고 하니 마을의 역사와 철길의 역사가 같다. 경암동 철길마을을 처음 가본 것은 15년 전이다.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때는 오전과 오후, 입환열차라 하여 철길을 오가는 열차가 있었다. 입환열차는 화물을 수송하는 열차를 이른다. 철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집과 집 사이 거리는 불과 3.5미터. 기차는 이 사이에 끼어 겨우 통과했는데 그 풍경이 놀라웠다. 건물을 비집고 나온 구조물이 놓여 있을라치면 기차는 속도를 한껏 더 줄이고서야 그 구역을 통과했다. 그동안 기차 앞에 매달려 탄 안전요원들은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철길 양옆에 놓인 집기들을 치우고, 중간 중간에 트인 통로를 통제하느라 분주했다. 안전요원들이 깃발을 흔들거나 호각을 부는 것은 주민들의 주의를 일깨우기 위한 의례(?)였다. 총 연장 2.5km 중 사람의 걸음걸이와 거의 같은 속도로 운행해야만 하는 구간은 길게 잡아 500미터. 기차가 통과할 수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 철길은 수십 년 동안 입환열차의 통로가 되었으니 철길을 지척에 두고 살아온 주민들에게 기차의 존재는 위험했으나 익숙한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철길 옆 주택들은 철길이 만들어진 이후에 자리 잡은 손님(?)이었다. 합법적인 절차로도, 현실적인 여건으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의 경암동 철길 마을 풍경이 가르쳐준 것이 있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만 또한 서로가 양보하여 함께 존재한다는 것.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가능했을 그때의 풍경이 새삼 그립다.
최근 뉴라이트 계열 일부 인사들이 펴낸 반일 종족주의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의 수출보복 조치로 한일간 경제전쟁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을 거짓말 나라로 폄훼하면서 일본의 강제 침탈을 옹호하는 곡필(曲筆)에 분노가 일고 있다. 이 책의 필진으로는 이승만학당 교장인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주익종 이승만학당 교사 등 보수진영 인사 6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서울과 대구 부산 등지에서 북 콘서트를 열고 반일 종족주의를 타파하자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도발적인 공개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은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가 반일 종족주의라며 한국의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반일 종족주의다고 규정했다. 대법원에서 배상을 인정한 강제징용과 관련, 징용 이전의 모집과 관알선을 통한 조선인의 일본행은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었다. 이후 징용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10만 명 정도였는데 이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로망이었다며 강제징용을 로망으로 미화시켰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강제 연행과 성노예로 동원된 사실을 부정했다. 이영훈 교장은 강제 연행됐다는 건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개인의 증언 등에서 비롯한 심각한 오해라며 여인들이 공창으로 향할 때 가난과 폭력이 지배하는 가정을 벗어나 도시의 신생활로 향하는 설렘이 없지 않았듯 위안소로 향하는 행렬도 마찬가지였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위안부 역시 전쟁특수를 이용해 한몫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이었다. 이들을 세상 물정에 어두운 무능력의 존재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엉터리 주장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첫 증언 이후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맺힌 증언과 관련 사료 등을 통해 입증된 역사적 사실을 전면 부정하는 망동에 불과하다.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과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선 이들이 일본 1급 전범이 출연한 일본재단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행태는 개인의 영달에 눈멀어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과 다를 바 없다.
요즘 도내 곳곳에 연꽃향이 가득하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결하고 고귀한 연꽃. 이렇게 꽃을 피워냈기에 절개를 중시하는 선비들 기풍과 잘 맞는다고 꽃 중의 군자(君子)라고 불렸다. 수줍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전주 덕진 연못이나 정읍 태인면 피향정,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 등에선 축제가 한창 이다. /아무리 사는 게 더럽더라도/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죽고 사는 게 연꽃 같은 것이라고/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정호승시인의 시 연꽃구경 의 일부다. 4년제 대졸예정자 10명중 1명만 정규직에, 또 1명은 비정규직에 취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작년 10명중 2명만 겨우 직장을 잡고, 8명은 백수인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에서는 소상공인 3명중 1명(33.6%)이 지난 1년새 휴업이나 폐업을 고려했으며, 응답자 77%는 올들어 매출이 크게 줄어 생계를 걱정할 정도란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재 서민들 살림살이도 죽을 맛이지만, 더 큰 문제는 자녀 취업까지 막혀 미래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데 있다. 한마디로 가정경제의 내우외환이 심각한 지경이다. 이들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할 정치권은 내년 총선에 올인하고 있다. 여야 막론하고 벌써부터 기싸움이 대단하다. 지난 19일 여야합의 추경안 처리가 또 무산되면서 빈손국회로 임시국회 막을 내렸다. 추경안에는 군산을 포함한 구조조정지역 등 일자리 민생예산이 편성돼 지역 주민들은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이마저도 정치권이 정쟁에 몰두한 나머지 서민 고통과 아픔을 외면한 것이다. 네 탓공방 일삼는 여야 진흙탕싸움에 진절머리가 난다. 그래서 일까.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고자 했던 정치인 노회찬의 친서민, 친노동자의 행보가 돋보이는 것도 요즘이다. 어제 그의 1주기 추모일이었다.
오늘은 24절기 중 열두 번째인 대서 (大暑)다. 중복인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시내 유명한 민어탕, 삼계탕 맛집은 인산인해를 이룰거다. 중장년들이 복달임을 하는 이 시기, 해수욕장에서는 맨살이 많이 드러나는 수영복인 비키니(Bikini)를 입고 뛰어노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런데 모든게 때와 장소가 있다.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다. 대표적인게 베이징 비키니패션 아닌가. 웃통을 드러내는 노출 패션은 중국 남성들의 오랜 피서법인데 상반신 노출에 그치지 않고 셔츠 아래를 둘둘 말아올려 배만 드러낸 경우도 있다. 서방 언론은 이를 여성 비키니에 견주어 베이징 비키니라고 부른다. 올해부터 중국 일부 도시에서 베이징 비키니 단속에 나섰다. 텐진시는 공공장소 웃통 금지 규정을 마련, 위반자에게 벌금을 물렸고 허베이성 한단시는 교육용 동영상 까지 만들어 보급했다. 우리가 오늘날 비키니 라고 하면 시원한 수영복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은비키니엔 어두운 역사가 담겨있다. 호주와 하와이 중간쯤에 있는 비키니 섬은 1954년 미국 최초의 수소폭탄이 터진 곳이다. 당시 수소폭탄 캐슬브라보의 위력은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000배나 됐다. 핵폭탄만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옷이 등장했다는 의미에서 과감한 형태의 옷을 비키니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유사이래 리틀 보이(Little Boy)만큼 쇼킹한 것도 없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코드명이다. 라디오를 통해 천황(=덴노)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 선언을 한 이후의 역사는 널리 알려진대로다. 사실 일본이 리틀 보이를 맞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1941년 12월 7일 자행한 진주만(Pearl Harbor) 습격이었다. 기습에 성공한뒤 그 유명한 암호 도라 도라 도라를 사령부에 타전하며 득의만연 했으나 결국 일본은 미국에 무릎을 꿇게 된다. 일본 군부가 분수를 모르고 맞을 짓을 해서 얻어 맞은게 결국 리틀 보이다. 종전 후 무려 74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여진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사할린을 비롯한 숱한 곳에서 들려오는 징용자들의 피울음 소리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이 해석을 달리하면서 무역전쟁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국민감정은 핏발이 서고 칼날처럼 곤두서고 있다. 병자호란때 주전파아 주화파가 그러했듯 한편에선 일전불사를 외치고 있고, 다른쪽에선 현실적 해법을 주문하고 있다. 걱정스런 것은 극우로 치닫는 일본 정부가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쾌재를 부르는게 아닌가 싶다. 그게 결국은 양국에 엄청난 부담을 줄 터인데 말이다. 비키니를 보면서 일본 당국자들이 맞을 짓을 하는것은 아닌지 어둡던 과거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다.
21대 총선 열기가 중복열기 마냥 후끈 달아 오른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띠어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다. 민주당 대 다야 구도로 치러질 이번 선거는 의미가 남다르다. 민주당은 재집권과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과반 이상을 차지해야하고 자유한국당은 탄핵으로 부당하게 정권을 빼았겼다고 생각하며 한석이라도 더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고 결기를 다져간다. 정치는 민감한 생물이라 워낙 변수가 많아 예측하기가 어렵다. 김정은과의 남북문제를 비롯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등 현안이 산적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민주당이 정치개혁특위위원장을 맡아 지역구가 줄고 비례대표가 늘 수 있다. 10석인 전북은 여야 협상과정에서 1~2석은 줄 수 있다. 자칫 게리멘더링 선거구 획정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경선구도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각 지역구별로 선거구도를 점치기가 쉽지 않다. 민주평화당도 정동영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유성엽 원내대표를 주축으로 한 비당권파가 분당수순에 들어가 셈법이 한층 복잡해졌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과 자유한국당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정운천 의원의 거취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여기에 정의당도 제1야당을 목표로 전열을 정비해 그 어느때보다 한판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전북정치 1번지인 전주의 싸움이 볼만하게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이 전멸한 전주는 경선을 앞두고 샅바싸움이 한창이다. 이달 말까지 경선 때 절반을 차지한 당원 몫을 더 확보하려고 당원 모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알게 모르게 감시가 심해 과거처럼 당비를 대납해주면서 무더기로 등록한 것은 어려워 보인다. 완산갑은 과거 학생운동권 선후배간의 선거로 치러진다. 민평당 김광수의원은 공천을 확보해 민주당 후보를 기다린다. 민주당은 현 김윤덕위원장 한테 여성 신인인 김금옥 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52)이 도전장을 내밀면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정치신인이며 여성한테 주어진 가점이 25%나 돼 새로운 바람이 강하게 불 것으로 주변에서 점친다. 경선에서 김 비서관이 승리하면 전주선거판 전체가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전주는 3개 선거구이지만 단일선거구나 다름 없어 누가 완산갑 경선에서 승리하느냐가 관전포인트다. 경선기술자라는 평을 듣는 김 위원장은 김승수 전주시장과 이원택 정무부지사와의 정치적 연이 깊어 이들의 지원여부가 변수다.문제는 전주시민의 여론에 달려 있다. 변화와 혁신을 바란다면 물갈이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찻잔속의 미풍으로 끝날 수 있다. 시민들이 얼마나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줄지가 걱정이다. 현역들 한테는 고정표 30%가 있다. 선거구도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최소 40%는 되어야 금배지를 달 수 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현역들의 고정표는 쉽게 이탈 안한다. 현안이 산적한 전주발전을 가져오려면 시민들이 국회의원을 잘 뽑아야 한다. 나중에 잘못 뽑아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후회 안하길 바란다.
동아시아 역사를 수십 년 동안 추적해온 일본인 다큐 감독이 있다. 마에다 겐지 감독이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다큐의 영역을 지켜온 까닭에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제작한 수백편의 다큐 속에는 일본의 침략사를 조명한 역사기록물이 적지 않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만인의 신세타령> 도 그 중 하나다. <백만인의 신세타령>은 일제 치하에서 강제 징용과 강제 노동, 정신대에 끌려갔던 피해자들의 한 맺힌 육성을 그대로 담은 기록이다. 상영시간만 225분. 7년을 꼬박 바쳐 완성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공중파 방송을 통해 상영됐지만 그다지 조명을 받진 못했다. 다큐로 제작한 <백만인의 신세타령> 이 발표되기 전, 책으로 엮은 증언집이 먼저 나왔다. 6백56쪽의 두툼한 책, 1백9명의 증언이 실린 이 책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록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책이 출간됐을 때 일본에서는 진보 지식인 뿐 아니라 언론들의 관심이 이어지면서 전화신청이 수백 건에 이르고 도쿄 간다의 책방 거리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마에다 감독은 90년대 초반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대학교수와 작가, 의사 등 각 분야에서 일하는 지식인 20여명이 참여한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제작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전쟁피해자들을 찾아다니는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7년 동안 그의 카메라와 마주한 증언자는 120여명.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증언을 받아내는 일은 그만큼 어려웠다. 그는 왜 이렇게 고단한 일을 자임하고 나섰을까. 20세기 격변기에 동아시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주목하고 살아온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우리 앞에 놓인 역사는 권력자들이 쓴 역사다. 따라서 이 역사는 실체가 아니다. 당한 사람으로부터의 역사를 밝혀내야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를 바로 볼 수 있다. 이제 조금은 빚을 갚게 된 기분이다. 일본이 권력에 힘입어 제멋대로 역사적 질서를 파괴하고 강매했던 그 치부를 들춰내고 인정하는 일이 우리 스스로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던 마에다 감독의 작업은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남북한과 일본 각지를 찾아다니며 풍신수길이 자행했던 폭력의 실체를 추적한 <월하의 침략자>(2009)도 그 결실이다.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요원해 보이는 역사의 진전이 아쉽다.
서애 류성룡이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에는 임진왜란 당시 통쾌한 전투장면이 나온다. 1592년 9월 왜군에 함락당한 경주성을 탈환하기 위해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박진이 성 안으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쐈다. 왜적들은 이게 무엇인지 몰라 서로 다투어 구경하려고 밀고 당기면서 만져보는 중에 갑자기 포탄이 폭발했다.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져 흩어지면서 즉사한 사람이 30여 명이나 됐다. 혼비백산한 왜군은 경주성을 버리고 서생포로 달아났다. 경주성 탈환뿐만 아니라 진주성대첩과 행주대첩 한산도대첩 등 주요 전투에서 조선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비격진천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첨단 비밀병기인 비격진천뢰가 지난해 10월 고창 무장읍성(사적 제346호)에서 무더기로 발견돼 주목받고 있다. 발굴을 맡은 호남문화재연구원이 무장읍성 내 수혈(竪穴구덩이)유적 등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비격진천뢰 6점은 모두 폭발후 탄피만 남아 있는 것이지만 무장읍성에서 찾아낸 것은 내부에 화약이 남아있는 원형 그대로여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했다. 크기는 지름 21cm, 무게는 1718kg 정도로 원형의 무쇠 속에는 화약과 쇳조각, 발화 장치인 죽통(竹筒)이 있다. 죽통에는 폭발 시간을 조절하는 도화선이 들어 있어 약 500600m까지 날아가도 폭발하지 않도록 한 게 비결이다. 중국도 진천뢰라는 무기가 있었지만 폭발 시간을 조절하는 죽통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던져서 사용했다. 고창군과 호남문화재연구원이 고창 무장읍성에서 찾아낸 비격진천뢰의 전모를 밝힌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차로 비격진천뢰의 과학조사와 보존처리를 맡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지난 16일부터 10월 25일까지 개최하고, 2차로 발굴지인 고창 고인돌박물관에서 오는 10월 25일부터 12월 22일까지 열린다. 이번 조선무기 비격진천뢰 특별전에선 고창에서 발견된 11점과 보물 제860호로 지정된 기존 유물 5점 등 16점의 출토 현황과 규격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비격진천뢰를 쏘는 화포인 완구(碗口) 3점도 선보인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최첨단 과학기술의 자부심을 갖게 하는 조선의 비밀무기 비격진천뢰처럼 최근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에 온 국민이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다시는 대한민국을 얕잡아 보지 못하도록
언론단체 회원들이 지난 1일부터 매주 월요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터넷 포털의 독점적 지위에 있는 네이버가 지역 매체를 배제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서다. 온라인 뉴스에서 지역문제조차 중앙적 시각이 지배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지역주민의 알 권리를 침해함과 동시에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규탄하고 있으나 네이버는 끄덕도 안 한다. 네이버의 현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네이버를 빼고 인터넷과 사회현상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시대다. 우리 국민의 3000만명 정도가 매일 네이버에 접속하고, 전체 검색시장의 70%를 차지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연간 매출액 5조원을 돌파하며 대기업그룹 반열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런 네이버가 제2데이터센터 설립부지를 찾는다니 지자체로선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네이버는 당초 예정지였던 경기도 용인시 설립 계획을 백지화시킨 뒤 공모에 붙였다. 민간기업이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에 나선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전국적으로 벌써 10여곳에서 유치 의사를 밝혔다. 전북에서도 새만금 부지로 뛰어들었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컴퓨터와 네트워크 회선 등을 제공하는 건물과 시설이다. 인터넷 검색, 쇼핑, 게임, 교육 등 방대한 정보를 저장하려면 수만 대의 서버 컴퓨터가 필요하며, 이 서버 컴퓨터를 한 장소에 모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다. 365일 중단 없이 가동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특히 서버 컴퓨터에서 방출하는 열을 식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페이스북이 북극권의 스웨덴에 데이터센터를 세운 것이나, 네이버가 강원도 춘천에 제1데이터센터각을 둔 것도 냉각비용의 절감을 1차적으로 고려해서란다. 네이버의 데이터센터가 그 규모(10만㎡)에 비해 일자리 창출이나 세수 증대에 별 기여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네이버가 갖는 상징성과 확장성을 감안할 때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특히 새만금과 연계될 경우 양쪽 모두 더 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네이버는(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항해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졌다. 새만금은 미래의 항해를 약속하는 땅이다. 네이버와 새만금의 결합을 보고싶다.
전주상공회의소는 지역 중소도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1935년 설립돼 현재 회원 수가 1000 여 명에 달한다. 산업화 이후 전주상의는 건설과 운수업 종사자들이 주로 회장을 맡아왔다. 호남건설 이종덕 회장이나 흥건사 김광호동성 송기태 회장 등이 재임중 나름대로 뚜렷한 이미지를 남겼고, 도청 부근에 상공회의소 신사옥을 마련한 제23대 이선홍 현 회장은 연임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임기는 내후년 초까지다. 그런데 요즘 전주상의 안팎에서 사무처장을 과연 누가 맡을 것인가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핵심은 행정기관에서 누구를 영입하느냐, 아니면 사무처 내부 직원을 승진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일단 김병대 실장이 사무처장 직무대행을 맡아 연말까지 끌어갈 예정이다. 이선홍 회장은 당초 정관을 개정한뒤 상근부회장을 두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한다. 서울, 부산, 대전 등 광역시가 있는 곳은 상근부회장을 두고 있는데서 착안했다. 그런데 전주, 청주, 순천 등 광역시가 없는 곳은 상근부회장을 둔 곳이 전국적으로 한곳도 없기에 전주상의는 아직 정관 개정을 하지 않고 직무대행 체제로 끌어가고 있다. 전주상의는 일단 상근부회장 제도는 보류하고 처장을 어떻게 할지 고민중이다. 이와관련 이 회장은 전주상의 위상 강화를 위해 (이번엔 내부승진을 지양하고) 도청 국장급 공직자를 영입할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과거 이해상양영희씨 등 도청 국장급 간부가 퇴임 후 전주상의 처장을 맡으면서 위상도 높이고 일처리도 깔끔했던 기억이 강하다. 이 회장은 연말까지 국장급을 두루 추천받아 스크린할 방침이다. 그런데 이 또한 부담이 있다. 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주상의는 김순원 전 처장이 첫 내부승진 처장을 맡았을뿐 모두 외부 인사를 영입, 내부 불만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종 결론이 주목되는데, 한가지 전주상의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향토은행인 전북은행이다. 올해로 50년의 역사를 가진 전북은행은 가장 상징성이 큰 회원이기 때문이다. 매출면에서는 현대자동차, 전주페이퍼, 휴비스 등이 크지만 JB금융지주, 광주은행, JB우리캐피탈, 프놈펜 상업은행 등 굵직한 금융사를 보유한 알토란 같은 기업이다. 하지만 향토은행의 역할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창사 반세기가 될때까지 자행 출신 행장 한명 배출하지 못했다. 전주 제3금융중심지 사례에서 나타났듯 향토은행인 전북은행이 지주회사를 연금공단 주변으로 옮기는 등 보다 선제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익산에 본사를 옮긴 하림을 구태여 거론할 것도 없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순 없지만 향토은행으로서 보다 통큰 베팅이 있어야만 더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소석 이철승 만큼 중앙정치무대에서 크게 움직였던 전북정치인도 없다. 김원기 정세균의원이 국회의장을 지냈지만 큰 정치인으로는 안 본다. 4선의 정동영의원은 전국 최다득표의 영예를 안고 국회에 입성했지만 대선 때 너무 큰 표차로 패배해 명암이 교차하는 정치인으로 각인됐다. 정의원 지지자들은 그를 전북의 정치적 자산이라고 치켜 세운다. 하지만 전북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한 것이 없다고 평가절하한 사람들도 있다. 정치가 모든 재화를 배분하는 힘을 갖고 있어 큰 정치인이 절대 필요하다. 그간 중앙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전북 출신 국회의원이 간헐적으로 나왔지만 임기동안 지역발전을 위해 해 놓은 게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북이 고전하고 낙후를 떨치지 못한 것도 큰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큰 정치인은 대권주자의 반열에 있거나 차세대 후보군에 들어 있는 사람을 말한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은 지역에서 밀어 주지 않으면 커 나갈 수가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본인 역량이다. 그릇의 크기가 남 달라야 한다. 정글의 법칙과 양육강식이 지배하는 정치현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카리스마가 넘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논리적이면서 말도 잘하고 입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두루 갖춰야 한다. 지금은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에 겸양지덕이 몸에 밴 사람을 높게 친다. 이 정도는 돼야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다. 10명의 도내 국회의원 중 이 기준에 근접한 인물은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정읍 고창)과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군산)이다. 도민들은 그래도 이 두 사람을 전북의 인물로 키워야 한다고 평한다. 유 의원은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중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1985년부터 도청 주요 부서 실국장을 두루 거친 후 2002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정읍시장이 됐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투명하고 깨끗한 행정풍토를 만들었다. 그게 원동력이 돼서 무소속으로 18대 당선된 이후 내리 3번째다. 공직에서 몸에 밴 청렴의식 때문에 뒤태가 깔끔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직을 무난히 수행했고 2016년에는 100% 등원 기록을 세울 정도로 성실함도 엿보인다.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비당권파를 이끌고 제3지대를 모색하는 등 전북정치의 존재감을 높이려고 절치부심한 것이 강점이다. 재선인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은 초선 때부터 유명세를 톡톡히 탔다. 공인회계사 행정고시 사법시험 등 고시 3관왕으로 알려진 그는 성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김&장에 있다가 43살 젊은 나이에 국회에 진출했다.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고 매사에 적극적인 그에 대한 평가는 여야를 떠나 모두가 높은 점수를 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때 국민의당 탄핵추진단 단장과 탄핵심판시 국회청구인을 맡아 깔끔하게 법논리를 폈다. 선거제와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운 후 일방적으로 사개위원을 사임시킨 것 때문에 책임짓고 원내대표를 그만뒀지만 주민들로부터는 신망이 두텁다.
책 선물을 받았다. 치매 케어 방법으로 주목을 모으고 있는 휴머니튜드(Humanitude)를 다룬 책이다. 휴머니튜드 케어는 지난해 방송됐던 치매 관련 TV 다큐 영상에서 처음 마주했으나 아직 낯설다.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휴머니튜드 케어는 프랑스의 체육학 교사 부부인 이브 지네스트와 로젯 마레스코티가 개발한 기법이다. 프랑스어로 인간다움을 뜻하는 휴머니튜드는 프랑스의 흑인 시인이자 흑인 해방운동 지도자인 에메 세제르가 제안한 네그리튜드 개념에서 유래했다. 세제르가 흑인 노예를 의미하는 네겔이라는 말로부터 만들어낸네그리튜드는 흑인다움 혹은 아프리카다움을 의미한단다. 지네스트 부부는 여기에 더해 흑인의 문화가 얼마나 많은 인류에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는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담고 있다며 이 말을 만들어냄으로써 흑인들이 스스로 존엄성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소개한다. 지네스트 부부가 개발한 휴머니튜드 케어 역시 인간다움을 되찾는다는 철학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1979년부터 간호와 간병 분야 현장에서 일해 오면서 수많은 환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적용해온 휴머니튜드는 치매환자의 케어 방식으로 널리 확산되었지만 사실은 치매대상자나 노인 뿐 아니라 케어가 필요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철학이자 그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기법이다. 그 방식 또한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구체적으로는 수백 가지 케어 방식이 동원된다지만 바탕은 보다 말하다 만지다 서다 등 네 가지 기법에 놓여 있다. 모두가 당신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기술인데, 실천 사례의 효과가 놀랍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휴머니튜드 케어기법이 소개되면서 치매간병 현장에 도입되기 시작했다니 반가운 일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2017년 기준, 73만 명. 놀랍게도 이 중 7만 명인 전체 치매환자의 9.7%가 65세 미만 환자다. 치매 환자 10명중 1명이 젊은 치매 환자인 셈이다. 전북의 치매환자도 3만 7900여명. 한해 평균 370건 이상의 치매노인이 가출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도 예방 시스템이나 사전등록제 등 자치단체의 관리시스템이 미흡한 현실은 안타깝다. 돌아보면 주변에 치매환자를 둔 가족이 적지 않다. 환자나 가족 모두 고통을 호소한다. 마법 같다(?)는 휴머니튜드 의 힘이 이들의 일상에 가 닿았으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12세 어린 나이에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7년 만에 당당히 빈공과에 합격한 최치원(857년~?)은 당대 천재였다. 그는 중국에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명문 토황소격문을 비롯해 많은 문장과 한시를 남겼고 중국인들은 그를 당송 100대 시인의 반열에 올렸다. 귀국해서 6두품(六頭品)의 최고위직인 아찬(阿飡)에 올랐으나 진골 귀족중심의 신분체제와 국정의 문란함에 외직을 자원해 886년 태산군(지금의 정읍 태인칠보)의 태수로 부임했다. 통일신라시대 대문장가이자 정치가인 최치원은 태산태수로 재임하면서 뛰어난 학문과 많은 덕행을 남겼고 이를 기리기 위해 후대들이 광해군 7년인 1615년 칠보면 무성리에 무성서원(武城書院사적 제166호)을 세웠다. 당초 태산사로 불리다가 숙종 22년인 1696년 사액(賜額)을 받아 무성서원으로 개칭됐다.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에도 호남에서 정읍 무성서원과 장성 필암서원, 광주 포충사 등 3곳만 헐리지 않았다. 무성서원 주벽에는 최치원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는데 한 때 분실됐던 초상화는 지난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장기대여 형식으로 47년만에 돌아왔다. 배향 인물로는 정극인과 신잠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 지역 현인들을 모셨다. 특히 조선 초 문인 불우헌 정극인은 1436년 벼슬에서 물러나 처향(妻鄕)인 태인으로 낙향,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을 지었고 최초의 지역자치 규약인 고현동(古縣洞)향약(1475, 보물1181호)을 만들어 권장했다. 일제 강점기인 1906년에는 을사늑약에 항거하는 병오창의(丙午倡義)가 이곳 무성서원에서 일어났다.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 등이 주도한 이 사건은 호남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이다. 이를 기려 1992년 12월 정읍지역 유림에서 무성서원 옆에 병오창의기적비를 세웠다. 선비문화와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무성서원이 지난 7일 전국 8개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됐다. 전북에서는 지난 2000년 고창 고인돌과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이어 3번째로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신분 계급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제공했던 무성서원은 모든 건축물의 높이가 동일하며 마을 중심부에 위치해 지역민의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선비정신과 애국충절, 그리고 애향애민이 서려 있는 무성서원이 앞으로 전라북도와 대한민국의 문화 자긍심을 드높이길 바란다.
선거 때만 되면 깜냥도 안되는 사람들이 불나비 마냥 설친다. 예전과 달라 선출직 할려면 상당한 식견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돈 좀 벌었다 싶으면 명예를 얻고 싶어서인지 곧장 자기최면에 빠져 선출직에 나간다. 선거꾼들이 돈 냄새 맡고서 부추키는 것도 한 원인이다. 아직도 우리 정치판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서 돈이 많이 들어 간다. 물먹는 하마처럼 움직이면 돈이 들어 가기 때문에 자칫 한강 투석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지방의원 등 선출직들은 동냥벼슬이다. 인품이 훌륭해도 표을 구걸할 수 밖에 없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한표를 그냥 쉽게 주지 않는다. 요즘 민주당 후보들이 국회의원 후보경선을 앞두고 당원 모집에 혈안이 돼있지만 당원 모집이 쉽지 않다. 월 1천원의 당비지만 그냥 대충 입당 원서를 써주지 않는다. 모집하는 쪽에서 보면 야속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 표밭인심이 사나워졌고 인심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출마하면 그 집안의 3대 내력이 까벌려 지기 때문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선거판에 쉽게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국회의원 만큼 좋은 직업도 없다. 권한은 많고 책임질일이 별로 없다. 세비가 연간 1억8천만원이요 후원금까지 모금해서 쓸 수 있어 그 만큼 호사를 누릴 자리도 드물다. 면책특권이 주어져 특별한 일이 아니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보통 정치인 하면 국회의원을 지칭하는데 그 자리에 가려고 평생을 노력해도 못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한번 하면 낙선하기가 쉽지 않지만 대부분 다선의원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잔뜩 목에 힘이 들어 간다. 목에 힘 들어 간 것을 정작 자신만 모르지 유권자들은 그냥 안다. 그렇다고 충고하기도 쉽지 않다. 국회의원이 목에 힘 들어 간 순간부터 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되기도 어렵지만 여론이 그런식으로 돌아가면 안된다. 요즘 현역들의 지역구 방문이 잦아졌다.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거의 지역구에서 산다. 한표라도 더 얻으려고 절치부심한다. 평소 목에 힘이 들어가 잘 숙여지지 않는 허리를 숙이고 친한척 하느라 애쓴다. 마치 밀린 방학숙제를 한꺼번에 해 치우는 것처럼 보인다. 유권자들도 다시 기회를 줘야 할지를 훤히 꿰뚫고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민심이 까다롭고 냉정해진다. 앞에서는 지지하겠다고 끄덕이면서도 돌아서면 얼음짝처럼 굳어진다. 조석으로 변하는 게 민심이어서 진정성 없이는 그 맘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다. 유권자들은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표를 주기 때문에 평소에 잘 해야 한다. 선거판에선 열렬한 지지자도 중요하지만 고추가루 한사람의 목소리가 더 거슬린다. 인간은 감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서운했거나 소홀한 점을 표 찍을 때 나타낸다. 현역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냥 지나치지만 서운한 사람들은 꿍하면서 벼룬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 것처럼 국회의원 하려면 겸양지덕이 먼저다. 누운 풀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춰야 표가 나온다.
김제시 용지면 와룡리에 가면 용이 누워있다는 의미의 와룡산이 있는데 마을 한쪽엔 십수년전 바람의 파이터란 영화로 유명세를 탔던 극진 가라데 창시자 최영의(1923~1994) 생가 터가 있다. 식민지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주먹과 맨몸뚱이 하나로 일본 격투기계를 정복한 사람이다. 김제 용지에서 태어난 최영의는 16살에 홀로 일본에 건너가 극진회라는 가라테 유파를 창시한 격투기의 대가였다. 가라테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널리 이름을 알린 그는 1950년 맨손으로 소와 대결해 47마리를 쓰러뜨렸는데 이중 4마리는 즉사했다고 한다. 그의 일대기는 만화가 고우영의 대야망과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로 널리 알려졌다. 2004년바람의 파이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꽤 인기를 누렸다. 지역사회에서는 최영의라는 본명으로 각인돼 있는데 일본에서 오래 살면서도 한민족의 혼을 잊지않기 위해 최배달 이란 이름으로도 행세했다. 최영의는 면장을 지낸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 비교적 부유했으나 어려서부터 무술에 관심이 많았다. 주먹이나 손날로 상대를 가격하는 수박(手搏)당수(當手)에 일가견을 갖게된 그는 맨손으로 소와 대결하여 뿔을 부러뜨리고, 한방에 죽이는 등 가공할 능력을 과시하면서 일본 열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무릎을 꿇으면서 트라우마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은 최배달을 보면서 열광했다. 전 세계 140개국에 가라테 지부를 두었으나 한국에는 태권도 발전을 위해 설치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그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사후 4반세기가 지나면서 김제에서는 최영의를 관광마케팅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읍시가 최치원 마케팅을 통해 무성서원피향정을 널리 알리듯 각 시군은 역사인물을 활용해 관광 상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최영의가 창시한 극진 가라테는 2018년 기준 전세계 130여국에서 약2500만 명의 수련생이 있다고 하니 이를 활용한 지역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보는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요즘 일본이 한국의 강제징용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경제보복 조치에 나서면서 한일 관계가 일촉즉발이다. 이번 사안의 발단은 멀리 김-오히라 메모에서 비롯됐다. 김종필ㆍ오히라(大平) 회담에서 비밀메모(김-오히라 메모)를 통해 대일청구권문제 등에서 우리에게 크게 불리한 합의를 해준게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친다. 대일청구권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못하고 일본이 독립축하금이란 이름으로 무상 3억 달러에 일제 36년 식민통치에 따른 모든 배상문제를 마무리한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최영의가 되살아난다면 한국이나 일본에서 당수를 한대씩 맞아야 할 사람이 많이있다. 나이 어린 베트남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이를 포함해서 말이다.
지금은 전북이 낙후된 것에 대해 남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 만큼 상황이 절박하고 심각하다. 전국에서 평균소득이 꼴찌라는 것은 부끄럽고 자존심 상할 노릇이다. 이농현상으로 인구감소가 생겼지만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전북을 탈출하는 것은 전북의 미래와 직결돼 있어 더 간과해선 안될 문제다. 외지인들이 전북인을 양반들이라고 좋게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극적이고 책임감이 약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도민들의 성징이 적극적이질 못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성경에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서 부딪치면 뭔가 되는 쪽으로 결말이 난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수레바퀴와 같다고 했다. 도민들은 행정기관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할 때나 대출을 받을 때도 거의가 안된다고 하면 자포자기하고 쉽게 물러서 버린다는 것. 반면 광주나 전남 사람들은 뒷 배경이 든든한 탓인지 계속해서 담당자나 그 윗선과 부딪치면서 설득작업을 벌인다는 것. 그래서인지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부딪쳐서인지 하나라도 얻어 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를 전북에서 근무했던 공직자나 은행지점장들이 떠난후에 말해준다. 전북 정치권도 똑같다. 도민들의 성징을 그대로 빼다 닮았다. 뚝심과 야성이 부족하다는 것. 현실적으로 쪽수가 부족해 힘이 약하지만 뒷심부족이 더 큰 문제다. 중앙정치권에서 존재감이 약하다보니까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다. 여당인 이춘석이나 안호영의원은 지난 장미대선 때 도민들이 문재인 후보한테 64.8%라는 기록적인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통 크게 광폭행진을 했어야 했다는 것. 도민들 가운데는 3선 중진으로 이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았지만 전북현안을 해결하는데는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정운천 의원을 제외하고 다른 의원들 한테는 이빨빠진 호랑이 마냥 야성이 부족했다고 호되게 비판한다. 정 의원이 연속 4년간 예결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건설예산을 파격적으로 확보해 잼버리 개최 이전에 완공할 수 있게 되었다. 야당의원은 야성이 강해야 힘이 생기는 법이다. 상임위 활동을 통해 장관을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가 돼야 해당 부처에서 관심을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거물급들은 중앙무대에서 잘 나가므로 지역구에 내려 올 시간이 없다. 그렇지 않은 의원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느라 자주 온다. 걸핏하면 지방의원들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행사장을 찾는게 고작이다. 앞으로는 옥석을 정확히 가려줘야 한다. 사사로운 인정에 사로잡혀 제 역할을 못하는 의원을 뽑아주면 지역이 발전을 못한다. 후손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게하려면 부모 세대부터 독하고 강해져야 한다. 도민들은 무작정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사업을 이행할 것이라고 순진무구하게 믿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될 수 있다. 크게 울어대야 젖을 준다.
80년대 뜨거운 시위현장에서 불리던 운동권 가요들이 있다. 운동권에서 불리는 노래란 특성 때문에 대부분 대중가요(?)로서의 힘을 얻진 못했지만 대학가의 시위 현장이나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에서 살아남아 끝내 생명을 얻은 노래들도 적지 않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 중 하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희생된 노동운동가 윤상원씨와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을 계기로 만들어진 노래다. 가사는 황석영씨가 백기완 선생의 미발표 장시 묏비나리를 차용해 썼고, 곡은 김종률씨가 만들었다. 작곡가는 노래의 의미를 이렇게 이야기 했다. 민주와 자유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던 분들의 용기에 대한 존경, 그들 속에 피어난 사랑에 대한 찬사, 미래에 다시 올 수 있는 불의에 맞서 싸울 각오다. 그렇고 보니 독재와 불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열망한 이 노래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시위현장에서도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최근 전 세계의 관심이 홍콩에 쏠리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는 홍콩인들의 거리 시위 때문이다. 홍콩의 인구 240만 명. 그중 수십만 명이 매일 거리로 나와 벌이는 시위 현장은 뜨겁다. 어느 날은 100만 명, 200만 명이 나왔다는 보도도 있으니 홍콩 사상초유의 대규모 시위라 할만하다. 우리가 이 시위를 주목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시위현장에서 불리는 노래의 정체(?)다. 광둥어로 개사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 주인공이다. 흥미로운 것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홍콩에서 불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이다. 홍콩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가장 먼저 외국어로 번역돼 전해진 나라다. 알려지기로는 1980년대 초 중반 한국과 홍콩의 운동권 학생들이 교류하면서 이 노래가 전해졌다고 한다. 이미 30여 년 전에 국가의 경계를 허물어 널리 불렸던 민중가요가 임을 위한 행진곡인 셈이다. 그 뿐이 아니다. 홍콩에 이어 대만, 중국, 캄보디아,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일본, 그리고 호주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에서 불리면서 이제는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었으니 세계화가 따로 없다. 영상으로 전해지는 홍콩의 시위현장. 거리로 나온 홍콩인들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대의식을 부른다. 노래의 탄생이 비장했던 만큼 그 생명의 빛이 눈부시다. 시대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노래의 힘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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