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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밥

초대장도 없이 방문한 손님이다. 반기는 이 없어도 태연하다. 자기 자리가 아닌데도 틈만 보이면 옆자리에 걸터앉아 팔을 늘어뜨린다. 환영받지 못한 셋방살이다. 다른 화초들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모셔놓고 제때 물을 주며 보살펴 주다가도 잠깐의 실수로 생을 마감하는데, 유독 괭이밥은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자기의 영역을 확장해나간다. 바람을 좋아하는 난의 경우는 창문 곁에 반그늘을 지어주어야 하고, 기왓장에 심어진 바위손은 음침한 그늘에 두고 항상 물이 마르지 않게 관리해야한다.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도 한해 겨울을 지나면 이별을 고하는 화초가 있다. 작년 겨울에도 20년 넘게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나누어주던 문주란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꽃대를 올려 하얀 꽃을 피워놓고 자랑스러워 할 때면 거실과 안방까지 향기가 그윽했다. 그 꽃향기가 그립다. 말라비틀어진 잎과 뿌리를 바라보며 서러운 작별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어느새 그 자리에 괭이밥이 터를 잡았다. 심지도 않은 풀이 제멋대로 화분을 점령하니 자꾸만 문주란을 죽인 원흉으로 생각되어 진다. 억울하다고 항변하겠지만 애지중지 아끼던 문주란을 생각하면 그 빈자리를 점령한 괭이밥이 곱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괭이밥이 풀이 아닌 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유리 화분 받침대가 1m는 족히 되는데 줄기 몇 가닥을 바닥에 축축 늘어뜨렸다. 그 모양이 아름다워 그냥 두었다. 일부러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른 것도 아닌데 분재작품 같아 흡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줄기에 노랑꽃이 피었다. 그 줄기에서 꽃까지 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한낱 잡초로만 생각했었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다. 언제나 화초 곁에 자리를 잡고, 꽃나무와 뒤엉켜서 꽃잎을 해칠 것 같아 뽑아버려도 또 생기는 잡초였다. 그런 풀에서 예쁜 꽃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창문을 여니 갈바람이 햇볕을 몰고 왔다. 물뿌리개로 목을 축여주니 꽃 한 송이가 나를 쳐다보다가 숨어버린다. 향기는 미미하나 빛깔이 곱다. 이른 봄날 초가집마당에서 어미닭을 쫒아가는 노란병아리를 닮은 색이다. 만져보고 싶어도 하도 작고 가냘퍼서 얼른 손을 내밀어 잡아 볼 수 없다. 길섶에 지천으로 자라나는 풀이라서 귀히 여기지 않았고, 그 꽃의 아름다움도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꽃잎이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다섯 꽃잎 속에 꽃술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도 치우치 않고 제 위치에 당당하게 자리했다. 이렇게 작은 꽃도 조형미를 갖추고 한 세상을 살고 있다. 작아서 더욱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또 뽑힐까봐 미리 겁을 먹고 살짝 숨는 모습은 마치 촌색시를 닮았다. 이렇게 한낮에만 예쁘게 피는 꽃인 줄을 예전에는 몰랐었다. 갑자기 괭이밥이 고향처럼 친숙하게 다가온다. 지난날 어머니는 내 손톱에 봉숭아꽃을 피우셨다. 봉숭아 꽃잎과 담장 밑의 괭이밥을 뜯어다가 백반을 넣고 막자로 꽁꽁 찧어 햇볕에 거들거들 말려놓았다. 그것을 어슴막에 아주까리 잎에 싸서 손가락에 칭칭 감아주셨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나면 그다음 날 아침에 손톱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꽃잎처럼 예뻤다. 매니큐어가 생기기 전 소녀들의 손톱 미용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할 때 사용되었고, 남에게 도움을 주고도 자신의 공덕을 들어내지 않고 봉숭아꽃에 묻혀 있을 줄 아는 겸손함이 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인내하며 살다보면 언젠가는 알아주는 이가 있어 인정받는 날이 온다는 믿음을 주는 꽃이 괭이밥이다.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2004년 수필과비평신인상으로 등단. 수필집 삶의 빛 사랑의 숨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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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22 23:02

가을 색에 취한 주정(酒酊)

바람은 갈잎을 좋아하나보다. 가을바람이 살랑거리며 갈잎을 희롱한다. 갈잎도 속내는 싫지 않은 듯 다소곳한 흔들림으로 마음을 대신한다. 그녀의 매혹적인 눈 흘김과 은근한 추파에 몸이 달아오른 바람은 몸짓을 키우고 힘을 더 한다. 사내다운 몸짓이다. 가을바람의 적극적인 구애에 갈잎이 넘어 갔나보다. 열정적으로 휘감긴 두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땅을 향해 서로 껴안은 몸을 비틀며 떨어진다. 사랑의 환희에 정신마저 혼미해진 탓인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날린다. 낙엽이 되어 비처럼 내리고 있다. 오늘 낮에는 같이 수필을 공부하는 문우들과 순창의 강천산으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맨발로 걷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은 흙길을 걸어서 구장군폭포까지 갔었다. 가는 길 곳곳마다 갈잎과 가을바람의 사랑이 낙엽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초록의 이파리가 갈색 옷으로 갈아입더니 사랑에 눈이 멀어 버렸나보다. 연두색이던 새봄부터 숱하게 이어진 유혹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정절은 어디에 깊이 묻어두고 한순간에 마음을 열어 몸까지 주어 버린 것이다. 단한번의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던져버리는 갈잎의 열정이 내게는 있었던가? 할 수만 있다면 해보고 싶다. 죽어도 원이 없을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바람과 갈잎의 사랑이 노란색, 빨간색, 연갈색의 낙엽비가 되어 내리는 그 숲길은 마술사 같았다. 오가는 모든 사람을 글쟁이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눈을 돌려 보이는 것마다 좋은 글귀가 되어 머릿속을 달음질하니 어찌 글쟁이가 되지 않을 수 있으랴. 앞서 걷는 중년의 아줌마는 시인이 되었을 테고 잽싼 걸음으로 우리를 재촉하는 P문우는 이미 수필 한편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생각은 어김없이 엉뚱한 곳으로 치닫는다. 갈잎의 사랑을 얻어낸 저 바람이 혹시 봄에 꽃잎을 유혹했던 그 바람은 아니겠지. 빨간 단풍이 산언저리 나무들 사이에 크고 작은 모양으로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색이 아주 고왔다. 수분이 넉넉하여 주름하나 없는 단풍잎이 생기 넘치는 처녀의 피부처럼 탱탱하였다. 물이 말라 잎이 타버린 단풍이 간혹 보여 비교되니 그 자태와 색깔이 더욱 곱고 두드러졌다. 그런데 단풍나무가 싫어졌다. 산의 중턱이나 높은 자리, 있어야 할 곳에는 별로 없고 눈에 잘 띄는 길가에 자리 잡고서 저 혼자만 잘났다며 뽐내는 거들먹거림이 맥없이 미워진 까닭이다. 눈을 들어 올려 보니 산에는 노란색, 연갈색이 단풍 색보다 더 짙었다. 어렵고 힘든 자리는 갈잎나무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등산로 가장자리나 주변에도 단풍나무보다 그들이 더 많았다. 그러면서도 단풍나무를 호위하고 우러르며 단풍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장미꽃다발은 안개꽃에 싸여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장미 한 송이만으로는 외롭고 볼품없지만 안개꽃 몇 줄만 보태놓으면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게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장미꽃다발로 바뀐다. 갈잎나무들은 장미꽃다발의 안개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하고 뽐내기는 쉽다. 보이지 않게 남을 위해 희생하며 주변을 돋보이게 하는 삶은 쉽지도 않고 빛도 나지 않는다. 사랑도 주기보다는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고 돋보이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내 모습이 그랬다. 스스로 자랑스럽기까지도 했었다. 특히 수필을 배우며 돌아본 내 인생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잘살아온 인생길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면이 나의 깊은 속마음이나 진정성까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어두운 그림자만 남기는 경우가 많았음을 깨닫고 뉘우칠 때가 많았다. 깨우치고, 후회할 때마다 한걸음 한걸음씩 본래의 내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리라. 수필은 진정한 나를 찾아줄 것이다. 수필과 여정을 같이하며 나를 찾아 떠난 끝없는 길 위에서 나는 갈잎나무를 닮고 싶다. 갈잎이고 싶다.*수필가 윤철씨는 〈대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행촌수필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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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15 23:02

오래된 자전거

인간의 삶은 참 이상한 것이다.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생선처럼 냉장고 속에 보관하였다가 꺼내어도 금방 싱싱한 생선이기를 바라지 케케묵어 냄새나는 청국장 같은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선은 적당히 말려가지고 구워서 한 입에 넣고 먹을 수 있어야 제 맛이듯, 삶 또한 그렇게 제대로 손을 보아가며 살기를 기대한다.오래된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있다. 가까운 거리는 승용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좋아서다. 자전거는 주로 퇴근 후 운동할 때 사용한다. 홀쭉하고 날렵한 안장과 기름칠한 페달이 언제이고 달릴 준비를 하고서. 자전거는 내가 바쁘거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 다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발이 되어 준다. 시장에 가서 무와 배추를 사올 때도 그랬다. 어떤 땐 짐칸에서 생선냄새가 역겹게 나는데도 코를 옆으로 돌리거나 싫어하지 않고 말없이 나의 분신이 되어 내 삶처럼 군소리를 하지 않고 늘 함께한다.어느 날 점심 약속이 있어 자전거를 음식점 마당 귀퉁이에 세워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밖을 나와 주위를 살펴보니 허전했다.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친구와 함께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찾기 시작했다. 음식점 주변을 돌아다니고, 주변 아파트를 기웃거렸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누워 잠자던 집사람이 왜 잠을 자지 않고 뒤척이느냐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아무튼 오늘은 참 가슴 벌떡거리는 하루였다.물건과의 인연이란 쉽게 잊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수년 동안 내 분신처럼 다리가 되어주고 발이 되어 주었던 그와의 인연을 생각하며, 인간이란 정이 들면 오래가는 거. 물건 또한 내 손때가 묻고 지문이 묻어있는 인연을 생각하니 더욱 정이 느껴졌다. 그와의 인연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수년 동안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갯길을 달린 적도 있었고, 어떤 땐 돌멩이와 부딪쳐 개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기어 나오던 생각도 났다.그러던 어느 날, 천변에서 중고 자전거 한 대가 물속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전거는 안장과 핸들이 뽑혀 휑하게 비어 머리가 없는 흉악한 몰골이었다. 타이어 한쪽은 찢어져 볼품없고 바람이 빠져있어도 내 것임이 틀림없었다. 인간도 타이어처럼 바람이 빠져 있으면 천시를 받는다. 물건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때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버리고 갈까. 몇 번 생각했다. 아니다. 그래도 나와 정이 들었던 세월을 생각하여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냇가에 앉아 병든 몸을 씻듯 깨끗이 닦아 어깨에 메고 가서 수리를 맡겼다. 수리하는 곳에서는 이젠 그만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새로운 부속을 넣고 기름칠하여 안장을 끼워 넣으니 반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안장을 툭툭 때리며 인사를 했다. 정말 겁나게 멋지고 좋아보였다. 오래간만에 천변을 신나게 달렸다. 그날 밤 깊은 잠이 들었다.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오래 된 인연을 쉽게 버리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렇지만 사람과 물건과의 인연, 그 인연은 인간의 삶처럼 정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번 인연을 맺게 되면 소중하고 오래간다는 것을.※수필가 정곤씨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현재 '덕진문학회'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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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8 23:02

아내는 베트남 여자

"베트남에서 왔나요? 열심히 살아요." 얼마 전 남원 고향에 가는 길에 오수 시장에서 노점상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금번에도 오수 장에 들렀더니 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내와 나를 힐금힐금 쳐다봤다. 만만한 것이 홍어×이라고 이제는 개나 걸이나 베트남 여자를 꿰차고 산다고 그들은 상상했나 보다.우리 집이 전북대학교와 가까워 우리 부부는 근 10여 년 넘게 외국인들에게 방을 임대해 주고 그들과 함께 생활해 왔다. 그들은 석·박사 학위 취득이나 교환교수로 온 사람들 이었다. 주로 인도, 이집트, 네팔, 인도네시아에서 왔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고생을 하지만 공부를 마치고 자기 나라에 가면 학계에서 활동하거나 정부의 요직을 맡을 그 나라의 엘리트들이다. 인도에서 왔던 나오만 교수는 한국에 오기 전에 친형이 인도의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고 했다. 아내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어려울 때 우리가 잘 해주어야 6?25처럼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임대료를 한 번도 올려 받지 않았다. 바다를 보지 못한 외국인의 고향 부모가 방문하면 바닷가에 모시고 가서 수산물 요리도 대접했다. 산모를 위한 병원안내와 뒷바라지를 하고, 때맞게 예방접종을 위해 아내는 산모와 아이를 태우고 보건소에 다녔다. 이처럼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오래 생활하다 보니 아내의 외모가 베트남 여자를 닮아 가는가 보다.요즈음 우리 주변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우리는 단순히 이들을 소외계층으로 보고 정부 지원이나 기대하는 부류로 단정지어 버리지는 아닌지, 우리의 무역 교역량이 세계 10위권에 가까웠다고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 우리 고장 출신 김왕자 씨 사건으로 금강산 방문이 중지되기 전, 금강산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다. 남한에서 온 여성 몇몇이 북한 안내여성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면서 하는 말, 입맛 없어 아침 못 먹겠단다. 그때 북한은 식량사정이 몹시 어려울 때였다. 가난할 수록 자존심은 더 강해진다고 한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적대감만 쌓일 뿐이다. 우리가 물건 하나를 구입할 때도 그 회사의 신용도를 고려하여 구입 결정을 하듯이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다. 좋은 국민감정이 형성되고 국가간에 믿음이 있어야 상호 교류가 활발해진다. 한 국가의 좋은 제도와 사회적 신뢰가 그 나라의 훌륭한 사회간접자본이고 국제사회에서 신뢰는 무한 경쟁의 글로벌 세계에서 강한 경쟁력이다. 우리는 어렵고 외로울 때 도움을 준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이 고달프면 고향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가난 때문에 이국만리 타향에 와서 문화차이와 언어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동남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히죽히죽 웃는 것이 자기 고장에서는 미안하고 송구함의 표시다. 화난 데 부채질 한다고 두들겨 패는 남편에 절망하며 울부짖는 이주여성이 우리 주변에는 없는 지 관심을 가져 보자.이제 해외에서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이 전문인력 5만을 포함하여 145만 명이 되는 다문화 세상이다. 우리 모두 이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으로 당당한 우리나라의 시민이 되도록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한다.* 수필가 최동명씨는 2013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수필과 비평 작가회의''덕진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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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1 23:02

아픔을 아는 나무

자신을 들여다보기 참 좋은 가을입니다. 가을은 자기 고독의 색깔을 드러내기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철학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가을은 익어가는 계절이요. 숙성의 절기입니다. 들길 지나 산길로 나서면 나뭇잎들은 푸른 빛 떠나보내고 잎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단풍나무 잎은 능금 빛으로 물들고 감은 어느덧 홍시로 숙성해 변화의 계절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을 앞에 옷깃 여미며 한 해의 삶을 생각하는 가슴 속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나이의 무게를 의식하게 되면 세월의 속도감이 심장을 건드리는 것 같습니다. 늦가을 대기처럼 마음은 쓸쓸하고 애잔한 느낌입니다. 그래 더 겸손히 조신하게 살지 못했구나 싶어지기도 합니다. 인생의 철듦은 꼭 나이와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제나 너그럽지 못한 생각들 앞에 마음의 얼굴이 붉어집니다. 순간 마음의 옷을 벗고 내가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을 만나 따끈한 국물에 소주라도 한잔 권하면서 마음의 온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내 안의 나에게 묻게 됩니다. 하루하루의 시간을 생각 없이 소비하지는 않았는가? 하고.밤새 / 뒤척이다 / 숲길에 나서니 / 초입 길 / 가로등이 / 벌건 눈으로 / 내려다본다. / 갑자기 / 부끄러워지는 마음 / 나만 힘들게 / 사는 게 / 아니라는 것. 나의 시집 〈〈시목詩木〉〉에부끄러움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시입니다. 그리고 어느 독자가 읽고서 책상 위에 세워놓을 수 있는 그림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른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공원길 걸으면 밤새 한숨도 못 잔 가로등이 충혈 된 눈으로 내 모습을 봅니다. 세상 만물 모두가 편하게만 지내는 것 아니오 사람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순간입니다.대지마을 뒷산을 걷다보면 몇 년 전 태풍으로 인해 뿌리 뽑힌 나무가 쓰러져 다른 나무에 얹혀 지내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쓰러진 나무가 다른 나무에 얹혀 있는 모양이 한자의 효孝를 상징하는 꼴 같습니다. 효는 늙은이老를 아들子이 업고 있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의 효는 늙을 노老 아래 나무 목木을 했다고 해도 그냥 효孝로 인정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아! 나무도 생명의 아픔을 아는구나! 하는 가족애가 느껴졌습니다. 지난 주, 문단의 몇 선배와 만났습니다. 그때 한 시인이 존속 살해 사건이 세계 각국 평균보다 우리나라가 두 배나 높게 발표되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와 형을 함께 숨지게 한 범인은 돈 때문에 그랬다고 했습니다. 많은 문제의 원인을 거슬러 오르면 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 죽이는 일을 심각하지 않게 생각 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시인의 말을 듣고 나는 어린 나무가 죽어가는 늙은 나무를 업고 있는 숲속 효목孝木의 꿈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자연 속에서의 나이 질서와 사람 사는 길을 읽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참 많이 아픕니다. 그런데 정치인만 있고 정치는 안 보입니다. 원로 분도 그립습니다. 가랑잎 구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영혼의 허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시인이나 펜을 쥔 작가로서 영혼의 감각이 무뎌진 것 아닐까요. 가을나무들은 한 해가 간다고 체질개선을 하면서 하나의 나이테를 긋기 위해 뿌리 아픔을 앓고 있는데.* 수필가 김경희씨는 〈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내 생명의 무늬〉, 시집 〈시목 詩木〉, 저서〈문학의 이해와 수필의 길〉 등이 있으며, 현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전북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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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5 23:02

휴먼웨어 시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쪽풀잎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풀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일컫는 말이다.예로부터 자식이 부모보다 출중하기를 바라는 것이나 스승보다 제자가 출세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인간의 성정임에는 틀림이 없다.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답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들 교직자를 사람들은 선생님 또는 스승으로 대접한다.또한 교육의 힘이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다. 예컨대 왜정 36년간의 황국신민을 만든 것도 일제 식민지 교육의 결과요, 영국의 신사도를 만든 것도 기사도 교육의 힘일 것이다.어제의 배고픔을 가난의 서러움을 딛고 일어선 오늘의 한국 경제발전도 우리들 교육의 힘이 아니던가? 이러한 중차대한 과업에 우리 교육자는 서슴지 않고 뛰어든 것이다.초등학교에서는 유치원생과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이 더불어 생활하고 있다. 교육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4세가 되면 두뇌의 발달과 형성이 된다고 하니 어린이들은 담임선생의 걸음걸이, 글씨체, 말씨 등을 닮아 간다고 할 때 그만큼 선생님은 일거수일투족에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희생적인 교직생활을 요구받게 된다.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들은 진한 사제의 연분을 맺어야 하는데 자칫 티 없는 천진한 어린이라고해서, 무시하는 상태에서 역할기대체제(役割期待體制)가 이룩되지 못한다면 평생을 두고 제자들로부터 사모는커녕 원망의 소리만 듣게 될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 눈뜨고 지내는 시간은 가정보다 직장이 훨씬 많을 것이다. 직장이란 의식주를 해결키 위하여 돈을 벌려고 다니는 일자리라고 해도 모순은 아니다.그러나 직장에 돈을 벌기위해 나간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나는 봉사하러 나간다`고 마음 먹고 하루 일과에 열중한다면 그 직장은 천직이 되는 것이요, 하루 생활의 보람을 찾는 요람이 될 것으로 믿는다.나는 10여년 전에 정년을 하였다. 내가 근무했던 S학교의 정문을 들ㄹ어서면 통일로 우측에 하얀 글씨로 `오늘도 보람되게`라고 쓴 표지판이 있다.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도 해야지만 눈 덮인 겨울 무덥고 지루한 여름, 책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선생님을 찾아오는 제자에게 스승으로서 무엇을 도와줄 것인지 오늘의 교육현장에서 다시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큰 소리 아니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뿐이다. 지구의 종말론을 펴내 마음 약한 사람들의 일손을 더듬거리게 하는 무책임한 사람들도 있지만, 먼 훗날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이 더욱 많은 것 같다.머지않아 물질위주의 가치 판단이 주역에서 밀려나고 지가(知價) 쾌적성(快適性)이 가치의 중심이 될 것이다.그 사회에서는 얼마나 돈이 많고 힘이 세고 큰소리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면 삶의 질을 높이며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게 될 것이다.이러한 시대를 `휴먼웨어의 시대`라고 부른다.이런 미래를 맞이해야 할 우리는 오늘을 사는 지혜를 창출해야 한다.가을이 지나가는 스산한 길목에 서서 마음의 설렘 속에 심란해 하지 말고 덤뻑 대는 일없이 오늘에 퇴물이 된 우리들과 현직에 있는 모두가 그 책무를 돌이켜 보면서, 다시는 재생되거나 되돌아오지 않는 오늘의 삶을 보람되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수필가 문희병씨는 1989년 월간종합예술지 〈거목문학회〉로 등단. 수필집 〈박꽃, 달빛을 머금고〉 〈강물따라 흐르는 세월〉 〈사랑의 밀알이 되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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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8 23:02

행복은 나의 것

행복하면 떠오르는 얼굴. 활짝 웃고 있는 그 얼굴.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수단의 자랑인 톤즈 부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하고 있었다. 선두에 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그 남자. 그 사진에 겹쳐 떠오르던 다른 모습의 그의 얼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새로 지은 병원의 지붕 위에 올라앉아서도, 흙탕물 같은 개울에서 그 곳 소년들과 한 타령이 되어 뒹굴면서도 그는 웃고 있었다.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면 눈물을 흘렸다.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 눈물을 가장 큰 수치로 생각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을 울리고야 만 그 남자. 그 곳 삭막한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故 이태석 신부.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보면서 나 또한 주체할 수 없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세상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들, 명예와 부, 안락과 평안을 버리고 톤즈로 달려가 그 곳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던 사람, 그들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던 사람. 마지막 그를 배웅한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흩어지지 않고 한 자리에 모여 부라스 밴드가 연주했던 그 노래.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후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다 "목적은 무슨 목적? 그냥 사는 거지 뭐."라는 무책임하고 회의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겠다. 아님 "이왕 태어났으니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것." 이라는 약간은 불투명하나 자기 삶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하겠지. 나아가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싶다."라는 분명한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이도 있겠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형이상학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으리라. "내가 사는 동안 오늘이 어제보다 그리고 내일이 오늘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라는. 그리고 "추구하는 삶의 목적을 이루었을 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또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행복.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흔히들 세상에서의 행복조건을 건강과 재물, 그리고 권력과 명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이뤘다고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무엇인가를 원하고 그것을 손에 넣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큰 것을 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질주요, 목마름이니 헉헉대며 달려야 하는 그 과정이 어찌 평탄하기만을 바랄 수 있으며 그 갈증에 어찌 마음이 평안할 수 있을까. 이루려고 힘쓰면 힘쓸수록 평안과 행복은 자꾸 뒷걸음치기 일쑤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더 가지려고, 더 이루려고 힘쓰기보다는 그 욕심들을 덜어내는 데 있지 않을까. 남보다 가진 것은 적어도 늘 만족하고 기뻐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진정한 행복은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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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1 23:02

우리 집 명절

고유의 추석명절이 지났다. 설날과 추석, 단오 3대 명절 중 추석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초청하거나 마중을 나가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세월이요 또한 추석이다.추석명절은 그야말로 전통문화로서 민족의 대이동을 불러 온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조상흠모와 인간 경애사상 그리고 효사상이 깊다. 이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그럼에도 명절이 모두에게 그저 흔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명절이 더 외롭고, 부담스러운 가정도 적지 않다. 가족을 만날 수 없거나 고향을 찾을 수 없는 경우는 명절이 오히려 고통이다. 명절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들 뿐아니다. 일반 가정의 경우에도 주부들 사이에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명절 준비가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다. 오죽하면 명절을 전후해 성형외과와 산부인과 예약 손님이 줄을 선다고 할까.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보일 수 있다. 명절은 말 그대로 오랜 관습에 따라 즐기는, 좋은 날이다. 명절이 문제가 아니라 명절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문제다. 우리 집에서는 형제가 격년제로 준비하여 명절을 쇤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이 시제, 제사, 부모님생일과 회갑, 칠순잔치 등 웬만한 행사는 으레 장손들이 담당한다. 그것이 전통풍습이다.나는 2남 2녀 중 장남이다. 맏이로서 가정의 큰 행사는 당연히 내가 도맡아 치렀다. 장남인 나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으로부터 귀여움도 더 받았고, 재산도 더 많이 상속받았다.그런데 동생부부가 20여 년 전부터 우리 형제가 격년제로 명절을 쇠자고 제의했다. 장남이나 차남이나 부모의 자식 사랑은 똑 같았을 것이므로 명절 행사를 형제간에 1년씩 번갈아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장남의 몫으로 여겨 몇 년을 그대로 버텼다. 그 뒤 명절 때만 되면 동생 내외는 거듭 번갈아가며 명절 주최를 요구했다. 장고 끝에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회의를 열어 동생 내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새천년 설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다.홀수 해에는 형 집에서 짝수 해에는 동생 집에서 설과 추석 명절을 치른다. 어느새 올해로 13년째가 된다. 가부장적으로 실행해오던 우리 집 가규(家規)였던 장남 중심의 수백 년 명절 전통의 벽을 깬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 어색했지만 10년이 지나니 이제 정착이 되었다.두 집 가족이 모두 30명인데 이번에는 25명이 모였다. 옛날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지만 명절 때만은 대가족이 모여 행사를 치른다. 두 집이 돌아가면서 명절을 쇠니 두 집에서 따로 따로 준비하던 경비도 절감되고, 명절증후군도 줄어서 좋다. 특히 형제의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단란하고 화합된 분위기여서 참 좋다. 핵가족생활을 잠시 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젖어 즐거운 표정들이다. 이것은 동생부부의 제안으로 이루어졌기에 더 없이 고맙고 자랑스럽다.우리의 명절행사가 앞으로도 대대로 이어지고 후손 모두가 화목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수필가 고재흠씨는 2000년 월간문학 공간으로 등단. 한국신문학 전북지회장·행촌수필문학회장을 지냈으며, 수필집 '초록빛추억'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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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4 23:02

구두 한 켤레

선물 받은 상품권으로 백화점에 들러 구두 한 켤레를 샀다. 콧등이 준수하고 몸통이 거울처럼 깨끗한 유명상표가 붙은 구두다. 그는 기나긴 외출이나 중요한 행사장에 갈 때면 나와 한 몸이 되어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눈이 오나 비가와도 내 발과 생사를 함께 하던 너는 더러운 흙탕물을 뒤집어쓰고도, 냄새나는 시골 뒷간에 들어갈 때도, 어떤 날은 개자리의 그루터기를 밟고도 불만스런 몸짓 한 번 하지 않고 나의 분신으로 살았지. 미끄러운 도로에서 끝 날을 세워 나를 보호하고 바다 건너 일본까지 기꺼이 동행해주던 너와의 인연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걸으면서 발이 좀 불편함이 느껴져 문득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구두의 발등 쪽 옆구리 접히는 부분이 약간 벌어져 있어 볼썽사나워 보인다. 아마 오래전부터 조금씩 달아 헤어졌나보다. 그래도 그와 정 들고 버리기 아까워서 더 신고 다녔다. 여유가 있어 두 켤레를 사서 번갈아 신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켤레만으로 신다보니 빨리 달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높은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갑자기 구두의 오른쪽 살점이 툭 떨어져 나가버렸다. 그때 내 발도 심한 통증을 일으켰다. 난 상처 난 몸통을 가만히 비닐봉지에 넣어 병원으로 갔다. 우측 골반 뼈를 수술하여 건강을 회복하니 다시 새 구두가 되어 내 발목을 꼬옥 껴안았다. 그러다 며칠 후 이번에는 좌측 골반 뼈가 빠져나가 또 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 의사는 웃으면서 대장과 소장의 연결 부위가 닳아서 몇 달 못가서 하직한다니 그는 회생 불능한 불치병에 걸린 걸까?사람간의 인연의 시작과 끝도 구두가 그 수명을 다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만나고 헤어진 무수한 사람들, 낡아 헤어진 구두를 보면서 인연의 깊이를 생각해 보았다. 내 발을 거쳐 간 구두가 몇 켤레인지, 나와 인연을 시작하고 끝맺었던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겠다. 문득 신발장에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구두를 꺼내 볼 때가 있듯 과거속의 인연도 그렇게 꺼내보고 싶다. 이제 두 번의 수술을 통해 신었던 구두의 수명이 거의 다 되었나 싶다. 수년을 나의 발과 일거수일투족을 같이 해온 어느 날 고약스런 빗물이 옆구리를 살며시 파고들었다 수명을 다한 구두를 쓰레기봉투 속에 넣어 장례를 치러주었다 비스듬히 누워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수년을 나의 발과 함께 해온 그의 생애가 오늘 새벽이면 환경미화원의 손에 이끌려 나락(奈落)에서 열락(悅樂)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당신은 누구냐고 누가 묻는다면 내 갈 길을 안내해준, 희로애락을 함께 한 내 분신이었다고 말하리라. 구두 속에서 내 발은 여름 해같이 불타오르고, 구두 속에서 삶은 언제나 실감나고 즐거웠었다. 구두는 전조등 불빛처럼 욕망을 비추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외출시켰다. 너는 나의 분신이었다. 내 발과 오래토록 인연을 함께 한 넌 나의 오랜 친구였다. 지상을 더없이 사랑하게 만드는 구두. 지상을 떠날 때 해를 향해 날아갈 구두.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내 희망 한 켤레야!* 수필가 신영규씨는 1995년 '문예사조', 1997년 월간'수필과비평'로 등단. 수필집'숲에서 만난 비',칼럼집'돈아 돈 줄게 나와라''펜 끝에 매달린 세상'등이 있다. 전북신문학상,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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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27 23:02

소리, 그 소리

백운봉 산 비알에서 건너온 싸리꽃향기가 살그머니 와 나의 발밑에서 간질입니다. 하늘은 청아한 파란빛이 향기로 감기고, 갈산은 현란하게 물들어 젊어지고 있습니다. 라틴어로 사람이라는 말은 소리를 통과시키다(personare)라는 뜻이 됩니다. 진정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 안에 소리를 통과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닫혀 있으면 안 됩니다.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통과시켜야 할 소리는 세상의 소리보다 먼저 절대자의 소리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힘으로 깨달을 수 없는 크고 작은 풍성한 진리, 아름다움, 사랑의 소리가 됩니다. 이런 목소리를 자신 안에 통과시킬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람이 형성된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됩니다. 목소리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맑고 청랑한 목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너와 나는 마음의 미를 갖게 하는 소리가 됩니다. 나아가 보이지 않는 묵상의 소리는 내적 영혼을 살지게 하는 순종의 소명이란 음성으로 승화하게 만듭니다. 어린 날, 가물 한 동요가 맴도는 푸른 아침에 새록새록 피워봅니다. 썰매타기, 자치기, 구슬치기, 댕기머리 놀려대기는 개구쟁이의 홍소(哄笑)된 목소리가 불현듯 머리에 가득 앉습니다. 너무나 긴긴 그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마음에는 어제만 같이 보입니다. 서낙하고 히덕거리며 지순한 웃음소리, 수련한 순이, 복선이의 홈홈한 이뿐 볼, 달구달구한 아이들이 오늘따라 그때의 모습에서 그들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나의 간절한 가슴의 소리를 보내고 또 듣고 싶습니다. 세월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소리도 더불어 갑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음성, 천진하고 난만한 소리에서 어릴 적 친구들의 살가운 이야기와 모습의 그리움이 흥건히 배어 있는 숙숙(肅肅)하고 찰지고 지순한 정겨움을 맛보고 싶어 그러합니다. 자연은 신이 살아 있는 옷이다 카알라인의 말입니다. 문명은 자연과 적절히 어우러질 때 최적의 환경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소리는천작(天作)으로 문명과 비례할 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편견, 이기심, 탐욕이 가득 찬 세상의 소리는 순수의 자연의 소리를 거슬러 몰 인간이 만들어 지는 순간, 이는 너무도 큰 슬픔이 됩니다. 우리는 장애인 하면 흔히 육체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수화의 교감은 소리 아닌 무언의 의미전달을 나눕니다. 그의 초연한 표정 뒤에 감추어 보이지만, 마음에의 미움, 질투, 탐욕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사람 또한 영적인 장애자입니다. 마음이 무디어 다른 사람의 아픈 처지를 외면하는 것도 성령 장애의 요소가 됩니다.우리는 열린 귀로 무엇을 듣고 있으며, 풀린 혀로 무슨 말을 하고 사는지요? 자문해 봅니다. 음악의 본바탕은 소리에서 기인되어 사람과 더불어 먼저 사람을 매혹하고 나아가 인생길의 멋을 치부하는 사랑으로 안내합니다. 음악의 정신은 행복을 추구하는 최후의 목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감미로운 리듬에 자기를 되돌아보며 너무도 하얀 마음의 세계로 이끄는 힘이 곧 소리이며 예술입니다. 이런때, 그에서 세상살이의 정화가 요구되는 것을 배우게 합니다. 이처럼 자연의 큰 틀 안에는 소리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소리를 떠나서는 잠시를 존재하지 못합니다. 각혼이 없는 생혼만을 지닌 날짐승과 기는 동물은 올금 볼금 울며, 허공과 숲을 전전하며 먹이만을 구하는 소리에서 단순함을 발견합니다. 바람은 소리를 만드는 장치인가 합니다. 들을 건너 산으로 오르면 잎의 군상이 소리의 합창으로 산을 넘습니다. 그의 소리는 습습하여 종합예술의 극치가 되고도 남습니다. 골짜기의 물소리는 산과 벗한 조화이며, 물이 없는 골은 사막과도 같습니다. 바람소리가 모든 소리들을 다 이끌고 간 고요는 정숙과 한가로움이 숲을 덮습니다. 조화는 우리를 만들고 사회를 이끄는 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지혜롭게 꾸미어 살아가게 합니다. 소리의 조화는 순간의 의미를 남기고 순간 소멸됩니다. 그러나 그의 자국은 시공을 뛰어 넘습니다. 영각(永劫)속에서 영계(정신), 육계에 이어져 그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남긴 소리의 흔적이 더욱 가까워져 다시 찾고 싶은 것은 사람의 애틋한 정서인가 합니다. 이제 소리를 따라 산자락을 내립니다. 자연의 품안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담 쑥 안겨 청순하고 슴슴이 우러나는 묵념속의 그 소리를 마음과 가슴으로 새겨 사랑에 푹 젖어봅니다. 수필가 이창옥씨는 1982년 한국문협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사랑한 너 오늘에 핀다등 6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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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3 23:02

꽃가지를 아우르며

내가 절에서 꽃꽂이를 하게 된 것은 내 건강을 걱정하던 친구의 배려 때문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말하지 않고 가끔 나를 절에 데려가곤 했다. 갈 때마다 고적한 풍경에 마음이 끌려 툭하면 파닥이던 가슴이 진정되곤 했다.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다가 경내의 경건함이 조금 부담스러워질 무렵에 절 뒷마당을 돌아 산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 지붕 끝자락과 맞닿은 하늘이 참으로 맑고 고왔다. 그 산자락엔 꽃꽂이할 소재들이 많았다. 꽃이나 나뭇가지를 꺾어다 내 방에 꽂고 산사의 분위기를 이어 보고자 했다. 작은 풀꽃에서 절 내음을 맡고 파릇한 잎사귀의 움직임에서 풍경소리를 들으며 자꾸 까무러쳐 가는 심신을 곧추세우곤 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그런 내 행동이 왠지 죄스러웠다. 버리고 와야 할 곳에서 오히려 채워 오려고 한다는 생각이 나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았다. 후론 거꾸로 꽃을 사서 들고 갔다. 정성 들여 꽂고 나면 내 마음도 그 꽃을 보는 사람도 함께 즐거웠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공양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 공양 중에 꽃 공양이 제일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에게 꽃 꽂기를 부추겼다. 법당에서 시작한 꽃꽂이는 나한전, 관음전, 극락전, 지장전으로 범위를 넓혀 갔고 꽃꽂이를 위한 성금이 점점 많아져 갔다. 큰 행사 때에는 몇 날을 꽃과 씨름하며 파김치가 되도록 몰두했다. 그리고는 며칠씩 앓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보람으로 충만했다. 나뭇가지를 들여다보면 살려야 할 선과 잘라야 할 선이 보인다. 어느 방향으로 어느 만큼을 살리고 자르느냐에 따라 작품의 윤곽이 다르다. 꽃꽂이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구상하는 대로 자르다 보면 어느 것은 너무 아까운 것이 있다. 물론 꽃꽂이를 하기 위한 절화용이어서 마음껏 자르는 것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물을 빨아 올려가며 생을 이어가는 생명 아니던가. 그러기에 잘려나가야 하는 것이 있을 땐 가위질이 망설여진다. 그러나 잘라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잘라야만 작품이 나온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잘라내야 할 것들로 진통을 앓듯, 내 삶이 이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놓고 마음을 앓을 때가 참 많았다. 꺾어지고 시들고 찢어져서 버려야 할 것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어떤 선을 살려야 하는 이유로 정말 멀쩡한 가지를 쳐 내야 했을 때처럼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버리고 살아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누구를 위한 삶인지 회의를 느끼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런 일들이 내 삶의 곳곳에 딱딱한 옹이를 만들어 갔고 그 옹이들은 내 마음 깊숙이 어둠을 깔고 숨어 있다가 가끔 튀어나와 벌겋게 성을 내곤 했다. 작품으로 탈바꿈한 꽃과 탐,진,치(貪,瞋,癡)를 버리라는 목탁소리 속에서 지내다 오는 날엔 벌겋던 상처 색깔이 달라져 갔다. 잘려나갔기에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사실과 잘린 것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는 이치가 손끝에서 이루어져 가면서 소중한 물건인 것처럼 보듬고 있던 응어리들이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어 갔다. 산사의 풍경소리와 목탁소리와 꽃꽂이. 화사한 봄날 마당에 내려앉는 햇살과 한여름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나뭇잎 뒹구는 소슬한 가을 저녁나절의 고즈넉함과 뒷산 소나무가 꺾어지는 겨울 풍경들을 보고 들으며 꽃을 꽂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 앉아 갖가지 꽃물에 흥건히 젖는다.- 수필가 김재희씨는 수필과비평,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수필집 그 장승을 갖고 싶다꽃가지를 아우르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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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6 23:02

짝퉁>명품>진품

현대는 짝퉁이 판치는 세상이다. 보석과 의류, 여성용 손가방이 특히 심하다. 심심찮게 매스컴에 모조품 관련 뉴스가 보도된다. 손재주 많은 우리나라에서 심심찮게 범법행위자가 적발되기도 하지만, 모방의 명수 이웃 중국이 단연 으뜸이려니 싶다. 일요일 낮에 방영되는 KBS 교양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을 곧잘 시청한다. 골동품, 고미술품, 도자기, 공예품 등 장인의 혼이 서린 각종 명품들의 가치와 예술적 안목을 넓히고 높이기 위해서다. 또한 간접체험을 통하여 대리만족의 환희를 맛보며 희열에 젖는다. 대부분 세상에 빛을 못보고 사가의 깊은 곳에 묻혀있는 귀중한 보물들을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치 않다. 젊은 시절 한 때 명품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다. 학창시절 소박한 바램, 파커만년필과 라이카 카메라를 꼭 갖고 싶었다.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파커를 가지면 글이 더 잘 써질 것 같은 착각을 했었고, 역마살기가 다분해 싸돌아다녔기에 사진 찍기를 즐겼었다. 흑백필름에 투영된 화상은 황홀이었다. 부잣집 도령이 못 되었기에 파커 대신 파일럿으로, 라이카 대신 야시카로 대신하여 살아온 아린 상처가 있다. 바이올린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달라니, 승용차엔 벤츠 롤스로이스 캐딜락, 시계는 롤렉스 오메가, 스포츠용품으론 아디다스 프로스펙스, 화장품 샤넬 랑콤, 의류업계엔 크리스천 디올 이브생로랑 루이뷔통 등 수없이 많은 제조사와 브랜드가 있다.요즘 여성들의 액세서리, 핸드백은 루이뷔통 샤넬 구찌 프라다가 최고의 명품을 만들어 판매 1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피나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어느 분야 어느 품목이건 짝퉁 명품 진품은 존재한다. 국가와 정부 사회에도 명품은 있으며, 사람 예술품 건축물 조각품 공예품에도 명품이 있다. 우주가 존재하고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짝퉁 명품 진품은 존재 할 것이다.조선시대 왕, 세종 영정조는 임금으로서 진품이며 명품 성군임에 이의가 없다. 미 대통령 링컨과 루즈벨트, 프랑스 드골 대통령, 영국의 처칠수상, 분명 진품 명품 국가 지도자였다. 충무공 이순신,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역시 진품명품인 분들이다. 그러나 징기스칸, 알렉산더, 시저, 나폴레옹 등은 명품 지도자일 지언 정 진품명품 반열에는 올려 부르기는 뭔가 허전하고 부족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최근대사엔 불행하게도 진품명품 지도자가 없었다. 실패한 명품과 짝퉁만 있었을 뿐. 짝퉁보다 형편없는 사람을 뭐라 불러야 할까? 아돌프 히틀러, 네로, 도조 히데키 등을 인간말짜 개망나니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짝퉁은 짝퉁 나름대로 필요악이리라. 돈 없어 가난한자, 허영 아닌 소박한 작은 소망, 대리만족을 통하여 희망을 같고 즐겁고 행복하다면 짝퉁의 제 몫은 한 셈이다. 명품을 모르는 사람은 명품과 짝퉁을 분별 하지 못 한다. 유사품 짝퉁을 명품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편안 방편이려니 싶다.모든 문화예술 장르의 생산물은 작가의 고매한 혼과 장인정신이 깃들어져 예술성 높게 작품으로 승화될 때 진정한 진품이 될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돌아가는 꼴이 영 미덥지 않다. 양심과 상식을 절해고도에 귀양 보낸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지도자들이 너무 많이 판치고 있다. 선량한 국민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고 있다. 한줄기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암울한 시대다. 국민이 선택 했기에 국민이 감당 할 몫이다. 건국 이래 최초 여성대통이 된 대통령께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발휘, 국사를 찬찬히 꼼꼼하게 살펴 보통사람이 평안히 잘 사는 세상, 이시대의 명품 대통령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 수필가 김재환씨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집금물결 은물결이 있다. 전북 수필과과비평작가회의 회장,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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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30 23:02

경기전엔 경기매(慶基梅)

경기전에 상주했던 마지막 상녀 이문용의 증언이 오늘따라 유달리 생각난다. 일본제국은 '경기전 일부를 헐어 소학교를 건립하고 매화나무를 수차례 고사시키는 회오리바람에 당시 상주 자들이 몰래 풀고 또 풀어 살렸다'는 증거로 등이 절묘하게 꺾이듯 세 번이나 굽어 의아할 만큼 희한한 모습이다. 등걸이 반쯤 비어 치료받고 누워 애달파하는 모습은 곧게 선 직선미 보다 곡선미를 은은히 풍겨 '노매(老梅)'라 하니 그 보다 '고매(古梅)'라 부르는 이가 많단다. 그럼 고매를 분류하니 최고의 매화로 '고매(高梅)', 아픈 역사의'고매(苦梅)', 연고가 있다'고매(故梅)', 나무이기에'고매(枯梅)', 홀로 서있다 해서'고매(孤梅)'라 한다. 신기하고 단아한 맵시에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겠지만 난 이 매화나무를 볼 때마다 경기 전의 특성과 매화나무의 굽혀진 모습을 감상한다. 때 늦은 눈이 내려 매화 꽃잎 위에 사뿐히 앉았다. 모란이 부귀를, 연꽃이 군자를, 난초가 군자와 귀녀를, 국화가 은일 자를, 해당화가 신선인데 비해 백미고사(白眉故事)의 매화가 일품이다. 매화나무 새 가지에 꽃눈이면 잎은 반들반들하고, 잎눈이면 거칠어 구분이 된다. 꽃은 2월에 잎보다 먼저 백색, 홍색으로 잎겨드랑이에 피는데 향기가 짙다. 꽃받침은 둥글며 꽃잎은 달걀 모양이고 모두 털이 없다. 수술은 많으며 꽃잎보다 비교적 짧다. 6월에 익는 매실은 음식물의 독, 핏속의 독, 물의 독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어 한방서 오매(烏梅)라 처방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잘 자라지만 그 중에 먼저 조선 효종(1637)때 명나라에서 세자가 가져와 부여 백강 주변에 심어 12월 동지 때 핀다는 동지매(천연기념물 제105호)가 으뜸이다. 지리산 단속사지에 550년 된 인재 강희안(1419-1464) 심었다는 정당매(政堂梅)도 있다. 그리고 서울 창덕궁의 만천홍매(萬疊紅梅)는 선조 때 것이며 선정전의 와룡매(臥龍梅)가 홍매와 백매가 현재의 서울 송파구 매화나무길(1-4길)을 탄생케 했다. 다음은 고송 팔매는 송매원을 짓고 안방준(1573-1654)이 심었다. 안동의 도산매는 퇴계 이황(1501-1578)초막을 짓고 매화를 처로 학을 자식으로 삶아 매화 단일로 백여 시가 남았다. 그리고 죽림정사에 고매(古梅)와 하회마을의 서애매로 600년간 고택을 지키고 있었다.그 다음엔 관악산 선바위의 장군매다. 또 우리나라 삼대 사찰인 송광사의 송광매. 영취산 통도사의 자장매. 지리산 산청 도천서원의 노산매. 조계산 선암사의 선암매 등이 특성의 매화로 유명하다. 이들은 그곳의 특성과 심은 이의 호와 지역의 명을 붙여서 불렸다. 매화의 은은한 향에 더 가까이 다가섰다. 경기 전의 매화이니 등이 절묘하게 꺾이듯 세 번이나 굽어 의아할 만큼 희한한 모습! 이는 왕실의 한으로 심었고 우리민족의 혼으로 가꾼 나무다. 그러기에 조선 전통문화를 단편적 역사 지식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새로운 맥락에서 생생히 살아있는 의미로 경기 전을 찾고 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쾌거의 기념으로 '경기매慶基梅'라 불러도 손색이 조금도 없다고 본다.*수필가 신진탁씨는 전북숲해설협회장·숲생태지도자협회장·국제PEN 전북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토향''금강산아''노을빛 닮아 튀는 얼굴''해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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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3 23:02

스마트폰 열풍

지난봄 서울에서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옛날에는 지하철을 타면 신문을 읽거나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출퇴근 시간이면 조간이나 석간신문을 들고 다니면서 팔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모습은 구경하기 힘들다. 앉아있는 승객10명 중 7~8명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청소년이나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3천만 명이 넘었다더니 실감난다. 한때 단군 이래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가 고스톱이라 했는데 순위가 바뀌었나 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옛날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소통했는데 요즘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밴드 등을 통하여 먼데 있는 사람과만 소통하려고 한다. 옛날에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갈 때면 옆자리에 함께 가는 사람과 서로 인사도 나누고 신문이나 잡지도 바꿔보며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좀 더 발전하면 휴게소에서 차도 나누어 마시며 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요즘은 차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종점까지 가버린다. 옆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가족들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식사시간에도 식탁에 스마트폰을 얹어놓고 들여다보며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면서도 들고 간다고 한다. 그러니 가족들과의 대화도 단절될 수밖에 없다.스마트폰은 정말 편리한 문명의 이기다. 스마트폰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똑똑한 휴대전화'라고 한다. 스마트폰은 전화, 문자, 컴퓨터, 카메라, 녹음기, TV, 라디오, 손전등, 손거울, 전자지갑 (폰뱅킹, 주식거래) 등 못하는 일이 없다.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궁금한 문제가 있으면 즉석에서 검색도하며, 게임도하고,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서울에 사는 아들이 손자의 재롱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하게 활용하다 보니 폐해가 심각하다. 거북목이나, 손목장애, 집중력과 수면부족, 시력저하, 학습저하, 과도한 통신요금, 전자파노출. 인간관계의 갈등 등 여러 가지다. 청소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업시간이면 원만한 수업진행을 위해 스마트폰을 수거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멀리하게 하려고 해도 어렵다고 한다. 스마트폰처럼 훌륭한 문명의 이기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슬기롭게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지금까지 기업에서는 스마트폰을 만들어 편리하고 재미있는 기능만 선전하여 판매량을 늘려 기업의 이윤만 추구했다. 그 결과 기업은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그 폐해가 심각해졌다. 이제는 스마트폰의 폐해를 사전 예방하고 줄이는 노력을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건전한 이용에 대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교육을 강화하고 중독자에 대한 전문상담사를 양성하여 치료에도 힘써야한다.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선전하면서 과도한 스마트폰 이용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해롭다는 내용도 함께 알려야한다. 스마트폰의 건전한 이용을 위해 가정과 학교는 물론 기업과 언론도 힘을 모아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수필가 최기춘씨는 2008년 대한문학으로 등단. 수필집'머슴들에게 영혼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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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6 23:02

웃음꽃 가득 피우던 아이 - 이용만

미옥이라는 아이가 있었다.30년도 더 지난 저 먼 날에, 박사고을 임실 삼계 뒷고개 너머 제각집에서 살던 작은 소녀였다. 낯꽃 좋고 심성 좋았던 아이인지라 사람을 보면 활짝 웃으며 꾸벅 꾸벅 인사를 잘도 하던 아이였다.먼 곳에서도 나를 보면 '선생님!' 소리치면서 달려와 덥석 안기던 아이였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복도 저쪽 끝에서 달려와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에 인사를 공손히 했음은 물론이고 정말 환하고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그 아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40대 중반쯤 되었을 그 아이는 지금도 고운 얼굴에 웃음꽃 가득하게 사람들을 반기고 있을까? 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어려서부터 그토록 웃기를 잘 하고 사람을 반겼으니 그 심성, 그 버릇 어디로 갈까? 지금도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설령 어떤 일로 살기가 어렵고 힘들다 해도 그 고운 웃음은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늘 웃음을 띠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순간 순간 띠워주는 웃음은 여전히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녀에게 그 웃음을 물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아이도 그렇게 고운 웃음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왜 그처럼 웃음을 간직하지 못하는가? 그처럼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어주지 못하는가? 그처럼 웃어 줄 수만 있다면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기쁘고 즐거울 텐데…….부끄럽다. 그 아이처럼 사람들을 대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부끄럽다. 그동안 미옥이의 웃음을 까마득 잊고 살았다. 그의 웃음을 진즉 생각해 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야 생각이 나는 것이다. 지난 휴일에 고향을 다녀오면서 박사고을 삼계 소재지의 탑정이 고개를 넘어오면서 그 제각집이 눈에 들어왔고 그 때에 문득 그 아이 생각이 난 것이다. 제각집에 살았으니 그리 넉넉하게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늘 웃음을 띠고 살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반가워하였다. 지금이야 제자들 머리만 쓰다듬어도 성추행으로 몰려 수난을 당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아이들과 친하게 잘 지내던 시대였다. 그는 내가 담임선생님도 아니었는데 아침에 출근을 하면 복도 끝에서 걸어오다가 '선생님!' 소리치며 달려와 덥석 내 품에 안기곤 하였다. 그 때에 그가 짓는 미소가 한없이 순진하고 예뻤다. 세월이 흘러 수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나와 만나고 헤어졌지만 그가 유독 오래 남아 있는 것은 그의 웃음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반가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누구를 대하든 그런 웃음으로 맞이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도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머리에 새치도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때의 웃음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웃음을 잃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세상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모나리자의 웃음은 저리 가라 할 그의 아름답던 웃음. 그가 어떻게 변하였든 그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수필가 이용만씨는'수필문학'과 '아동문학'(동화)으로 등단 했다. 현재 전주미산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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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9 23:02

상큼한 바람아 불어라

요즈음 이상기온으로 긴긴 땡볕과 일부 지역의 집중 폭우로 올여름은 불쾌지수를 더하여 잠을 설치게 한다. 여기에다 사초(史草)실종사건, 개성공단 협상 난항, 방학을 이용한 해양극기 훈련 받던 고교생 5명의 익사, 명 피디인 김종학씨 자살 사건 등등은 더욱 여름을 빨갛게 색칠했다. 이런 때 시원한 한 가닥 청량감을 주는 소식이 없나 몹시 기다려진다. 며칠 전, 어느 중앙지 얼굴화면에 4단 크기의 세상에 첫 선 보인 미래의 영국왕이라는 막 태어난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증손자 아기 사진이 실려 있었다. 아직 눈을 뜨지 않고도 앞으로 펼쳐질 영국은 환호를 보낼만한 아름다운 나라라고 확신한 걸까. 손뼉을 치듯 두 손을 벌리고 두 눈을 꼭 감고 강보에 싸여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입방아 대신 글방아로 사는 이들은 벌써부터 미래를 점치기에 분주했다. 물려받을 재산이 10억 달러이며, 왕위 서열이 3위이기에 2082년 쯤 되어야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명문학교에 보내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 100만 달러가 들어갈 거라고 미리 계산도 해본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건너온 소식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 올의 낭보로 들렸다. 기쁜 소식이 메말라 버린 우리생활에 한 바탕 쏟아지는 소나기는 못될지라도 스쳐지나가는 한 줄기 빗방울은 되었다. 친목 모임에서는 흔히 3가지 금기사항이 있다. 그중에 정치도 한 몫 차지한다.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하기에 누구나 관심이 많은 분야다. 다양한 얼굴 생김새처럼 생각이 모두 다르기에 섣불리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낼 때에는 큰소리가 오고가고 우정에 금이 가기에 십상(十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절실하고 중요하기에 관심 뒷전에 둘 수만은 없다.나는 가끔 감칠맛 나는 삶, 상큼한 생활은 없나하며 생각을 그려 보곤 한다. 국회의원은 몇몇 비례대표를 제외하곤 각 지역구에서 뽑은 국민의 대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에게 거는 우리들의 기대는 문서에 기록된 임무보다 더 높고 크다. 국민의 질 높은 삶, 행복문제 만큼은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밤새워 여야를 떠나 눈알에 핏발이 서도록 토론하는 문제 해결의 모습. 회기 중에는 자리를 꽉 채워 한 건이라도 국민 복리(福利)문제를 소홀이 다루지 않는 성실의 모습. 대외적으로 국익문제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내 집안의 문제인양 만사를 제치고 똘똘 뭉쳐 대처하는 의지의 한국인 모습. 당리당략보다 한 걸음 앞서 국민의 입장을 생각하는 큰 가슴의 모습. 국민의 혈세가 삐뚤어진 틈새로 새어 나가지 않나 지키는 파수꾼의 모습. 개천에서도 용이 예전처럼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는 젊은이들의 어려운 꿈을 접지 않도록 도와주는 용기의 모습. 국론 분쟁이 요동치고 휩싸여 국민들의 가슴이 콩닥콩닥할 때 초동(初動)에 불을 끄는 소방서 아저씨의 모습. 대통령을 국가 원수(元首)로 인정하고 통치하는데 밑받침을 튼튼히 해주는 한국인의 긍지 높은 수준의 모습. 틈나는 대로 서민의 아픈 삶의 현장을 돌며, 난제를 풀기위해 함께 고민하는 푸근한 인정의 모습.이런 모습의 정치인들이, 국회의원들이 그득한 살판나는 우리나라 모습을 그려보며, 손에 든 부채를 내려놓고 더위를 식히고자 한다.* 수필가 박종윤씨는 1993년 '수필문학'을 통해 등단, '제20회 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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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2 23:02

참 좋다. 그것이

나의 가슴에 오십대의 마지막 불이 꺼지는 여름이었다.감성이 메말라 비틀어 질 때마다 추억의 가방을 뒤적여 하나씩 깨물어보는 것이 여행이다. 그 날도 멀리 시골집을 예약하여 머물기로 했다.아직도 솥단지 걸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사는 동네.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보다 개가 더 많은 동네. 저녁 무렵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났다. 벽의 틈새를 타고 흐르는 매콤한 연기를 마시며 할머니는 우리에게 시골밥상을 차려주셨다. 손톱 사이로 김치물이 곱게 든 손으로 된장과 호박잎, 보랏빛 가지나물과 황석어 젓갈에 풋고추를 넣은 맛깔스런 밥상.시골의 아침은 햇살이 맑고 투명하여 온 세상이 은빛 꽃으로 활짝 피었다.사람과 기계의 소음을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요인들이 무엇이었을까? 그 사람만 없었으면 살 것 같고, 그 일만 없다면 어렵고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밀림의 왕 사자한테도 괴롭히는 적수가 있었다. 사자는 먹이를 먹으면 끝까지 먹어 위를 가득 채운다고 한다. 그리고 소화가 될 때까지 보름정도 깊은 잠에 빠진다. 과식을 하고 바로 눕게 되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화불량에 걸려 나중에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되지만 사자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 바로 똥파리가 사자의 귀, 다리, 배, 머리 등 여기저기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데 사자는 자면서도 본능적으로 온몸과 다리, 꼬리를 끊임없이 흔들다보면 저절로 운동이 되어, 만족스러운 소화까지 된다고 한다.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그들이 지금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다. 그들 덕분에 내 삶이 맑아지고 새 살이 찬다면 똥파리 같은 존재가 있어도 가슴 아파하지 말고 그들에게 다가서며 따뜻한 손길을 전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소명을 잊지 말고 기쁨을 전달해야한다.이번 여름은 생각 버리기 연습을 하며 살아야겠다. 정형화된 삶보다는 조금은 흐트러지고 약간 너트가 빠진 그런 날도 필요하다.특별한 날에 마시라고 rose sparkling wine(로제스파클링와인)을 선물로 주고 간 사람이 있었다. 탄산 같은 기포가 있었고 장미 빛깔 때문에 로즈라고 하는데 화이트 와인과 레드와인의 중간색이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여자들이 즐기기에 달콤한 맛과 향이 있어 아주 좋았다.시각적으로 환상적인 색상과 후각반응이 빠르게 다가와 여름철 모든 향기를 한 병에 담은 향기였다. 나의 똥파리는 누구였을까?여행은 그 사람을 변화 시키는 충만한 에너지가 있다. 일상적 생활에서 웃고 재미난 시간보다는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를 찾으려고 많은 사람들은 가방을 챙기고 있다.섶 다리가 있는 작은 마을, 고추 말리는 두 노인이 사는 방안에 들어가 눈을 감지 않아도 잘 수 있는 그런 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싶다. 자다가 창문에 스며든 별빛을 마시고 흠뻑 취해 옆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고 싶다. 오십대는 흔들리는 바람, 오십대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이기에 가장 아름다운 나이인지도 모른다. 오십대는 바라보는 것 마다 모두 아름답다. 불타오르는 오십대에 떠나자.여행은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주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없이 그리움으로 기다렸던 사람과 탁월한 이야기꾼이 아니어도 같이 떠나고 싶다. 똥파리도 같이 - 수필가 안영씨는 1997년 문예사조로 등단. 수필집 내안에 숨겨진 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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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26 23:02

습지 비오톱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스멀스멀 코를 간질인다. 그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습지에 다다른다. 굳이 향기가 아니더라도 싱그러운 숲이 보고 싶으면 나는 아무 때나 찾아가는 곳이 있다. 저리도 푸를까? 멀리서 가까이서 유월의 녹음을 보면 마음마저 풍성해진다.오늘은 다행히도 오전에 오게 되어 그 청초하고 단아한 수련(睡蓮)을 만날 수 있었다. 백의 수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벙긋하니 미소 짓고 있었다. 순백의 꽃잎 속에 노란 꽃술의 자태는 녹색 연잎에 살짝 가려져 수즙은 모습이다. 아침에 갓 세수한 열여섯 싱싱한 처녀의 얼굴이 이런 것일까.습지를 찾아갔을 때 수련이 피어 있으면 참으로 반갑다. 물 위에서 다소곳이 해를 바라보며 꽃잎이 열려 노란 속살까지 드러냄이 청순하며 고요하다. 로마 신화에서는 수련을 '물의 여신' 이라한다. 수련은 연못 한 가운데에 있어 더 이상 가까이 접근 할 수도 없고 그의 생이 사흘이라는데, 눈부신 여름에 찬란한 청춘의 한 생이다. 6~7월에 흰 꽃이 꽃대 끝에 한 송이씩 피는데, 오후부터 서서히 꽃잎이 접히면서 어두워질 무렵이면 입을 꼭 다문다. 그 주변에 노랑어리연꽃은 꽃도 잎도 작지만 작으면 작은 대로 그도 역시 수련과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매력이 있다.작년 이맘때는 가만가만 연못으로 다가가는데 푸드덕 소리가 나더니 웬 청둥오리가 날아오르고 그의 짝인 듯한 놈이 뒤따라 저 멀리 함께 날아갔었다. 청둥오리가 이 숲 속에 먹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연못을 헤집고 개구리며 올챙이들을 먹어치우고, 수련마저도 훼손시켜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목격하였는데 청둥오리를 못 오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연 생태계는 먹이사슬로도 훼손되고 있었다. 오늘도 오리가 다녀가지 않았는지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수련이 깨끗한 옷을 입은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완산칠봉 생태습지는 다섯 개의 연못이 층층으로 구성돼있어 참개구리, 청개구리, 무당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도룡뇽의 양서류가 서식하고, 올챙이가 떼 지어 고물거리고 뒷다리를 쑥 내민다. 지지난 해는 태풍의 피해를 비켜가지 못했다. 시민의 봉사로 잘 가꾸어진 연못이 토사로 뒤덮이고 연못의 둑이 무너져 내려 연못 속에 생태계가 망가지기도 했다. 자연이 심하게 훼손 되면 원상태로 복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습지를 찾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전의 질서 있던 습지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연못에 물이 가득 고이면 맹꽁이와 청개구리가 연못가에서 서사시를 읊조리는 곳이었다. 이곳 습지에 유치원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나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못을 가리키며 들여다보는 모습은 꽃보다도 더 예쁜 모습이다. 저만치 벤치에서는 젊은 남자가 않아 책을 보고, 운동기구도 있으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혼자라도 좋고 둘이라도 좋다. 여럿이면 어떠랴. 넉넉한 자연이 누군들 반기지 않겠는가. 이는 용머리고개의 명소이며 자연이 사람을 품어주고, 사람이 자연을 품으며 더불어 숨 쉬는 쉼터이다.녹음이 짙은 숲 사이의 완산칠봉 습지 비오톱, 청명한 하늘가에 조각구름 한 점이 연못으로 내려 오는듯하다. 연못을 하나 둘 세며 계단을 밟는다. 봄이면 올챙이와 개구리가 물장구치며 뻐꾸기가 노래를 한다. 여름밤이면 풋풋한 신록의 향기와 서늘한 습지기운이 어우러지는 곳, 그곳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청순한 수련과의 재회를 꿈꾸리라.-수필가 이금영씨는 2010년'수필과비평' 으로 등단. 전북문인협회·전북수필·영호남수필·행촌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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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19 23:02

한복을 다리며

밝은 진달래 빛 한복을 다렸다. 한복도 유행이 있다지만, 여전히 곱고 아름다운 빛깔이 유행쯤은 무색케 한다. 진분홍 겉감과 어우러진 연분홍 속감에 금박무늬가 곱다. 물을 뿌리고 가열된 다리미로 주름을 펴간다. 옷장 속에서 묵혔던 오랜 세월이 서서히 사라진다.새로 단 우유 빛 동전이 저고리의 매무새를 살려낸다. 긴 옷고름도 천천히 다렸다. 정갈한 한복의 맵시는 옷고름에서 마무리된다. 옷고름을 매 본지도 아슴푸레하다. 잠시 옷이 간직한 세월을 헤아려본다. 큰어머니 회갑 잔치 때 맞춰 입은 옷이다. 큰어머니는 이십이 년 전 팔순을 치루셨다. 그러니 옷 역시 스무고개를 넘겼건만 아직도 입고 나서기 손색없는 옷이다. 골 깊은 주름을 펴면서 오래전 그날을 떠올린다. 평생을 혼자 사신 큰어머니는 시집질녀와 친정질녀에게 같은 한복을 입혔다. 다행히 둘은 나이가 같아서일까 진달래 빛 한복이 잘 어울렸다. 그날 모인 축하객들이 딸이 둘이구나 짐작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남편과 함께 큰절을 올렸다. 옷이 주는 무게 탓이었을까! 절을 올리는 맘이 숙연했다. 우리부부가 먼저 큰절을 드리고, 친정질녀 부부가 절을 할 순서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그녀는 좋은 날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눈물범벅이 되어 큰절을 올리더니, 일어서지도 못한 채, 흐느끼더니 이내 통곡이 되었다. 잔치 분위기는 일순간 슬픔의 늪이 되어버렸다. 양가 친인척이야 눈물의 뜻을 이해하고도 남았지만, 축하객들은 그 순간 조금 어리둥절했으리라!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일이다.그녀는 학교를 나보다 한 해 먼저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취업문을 두드려야 했던 나와 달리,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는 여대생이었다. 꿈에라도 대학 정문을 한 번 밟아 보고 싶었던, 당시 내 처지로는 그녀의 생활은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주체할 수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내겐 겉돌기만 하던 큰어머니의 정을 한 아름 품고 자랐기 때문이었으리라. 큰어머니는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신혼의 달콤함도 모른 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식 한 명도 없이 평생을 한스럽게 사신 분이다. 다행히 곁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질녀를 위해 새벽밥을 지었고, 도시락을 쌌다. 시장을 갈 때도 목욕탕을 갈 때도 질녀와 함께했다. 주변에서 모녀지간으로 착각하기 마땅했다. 그녀가 성장하는 동안은 큰어머니에게는 모정의 싹을 가꾸는 살뜰한 세월이었다. 결혼해서도 출산까지 친정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자리에는 항상 서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의 살림을 거들면서 한동안 서울생활도 하셨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여자에게 목숨 같은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의 정을 알아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평생을 외롭게 살아 온 고모의 일생을 반추하면서 복받치는 설움을 가누지 못하고 만 것이다. 자매처럼 옷을 입었지만, 난 그녀를 달래거나 말릴 엄두도 못 내고 지켜만 봐야했다. 그날의 설움이 내 가슴에 맺혔을까, 옷은 한동안 장롱을 벗어나지 못했다. 옷을 장롱지기로 묵혀 두기는 고운물색이 눈에 아른거렸다. 가끔 이런저런 행사에 예복이 필요할 때면 그 한복을 꺼내 입었다. 매번 옷고름을 동이면서 발길 닿았던 곳 소식으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전해드린다. 그날 눈물을 참지 못했던 그녀는 고모의 설움을 삭혀드리지도 못한 채, 사십대 초반에 세상을 바쁘게 등지고 말았다.큰어머니는 딸로 의지하던 질녀를 가슴에 묻은 채 의연하게 삶을 가꾸며, 내게 남은 정을 쏟아 주신다. 오랫동안 화초를 가꾸던 화단을 없애고 만든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다듬어 놓고 가끔 나를 부르신다. 언제나 고운 한복 빛깔만큼 변함없는 큰어머니의 정이다.*수필가 황점숙씨는 2006년'좋은수필', 2013년 '문예연구'로 등단. (사)한국편지가족전북지회장·한글문해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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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12 23:02

얼음 한 봉지

앗 뜨거! 요리를 하다가 팔을 데었다. 늦잠을 자 급히 서둘다가 뜨거운 솥 가장자리에 팔이 살짝 닿았다. 약을 찾아 바를 겨를도 없이 겨우 늦지 않게 출근했다. 꽤 붉은 기운이 넓어지면서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물집은 잡히지 않았는데 몹시 쓰렸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거니 생각하며 견뎌보려 했다. 그러나 아픔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닌 성싶었다. 부딪치거나 긁혀 난 상처가 아니라 작지만 화상이 아닌가. 회사 근처 약국을 찾았다. 연고와 붕대를 사서 바르고 친친 감아야지.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약국 안은 한산했다. 판매대 뒤에서 연세가 좀 지긋한 남자분과 부인인 듯한 여인과 젊은 아낙이 마주앉아 있었다.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내고 차 한 잔 마시는 분위기였다.덴 팔을 보여 주니 약사는 냉동실에서 얼음 봉지를 꺼내 주었다. 화상을 입었을 때는 즉시 얼음으로 찜질을 해야 물집이 생기지 않고 빨리 낫는다면서. 얼음을 받아들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멈칫거리는 나를, 밝은 웃음으로 배웅했다. 멋쩍게 약국을 나왔다. 아침 볕이 유난히 포근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입시학원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공무원이나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로 다녔다. 학원에서는 수시로 단과반을 개설하고 그럴 듯한 명칭을 붙여 특강을 마련했다. 같은 과목인데 강사별로 몇 개씩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새로 개설한 강좌에 수강신청을 권장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업무였다. 얼음 한 봉지의 처방을 내린 약사처럼 쉬운 공부법을 가르쳐주거나 더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인가. 학원장의 속사정이 이해는 갔지만 난 도저히 적응이 안 되었다. 학원의 방침대로 학생들을 설득 권유하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그 길로 뛰쳐나와서 다른 일을 찾았다.책상 위에 수건을 깔고 얼음 봉지를 놓았다. 그 위에 덴 팔을 얹고 일을 시작했다. 얼음이 덴 부위를 달래는 동안 왠지 모를 뿌듯함이 전신으로 퍼졌다. 누구에게라도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저기 주유소 사거리 새로 생긴 약국 아세요?" 웬 얼음이냐고 묻는 직원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했다. "아, 거기 약국 참 친절해요." 메아리 같은 대답을 들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봉지 얼음이 완전히 녹을 때까지 팔에 찜질을 했다. 약사의 맑은 마음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화끈거리던 통증이 잦아들었다. 그 후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무슨 부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그 약국 아저씨의 맑은 표정을 떠올리곤 했다. 어느새 덴 부위는 붉은색이 사라지고 갈색의 가느다란 사선만 남았다. 머지않아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만, 그날의 감동은 오래도록 기억되리라.*시인이자 수필가인 박갑순씨는 1987년 '자유문학'(시), 2004년 '수필과비평'(수필)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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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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