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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주인… 스스로 건강한 삶 찾는다

한 대학병원 진료실 앞에 카메라가 설치됐다.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첫 환자는 31초, 그 다음엔 22초, 41초, 29초, 29초, 36초가 걸렸다. 평균 31초. 의사 출신인 송윤희 감독이 제작한 의료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의 한 장면이다. 감독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진단하고 병원의 불합리한 행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이처럼 의료 서비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놀라울 만큼 적다. 환자들이 아프면 달려가는 병원에서 말로만 듣던 '30초 진료'를 받는다. 그리고 환자들은 점점 불신을 갖는다. 환자와 병원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대안은 정말 없는 걸까. 전주 평화동에 위치한 무지개한의원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벽에 붙은 의료생협에 대한 안내문이다. 병원의 주인이 조합원과 환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글에는 환자의 알 권리, 진료 받을 권리, 개인 신상의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 등이 요약돼 있다. 전북의료생협에 유일하게 가입돼 있는 무지개한의원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는 병·의원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곳 조합원은 현재 780세대. 1~10만원까지 출자금을 내면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으며, 조합원은 물론 가족들도 혜택을 본다. 지금까지 조합원들이 출자한 돈은 1억9000여만원. 이곳은 외래환자 진료를 한다는 면에서는 일반 병원과 똑같다. 하지만 환자들이 병원 문턱이 낮다고 느낀다."다른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을 만나기도 어려운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요. 조합원이 된 뒤에는 아프지 않아도 병원에 가서 선생님과 상담을 할 수 있거든요. 내 병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니까. 그게 안되니까 병원 갈 때마다 의심이 드는데, 여기서는 그런 게 없어요." 4년 전 의료생협에 관심을 가지다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서정민(52·전주성심여고 교사)씨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가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병원이 가까이 있다는 게 정말 좋다"고 했다. '의료생협'은 지역 주민과 의료인이 힘을 모아 가족과 이웃의 의료와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소비자 협동조합이다. 주민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출자한 조합원 가족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건강모임'에 가깝다. 가장 큰 혜택은 믿고 이용할 수 있는 병원에서 진료받고 가족의 건강을 의논할 수 있다. 반면 조합원들의 돈으로 설립한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공동 소유하며, 대표기구를 통해 운영되므로 조합원이 적을 경우 부담이 클 수도 있다. 결국 협동조합에 대한 의사들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려놓을 '무기'는 환자가 우선되는 병원이고, '장애물'은 환자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걸 귀찮아 하는 의사들이다. 하지만 국내에 의료보험이 정착되면서 기득권이 어느 정도 보장된 의사들에게 그걸 버리고 나와 달라는 호소는 쉽게 통하질 않는다. 김길중 무지개한의원 원장(44)은 일본에 병·의원을 두 세개까지 갖고 있는 의료생협이 활성화된 것은 "건강보험제도가 정착되기 전부터 의료생협을 통해 환자가 주인되는 병원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가정의학과나 치과·한의원·검진센터 등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저소득층이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독거노인 등을 위한 방문 진료를 하면서 예방 보건·건강 소모임 운영하는 일도 의사들에겐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겠으나, 환자와 의사와의 피드백이 바로바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것은 가장 큰 난관. 신뢰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한 의료인의 권위를 반박하는 이견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걸 알면서도 2004년부터 전북의료생협 발족이 논의됐다. 무지개한의원은 1년 전부터 의료생협에 실천하고 있는 곳이다.처음엔 알음알음 알고 김 원장의 뜻에 동조해주던 의사들이 많았으나, 1년도 되지 않아 조합원들의 부담이 커지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돌아서며 떠났다. 현재 의료생협에 가입된 병원은 1곳에 불과할 만큼 초라한 성적표를 내놓고 있으나, 여전히 여기에 희망의 끈을 걸고 있는 이들이 많다.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로세토 마을의 예를 들고 싶네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었는데, 희한하리 만큼 심장병에 걸린 사람들의 비율이 인접한 동네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그 원인을 찾았죠. 이유는 놀랍게도 마을 공동체의 힘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곳에 산업시설이 들어오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심장병 유병률이 다른 지역과 같아졌습니다. 공동체가 깨진 거죠. 의료생협은 병원을 주민들의 품에 돌려주면서 연대감을 높여주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의료생협이 주목하는 것은 병원 운영만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스스로 실천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의료생협은 주민들이 힘을 모아 건강한 마을을 가꿔가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건강한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잘 키운 예술이 '황금알' 낳는다

문화를 모르면 경제도 모르는 시대가 됐다. 오늘날 뉴욕이 결코 돈이 많아서 파리런던도쿄를 밀어 제친 것이 아니다. 뉴욕의 문화가 뉴욕의 경제를 만들었고, 그 경제가 다시 문화를 살찌우고 있다. 먹고 살기도 팍팍해서 뉴욕 갈 일도 없는데, 갑작스레 웬 맨하탄 타령이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하지만 '더' 길게 '잘' 먹고 살려면 문화와 경제의 숨바꼭질을 잘 이해해야 하는 법. 이전엔 경제적 능력이 문화적 능력을 좌우했던 시대라면, 앞으로는 문화적 능력이 경제적 능력을 더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문화 경제학'은 우리의 문화를 경제 마인드로 무장시키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미국 뉴욕의 예술은 부자동네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문화가 경제 덕분에 먹고 살던 시절이다. 그러나 맨하튼 남쪽 소호로 내려가면서 달라졌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잘것 없는 공장지대였다. 싸고 넓은 작업장이 필요했던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둘 이곳의 건물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소나벤드 갤러리를 시작으로 많은 갤러리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여기엔 갤러리를 더 극적으로 세속과 고립시켜서 예술의 상품가치를 더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소호는 1990년대 중반까지 황폐하고 어두운 우범지대였던 첼시가 나타나기 전까지 미국 현대예술,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첼시의 갤러리는 상업적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세상과 격리된 채 예술 자체를 추구하는 듯한 분위기로 오히려 관람객들이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호와 첼시의 역사는 돈과 예술, 경제와 문화 사이에 뒤엉킨 또 다른 단면이다.미국 뉴요커들이 브로드웨이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곳이 센트럴파크 링컨센터다.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뉴욕필하모닉, 뉴욕시립발레단, 뉴욕시립오페라단이 한데 모여 있는 뉴욕 공연의 심장부. 그러나 이들은 공연을 통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극대화시켰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이하 메트)에 가보면 같은 시각에 메트의 공연을 생중계로 볼 수 있다. 기업 후원으로 TV로만 광고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메트는 맨해튼 지하철역과 버스, 전화부스, 가로등까지 나가서 오페라 광고를 한다. 이렇게 오페라를 광고해도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뉴욕은 11월부터 12월까지 '호두 까는 인형의 도시'가 된다. 뉴욕시립발레단의 '호두 까기 인형'덕분이다. 뉴욕시립발레단의 홈페이지나 팸플릿에 안내된 요금표를 보면, 이들의 공연 마인드가 얼마나 경제적 마인드로 무장됐는지 알 수 있다. 개인 관객이 살 수 있는 공식적인 티켓 요금만 24가지 이상이다. 요일에 따라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라임피크'(주말 낮 공연), 평일에도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날에는 '스탠더드', 덜 선호하는 평일엔 '오프피크'(금요일 제외) 등으로 티켓 가격이 달라진다. 좌석열에 따라서도 차별화된다. 우리나라가 청소년이나 국가 유공자, 장애인 등에 대한 할인 혜택을 주는 것 외에 VIP석R석A석B석 등 다섯 종류의 티켓만 파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이렇게 뉴욕의 예술과 문화는 철저하게 경제적 마인드로 무장돼 있다. 상업화 돼 돈만 밝히는 예술로 전락돼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시장의 외면을 받는 예술이 지치지 않고 성장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경제학'에서는 이렇듯 지역의 문화 현장을 경제 마인드로 풀어내고자 한다. 전북도립미술관의 세계미술거장전'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와 같은 대형 이벤트의 경제 효과, 쉴새없이 올라가는 크고 작은 공연의 제작비, 다들 알고 싶어 하는 미술작가들의 작품 거래가, 부르는 게 가격인 클래식 악기 구입비, 살림 빠듯한 독립영화 제작비 등의 이면을 경제적인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예술의 출발은 돈이지만, 예술은 마이더스 손처럼 경제를 만든다. 예술와 문화를 얼마나 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대가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전북은 앞으로 먹고 살 게 문화밖엔 없다'는 푸념이 희망이냐 절망이냐로 판가름나는 데에는 문화를 경제로 풀어낼 줄 아는 전략적 마인드에 따라 달렸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에코에듀센터 아낌없는 관심과 지원을

진안군의 가장 큰 현안은 아토피 치유의 핵심 프레임인 에코에듀센터 운영의 활성화다.아토피 프리 클러스터 조성사업의 기반이 되는 에코에듀센터가 잘되어야만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아토피 프리 진안'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어서다.실제 에코에듀센터 운영이 잘되면 아토피 클러스터 사업과 아토피 세계 엑스포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환경부로부터 받아놓은 상황이다.이 두 사업을 통해 군은 의료(힐링)관광객을 유치하고 유동인구를 늘려 지역경제에 활역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하지만 환경부 등은 시기적으로 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기존 관련시설 등의 운영 성과를 본 뒤 국민적 여론을 수렴해 추진하겠다는 것이 중앙부처의 입장이다.따라서 군은 올 한해 아토피 안심학교와 에코에듀센터 운영 활성화에 집중하면서 아토피 프리 클러스터와 아토피 세계 엑스포의 타당성, 당위성 확보에 주력할 복안이다.이를 통해 아토피를 완화·치유할 수 있는 진안군 환경의 적정성과 진안군만의 경쟁력, 균형발전 관점에서 지역경제의 파급효과 등 정책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벌일 방침이다.한편 군은 진안을 '아토피 케어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 문화일반
  • 이재문
  • 2013.01.02 23:02

소설 당선작 - 못, 강성훈

망치를 든다. 팔과 손등에 툭 튀어나온 검푸른 핏줄이 잊히지 않는 과거처럼 꿈틀거린다.묵직한 절망의 무게를 느낀다. 페트병 허리 부분을 잘라 만든 못통을 들어 거의 코에 박다시피 들여다본다. 별반 차이점이 없는데도 콘크리트 못을 신중하게 고른다. 까마귀의 부리처럼 뾰족한 니퍼로 못 몸통을 꽉 잡고 벽에 댄다. 사정없이, 그렇지만 펑퍼짐한 못대가리를 정확히 때린다. 탁, 탁, 탁, 나는 이 소리에 점령당했다. 뭔가를 뚫고 지나가는 이 소리, 이 울림. 지독히 쓰디쓴 인생 맛이 나듯. 온몸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카페인이 필요하다. 어떤 수단, 또는 어떤 주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사건에 대해 감상 후기 같은 말을 떠벌리거나, 또는 알아듣기 쉽게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반적으로 '죄'라고 불리는 그 사건을 나는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아직 모른다.첫 망치질, 정중앙으로 힘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으면 못이 흔들리게 되고 못이 뚫고 들어간 구멍이 커진다. 그러면 망치질을 할 때마다 구멍 주위의 콘크리트가 떨어져나가 못을 지지하지 못해 아예 박지 못하거나 박더라도 아무 것도 걸 수 없게 된다.다시 망치를 휘두른다. 틱, 빗맞아 불똥이 튀며 못이 누워버린다. 망치에서 전해진 진동이 두꺼워진 팔뚝을 타고와 가슴께 먹먹하게 머문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가 보낸 신호를 몸이 곧바로 받아들여 실행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금방 지친다. 조율되지 않은 바이올린처럼 머리가 아프다. 오래된 전구가 깜빡이는 것처럼 끊겼다 연결되는, 그러나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한 없이 늘어나 점점 멀어지는 느낌. 도대체 어디에서 멀어지는 것일까?뜬금없이 예수가 목수였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유다가 떠오른다. 유다는 과연 배신자였을까? 그도 계획의 일부였다. 배신자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인물이다. 유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이건 무슨 논린가! 유다는 살인자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방금 전, 잠시지만,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 예전에 아이가 교회를 갔다 와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예수님을 왜 죽였어?"죽었어가 아니라 왜 죽였냐고 물었다. 나는 일반적인 답 정도는 알기에 말해줬다."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그래서 죽인 거야?"어감이 이상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놀란 듯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나는 아이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죽음이 죄를 사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믿지 않는다. 죽음은 그냥 죽음이다. 그냥 없어짐의 다른 표현이다. 죽음이 심각하고 거창하고 끈질긴 이유는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은 자들을 잊지 못하고 끝없이 불러내기 때문이다. 거의 울상이었던 아이는 갑자기 아이들이 가지는 특유의 조울증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말했다. "뭐, 상관없어!"뭐가? 나는 당황했다. 뭐가 상관없는 건가? 순수한, 지독히 순수한 아이는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알아 챈 것일까? 순수는 과연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이곳에 이미 만들어 놓은 하얀색 페인트칠을 한 선반을 걸 것이다. 선반 위에는 내가 줄을 쳐가며 두 번 이상 읽은, 그래서 새로운 느낌이 없는 전공서나 실용서 따위의 책을 올려놓을 것이다. 벌써 먼저 읽어야 할 우선순위를 정해놓았다. 모든 것이 다 계획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계획 속에서만 숨을 쉰다. 계획을 다 마치면, 아니 마치기도 전에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나에게 인생은 연속적인 어떤 흐름이 아니다. 이제 축적이다. 절단면이 분명한 싸임. 어느 순간 끊겨도, 아니 순간 순간 끊어져 있다. 나는 그렇게 다시, 재빨리 방금 전의 인생 위에 뭔가를 쌓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순간 순간 나는 죽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숨을 쉬기 위해 계획이란 도구로 강렬하게 가슴을 펌프질 한다. 선반을 다 만든 후에는 바퀴가 달린 나의 새로운 다리가 자유로울 정도로 넓고 높은 책상을 만들 것이고 오랫동안 팔꿈치를 대고 무언가를 쓸 것이다. 니퍼를 잡고 있는 왼손에 닿은 벽이 차갑다. 지저분하게 뚫린 구멍 바로 옆에 못을 다시 박는다. 못이 서서히 차가움을 뚫는다. 못대가리가 몇 번의 망치질로 순식간에 뜨거워진다. 전기 드릴로 나사못을 박아 가구를 만들면 쉽다고 들었지만 무슨 고집인지 나는 망치로 못을 박는다. 나무에 컴퓨터용 흑색 수성 사인펜으로 못이 들어갈 곳에 작은 점을 찍고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점이 멀어지며 소실점으로 변한다. 곧 점은 춤을 추듯 도망친다. 나는 나비를 쫓아 포충망을 휘두르듯 망치를 휘두른다. 못이 정확히 원하는 곳에 박히자 당혹스러울 정도로 흡족한 마음이 감각도 없는 다리에서부터 차오르는 듯하다. 어둠이 집 안으로 스민다. 나는 곧바로 망치질을 멈춘다. 서둘러 손에 들려있는 연장을 내려놓는다. 가슴이 심하게 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목을 비틀듯 살짝 비틀었다가 놓는다. 벌써 밤. 항상 밤. 밤에 형광등 아래에서 하는 망치질은 뚫을 수 없는 두꺼운 철판에 못으로 스크래치를 하는 소리 같다. 귀를 막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이건 공포처럼 내부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다. 같은 종류의, 같은 동족의 살갗에 박는 소리, 그래서 비명. 진정한 살인 같은 느낌. 그건 불쾌하고 두려운 느낌인데,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어떤 깨달음 같기도 한데 알 수 없다. 단순히, 절대로 표면을 긁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살을 벗겨내고 뼛속까지 긁어내도 뭔가가, 아니 모든 것이 다 남아있다는 느낌!나는 어둠을 뚫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몇 번을 빤 후 계속해서 먼 어딘가로 모스부호를 보내듯 라이터를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멀리 어딘가 있을 무언가를 찾듯 밖을 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불이 켜진 가로등 바로 밑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의 가는 비다. 비는 마치 아래서 위로 솟구치는 듯 보인다. 비가 온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마치 없던 냄새가 고인 듯 아래에서 확 피어올라온다. 좌절된 욕망에 젖은 한 인간이 뿜어내는 지독한 냄새.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빈 공간은 항상 요란하다. 나는 그것을 잠시 느낄 뿐이다. 지난 달 나는 집 벽에 붙어있는 모든 것을 다 철거했다. 처음에는 버릴 것을 골라내느라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곧 골라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버렸다. 아내와 아이의 물건은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아주 작은 것, 아이가 가지고 놀던 팔이 떨어진 인형, 진작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인형을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자 신기하게도 그 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새로운 가구를 사려고 인터넷을 뒤지고 가구점에도 가봤지만 변한 내 높이에 맞는 가구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모든 가구를 만들기로 했다. 이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끝이기도 하다. 이 느낌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가구를? 마치 우주인이 되는 것과 비슷한. 슈퍼맨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의사는 나에게 다시는 걷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시작이고 끝이라고, 나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다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는 눈물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슬픔을 믿지 않는다. 몇 주 전에 못을 검지와 엄지로 잡고 있다가 망치로 잘못 휘둘러 손가락을 내리 찍어 눈물을 흘리면 어쩌나 싶어 곧바로 철물점에 전화를 해 니퍼를 배달시켰다. 철물점 주인은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봉으로 생각하는지 아주 친절하다. 그건 맞다. 나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이나 두드렸지 책상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다. 나는 철물점 주인장이 추천해 주는 대로 연장을 다 샀다. "니퍼 말고 못을 잡는 도구가 따로 있는데요."이번에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모두 계획된 운명의 일부 같다. 그날 내가 과속으로 차를 몰게 된 것도 계획된 것이기에 나는 천천히 차를 몰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자유롭다. 믿지도 않는 신을 찬양하러 아내를 따라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된다. 전에 만난 적이 없거나, 안면이 있더라도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는 교인이 마치 십년지기 친구처럼 살갑게 굴어도 어색하게 웃지 않아도 된다. 남편의 의무도 아빠의 사랑도 강요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만든 계획 속에서 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듯 창밖의 풍경을 본다. 모든 시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뭇잎의 녹색이 창백하게 질리듯 짙어졌다. 추웠다가 바로 여름이다. 몇 주째 맑은 날이다. 하늘은 유난히 투명하다. 햇볕은 유리조각처럼 날카롭다. 뉴스에서는 가뭄이라고 난리다. 마당에는 어머니가 뽑아놓아 한쪽에 수북이 쌓아 놓은 풀들이 태양열에 축 늘어져 말라가고 있다. 이번 여름은 길 것이 분명하다. 밑에 깔린 풀들은 흐물흐물 검게 녹아내리고 있다. 불현듯 무덤이 떠오른다. 아무리 말려도 아이는 마당에서 흙을 가지고 놀았다. 비가 온 후 흙탕물이 되었을 때를 가장 좋아했다. 내가 아이와 만들어 놓은 모래성은 진작 무너졌고 그 위에 꽂아둔 정체를 알길 없는 슈퍼 영웅의 상징이 그려진 깃발도 사라졌다. 영웅의 깃발 가운데에는 S자 대신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마치 나에게 알려주게 되어서 기쁘다는 듯 들떠서 말했다. "예수님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잖아. 불사신이야."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의 일이니, 벌써 오년을 훌쩍 지난 일인데 이제야 또렷하게 떠오른다. 어디로 갔을까? 슈퍼 영웅의 깃발은. 담벼락 밖의 가로등이 켜져 있다. 시간을 확연히 느낄 때는 어둠 속에 모든 것이 가라앉아 있을 때뿐이다. 빛은 보이는 것, 보여야 마땅한 것을 들어내고, 어둠은 보이지 않는 것, 보일 수 없는 모든 것을 은밀히 투사한다.부엌으로 가자 어머니가 식탁에 저녁 식사를 차리고 있다. 나는 최대한 소식을 한다. 똥이 나올 때마다, 언제 똥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똥이 나올 때마다 곤욕이다. 언제나 그렇듯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거리는 나를 어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힐긋힐긋 본다. 그렇지만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듯, 그러니까 내가 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식으로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친다. 더 잘 보인다. 왜 그럴까? 왜 부모는 자신이 자식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안달하는 것일까! 나는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시골집으로 돌아가세요.""아야, 그래도 내가 옆에서 돌봐줘야지. 몸도 성치 않은데."몸도, 라는 말이 나를 고약하게 만든다. 몸 말고 또 무엇이 성하지 않은데! 나는 다시 극도로 정중하게 다시 말한다. 뱉어진 말들이 쩍쩍 갈라지듯 더욱 건조한 말투로.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당황하더니 울상으로 변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그래야 부모라는 듯이. 그런데 무엇을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무심히 밥상 위에 놓인 갈치구이를 쓱 민다. 나는 녹색 시금치 무침을 젓가락으로 집는다. 부모가 되어보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럴 여유가 없다. 내 문제만으로도 벅차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내 아이가 나를 이렇게 대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건 모든 부모의 운명이다. 그리고 모든 자식의 운명이기도 하다. 유전자처럼 계획된 무엇. 그런데 나에게는 이제 그런 운명도 허락되지 않는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싶지 않아 밥알을 튀기며 깔깔깔 웃는다. 어머니는 커진 눈으로, 마치 정지화면처럼 나를 본다.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다가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린다. 나는 그때서야 텔레비전이 켜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볼륨을 높인다. 그러다 느닷없이 혼잣말이라도 하듯 말을 뱉어낸다. "저 미친놈! 왜 저런 다냐?"나는 어머니를 가만히 본다. 어머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한다. "말세야. 말세. 저 미친놈을 봐라.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냐? 천벌을 받지! 쯧쯧쯧." 나는 여전히 어머니를 가만히 본다. 어머니는 황급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린다.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끄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힘껏 몇 번 빤 후에 라이터를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작은 방의 열린 문을 통해 어머니가 나를 몰래몰래 훔쳐본다. 그러더니 짐을 싸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 한밤중에 시골로 내려갈 갈 것도 아니면서 주섬주섬 자신의 물건을 챙긴다. 엄마를 향해 담배연기를 트럼펫을 불듯 길게 뿜어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나도 내가 왜 미쳤는지 알 수 없다. 알람을 맞춰놓고 힘들게 침대에 눕는다. 스탠드를 밤새 켜 놓는다. 어둠이 무서운 것은 아니다. 어둠의 눅눅함, 또는 무게감이 싫다. 나는 여전히 어둠을 뚫을 방법을 찾는다. 나에게 어둠이 무슨 의미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항상 결론은 어둠을 뚫고 빛을 찾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더 깊은 어둠, 어둠의 핵심을 보려는 행위일 수도 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리며 잠에서 깬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맞춰놓은 알람시간보다 30분 일찍 눈을 떴다. 어머니는 아침밥상을 느릿느릿 차리고 있다. 나는 거실에 나와 그 모습을 지켜본다. 조금 후 어머니는 힘없는 모습으로 가방을 들고 주저주저 한다. 어머니는 짧게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리고 집을 나선다. 나는 그냥 어머니를 조각상처럼 바라본다. 조각상이 움직이네, 하고. 어제 꿈에서 아내가 나타났다. 아내는 인상파 그림처럼 보였다. 점으로 보이기도 하고, 뭉개진 선과 덕지덕지 칠해진 물감의 덩어리로 보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상상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내는 없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그것을 확실히 인지했다. 그러니까 꿈속에서 내가 아내를 보는 것은 꿈을 꾸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그들이 나타난다면, 그리고 나에게 따져 묻는다면 나는 겁을 집어먹고 안방으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글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렇듯이 나는 대답할 어떤 말도 준비하지 못했다. 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게 다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입술을 달싹거린다. 마치 주술을 외우듯. 아내와 나는 자주 싸웠다. 특별한 사건 없이 사소한 것으로 싸웠고, 이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다른 부부도 그렇기에 위안이 되었다. 그러다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싸움은 천천히 줄었고, 그것은 서로에 대한 인정이라고 치부했지만 사실 무관심이었다. 싸움이 좋은 건지, 무관심이 좋은 건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러다 아들을 낳았고, 아들에 대해서만은 진지하게 서로의 의견을 묻고 고민했다. 어떤 아이로 키울지에 대해. 마치 우리가 선택한 대로 곧 아이의 미래가 될 거라는 듯이. 아이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했지? 잠시 동안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부자다. 보험금이 많이 나왔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내가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받았다. 어느 날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와 생명보험에 들게 했다. 나는 거들먹거리며 아내와 나, 두 사람의 생명보험을 들었다. 그런데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도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른다. 빌어먹을! 누군가 나를 의심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할 부분이 있었지만, 의심까지 갈 정도의 무엇이 없었다.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가장,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직장, 그리고 가정적인 아내, 토끼 같은 아이. 무엇보다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눈치는 빨라 주위 사람들에게 온화하게 비쳤다. 그리고 타고난 재능처럼 항상 모든 문제에 좋은 변명거리를 갖고 있었다. 나는 요즘 사람들에게 슬프다고 말하거나 그냥 입을 다문다. 내일부터는 책상을 만들 것이다. 밤새 도안을 그릴 것이다. '그럴 것이다.' 왜 나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가 있는 것일까?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 내 몸은 텅 비어있다. 직장 동료이면서 친구인 상철이 찾아왔다. 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내 다리를 본다. 병원에도 몇 번 왔기에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닐 텐데, 환자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으니 이제야 실감이 나는 듯한 표정이다. 그는 거실과 열린 방으로까지 길게 들어찬 목재, 그리고 날카로운 온갖 목공도구들을 바라보며 미심쩍게 뭐하냐고 묻는다. "책상을 만들어.""왜?"그는 왜라고 묻자마자 다른 사람들처럼 빠르게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르던 늦던 하나같이 똑같은 방식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마음먹기에 달렸지."그리고 덧붙인다. 집을 고치는 행위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가까운 누군가를 잃으면 집을 고치는 행위를 통해 다시 온전히 되기를 바란다고, 그런 희망의 표현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반복적으로 짧게 고갯짓까지 한다. "이제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뭐가? 나는 아무 말 없이 친구를 위해 원두커피를 갈고 칼리타 드리퍼에 여과지를 얹고 원두를 담아 뜨거운 물을 쪼르르 떨어트려 커피를 내린다. 상철은 드립포트를 빙글빙글 돌리며 가는 물줄기를 흘러내리는 나를 신중하게 관찰한다. 상철과 나는 같이 입사했고 성격도 비슷했고 업무 스타일도 비슷했다. 친구이면서 경쟁자였다. 같이 진급을 했다. 대리를 단 후에 내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것이 유일한 취미였고, 유일한 인생이었고, 유일한 성취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일요일 밤이면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천정의 사방무늬만 밤이 지나 날이 밝도록 보고 있었다.어느 날 머리가 아파오더니, 온몸이 뜨거워졌고, 목구멍이 부었고, 겨드랑이 어디쯤에 통증이 생겼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두근거렸다. 약간의 공포와 함께.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아이를 위해 강남은 못가도 잠실 쪽으로 이사를 가자고! 우리도 이제 아파트에서 살 때가 되지 않았냐고!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그러자고 말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날 밤, 나는 옆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피곤해. 요즘 이상하게 피곤해."아내는 내가 누워있는 반대쪽, 격자무늬가 새겨진 흰색 장롱 쪽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빨리 자. 나도 피곤해."나는 다시 아내의 등에 대고 말했다. "정말이야.""나도 그래."아내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의 귀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무서워!"아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말했다. "정말 왜 그래? 나도 피곤해 죽겠어."나는 아내가 잠들 때까지 가만히 옆에 방전된 장난감처럼 누워있었다. 곧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의 방으로 갔다. 아이는 CF광고 속 행복한 아이처럼 자고 있었다. 하얗고 통통한 발이 이불 사이로 비쭉 나와 있었다. 나는 아이의 발을 살짝 쥐었다. 따뜻했다. 이렇게 1mm도 떨어져 있지 않고 붙어있는데, 왜 계속 간절해지고 애원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이 아이를 소유했지만 소유한 것이 아니었다. 이 간격이, 모든 관계에서 이 간격이 나를 미치게 했다. 나는 다시 발을 살며시 쥐었다. 마치 작은 동물을 쥐고 있는 듯 했다. 손아귀에 쥐고 힘을 주면 쉽게 내장이 터지는 연약한 동물을. 상철은 여전히 내 다리를 힐끔힐끔 본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상철은 커피를 홀짝이는 내 모습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커피에서 지푸라기 맛이 느껴져 각설탕 두 개를 넣고 소라모양으로 빠르게 휘젓는다. 마셔보고 여전히 지푸라기 맛이 느껴져 각설탕을 두 개를 더 넣고 더 빠르게 휘젓는다. 또 마셔보고 각설탕 넣고 휘젓는다. 그런 나를 상철은 놀란 듯 바라보다 회사 일을 꺼낸다. "김 부장, 생각해보면 불쌍해! 완전 폭탄이었잖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고. 그런데 막상 죽고 나니까 섭섭하더라고. 막 무시했던 게 떠오르기도 하고."나는 상철의 말을 끊고 다짐하듯 말한다. "책상을 다 만들면 앉아서 뭔가를 쓸 거야."상철은 다시 나를 뚫어지게 본다. 조금 우물쭈물하더니 묻는다. "혹시 유서를 쓰려는 것은 아니지. 하하하."마치 농담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리고 급하게 미소를 짓는다. 아, 자살. 내가 죽을 수 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내가 자살을 해도 이상하지 않구나. 나는 웃는 상철의 면상에 침을 뱉고 싶어진다. 나는 상철의 말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제길, 지금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안했다. 삶과 죽음 자체가 증발한 상태, 사방에 붙잡을 것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죽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났다. 사고 이후에 죽고 싶은 적이 없으므로 틀린 표현이지만, 그렇게 느낀다.나는 비명을 지른다. "내가 왜 죽어." 놀란 상철의 눈이 커지고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입을 쩍 벌린다. 그 순간 나는 똥을 지린다. 냄새로 알 수 있다. 상철은 커피를 마시지도 않고 잔 테두리만 바라보다 마치 기차나 버스를 탈 시간이 되었다는 듯 바쁘게 일어난다."미안해. 이제 가봐야겠다."젠장. 뭐가 미안하단 말인가!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지 않아도 불쌍한 놈인데, 이제 미친놈까지 되었다. 절망은 그냥 절망이다. 다른 무엇이 아닌데 사람들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절망은 무엇이 되어 버린다. 주위의 편견으로 더 삐뚤어지는 양아치처럼 절망은 나에게 침을 퉤퉤 뱉어댄다. 나는 아무 것도 저지할 수 없다.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에게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불쌍한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들을 저주한다. 내 절망을 그들이 빼앗아 갔다. 나는 팔 힘으로 간신히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에 눕는다. 추리닝과 팬티, 그리고 기저귀를 벗는다. 고개를 사타구니 사이에 처박고 있는 쭈그러진 성기를 손으로 잡아들어 물끄러미 본다. 나는 옆구리 밑쪽에 달린 반투명 비닐봉지 같은 플라스틱 오줌통을 툭툭 건드린다.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아 찔끔찔끔 새어나오는 오줌은 샛노랗다. 점점 우울처럼 묵직해진다. 아직 교체할 때가 되지 않았다.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는다. 버릇처럼 벗은 기저귀에 코를 갖다 댄다. 냄새가 삶처럼 지독하다. 새 기저귀로 갈아입고 똥이 묻은 기저귀는 엉덩이를 닦은 물티슈와 함께 꽁꽁 싸매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나는 힘겹게 휠체어에 앉아 다시 망치를 든다. 힘껏 내려친다. 그 순간 경련이 온다. 망치가 니퍼를 잡고 있는 엄지손톱을 내리친다. 악, 저절로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나는 두 눈을 급히 감는다. 절제. 아니 무감각.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손바닥에 못이 박힐 때 예수는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해, 인간처럼 처량하게 울리 없다는 전제로 처음부터 기록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신일지도 모른다. 눈물이 없는. 심판을 내릴 때도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속삭이는 나지막한 신의 분노처럼, 나는 눈물이 아니라 분노가 치민다. 분홍빛으로 상기된 손톱이 차츰 검붉게 변한다.텔레비전을 튼다.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린다. 액션 영화가 방영되고 있다. 텔레비전 볼륨을 방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높인다. 주인공은 빗발치는 총알을 다 피하고 테러리스트를 다 죽인다. 그 와중에 가슴에 폭탄을 단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의 동료를 야비한 표정을 지으며 뒤에서 안는다. 그리고 터진다. 주인공은 동료를 잃고 오열한다. 주인공은 테러리스틀 수십 명을 죽였고, 자신의 동료는 한 명 죽었다. 그래도 주인공은 오열하고 죽은 테러리스트들은 말이 없다. 갑자기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아, 뭐지.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갑자기, 아니 예전부터 그래야만 했다는 듯이, 눈을 한번 끔뻑일 때마다 상해 녹아내린 양파처럼 지저분하게 눈물을 질질 짠다. 괜히 검게 변한 엄지손톱을 노려본다. 입을 다물 수 없어 턱주가리가 아프다. 주인공의 죽은 동료가 불쌍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주인공의 눈물에 동요돼서 흘리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와 무관한, 동정의 가치가 없는 테러리스트의 슬픔이 내 몸속을 파고든다. 나는 뭔가를 설명하려하지만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눈물을 멈출 수 없다. 테러리스트의 가슴에 단 폭탄이 터질 때의 찢어지는 가슴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도무지 아무것도 참을 수 없다. 설계도를 따라 그대로 만들었는데도 책상 다리가 부실하다. 팔꿈치로 몸무게를 실을 때마다 책상 어디선가 신음처럼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책상 다리 사이에 각목을 X자로 덧대어 못을 박는다. 다행히 불길한 삐걱거림은 사라진다. 상체를 기대어 뭔가를 쓰기에는 충분해졌다. 널찍한 책상. 휠체어를 앞뒤로 넣고 빼고 하는 책상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빙글 돌아도 거치적거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책상. 나는 내가 획득한 이 작은 자유에 미소를 짓는다. 아니다. 목이 멘다. 어제 이후로 나는 내가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글의 독자는 따로 없다.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이야기가 되려면 누군가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읽은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빼앗아 갈 것이다. 그들은 나를 살인자라고 부를 것이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친정에 갔다. 장인어른은 나에게 이사 갈 잠실 아파트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주변 상권은 괜찮은지, 재개발은 되는 곳인지, 얼마나 오를 것인지 상세히 물었다. 나는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대답했다. 자동인형! 그렇게 이런 일은 버튼을 누르면 튀어나오듯 생각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었다. 장인어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척 했고, 아내는 뭐가 자랑스러운지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미소를 입에 걸쳤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관령을 넘을 때였다. 아이는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난 도로 탓에 멀미가 난다고 운전석 뒤를 신발로 툭툭 쳐댔다. 아내는 여전히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내가 왜 미소를 멈출 수 없는지 깨달았다. 아내는 장인어른에게 인정받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아이에게 인정받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나는?아이는 뒷좌석에 뜨거운 열기에 늘어진 고무처럼 앉아 스마트폰으로 오락을 하는지 효과음이 들렸다. 핑. 퐁. 악. 그리고 다시 핑. 퐁. 악, 또는 윽. 가끔은 꽥. 아내는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나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그냥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더 멀미가 날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정신은 멀쩡했다.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핸들을 꺾지도 않았다. 정신이 멀쩡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반응해야할 위험 신호를 무시할 만큼의 의지를 가지고, 또는 이성적인 판단을 가지고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감정보다 이성이 더 무섭고 고약하고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는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늙은 여자 간호사가 득달같이 달려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내 다리가 마비되었다는 것을 알려줬다. 나는 다리를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하얀 붕대와 하얀 석고로 고정된 다리가 성난 이빨이 되어 땅을 물고 있는 듯 보였다. 오기로라도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아내와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어머니가 눈물바람으로 알려줬다. 아마도 내가 충격을 받을 것을 염려해서 늦게 알려줬을 거라 추측했다. 그냥 그랬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단 한 번도 아이와 아내에 대해 입에 올리지 않았다.차는 가드레일을 뚫고 10미터 쯤 되는 높이에서 떨어졌다. 차는 뒤집혀 떨어져 천정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나는 처음 가드레일을 받을 때 앞 유리창을 뚫고 튕겨져 나갔다. 아내와 아들은 모두 차 안에 있었다. 그렇게 들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나는 살았다. 깨고 나서 몇 주 후 타는 듯한, 쥐어짜는 듯한, 똑 쏘는 듯한 통증이 똥구멍 주위로 나선형으로 퍼졌다. 나는 다급하게 의사를 찾았는데, 나타난 의사는 내 희망을 일찍부터 파괴하는 것이 좋다는 듯 그건 환상통증입니다, 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몇 가지 약을 처방해줬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 인터넷으로 약 성분을 찾아봤다. 통증이 있는데 의사는 진통소염제 같은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항우울제를 처방해줬다. 나는 침대에 누워 발광하듯 의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미쳤어. 말해봐. 내가 미쳤냐고?"의사는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은 많은 사람으로 보였다. 반말을 찍 내뱉고 난 후에,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는데, 그 순간 내가 진짜 미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한없이 중립적인 눈으로 나를 슬쩍 보고 고개를 내려 다시 차트를 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오, 나는 의사에게 경의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한순간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땅에 박고 있는 다리를 뽑아낼 희망 따위를 바라지는 않았다. 더 큰 무엇을. 헛웃음이 나왔다. 희망은 독이다. 식상하지만 절묘했다. 짙은 어둠이 창에 달라붙어 있다. 다시 밤이다. 지겹도록 찾아온다. 어둠이 핏방울처럼 방안으로 농밀하게 스민다. 방금 전에 갓 내린 커피처럼 검다. 지독히 검다. 나는 어둠을 한 목음 넘긴다. 진한 카페인을 마신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진다. 이제 글을 마칠 때가 됐다. 나는 이미 이 글을 다 쓴 후에 할 계획을 세워 두었다. 둥그런 티탁자를 만들 것이다. 인터넷에 허브나 녹차, 홍차 같은 차와 차를 우려낼 수 있는 도자기 세트도 주문해 놓았다. 버틴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 모든 것이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그렇게 계속 허황하게 불어나는 무엇. 그리고 짜부라져 한 사람 인생에 압축되는 무엇.나는 획득할 것이다. 헛되이 구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살고자 하는 아주 작은 희망, 혹은 용기 따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아 희망적인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근육, 뼈, 내장, 피부, 그 안에 흐르는 피, 그 모든 생명을 통제하는 곳 대신 자리한 텅 빈 공간, 절망이 나를 원한다면 기꺼이 그 속에 기거할 것이다. 절망에는 선악이 없다. 옳고 그름도 없다. 이곳이 죽은 이들이 나에게 마련해 준 유일한 보금자리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아이가 나타난다. 나는 잠깐 놀라지만 곧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모든 것이 기억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치 깨달은 적이 없다는 듯 깨닫는다. 과거 그때, 죽음이 끈질긴 것처럼 그렇게, 기억 속의 그때처럼 아이는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리고 장난스런 미소를 얼굴 전체에 걸친다. 그리고 말한다. "뭐, 상관없어!"왜 상관없는 것일까? 올바른 물음은 곧 처음이고 끝이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었던 그때처럼 육중하게 접혀 쌓인 어둠의 계단을 밟고 앞으로 걸어 나간다. 아이는 진작 사라졌다. 여전히 정적이 깊다. 불이 다 꺼진, 아무도 없는 무대는 거대한 무덤 같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어둠의 밀도가 점점 높아진다. 심판대 같은 무대 한 가운데 홀로 서 있다. 곧 어둠은 폭발한다. 그리고 나는 우주처럼 거대한 검정 알에서 깨어난다.그렇게, 유일하게 죄를 사하는 방법은 부활이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소설 심사평 - "내면의 적나라한 균열 직시·긍정 힘 매력"

본심에 오른 작품은 '칼', '하루', '밤의 탈피', '끈', '부활' 등 모두 다섯 편이었다. 독특한 시공간을 설정한 '칼'은 문장도 매끄럽고 감각 또한 예리했다. 모두 구체성과 꼼꼼함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지적되었다. 작가의 의중이 명확하지 않으니, 소설은 그저 단순한 이야기와 판타지물로 머물고만 느낌이다. 보다 현실에 깊게 뿌리박힌 이야기를 쓴다면 조만간 작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접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하루'와 '밤의 탈피','끈'은 몇몇 인상적인 장면에도 불구하고, 성긴 마무리와 식상한 상징으로 인해 선택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하루'에서는 아내의 변심이 익히 예상되었고, '밤의 탈피'에서는 주인공 '나'의 상처가 감상적이고 모호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끈'은 '뜨개질'의 상징성이 너무 빈약하였다. 아쉽지만 다음 작품을 기다려보기로 했다.이번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은 '못'이었다. '못'은 일종의 캐릭터형 소설이었다. 소설 속 사건은 어쩌면 진부하기 그지없는, 교통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한 남자의 일상이 전부이다. 물론 그 교통사고에는 남자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사고 자체가 아니었다. 이 소설에서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지점은 우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균열과, 그 균열이 결국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인식, 그리고 다시 그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한 인간의 적나라한 내면 투쟁 그 자체였다. 이 소설 속 질문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균열'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고, 또 한편 '균열'을 긍정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군데군데 불안한 문장과, 들쑥날쑥한 플롯이 어떤 극적 계기 효과를 반감시키는 것이 사실이나, 날것 그대로의 신인 목소리로 긍정하기로 했다. 당선을 축하하고, 꾸준한 건필을 기원한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소설 당선소감 - "무거운 펜 신중히 휘두르는 글쟁이 되고파"

그날은 방안에서 이불을 싸매고 누워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매서운 한파라고 뉴스앵커는 아침부터 연방 떠들어댔습니다. 밖으로 나가 나무장작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습니다. 우리 집에는 작은 주물난로가 있습니다. 난로의 주둥이에 해당하는 작은 문을 열고 진홍빛 불씨를 향해 장작을 집어넣었습니다. 곧 난로는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불꽃이 악몽처럼 시커먼 주물을 핥았습니다. 그때쯤 전화가 왔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아니 전화를 끊고 나서야 휴대폰을 든 손이 마구 떨렸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도 부끄러움이 치솟았습니다. 급하게 내가 보낸 글을 컴퓨터 화면에 띄웠습니다. 그리고 읽어 내려갔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난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꽃을 보며 당선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근육질 팔로 무거운 망치를 휘둘러 달구어진 철판을 두드리는 늙은 대장장이가 떠올랐습니다. 불꽃을 보며 환하게 웃는, 내가 그였다면. 그처럼 온몸으로 인생을 밀고 나갔다면. 이제 제 손에 펜이 들려지게 되었습니다. 제 팔에는 근육이 없습니다. 수상 소감을 쓰려고 든 작은 펜을 수전증 환자처럼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고정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몰랐던 참으로 무거운 펜입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여전히 왜 내가 됐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내 팔에 중력을 거스르는 근육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무한히 무거운 펜을 정확하고 신중히 휘두르는 글쟁이가 되고 싶습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시 심사평 - "파업현장 현실 인식·시적 긴장감 돋보여"

마지막까지 남아 선자들을 고심케 한 작품은 '검은 줄'(김정경)과 '닭'(정지웅)이었다. '닭'은 '닭이 발톱을 세워 저물녘을 뒤란에 눌러놓는다/머리에 달린 어떤 생각이 갈 방향을 콕 쪼아야 한 발 걷는 닭/퇴근 없는 저 눈이 무섭다'처럼 언어가 생각을 담는 솜씨가 놀라울뿐더러 비유가 관습을 벗어나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다. 말하자면 관념을 언어로 낚아채 시적 표현으로 밀고 나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검은 줄'은 '파업이 길어지고 있었다//주머니엔 말린 꽃잎 같은 지폐 몇장/만지작거릴수록 얇아졌다'로 시작되는 시의 첫머리처럼 우리 시대의 아픈 '파업 현장'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 기왕의 사실주의 시들의 상투적인 표현을 벗어나 현실을 다루면서도 시적 주체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숙고 끝에 우리는 언어의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닭' 대신 오늘의 사회 현실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검은 줄'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에 합의했다. 같이 응모한 다른 작품에서도 보이지만 '닭'의 시인은 그 건강한 농경정서가 자칫하면 익숙한 농촌시들의 복제에 기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깨끗이 씻어버리기에 아쉬운 표현들이 많이 눈에 띈 반면, '검은 줄'은 파업현장을 다루면서도 거기에도 끼지 못하는 '특수고용자'로서의 신분이 뚜렷이 부각된 시구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같은 표현이 보여준 바대로 주체와 현실의식과의 시적 긴장이 앞의 작품보다 조금 더 우위를 차지한다고 판단되었다. 이밖에도 선자들의 눈을 끈 작품은 '보랏빛 선글라스'(문화영), '연잎 정자에 초대하다'(이정희) 등이었음도 밝혀둔다. '닭'의 시인에겐 정진을, 그리고 당선자 김정경씨에겐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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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13.01.02 23:02

시 당선소감 - "손녀에게 한 수 가르쳐 준 할머니께 영광을"

올봄 고향에는 유난히 벚꽃이 고왔다고 했습니다. 그 고운 꽃빛이 다하고 배롱나무 꽃 필 즈음 할머니께서 하늘로 꽃구경 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울다 말고 그날 분의 방송 원고를 썼습니다. 그렇게 불성실한 자세로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죽은 자의 일과 산 자의 책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가시는 길에도 손녀딸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신 아름다운 매화, 정가매 씨. 당선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할머니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제가 쓰는 글에 책임을 지며 살겠습니다. 제 시에 뼈를 세워주신 부모님, 시의 살이 되어주신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과 원광문학회 식구들, 헐벗지 말라고 옷을 지어주신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외롭지 않도록 함께 길을 걸어준 문우들께 인사를 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차마 순서를 정할 수 없어 고마운 이름들을 쓰지 못하겠습니다. 두고두고 그 이름 부르면서 곁에 있겠습니다. 제 시의 가능성을 보아주신 유강희 선생님, 박성우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시를 보듬어 주신 정양 선생님, 이시영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빠지게 했던 두 분 선생님께서 제 시를 안아주셨다는 것이 아직도 꿈 같습니다.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신 전북일보사에도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수필 심사평 - "당선작 없어 아쉬움…깊은 맛 위해 오랜 연찬 필요"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는 자그마치 400편을 훌쩍 넘기고도 남을 정도로 예년보다 많은 분들이 응모하여 세모의 맹추위를 녹이고도 남았다. 여기엔 아마도 세상살이가 그만치 어렵고 글 쓸 감도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으려니와, 수필이란 자의(字義)에서 보듯 붓 가는대로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자유로움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쉽게 쓸 수 있는 녹녹한 장르가 아니다. 수필이 주는 자유로움보다 쓰면 쓸수록 천인절벽 같은 막막함이 눈앞에 가로놓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고려 예종 때 고시(古詩)에서 해동1인자로 이름을 날렸던 김황원이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의 절경을 읊다가 황혼이 질 때까지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일이다. 글을 써본 분들이라면 한 줄도 나가지 못하는 이러한 막막함을 한두 번 경험해보지 않은 분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학의 모든 장르가 그렇지만 수필은 인생을 깊숙이 관조(觀照)하지 않고는 쓸 수도 없고, 독자에게도 감동을 줄 수가 없다. 수필은 무색의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빛깔 무지개로 아름답게 분석 투과된 스펙트럼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인생의 참 사람살이를 절절하게 체험한 중반이후에나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이번 응모된 작품은 많았지만, 눈에 띄는 작품이 드물었다. '군불', '너와집', '쑥' 등 예닐곱 편이 최종선상에 올려 졌지만, 수필에게 요구되는 이러한 특질과 요소들이 많이 부족했다. 이들 작품들 공히 삶을 분석해낸 아름다운 스펙트럼도 엿볼 수 없었고, 인생과 연결된 재해석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들 중 '군불'은 좀 나아보였지만, 다른 작품들은 경물의 사생이나 묘사의 나열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당선작을 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이렇듯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신변잡기 같은 게 아니라, 오랜 연찬(硏鑽)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장르라는 사실이 재확인되는 시간들이었다. 수필의 깊은 맛과, 아름다운 멋, 그리고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본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동화 심사평 - "따뜻한 시선으로 생명력 잘 표현"

올해 응모한 작품 수가 예년에 비해 두 배가 넘었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예심을 거쳐 돌아온 작품은 '태엽인형'(정우영)과 '달 꿰매는 사람'(최지영), '두근두근 우체통'(염연화), '아부의 달인'(이진아), '눈(雪)의 세공자 이야기'(이경석), '건망증 할머니'(최연희) 등 6편이었다. '태엽인형'은 소재도 참신하고, 구성력·문장력 등 두루 잘 갖추고 있으나 주제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약점이었고, '달 꿰매는 사람'은 동화의 기본 요건인 환상(판타지)와 현실(리얼리티)의 조화에 소홀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아부의 달인'은 제목부터가 어린이와는 거리가 너무 멀고, 내용도 평범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작품이었고, '눈(雪)의 세공자 이야기'는 언어의 세련미나 이야기 구성력은 좋으나 동화의 뿌리가 되는 주체성의 결여가 흠이었다. '건망증 할머니' 역시 평범한 내용으로는 흥미와 교훈적 이미지로 접근하기가 어렵다.'두근두근 우체통'은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생활 속 버려진 물건도 허투로 보이지 않는 섬세한 눈과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소 대화체 문장에서 서툰 점이 있으나 당선작으로 내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할아버지가 가져다 놓은 버려진 우체통에 박새가 새끼를 낳고 기르는 생명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계속 정진하기를 빈다.동화는 문학 중의 문학으로 다른 문학양식(시·소설·희곡)과 한치도 뒤질 수 없으며, 보다 높은 차원의 문학임을 인식하고 열심히 노력해주길 바란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동화 당선소감 - "동화와 만나고 삶이 더 행복해졌죠"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황지우 님의 시 구절처럼 나는 일찍부터 기다림에 익숙했습니다. 저물녘이면 그 시간까지 들에서 가난을 일구고 계신 부모님을 기다렸고, 명절이면 먼 곳에 있는 언니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날엔 마흔 세 번이나 지는 해를 보았다는 어린왕자처럼, 소식이 없는 언니를 무작정 기다릴 때면 나는 아이답지 않게 아주 쓸쓸했습니다.그래서 편지쓰기를 좋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받아줄 대상만 있다면 어느 누구하고도 거리낌 없이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친구, 언니에게 썼던 편지는 어쩌면 내 자신에게 쓰는 편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미안하게도 빨간 우체통에게 너무 무심한 어른입니다.문학을 꿈꾼 일은 오래되었지만 동화를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동화를 읽고 쓰게 되면서부터 삶이 더 행복해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동화 속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말썽부리는 아이로 다시 밝게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동화를 처음 알게 해 준 가영 언니, 송이 언니에게 고맙습니다. 늘 애정으로 이끌어주신 이성자 선생님, 어려운 길을 동행해주는 솔숲 동인과 다른 문우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동화를 쓰느라 두 아이에게 엄마 역할을 잘 못했습니다. 하지만 글 쓰는 엄마를 보면서 내 아이들도 자신만의 꿈을 키워 가리라 믿습니다. 내색하지 않고 나를 지지해주는 남편에게도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당선의 영광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사에 감사합니다. 열심히 걸어가겠습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동화당선작 - 두근두근 우체통, 염연화

"찌징찡찡찡." 청아한 산새 울음소리에 정신이 반짝 들었어."삐비빙뾰롱뾰롱뾰로롱." 귀를 씻는 참 맑은 소리였어.나는 갈 곳이 없어졌어. 버려질 운명이었지. 눈에 띠는 빨간 옷을 입었지만 사실 난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너의 마음에서….혹시 '어린왕자'를 읽어봤니?'가령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지는 거야. 네 시가 되면 벌써 나는 마음이 두근거리고 안달이 날거야. 행복의 값어치를 배우게 되는 거야.'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진 사막여우가 한 말이잖아. 너도 누군가에게 쓴 편지를 나에게 넣고 손꼽아 날짜를 헤아리며 답장을 기다려본 적이 있니? 그렇다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할 거야. 맞아, 나는 우체통이야. 하지만 내 이마에 써진 글씨를 좀 볼래?'우편함'우체통이나 우편함이나 그게 그거라고?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너,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구나? 하긴, 밤새워 그리움을 키워본 적이 없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오른쪽으로 보이는 길은 숲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란다. 내 뒤로 보이는 이 집, 참 아담하지? 이 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날 여기로 데려왔어. 폐기물처리장으로 실려 가던 차에서 떨어져 길바닥에 뒹굴고 있던 나를 말이야.할아버지는 꽉 잠긴 내 배를 연장으로 열고 내 속을 들여다보았어. 몹시 부끄러웠지. 내 속엔 편지 대신 아이스크림 막대, 담배꽁초, 구겨진 깡통 따위만 잔뜩 들어있었거든. 할아버지는 쓰레기들을 꺼내고 내 뱃속을 깨끗이 씻겨주었어. 난생 처음 해보는 목욕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지. 난 그렇게 자목련 나무 옆 울타리에 걸리게 된 거란다.내가 반듯하게 걸린 걸 확인한 할아버지는 굵은 펜을 들고 나왔어. 그리고 내 이마에 글씨를 써버린 거야. '우편함'이라고. 설마, 이렇게 한적한 산책길 옆에 있는 나에게 누가 편지를 넣겠니? 내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담아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걸? 난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의 역사를 간직한 우체통이야. 그런 내가 할아버지의 개인 우편함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쉬웠겠니? 그래도 할아버지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웠지. 우체통이나 우편함이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어. 또 어쩌면 할아버지가 애타게 기다리는 편지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산책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오솔길 따라 자주 숲에 올라갔어. 난 집을 지키느라 낮잠을 잘 새도 없었지. 마당에 늘어져있는 저 덩치 큰 개는 뭐했냐고? 말도 마, 장군이 저 녀석은 걸핏하면 졸고만 있거든.내가 우편함이 된 뒤로 할아버지에게 온 우편물들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대부분 전단지나 돈을 내라는 청구서들이었지. 난 크게 숨을 들이켜 보았어. 오랜 기다림에 굶주렸잖아. 하지만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더라. 추운 겨울날, 어떤 개구쟁이가 내 안에 눈 뭉치를 집어넣은 것처럼 속이 시릴 뿐이었어.사람들이 밤새워 썼던 사랑, 희망, 외로움, 그리움… 벅차고 애잔했던 이런 감정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자목련 꽃잎도 다 떨어진 봄의 끄트머리였어. 눈길 가는 곳마다 아지랑이만 어룽대는 따분한 날이었지. 장군이의 졸음에 전염된 것처럼 나도 모르게 깜박 졸고 있었단다."찌징찡찡찡."청아한 산새 울음소리에 정신이 반짝 들었어."삐비빙뾰롱뾰롱뾰로롱."귀를 씻는 참 맑은 소리였어.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지. 바로 건너편 왕벚나무 가지 위였어. 작은 딱새 두 마리가 꽁지를 까딱이며 나를 보고 있지 뭐겠니? 포르릉, 암컷이 편지투입구를 통해 먼저 내 뱃속으로 날아 들어왔어. 경계하듯 바라보고 있던 수컷도 내려앉았지. 딱새 부부는 종종종 뛰며 나를 살폈어. 세상에, 짐작이나 했겠니? 그들이 곧 내 안에 둥지를 틀 거라는 걸?딱새 부부는 부지런히 풀잎을 물어오기 시작했어. 오솔길까지 날아가 뭉쳐 뒹굴고 있는 장군이의 털도 물어다 날랐고. 마침 장군이가 털갈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거든.딱새 부부가 어찌나 부지런한지 둥지는 금세 모양새를 잡았어. 오목한 접시 같은 둥지가 완성 될 즈음 난 퍼뜩 깨달았어. 귀여운 딱새 부부에게 홀려 내가 우편함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그제야 우체부 아저씨가 청구서, 홍보물 따위를 내 안에 던져 넣고 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딱새 부부는 내가 버려진 우체통인지 우편함인지 알 리가 없잖아?아, 이걸 어쩌나! 내가 조바심을 내는 줄도 모르고 딱새 부부는 둥지를 완성한 기쁨의 노래를 불러댔어. 술래잡기라도 하듯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한참을 지저귀고 있었지.그 소리가 마당에 있던 장군이의 귀에도 들렸나봐. 꼼짝 않던 장군이가 느릿느릿 밖으로 나오더라. 사랑을 나누며 가지를 옮겨 다니던 딱새 부부는 장군이 눈에 띠고 말았어.얄미운 녀석. 꼼짝도 않고 졸기만 하더니 하필 그때 나와 시끄럽게 짖어댈 게 뭐겠니? 졸지 말고 집 지키랬지 누가 손님 쫓으라고 했냐고. 딱새 부부가 둥지를 버리고 날아가 버릴까봐 나는 정말 애가 탔어. 그런데도 장군이는 내 속도 모르고 계속 짖어대더라니까.때마침 숲에 갔던 할아버지가 돌아왔어. 그제서야 장군이는 꼬리를 흔들며 조용해졌지. "삐삐삐뾰롱뾰롱뾰로롱."그때 왕벚나무 가지에 앉은 딱새 부부가 이중창을 시작했어.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얼른 소리 나는 곳을 찾아냈지."오, 딱새로구나?"날마다 숲에 오르더니 새들의 말을 깨우치기라도 했을까? 딱새의 노래를 알아들은 것처럼 할아버지는 내 배를 열었어. 둥지를 발견하자마자 역시나,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지. 어린 손녀딸이라도 보는 듯 할아버지는 모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단다. "허허, 네가 딱새 엄마가 되겠구나!"우편함이라 할 땐 언제고 이젠 딱새 엄마라니?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그 말에 왜 내 가슴이 뛰기 시작한 걸까?할아버지는 집안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어. 나를 대신할 노란 천주머니였지. 할아버지는 우편물 주머니를 자목련 가지에 걸었어. 그리고 내겐 '딱새 엄마'라는 새 이름표를 달아주었단다. "이렇게 하면 딱새 가족이 우편물 벼락을 맞지 않을 게다."할아버지 덕분에 비로소 난 한시름을 놓았어. 딱새 엄마. 딱새엄마가 된 우체통… 근사하지 않니?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아기 새들을 키워낼 꿈에 젖어들었단다.며칠 뒤, 내 이름표와 노란 주머니를 확인한 우체부 아저씨는 쿡 웃음을 터트렸어. 하지만 아저씨도 나에게 일어난 일이 궁금했겠지. 살며시 내 배에 귀를 갖다 대더라니까? 엄마 뱃속의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 싶은 아빠처럼 말이야.너, 바쁜 일이 있는 거구나? 아까부터 네가 자꾸 시간을 확인하는 걸 봤거든. 사람들은 늘 시간과 싸우고 시간에 쫓겨 살지. 괜찮아, 어서 가렴. 나도 얘길 오래 했더니 목이 아프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모금 마시며 쉬어야겠어.알은 잘 깨어났냐고? 당연하지. 저 먼저 먹이를 먹겠다고 아우성치던 귀여운 아기 새들을 너도 봤어야 했는데….그래. 아기 새들은 둥지를 떠났고 난 또 이렇게 혼자가 되었어. 내 이마에 써진 할아버지의 '우편함'으로 돌아온 거야.문득 오래 전 누군가가 내 안에 넣은 편지 글귀가 생각나는구나.'세상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멋진 말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잖아?'그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그래도 난 누가 뭐래도 우체통, 가슴 뛰는 우체통이야. 언제라도 좋아. 천천히 걷고 싶은 날, 네 안의 너와 얘기하고 싶은 날, 나를 만나러 와 주겠니? 널 기다리는 동안 난 어린왕자의 사막여우처럼 행복해질 거야. 두근두근, 두근두근.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3.01.02 23:02

관람객 유혹하는 착시의 신비로움

베네수엘라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이루어진 세계미술거장전에서는 미술사의 거장들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라틴아메리카 미술도 마주하게 된다.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작가들로 이루어진 제5전시실 '특별전시, 추상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추상의 세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옵아트와 키네틱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 헤수스 라파엘 소토, 카를루스 크루즈 디에즈 등 이들 작품은 거장들과 견줄 만한 가치 있는 것이기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옵·키네틱 아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헤수스 라파엘 소토(1923~2005)의 '붉의 중앙의 테스'(1951)를 주목하라. 그의 작품은 미술관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소토는 몬드리안, 뒤샹, 칼더 등 추상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진보적인 미술을 시도하게 되며, 시각적 착시현상을 작품에 접목한다. 특히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구사하여 매우 지적이고 조직적인 작업을 통해 옵. 키네틱 아트를 완성한다. '붉은 중앙의 테스'을 들여다보면, 사각형 안에 얇은 막대(stick)가 빼곡히 꽂혀 있어 사람들은 저마다 어지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관람자들은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된다. 작품 앞에 서서 좌우로 움직이거나 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데 모두가 한결같은 반응이다.이처럼 눈이 어지럽고 작품 앞에서 활발히 움직여야만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미술을 옵·키네틱 (옵아트와 키네틱아트) 아트라 한다.옵아트는 옵티컬아트 (Optical Art) 의 줄임말로 시각적인 미술이라는 의미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미술의 한 동향으로 팝아트가 상업성, 상징성을 갖는 반면 옵아트는 회화가 지닌 암시나 연상의 기능을 배제하고 순수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심리적 반응을 지향하는 예술이다. 단색의 사각판 위에 철사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구성한 소토의 작품은 눈에 착시 효과를 일으켜 새로운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둘 이상의 선적인 구조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물결무늬, 즉 무아레(moire) 효과로 인해 작품에서 음악적인 리듬감과 율동감이 전해지는 게 특색이다. 이처럼 보는 사람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착안했던 소토는 자신의 공간에서 관람자들이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이 비롯된 것이다.소토의 작품을 마주하면 그의 사각형의 틀은 창가를, 나열된 철사들은 비가 내리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스피드를 좋아했던 어린 소년은 훗날 자신의 작품에서도 움직이는 미술을 착안했으며, 움직이며 관람을 해야 하는 그의 동적인 작품 앞에 서면 어린아이와 같은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전북도립미술관 제공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12.31 23:02

세계적 도예작품 한눈에 살핀다

부안청자박물관에서 한국도자문화의 미래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도예작품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부안군은 한국도자재단과의 도자문화소통을 위한 상호교류 일환으로 재단 소장 현대 도예작품을 내년 5월까지 부안청자박물관에서 전시한다고 밝혔다.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기존박물관에서 볼 수 없었던 조형성이 강한 21세기 현대도예를 대표하는 작품과 다양한 생활도예작품이다. 또 경기도자비엔날레 국제도예협의회 우수작품, 국제공모전 수상작품, 지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세계현대도자전에 출품했던 최고 수준의 도자기 등 100여점이 전시된다.부안군은 전시기간 중 2013년 세계도자비엔날레 행사 관련 홍보물을 비치하고 그동안의 비엔날레 전시전을 소개하며 방문객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유도할 계획이다.군은 이를 계기로 한국도자재단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부안지역 도자산업 활성화와 부안을 알려나가기로 했다. 나아가 작품전시 차원을 넘어서 부안지역작가들의 인적교류로 이어나가 중앙무대와 지역간의 상호교류를 이뤄내겠다는 방침이다.이종충 군 문화관광과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부안군과 경기한국도자재단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구축, 특색 있는 지역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한편 역사적으로 찬란한 도자문화를 가지고 있는 부안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며 "한국도자문화의 미래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도자비엔날레 도예작품 전시로 지역주민을 비롯한 많은 도자문화 애호가들의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도자재단은 한국의 도자문화발전을 리드하는 경기도의 출연기관으로, 1999년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세계속의 한국의 도자문화홍보, 도예인의 창작활동지원, 도자문화생활화를 위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 세계도자문화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공공재단이다.

  • 문화일반
  • 양병대
  • 2012.12.31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