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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계 결산 ① 프롤로그 - 왔노라,즐겼노라…그러나 추웠노라

올해 전북 문화예술계는 '2012 전북 방문의 해'를 맞아 전북을 찾는 이들에게 문화의 저력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전북문인들의 숙원이었던 전라북도문학관 개관을 시작으로 전북도립미술관의 '세계미술거장전' 유치·'2012 세계순례대회' 개최까지 굵직한 사업과 이벤트가 이어졌다. 그러나 문화예술인들의 염원인 전북문화재단 출범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었고, 전북도가 전국 최초로 '삶의 질 정책과'까지 신설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정책 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못했다. 전북도의 문화예술의거리 조성사업이나 생활문화예술동호회 출범 역시 시행착오를 겪었다. 전북지역에서 올 한해 진행된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점검을 시작으로, 분야별 결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 몰렸다= '2012 전북 방문의 해'를 맞은 전북도는 다른 지자체와 비교할 때 이렇다 할 메가 이벤트를 내놓진 못했다. "전국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메가 이벤트가 그 지역을 알리는 행사를 재조명할 수 없게 만든다"는 양비론이 존재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전북도립미술관의 세계미술거장전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와 4대 종단을 아우른 '아름다운 순례길'을 걷는 '2012 세계순례대회'가 아니었다면 그나마도 전북 방문의 해가 무색할 뻔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 축제로 꼽힌 '무주 반딧불 축제'와 '김제 지평선 축제' 등이 상반기 관광객들을 잡아끌고, '음식의 고장 = 전북'이라는 위상을 충족시키는 '2012 한국음식관광축제'와 '2012 전주비빔밥축제'와 '2012 전주세계소리축제'가 하반기 관광객들을 몰아주면서 전북 방문의 해 체면을 살렸다. △ 시끄러웠다= 새해 벽두부터 (사)한국예총 전북지회 선거가 시작 돼 전북의 문화 지형도가 재편된 한 해였다. 그러나 전북예총 회장을 비롯한 전북예총 산하 협회와 시·군 지부 선거로 인한 잡음이 계속됐다. 전북예총 회장에서 떨어진 김학곤 전북국악협회 회장이 재선한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에게 대의원·입후보 자격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해 문화예술계를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샀다. 올해 각종 파문의 진원지는 전주국제영화제였다. 유운성 전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해임 배경을 둘러싸고 조직 내부를 둘러싼 갈등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그동안 쌓아온 전주영화제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 새로운 수장으로 고석만 신임 집행위원장이 선임됐으나, 다시 집행위원장과 직원들이 갈등을 빚어 8명이 '집단 사표'를 내 내년 영화제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를 샀다. △ 쏟아졌다= 전북도가 전국 최초로 '삶의 질 정책과'를 신설해 도민들의 삶의 질을 챙기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했을 때 다들 반신반의했다. 연착륙 준비기간일 수 있겠으나, 슬로시티·마을 만들기 사업 등으로만 요약되는 '삶의 질' 개념에도 온도차가 있는 데다, 전문 인력 배치가 없어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애매한 상황. 도가 '문화 복지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추진한 14곳 시·군에 파견된 문화복지전문인력'문화코디네이터' 배치와 '전북생활문화예술동호회 네트워크 협의회' 발족 또한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도내 문화동호인 2500여 명을 아우른 생활문화예술동호회 페스티벌 역시 전국적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도가 2016년까지 40억을 투입하기로 한 문화예술의거리 조성사업은 사업 주관처인 지자체와 동상이몽이다. 도가 요구한 '제2의 홍대 거리'를 지자체가 원도심 활성화로 해석하면서 도가 제동을 걸어 차질을 빚었다.△ 추웠다= 올해 전북도 문화예술진흥기금 투입된 31억. 문진금을 비롯해 무대공연작품제작, 레지던스, 해외전시지원, 상주단체 지원사업 등 더 다양해진 사업들이 더 많은 예술인들에게 혜택을 준 것처럼 보였으나, 지역 문화계는 여전히 한기가 돌았다. 공연 규모가 중소형으로 축소되면서 명분을 잃은 전북도의 브랜드 공연을 놓고 "지원기금을 그렇게 줘도 브랜드로 내놓을 만한 공연 하나를 여지껏 못 건졌다"는 일각의 푸념은 문진금 실효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해 연 문화예술지원사업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때 아닌 전북문화재단의 출범 필요성이 재점화되면서 전북 문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전주교동아트센터의 레지던스와 우진문화재단의 상주단체 지원사업이 전국 우수 사례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 문화적 자긍심을 재확인했다. 전북 문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전라북도문학관의 뒤늦은 개관은 반갑지만,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배정한 도는 문인들의 자존심에 금이 가도록 만들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2.12 23:02

남형두 교수는 - '제임스 딘'초상권 사건 담당…문광부 표절위원장

본적은 고창이지만 태어난 곳은 부안이다. 개인사업을 했던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란 그는 부안초등학교 5학년, 어린나이에 유학을 가 줄곧 서울에서만 살았지만 깊은 가족애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고향 부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어린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 큰 누이와 함께 서울살이를 해야 했던 그는 고향집에 갈 수 있는 방학만 기다리면서 외로움을 견뎠다. 그래서인지 고향 부안은 늘 그리움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 최루탄 가스 가득한 캠퍼스를 탈출하고 싶었던 그는 서울대 법대 2학년 때부터 서울맹학교의 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인연으로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판검사는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변호사가 됐다. 당초 일하고 싶은 로펌이 있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20여명 변호사가 소속되어 있던 중소규모의 법무법인 '광장'에 자원해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사무실이 큰 규모의 로펌과 합병하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그가 일하고 싶어 했던 로펌이었다. 변호사 3년차였던 94년, 한 의류업체의 제임스 딘 초상권 사용과 관련된 사건을 맡게 되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저작권에 눈뜨게 됐다. 1997년부터 LL.M.(법학석사)과정을 거치면서 내친김에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 주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박사과정은 그의 의지라기보다는 경험을 위해 선택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박사학위논문은 저작권을 다룬 'The Right of Publicity in the Global Market'. 그가 학위를 마칠 무렵, 한국은 '한류' 열풍으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부상해있었다. 자연히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저작권법 권위자이자 특히 엔터테인먼트 법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그는 바빠졌다. 귀국 후 지적재산권, 특히 저작권 분야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해온 그는 2005년 연세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치열한 승부가 전부인 직업에 대한 회의로 갈등을 겪고 있을 즈음이었다. 고액 연봉의 변호사 생활 16년을 기꺼이 접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 학문으로서의 저작권 뿐 아니라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운동에도 열정을 쏟아온 그는 저작권위원회와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위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이사 등을 지냈으며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표절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안식년을 맞아 독일과 미국에서 방문학자로 짧게 생활하고 돌아왔는데, 학문의 큰 변화와 발전에 자극을 받았다. 그만큼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졌다.

  • 문화일반
  • 김은정
  • 2012.12.11 23:02

감나무 3

곶감을 만들 때꼬챙이에 감을 열 개씩 꽂았는데아버지는 어쩌다가열한 개씩을 꽂기도 했다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곶감을 깎고도 감이 남으면 병아리를 키우는 덧 가리나 커다란 소쿠리에 감을 담아 짚으로 따듯하게 덮어 높은 감나무 위나, 지붕위에 얹어 둔다. 그렇게 보관한 감을 눈 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감이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얼면 먹기도 했다. 감을 깎을 때 나오는 감 껍질은 실타래처럼 묶어 햇볕에 잘 말려 깨끗한 짚더미 속에 넣어두면 촉촉하게 젖고 껍질에 쌀가루 같은 것이 뽀얗게 생겨났다. 곶감에도 그렇게 뽀얀 가루가 저절로 생겨났는데 사람들은 그 걸 '옻 났다'고 했다. 옻이 떡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뿌연 곶감이 좋은 상품이어서 사람들은 곶감을 팔러 가기 전에 쌀가루를 뿌리기도 했다. 감 껍질은 그냥 군것질로 먹기도 하고 호박떡을 할 때 호박과 같이 넣으면 여간 달작 지근한 게 아니었다. 농촌의 겨울밤은 정말 길기도 하다. 길고 긴 겨울밤은 군것질이 없는 농촌 마을의 밤을 더욱 더 길게 한다. 긴긴 겨울밤을 보내며 망태를 만들기도 하고 가마니를 짜기도 하고 덕석을 만들기도 해도 달은 중천이어서, 배가 출출해지면 사람들은 닭서리를 하기도 하고, 텃밭에 묻어 둔 무를 꺼내다가 깎아먹기도 하고 고구마를 삶아먹기도 하고 감을 내려다 먹기도 한다. 우리 동네 누님들이 우리 집에서 모여 놀았는데, 밤이면 온갖 서리들을 다 했다. 이것저것 하다하다 할 게 없으면 누님들은 남의 집 김장 김치를 꺼내다가 하얀 쌀밥을 해 먹기도 했다. 농촌 마을의 닭서리나 감 서리는 그래서 다 용서가 되었다. 감을 다 깎아 처마 밑이나 헛간에 매달아 놓으면 곶감은 가을 햇살과 건조한 날씨로 꼬독꼬독하게 마른다. 감이 다 말랐다 싶으면 아버지는 마른 곶감 꼬챙이를 거두어 방에 쌓아 놓고 접는다. 꼬챙이에 꿰어진 감을 접는다는 것은 곶감을 상품으로 완성시키는 일이다. 요새는 꼬챙이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시장에 나가 있는 곶감을 보면 더러 꼬챙이에 열 개씩 꿰어져 있는 곶감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곶감을 동글동글 예쁘게 접고 있으면 우리들은 옆에서 꼬챙이의 감 숫자를 센다. 꼬챙이에 감을 열 개씩 꽂아두는데, 어쩌다가 아버지는 열한개씩을 꽂아 둔 꼬챙이도 있다. 곶감을 접을 때 우리들에게 한 개씩 빼먹게 하려는 배려였고, 그 보다는 곶감을 말리는 과정에서 동네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지나가며 한 개씩 빼먹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에 미리 예방을 한 셈이고, 곶감이 한두 개씩 썩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비를 해 두는 것이다. 감 한 꼬챙이가 열 개씩이고, 열 꼬챙이가 한 접이다. 감은 '접'이라고 하는데, 곶감 한 접은 백 개를 말한다. 그렇게 감을 고이 접는 다음 다시 한 접씩 묶어 또 말린다. 완성 된 곶감을 말릴 때는 가을 일이 다 끝나고 한가할 때여서 아이들의 서리 대상이 됨으로 아버지들은 감을 마루 끝 처마에 매달아 둔다. 아이들이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가을 달이 높이 뜨고 서리가 하얗게 깔리면 우리들은 초저녁을 어영부영 보내다가 열두시가 넘으면 슬슬 밖으로 나가 낮에 보아두었던 곶감서리를 한다. 곶감 서리를 한 우리들은 곶감을 한 꼬챙이씩 나누어 들고, 곶감을 한개 씩 한 개 씩 빼먹으며 이웃마을로 천천히 걸어간다. 물론 곶감 씨를 여기 저기 띄엄띄엄 떨어뜨려 이 곶감 서리를 한 놈들이 이웃마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표시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곶감을 쏙쏙 빼 먹으며 걷다 보면 이웃마을에 도달한다. 이렇게 겨울이 깊어 가면 감나무는 까치밥도 낙엽도 하나 없이 빈가지로 겨울을 지내게 된다. 동무들이 다 도시로 떠나고 홀로지내는 겨울 밤 내가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마른 감잎과 마른 지푸라기가 밤바람에 끌려가는 소리였다. 마른 마당에 이는 바람에 감잎이 끌려가는 소리는 홀로 사는 사람의 애간장을 긁기에 충분했다. 강 건너 앞 산 상수리나무에 달린 마른 잎이 바람에 수런거리는 소리와 감잎 뒹구는 소리를 견디기 위해 나는 시를 썼는지도 모른다.

  • 문화일반
  • 기고
  • 2012.12.11 23:02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의 선함에 주목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한국화가 이문수씨가 11번째 개인전 타이틀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를 잡았다(11일부터 16일까지 전주 교동아트). 순교자의 꿈, 현세에 보내는 묵시적 메시지, 나귀의 노래, 소요유逍遙遊 등 개인전 마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해온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서도 물질만능의 현대사회를 고발하고 있다."나귀는 노동하는 인간을 의인화 한 것이고, 베어 먹은 사과는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헛된 욕망을 상징합니다."작가는 캔버스 위에 젯소를 반복해서 칠하고, 그 젯소가 마르기 전에 먹물이나 아크릴 물감을 걸레에 흠뻑 적셔서 밀어내는 기법으로 표현된 물을 통해 유기체적인 생명력을 이야기 하고 있다.특히 이번 전시회 중앙에 설치된 초대형 작품은 동양철학 중에서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근거하여 괘(卦)를 상징하는 18개의 화면에 음과 양의 기(氣)흐름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기(氣) 운행의 중심에는 둥지를 만들고, 대리석으로 조각된 알을 놓았다. 작가는 알을 통해 탄생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자 했단다.현대사회에서 헛된 욕망을 추구하다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와, 스스로 깨어 있으려는 자기 암시적인 고백이라고 했다."책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후끈 달아오르는 영감을 얻는다"는 이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또 드로잉·회화·인스톨레이션·영상·음향 등 다양한 미술의 기법을 활용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09년 전라미술상 수상 작가이며, 현재 교동아트 레지던시 큐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12.11 23:02

초등학생 손글씨 886편 보러오세요

굳은 살이 돋도록 연필 혹은 볼펜에 힘을 주어 써댔던 글들. 컴퓨터로 늘 글씨를 찍다시피 하다가 간만에 잡은 필기도구로 옮긴 '손맛'이 살아있는 글씨를 이제 블로그에서 만난다.전북일보사와 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이 전북 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연 손글씨 공모전'날아가는 지렁이, 고사리 손에 잡히다'가 수상작품을 아우른 블로그(blog .daum.net/2840570)를 개설했다. 총 6회를 거치는 동안 작품 1만6541편이 출품됐으며, 블로그에는 모두 886편이 담겼다. 1학년 때부터 빠짐없이 작품을 낸 아이부터 가작·우수상에 이어 기어이 대상을 차지한 아이까지, 또 쌍둥이 형제나 자매가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누거나 3남매 모두 수상한 가족까지 다양한 '지렁이'의 생생한 표정이 담겼다. 블로그를 살펴보면 도내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구와의 우정 편지, 선생님·가족에게 쓴 편지, 이라크·북한 어린이들에게 쓴 편지, 정치인·연예인·스포츠 스타에게 쓴 편지 등이 많지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따돌림 당하는 친구를 배려하고,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는 등 다양한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도 인다. 할 말 못할 말 다 하고 사는 당당한 사춘기 초등학생의 갖가지 투정들은 자연스레 웃음이 새어나오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손맛'이 살아있는 글씨로 전하는 아름다운 마음은 우리 사회가 다시 찾아야 할 소중한 마음의 무늬. 블로그에서 어린이들이 정성을 다해 쓴 손글씨와 그 글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2.11 23:02

귀하디귀한 근대문학 책 80권 만난다

"나는 자다가도 눈이 떠지면 이 책들을 빼보고 또 빼보고 해요. 작가들의 혼과 만나는 거니까. 아직도 넘길 때마다 손이 떨려요, 찢어질까봐서."지난 10일 만난 허소라 석정문학관 관장(76)은 전북도립문학관(관장 이운룡)의 초대전'한국 근대문학 도서전'(1920~1950)을 앞두고 좌불안석이었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도 불사하며 온 몸에 대동여지도를 그리듯 발품을 팔아 수집한 책들이 행여 탈이라도 날까봐서다. 밤잠 못 자가며 고심해 추린 80권은 명색이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라도 해도 모자람이 없다. 허 관장은 "이젠 전국 어느 헌책방을 가도 쉽사리 구할 수 없는 책들"이라고 자신했다. "그 시절엔 배도 참 고팠지만, 책읽기가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어요. 6·25가 끝날 무렵 조그만 서점이 생겼는데, 책값으로 300원을 내놓고 하루 만에 다 읽으면 30원씩 빼줬다고. 그러니 하루에 다 읽을 수밖에. 학교가 끝나면 골방에 틀어박혀 밤새도록 책을 읽었어요. 책값 때문에 책읽기에 빠진 거지.(웃음)" "석정 선생을 하늘 같이 섬겼던 청록파 일원"이었던 박두진 시인의 '해'(1946)를 대학교 시위에 나갔다가 받은 수당으로 헌책방에서 구한 사연이나 피난 간 매형 집에서 옷장에 숨겨둔 책을 누님이 몰래 찔러줘 이번 전시에 내놓게 된 책들의 30~40%를 차지한다는 사실 등은 그 앞·뒷쪽 사연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 서사시로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던 민중의 고통과 불안이 암시된 김동환의 '국경의 밤'(1925)과 일본 간첩죄라는 어이없는 죄목으로 총살당한 조명희가 망국의 한을 담은 '낙동강'(1928)은 1920년대를 장식한다. 이상 이태준 김환태 등이 활동해 우리나라 순수문학을 물꼬를 틀었던 '九人會'가 출간한 '시와 소설'(1936), 월남하기 전 시를 썼던 황순원의 미려한 문체가 녹아있는 시집'골동품'(1936) 역시 1930년대 당시 문청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작가들에게 문학적 응원을 보내온 작품들.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세련된 문장의 전형을 보여준 이태준의 '문장'(1939)은 아직까지도 글의 참맛을 깨닫게 하는 글쓰기 교본이며, 해방 이후 간행된 전북 최초의 아동문학지 창간호'파랑새'(1946)는 전북 문단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작품이다. "김유정 윤동주 이상 이장희 이효석 등은 30세를 못 넘기고 다 죽었어요. 가난이나 죽음과도 타협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한 줄 한 줄 원고지를 메워나갔던 처절한 작가정신이 다 여기에 녹아 있습니다. 앞서간 문인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견딜만한 것에는 사랑을 주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이 위대한 가르침을 뒤늦게라도 깨닫게 해준 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복한 줄 몰라요."'허소라 박사 소장 한국근대문학 도서전'은 13일부터 20일까지 전라북도문학관 본관 제4전시실에서 이어지며, 개막식은 13일 오후 2시에 열린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2.11 23:02

푸석해진 영혼이여… 힘내시게

2011년 겨울 무렵이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본심 심사가 끝난 뒤 송하선 시인(74)과 문태준 시인이 한 막걸리집에서 뒷풀이를 나눴다. 평소 과묵하고 젊잖기로 일가견이 있는 송 시인과 문 시인의 소통 지점은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1915~2000)을 향해 있었다. '서정주 예술언어'를 비롯한 여덟 권의 저서 등을 통해 문학 비평과 이론적 논리를 탄탄하게 구축해온 송 시인과 그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박사논문'서정주 시의 불교적 상상력 연구'를 마친 문 시인. 시단 경력 20년 터울의 문우(文友)는 막걸리 통을 비워가며 흘러간 시세계를 더듬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서정이 태어났다. 한국 서정시의 적자(嫡子)라 할 수 있는 송 시인이 펴낸 또 다른 시집'아픔이 아픔에게'(푸른사상)는 영혼의 강장제에 가깝다. 이제는 세상의 중심에서 물러선 시인은 지나버린 생을 관조하면서 세상의 모든 자연에서 가르침을 얻어 푸석푸석해진 영혼의 체력을 증진시킨다. "대학에서 정년을 한 후의 내 노년이 마치 죽지가 부러진 새 같다는 생각을 한 때가 많았습니다. 이 시집이 세상의 아픔을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아픔의 한 모서리 부분이라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시집이 모든 이의 가슴에 풍금처럼 울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시인은 '사라지는 줄도 모르면서 // 애간장이 터지게'('매미의 울음'(1)) 울거나 '쓰라린 황야를 날아가는'('강을 건너는 법') 것이 바로 인생이라면서 그 절대 고독의 세계로 초대했다. '나의 손은 원래부터 빈손이었구나'('손') 하는 깨달음은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 칠순을 넘긴 날의 흔적들은 시인의 자기 성찰과 의식의 세계를 '지극히 낮게 속삭이는 언어'의 미덕으로 촘촘히 엮어냈다. 작품 해설을 쓴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은 '미당에게서 능청을 빼면, 그 자리에 담백하고 조촐한 송시인의 점잖음이 남는다'고 적었다. 결국 시인의 성찰적 세계가 궁극적으로 맞닿아 있는 지점은 세상과의 소통. '늙은 소년'은 스스로 바보가 되어 환한 웃음판으로 초대해 무릉도원을 만들고 싶다('과수원에서')고 고백했다. 김제에서 태어나 전북대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뒤 중국 문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송 시인은 1971년 '현대문학'으로 문단에 나와 1980년부터 우석대로 부임해 우석대 명예교수가 됐다. 시집으론 '강을 건너는 법','가시고기 아비의 사랑', '그대 가슴에 풍금처럼 울릴 수 있다면'등이, 저서로는 '한국 명시 해설','서정주 예술 언어','석정 시 다시 읽기' 등이 있다. 전북문화상, 전북 대상(학술상), 한국비평문학상, 백자예술상, 목정문화상, 황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2.10 23:02

완주문화원 주최 '비가비 권삼득 포럼' "명창 기념사업회 만들자"

국악계와 지역주민, 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거버넌스를 형성해 고(故) 권삼득 명창을 기리고 유산을 계승하기 위한 가칭'권삼득 명창 기념사업회'라는 법인체를 만들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권삼득 명창의 종중인 안동 권씨 문중에서도 법인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또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완주군 용진면에 '판소리·민요 마을'을 내년도에 조성하는데 지역주민과 행정이 의견을 한데 모아 추진키로 결정했다.7일 권삼득 명창의 고향인 완주군 용진면사무소에서 완주문화원 주최로 열린 '비가비 명창 권삼득 포럼'이 학계·국악계·문화계·지역주민·자치단체와 안동 권씨 문중 등 다양한 계층이 모인 가운데 이같은 결실을 맺었다.이날 발제에 나선 최동현 군산대 교수는 "권삼득 명창을 기리기 위한 사업의 지속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인체 설립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전제하며 "권삼득 '더늠'을 알리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명창 관련 자료를 모아 책을 출간하고 음반을 만들어 판소리와 권삼득 명창에 대한 사회적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권씨 문중 대표로 나온 권진택씨와 권요만씨는 "권삼득 명창이 생존할 당시 양반가에서 광대를 한다며 집안의 괄시를 받았지만, 지금은 훌륭한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며 "권삼득 명창 추모 사업과 계승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이날 포럼에 참석한 국악협회와 지역주민들도 발언권을 받아 "권삼득 관련 법인체 설립에 적극 찬성한다"며 "각계가 참여하는 것이 사업 성공의 열쇠"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권삼득 명창 계승사업의 성공을 위한 기반사업으로 판소리·민요마을 조성에 지역주민과 자치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 내년도에 성사키로 뜻을 모았다. 완주군 관계자는 "용진면 지역주민들이 원한다면, 마을문화공동체사업에 따라 용진면에 판소리 마을을 조성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고, 용진면과 용진면 주민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내년도에 신규사업으로 추진될 전망이다.한편 완주문화원과 한국국악협회 완주지부는 8일 완주종합복지관에서 제13회 국창 권삼득선생 추모 전국국악대제전을 개최했다.

  • 문화일반
  • 김경모
  • 2012.12.10 23:02

"홍콩·싱가포르까지 진출하는 미술시장으로 키울것"

조각가 국경오(47)씨는 최근 부쩍 더 야위었다.5년 전부터 밑그림을 그려온 '아트 아시아 2012'를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 힘들어 할 여유조차 없었을 만큼 바쁘게 움직였다. 아내 박지혜 아카갤러리 대표와 지인들이 힘을 모아 "전 세계 어느 전시장과 비교해봐도 규모·시설 면에서 최고"라고 평가받는 서울 코엑스 A홀의 까다로운 대관부터 갤러리 섭외, 팸플릿 제작까지 정말 치밀하게 준비했다.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바젤 아트페어가 이미 좋은 시장을 많이 선점해뒀어요. 눈 여겨봐야 할 것은 지난해 바젤이 홍콩 아트페어의 지분 60%를 인수했다는 겁니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잠재력을 본 거죠."지역에선 처음으로 스위스 바젤 스코프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 아트페어에 진출하면서 미술시장의 흐름을 일찍 읽은 그는 '아트 아시아 2012'가 향후 홍콩·싱가포르까지 진출하는 국제 아트페어로 자리잡게 할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이 '뱃심 좋은 조각가'는 전주 풍남문 광장에 슬로시티를 상징하는 조각물 설치도 막 끝냈다. 기존의 관념을 깬 이 설치물은 어딘가를 바쁘게 뛰어가려는 남성을 가까스로 붙잡는 여성을 통해 쉬엄쉬엄 가자는 슬로시티를 상징하는 작품. 나무의 따뜻한 질감을 감쪽같이 표현해 전문가들조차도 재료가 나무였을 거라고 착각할 정도지만, 브론즈로 빚어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반전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2.10 23:02

아시아 화가 1000여명 작품 한자리

'이제는 피카소와 헤어질 때.'세계 미술 분석기관인 '아트프라이스'는 최근 미술 시장의 흐름을 이렇게 정리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홍콩, 싱가포르, 중국이 전 세계 현대미술 시장의 지각 변동을 주도하고 있어서다. 특히 중국의 장샤오강의 유화'혈연 : 대가족 1호'는 홍콩 경매에서 6562만 달러(약 95억)에 거래 돼 아시아 현대미술 작품 가운데 1위를 기록했고, 최근 열린 홍콩 경매에서도 이우환의 유화'점으로부터'가 1520만 달러(약 21억3000만원)에 낙찰되면서 해외 경매에서 거래된 한국 작가로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전국 갤러리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전주 아카갤러리(대표 박지혜)가 주축이 된 아트아시아운영위원회는 국내 최초로 아시아 미술시장에 초점을 둔 국제 아트페어'아트 아시아 2012'(11~16일 서울 코엑스 A홀 3·4)를 열어 아시아 스타 작가인 장샤오강과 이우환의 작품을 동시에 선보인다.역사가 가장 깊은 국제 아트페어인 키아프에 비하면 '아트 아시아 2012'는 떠오르는 아시아 미술 시장을 겨냥한 후발주자에 가깝지만, 아시아 11개국 갤러리를 포함한 국내·외 70여 곳의 1000여 명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해냈을 정도로 그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전북에서는 군산 갤러리 미루(이광철·조헌 등)·KBS 모악갤러리(이철량)가 참여하고, 익산제일산부인과(이재승 유봉희)·닥터진 치과(국경오)·전주효사랑요양병원(최석우)·(사)한국공예문화협회(강정이 송수미 김이재 등)가 후원해 전북에서도 최초로 지역 작가들 20여 명이 국제 아트페어에 대거 합류하게 됐다. 이처럼 '최초'의 기록을 내놓고 있는 '아트 아시아 2012'는 국내·외 갤러리 70여 곳의 부스전을 비롯해 아시아 대표 작가전, 한국 연예인 스타작가전, 한국 현대미술가 100인 특별전, 러시아 현대 회화전 등으로 구성된다. 아시아 대표 작가전에서는 장샤오강 이우환 외에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나 5만원· 5000원 권의 영정 도안으로도 유명한 이종상의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연기·노래는 물론 그림 실력도 프로급인 구혜선·유준상·조재현·하정우 등이 참여하는 '한국 연예인 스타 작가전'과 김병종·이두식·지석철·김재학·이석주 등이 내놓는 품격 있는 소품을 100만원에 만나는 '한국 현대 미술가 100인 특별전'은 벌써부터 입소문이 나서 컬렉터들이 '눈도장'을 찍어둔 상태. '한국 현대 미술가 100인 특별전'에서도 도내 작가 김부견 박진영 조영대 조영철 이종만 최석우의 소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이 없어서 못 판다는 블루칩 작가들의 '아트 블루 참여 작가전'도 눈여겨봐도 좋을 듯하다. 이곳에서는 세계 명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풀어내 호평을 받은 서양화가 남경민이나 전통 수묵화에 몰두하다가 돌을 이용해 사진과 수묵을 결합시켜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박대조를 포함한 12명의 작품들로 채워진다. 개방 이후 급변해온 러시아 정서를 반영한 '러시아 현대 회화전'까지가 '아트 아시아 2012'의 하이라이트. 알아야만 볼 수 있고, 볼 줄 알아야만 구매할 수 있는 미술은 감식안만으로도, 돈만으로도 접근할 수 없다.'아트 아시아 2012'는 제대로 볼 줄 아는 컬렉터들의 '궁극의 취향'을 다채롭게 펼쳐낸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막식은 11일 오후 5시. 입장료는 1만2000원.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2.10 23:02

뒷이야기 - 1년간 우여곡절 끝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서 전주로

세계미술거장전이 막을 올린 개막일에 이흥재 관장은 개막 인사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1년 가깝게 노심초사하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전시회를 열게 된 감회가 복받쳤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베네수엘라를 오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비행기로 23시간 걸리는 베네수엘라를 두 차례 방문했다. 거리도 거리지만, 유치 과정에서 자칫 무산될 뻔한 '위기'를 겪었다.사회주의 국가인 베네수엘라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을 빌리기 위해서는 외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 작품 임대 합의를 하고도 한 달 이상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 선거까지 겹쳐 정치적 공세의 대상이 됐다. 5월에 합의한 80여점의 작품을 한국에 빼돌리려 한다는 의혹이 야당에서 제기됐고, 그렇지 않다는 해명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또 소요됐다. 전북방문의해 이벤트로 꼭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이 관장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베네수엘라 대사관 한병진 참사관이 많은 역할을 해줬다고 이 관장은 고마워했다. 이 관장이 전주 동암고 교사로 재직 당시 한 참사관의 담임을 맡았었고, 그 인연으로 자신의 일처럼 도와줬단다. 이 관장은 전북을 대표하거나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소장품을 많이 확보할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작품소장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을 재점검해보고 싶다고 했다. 입장료 수입을 씨앗으로 삼아 미술관에 재투자되길 바랐다.

  • 문화일반
  • 기타
  • 2012.12.10 23:02

스마트폰 카톡 연애 - 신명진

"엄마! 밥 언제 줄 거얏?" "앗, 깜짝이얏.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알았어. 곧 줄게 잠깐만 기다려 봐."나는 점심밥 때가 훨씬 넘은 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 시간 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무도 설레고 흥분된 기분을 멈추고 싶지 않아서였다. 딸아이의 신경질을 듣고도 나는 한참을 더 그렇게 있었다. 엄마가 스마트폰만 하고 있다고 숙직인 아빠한테 이를 거라며 딸아이가 전화 거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에고, 미안해 미안하다. 엄마가 왜 이런다니. 정신 차리자 차려." 나는 고개를 휘휘 젓고 혼잣말을 하며 서둘러 점심밥을 챙겼다."보고 싶어 못 참겠다. 한 번 만나자."라는 꿈같은 문자가 여전히 눈앞에 아른아른 춤을 추었다.우리나라 전체인구 10명 중 6명이 갖고 있다는 스마트폰을 나도 6개월 전에 갖게 되었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정보공유나 기타 폭 넓은 도움을 얻을 요량으로 멀쩡한 일반 휴대폰을 버리고 바꾼 것이다. 처음엔 나이 탓인지 조작에 겁을 먹고 기능의 대부분을 딸에 의지해 간신히 기본 기능만 사용했다. 그러다가 차츰 익숙해지자 여간 쉽고 편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 기능 중에는 카카오톡(카톡)이라는 것이 있다. 스마트폰 가진 사람들끼리 무료로 채팅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기능이다. 전화번호만 알면 누구 하고나 가능하며 몇 마디로 주고받는 간단한 인사나 문자가 일상의 무료함을 한순간 달래주기도 하고 아이들처럼 마냥 즐거운 기분으로 만들어 준다. 남편이 1박2일 주말산행을 가고 없는 어느 토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띠리링, 카톡 메시지도착 음이 울렸다."오랜만이다. 잘 있냐?" 낯선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의 새로운 카톡이 왔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초등학교 동창 이름이었다. 5학년 때 나와 짝꿍을 했던, 그러다가 6학년 초에 어디론가 전학을 가버렸던 남자애였다. 난 놀라고 궁금하고 설레어 대꾸하기 시작했다. "정말 반갑다. 이게 얼마만이야?"그렇게 시작된 카톡이 두 달을 꼬박 이어오고 있었다. 카톡을 한지 약 2주가 지나고부터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마치 한 가족인 것처럼 문자를 주고받았다. 아침에 식구들을 챙겨 보내고 나면 곧바로 굿모닝 인사를 보내고, 점심은 뭘 먹을 거냐며 하트를 동동 띄워 보내고, 오후엔 앙증맞은 찻잔에 담긴 차 이모티콘을 날려주고, 밤엔 유혹적인 새빨간 입술 이모티콘의 굿나이트 키스까지. 즐겁고 설레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쩌다가 대꾸가 없거나 거르기라도 하는 날엔 너무 궁금했다. 못내 아쉬워 스마트폰을 화장실까지 들고 다니며 열 번도 더 들여다봤다. 뿐만이 아니다. 딸아이에게 스마트폰에 왜 잠금 설정을 해 놓느냐며 역정을 냈던 일을 감쪽같이 잊어버리고 어느 순간 나도 비밀 잠금 번호를 설정해 놓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너 때문, 단풍이 들어도 너 때문, 초승달 속에도 네 얼굴, 찻잔 속에도 네 얼굴, 네거리에서도 네 생각, 음식점에서도 네 생각'신기하게도 도대체 그 애가 안 따라붙는 곳이 없었다. 그 애 생각만 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하늘을 나는 새였다가, 어여쁘게 핀 꽃이었다가, 수줍은 열아홉 살 소녀처럼 즐겁다가, 어떤 이유로 유부녀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짜증스레 꿈에서 깨곤 했다. 바로 아까 같은 순간처럼 말이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하지? 밥을 먹을까, 차만 마실까? 아니야. 이대로가 좋을지도 몰라. 나이 든 내 얼굴을 보고 실망 할 거야. 만나지 말아야지. 아니야, 그래도 딱 한 번은 보고 싶은 걸. 어쩐다지?'수차례를 되묻는 사이 거울 앞에 내가 앉아있다. 거울 속에 나이 든 여인이 푸하하하, 순진한 4학년짜리 웃음으로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다. 카톡 하는 동안 내내 지우고만 싶던 눈 주위 자글자글한 주름살이 이 순간 참 자연스럽다. 입가의 팔자 주름을 쓰다듬어본다. 전혀 눈에 거슬리지가 않다. 다시 한 번 웃음이 난다. 나는 이제 거의 6주 만에 스마트폰의 비밀 잠금 설정을 해제한다. 언제 왔는지 내 눈동자 안에 깜찍한 딸아이가 들어와 방긋 웃고 있다.* 아동문학가 신명진 씨는 2006년 '아동문예'로 등단, 동시집 '꽃김치'를 냈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12.07 23:02

거침없이 내숭없이…야릇한 섹시코미디

겨울 영화들은 이른바 '로맨틱 영화'로 대변된다. 연인들의 날이라는 크리스마스를 선두로 '사랑'을 강요하는 날들의 연속이기 때문. 그러니 영화도 연인들을 위한 이야기가 대세다. 벌써부터 이번 주 개봉 영화들도 사랑 가득한 이야기. 연인들을 위한 영화 두 편이다.수많은 로맨틱코미디 영화들 중 '나의 PS 파트너'는 좀 특별하다. 어떻게 보면 늘 봐오던 연애담에 불가능하지만 실상은 야하고 대담한 어른들(?)의 사랑. 영화 등급도 로맨틱코미디에서는 찾기 힘든 '청소년 관람불가'다.싱어송라이터를 꿈꾸며 음악에 매진하는 현승(지성). 하지만 꿈은 너무 멀고 현실은 비루하다. 현승은 그런 그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 전 여자친구에게 새 남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야릇한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무관심한 남자친구의 관심을 돌리려 깜짝 이벤트로 폰섹스를 준비한 윤정(김아중)이 전화를 잘못 건 것. 5년째 남자친구만 바라보며 회사도 때려치우고 결혼을 꿈꾸는 윤정은 자신에게 소홀해진 남자친구 때문에 속상하다. 각자의 걱정과 아픔을 가진 두 남녀는 우연히 연결된 전화로 계속 통화를 이어나가고 조금씩 마음을 여는데. 폰섹스라는 소재로 이야기는 시작하지만(그래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도 얻은 것이지만) 영화는 그에 비해 너무 야하지 않아 김빠진다. 초반 잠시 등장하는 폰섹스를 제외하고는 전화로 이어진 그들의 소통 정도가 영화의 포인트. 적당히 야하고 충분히 공감적 이여서 볼만한 영화다.아무리 야하지 않다고 하지만 '폰섹스'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오래된 연인들만 함께 관람할 것.

  • 문화일반
  • 이지연
  • 2012.12.07 23:02

23. 완주 갈동유적 출토 청동거울 - 청동기시대 기술의 결정체

지난 2006년 문화유적 발굴조사가 한창이었던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의 도로 건설 예정 부지. 고고학자들이 부르는 이름은 완주군 갈동유적이다. 앞서 실시된 조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2100년 전 갈동의 지배자들이 묻혔던 이곳에서 매우 정밀한 문양을 지닌 청동거울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유적에 대한 보고서가 발간된 지금, 이 갈동 출토 청동거울 2점은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이 거울들의 정확한 명칭은 다뉴세문경, 우리말로는 잔무늬거울이다. 작은 손잡이가 여러 개 달려있고 문양이 세밀하여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이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품이기 때문에 지금의 빛깔은 거무튀튀하지만, 제작 직후엔 은이나 놋쇠처럼 밝고 맑은 색을 냈을 것이다.거울이 발굴된 곳은 갈동유적의 5호 무덤과 7호 무덤인데, 이 중에서 보다 밀집된 무늬를 자랑하는 5호 무덤 출토품의 지름은 14.6cm, 무게는 447g이다. 둥글고 납작한 거울의 한쪽 면은 아무런 문양이 없이 매끄러워 무언가를 비추어 보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개성 넘치는 문양들이 촘촘하게 자리잡고 있다. 문양이 있는 뒷면을 '경배'(鏡背)라고 한다. 단면이 반원형인 경연(鏡緣)이 거울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고, 경배의 안쪽에는 두 개의 고리가 달려있다. 경배를 장식한 문양들에 주목하자. 얇은 선으로 빽빽하게 채운 톱니무늬가 어지럽게 베풀어져 있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2개의 톱니무늬가 서로 마주보며 결합하여 하나의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무늬의 조합이 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3개 구역 각각의 문양 구성은 동일하고, 다만 톱니의 날카로운 부분이 향한 방향이 다를 뿐이다. 7호 무덤 출토품은 4개의 영역으로 구별되지만, 톱니무늬의 조합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후기 청동기시대인들이 이토록 정교하게 새긴 무늬에 관한 미감과 정확하게 표현해낸 기술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그 제작기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복잡하지 않은 무늬일 때에는 돌을, 갈동 출토품과 같이 복잡한 무늬를 새길 때에는 밀랍(蜜蠟)을 소재로 삼았을 것이라고 한다. 새길 때에는 컴퍼스의 원리를 이용하여 반듯한 원을 그리고 여러 차례 구획하여 그 안을 짧은 선으로 채웠을 것이다.만약 우리가 돌에 문양을 새겨 넣는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거푸집이니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밀랍이라면 그 공정이 더 복잡하다. 우선 굳힌 밀랍으로 거울 모양을 만든다. 무늬를 꼼꼼히 새겨 넣는 것은 물론이다. 다음에는 밀랍을 점토로 두툼하게 감싼다. 이것을 불에 달구면 미리 뚫어놓은 구멍을 따라 녹은 밀랍이 흘러나오고, 남는 것은 단단하게 구워진 점토 거푸집이다. 다시 한쪽 구멍을 막고 남은 구멍으로 청동 녹인 물을 부은 후 충분히 식힌다. 이제 거푸집을 제거하고 숫돌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으면 우리 눈에 익숙한 잔무늬거울이 완성된다. 이러다보니 밀랍 주형(鑄型)은 일회용이 되며, 점토 거푸집은 거울을 꺼내는 과정에서 부서지고 만다. 잔무늬거울 중 똑같은 무늬를 가진 게 한 쌍도 없으며, 그 거푸집도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제작방법에서 찾고 있다.청동거울은 그 시절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였고, 제작을 위해 들어가는 자원과 공력을 감안했을 때 최고의 지배자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명품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은 거울을 목에 걸고 의식을 주관하는 시베리아 샤먼(주술사)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삼아 미래를 점치고 영혼을 들여다보았던 청동기시대 제사장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최경환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2.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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